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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Mozart - Symphony No.36 in C major K.425 'Linz'

 

 







1. Adagio. Allegro spiritoso (10'42)




2. Poco adagio (07'06)




3. Menuetto (03'46)




4. Presto (07'39)

 


 

 

 

 

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스피리토소

오케스트라의 총주에 의한 겹점 리듬 음형이 특징적인 아다지오의 서주로 출발한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느린 서주가 붙은 것이 이것이 첫 사례인데, 여기서 모차르트는 풍부하면서도 교묘한 화성 변화를 통해서 청자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후기 음악세계로 인도한다.

알레그로의 주부는 부드럽고 우아한 선율과 탄력적이고 힘찬 리듬의 교대로 진행되는데, 그 절묘한 어우러짐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2악장: 안단테

시칠리아노 풍의 주제가 흐르는 이 악장에서 모차르트는 트럼펫과 팀파니를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효과를 빚어내고 있다. 당시의 느린악장에서는 금관 파트가 침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상당히 독창적인 시도였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용법은 훗날 베토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3악장: 미뉴에트

전형적인 고전파 풍 미뉴에트 악장이다. 화려한 무도회를 연상케 하는 미뉴에트 중간에 같은 C장조의 트리오가 삽입되어 있는데, 트리오에서는 오보에와 파곳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4악장: 프레스토

이 악장의 시작 부분에서 모차르트는 과거 ‘파리 교향곡’과 ‘하프너 교향곡’에서 사용했던 수법을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즉 베이스를 뺀 현악기들로 여리게 출발한 다음 힘차게 상승하는 대목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에 기초한 선명한 다이내믹 대비 효과가 악장 전체에 걸쳐 두드러지는데, 모차르트는 음량뿐 아니라 음색 면에서도 절묘한 대비를 이끌어내면서 음악을 천의무봉의 솜씨로 엮어나간다.

유사 폴리포니 효과까지 가미된 이 다채롭고 쾌활하면서도 깊이 있는 악장은 눈부신 환희의 울림으로 마무리된다

 

 

 

 

 

 

 

모차르트의 경이로운 음악성에 대해서는 여러 일화들이 전해오고 있지만, ‘작곡 속도’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린츠 교향곡’에 얽힌 일화가 으뜸으로 꼽히지 않을까? 모차르트는 1783년 11월 초, 고향 잘츠부르크를 방문했다가 빈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린츠(Linz,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에서 불과 엿새 사이에(혹은 나흘 만에) 이 교향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는 불과 엿새 만에 이 교향곡을 완성하여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기록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이 두 대씩 포함된 2관 편성에 연주 시간이 30분에 달하는 4악장짜리 교향곡을 쓰면서 오케스트라 총보는 물론 파트보까지 준비했고, 나아가 리허설을 거쳐 연주회까지 성공리에 치러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일화는 오랫동안 모차르트의 ‘절대적 음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었고, 그의 이미지에 신비감을 더하는 데에 확실한 일조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모차르트라고 해도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신화의 한편에서는 이런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럴 만한 것이, 그의 재능만 따진다면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경우에는 육체적 능력과 물리적 여건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오늘날 ‘린츠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6번 C장조, K.425는 자필 총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니 이의 제기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쾨헬번호 444번(K.444)이었던 교향곡 37번이 ‘린츠 교향곡’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교향곡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으로 밝혀졌고, 모차르트가 그 곡을 사보하는 데 사용한 오선지는 린츠를 거쳐 빈으로 돌아온 이후의 것으로 판명이 났다. 결국 현재로서는 교향곡 36번 C장조가 ‘린츠 교향곡’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봐야겠다.

 

Image:Lancret Sleeping Shepherdess.jpg

 

 

툰 백작 가문의 환대

한편, ‘린츠 교향곡’의 작곡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 1783년 7월 말에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고향 잘츠부르크를 오랜만에 방문한다.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이 1780년 말이었고, 콘스탄체와의 결혼식이 1782년 8월이었음을 떠올리면 필요 이상으로 고향 방문이 지연된 셈인데, 사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아버지 레오폴트와 누이 나네를이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계속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잘츠부르크로 돌아갔다가 자칫 다시 억류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도 그가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해고되었다는 증거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그 부분에 대한 확답을 듣고서야 귀향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고향에 3개월 동안 머물며 지인들과 해후하는 한편 아버지와 누이로 하여금 자기 아내를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누이의 태도는 완고했다.

모차르트가 다시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은 10월 말이었다. 그리고 빈으로 돌아가는 길에 린츠에서 일주일 정도 체류했는데, 거기서 그는 툰 백작(Count Thun) 가문의 환대를 받게 된다. 툰 백작은 하인을 도시 입구까지 보내 모차르트 내외를 마중했고, 곧바로 자기 저택으로 데려와 짐을 풀게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에게 린츠에서 연주회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날짜가 바로 11월 4일 화요일이었다. 당시에 연주회의 처음과 마지막은 교향곡이 장식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린츠에 도착했을 무렵 모차르트는 교향곡 악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목이 부러질 정도의 속도로’ 새 교향곡을 썼고, 공연을 무사히 치러냈던 것이다

 

 

 

 

1700년대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름다운 풍경.

 

 

 

Image:Nicolas Lancret 003.jpg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성숙미

‘린츠 교향곡’은 모차르트가 빈 정착 후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첫 번째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전작인 ‘하프너 교향곡’이 (상대적으로 유희적 성격이 강한) 세레나데를 전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교향곡은 보다 진지하고 순도 높은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무엇보다 빈 정착 후 한층 더 심화된 모차르트의 음악성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비록 급하게 쓰인 탓에 하이든의 영향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완서악장에서의 관현악법과 양단악장에서의 화려한 발전부가 돋보이며, 우아함과 활력, 정열과 기품을 조화롭게 버무려낸 솜씨는 ‘역시 모차르트!’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첫 악장에 붙은 느린 서주는 하이든의 어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그의 성숙미의 본보기로 간주되고 있다.

 


모차르트 교향곡 개관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모두 41곡이라 알려져 왔습니다.
이 중 몇 개인가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새로 발견된 교향곡의 숫자가 더욱 많아 요즘은 약 50곡 정도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정설입니다.

하지만 이중 대부분은 현대적 개념의 교향곡으로 보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모차르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교향곡과 서곡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향곡은 독일어로 sinfonie, 서곡은 이탈리아어로 sinfonia)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에 대단히 많은 양의 sinfonie를 작곡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것들을 연주회용으로 작곡된 것은 교향곡, 가극을 위해 작곡된 것은 서곡이라 칭하여 구분했던 것입니다. \


물론 이 둘은 양식이나 작품 규모, 작곡기법등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연주시간으로 보아도 길어야 15분 정도의 곡들입니다.

8세-10세때 작곡되는 초기 신포니들은 곡의 규모나 관현악단 규모도 무척 작아 마치 실내악을 듣는 듯한 인상을 풍깁니다.
이 당시 그가 즐겨썼던 편성은 오보에 2, 혼 2, 현악 합주 라는 작은 편성이었는데,
이 편성은 모차르트 말기에도 꽤 등장하는 편성입니다.

시기는 모차르트의 파리-런던-헤이그에 이르는 대여행 시기에 해당하는데,
곡은 완전히 독일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꽤 심각하지만 (어린애 답지 않게 말이죠) 단조곡은 단 한 곡도 없습니다.

이후 10대 초반에서 중반에 걸치는 이탈리아 대 여행때는 대단히 많은 수의 신포니를 작곡합니다.
50여곡의 신포니 중 거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작곡되는데, 오늘날까지 연주되는 곡은 거의 없어,
19번 같은 것이 가끔 거론될 뿐입니다. 이 시기는 이후 모차르트 교향곡의 발전사에 초석이 되는 시기라고나 할까요...

17세가 되던 해의 초반에 작곡된 26번, 27번이 이 시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들로서 자주 연주되고 레코딩 되고 있는데
(이 곡들은 25번 보다도 먼저 작곡된 것입니다. 번호의 재정비가 시급하죠.)
이 중 26번은 오페라 서곡이고, 27번은 3악장 양식의 신포니입니다.

(26번은 3개의 악장이 연속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거의 2관 편성에 가까운, 당시로서는 꽤 큰 관현악단의 규모가 이 곡이 오페라 서곡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17세때 빈 여행 이후 모차르트는 중요한 sinfonie를 다섯 개 작곡하는데, 그것이 바로 24번, 25번, 29번, 30번, 28번 입니다.
이것들은 악기 편성도 나름대로 다양해 졌고 곡의 규모도 꽤 커졌으며 3악장 양식에서 완전 탈피하여 4악장 양식으로 정착됩니다.


악기 편성에 있어서는 아직도 소편성이지만,
그 악상의 규모나 전개 양상이 이제까지의 신포니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25번과 29번이 뛰어난 걸작입니다.

이후 4년간의 교향곡 공백기를 거쳐 파리 여행때 작곡된 "파리 교향곡" (31번)은 완전한 2관편성곡으로 교향곡에 최초로 클라리넷을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곡 자체도 교향적인 울림이 커지는 등, 모차르트 교향곡사에 일대 변혁을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악장 수에 있어서는 오히려 3악장으로 후퇴합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 파리의 sinfonie 곡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관악에 있어서 만큼은 파리나 만하임이 빈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런 2관편성의시도가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파리 여행은 모차르트에게는 최초의 시련기라 할 수 있었는데, 그는 이 여행에서 어머니와, 사랑하던 연인을 모두 잃었기 때문입니다.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세 개의 sinfonie를 작곡하는데, 그 중 32번이라 칭해진 것은  오페라 서곡입니다.


어렸을 때의 모차르트의 sinfonie에서도 연주회용 sinfonie와 오페라 서곡용 sinfonie는 어느 정도 구별되었습니다.
연주시간도 연주회용이 길었고, 무엇보다도 오페라 서곡은 악기편성이 컸습니다.
32번은 연주시간이 8분 정도 밖에 안되는 데다가, 단악장 곡이었기에 오페라 서곡으로 단정짓는 것입니다.

나머지 두 곡, 33번과 34번은 원래 3악장 곡이었지만 나중에 빈에서 재연될 때 미뉴엣 악장을 추가하여
4악장으로 개작되는 곡들입니다. 이 두 곡은 과도기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대략 이때를 전후하여 모차르트는 오페라 서곡으로 sinfonia라는 이름 대신
ouverture(overture; 서곡)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는데, 바로 교향곡과 서곡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지칭합니다.
빠르고-느리고-빠른 전형적인 신포니에서, 소나타 형식의 단악장으로 바뀌고, 연주시간도 훨씬 짧아지게 되지요.

빈에 정착한 10년은 모차르트에게는 가장 풍성한 시기였고, 또 대부분의 걸작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교향곡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10년간 모짜르트는 단 6곡의 교향곡만을 작곡했습니다.
(35번 "하프너", 36번 "린쯔", 38번 "프라하", 39번, 40번, 41번 "쥬피터", 37번은 짤막한 서주만이 남아 있음.)

이 중 39,40,41번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3대 교향곡"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32세되는 해 여름에 1달반 사이에 작곡된 것들입니다.
이 세 곡이야 말로 모차르트 교향곡사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세 봉우리들이며,
그의 다른 모든 교향곡들이 이 세곡을 위하여 전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