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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ABBA - Happy New Year

 

 

 

 

 

 

                              

   ABBA -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No more champagne and the fireworks are through
이제 샴페인도 다 떨어지고 불꽃놀이도 끝났어요

Here we are me and you feeling lost and feeling blue
여기 우리 나와 당신은 허무함과 우울한 기분에 쌓여있어요


It's the end of the party and the morning seems so grey
파티는 끝났고 그리고 아침은 왜 이리 쓸쓸해 보이는지
So unlike yesterday now's the time for us to say
어제와는 너무 다르네요 이제 이렇게 말할 시간이에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y we all have a vision now and then of a world
때때로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을 꿈꿔도 되지않을까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모든 이웃이 친구처럼 지내는 세상을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우리 모두 희망과 해보려는 의지를 가져봐요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그러지 않을거라면 차라리 누워서 죽는게 낫죠


You and I
당신과 내가 말이에요



Sometimes I see how the brave new world arrives
가끔 난 훌륭하고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을 보아요
And I see how it thrives in the ashes of our lives
난 우리 삶의 슬픔속에서 어떻게 번성해 가는지도 보아요


Oh yes, man is a fool
오 그래요, 인간은 어리석어요
And he thinks he'll be okay dragging on feet of clay
괜찮을거라 생각하면서 진흙 투성이의 발을 질질 끌고 나가죠


Never knowing he's astray keeps on going anyway

길을 잃을지도 모르면서 계속 나아가죠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y we all have a vision now and then of a world
때때로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을 꿈꿔도 되지않을까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모든 이웃이 친구처럼 지내는 세상을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우리 모두 희망과 해보려는 의지를 가져봐요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그러지 않을거라면 차라리 누워서 죽는게 낫죠
You and I
당신과 내가 말이에요



Seems to me now that the dreams we had before

지금 내겐 이렇게 보여요 우리가 이전에 가졌던 꿈들은
Are all dead nothing more than confetti on the floor
이제 모두 사라지고 바닥에 흩어진 색종이 조각들 뿐이에요


It's the end of a decade

이제 10년이 끝나가요
In another ten years time who can say what we'll find
다음 10년동안에 무엇을 찾게될지 아무도 모르죠


What lies waiting down the line In the end of eighty-nine

어떤 일들이 기다릴지 누가 알겠어요 '89년의 마지막이 되면 말이에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y we all have a vision now and then of a world
때때로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을 꿈꿔도 되지않을까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모든 이웃이 친구처럼 지내는 세상을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우리 모두 희망과 해보려는 의지를 가져봐요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그러지 않을거라면 차라리 누워서 죽는게 낫죠
You and I
당신과 내가 말이에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면 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게 되고, 후회와 미련 속에서도 좀 더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지...

특히나 요즘에는 더욱 그런 기대와 생각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착잡함과 앞 날에 대한 기대,  또 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

 

이런 새해를 맞는 복잡한 심정을 잘 표현한 노래가  바로 ABBA(아바)의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 것 같다.

ABBA는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나 캐롤을 담은 음반을 발표한 적이 없는데  ‘Happy New Year’는 아바의 노래 가운데 유일하게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곡이다. 

 

 노래는 1980년에 나온 'Super Trouper'앨범에 실려 있는데, 이 음반이 11월에 발매됐기 때문에 연말 장삿속을

노리고  ‘Happy New Year’ 노래를 급조해 실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앨범이 나오기 훨씬 전인1980년 1월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아바는 새해 전야(New Year’s Eve)에 관한 뮤지컬에 관심이 많아서 이 뮤지컬에 쓰려고 이 곡을 썼는데 뮤지컬

 제작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이 노래는 그 해 나온 'Super Trouper'앨범에 수록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아바의 출신국인 스웨덴에서는 매년 새해 전야에 이 노래가 텔레비젼으로 방송된다고.  

 

또, 이 노래는 1999년에 새로 싱글 음반으로 만들어져서 여러 나라에서 인기 순위 20위안에 오르기도 했다.

노래는 처음 발표됐을 때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연말연시에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노래가 됐다.

 

 

 

 

 

 

 

 

 

"Happy New Year" 는 스웨덴 그룹인 ABBA(아바)1980년에 발표한 "Super Trouper"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프로듀싱과 작곡은 아바 멤버인Benny Andersson(베니 앤더슨) 과  Bjorn Ulvaeus(비욘 울바예우스) 가

직접 맡았다고 한다.

 

리드 보컬은 Agnetha Feltskog(아크네사 팰트스코그) 이며이 노래의 가제는 흥겹고 유머러스한 "Daddy Don't Get Drunk on Christmas Day"(아빠 크리스마스에 술 취하지 마세요) 였다고 한다.

 1980년에 녹음 되었지만 영어버전은1999년도에 싱글로 발표 되면서아바 노래들을 싱글로 재발매 홍보 하기위해

CD로 만들어 졌고 네델란드에서 에서 15위에독일에서 75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스페인어로 Felicidad(?리시다드:행복) 로 불리웠고아르헨티나에서는 5위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2008년에 여러나라에서 재발매 되면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톱 10에 등록 되기도 했다.

 ABBA 는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 팝 그룹 출신으로1972년에 형성되었고

ABBA 는 멤버들 이름의 약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Agnetha Faltskog, Bjorn Ulvaeus, Benny Anderson , Anni-Frid Lyngstad 의이름 첫 약자를 이용한것이다.

 

 

 

 

 

 

 

 

 

ABBA

 

 

 

아바는 1970년대에 유럽의 음악 인기 순위를 장악했던 그룹이다.

아바는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워털루>로 대상을 차지했으며, 1975년에 발표한 <아바>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멤버는 작사·건반 연주를 맡은 베니 안데르손, 작사·기타 연주를 맡은 비외른 울바에우스, 보컬인 앙네타 펠트스코그와 아니프리트 링스타트로 구성되었다.

 

안데르손과 링스타트,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가 각각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대표곡으로는 <맘마미아>·<댄싱 퀸>·<슈퍼 트루퍼>·<위너 테이크스 잇 올> 등이 있다.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아바의 곡들을 결합하여 뮤지컬 <맘마미아>를 만들었다.

이 뮤지컬은 1999년 런던에서

초연한 뒤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바는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룹은 1970년대에 기억하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곡들을 발표하여 유럽의 음악 인기 순위를 장악했다.

그룹의 멤버들은 작사 및 건반 연주를 맡은 베니 안데르손(1946. 12. 16 스웨덴 스톡홀름~), 작사 및 기타 연주를

 맡은 비외른 울바에우스(1945. 4. 25 스웨덴 예테보리~), 그리고 보컬을 담당한 앙네타 펠트스코그(1950. 4. 5

스웨덴 이왼쾨핑~)와 아니프리트 링스타트(1945. 11. 15 노르웨이 나르비크~)로 구성되었다.

 

그룹 결성 이전부터 수많은 포크와 팝 프로젝트를 함께 작업했던 안데르손과 울바에우스가 1969년에 링스타트와

 펠트스코그를 만나면서 그룹 형성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4인의 그룹 구성원들은 음악 작업을 함께하는 사이였을 뿐만 아니라, 안데르손과 링스타트,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가 각각 데이트를 하면서 두 쌍의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 남녀 혼성 4인조는 카바레 공연을 주로 하는 페스트포크(Festfolk)라는 그룹명으로 데뷔했다.

페스트포크라는이름은 거의 동일한 발음을 가지면서도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는 면에서 채택되었다.

 

스웨덴어 'festfolk'는 파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면서, 약혼한 커플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1970년대 속어

 'fastfolk'를 뜻하기도 한다.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는 1971년에 결혼했고, 뒤이어 1978년에는 안데르손과 링스타트가 결혼했다. 패스트포크라는 그룹 이름으로 스웨덴에서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1972년에 '비외른과 베니, 앙네타와 아니프리트'라는

그룹명으로 녹음했던 노래 〈피플 니드 러브 People Need Love〉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해에 이 4인조 남녀 혼성그룹은 싱글 〈링 링 Ring, Ring〉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할 스웨덴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3위에 입상했다.

그 성공에 힘입어 그룹 매니저인 스티그 안데르손은 그룹 구성원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ABBA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밴드는 1974년 유로비전에 다시 출전했고 〈워털루 Waterloo〉라는 노래로 대상을 차지했다.

 

유로비전에서 승리를 거둔 지 1년여 만에, 그룹은 1975년에 발표한 〈아바 ABBA〉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맘마미아 Mamma Mia〉와 〈에스 오 에스 S.O.S.〉 등의 싱글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이 그룹은 4인조 그룹의 카리스마를 활용하기 위해 새롭게 떠오르던 뮤직비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했다.

1977년 발매된 아바의 앨범 〈어라이벌 Arrival〉이 디스코 열풍이 한창인 미국에 소개되었고,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하나인 〈댄싱 퀸 Dancing Queen〉은 미국에서 1위 싱글이라는 영광을 차지한 아바의 유일한 곡이 되었다.

 

그 곡은 따라 부르기 쉽고 디스코 클럽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앨범 The Album〉(1978)은 일종의 일탈을 보여준앨범이었다.

그 앨범의 곡들 가운데 돋보이는 싱글 〈테이크 어 챈스 온 미 Take a Chance on Me〉는 비록 직설적이면서 종교적

합창음악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매우 훌륭한 곡이었고, 같은 면의 다른 곡들은 아트록을암시했다.

 

한편 그 앨범의 뒷면은 〈금발머리 소녀 The Girl with the Golden Hair〉라는 제목의 '미니 뮤지컬'(mini-musical)로 채워졌다.

〈앨범〉이 그룹의 예술적 진전을 이루는 동안,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가 〈불레 부 Voulez-Vous〉(1979) 발매에 앞서 이혼함으로써 그룹 내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 커플은 자신들의 결별로 인해 밴드 활동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당시 발매된 〈슈퍼 트루퍼 Super Trouper〉(1980)는 이전 곡들에서 볼 수 없었던 침울함이 배어 있었다.

 

특히 그런 분위기는 〈위너 테이크스 잇 올 The Winner Takes It All〉과 〈레이 올 유어 러브 온 미

 Lay All Your Love on Me〉 같은 곡들에서 두드러진다.

 

안데르손과 링스타트도 〈비지터스 The Visitors〉(1981)를 녹음하는 중에 이혼했다.

이 앨범에 담긴 노래 원 오브 어스 one of Us〉의 레게 리듬은 그룹에 만연했던 어두운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두 번째 결별은 아바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1982년 밴드는 해체되었다. 아바의 그룹 해체 이후에

 펠트스코그와 링스타트는 솔로 활동으로 제법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작사가 팀 라이스와 공동작업으로 〈체스 Chess〉(1984)를 만들었다.

 

앨범 〈체스〉는 〈방콕에서의 하룻밤 one Night in Bangkok〉이라는 놀라운 라디오 인기 곡을 만들어낸 컨셉트 앨범이자 뮤지컬 연극이었다. 그룹은 그 후 몇 년에 걸쳐 그들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한 빈번한 루머들을 부인했지만,

 아바의 음악은 결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적은 없었다.

여러 그룹들이 아바의 노래에 대해 다양한 애정을 표시하면서 그룹의 노래를 연주했다.

 

특히 영국의 댄스 팝 그룹 이레이저는 〈아바 풍의 ABBA-esque〉(1992)라고 어울리는 앨범 제목을 붙인 EP음반

 전체를 아바의 노래들로 채울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아바의 음악은 또한 영화에 자주 삽입되는 단골 음악이 되었고,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의 모험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1994), 〈뮤리엘의 웨딩 Muriel's Wedding〉(1994)같은 영화들에서는 줄거리와 배경 음악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뮤지컬 연극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던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아바의 과거 발표곡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맘마미아 Mamma Mia!〉를 만들어냈다.

 

이 뮤지컬은 1999년 런던의 웨스트 앤드 극장가에서 초연한 뒤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을 맡은 〈맘마미아〉의 영화 버전은 2008년 세계 박스 오피스에서 최고의 영화들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룹은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ABBA 는 Blue Swede(블르 스위드)와 함께 스웨덴 출신의  그룹으로서는 둘밖에 없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그룹이다. Abba는 비록 70년대에 처음 록 그룹으로 만들어 졌지만 각 멤버들은 모두 그룹이 만들어지기전 이미 솔로로 성공을

이룩한 멤버들 이었다.

 

Benny는 60년대 팝 밴드인 The Hep Starts(헵 스타즈)에 있었으며 Bjorn은 Hootenanny Singers(후르트내니

싱어즈)에서 노래를 불렀었다.

이들이 만난것은 1966년 이었고 이때부터 이들 두 사람은 콤비를 이루어 듀어로 활동 하면서 계속 음악적 협력자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70년 Benny는 여자 친구 Frid와 동거생활을 하였고 Bjorn은 1971년 Anna와 결혼하여 당시 이들을 좋아하던

스웨덴 팬들에게 화제가 됐었다.

금발의 Anna와 Anna보다 나이가 많은 Frida는 이미 60년대말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성 가수중의 한 사람으로 TV 프로그램 하이랜즈 코너에서 잘 알려자가 시작 했었다.

 

1972년 Benny와 Bjorn은 People Need Love란 곡을 레코딩 하면서 Anna와 Frida 에게 백보컬을 맡겼는데 이곡이 히트를 하자 1973년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Abba 라는 그룹 이름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 하게 된다.


 

같은해 이들은 'Ring Ring' 이라는 곡으로 유러비젼 송 페스티발에 도전 했으나 실패 하고 다음해인 1974년

'Waterloo'(이곡은 나중에 우리나라에 바니걸스가 번안해 불러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란 곡으로 다시 도전하여

Olivia Bewton John, Gigliola Cinquetti등 슈퍼 스타들이 대거 참석한 행사 였음에도 화려한 율동과 리듬, 그리고

 완벽한 하모니를 구사하여 7천여의 노래들과 경합하여 그랑프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록 계열로서는 이 페스티발에

첫번째 곡이 되었다.

 

32개국 5억의 텔레비젼 시청자 덕분에 유럽에서 폭팔적인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그 후 아틀랜틱 레코드사에서 영어로

 발매하여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하였다.

같은해에 발표한 'Honey, Honey'와 1975년 'S.O.S'를 발표해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그룹으로 인정 받게 된다.

 

이들은 계속해서 'I Do I Do I Do I Do', 'Mamma Mia', 'Fernando', 'Dancing Queen'(이 곡은 원래 스웨덴 국왕의 축하곡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등을 발표하면서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하여 "히트 제조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Abba 붐을 일으키며 전세계 팝 팬들을 매료 시켰다.


 

1979년 1월 9일 유엔 본부에서 주최했던 "세계 불우 아동을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곤서트에서 Chiquitita를 불러 찬사를 받았으나 같은 달 Bjorn과 Anna가 이혼 성명을 발표했고 이어 1981년에는 Benny와 Frida가 이혼 성명을 발표해

이들을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을 실망 시켰다.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리며 활동했던 이들 2쌍은 서로 남남이 되기는 했지만 다행이 노래만은  무대에서 부르기로 했다.

1980년에 발표한 앨범 'Super Trouper'는 타이틀곡과 'The Winner Takes It All'이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1981년에 발표한 앨범 'The Visitors'는 1982년 까지 히트를 기록 하는등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abba라는 그룹은 활동을 한 하지만(언젠가 신문 인터뷰 에서도 "Abba가 다시 재결합에서 활동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었다) 현재 비틀즈를 제외 하고는 레코드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 했고 뉴옥에서 각종

사업으로도 성공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아직도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서 홈페이지 카페등도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좌로부터: Benny Anderson, Anni-Frid Lyngstad, Agnetha Faltskog

그리고 Bjorn Ulvaeus


 

 

스웨덴이 자랑 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볼보(VOL VO)자동차 이고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팝그룹 "ABBA "이다.

 

ABBA는 스칸디나비아 출신중에 역대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활동을 했던 4인조 팝그룹이며,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으로 상위차트에 올랐다.

 

그들은 라이오 팝음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끊임없이 앨범이 판매되고 있다.

ABBA의 앨범은 지금까지 3억7천만장이팔렸다.

ABBA가 해체된 시기는 1982 년으로 알려져 있다.

 

아바가 해체할 무렵에 태어난 갓난 애기들이 2007년 지금은26살의 청년이 되었다는 얘기다.

아바는 비영어권인 스웨덴 출신으로 영어권나라보다 홍보가 불편 했음에도 불구 비틀즈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음반을 판매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판매 량이 무려 3억 5천 만장에 이른다고 한다.

그를 통한 외화 획득이 한 때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 "VOL VO" 의 수익 보다 많았다고 한다

근래에는재결성을 전제로 한 공연의 캐린터로 10억 달러,한화로는 1조원을 제시 햇으나 거부 당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아바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거리 이나 아바의 팝 음악은전설로 얘기되고 있으며

아바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들을 다시 보기를 원하고 있음에 아직까지는 해체된 그룹이 아닌 ABBA로 우리들

 가슴속에 기역 되고 있다.


"ABBA'라는 그룹 이름은 맴버들의 이니셜을 따서 간편하게 지은 이름이다"
아바는 1973년 데비 당시에는 ABB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ABBA'라는 이름은 네 구성원아그네타 팔트스코크(Agnetha Faltskog) 아니-프리드 린그스타드(Anni-Frid

 Lyngstad) 베니 안데르손(Benny Andersson) 비요른 울바에우스(Björn Ulvaeus) 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각기 짝을 지어 부부의 연을 맺지만 결국 이혼을 하게 되면서 그로 인해 결국 팀이 해체되는 계기가 된다.  

 

그들의 팝음악은 라디오에서 고정적으로 방송되고 있으며, ABBA의 앨범은 지금까지 3억7천만장 이상이 팔렸다.

그들은 영어권 국가들(영국,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등)의 차트에서 꾸준히 상위그룹에 랭크된 최초의 유럽출신 팀이었다.

 

그 놀라운 성공은 다른 유럽국가의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ABBA 는 북구의 음악을 세계적인 주류적 음악계에 소개했으며 힙합 장르과 같은 정도의 독특한 순수 대중음악을 완성시켰다.

또한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을 하기도 하였다.


아바의 노래들을 다시 배열하여 이야기로 엮은 뮤지컬 맘마미아는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008년에는 동명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영화의 개봉으로 한국 내의 아바의 인기가 급상승하기도 하였다


작곡가 겸 가수인 베니 안데르손과 비요른 울바에우스는 악보나 종이에 기보를 할 줄 몰랐고 오직 아그네사 펠트스

코크만이 할 수 있었다.(1981년 Dick Cavett 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들이 사용한 악기들은 실험적이었으며 즉흥적이었고 또는 스튜디오에서 반주녹음에 노래를 하기도 했다.

 

이런 제약은 훗날 맘마미아 뮤지컬을 제작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먼저 음악이 완성되고 나서 다른 음악가들이

참여한 후 앉아서 음악을 듣고 악보에 기보를 하고 가사를 추가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베니와 비요른이 후반 작업을 위해서 6개월 이상이 소요되었다.

작곡가들 또한 베니와 비요른이 음원을 먼저 만들고 나서 후에 가사를 추가했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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