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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Sting -It's A Lonesome Old Town .Fragile

 


 

 

 

Sting -It's A Lonesome Old Town

 

 

 

 

It's A Lonesome Old Town

 

 

 

It's a lonesome old town when you're not around
당신이 곁에 없는 여기는 적막한 거리

I'm lonely as I can be
참을 수 없을 만큼 외로워지는 것은


 

I never knew how much I'd miss you
이렇게 당신이 그리울지는 진정 몰랐어요

But now I can plainly see
하지만 이제 명백히 알겠어요


 

It's a lonesome old town when you're not around
당신이 곁에 없는 여기는 적막한 거리

How I wish you'd come back to me
제발 내게 돌아와 줘요

 

 

It's a lonesome old town when you're not around
당신이 곁에 없는 여기는 적막한 거리

How I wish you'd come back to me
제발! 내게 돌아와 줘요

 

 

 

 

 

 

 

Fragile

 


If blood will flow when fresh and steel are one
날카로운 칼과 육신이 접촉하여 피가 흘러 내릴지라도
Drying in the colour of the evening sun
저녁햇살에 이내 말라 버릴겁니다

 

 

Tomorrow's rain will wash the stains away
내일 비라도 내리면 자국은 어느새 씻겨지겠죠

But something in our minds will always stay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뭔가 씻어낼수 없는 앙금이 남을거예요

 

 

Perhaps this final act was meant
아마도 이 마지막 장면이 담고 있는 의도는

To clinch a lifetime's argument
우리의 삶속에서 반복되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That nothing comes from violence and nothing ever could
폭력으로부터는 어떤것도 얻어 낼 것이 없고 지금까지 쭉 불가능했었다고 말입니다
For all those born beneath an angry star
성난 별 아래서 내어난 모든 영장류들에게

 

Lest we forget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를 잊지 않도록..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비는 끊임없이 내립니다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마치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마치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내리는 비는 끝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How fragile we are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On and on the rain will fall

비는 끊임없이 내립니다

 

Like tears from a star like tears from a star

마치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마치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On and on the rain will say

내리는 비는 끝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How fragile we are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

How fragile we are how fragile we are

우리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를요

 

 

 

 

 

 

 

 

 

1951년 10월 2일 영국 Type & Waer 의 Wallsend에서 태어난 스팅의 본명은 "Godon Matthew Sumner"이다..

엄격한 카톨릭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탱고를 좋아하고 또 전직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와 음악을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소와 굴뚝이 유명한 Wallsend에서 자란 스팅은 이미 어릴적부터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기를 꿈꾸었다.

스팅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 꿈을 이룰 수 있을꺼라 믿고, 항상 먼곳으로의 여행을 동경해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자신이 사는 동네에 조선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스팅은 말한다.

 

이미 어릴적부터 음악분야에서 그의 남다른 재능은 빛을 발하였고, 여러 피아노 콩쿨 대회에서 상을 휩쓸면서 좀더 나은 수준의 교육을 제안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피아노가 아니라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였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에 심취한 그는 후에 록그룹 폴리스에서 같이 활동하게 되는 기타리스트 앤디서머즈

(Andy Summers)의 '쥬트 머니' 공연을 보고 이때부터 음악에 심취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베이스(Bass) 기타를

치게 된다.

 

그후 스팅은 대학을 중퇴한후 주로 로컬재즈 밴드와 선상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였고 한때는 고등학교 교사시절을

거친바가 있는데 스팅은 그때부터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스팅은 자신에게 재즈연주를 가르쳐준 '제리 리차드슨'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자신의 밴드인

 "LAST EXIT"를 결성한다.

 

"LAST EXIT"는 스팅이 재즈연주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는 그룹이었으며 스팅(Sting)이라는 별명 또한 그때

붙여졌다고 한다.

이 시기에 그는 연극배우 '프란시스 토멜티' 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을 하고, 다음해에 자신의 첫 번째 아이인 조셉을 낳게 된다.

 

1977년 그룹내의 불화로 팀을 해체하고, 앞서 언급한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즈와 미국출신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

(Stewart Copeland)와 함께 명 그룹 폴리스(The Police)를 결성하게 된다.

그룹 폴리스는 초창기때 짧은 무명시절을 겪어야만 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CBGB공연장에서의 역사적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을 순회공연하고 난 후 폴리스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으로 대우를 받게 되었고 어느 창녀에 대한 사랑의 내용을 담은 싱글 "Roxxane"는 미국내 40위권내에 진입하면서 첫앨범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스팅은 숙명으로 타고난 카리스마로 팀의 핵심적인 존재로 떠오르게 되었고 폴리스는 전세계 음악매니아들을

 사로잡으면서 인기를 급부상하기 시작한다.

그룹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멤버들사이의 경쟁적인 대립으로 그룹은 온갖 불화설과 해체설에 시달려야만 했고 3집

 "The Ghost In The Machine"앨범작업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드러머인 스튜어트 코플랜드(Stewart Copeland)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서로의 존재조차 참아주기 힘들 정도였죠.."

또한 기타리스트인 '앤디서머즈(Andy Summners)'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누구랄 것도 없이 성질히 고약했죠....마치 거의 끝나가는 결혼생활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스팅(Sting)은.. "우린 만나기만 하면 싸움만 해댔어요, .하지만 그런싸움은... 밴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폴리스 결성 3년째 되던 날, 비록 남들보다는 뒤늦은 성공이었지만 31의 나이에 너무도 갑작스럽게 스타덤에 오르게 된 스팅은 한때 정신적 일탈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의 생활은 엉망이 되어갔고, '프란시스 토멜티'와의 이혼으로도 연결되었다..스팅은 매우 힘들어 했다.

 

하지만 폴리스는 4집까지 발표하면서 인기 절정에 있게 되었고, 멤버들은 제각기 솔로활동에만 치중하게 되어 팀의 해체가 거의 결정난 상태에서 1983년 "Every Breath You Take" 등이 발표되어 록 역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남긴 5집앨범 "SYNCHRONICITY"를 발표한다.

 

스팅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읽은, 칼융이 제시한 "동시성(Synchronicity)"을 타이틀로한 5집앨범은 미국내

 17주간 1위를 차지하는 대 기록을 세웠고 싱글 'Every Breath You Take'는 그해 최고의 러브송으로 뽑히며 그래미상을 받게 된다.

(후에 "Every Breath You Take"는 펖 대디(Puff Daddy)에 의해 "I'll Be Missing You"라는 곡으로 샘플링되어

새로이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그후 스팅은 솔로로 전향하고 그룹 폴리스는 5집을 마지막으로 2000년 현재까지 새앨범을 내지 않고 있다.

스팅은 예전에 재즈밴드에 몸담았던 느낌을 되살려 자신의 음악성에 맞는 뮤지션들을 대거 끌어모았고, 그 결과 85년

 스팅이 재즈팝 아티스트로서 변신을 시도한 첫 솔로 데뷔 앨범,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을

발표하게 된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애인 '트루디 스타일러(Trudy Stayler') 와의 교제는 그로하여금 수많은 사랑노래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내건 첫앨범이 성공하고 두 번째 앨범작업에 착수를 위해 작업실로 돌아온 스팅은 첫앨범에서의 진취적이고 낙관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번엔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모습을 담고자 했는데, 그렇게 하여 탄생한 앨범이 바로 "...NOTHING LIKE THE SUN"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앨범이 발표 되기전, 당시 투병중이시던 스팅의 어머니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Nothing Like The Sun"을 어머니 영정에 바쳤다.

같은해인 87년 EP앨범 (포루투칼어) "NADA COMO EL SOL" 을 발표하기도 했다.

 

87년은 스팅에게 있어, 너무나도 슬픈해였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4개월후 이번에는 아버지 마저 돌아가시고 만것이다.

스팅과 아버지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였다고 한다.

 

스팅의 어린시절, 넉넉하지 못했던 살림때문에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아들과 대화나눌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스팅은 항상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다..반면에 어머니에겐 아주 싹싹했다.

 

그의 부친이 상을 당하자 스팅은 비로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스팅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 했다.

아버지와 화해한번 못해보고 헤어지게 된 것이 가슴에 사무쳤다고 한다.

 

'사람은 왜 죽는가','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남는가','아버지는 과연 나에게 있어 어떤존재였던가'.....

스팅은 많은 생각을 했다.

노르망디해변까지 차를 몰고 가서 그곳 별장에서 지내면서, 마음을 안정 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안정 시켜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작곡에 매달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무려 3년의 각고 끝에 완성한 앨범 "THE SOUL CAGES"는 다양한 감정의 표현을 담게 되었다.

스팅이 낸 앨범중 가장 염세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이 되었다.

 

"The Soul Cages"를 아버지 영정에 바치고 91년 그해 스팅은 MTV의 언플러그드 공연을 가진다.

그리고 92년 그는 배우 트루디 스타일러(Trudie Stayer)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식의 피로연장에선 옛날 폴리스의 멤버들이 모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피로연장 사람들의 권유로 "Massage In a Bottle"을 했는데 멤버들 모두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비록 서로에 대한 앙금은 남았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웃을 수 있었죠..."

스튜어트가 한 말이다.

93년 스팅의 4번째 앨범 "Ten Summoners Tales"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 앨범은 전작과는 달리 매우 낙관적인

노래를 많이 담게 되었다.

 

93년 스팅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Shape Of My Heart","Files Of Gold","If I Ever Lose My Faith,In you"등의

싱글이 있었는데, 특히 'Shape Of MY Heart'는 영화 레옹(Leon)의 사운드 트랙으로 쓰이면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기도 한다.

이 앨범은 앨범 판매 수익도 좋았을 뿐 아니라 예술성도 인정받아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Fields Of Gold"  베스트 앨범이  94년에는 스팅이 'Brit Award'에서 올해 최고의 남자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6년엔 5집앨범 "MERCURY FALLING"을 발표하고, 작년인 99년에는 새천년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 담은 앨범

 "BRAND NEW DAY"를 발표했다.

'Brand New Day'는 새로운 천년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들로 가득차 있다.

2000년엔 42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에서 이 앨범으로 최고 남자가수상과 최고 팝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현재 48세인 스팅은 왕성한 활동으로 팬들에게 변함없는 자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스팅은 지금까지 낸 앨범 모두 플래티넘(백만장)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예술성(그래미 14번 수상)과 대중성의

두 마리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그의 음악적 장르는 딱히 뭐라고 정해져 있지 않다.

 

재즈,락,블루스,가스펠, 최근엔 프랑스 정통 리듬인 보사노바리듬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또 랩을 수용하는 등, 그의 음악은 항상 실험적이다.

항상 그는 음악을 통해 자유롭게 말하기를 즐겼다.

 

"난 처음 시작하는 내 입장이 전혀 두렵지가 않다." ,"난 내 자신을 모든 상황속에 던져 버리고 싶다."

스팅의 음악관을 함축적을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스팅은 16세기 양식의 자신의 집에서 살면서 주로 고독한 여행을 통해서 대부분의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때론 지친 여행중에 쉬면서 스팅은 자신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란 "내가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난 말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가"

" 남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유익하거나 혹은 흥미롭다고 느끼는가" 라는 것이었다.

아티스티로서의 창조의 고통을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그를 더욱더 위대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창조해 냈다.

 

흑백사진,우수가 가득찬 목소리,고독한 지성,낭만을 즐기는 음유시인,스팅에겐 항상 이런 표현들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반면에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스팅의 팬들중에는 광적으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그의 음악이 훌륭할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음악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스팅이라는 인간의 매력에 빠져 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오늘 여기 있는 이유는 모두 영국 여왕 덕분이다.”
10월 26일 닐 사이먼 극장은 축제분위기였다.

 

실험을 거듭하며 특별한 길을 걷고 있는 올해 63세의 가수이자, 배우, 작가인 스팅이 뮤지컬 작곡가에 도전해 3년 만에 완성한 자신의 첫 뮤지컬 <더 라스트 십(The Last Ship)>이 오픈한 날이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고, 행복에 취한 스팅은 배우들과 브로드웨이 골목골목을 누비며 노래하고 춤추며 그 날의 축제를 즐겼다.

첫 공연 후 스팅은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다.

 “제가 오늘 여기 있는 이유는 모두 영국 여왕 덕분입니다.

 전 영국 뉴캐슬의 조선소로 유명한 마을 월센드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10살 때, 하루는 영국 여왕이 까만 롤스 로이스 차를 타고 우리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거리에서 국기를 흔들고 있는 저와 여왕의 눈이 딱 마주쳤을 때 전 생각했지요. 난 이 거리에도 있기 싫고, 우리 집에도

살기 싫고, 자라서 조선소에서 일하고 싶지도 않고, 바로 저기 저 차 안에 있고 싶다. 그것이 바로 제가 오늘 여기 이 무대에 있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관객과 함께 열창하기 시작했다. 

 

 

 



실직 조선소 노동자들의 열정과 스팅의 어린 시절이 하나가 된 이야기


스팅은 5년 전 뉴욕 타임스에 실렸던 폴란드의 실직 조선소 노동자들에 관한 기사를 보고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항상 자신의 1991년 앨범 <더 소울 케이지(The Soul Cages)>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디어를

 찾던 그에게, 한 목사의 권유로 버려진 트랙터 공장에서 자기들끼리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기사는 바로 그가 찾던

이야기였다.

 

‘아, 내 고향 이야기로 만들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팅은 <렌트>를 제작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제프리

셀러(Jeffery Seller)를 만나 뮤지컬 제작을 제안했고, 여기에 <넥스트 투 노멀>의 작가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가 합류하면서 월센드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큰 배는 지어지기 시작했다.

 

 



 


 

 

뮤지컬 <더 라스트 십>은 스팅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닮았다.

주인공도 그의 어릴 적 이름 고든과 비슷한 기디언이고, 실제 스팅의 고향 사람들도 등장한다.

어린 기디언은 아버지처럼 배를 만들며 살고 싶지 않아 여자 친구 멕에게 곧 돌아와 너를 데리고 떠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

 

15년 후 돌아오지만 그 사이 그녀에게는 새 연인 아서가 생겼고, 경기 침체로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던 조선소도 문을

닫은 상황. 생계수단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오브라이언 목사가 마지막 배를 만들 것을 권하며 이야기는 깊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게 한 인터뷰에서 스팅이 밝히길, 작품의 주요 줄거리인 기디언, 아서, 멕의 삼각관계는

 실제 스팅 어머니의 이야기로, 아직까지 그에게 상처로 남아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빌리 엘리어트> 아니면 <스파이더 맨>, 과연 그 결과는?

<더 라스트 십>의 오프닝을 앞두고 비평가들은 스팅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물론 유명 팝스타가 써서 대성공을 거둔 엘튼 존의 <빌리 엘리어트>, 신디 로퍼의 <킹키 부츠>도 있지만, 그와는 달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것을 증명한 U2의 <스파이더맨>를 포함한 많은 실패작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영어표현 중에 ‘타이타닉’이라는 말이 있다.

 

 ‘타이타닉 호처럼 완전 가라앉았다.’는 뜻으로 대실패를 의미하는데, 관객까지도 특히 <스파이더맨>을 떠올리며 스팅의 <더 라스트 십>도 타이타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프닝 축제의 밤 이후, 리뷰는 비교적 호의적이다.

관객들 반응 또한 좋아서 점점 입소문이 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뉴욕 타임즈> 리뷰는 “도무지 이 야심만만하고 열정적인 뮤지컬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현실도피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달리, 생존권을 박탈당한 조선소 근무자들의 투쟁과 열정을 다루는 진지함과 그리고 모든 대본의 문제점을 상쇄하는 스팅의 음악이 그 이유다.

 

 

 



영국 음유시인 스팅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스토리텔링

8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80년대스럽지 않다. 가족의 중요성이라는 신화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하는데 덕분에 스팅이 자유롭게 곡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고, 2시간 25분 동안 그만의 음악에 충분히

취할 수 있다.

 

노래하는 영국의 음유시인답게 스팅은 서정적이면서도 강한 멜로디와 철학적인 가사로 이 작품에 웅장한 아름다움과

무게를 싣는다.

 

그리고 가사 스토리텔링의 귀재답게 뮤지컬 넘버마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야기가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쉽게 잘 녹아있어서 어디가 음악인지 어디가 대사인지 어떤 순간에는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이 뮤지컬 넘버들은 개막에 앞서

 작년에 앨범으로 먼저 발표됐는데, 이 작품을 쓰며 8년 동안 전혀 새 노래를 쓰지 못했던 지독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스팅은 말한다.

 

 



 

쇼뮤지컬의 공허함보다 진심이 있는 스팅만의 독특한 뮤지컬


<더 라스트 십>은 쇼뮤지컬이 아니다.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고향을 향한, 세상을 향한 스팅의 진심이 있어서 쇼뮤지컬의 화려함이 절대 주지 못하는 감동이 있다.

 

다소 스토리가 산만하고 대본이 완벽하지 않다는 평도 있지만, 많은 경우 완벽하게 예쁘기 만한 여배우보다 개성 있고

진심 있는 여배우에게 더 매료되듯이 이 작품 또한 그렇다.

 

또한 쇼뮤지컬의 화려한 춤과 조명은 없지만 뮤지컬 <원스>의 안무가 스티븐 호겟의 군무가 멋지고, 스팅의 음악이

화려한 조명보다 더 눈부시다.

어린 시절 스팅은 배를 만들며 살고 싶지 않아서 월센드를 떠났지만, <더 라스트 십>을 보며 스팅에게 음악은

그 마을사람들이 만들었던 그 세상에서 가장 큰 배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독하게 힘들지만 자랑스러운 그의 일이자 꿈. 그래서 고향이 싫어서 떠났지만, 마음은 계속 그 곳에 머물며 지내다

그의 나이 60이 넘어 이제는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게 아닐까?

 

작품배경이 영국인데 왜 뉴욕에서 초연을 올리냐는 질문에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면 당당히 영국으로 가져갈 계획이다.”라고 스팅은 말했다.

그의 귀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My Funny Valentine: Sting at the Movies


Sting(본명: Gordon Matthew Thomas Sumner, 1951년 10월 2일 ~ )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사회운동가이다.

1977년부터 더 폴리스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1984년에 솔로 데뷔, 현재까지 정규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래미상을 총 16회 수상한 스팅은 200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올랐으며, 200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4년, 존 F. 케네디 센터 주관 공연예술 평생공로상(Kennedy Center Honors)을 받기도 하였다

스팅은 'Englishman in New York', 'Shape of My Heart' 등 영화와 광고에 쓰인 여러 노래를 통해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으며, 'Desert Rose', 'Fields of Gold', 'Fragile', 'Every Breath You Take' 등의 노래도

잘 알려져 있다.


 

 

 

 

 

 

 

 

 

 

 

 

 

 

 

Sting ThePolice 200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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