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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Tchaikovsky, Symphony No.6, Op.74 ‘Pathétique'



니콜라이 1세 기마상

 

 

 

 

 

 

Tchaikovsky, Symphony No.6, Op.74 ‘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Pyotr Ilyich Tchaikovsky

 

 

 

 

 

 

Chung Myung-Whun/SPO - Tchaikovsky, Symphony No.6, Op.74 ‘Pathétique'

 

 

 

 

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논 트로포

1악장 서주의 아다지오 선율,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으로 연주하는 침울한 멜로디부터 그렇습니다. 뒤따라 파곳이 흐느끼듯이 연주되다가 현악기가 이어받습니다. 이 서주를 그대로 이어받아 리드미컬한 첫 번째 주제가 펼쳐집니다. 점점 고조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키지요.

잠시 후 템포가 확연히 느려지면서 현악기들이 애절하게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가 제시됩니다. 클라리넷, 파곳이 그것을 이어받습니다. 그러다가 1악장 중간 지점인 발전부에 들어서면 갑자기 음량이 고조되면서 리듬이 강력해지지요. 금관이 격렬하게 포효하면서 콘트라스트를 고조시킵니다.

이렇듯이 6번 ‘비창’에는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의 극단적인 대비가 등장합니다.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들으면서 오디오의 볼륨을 조절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종결부에 들어서면 현악기들이 피치카토를 둥둥 울리는 가운데, 관악기들의 부드럽고 쓸쓸한 선율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2악장: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

2악장은 5분의 4박자로 이뤄진 비틀거리는 춤입니다. 러시아 민요에 빈번히 등장하는 리듬입니다. 아름다운 노래의 느낌이 물씬한 선율이 엇박자의 춤처럼 전개됩니다.

교향곡 5번의 3악장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차이콥스키의 매력이자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발레의 분위기를 풍기는 악장입니다. 하지만 이 춤은 뭔가 불안한 느낌을 내포한 채 흘러갑니다. 특히 종결부가 그렇습니다.

스르르 사라지는 느낌으로 끝납니다.

 

3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3악장은 조잘대며 시작합니다. 약간 장난을 치는 듯한 스케르초 풍의 악장인데, 2악장과 마찬가지로 춤곡의 분위기가 두드러집니다. 3악장의 주제는 차이콥스키가 사랑했던 이탈리아 남부의 타란텔라 무곡을 차용하고 있는 까닭에 ‘타란텔라 주제’라고도 불립니다.

종결부에서는 행진곡 풍으로 달려가다가 팀파니와 관악기가 어울려 명확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비창’의 4개 악장 중에서 유일하게 뚜렷한 종지부를 지닌 악장입니다.

4악장: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

이 곡은 전체적으로 느린 1악장, 빠른 2악장과 3악장, 그리고 다시 느린 4악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교향곡의 4악장은 빠른 템포로 펼쳐지는 법이지만, 차이콥스키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비창’의 4악장은 아주 느릿하게 문을 열면서 앞의 두 악장과 확연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앞서 언급했던 차이콥스키의 비관적 운명론이 집약돼 있는 악장입니다. 두 개의 주제 선율은 모두 밑으로 하강하면서 비통한 분위기를 펼칩니다.

슬프게 울고 있는 것 같은 첫 번째 주제가 여리게 흘러나오다가 관현악 총주로 한차례 치솟아 오릅니다. 그랬다가 다시 꺼질 듯이 가라앉습니다. 호른의 뒤를 따라 현악기들이 여리게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도 흐느끼는 듯한 클라이맥스를 구축했다가 역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우울함을 뛰어넘어 낙담과 절망, 체념을 느끼게 하는 악장입니다. 힘없이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더욱 그렇습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b단조 Op.74)에는 아시다시피 ‘비창(Pathétique)’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번호가 붙은 교향곡 중에서 표제를 지닌 것은 1번과 6번입니다.

1번 g단조에는 ‘겨울날의 환상(Winter Daydreams)’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요. ‘겨울날의 몽상’이라고도 번역합니다.

 

6번에 붙어 있는 ‘비창’은 이 곡의 초연(1893년) 직후, 차이콥스키의 동생 모데스트가 지은 이름입니다. 모데스트는

차이콥스키의 매니저와도 같은 역할을 했지요.

우유부단하고 내향적이었던 차이콥스키는 동생 모데스트에게 적잖이 의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형과 동생이

 거꾸로 된 것이지요

 

초연 직후에 차이콥스키가 모데스트에게 표제를 붙이고 싶다는 의향을 말하자, 모데스트는 ‘비극적’이라는 표제가 어떻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그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잠시 생각을 굴린 모데스트가 “그러면 ‘파테티체스키’(러시아말로 ‘비창’)는 어떠냐?”고 하자 “그래 모디, 좋구나!”라며 동의했다고 하지요. 이 유명한 에피소드는 모데스트가 쓴 차이콥스키 전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확한 진위를 판명하기에는 좀 애매합니다. ◀차이콥스키의 동생 모데스트

1번과 6번 외에도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에 제목이 붙는 경우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2번 ‘소러시아’, 3번 ‘폴란드’가 그렇지요. 이 이름들은 공식적인 표제가 아니라 그저 ‘별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출판된

악보에 기록된 공식 표제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2번의 경우에는 1악장과 4악장에서 우크라이나의 민요 선율이 사용되고 있어서 ‘소러시아’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0세기 초반까지 소러시아로 통칭됐지요.

또 3번은 마지막 5악장에 폴란드의 춤곡인 폴로네즈가 등장해서 ‘폴란드’라는 별칭을 얻게 됐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비관적 인생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해에 작곡됐지요. 그야말로 절망의 심연을 더듬는,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곡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레퀴엠’을 인용하고 있는 1악장은 물론이거니와, 느리고 우울하게 소멸하는 4악장도 절망의 극치를 보여주는 피날레입니다.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삶과 죽음, 그것이야말로 ‘비창’이 묘사하고 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차이콥스키의 비관적 인생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교향곡입니다.

 교향곡 4번과 5번에서도 차이콥스키의 비관이 드러나지만 6번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한층 어둡게 표출됩니다. 예컨대 5번만 해도 차이콥스키의 어떤 동경과 그리움 같은 것이 음악 속에 담겨 있지요. 특히 3악장에서는 따뜻함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전해집니다.

 마지막 4악장에서도 완벽한 절망으로 추락하지 못하고 절충적인 피날레를 선택하지요. 하지만 오늘 들을 6번의 마지막 악장은 완전한 비관주의를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이 곡이 차이콥스키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작곡했던 음악인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음악이라고 얘기하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좀 다릅니다. 5번 교향곡에서도 언급했듯이 차이콥스키는 연주여행이 아주 잦았는데요,

1892년 말부터 다음 해 초에 걸쳐 서유럽 여행을 다녀온 직후, 모스크바 북서쪽의 도시 클린((Klin)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교향곡 6번을 스케치합니다.

그해 2월에 동생 아나톨리(모데스트와 쌍둥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로운 곡을 쓰고 있단다. 이 곡은 틀림없이 내 최고의 작품이 될 거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4월 무렵에 교향곡 6번의 스케치를 끝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차이콥스키가 생애 마지막 날들을 지내던 클린 시에 있는 집. 지금은 차이콥스키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할 수가 없었지요. 마지막 피아노 작품인 <18개의 소품>, 또 최후의 가곡집인 <6개의 로망스>를 작곡하느라고 교향곡 6번에서 잠시 손을 놓습니다. 이어서 영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나는데요,

이것이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산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교향곡 4번을 연주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지요. 클린의 집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8월에 다다라서였습니다.

그는 얼마 후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아들 다비도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페이지를 쓰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단다.”라면서 교향곡 6번을 마무리하기가 영 만만치 않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조카 다비도프도 차이콥스키의 생애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데요, 자식이 없었던 차이콥스키는 그를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였다는 말도 있지만, 이 역시 진위가 불분명한 설입니다. 어쨌든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을 사랑하는 조카 다비도프에게 헌정하지요.

이 조카도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13년 뒤에 자살로 생을 마칩니다.

초연은 같은 해 10월 28일,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음악협회의 연주회에서 차이콥스키가 직접 지휘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9일 뒤에 차이콥스키는 음악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의문의 죽음을 맞지요. 애초에 발표된 사인은 콜레라였습니다.

 끓이지 않은 물을 마셨다가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는 것이 죽음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콜레라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은 사실이지요. 러시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어딘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1978년에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둘러싼 다른 사연이 제기돼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클린 시의 차이콥스키 박물관에서 일하던 소련의 음악학자 오를로바가 차이콥스키의 죽음은 비소 중독에 따른 자살이라고 발표했던 것이지요.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가 한 귀족의 손자와 연인 관계로 지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귀족이 차이콥스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투서를 썼다는 것이지요. 그 투서를 전달받은 사람이 다름 아닌 차이콥스키의 법률학교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법률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동창들을 소집해 비밀법정을 열었고, 그 결정에 따라 차이콥스키가 자살하도록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그것을 엄청난 불명예로 여겼던 당시의 상황에 비춰 보자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오늘날에는 콜레라 설보다 오히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인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의 설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차이콥스키의 죽음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남아 있습니다.

어쨌든 교향곡 6번 ‘비창’은 그 자체의 비극성뿐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실제 죽음과 결부되면서 ‘마지막 비극’이라는 신화성을 한층 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차이콥스키가 실제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작곡했을 리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교향곡 6번에 차이콥스키가 느꼈을 절망이 짙게 드리워진 것은 분명합니다.

 

 





 

1893년 차이콥스키의 장례식에 운집한 수많은 군중과 장례 행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