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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Rachmaninov,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43

Stephen Hough - Rachmaninov,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Rachmaninov,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Sergei Rachmaninov

1873-1943

 

Stephen Hough, piano

Sakari Oramo, conductor

BBC Symphony Orchestra

First Night of the Proms 2013

Royal Albert Hall, London

2013.07.12

 

 

 

 

 

 

 

파가니니에 관한 전설에는 다분히 환상적인 측면이 있다. 19세기 초에 활약했던 그의 신출귀몰한 바이올린 연주 솜씨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대가였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그런 소문은 한동안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그로 인해 파가니니는 죽은 뒤 고향에서조차 거부당한 채 오래도록 구천을 떠돌아야만 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파가니니는 낭만주의를 선도한 거장으로 자리매김했고, 따라서 그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언제나 초자연적인 주제에 열광했던 러시아 예술가들은 파가니니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는데, 러시아의 마지막 낭만주의자였던 라흐마니노프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라흐마니노프 만년의 걸작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그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현란한 색채와 악마적 기교,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비르투오소 피아니즘의 눈부신 광채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러시아의 정치적 혼란을 피하여 스웨덴 연주여행 도중 서방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보스턴 교향악단의 초청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가 1935년에는 미국에 귀화하게 된다. 망명 이후 그는 주로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는데, 생계를 위한 연주가로서의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창작에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또 20세기 전반을 유린했던 아방가르드의 조류도 작곡가로서의 그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러시아에 머물던 시기에 작곡 활동이 활발했던 것과 달리 망명 후에는 피아노 협주곡 4번, 교향곡 3번,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교향적 무곡> 등 소수의 작품만을 남긴 것은 그런 이유들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그가 스위스에 머물던 1934년 여름, 루체른 호숫가의 별장에서 불과 한 달 보름여 만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7일 볼티모어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 음악의 영향을 드러냈던 피아노 협주곡 4번에 이은 라흐마니노프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 작품’으로서, 피아노의 화려한 명인기와 관현악의 풍부한 색채, 그리고 둘 사이의 정교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이 곡은 가히 20세기에 작곡된 모든 피아노 협주 작품 가운데 최고라 칭송받을 만하며, 여기서 라흐마니노프 고유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즘’은 가장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카프리치오 주제와 디에스 이레

이 곡은 기본적으로 변주곡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변주의 주제로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 중 마지막 곡의 a단조 선율이 채택되었다. 아울러 라흐마니노프는 이 ‘카프리치오 주제’에 대비되는 또 하나의 주제로 ‘죽음’ 또는 ‘심판의 날’을 암시하는 중세의 ‘디에스 이레’(Dies irae) 선율을 도입함으로써 작품의 독창성과 구성미를 강화하고 나아가 자칫 가볍게만 비칠 뻔했던 작품에 보다 심오한 아우라를 부여했다.

 

전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각각은 빠르게(1~10변주), 느리게(11~18변주), 빠르게(19~24변주)의 세 템포로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곡은 3악장으로 구성된 통상적인 협주곡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느린 악장에 해당하는 두 번째 부분에는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스케르초 풍의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구성 방식은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협주곡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곡은 알레그로 비바체의 짤막한 서주로 시작되는데, 9마디에 걸친 관현악과 피아노의 화음이 주제를 암시한 다음 곧바로 주부로 진입한다. 주부에서는 통상적인 변주곡의 관례를 깨고 주제의 제시에 앞서 첫 번째 변주가 먼저 나온다.

주로 관현악에 의한 단순한 리듬으로 이루어진 제1변주에 이어 ‘카프리치오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제시되고, 피아노는 제2변주부터 전면에 나선다. 이후 제5변주까지는 피아노와 관현악의 경묘한 얽힘이 두드러지면서 숨 가쁘게 진행되다가, 제6변주로 접어들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마침내 제7변주로 넘어가면 또 하나의 주제인 ‘디에스 이레’ 선율이 첫 주제와는 대조적인 무거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유래한 어둡고 악마적인 분위기가 제10변주까지 지속되는데, 그 흐름은 리스트 풍의 변화무쌍한 악구들이 장식하고 있다.

잠시 음악이 멈췄다가 제11변주로 접어들면, 현이 여리게 연주하는 트레몰로 위로 피아노가 역시 리스트 풍의 카덴차를 연주한다. 이 변주와 미뉴에트 풍의 제12변주는 다소 정체된 느낌을 유발하는데, 피아노의 차분한 움직임 위로 관현악이 한층 다채로운 색감을 자아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악은 제13변주에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박력 있는 행진곡 풍으로 전개되는 제14변주에서 한 차례 고조된 후, 제15변주의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제16변주로 넘어가면 흐름은 다시 가라앉고 오보에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면서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게 된다.

이제 부드러운 제17변주를 거쳐 제18변주에 다다르면, 마침내 유명한 안단테 칸타빌레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감성적 기운을 가득 머금은 감미로운 선율이 서서히 상승하여 찬란하지만 애틋한 고조를 연출하는 이 감동적인 장면이야말로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백미라 할 만하다.

제19변주, 현의 피치카토에 이끌려 피아노가 다시금 약동하기 시작한다. 음악은 마치 곡의 첫 부분으로 돌아간 듯 경묘하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며, 그것을 더욱 확대, 강화시키면서 또 한 번의 고조를 향해 나아간다.

제22변주는 악보 상으로 가장 긴 변주인데, 처음에 행진곡처럼 출발해서 피아노가 화음을 연주하면 점차 부풀어 올라 정점에 도달한 후 빠른 패시지를 거쳐 힘찬 카덴차로 마무리된다.

이후 음악은 종결을 향하여 숨 가쁘게 치달아 간다. 마지막 변주에서 피아노가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를 연주하고 목관에 주제가 나타나 다시 피아노로 연결된 후, 코다(종결부)에 이르러 관현악에 의해 ‘디에스 이레’ 선율이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터져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피아노가 주제의 단편을 연주한 후 갑작스레 막이 내린다. 마치 ‘누군가 촛불을 훅 불어서 우리를 어둠 속에 남겨둔 것’처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배경 & 해설

 

1934년 7월 3일에 착수되어 8월 24일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1월 7일, 미국 발티모어에서 작곡자 자신이 피아노 독주를 하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가운데 초연 되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비록 변주곡이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그 틀에 얽메이지않고 자유롭게 작곡자의 감성과 악기의 기교적 측면을 적절하게 조화시켜서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매우 환상적인 것으로 이끌어 갔다는데 있다.

 

주제는 일반적인 관례를 깨트리고 제1변주 뒤에 선을 보이고 있는 것도 특이한 아이디어로 간주되고 있는데, 24개의 변주

가운데서도 유독 제18변주는 그 짙은 로맨티시즘 때문에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노 곡으로, 그의 걸작이라 인정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이 분야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 것은 작곡가인 동시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곡은 1934년, 7월 3일부터 8월 24일까지의 짧은 시일에, 스위스에서 완성되었다.

이 곡은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어있다.

주제로서 채택된 것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던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치오 작품 1'의 마지막 곡 a minor의

 곡으로, 그것을 스물 네 번 변주하고, 짧은 서주와 코다가 붙어 있다.

 

곡은 단순한 변주곡의 범위를 벗어난 복잡하고 기교적인 것으로, 피아노의 화려한 솜씨와 교묘한 관현악법을 구사한 상당히 정성들인 작품이다.

 변주적 처리에 너무나도 민감한 파가니니의 주제는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작곡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인지 이 곡의 주제에 사용된 파가니니의 곡은 이외에도 리스트와 브람스에 의해서 다루어진 것도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서주 (Allegro vivace)는 주제를 암시하듯이 강하게 연주된 후, 일반적인 변주곡의 틀을 깨뜨리고 주제 제시에 앞서 먼저

제 1변주가 나타난다.

제 1변주 (Precedente)는 오로지 관현악으로서 연주되는 단순한 리듬만이 연속된다. 주제는 여기에 이어서 이 곡의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제 2변주 (L'istesso tempo)는 처음에 혼과 트롬본의 반주로 피아노가 주제를 연주하고, 이윽고 현도 이에 곁들어 그대로

 제 3변주로 옮겨진다.

 

제 3변주 (L'istesso tempo)는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서로 엇바꿔, 16분 음표 음형으로 주제의 단편을 연주하고, 피아노는

거기에 표정을 갖고 대위법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제 4변주 (Piu vivo)는 피아노가 뚜렷하게 주제를 연주한다.

 

목관과 현이 주제의 단편을 연주한다.

제 5변주 (Tempo precedente)는 피아노가 힘차고, 보다 자유분방하게 주제를 변주한다. 그리고 현과 목관이 스타카토로

이것을 반주한다.

제 6변주 (L'istesso tempo)는 피아노가 눈부신 기교로 주제를 변주하고, 마지막에 잉글리시 호른이 주제의 단편을 두 번 유연하게 연주한다.

 

제 7변주 (Meno mosso, a tempo moderato)는 피아노가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의 선율을 장중하게 연주하고, 파곳,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주제가 연주된다.

 '디에스 이레'는 파가니니 주제와 더불어 이 곡에 몇 번 등장하는 주제로써, 중세의 종교 음악에서 취한 것이다.

 

제 8변주 (Tempo I)는 피아노가 스타카토로 기세등등하게 주제를 변주하지만 그 수법은 리스트 풍이며, 관현악에도 주제가 나타난다.

제 9변주 (L'istesso tempo)도 같은 리스트 풍이며, 관현악은 시종일관 셋잇단음표로 반주하고, 그것을 반주로 피아노가

기교적으로 주제를 변주한다.

 

제10변주 (Poco marcato)에는 또다시 피아노에 '디에스 이레'의 선율이 나타나 관현악에 주제의 단편이 연주된다.

그리고 파트를 바꾸어서 피아노가 눈부신 기교로 주제를 전개한다.

제11변주 (Moderato)는 여린 현악기의 트레몰로에서 시작되며, 피아노는 주제의 단편을 리스트 풍의 카덴차로 연주한다.

 

또한 주제는 목관악기에 나타나, 마지막에는 피아노에도 나타난다. 여기의 하프의 글리산도는 효과적이다.

제12변주 (Tempo di Minuetto)는 일단 차분함을 되찾고 율동적인 움직임이 넘치고 있다. 주제는 주로 목관에 나타난다.

제13변주 (Allegro)에서는 또 다시 활기를 띤 주제가 오로지 관현악에만 나타나고, 피아노는 강한 연주로 화음을 계속

연주한다.

 

제14변주 (L'istesso tempo)는 관현악만의 포르테로 변주를 시작하여, 피아노가 부가되어 강한 리듬으로 연주되는 행진곡 풍의 변주이다.

 

제15변주 (Piu vivo, Scherzando)는 피아노의 독주로 발랄하게 변주가 시작되어, 현악과 목관이 부가되어진다.

극히 자유로운 변주이다. 피아노의 패시지 가운데에서 주제가 변주되고 있다.

제16변주 (Allegretto)는 오보에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피아노가 이것과 화합하여 주제의 단편을 연주한다.

제17변주는 극히 소극적인 관현악을 배경으로, 거의 피아노가 혼자 자유로운 변주를 계속하는 조용한 변주이다.

 

제18변주 (Andante Cantabile)도 계속하여 피아노만이 극히 풍부한 표정으로 새로운 가락을 노래하며, 이윽고 현과

목관이 거기에 곁들어, 현악이 선율을 이어받아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은 현악을 반주한다.

제19변주 (L'istesso tempo)는 현악의 피치카토에 실려서 피아노가 시종일관 셋 잇단 음표를 달리듯이 연주한다.

 

제20변주(Un poco piu vivo)는 바이올린의 섬세한 음형 위에 피아노가 나는 듯이 가볍게 주제를 변주한다.

제21변주 (Un poco piu vivo)는 피아노가 셋잇단음표를 스타카토로 눈부시게 연주한다.

극한 기교가 요구되는 변주곡이다.

 

제22변주 (Un poco piu vivo, alla breme)는 전체의 변주곡 중 가장 길고, 또한 기교적인 변주곡이다. 행진곡풍으로 시작하여 현악에 주제의 단편이 나타나 피아노가 화음을 연주면서 절정에 이르면, 피아노는 셋잇단음표의 음형으로 바뀌어 또 다시 현악에 주제의 단편이 나타난다.

그리고 피아노가 이것을 장식하게 되는데 마지막은 강한 포르티시모로 피아노가 카덴차를 연주한다.

 

제23변주(L'istesso tempo)는 처음에 피아노의 독주로 뚜렷하게 주제의 단편이 연주되고 관현악에 이어진 후, 다시 피아노로 되돌아간다.

여기에서도 마지막에 카덴차가 연주된다.

제24변주 (A tempo, un poco meno mosso)는 피아노가 셋잇단음표를 스타카토로 연주하고, 목관에 주제가 나타나는데,

뒤에 이것을 피아노가 이어받는다.

 

 코다는 점점 세게 연주되어 정점에서 관현악이 '디에스 이레'를 포르티시모로 연주하고 피아노가 주제의 단편을 연주하여 장대하게 전곡을 맺는다.

 

 

 

안톤 루빈스타인( Anton Rubinstein)

 

 

루빈스타인 [Rubinstein, Artur, 1887.1.28~1982.12.20]

 

1887. 1. 28 러시아 제국령 우지(지금의 폴란드 로지)에서 출생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연주해석으로 인정받은 국제적인 피아니스트. 일찍이 3세 때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8세 때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이듬해에는 베를린에서 하인리히 바르트의 제자가 되었다. 6세에 처음 연주회를 열었으며, 13세때

베를린에서 요아힘이 지휘하는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데뷔하였다.

 

1906년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함으로써 미국에서 데뷔했지만 청중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런던에서 군 통역사로 복무했고 바이올린 연주자 유진 이자이와

 협연하기도 했다. 1916년 스페인을 방문해서 파야와 엔리크 그라나도스의 작품을 소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1919년에 가진 2번째 미국 연주에서는 활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1920년대에는 국제적 명사로서 명성을 굳혔으나 1928년 훗날 아내가 된 아니엘라 믈리나르스키를 만난 이후 자신의

예술성을 진지하게 연구·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롭게 음악에 헌신하여 매일 6~9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이전에 습득한 화려한 기교에 새로운 훈련을 쌓았다.

 그는 1937년 다시 한 번 미국 카네기 홀에서 천재적인 연주로 갈채를 받았다.

 

그후 베토벤·모차르트·알베니스·라벨·스트라빈스키·쇼팽 등의 작품을 두루 섭렵한 방대한 레퍼토리로 명성을 떨쳤고,

 특히 쇼팽 해석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46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재치있고 외향적이던 그는 달변으로도 유명했지만 일단 무대에 서면 연주에 몰두하는 진지한 연주자였다.

 

자신있게 연주한 쇼팽곡뿐만 아니라 모든 곡에서 당시 유행한 안이한 템포 루바토에 따르지 않고, 균형 잡힌 구조 속에서

어택이나 음색에 의하여 선율(旋律)을 조성하였는데, 그의 연주방법은 지금도 인정받고 있다.  풍부한 음량과 변화가 많은

음색을 갖춘 20세기의 대표적 피아니스트로서, 쇼팽, 드뷔시 ·라벨 ·프랑크 ·로보스 등의 작품에 뛰어난 해석을 보였다.

 

200장이 넘는 음반을 취입하였고 1976년 미국 자유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2권으로 된 자서전인 〈나의 젊은 시절

 My Young Years〉(1973)과 〈오랜 나날들 My Many Years〉(1980)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