California love!
California, knows how to party
California, knows how to party
In the city of L.A.
In the city of good ol' Watts
In the city, the city of Compton
We keep it rockin! We keep it rockin!
Now let me welcome everybody to the wild, wild west
A state that's untouchable like Elliot Ness
The track hits ya eardrum like a slug to ya chest
Pack a vest for your Jimmy in the city of sex
We in that sunshine state with a bomb ass hemp beat
The state where ya never find a dance floor empty
And pimps be on a mission for them greens,
Lean mean money-makin-machines serving fiends
I been in the game for ten years making rap tunes
Ever since honeys was wearing Sassoon
Now it's '95 and they clock me and watch me
Diamonds shinin', lookin' like I robbed Liberace
It's all good, from Diego to the Bay
Your city is the bomb if your city making pay
Throw up a finger if ya feel the same way
Dre putting it down for
Californ-I-a
California (California) knows how to party (knows how to party!)
California (west coast) knows how to party (yes they do)(that's right)
In the city of L.A. (city of L.A.)
In the city of good ol' Watts (good ol' Watts)
In the city, the city of Compton (city of Compton)
We keep it rockin! We keep it rockin! (come on, come on, come on)
Shake it shake it baby
Shake it shake it, shake it baby
Shake it shake it mama
Shake it Cali
Shake it shake it baby (that's right, uh)
Shake it shake it baby baby, shake it shake it mama, shake it Cali
Out on bail fresh outta jail, California dreaming
Soon as I stepped on the scene, I'm hearing hoochies screamin
Fiendin for money and alcohol
The life of a west side player where cowards die
And its all war
Only in Cali where we riot not rally to live and die
In L.A. we wearing Chucks not Ballies (that's right, uh)
Dressed in Locs and khaki suits and ride is what we do
Flossing but have caution we collide with other crews
Famous cause we program worldwide
Let'em recognize from Long Beach to Rosecrans
Bumping and grinding like a slow jam, it's west side
So you know the row won't bow down to no man
Say what you say
But give me that bomb beat from Dre
Let me serenade the streets of L.A.
From Oakland to Sactown
The Bay Area and back down
Cali is where they put they mack down
Cali-love
California (California) knows how to party
California, knows how to party (come on baby)
In the city (south-central) of L.A. (L.A.)
In the city of good ol' Watts (uh, that's right)
In the city, the city of Compton (yup, yup)
We keep it rocking! We keep it rocking! (yeah, yeah now make it shake, c'mon)
Shake it shake it baby (uh)
Shake it shake it, shake it baby (yeah)
Shake it shake it mama
Shake it Cali (shake it Cali)
Shake it shake it baby (shake it Cali)
Shake it shake it, shake it shake it mama (west-coast) shake it Cali
Uh, yeah, uh, long beach in the house, uh yeah
Oaktown, Oakland definitely in the house
Frisko, Frisko
Hey, you know LA is up in this
Pasadena, where you at
Yeah, Inglewood, Inglewood always up to no good
(Tupac) Even Hollywood trying to get a piece baby
Sacramento, Sacramento where ya at? yeah
Throw it up y'all, throw it up, Throw it up (I can't see ya!)
California Love!
Let's show these fools how we do this on that west side
Cause you and I know it's the best side
본명이 Andre Young인 Dr. Dre는 1965년..그의 음악에 많이 등장하는 Los Angeles의 Compton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어머니가 열심히 듣던 R&B와 Funk를 들으며 자라게 되는데 이에 대해 그는 어머니는 고된 가사일과
돈벌이의 중압감을 당시 유행하던 R&B와 funk 음악을 들으며 이겨냈었던 것 같으며 이 당시 들었던 음악들이 그의
음악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10대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배다른 3명의 여동생과 1명의 남동생을 맞게되는데 1명의
남동생이 바로 그와 함께 G-Funk의 정착에 일익을 담당한 Warren G이다. Centenial high school에 다니던 시절 각종 파티와 클럽에서 George Clinton, Isaac Hayes, Curtis Mayfield,
Barry White의 70년대 R&B, Funk 음악을 틀어주는 DJ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곧바로 R&B와 Funk가 아닌 hip-hop이 그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Dr. J(NBA 스타 Julius Irving에서 따왔다)
라는 이름으로 "Dr. Dre's Surgery"를 발표하며 50,000여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게 되었지만 그에게 경제적인 이익은 주지 못했다.
그러나, Compton 지역의 언더 랩계의 스타가 된다. 80년대 초 LA 남부지역에서 The World Class Wreckin' Cru를 결성하여 활동하던 Dr. Dre는 86년에 Ice Cube를 만나 마약 판매상이었던 Eazy-Z가 만든 Ruthless Record에서 곡을 쓰게된다.
이어 3명은 hip-hop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그룹으로 불리고 있는 90년대 갱스터랩의 원조 N.W.A.(Niggaz With
Attitude)를 전 The World Class Wreckin' Cru"의 멤버였떤 DJ Yella와 The Arabian Prince, The D.O.C.와 함께 결성하게 된다.
1987년 데뷔앨범인 "N.W.A. and The Posse"를 발표하는데 이 당시만해도 갱스터랩과 같은 강력한 음악이 아닌
가벼운 파티타임 음악이었다.
데뷔앨범이 별 인기를 얻지 못하자 88년에 MC Ren을 그룹에 가입시키며 그룹의 사운드는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바로 오늘날 갱스터 랩이라 불리는 스타일이 이 당시 창조되는데 Public Enemy의 강력하고 노이지한 사운드에 폭력
과 성에 대한 가사를 담게 된다.
이어 88년 말에 갱스터 랩의 기념비 적인 앨범인 "Straight Outta Compton"을 발표하며 단숨에 200백만장의 판매
고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는 라디오와 MTV의 도움없이 이루어 낸 것이라 팝계에 가해진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앨범을 통해 Dr. Dre는 DJ Yella와 함께 강력한 베이스와 싸구려 느낌이 나는 키보드 연주를 조금씩 곁들이며 East
Coast 지역의 Hip-Hop과는 다른 사운드를 창조해 낸다.
한편 이 앨범에 수록된 "Fuck Tha Police"라는 곡으로 인해 이들의 소속사인 Ruthless와 배급사인 Priority records는 FBI로 부터 경고장을 받게 되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FBI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 성공으로 인해 그룹 멤버들간의 수익의 배분에 대한 갈등이 생기는 등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되었고 1989년에 Ice Cube가 그룹에서 탈퇴하게 된다.
Ice Cube가 떠난후 N.W.A.는 Eazy-E가 전면에 나서게 되며 Dr. Dre와 함께 그룹을 이끌어 가게된다.
발빠르게 그룹을 정비한 N.W.A.는 1990년에 EP "100 Miles And Runnin'"과 1991년에 3번째 앨범인
"Efil4zaggin"(Niggaz 4 Life를 거꾸로 쓴것) 통해 Eazy-E의 약간은 과장된 가사와 Dr. Dre의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N.W.A.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91년 Dr. Dre는 N.W.A.를 탈퇴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Eazy-E의 독선적인 운영과 수익 분배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탈퇴했다는 것과 함께 Death Row Recor
ds를 만든 Marion "Suge" Knight의 협박에 의한 어쩔수 없이 탈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당시 Suge Knights는 N.W.A.의 매니저인 Jerry Hibbler를 찾아가 머리에 총을 들이대며 Dr. Dre를 보내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갱단의 일원이었던 Suge Knight와 함께 Death Row records를 만든 Dr. Dre는 음악 이외의 일은 Suge Knight에게 맡기며 오직 음악에만 전념하게 된다.
1992년 솔로로 독립한후 첫 싱글인 "Deep Cover"를 발표하며 G-Funk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는
Snoop Doggy Dogg(현 Snoop Dogg)을 음악계에 알리게 된다.
(당시 Snoop Doggy Dogg은 Dr. Dre의 이복 동생인 Warren G와 Nate Dogg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이어서 발표한 기념비적인 앨범 "The Chronic"을 통해 G-Funk를 완성하게 된다.
G-Funk는 앞서 N.W.A.시절 그가 만들어왔던 70년대 R&B와 Funk를 바탕으로 강력하고 강조된 베이스와 가볍지만 funky한 키보드 사운드, 그리고 섹시한 여성 보컬의 목소리를 첨가하며 폭력적이고 성적인 가사와는 다르게 귀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사운드를 담은음악을 말한다.
그러면 RollingStone 에서 97년에 발표한 역사상 위대한 팝 앨범 200선에서 평한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예전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그룹 N.W.A. 에서 갱스터 랩을 창시한 웨스트코스트 출신의 래퍼 Dr. Dre는 1992년,
공격적인 힙합과 로스엔젤레스 스타일의 쿨의 느낌을 주는 솔로 앨범 "The Chronic"으로 경찰 순찰자의 시대를 이끌고 랩을 MTV의 주요한 산물로 만들었다
부시 콜린스와 같은 펑크의 귀재들로부터 베이스 라인을 끌어올리고 흔해 빠진 신디사이저음을 집어넣음으로써 "The
Chronic"은 사우스센트랄부터 변두리까지 차 안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10대들의 음악이 되었다.
Dre와 당시의 신인 Snoop Doggy Dogg은 항상 마리화나에 절어 몽롱한 상태로 적을 죽이고 엄청난 돈을 모으는
플레이어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랩으로 노래했다.
"The Chronic"은 힙합과 R&B의 소리를 바꿨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의 영향력은 90년대 팝문화를 통해
퍼지고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Nuthin' But a 'G' Thang', 'Dre Day', 'Let Me Ride'등을 히트 시키며 그를 일약 West Coast
계의 대표로 만들었으며 이후 Hip-Hop계는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Death Row를 통해 앨범을 발표한 Snoop Doggy Dogg, Tha Dogg Pound, Lady Of Rage, 2Pac등의 앨범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며 Death Row를 랩음악계의 모타운으로 만들었다.
한편 Natural Born Killers, Above The Rim, Murder Was The Case등의 사운드 트랙의 프로듀서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Death Row에 몸담게 되면서 부터 East Coast의 Sean "Puff Daddy" Combs의 Bad Boy 사단과의
갈등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East와 West 진영간의 갈등은 총격 사건과 함께 각 진영의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며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갱스터랩의 대표주자 Coolio
갱스터 랩의 전설 Tupac
<갱스터랩의 죽음?: Aftermath의 설립 이후>
Dr. Dre의 G-Funk와 Suge Knight의 뛰어난 사업수단(떄로는 폭력을 과감하게 사용하는)으로 Death Row는 승
승장구 하면서 West Coast의 상징이 되었으며 메인스트림 Hip-Hop계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1995년 폭력사건으로 6개월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그는 교도소 생활을 통해 그간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1996년 Suge Knight의 폭력도 마지 않는 독선적인 운영에 불만을 느낀 Dr. Dre는 Death Row를 떠나고 그의 새로운 레이블인 Aftermath를 만들게 된다. 이에 대해 Dr. Dre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거부하고 있지만 Death Row를 떠나는 것이 이혼하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Dr. Dre가 떠난 Death Row 는 몇달후 Death Row에서의 첫 앨범인 "All Eyes on Me"(Dr. Dre와 함께한
히트 싱글 'California Love"가 수록된 더블 앨범)를 발표한 2Pac이 라스베가스에서 권투경기 관람후 총격을 받아
살해되는 사건을 맞게 된다.
(2Pac의 살해의 배후에는 Puff Daddy와 The Notorious B.I.G.가 연관되어 있으며 2Pac이 공공연히 B.I.G의 부인인 Faith Evans와 놀아났다고 말하는 것에 앙심을 품고 일을 저질렀다는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몇달후 The Notorious B.I.G. 역시 총격을 받고 살해당하며 West와 East간의 깊은 갈등을 드러냈다. 현재 이 두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어서 Suge Knight 마저 폭력사건으로 9년형을 선고 받게 되어 벼랑끝으로 몰리게 된다.
Dr. Dre는 Aftermath 레이블을 만들며 Newsweek지와의 인터뷰에서 더이상 갱스터랩과 같은 음악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폭탄 선언을 하게 된다.
마치 Blur의 데이먼 알반이 브릿팝은 죽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공교롭게도 2Pac이 살해당하며 배후 세력으로 Bad
Boy의 Puff Daddy가 지목이 되는등 West와 East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며 미국 사회의 갱스터랩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고 있던 시기였다.
Aftermath 레이블을 만든후 첫 앨범으로 그가 프로듀스하고 게스트 래퍼들을 불러 만든 "Dr. Dre Present...The
Aftermath" 앨범을 발표하며 그가 부른 앨범내 유일한 곡인 'Been There Done That'을 히트시켰지만 앨범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냉랭했으며 평론가들 역시 Dr. Dre의 날카로움이 사라졌다고 혹평을 가했다.
이 앨범의 실패로 인해 다시는 갱스터랩을 하지 않겠다던 Dr. Dre는 다시 갱스터랩으로 돌아오게 된다.(LA Times와의 인터뷰에 대해서 갱스터랩으로의 회귀에 대해 그의 아내인 Nicole과 충분한 상의후에 결정했으며 그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1998년 "Bulworth" 사운드 트랙을 통해 L.L. Cool J와 'Zoom'이란 곡을 함께하며 그의 존재를 알린 뒤 올해(1999) 현재까지 올해 랩 음반중 최고의 히트작인 Eminem의 "Slim Shady LP"를 발표하며 그의 재기가 멀지 않았음을 알렸으며 1992년 "The Chronic"이후 7년만에 공식 2집인 "Dr. Dre 2001"을 발표하게 된다.
10월말에 있었던 LA Times와의 인터뷰에서 Dr. Dre는 이 앨범에 모든것을 걸었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이 앨범 한 장을 위해 100여곡의 노래를 녹음 했으며 이중 22곡을 추려내었다.
이것 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이번 앨범에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The Chronic이후 7년, Death Row를 나온지 3년...그동안 Hip-Hop계는 Death Row의 몰락과 Puff Daddy가
이끄는 Bad Boy사단의 승승장구, Dr. Dre를 그대로 본딴 No Limit 사단을 이끌고 있는 Master P의 부상, 그리고
파티 타임 랩을 하는 Will Smith의 선전등..정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과연 Dr. Dre의 새앨범이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이 앨범에 대한 나의 느낌을 짧게 정리해 본다면 다시 Dr. Dre의 시대가 돌아왔음을 느꼈으며 전작 "The Chronic" 처럼 이 앨범도 Hip-Hop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뛰어난 앨범이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는 바이다.
Eminem의 앨범을 통해서 예전의 G-Funk 스타일에서 약간은 벗어난 거친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아무래도
Eminem이 백인 이기 때문에 그런 사운드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앨범 역시 정통 G-Funk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사운드를 들려준다.
둥둥거리는 강한 베이스와 키보드가 함께하는 G-Funk의 공식은 여전하지만 관능적인 여성 보컬과 스크래치와 같은
DJing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끈적꺼리면서 귀에 걸림이 없이 술술넘어가게 만들어 주던 키보드 사운드는 많이 단순해
지고 깨끗해졌다.
대신 피아노나 바이올린, 드럼 비트가 많이 강조되면서 전체적으로 느끼한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Fuck You',
'Xxplosive', 'Light Speed', 'The Next Episode', 'House Wife'등 정통 G-Funk를 담고 있는 곡들과 G-Funk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곡들이 반반씩 포진하고 있다.
Dr. Dre의 영원한 동반자 Snoop Dogg(현재는 Master P의 No Limit 소속)과 Tha Dogg Pound의 Kurupt, 그리고 Nate Dogg이 지난 앨범에 이어 참여를 하고 있고 새롭게 Eminem과 Hittman, Xzibit이 가세를 했다.
앨범의 프로듀스는 Dr. Dre 자신과 지난 "Dr. Dre Present...The Aftermath"에 참여를 했던 Mel-Man이 담당을
하고 있다.
현재 앨범의 첫 싱글은 Snoop Dogg과 함께한 'Still D.R.E'로 이미 발매가 되었으며 10월말 SNL
(Saturday Night Live)시간에 Eminem과 함께한 'Forgot About Dre'와 함께 라이브로 선보인바 있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샘플의 반복에 미드템포의 드럼비트가 함께한 곡으로 정통 G-Funk와는 거리가 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간의 랩음악계의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이 곡에서 제목인 'Still D.R.E.'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변화한 랩음악계에 대한 대답은 바로 나 Dr. Dre이며, 새앨범의 발매와 함께 내 이름을 걸고 모든것을 시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다.
또한 그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던 동안에도 열심히 랩실력과 음악을 만들어 왔으며 여전히 게토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대한 증거로 Eminem을 맞아들여 300만장을 팔아치우지 않았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 곡에 대한 연장선상의 노래로 볼 수 있는 Eminem과 함께한 'Forgot About Dre'에선 Death Row를 떠난이후
돈과 명예, 모두를 잃어버린 빈털털이인 자신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곡 역시 정통 G-Funk에서 볼 수 있는 끈적거림과 Funky한 사운드보다는 간결한 반주와 Dr. Dre와 Eminem의
속사포 같은 래핑이 돋보이는 곡이다. 아마도 2번째 싱글이 될 듯 하다.
일단 전면에 내세운 2곡을 통해 자신의 사운드가 많이 변했음(뿐만 아니라 Dr. Dre라는 인물 자체도)을 알렸지만 나머지 앨범 수록곡들은 여전히 G-Funk의 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
그러나, 결코 구닥다리의 시대에 뒤떨어진 사운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큰 변화들에 이전보다 성숙해진
Dr. Dre의 래핑을 느낄수 있다.
Dr. Dre의 랩 실력은 랩의 달인이라 불리우는 Public Enemy의 Chuck D나 N.W.A.에서 함께 활동했던 Ice Cube,
비명 횡사한 2Pac이나 The Notorious B.I.G.등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며 Dr. Dre가 그의 앨범에 게스트 래퍼를 많이 기용하는 것도 다른 래퍼들에 비해 떨어지는 자신의 랩 실력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Dr. Dre의 음악으로 본격적으로 Hip-Hop을 접하게 되었던 나는 약간은 어눌하지만 힘있는 Dr. Dre의 래핑이 무척 좋았었고 지금 역시 만족한다. 특히 가녀린 톤의 Snoop과 함께 주고 받는 래핑은 정말 압권이다.
'The Watcher', 'Still D.R.E.'와 'Forgot About Dre'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면 'Big Ego'와 'Bitch
Niggaz'에선 가사를 입수하지 못해서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중간에 Puff Daddy와 Master P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The Massage"는 교통사고로 인한 폭력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그의 동생
Tyree에 대한 애도의 곡으로 Marj J. Blige가 참여하여 끈쩍한 R&B를 들려준다.
여전히 hardcore hip-hop을 좋아하며 매일 바베큐 파티를 열고 멋진 차를 운전하며 아무 불편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Dr. Dre. 이런 생활이 너무 마음에 들며 그동안 얻은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앨범을 많이 팔아야겠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Dr. Dre. 갱스터 랩은 더이상 싫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Bitch' 'Ho', 'Fuck'등의 단어들과 성행위를
하면서 하는 대화들과 마약을 코로 들이 마시는 것이 Skit 부분으로 들어가 있는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Dr. Dre. 자신은 결코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며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자신의 앨범은 Dark-Comedy라고 말하는 Dr. Dre.
춘추전국시대의 세기말 Hip-Hop계를 평정할 만한 멋진 앨범을 들고 돌아왔지만 이 앨범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쨌건 간에 일단 이 앨범을 들어보고 모든 것을 평가하기 바란다. Dr. Dre에게 풍족한 생활을 주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이 앨범은 Hip-Hop팬이라면 꼭 소장해야할 대단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투팍하고 비기가 유명하다 한들 이미 죽은 사람들이고 이들이 생전에 있을때도 이들의 인기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만의 입지를 고수해온 또 한명의 아티스트가 있다.
아니 그냥 아티스트라 기보다도 프로듀서 겸 랩퍼 라 하는편히 훨씬 나을듯 싶다.그가 바로 미국인들이 뽑은 90년대
제일 위대한 힙합 아트스트 중 한명인 Dr.Dre(닥터 드레) , 드레 박사 이다. 갱스타 랩의 창시자라고 할수 있는 이 사람은 이미 내가 랩음악을 알기도 훨씬전에 랩계에 몸바친 힙합계의 <큰 형님>이다.
래년이면 40 이 되는 이 삼촌벌 되시는 드레 박사는 1965년 L.A. Compton 에서 태여났다. 그의 출생지가 서부지역인만큼 그는 오늘날까지도 서부지역의 대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funk 와 R & B 를 즐기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런음악들은 그에게 이후
랩음악을 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가 10대가 되였을때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하게 되였고 배다른 3명의 여동생과 1명의 남동생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남동생이 바로 훗날 G-Funk을 정착 시키는데 크게 한몫 하는 Warren G 이다.
Dr. Dre (닥터 드레)
힙합 전문지 <소스>는 1996년을 정리하면서 힙합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였다.
1위는 데쓰 로우 레코드 사장인 서지 나이트가 차지했고,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닥터 드레가 5위안에 끼었다.
닥터 드레는 1992년 데뷔 앨범 <The Chronic>으로 일약 '갱스터 랩의 간판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의 이 작품은 웨스트코스트에 흩어져 있던 흑인 래퍼들을 하나로 규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때문에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의 상위 랭크는 당연한 것이었다.
거리의 흑인들은 그의 음악에 몸을 흔들었고 그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 섹스, 폭력 등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여과 없이 그려냈던 것이다.
닥터 드레는 1980년대 후반 동부를 기점으로 퍼블릭 에너미, 런 DMC 등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한 갱스터 랩을 서부로
저변 확대시킨 전설적인 그룹 N.W.A를 통해 음악계에 입문했다.
아이스 큐브, 이지 이, MC 렌, DJ 옐라가 그 구성원들. 그룹의 면면만 살펴봐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룹의 88년 데뷔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은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는 행동주의 가사로 흑인들, 특히 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더욱이 경찰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곡 'Fuck tha police'로 그룹은 F.B.I의 감시 리스트에 올랐으며, 영국 정부는 앨범 반입을 막기 위해 보관창고를 불태우는 진풍경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음반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래퍼들에게 '갱스터 랩의 교과서'로 대접받고 있다.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갱스터 랩은 닥터 드레의 솔로 활동과 함께 주류 음악으로 본격적인 '상향 조정'을 꾀했다.
그의 1992년 데뷔작 <The Chronic>은 힙합의 '고전 목록' 맨 앞에 꼽힐 정도로 끊임없이 랩 인구에 회자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일명 드레 사운드라 일컫는 '지-펑크'(G-Funk)라는 독창적인 랩 양식을 탄생시켰다.
갱스타 펑크(Gansta Funk)의 줄임말인 이 장르는 단순한 리듬패턴으로 진행됐던 기존의 랩에 피-펑크(P-Funk)의
대부 조지 클린턴의 음악 스타일을 응용, 계속적으로 변해 가는 멜로디 라인과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리듬 앤 블루스
보컬라인을 가미시킨 것이다.
'지-펑크의 찬가', 'Nuthing but a 'G' thang'을 비롯해, 'Let me ride', 'Fuck with dre day'는 높은 인기를 얻으며
8개월 동안 빌보드 앨범차트 탑10에 머물렀다.
상복도 뒤따라 그래미상과 빌보드상 시상식을 '드레의 날'로 만드는 저력을 과시했다. 또한 그는 이 앨범을 통해서 스눕 도기 독이라는 신인 래퍼를 발굴하여 대스타로 키워냈다.
이뿐이 아니다. 닥터 드레는 이어서 워렌 지, 독 파운드 그리고 최근의 에미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안목과 프로듀싱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들을 쟁쟁한 주류 스타로 조련시켰다. 그의 진가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닥터 드레의 특허품은 서부 힙합씬을 한데 묶는데 기여했지만, 동부와의 지역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도 나타났다. 1996년의 투팩과 이듬해 노트리어스 B.I.G의 사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갱스터 랩은 약속이나 한 듯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폭력과 반목이 난무한 힙합씬에 대중들이 넌더리가 난 것이다. 닥터 드레 역시 힙합 다큐멘터리 영화 <더 쇼>에서 힙합의 순수한 정신은 변질되어 '엔터테인먼트'로 됐다면서 갱스터 랩에 대해 사망진단을 내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닥터 드레는 자신의 독자 레이블 애프터매스에서 발표한 1996년 프로젝트 앨범 <Dr. Dre
Presents The Aftermath>에서 현악기의 사용, 여성 보컬강조 등 부드러움과 세련됨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하지만 앨범은 상업적 실패로 귀결되었고 그는 기준설정을 다시 해야만 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데뷔작 이후 7년간의 장고(長考) 끝에 1999년 겨울에 내놓은 2집 [2001]. 드레의 음악적 방향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마약을 합법화하자는 메시지는 여전하지만 반주는 이전보다 밋밋함의 일색이다.
이제 더 이상 극단으로 치닫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로 여겨진다. 동부에 대한 '화해의 손짓'이기도 하다.
하지만 'Forgot about dre' 같은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매력적인 곡도 있다. 닥터 드레의 이 앨범은 산타나라는
핵 폭풍을 만나 차트 1위 등극에 어려움은 겪고 있지만 400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고는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갱스터 랩은 흑인들의 밑바닥 인생을 들춰내며 지구촌의 공유 음악으로 고속 성장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제 그들의 음악에서 치부가 아닌 '자신감'을 원한다.
21세기형 갱스터 랩. 그 대열에 닥터 드레가 또다시 앞장섰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2월10일(현지시간) '2014년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뮤지션'을 발표했다.
1위는 힙합가수 닥터 드레로 그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6억2,000만달러(한화 약 6,824억원)의 수입을 기록했다. 올해 닥터 드레가 이같은 고수입 기록한 이유는 자신이 공동 설립한 비츠 일렉트로닉스를 올해 5월 애플에 30억 달러
(약 3조360억원)에 매각했기 때문이라고 포브스는 분석했다.
2위는 팝스타 비욘세가 올랐다. 그녀는 약 1억1,500만 달러(한화 약 1,246억원)을 거뒀는데 이는 닥터 드레와 5억
달러의 차이다. 포브스는 1위와 2위와의 차이도 역대 최고라고 설명했다. 3위는 1억 달러(한화 약 1,100억원)의 수입을 거둔 록 밴드 이글스가, 4위는 8,200만 달러(약 901억원)의 본 조비,
5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8,100만달러)가 각각 랭크됐다.
계속해서 저스틴 비버(8,000만 달러), 아이돌그룹 원 디렉션(7,500만 달러), 폴 매카트니(7,100만 달러),
캘빈 해리스(6,600만 달러), 토비 키스(6,500만 달러) 등이 10위 권에 들었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한편 지난해 고소득 뮤지션은 마돈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