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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eethoven - Symphony No 9 (신년을 위한 음악 )

 

 

 

환희의 송가 / 베토벤 교향곡9번 4악장

 

 


1. Freude, schoner Go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um!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Alle Menschen werden Bruder,

wo dein sanfter Flugel weilt.

 

2. Wem der große Wurf gelungen,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

wer ein holdes Weib errungen,

 

mische seinen Jubel ein!

Ja, wer auch nur eine Seele

sein nennt auf dem Erdenrund!

 

Und wer's nie gekonnt, der stehle

weinend sich aus diesem Bund!

 

3. Freude heißt die starke Feder

in der ewigen Natur.

 

Freude, Freude treibt die Rader

in dre großen Weltenuhr.

 

Blumen lockt sie aus den Keimen,

Sonnen aus dem Firmament,

 

Spharen rollt sie in den Raumen, 

  die des Sehers Rohr nicht kennt.

 

 

 

 

 

 

 

 

 

 

 

루드비히 반 베토벤 ( Ludwig van Beethoven ) 1770,12,17 -1827,03,26.

독일 낭만파 대표적 작곡가

               

베토벤은 23살에 쉴러의 환희의 송가 - 낭만주의 문을여는 최고의 작품인 시를 읽고  많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31년뒤 1824년 대작을 완성 하였다

교향곡에 성악 합창을 도입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힘차고 또 조용한 아름다운 화음의 조화는 베토벤의 성공작으로 세계 인류에게 가장 사랑받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이곡을 연주하고 기립박수로 청중들이  베토벤을 우러러 보고 감동했지만베토벤은 이미 귀가 먹어 들리지 않았다.

​인류애를 노래한 교향곡 9번가사로 합창대 전원이 한 목소리로 세계 만민의 화합과 그것이 창조주의 섭리임을 확인한다

 

 

 

 

 

 

 

 

 

이 교향곡은 비극과 싸워 이긴 생애를 회고하는 극적인 1악장, 정화된 거인적인 해학의 2악장, 동경이나 희망 절망 등

현실을 초월한 이상주의적 명상의 아다지오 선율의 3악장,쉴러의 사랑과 평화의 기쁨을 테마로 한 시 “환희에 부치다.

”를 합창으로 엮은 4악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특히 4악장은 낮게 가라앉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주선율이 점차 확대되어가는 모습은 끝없이 아름답고 장려한 느낌을 전해준다.

 후반을 장식하는 합창과 중창의 매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노래들은 어떤 냉정한 마음이라도 녹일 만큼 경건하고

 순수한 선율로 되어 있다.


“초자연적 정적에 둘러 싸여서 환희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가벼운 숨결로 부드러운 손길로 환희는 고뇌를 어루만져 준다.

 차차 환희는 고뇌의 전체를 휘어잡는다. 그것은 하나의 정복이다.”

베토벤은 항상 이렇게 환희의 극치를 노래하기를 갈망했다

 

 

 

 


교향곡 9번 합창은 음악의 정상이자 음악예술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며,인간의 힘으로 쓰여 진, 가장 완전하고 위대한 교향곡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오스트리아 바덴에서 대부분 작곡된 이 교향곡은 베토벤이 1823년 가을 비엔나로 돌아와서 마지막 악장을 쓰고 이듬해 이 곡을 완성시켰다.

 

이 곡이 완성될 때 베토벤은 이미 청각을 잃은 청각장애인이었다.

 교향곡 9번이 초연된 비엔나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지만 베토벤은 전혀 느끼지 못해 돌아 설 줄을 몰랐다.

 

독창자 한명이 베토벤을 관중석으로 돌려 세웠을 때, 땀으로 범벅이 된 베토벤은 그때야 환호하는 청중을 보고 머리를

숙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 때 베토벤은 진정한 환희를 맞본 것이 아니었을까?

베토벤이 평생을 걸쳐 시도한 이른바 “괴로움을 넘어 환희를 창조한다.

그는 필생의 과업이 바로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송가”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철학과 음악사상을 최고의 음악으로 표상하려 했던 그의 마지막 걸작이다.


다른 어떤 음악가보다도 베토벤은 음악 속에서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전적으로 표출하고자 했고, 이 같은 태도는 그의 특성과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의 창조과정은 그대로 그의 정신의 발달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것은 일생동안 그의 영혼 속에서 일관성 있게 쌓아올린 거대한 정신의 기념탑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신의 성숙과정에서 베토벤의 치명적인 귓병은 다른 사람의 경우라면 파멸의 원인이 되었겠지만,그의 창조력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고, 오히려 작곡에 더욱 전념하여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조물주의의 저주”라고 울부짖으며 “하일리켄슈타트의 유서”로 불리는 유서를 쓰고 자살까지 하려했던 베토벤 그러나 “나는 귀먹음을 더 이상 비밀이 안 되게 하리라, 예술에 있어서 조차도...”

그리고 “나 스스로 내 운명을 목 조르고 말겠다.”하며 운명을 정복하게 된다.

 

성스러운 예술에 대한 헌신과 타인을 행복하게 한 행위는 베토벤의 승리이다.

그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체념적 조화를 운명과 결탁해서 자신의 패배로부터 하나의 승리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베토벤은 운명의 타격에 의한 모든 좌절이 궁극적으로 끝난다는 것을 이 교향곡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고통이 삶의 필요조건으로서 뿐 아니라 광명을 비춰주는 힘으로 바꿀 수 있음을 인식시킨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가이면서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상이다.


“하나님은 나의 예술 속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 가까이 있다.”라는 그의 신념은 그의 음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고통을 환희로 승화시킨 베토벤의 인내와 노력은 예술가에게만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교훈이 아닐까?

 

 

 

 

 

 

환희의 송가(歡喜의 頌歌, 독일어: An die Freude)

 

는 독일의 시인인 프리드리히 실러1785년에 지은 송가 형식의 시로, 단결의 이상과 모든 인류의 우애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시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1824년에 완성한 교향곡 9번 4악장의 가사로 쓰인 시이기도 하다

 

가사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시품 <자유 찬가> (독일어: Ode An die Freiheit[1], 프랑스어: Hymne à la liberté

1785년)가 프랑스 혁명의 직후 라 마르세예즈의 멜로디로 독일의 학생에게 불리고 있었다.

거기서 시를 고쳐 쓴 <환희의 송가> (An die Freude 1785년 초 원고, 1803년 일부 개고)로 했는데[1], 이것을 베토벤이 가사로서 1822년- 1824년에 인용하며 고쳐 쓴 것.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자필 악보로 악보 중간에 'seid umschlungen,

Millionen(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라고 씌어진 베토벤의 육필이 보인다.

 

 

베토벤은 1792년에 이 시의 초고를 봐, 감동하고 곡을 붙이려 했지만, 실제로 9교향곡으로서 1824년에 완성했을 때에는 1803년 개고판의 시를 이용하고 있다.

1785년의 실러의 <자유> (Freiheit / 프라이하이트)의 시는 프리메이슨의 이념을 시로 한 것이며, 드레스덴

프리메이슨의 의식을 위해서 쓰여졌다.

 

베토벤은 생애에 걸쳐서 실러의 시집을 애독했지만, 실제로 교향곡 9번 니 단조 <합창 첨부>작품 125의 4악장의 가사에 포함시키기에 즈음하고, 3분의 1 정도의 길이에 번안했다.

모두에 바리톤 가수가 독창으로 노래하는 “친구여, 이런 소리는 아니고…”는 베토벤 스스로 생각한 것이며, 실러의

원시에는 없다.

 

1985년유럽 연합이 환희의 송가를 유럽 연합의 찬가(유럽가)로서 채용함에 따라 비공식적인 라틴어의 가사를

붙였다.

유럽가의 제안자는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폰 코우덴호페 칼레르기 백작이다.

백작은 '유럽 연합의 아버지' 중 한 명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이후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벨벳 혁명이 일어나 1989년 12월 14일, 수도인 프라하에서 혁명

 축하하기 위한 연주회가 바츨라프 노이만 지휘,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에 의해서 행해져 여기서 불렸던 환희의 노래가 동유럽 혁명의 테마곡이 되었다.

 

연주가 끝나면 박수가 20분 이상이나 계속 울려 새로운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은 V싸인을 내걸어 모두 혁명의

승리를 기뻐했다.

 

1989년 12월 25일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콘서트를 했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모체에, 동서 독일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당시)의 6개국부터 유시를 모집해 혼성 오케스트라를 임시 편성해, 일본인 중에는 당시 뮌헨 방송

합창단원이었던, 나루토 교육대학의 음악 교수의 코로야스 토시히데가 합창단의 중앙에서 노래했다.

 

 

 

 

 1악장의 애매모호한 도입부와 명쾌한 주제는 마치

혼돈 속에서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과 같다.

 

 

 

 

베를린에서도 전통이 있는 콘서트 홀인 샤우슈피르하우스에서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동서 독일의 융화를 축하했다.

이 때는 “Freude” (환희)를 “Freiheit”(자유)에 옮겨놓아 노래했던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재통일은 다음 해의

1990년 10월 3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융화를 축하한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머지 않아, 도이체 그라모폰 회사로부터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라이브 녹음이 CD와 레이저 디스크 (LD)로 발매되었다. 번스타인은 그리고 1년이나 지나기 전에, 1990년 10월 14일에 급서했지만, 이 미국인 지휘자는 본연주회에서 독일

어권의 사람들에게도 잊기 어려운 인상을 남겼다.

 

일본에서 처음 합창 연주한 것은 1918년 6월 1일, 제1차 세계 대전중에 중국칭다오 시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도쿠시마현 반도마을 (현 나루토 시)의 반도부로수용소에 수용된 독일 군사들이었다

(당시 아오시마는 독일의 군사 근거지이며,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연합군측에서 참전하여, 이것을 점령했다).

 

독일인 포로들은 수용소장 마츠에 토요히사 대령의 인도적 취급에 의해서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는 <발트의 낙원>으로서 2006년데메 마사노부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또, 그 이전에도 NHK연속

TV 소설로 취급되었다.

 

1998년 2월 7일, 나가노 올림픽의 개회식에서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 아래에서 세계의 5대륙·6개국·7개소로부터 동시에 노래가 불렸고 이에 맞춘 호리우치 겐 안무의 발레 영상이 온 세상에 중계되었다. 노래가 불렸던 장소는 오자와 세이지가 택트를 턴 나가노현민문화회관, 중국·북경자금성,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오페라 하우스, 독일·베를린브란덴부르크 문, 흑인백인의 혼성 합창단에서 불린 남아프리카공화국·희망봉, 미국 뉴욕유엔 본부, 개회식이 거행된

장야올림픽스타디움이다.

 

오케스트라에 의한 연주는 장야현민문화회관에서 행해졌지만, 합창단이 있는 각지로 향해서 동시에 연주를 전달하면

 오케스트라와의 소리 엇갈림이 일어나 버려, 또 합창단의 가성도 늦게 나가노까지 닿아 버리기 때문에, 1번 거리가 있는 희망봉을 기준에 늦춤을 보정된 상태로 중계되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개회식에서는 성화가 성화대에 점화된 뒤, 피날레로서 환희의 노래가 불렸고 80명의 댄서에 의한

발레가 전개되었다. 흐린 하늘의 장야현 , 기온이 마이너스인 북경, 한 여름인 시드니, 한밤 중인 베를린으로 시각이나

계절이 뿔뿔이인 채로 불렸다.

또 희망봉에서는 일출과 겹쳐, 노래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일대가 밝게 되어 가는 모습이 비추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