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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Sarasate,Danzas Espanolas, Op.21,22,23,26, Ruggiero Ricci, violin

 



 

 

 

 

 

전곡 연속듣기
Ruggiero Ricci, Violin

 

 

I. Malague?a, Op.21 No.1
Ruggiero Ricci, Violin

 

 

II. Haba?era, Op.21 No.2
Ruggiero Ricci, Violin

 

 


III. Romanza andalusa, Op.22 No.1

Ruggiero Ricci, Violin

 

 


IV. Jota navarra, Op.22 No.2

Ruggiero Ricci, Violin

 

 


V. Playera, Op.23 No.1

Ruggiero Ricci, Violin

 

 


VI. Zapateado, Op.23 No.2

Ruggiero Ricci, Violin

 

 


VII. Dance in A minor, Op.26 No.1

Ruggiero Ricci, Violin

 

 


VIII. Dance in C major, Op.26 No.2

Ruggiero Ricci, Violin

 

 

 

 

 

 

 

 

 

 

사라사테 (Pablo de Sarasate 1844∼1908) 팜플로나 출생. 8세 때부터 수도 마드리드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1856년 여왕 이사벨라2세와 함께 나바라주(州)의 장학금으로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알라르에게 바이올린을 사사(師事)하였다. 졸업 후 1861년 런던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유럽 각지와 남북아메리카에 걸친 대연주여행을 하여 성공을 거두고, 파가니니(1782∼1840) 이래의 음악의 거장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187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계속하였다. 연주의 특색은 투명하고, 부드러우며 감미로운 음색과 화려한 기교의 구사에 있었다. 폭넓은 비브라토(떨려 울리는 음)와 개성적인 리듬의 매력을 잘 살린 연주, 특히 에스파냐풍의 연주 등에 뛰어났다.

 

10세 때 나타난 이 신동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앞에서 어전 연주를 하여 절찬을 받은 나머지 귀중한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13세 때 파리 음악원의 바이올린과에서 1등상을 받았으며 아울러 작곡도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28세 때 그가 파리 악단에 데뷔했을 때는 새로운 태양으로서 군림하였던 것이다.

 

사라사테는 19세기 스페인의 바이올린 거장으로 당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명이었으며 브루흐, 생상과 드보르자크 등이 그를 위해 주요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사라사테는 자신을 위해 50여곡의 곡을 직접 작곡하기도 했으며 작품번호 (opus) 54번까지 즉 총 54곡의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1878년에 작곡한( Op.20인 찌고이네르바이젠)과 4편의 스페인춤곡 (Op. 21, 22, 23, 26)과 보유앨범에 역시 수록되어 있는 카르멘 판타지 (Op.25)를 들 수 있다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치고이너바이젠>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인상적인 도입부와 애잔한 분위기,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 곡은 바이올린의 서정적 특성과 불꽃

튀는 기교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바이올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곡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곡을 작곡한 이는 매우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화려한 기교와 연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바이올린의 명장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의 작곡자 파블로 사라사테는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신동이기도 했던 그는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8세 때 이미 공개 연주회를 열어 갈채를 받았다.

어린 시절에는조국인 스페인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다가 12세 때부터 파리로 유학해 달콤한 음색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특성을 흡수하여 더욱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해갔다.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연주법은 매우 화려하고 기교가 뛰어날 뿐 아니라 우아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연주회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사라사테가 32세 때 음악의 도시 빈에 데뷔했을 때 청중들은 그의 독특하고 화려한 연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선 엄격하고 절제된 독일 바이올린 악파의 연주법이 유행하고 있었기에 사라사테의 화려한 연주는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의 친구로도 유명한 요제프 요아힘 풍의 진중한 연주 스타일을 숭배했던 몇몇 음악애호가들은 사라사테의 연주 스타일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사라사테가 베를린에서 선보인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중들은 사라사테의 멋진 연주에 매혹됐고 사라사테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연주회 때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사라사테는 이탈리아의 명품 악기인 스트라디바리를 즐겨 연주했는데, 그 악기는 그가 10세 때 스페인 여왕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사라사테가 바이올린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것에 깊이 감동한 여왕이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전해진다.

 

 파가니니가 굵고 풍부한 음색을 지닌 과르네리를 즐겨 연주했던 것과는 달리 사라사테는 스트라디바리를 더 좋아했다. 아마도 우아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사라사테의 연주가 스트라디바리의 찬란한 음색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리라. 당대의 작곡가들은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으로 찬란한 기교를 뽐내던 사라사테의 연주에 깊은 영감을 받아 사라사테를 위해 많은 바이올린 곡을 작곡했다.

 

그 중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과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와 <바이올린 협주곡 b단조>는 매우 유명하다.

 

사라사테 자신도 <카르멘 환상곡>과 <서주와 타란텔라>, <나바라> 등 바이올린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바이올린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아마도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에 비해 손이 좀 작았던 그는 자신이 잘 구사할 수 있는 테크닉을

위주로 작곡한 화려한 바이올린 소품들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사테는 19세기 스페인의 바이올린 거장으로 당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명이었으며 브루흐, 생상과 드보르자크 등이 그를 위해 주요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사라사테는 자신을 위해 50여곡의 곡을 직접 작곡하기도 했으며 작품번호 (opus) 54번까지 즉 총 54곡의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1878년에 작곡한( Op.20인 찌고이네르바이젠)과 4편의 스페인춤곡 (Op. 21, 22, 23, 26)과 보유앨범에 역시 수록되어 있는카르멘 판타지 (Op. 25)를 들 수 있.

 

 

 

 

 

 

 

 

루찌에로 리찌 (Ruggiero Ricci 1918.7.24~) 이탈리아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인 루지에로 리치는, 샌프란시스코 출생. 1925년 루이스 퍼싱거에게 사사하고,1928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데뷔하였다. 1932년부터 3년간은 런던 ·베를린 ·빈 등 유럽 각지를 순회공연하였으며, 1957년에는 미국의 음악사절 순회공연길에 나서 가나의 독립기념일 연주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또 루스벨트대통령, 아인슈타인, 엘리자베스여왕(벨기에), 구스타프왕(스웨덴)을 위한 특별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1964∼1965년에는 필하모니홀에서 열린 4회 연속연주회 때 15곡의 협주곡을 계속 연주하여 격찬을 받았다. 1966년 ·1968년 ·1970년에 각각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