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Right, I`ve Got The Blues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From my head down to my shoes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From my head down to my shoes
I can't win, cause I don't have a thing to lose
I stopped by my daughters house
You know I just want to use the phone
I stopped by my daughters house
You know I just want to use the phone
You know my new grand baby came to the door
And said, granddaddy you know ain't no one at home
I said now look out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From my head down to my shoes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From my head down to my shoes
You know I can't win, now people, cause I don't have a thing to lose
Alright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You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Yeah
올해 정확히 80세가 되신 걸로 아는데, 유작이 된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고령의 연주이지만, 혹시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열정 면에서는 근 50여년 전 지미 헨드릭스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분이신데다가, 그같은 정력적인 모습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은 없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도 않는다.
2013년에 발표된 전작 <Rhythm & Blues>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름에 걸맞는 초호화 게스트 진용은 놀랍다기 보다는 이젠 그저 당연하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전설 버디 가이옹의 앨범에 이 정도 레벨의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 아닌가.
유명 팝스타들의 레코드사와 매니지먼트가 돈 보따리 풀어 억지로 불러 들인 화제작들의 호화 진용 게스트들과는 그 차원이 달라도 완전히 다르다.
또 그네들의 사업적 콜라보와는 이뤄내는 화학작용 자체가 비교조차 되지도 않고 말이다.
음악에 대해서는 굳이 길고 깊게 할 이야기가 없다.
동료, 선후배 다른 블루스 레전드들이 꼭 한 번씩은 했던 외도 아닌 외도가 단 한 번도 없었던 분이니만큼 이제 와서
예상치 못했던 파격의 변신을 행할 리도 없는 데다가, 본인 역시 항상 그렇게 외쳐왔기에 음악적 방향 만큼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런 걱정조차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시카고 블루스 개척기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인 버디 가이는 200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 순위에서 30위를 차지했고, 2011년 순위에서는 23위로 일곱 계단 상승했다.
'www.guitar.com'이 선정한 순위에서도 22위에 랭크되어 있으니 기타리스트로서 그의 위상은 그만큼 확고하다
하겠으나 대중적인 지명도 면에서 본다면 가장 과소평가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솔로 활동보다는 주로 다른 이들의 반주자, 백업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디 가이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버디 가이는 1936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츠워스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직접 만든 두 줄짜리 디들리 바우카로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다음으로는 하모니 어쿠스틱 기타를 잡았는데 이 기타는 나중에 아주 유명해져서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기증되었다.
버디 가이는 1950년대 초반부터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고 1957년 시카고로 근거지를 옮긴 이후에는 머디 워터스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버디 가이의 초창기 경력은 체스 레코드와 함께 한다. 그는 1959년에서 1968년 사이 체스 레코드의 전속 기타리스트로 일하면서 회사의 녹음작업 대부분에 참여했다.
머디 워터스와 하울링 울프, 소니 보이 윌리엄슨, 코코 테일러(Koko Taylor, 1928~2009) 등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음반에서 세션 기타리스트로서 보여준 그의 연주 실력은 뛰어난 것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을 내지는 못했다.
음반사 관계자들이 당시로서는 다소 기이하고 실험적이던 그의 음악의 대중적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체스 레코드의 설립자인 레너드 체스는 버디 가이의 스타일을 소음이라 여기기까지 했다.
버디 가이는 체스를 떠나기 직전인 1967년에야 체스 레코드 시절의 유일한 솔로 앨범인 「I Left My Blues in San
Francisco」를 발표할 수 있었다.
1969년 봄 영국 스테인즈에서 열린 슈퍼쇼에 참가한 것은 그의 경력 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남는 장면이다.
당시 쇼에는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잭 브루스(Jack Bruce), 버디 마일스(Buddy Miles), 스티븐 스틸스, 글렌 캠벨(Glen Campbell) 등 쟁쟁한 멤버들이 참여했다.
1960년대가 지나가고 버디 가이는 활동이 뜸해지면서 점차 잊혀져 갔다.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권 밖에 머물던 그가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 이른바 블루스 리바이벌 붐이 일어나면서였다.
에릭 클랩튼이 1990년에서 1991년 사이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가진 '24 Nights' 공연을 위한 올스타
블루스 기타 라인업에 버디 가이를 포함시켰던 게 계기가 되었다.
버디 가이는 흔히 시카고 블루스의 전통을 잇는 기타리스트로 분류되지만, 그러면서도 그만이 가지는 독창성과 차별성을 인정받는다. 그의 음악은 물론 전통적인 블루스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거기에다 컨템포러리 블루스와 소울 그리고 프리
재즈에서 아방가르드 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촉수를 뻗치고 있다.
버디 가이는 블루스에서 록큰롤로 건너가는 다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는 머디 워터스와 하울링 울프의 일렉트릭 시카고 블루스의 전통에서 에릭 클랩튼과 제프 벡, 지미 헨드릭스, 지미
페이지의 1960년대 블루스 록으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같은 맥락에서 스티비 레이 본과 같은 더 나중의 블루스 리바이벌 시대의 주인공들 역시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주법 면에서도 버디 가이는 슬라이드 기타와 벤딩, 비브라토 등 블루스 기타의 주요 주법들을 다듬고 확립하고 확장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특히 그의 벤딩과 비브라토는 남다르게 깊은 울림과 파장을 지닌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편 그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치고는 속주 면에서도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버디 가이의 연주는 전통적인 블루스 연주에 비해 훨씬 시끄럽고 공격적이다.
그는 강력하게 디스토션을 건 기타 톤으로 피드백을 활용해 아주 긴 솔로 연주를 펼치곤 했는데, 이것은 1960년대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버디 가이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와 폭발적인 스테이지 매너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마치
총을 쏘는 듯한 자세로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동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훗날 지미 헨드릭스가 펼친 열광적인 퍼포먼스와 혁신적인 사운드 실험은 상당 부분 버디 가이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버디 가이가 지미 헨드릭스를 모방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다만 버디 가이가 지미 헨드릭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을 뿐이다.
제프 벡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The Blues from Big Bill's Copacabana」 앨범에 수록된 버디 가이의 연주를
듣기 전까지 스트라토캐스터가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의 솔로는 3분짜리 팝이 결코 담을 수 없는 길이와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버디 가이는 펜터 스트라토캐스터 마니아였다.
에릭 클랩튼은 1965년에 버디 가이가 트리오 편성으로 펼친 영국 공연을 보고 나서 블루스 록 트리오 결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에릭 클랩튼은 그 직후에 역사상 최강의 록 트리오라 불리는 슈퍼그룹 크림을 결성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유족들은지미의 사후 추모 공연이 있을 때마가 버디 가이를 단골손님으로 초빙했다.
유족들은 이를 두고 '전설을 기념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전설을 부르는 것'이라 했다. 지미 헨드릭스 자신도 생전에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는 천국은 버디 가이의 발끝에 있다." 스티비 레이 본은 "버디 가이가 없었다면
스티비 레이 본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고,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슬래쉬는 "버디 가이는 R&B와
하드코어 록큰롤의 가장 완벽한 조합이다"라고 했다.
버디 가이는 지금까지 여섯 개의 그래미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 예술 훈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데뷔 이후 50년 넘게 그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무대 위에 있었다.
그는 지금도 시카고에 위치한 자신이 운영하는 클럽 'Buddy Guy Legends'에서 소박하지만 스스로 즐거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을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가라! 오로지 앞으로 가는 자 만이 얻을 것이다.”
시카고 블루스의 거장 버디 가이는 1936년 7월 30일 루이지애나주 Lettsworth에서 ‘George Gu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10대 초반에 독학으로 기타를 익히고 57년에 시카고로 건너가 매직 샘 등과 레코딩을 했다.
또한 윌리 딕슨, 오티스 러쉬 등과 함께 활동했는가 하면 60년대 초엽엔 체스(Chess) 레코드사의 전속 기타리스트로
일하며 머디 워터스나 하울링 울프 등 전설적인 블루스 맨들의 백 반주를 맡았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실력에 비해
68년까지 자신의 솔로앨범을 한 장도 못내는 신세가 되었다.
버디 가이는 숱한 음악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몇몇 블루스 거장들로부터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다.
머디 워터스 등을 비롯한 몇몇 블루스맨들이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버디는 스티비 레이본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젊은 블루스맨 가운데 스티비 레이 본을 가장 아꼈던 그는 스티비와 함께 라이브도 펼친 바 있으며 스티비 레이 본을
가르켜‘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버디 가이는 슬라이드 기타와 벤딩, 비브라토 등 블루스의 중요한 주법들을 착실하게 다듬고 발전시킨 인물이다.
특히 그의 벤딩이나 비브라토는 거세고 큰 울림을 지녀 감동의 파장을 깊게 한다.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는 순발력이
뛰어나 빠른 연주에서도 발군의 솜씨를 보인다.
언젠가 에릭 클랩튼은 버디 가이를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음악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면에서 버디 가이는 현존하는 최고의 기타 플레이어이다.”
B B King, Freddie King,, Muddy Waters등과 함께 시카고를 대표하는블루스연주자이고 Grammy상까지 거머쥔
경력이 있다.
그의 인기와 명성은 블루스의 본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다.
Eric Clapton이 최고의 블루스연주자중 한 명이라고추켜세운 Buddy Guy의 음악세계에 들어가보자...
그는 1936년 미국 루지아나주 Lettworth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다른 블루스연주자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하며 자연스레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21세가 되던 1957년 그는 재즈연주자들이 뉴욕으로 가듯 블루스 연주자들의 무대 시카고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BB King, Freddie King, Muddie Waters등 당시시카고블루스를 대표하는 연주자들과 자연스레 교류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많은 클럽공연을 통해 시카고에서 없어서는안될 가장 중요한 블루스연주자중 한 명으로 많은 팬들에게 각인된다.1960년대 역시 많은 활동을 하지만 많은 블루스연주자들이당시 락음악의 거센 파도에 밀려 예전 40년대와 50년대만큼 왕성한 활동은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70년대 말 그리고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세계를 돌며 예전과 같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블루스스타일을 보자.
많은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BB King, Muddy Waters 또는 John Lee Hookers와
다르게 다소 락(Rock)적인 느낌이 다소 강하다.
아마도 그런 이유인지 많은 락 또는 팝음악 연주자들이블루스에 입문하기에 Buddy Guy는Eric Clapton그리고
Stevie Ray Vaughan과 함께 가장 많이 듣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또, 실제로 Led Zepplin, Eric Claptone등여러 락 연주자들이 Buddy Guy의 음악을 많이 하기도 힌디
또 다른 그의 특징이라고 하면 역시 그의 목소리다.
락음악처럼 아주 정열적이고 굉장히 힘이 있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무언가를 말한다기 보다 외친다고 할 정도로 거칠고 공격적인 것이 그의 매력이다.
기타연주는 위에서 말했듯 다소 락적이고 서스테인(sustain)이라고 하는 음의 길이가 굉장히 긴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확실히 다른 블루스연주자들과 차별되는 것이고아마도 이후 Eric Clapton이나 Stevie Ray Vaughan등과 같은
락적인 성향의 블루스연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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