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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Nirvana-Lithium

 

 

 

 

 

 


 

 

 

 

 

 

 


 

 


I’m so happy ’cause today 
I’ve found my friends ...

 

They’re in my head 
I’m so ugly, but that’s okay,

 ’cause so are you . 

We’ve broken our mirrors 
Sunday morning is everyday for all I care ... 
And I’m not scared 
Light my candles, In a daze ’Cause I’ve found god 

Yeah (x6) 

I’m so lonely but that’s okay,

 

 I shaved my head . 
And I’m not sad 
And just maybe I’m to blame for all I’ve heard .. 

But I’m not sure 
I’m so excited, I can’t wait to meet you there
But I don’t care 

I’m so horny, that’s okay .

 

My will is good 

Yeah (x6) 

{(x2) I like it - I’m not gonna crack 

I miss you - I’m not gonna crack 
I love you - I’m not gonna crack 
I killed you - I’m not gonna crack }


I’m so happy ’cause today I’ve found my friends .
They’re in my head 
I’m so ugly, but that’s okay, ’cause so are you .

We’ve broken our mirrors 
Sunday morning is everyday for all I care ... 
And I’m not scared 
Light my candles, In a daze ’Cause I’ve found god 

Yeah (x6) 

{I like it - I’m not gonna crack 
I miss you - I’m not gonna crack 
I love you - I’m not gonna crack 
I killed you - I’m not gonna crack (x2) }

 

 


출처: 영상-유투브, 가사-네이버

 

 

 

 

 

 

 

 

 

 

 

 

 

 

 

 

 

 

 

 

 

 

맨오른쪽 파란기타가 커트코베인 시그너쳐 기타

 

 

 

 

 

8년이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침침한 방구석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린 지 어언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비록 본인은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한 시대를 상징하던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그 파장이 실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더도 말고 지금 돌아가는 씬의 상황을 보면 다들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너바나(Nirvana)가 로큰롤의 신비화에 정면으로 도전했었다는 일화는 이미 꺼내기가 민망할 만큼, -커트 코베인의

 신격화와 더불어- 그들 또한 영광스러운 '로큰롤 전설'의 일부가 돼버린 지 오래다.

모두들 이야기한다.

990년대 초반의 시애틀 무브먼트(Seattle Movement)가 다시금 록을 듣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타협하지 않는

순수성이 다시 한 번 음반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짧지만 좋았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요로웠던' 시기였다고. 맞는 말이다. 이제 와서 '알고 보니 그 때도 문제는 많았다' 식의 말을 하는 것은 비겁한 결과론일 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너바나는 원치 않았던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부여받았고, 지금 우리가 손에 든 베스트 앨범

 [Nirvana](2002) 역시 이러한 신격화 과정의 한 단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너무나도 관심이 모아졌던 탓에 처음 들으면서도 처음 듣는 곡 같지 않았던 미발표곡 "You Know You're Right"를

시작으로, 시간상 순차적으로 나열된 수록곡들을 들으며 아련했던 너바나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모든 곡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Digital Remastering)되었다고 하지만 어차피 이들의 음악은 처음부터 '깔끔한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었던 바, 귀를 자극하는 새로운 청각적 즐거움을 발견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히트곡 레퍼토리도 조금은 지루할지 모르겠다("Been A Son"과 "Pennyroyal Tea"의 다른 테이크(take) 버전이 실려있다는 사실이 [Nirvana]의 구매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곡 모두 'Alt. Take'가 들려줄 법한 실망스런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게다가 아무리 너바나가 3, 4분대의 짧은 곡

위주의 밴드였다고 하더라도, 첫 공식 베스트 음반의 러닝타임이 60분도 채 안 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가장 흥미를 자아냈던 "You Know You're Right"의 경우, '다채로운 펑크(punk)음반'이었던 [Nevermind](1991)의 강렬한 멜로디 라인과, [Nevermind]의 딜레마(펑크로 백만장자가 된 '록스타'라는)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In Utero](1993)의 단순 리프의 반복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게 다다.

 

더 이상 이 음반에 무슨 말을 갖다 붙이기엔 너바나는 이미 너무나 유명해졌고, 또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결국 어떤 좋은 말을 갖다 붙이건 이 음반은 '때늦은 울궈먹기' 이상의 평가를 받아내기엔 무리가 있다

 

(커트 코베인 사후 발매되었던 [Unplugged In New York](1994)나 [From The Muddy Banks Of Wishika]

(1996)가 라이브 음원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Nirvana]는 스튜디오

음원을 담은 베스트 앨범임에도 차트 3위에 오르는 데 그쳤을 뿐이다).

 

 

 

 


 

 



물론 [Nirvana]가 갖는 나름의 가치는 있다. 이미 '현재의' 것이 아닌 너바나의 음악이 새로운 세대에겐 익숙하지

않은(접하기 까다로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음반이 '소개'의 기능을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음반사가(그리고 나머지 멤버인 크리스 노보셀릭(Chris Novoselic)과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이 점을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생각은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와 "You Know You're Right"의 발표 여부를 놓고 온갖 험담들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더욱 확실히 굳어졌다.

'소개'의 기능을 위해서라면 미발표곡의 수록여부가 왜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그런 의미에서 [Nirvana]는 너바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화석화'하고 '박제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음악에 절대적인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앞으로도 계속될 너바나 세일즈에 이로운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음반의 본 의도가 이미 다 아는 노래들을 가지고 새로운 척 포장하여 소비자를 우롱하는데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조건마저 모두 감수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씁쓸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모두 알면서도 속아넘어가는 뮤직 비즈니스계의 일면인 것이다

(해당 가수에 대한 팬들의 '애착'이 강할수록 이런 '착취' 또한 더욱 강도 높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도 [Nirvana]를 통해 들려오는 그 노래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커트 코베인은 죽었다. 너바나도 끝났다. 하지만 음악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아마도) 다시 한 번 이들에 대한 음악산업의 착취가 시작될 때, (그 수많은 '로큰롤 성자'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커트 코베인 역시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 한 번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역사가 아무 교훈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교훈'이니까.

 

 

 

 

누군들 청춘이야 없었겠는가?

나의 대학시절 역시 남들과 똑같이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고, 그동안 읽지 못한 책들과 듣지 못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봇물 처럼 터져 나오던 시기로 기억된다.

그 시절 난 원치 않았던 대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고, 책과 영화와 음악에 빠짐으로써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했던것 같다.

 

그 때 나에게 다가온 음악이 NIRVANA의 음악이였다.

폭발할 듯 질러대는 소리는 억눌린 울분의 분화구처럼, 또 어느땐 웅얼웅얼 읍쪼리는 듯한 목소리는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자의 중얼거림처럼 들려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nirvana'

 

해탈의 경지에 이른 열반의 세계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라고 한다. 

그들의 노래중에 어느것 하나 맘에 들지 않은 곡이 없었지만 처음엔 2집 <never mind>에 수록된 곡들,

Smells like teen spirit, Come as you are, Lithium 곡들에 꽂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뉴욕에서 라이브실황으로

들려주었던 Unplugged in NewYork앨범에 수록된 All Apologies 나 The man who sold the world 같은 곡들에

 귀가 열렸었다.

 

그러다가 어느땐가 듣게 된 Season in the sun이라는 곡을 듣고 이젠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청년의 마음이 다시

콩딱콩딱 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NIRVANA의 곡을 다시 듣게된 이유는 얼마전인가 본 영화 <Last Days>란 영화를 보고나서이다.

 이 영화는 영화<아이다호>를 만든 구스 반 산트 감독이 2005년에 만든 너바나의 리드보컬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대한 영화이다.

커트 코베인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번쯤 보시길 권한다.

 

Season in the sun 이라는 곡하나 소개하려고 무지하게 썰을 풀었다.

지루했다면 이해해 주시라.

커트의 기일에 맞쳐 4월 5일이나 시체가 발견된 4월 8일쯤 글을 쓸까 했는데 이놈의 게으름증이 날 가만두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커트 코베인의 의문의 죽음과 아직도 자살이냐? 타살이냐?라는 여러가지 음모론(?)에서부터

커트의 미망인이자 가수겸 영화배우인 커트니 러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너바나...이들이 얼터너티브의 시초라고들 이야기 한다.

맞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정작 이들은 얼터너티브를 한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했던것은 섹스피스톨즈에 이은 또하나의 펑크 일뿐 결코 얼터너티브가 아니었다고 하니..그 시절 평론가가 만들어낸 이 장르이름에 자신들이 휘둘려지는것에 매우 화가 났었나보다


말도 많다 그런지를 한다는 이야기 얼터너티브를 한다는 이야기 펑크를 한다는 이야기..

장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은 의미없기도 하니깐 셋다 맞는 말이라고 하는것이 좋겠다.

필자가 이 밴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때는 그 유명한 스멜라이크 음악이 아니었다.

아니다. 어느날 아는 동료와 (건스앤 로지스때 언급했던 커트;;) 와 심심풀이차 합주를 하러 갔을때 였다.


그때 스멜라이크 라면서 그곡을 쳤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리프였었고 그 곡도 모르면서 필자도 가끔식 쳐보기도 하고 그랬었다.

 

너바나에 대해서 알아볼까 하는 생각에 음반가게로 가서 너바나의 가장 최신음반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구입을 했었는데

그때 그 점원이 최신음반이라고 설명해주면서 판것이Bleach 라는 앨범이었다

그때는 멋도 모르고 그 앨범을 좋아라 하면서 구입을 했고 집에서 틀어봤었다 .


후에 알고보니 Bleach 은 최신 앨범이 아니고 1집이었다.

인트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베이스 그리고 하모닉스와 비스무리한 소리가 난후 디스토션 엄청 걸어버린 소리가 난다.


무엇에 그렇게 깊은 상처를 받았던가...그들은 절규하고 있었다.

보컬의 멜로디 라인과 같은 기타의 백킹..기타솔로는 조금은 단순하지만 곡에 있어서 오히려 더 잘맞는 솔로가

아닌가 싶었다.

커트가 친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멤버가 친것인지 (1집때의 멤버는 기타리스트 2명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의 백미는 School 에 있지 않나 싶다.

반복적인 가사와 반복적인 선율 구성으로 봐도 매우 단순하고 멜로디도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들에게 세상에 대한 분노의 끝을 보여주는 곡이다.


트윈베이스를 사용한듯한 들릴듯 말듯한 부분이 많은 드러밍도 꽤 알맞게 사용하면서 곡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 앨범은 성공작은 아니었고 너바나의 이름을 알리는데 까지는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수 있다

그 다음에 구입한 앨범...

매우 충격적인 앨범 자켓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물속에서 돈을 쫒고 있는 사진이었다.

현실에 자화를 그려넣은 그 모습에 너바나의 비판정신은 2집부터 극에 달해버렸던 것이다.

그 유명한 명곡 Smells Like Teen Spirit 이 이 앨범에 들어가 있다.

그것도 인트로 곡으로 들어가 있다

 

새로 영입한 드러머를 데리고 만든 앨범이었는데 아마 이 앨범은 커트가 프로듀싱을 했다고 알고 있다

전 앨범도 그리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건 별로 중요한것은 아닌것 같다

 

이 앨범으로 인해서 커트코베인이 이끄는 너바나는 세계최고의 집단이 되어버리고 세계는 이 사람들이 주도하는 음악에 대해서 열광하고 세계의 음악유행은 절대적으로 얼터너티브로 바뀌게 되었다.

 

그 시절 세계에서 인기 제일 많았던 밴드 건스앤 로지스의 앨범 판매량도그리고 영원한 팝의 황제(지금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의 곡은 영원한 명곡이 되고 그는 절대불멸한 뮤지션이다.) 마이클 잭슨 의 앨범판매량도 훌쩍

넘어버리고 세계최고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은 Nevermind 이 한장으로 인해서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절대적인 강자가 된것이다.

 

Smells Like Teen Spirit 은 처음부터 똑같은 코드 반복진행을 가지고 있지만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를 완벽하게

구성하고 있다.

게다가 이 노래의 기타솔로는 보컬의 멜로디와 똑같은 멜로디를 연주하였는데 세계적인 기타잡지 'Guitar Wolrd' 에서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기타 솔로 100선 에서 26위에 랭크되었다는것...

 

커트코베인은 리프메이커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으나 기타를 잘 못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그의 기타는 그의 곡에 가장 잘 맞는 기타였음을 이 사실에서도 알수 있으리라...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나서 생각했던것이 이 앨범은 명반이다. 라는 것이다.

한 곡 한곡 더이상 버릴수가 없었던 느낌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밑바닦부터 쓸어내려서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갈망하고 또 분출하고 싶게끔 만드는 앨범이 바로

네버마인드 라고 할수 있겠다.

 

유럽쪽에서 네버마인드 앨범이 90년대의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된바도 있고 한국에서든 어디에서든 이 앨범이 명반이라는것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후 너바나는 그들의 미발표곡을 담은 앨범도 내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생각치도 않은 너무 큰 성공에 기획사에서 흔쾌히 허락해준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너바나의 성공으로 그리고 끊임없는 라이브로커트는 지침감성을 드러내게 되고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담은

 In Utero 앨범을 내게 되었는데 이는 커트코베인이 너무 커져버린 자신의 존재에 끊임없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너무 고생을 한 흔적이 나타난다.


이 앨범으로인해서 그들에 대한 이목이 다른 방향으로 집중되었는데 음악은 그전보다 훨씬 더 강렬하지만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특히 All Apologies 곡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커트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그는 힘든 감정을 이곡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는데 듣는 사람마저 커트의 감정과 일체화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곡이 되어버린다.

 

언젠가 에릭크랩튼이 인기가 많이 떨어지고 자신의 아픔을 약으로 달래고 있던 시절 약을 끊고서 음악에 몰두하려 할때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사고로 죽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에릭크랩튼은...자신의 아들을 추모하는 그런 앨범을 만들었는데 누구나 에릭크랩튼이 재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다.

일렉기타 시대에 통기타 하나 들고 언플러그드로 음악을 한다니..너무 유행에 동떨어진 일이었다.

처음에 위대한 록커 밥딜런이 통기타 말고 일렉기타를 들고 나왔을때 사람들은 욕을 하였던가..?

 

하지만 시대에 동화되어 오히려 밥딜런은 포크록 이라는 장르의 기초가 되어버리고 그 일렉기타에서 다시 통기타로 돌아섰던 에릭크랩튼은 주위의 우려를 깨버리고 세계의 음악유행을 언플러그드로 바꿔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Unplugged 붐이 일었던 그 당시 세계의 거물이 되어버린 그들도 언플러그드를 하게 되었는데 이 앨범은 너바나의 외적으로 부드럽고...하지만 내적으로는 강한 그런음악을 선보였다 .

 

 

 

 

스프라이트를 마시며 가사를 쓰는 커트의 모습

 

 

 

 

유난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팬들에게 충격과 아쉬움을 주었던 록스타가 있다. 90년대 록의 표상이자 그룹

 'Nirvana'(불교의 '열반' 의 영어 표기)의 리더였던 Kurt Cobain이 그랬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Kurt Cobain이 죽음을 맞이한 나이는 스물 일곱. 너무 프르러서 그 죽음이 더욱 서러운 나이다.

 Kurt Cobain, 그룹 'Nirvana' 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1994년 4월 8일 시애틀 자택에서 권총 자살. 그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것은 그의 집을 방문했던 한 전기공이었다.

그것도 그가 세상을 떠난지 무려 3일만에...

 

90년대 초중반 록계를 강타했던 'Alternative Music'의 열풍. 90년대에는 그렇게나 자주 또 일반적으로 쓰였던

 Alternative라는 용어가 지금은 예스럽게 느껴진다.

 '대안'이라는 뜻답게 Alternative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불어닥치기 시작한 록의 새로운 조류를 뜻한다. Alternative는 점점 기교적이고 화려해지며 상업화되는

 기존 록 음악에 반대하여 거칠고 반항적이며 가식 없는 록의 초기 정신으로 돌아가고자하는 록의 새 장르였다.

 

Alternative는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이자 흐름이었는데 미국 시애틀이 그 발원지였고 그 중심에

'Nirvana'가 있었다.

당시 시애틀 출신 그룹인 'Nirvana' 'Pearl Jam' 'Alice in Chains'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들의 음악은

 Grunge Rock(연주가 다소 유치하고 음악적인 세련미는 없으나, 공격적이고 열광적인 록 음악)으로 불렸다.

 

아이러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초기의 순수한 록 정신으로 돌아가 자신들이 하고 싶은대로 가식없고 직선적인 음악, 젊은이들의 울분가 고뇌를 담은 그런 음악들을 추구하던 그들이 어찌어찌 하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인기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어느새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상업적인 인기 스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괴리감과 갈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Kurt Cobain은 "Smells like Teen Spirit"이 담긴 2집 >의 엄청난 성공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갈등과 방황 속에서 신경안정 제 다량 복용 등 위험한 해프닝을 벌이다가 결국은 권총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Nirvana'의 음악을 들을 때, Kurt Cobain의 보컬이, 또 기타 톤이 유난이 슬프게 들리는 것은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강렬하고 폭발적인 비트 속에 배어 있는 우울한 감성이 'Nirvana'만의 독특함인지도 모르겠다.

 

회화를 전공하던 두명의 예술학교 학생, Kurt Cobain과 Krist Novoselic의 만남.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서의 라이브

활동과 89년 마이너 레이블에서 냈던 풋풋한 데뷔 앨범.

잦은 멤버 교체 속에 드디어 제 3의 멤버인 드러머 Dave Grohl의 정착.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 91년 그곳에서의 첫

앨범이자 2집의 세계적인 성공. 이 앨범은 당시 앨범차트 1위를 하던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밀어내고 정상에 올랐다.

 

93년 3집 의 발매와 무난한 성공.

그리고 94년 4월 8일 Kurt Cobain사망.

 팀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이며 기타리스트였고, 또 팀의 얼굴이기도 했던 Kurt Cobain이 세상을 떠나자 남은 두 멤버는 팀을 지탱시킬 수 없다고 선언했고, 'Nirvana'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두 장의 유작앨범(1994)과 (1996) 이 발표되었고, 남은 두 멤버 Krist와 Dave 도 각자 그룹을 결성해 활동에 나섰다. 이 중 Dave의 그룹 'Foo Fighters' 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4월이 되면 특히 생각나는 'Nirvana'의 음악들. 에 담긴 90년대 젊음의 표상인 "Smells like Teen Spirit" 과 더 이상

애절할 수 없을 것 같은 의 수록곡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가 아직도 새롭게 들려온다.

 

[1983] 멜빈즈의 팬이던 커트는 멜빈즈의 투어밴 운전과 장비를 옮기며 멜빈즈의 리허설을 수없이 관람한다.

이때 버즈(Buzz)는 커트를 블랙 플래그(Black Flag) 공연에 데려가는데 그 공연관람후 커트는 포지션을 드럼에서

기타로 바꾼다.

노래 부르는것을 원치 않았고 단지 리듬기타를 치기 위해서.

 [1985] 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에서 쫓겨난 커트는 낮에는 도서관에서 밤에는 친구집, 어머니집 현관 등에서

그리고 'Meet puppets, Stop Vandalism' 같은 낙서를 하며 위시카강의 제방에서 잠을 잔다.

 [1985] 애버딘 고등학교 시절 커트가 사귀고 싶어했던 크리스를 멜빈즈 멤버에 의해 정식으로 소개 받는다.

이전에 커트는 친구 로버트 집의 2층에서 소음소리를 듣고, 로버트에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그리고 로버트는 "응 우리형 크리스야. 형은 지금 펑크록을 듣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이때 커트는 수영강사, 수위, 치과, 레스토랑 등에서 일을 하고, 로큰롤과 헤로인의 함수관계를 믿고 있던 커트,

이때부터 헤로인을 시작한다.

[1987] 봄, 커트는 크리스 에어론과 함께 너바나의 전신이 되는 밴드를 결성하고, 열명정도 되는 관객 앞에서 공연을

 갖는다.

얼마후 크리스는 타코마로 커트는 예술적 재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올림피아로 옮긴다.

 [1987] 가을, 커트가 가지고 있는 만성질환중 위장병이 이때부터 시작되고,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위장병을 오히려

괴롭혀주기 위해 가끔 헤로인 요법을 선택한다.

커트는 연주중에 위장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이를 보여주기 위해 드럼세트에 몸을 던지곤 한다.
 

[1988] 1월, 커트가 수위일로 번돈을 가지고 밴드는 스킨야드(Skin Yard)의 기타리스트이자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의 대부 잭 앤디노(Jack Endino)와 함께 데모테입을 제작.

한편 잭은 팬진으로 시작한 섭 팝 측은 시애틀 커피숍에서 술에 취한 크리스와 그의 밴드를 만나본후 너바나의 첫싱글

발매를 결정한다.

 

[1988] 여름, 커트와 크리스는 'Bliss'라는 이름하에 활동할 때 함께 공연을 하던 'Tick-Dolly-Row'라는 밴드의

 드럼세트를 보고 크게 매료됨. 이 드럼세트의 주인은 바로 태드 채닝(Chad Chaning). 커트는 그와 몇번의 합주를

해보고 밴드의 드러머로 기용해 첫 싱글을 발매한다.

 

그리곤 얼마후 '충분히 연습만 한다면 멜빈즈보다 크게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밴드의 첫 기사가 시애틀 음악 잡지

 'Backlash'에 실림.

[1989] 섭 팝은 재정문제로 밴드에게 EP앨범만을 제작할 것을 통보했지만 제이슨의 도움으로 밴드가 원하던 첫 앨범을 녹음할 수 있게 됨.

그러나 녹음 직전 마구 쓰여진 커트의 낙서성 가사와 함께 3일만 세션라게 됨. 밴드가 포틀랜드의 한 클럽에서 연주를

할 때 커트에게 호감이 있던 관객 커트니 러브는 밴드의 연주후 커트와 대화를 나누고, 커트는 그녀에게 밴드의 로고가

새겨진 "Chim-Chim" 스티커를 선물한다.

 

 2년후 커트니는 같이 밴드를 하던 L7의 제니퍼 핀치(Jennifer Finch:데이빗의 여자친구) - 이즈음 커트니는 스트리퍼 Kat Bjelland, 제니퍼와 함께 'Sugar Baby Doll'이란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 를 통해 밴드 멤버와 친숙하게 되고 커트니는 커트에게 전해달라며 데이브에게 인형, 조개, 솔방울이 담겨있는 하트상자(Heart-Shaped Box)를 건네준다.

[1989] 10월, 밴드는 EP 앨범 녹음을 마치고 TAD와 함께 첫유럽 투어를 갖는다. 커트는 투어버스에 동승한

 TAD 멤버의 거칠은 매너와 쉴틈없는 스케줄 등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투어가 끝날무렵 로마공연에서 몇곡을 연주한 후 커트는 기타를 부수고 다이브를 하겠다며 스피커 꼭대기로 올라가 관객과 매니저를 향해 불만을 터뜨린다.

 투어중 커트는 이태리 화장실이 스케치되고 살아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트레이시(Tracy)에게 보낸다.

 

[1990] 가을, 밴드 스크림(Scream)과의 음악성은 다르지만 커트와 크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밴드의 다섯번째

드러머로 데이브 그롤이 가입한다.

 [1991] 4월, 메이저 레이블을 찾던 밴드에게 소닉 유스의 킴은 게펜(Geffen)을, 서스톤은 매니저 회사 'Gold

Mountain'을 추천하고,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의 매니저 수잔 실버(Susan Silver)는 변호사를 소개시켜준다.

 

메이저로 옮긴 타 밴드(Sonic Youth, Firehouse, Dinosaur Jr 등)와는 달리 밴드를 스카웃해 성공한 게펜의 A&R

개리 거슈(Gary Gersh)는 EMI 산하 캐피톨(Capital)의 사장으로 골드 마운틴(Gold Mountain)의 대니 골드버그

(Danny Goldberg)는 워너 산하 애틀랜틱의 현 사장으로 활동중이다.
 

[1991] 5월, 섭 팝의 계약하에 게펜으로 이적한 밴드는 새 앨범 녹음을 위해 LA로 향하고 LA의 밴드 숙소 근처에 살고 있던 커트니는 Butthole Surfer/L7 공연장에서 다시 만난 커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한다.

(복부강타) 앨범 녹음 중 커트와 데이브는 물속에서 아기를 낳는 TV 다큐멘타리를 본 후 게펜 미술담당 로버트 피셔

(Robert Fisher)에게 새앨범 커버로 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얼마후 물속의 아기사진을 본 커트는 사진에 지폐가 걸린 낚시바늘을 첨가시켜야 한다고 농담을 건낸다.

커트는 부클릿을 위한 사진촬영시 앨범을 구입한 이들을 조롱하기 위해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해 포토세션에 임한다.

 

술에 취한 크리스, 기침약에 중독된 커트, 부숴진 장비, 이 상태로 녹음은 마쳐지고 매끄럽지 못한 믹스는 베테랑 믹싱맨 앤디 월러스(Andy Wallace)가 맡게 된다.

후에 커트는 펑크 앨범답지않은 믹스에 불만을 표시한다.

 

[1991] 8월, 밴드는 레딩에서 노닉유스의 오프닝을 맡고 이곳에 빌리 코건과 함께 나타난 커트니와 커트는 런던이

한 나이트 클럽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을 확인. 이후 이들은 밴드의 시카고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줄곧 함께 하며 커트니도 그 과정에서 커트로부터 영향받아 헤로인을 함.

 

[1991] 9월, 사운드가 펑크밴드라기보다 머틀리 크루에 가깝다고 커트가 말하는 밴드의 메이저 데뷔앨범이 발매되며,

1년후 밴드는 자신들이 어떤 성격의 밴드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공개한다.
 

[1991] 10월, 커트가 호감을 갖고 있는 어지 오버킬(Urge Overkill)이 밴드의 오프닝을 맡고 어지 오버킬은 훗날

O.S.P 참가곡으로 부각되는데 이 영화의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부클릿에 등장한다.

(커트가 선호하던 밴드로는 Rain Coats, R.E.M, Pixies, Beat Happening, Flipper, Jesus Lizard, Melvins

 Shonen Knife, Breeders, Sonic Youth, Dinosaur Jr 등등이 있다.)

 

[1992] 1월, 커트니가 임신을 하지만 헤로인이 태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커트는 중절을 원한다.

태아의 양호한 건강상태를 점검한 후 커트니는 출산을 결심. 한편 커트니의 임신은 매스컴의 핫 이슈로 등장한다.

이후 코베인 부부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사내라면 Vaselines의 유진 켈리(Eugene Kelly)로, 여자애라면 유진의

파트너 프랜시스 맥키(Frances Mckee)로 지으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커트는 인터뷰에서 프랜시스의 이름은 배우 프랜시스 파머(Frances Farmer)에서 따온것이라 밝힘) 커트와

커트니의 인생에 자주 등장했던 문제거리 Bean(속어로 '돈'이란 뜻)이 프랜시스의 미들네임이 됨. 가 앨범차트 1위에

 오른 것은 90년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함.

 [1992] 1992 3월, 토리 에이모스(Tori Amos)는 'Teen Spirit)의 피아노 버전 EP앨범을 발표했는데, 커트와

 커트니느 ㄴ매일 아침 이곡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춰대 이웃집을 괴롭혔다.

커트는 인세지분을 크리스와 데이브보다 높게 책정하려 결심하고 이 때문에 두 멤버는 상심하게 된다.

 [1992] 6월, 아일랜드 투어에서 커트는 위장병 진통제 복용을 잊고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때 매체의 관심은 커트의 건강상태에 집중되며 이것을 의식한 커트는 레딩공연에서 가발을 쓰고 수술복을 입은 후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를 부르며 쓰러지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1992] 9월, 영국에서 글을 쓰는 빅토리아(Victoria)와 브릿(Britt)이라는 여자들이 밴드에 관한 책을 쓰기위해 밴드의 측근과 사진작가에게 접근한다.

밴드는 이를 법적으로 저지시키고 롤링스톤지에 글을 쓰는 마이클 애저래드(Michael Azzerrad)에게 밴드 스토리를

맡긴다.

 

이후 마이클은 밴드의 전미투어등을 함께 하며 인터뷰를 근거로 'Come as you are'를 집필한다. 마이클은 새앨범

 전미 투어 마지막에 있던 MTV 언플러그드에서 커트를 마지막으로 보게 된다. 클립에 너바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등장시키기도 했던 액슬은 GNR/메틀리카 투어 오프닝을 밴드에게 제안하나 커트로부터 거절당함.

 

이때부터 커트를 향한 질투와 시기는 MTV 시상식 백스테이지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시상식이 끝나고 크리스를 강타하려는 더프 매케이건(Duff Mckagan)과 GNR무리는 너바나의 트레일러에서 밴드를 기다리나 이 대결은 몰려드는 팬들로 인해 무산되었다.

 

[1993] 1월, 정점에 이른 밴드는 L7과 리오공연을 치루는데 몇곡의 신곡 발표와 함께 포지션을 바꾸어 (보컬과 베이스-데이브, 기타-크리스, 드럼-커트)듀란듀란의 를 연주한다.

[1993] 2월, 커트는 펜더사를 위해 그가 주로 쓰는 69년형 Mustang과 62년형 Jaguar의 혼합된 모습을 띠고 새로

 험버커 픽업이 장착된 Jag-Stang이라는 모델을 디자인한다.

이 기타는 얼마전 국내에 소개된 기타앨범 자켓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한편 밴드는 새앨범 작업에 착수한다.

 [1993] 4월, 홀(Hole)의 새 싱글 커버에 어린시절 커트의 모습이 등장.

[1993] 6월, 엘비니와 만든 새 일범에 커트니가 너무 상업적이라며 커트에게 믹싱을 다시할 것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커트는 밴드가 원해서 리믹싱을 한다고 Newsweek에 글을 보낸다.

 [1993] 7월, 코베인 부부가 하도 시끄럽게 싸우는 바람에 이웃주민이 경찰에 신고하고 집을 수색한 경찰은 이들의 집에서 총을 발견함.

이 부부싸움은 총을 소지하려는 커트와 이를 반대하는 커트니와의 마찰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커트니는 시애틀

 타임지에서 그 언쟁은 커트의 약물복용에 관한 사소한 다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뉴욕에서 밴드의 연주가 있던날 약물과용으로 인해 커트는 의식을 잃은 채 욕조에 누워 있었고 커트니는 이 광경을 목격함. 한편 이 날의 공연은 무사히 끝남.
 

[1994] 1월 커트는 의 뒷 자켓커버를 만들었는데 이 백커버의 타이틀은 문제가 되어 월마트 등의 체인점에서 이 앨범

판매를 거부하고 나섬. 결국 커트는 게펜측이 이 문제의 커버를 수정하도록 허락한다.

또 라는 타이틀로 문제가 된 지역을 위해 커트는 곡명을 로 바꾸나 이것도 위험 소지가 있어 결국 타이틀은 로 고친다.

이 수정판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매를 금지한 싱가폴 등지에 선보인다.

 

[1994] 2월, 밴드가 유럽투어를 돌 때 커트는 매우 지쳐 있었고 성대에 이상이 오게 된다. 밴드는 TV출연을 위해

 파리에 머무는데 이때 잡지사의 포토세션 중 커트는 총을 입과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포즈를 취한다.

이후 독일 무니헨 공연에서 커트의 성대는 더 악화되고 그 때문에 일부 공연이 취소되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만다.

이 뮌헨 공연은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1994] 3월, 독일 공연 취소후 데이브는 백비트(Backbeat) 비디오 촬영을 위해 독일에 남고, 크리스는 시애틀로,

커트는 로마로 향한다.

로마의 한 호텔에서 피를 흘리며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커트가 커트니에 의해 발견되고 그녀는

 커트를 즉시 병원으로 이송시킴. 진통제 성격의 알약 50알이 커트의 위에서 나오고 20시간만에 의식을 회복한 커트는

 병원 음식에 불만을 호소한다. 호텔에서 발견된 커트의 메시지에 대해 매니저와 커트는 유서가 아님을 주장한다.

 

커트니는 로마사건 이후 커트가 더이상 크리스-데이브와의 활동을 원치 않으며 오직 마이클 스타이프와의 작업을

 희망하고 있다고 MTV에서 밝힌바 있다.

녹음후 커트는 밴드의 전기작가 마이클 애즈래드에게 자신의 음악적 정열이 식어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1994] 4월, 커트가 실종된지 6일째 되던 날 턱을 향하고 있는 20구경 엽총과 함께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시체가

시애틀의 고급주택에서 발견되고 그 시체는 지문조회를 통해 커트 코베인임이 확인된다.

혈액에서 다량의 헤로인이 검출되고 시체옆에 'Boddah(어린 시절 커트의 상상속의 친구이름)에게 보내는 커트의

유서가 발견된다.

 

호주에서 커트의 죽음에 상심해하던 16살의 소녀가 자살하고, 펄잼은 뉴욕 공연에서 (이곡의 클립은 10대의 자살을

얘기하고 있다)를 연주하며 에디 베더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아니라) 산다는게 최고의 복수다(Living Is The Best Revenge)" 한편 타임지 커버에 커트의 죽음을

알리는 'Death Of a Rock God'이라는 문구가 실리고 몇일후 커트의 시신은 화장된다.

 

출처:악숭

 

 

 

 

 

 


너바나는 정말 록적인 그룹이었다.

저항적인 사회의 비판을 주로 가사로 삼았던 이들은 어느 정치가가..그리고 어느 교육자가...

어느 누구가 사회에 감히 말하지 못했었던 것들을 과감하게 비판하고 또 비판했다.

 

결국 커트코베인의 죽음으로서 너바나는 전설속에 남아버리게 되었지만그들이 남긴 음악은 정말 세상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것이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분명하지 않다만은 그의 유서에서 발견된 말은 닐영의 HEY HEY MY MY 라는 곡의 가사이다.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것보다는 불타 사라져버리는것이 낫다 라는 이야기...

 


언젠가 그는 뮤직 어워드 시상식때 건즈앤 로지스와 싸운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액슬로즈와 싸우다가 액슬로즈가 자신의 경호원을 풀어서 커트코베인이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커트코베인은 마치 자신이 신 인양 자기를 추종하는 팬들을 내려다보는 행위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커트는 자신과 관객들과 동격으로 생각했었던듯 한 대목이다.

 

 

 

 

 

사랑하는 딸과의 즐거운 한때..

 

 

 

아 그리고 여담으로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것이 있다 커트코베인의 장비중 일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있었다.

공연중에서 이 기타를 꼭 썼는데 이 기타의 목적은 부수기 위한것이었다는 후문이..미제는 비싸니깐 일제를 쓴것인듯..


 

Cobain Kurt - Sitting

 

 


1.펑크록은 머리를 물들이거나 귀걸이 따위를 하는 치장이 결코아니다. 펑크란 스스로의 노래,연주,프로듀서까지 \도맡 아 해낼때,그 의미가 부여된다.

그렇게 되기 위한 자신만의 열정,바로 그것이 펑크의 정신 인 것이다..

 

2.우린 인기나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사람들이우리를 좋아한다면 기쁘지만 인기순위에 오르거나 하는건신경쓰지 않는다.

 

3.만약 우리가 성공을하나의 목표로두고 분투해서 손에 넣었다면, 글쎄 지금쯤 심한 자만에 빠져있을것이다.

 

4.우린 순수한 음악을 추구한다. 또 자유를 추구한다.

특정한 장르나 사운드에 얽매이지 않는,바로 음악에있어서의 자유다.

 

5.음악을 하는목적이 출세만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들이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때 누군가의 집에서 합주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6.좋은곡이란 우선 내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어야한다. 굳이 맬로디가 좋지않아도 상관없다.

맬로디가 빠져도 활력과 느낌이 살아있으면 되는것이다.

 

7.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굳이 다른사람에게 밝히고 싶진않다.

만약 모두가 내 음악 을 통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이해하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건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

 

8.나는 목수나 자동차 정비원,그리고 빌딩의 관리인들보다 훌륭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9.우린 공연을 통해 사람들앞에서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꿈을 실현시켜 보이는 것이다.

10.음악이 가장 중요하다.

가사는 그다음이다.

 

11.성공? 성공에 딸려오는 부분들은 분명 나를 괴롭히고있다. 정말이지 죽는게 낫다고 생각을 할정도이다.

12.모두들 고맙다. 너무 불안정하고 침울한 나자신에게 열정이란 더이상 없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너바나의 기사이다..

한번쯤 읽어보면 도움이 될듯..

 

 

 

 

 

 

 

 

 

 

워싱턴 주 애버딘(Aberdeen)에서 커트(보컬, 기타)와 크리스트 노보셀릭(Krist Novoselic. 베이스), 채드 채닝

(Chad Channing)이 만나 너바나를 처음 결성한 것은 1987년의 일이었다. 이들은 이듬해 시애틀에 위치한 서브 팝

(Sub Pop) 레이블에 데모 테입을 보냈고, 이때부터 시애틀을 거점으로 활동하게 된다.

결국 1989년, 데뷔앨범 [Bleach]가 서브 팝에서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약간의 인기를 얻게 된다.


앨범발매 직후 잠시 동안 세컨드 기타리스트 제이슨 에버먼(Jason Everman)과 함꼐 4인조 체제로 활동했던 너바나는, [Bleach]의 인기에 힘입어 메이저 레이블인 DGC와 계약을 체결할 즈음에는 다시금 3인조로 재편되어 있었다.

게다가 드러머는 데이브 그롤(Dave Grohl)로 교체된 상태였다.

 

커트, 크리스트, 데이브는 1991년 앨범 [Nevermind]를 제작하게 되는데, 이 앨범이 바로 90년대 미국 록계를

전복시켜 버린 문제작이었다.

 

[Nevermind]의 판매고는 약 3백만 장에 달했으며,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는 1991년 최대의 스매시 히트

싱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게다가 시애틀 출신 동료밴드들을 위시한 수많은 인디 록 뮤지션들이 오버그라운드로 진출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갑작스러운 대성공을 감당할 배포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정규 앨범도 아닌 편집반 [Incesticide]가 덩달아 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하던 1992년, 커트는 헤로인에 절어 변변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같은 해, 커트는 하필 소문난 라이엇 걸 커트니 러브(Coutney Love)와 결혼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더욱

피폐한 생활에 빠져들게 된다.

당시 커트니는 임신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헤로인을 상용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어쨌거나 커트는 너바나의 리더로서 무언가를 해야 했고, 결국 1993년 멤버들과 함께 앨범 [In Utero]를 비밀리에

녹음하게 된다.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미국과 영국에서 차트 정상으로 치솟았으며, ‘All Apologies’와 ‘Heart-Shaped Box’가

빌보드 모던록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너바나의 인기를 더욱 공고히 했다.

또한 이 앨범 발매 후 팻 스미어(Pat Smear)가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함으로써, 밴드는 한동안 4인조 체제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성공은 커트의 정신적 방황을 더욱 부채질했고, 그는 더더욱 약물에 의존할 따름이었다.

 1994년 2월 유럽투어를 겨우겨우 마친 커트는, 그로부터 얼마 안돼 로마의 한 호텔방에서 약물과용으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진 채 발견되었다.

3월말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회복센터로 이송되었지만 그곳에서도 탈출한 커트는, 결국 4월 8일 시애틀에 위치한 그의

 저택을 방문한 전기수리공에 의해 엽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 시신으로 발견되고 만다.

너바나의 종말이자, 얼터너티브의 종언을 확정 짓는 순간이었다.


그 해가 가기 전, 밴드의 MTV 공연실황을 담은 [MTV Unplugged In New York] 앨범이 공개되었고 이 앨범은

곧 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그로부터 3년 뒤 밴드의 라이브 실황 하일라이트를 편집한 앨범 [From The Muddy Banks Of The Wishkah]가

발매되었고, 이 앨범 역시 1위에 올랐다.

 

한편 커트 사후 커트니 러브는 자신의 밴드 홀(Hole)에 전념하였고, 데이브 그롤은 푸 파이터스(Foo Fighters)를

결성하였으며, 크리스트 노보셀릭은 스윗 75(Sweet 75), 아이즈 어드리프트(Eyes Adrift)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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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Kurt Cobain, vocals/guitar),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 bass), 데이브 그롤

(Dave Grohl, drums)의 3인조라는 최소 편성으로 이루어진 너바나는 대중화된 펑크 (punk), 포스트 펑크

(post-punk), 인디 록(indie-rock)등 이전까지 레코드 숍 한켠을 차지하 기는 했지만, 거의 상품가치를 얻지 못했던

 얼터너티브를 주류로 몰고 간 유일한 밴드다.

이들의 음악은 어릴 적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하고 혼돈된 시기를 보냈던 커트 코베인의 영 향으로 현실에 대한 분노,

좌절, 삶에 대한 자조 어린 평가들을 파격적인 펑크 록을 통해 분 출하고 있다.

8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전전하며 비틀즈와 헤비메틀 음악을 막막한 삶의 유일한 돌파구로 삼았던 커트 코베인은 미국 하드코어 펑크에 매료되고 언더그라운드 헤비펑크 밴 드인 멜빈스(Melvins)에서 연주 생활을 시작한다.

멜빈스의 리더였던 버즈 오스본(Buzz Osbourne)을 통해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 을 만나 스티프 우디즈

(Stiff Woodies)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코베인은 드럼, 노보셀릭은 베 이스, 기타와 보컬은 필요시 영입하는 방식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후에 보컬과 기타를 코베인이 담당하게 되면서 스키드 로우(Skid Row)로 이름을 바꾸고

아 론 버크하트(Aron Burkhart)를 드러머로 기용했고, 후에 채드 채닝(Chad Chaning)으로 교 체하면서 그룹 이름을 너바나(불교의 '열반'이란 의미)로 확정짓는다.

 

(1987) 잭 엔디노(Jack Endino)의 프로듀서로 10곡의 데모를 녹음한 너바나는 1988년에 첫 싱글 'Love Buzz'를

선보여 인지도를 높인 후, 1989년 데뷔앨범 [Bleach]를 발매하게 된다. 단돈 6백 달러를 들여 만든 이 앨범은 대학

라디오 방송을 타고 전파되어 3만5천 장의 판매 고를 올렸고,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음악성을 인정받으면서 메이저

레이블의 주목을 받기 시 작한다.

1990년 DC 기반의 하드코어 밴드인 스크림(Scream)에서 활동하던 드러머 데이브 그롤 (Dave Grohl)을 맞아들여

제대로 진영을 갖춘 너바나는, 메이저 레이블인 게펜사(Geffen)와 계약한 후 2집 녹음에 들어간다.

 

물 속에서 아기를낳는 TV 다큐멘타리에서 착안, 거기에 지폐가 걸린 낚시 바늘을 첨가시 킨 커트의 냉소가 엿보이는 앨범 자켓의 2집 [Nevermind](91)는 격렬한 4코드 진행이 돋 보이는 'Smells Like Teen Spirit'의 히트에 힘입어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하였고 트리플 플래티넘(triple platinum)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2집 발표 후 투어 공연을 가진 너바나는 공연장에서도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의 매 공연마다 악기를 던지고

장비를 부수는 등 거칠고 과격한 행동을 통해 그룹 이미지를 굳 혀갔고, 미발표 곡들을 모은 편집 앨범인 [Incesticide]로 인기를 지속시켜 나갔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에서 갑작스런 오버그라운드로의 선회와 폭발적인 인기, 앨범의 성공을 누리기에 이들은 너무나

순수했으며, 상업주의적인 매스컴의 유혹과 주위의 비판을 헤로인 복용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여린 젊은이들일

뿐이었다.

93년 9월, 예전 [Bleach] 발표 당시의 순수한 펑크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In Utero]는 발 매와 동시에 US, UK 차트를 석권했고, 평론가와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밴드의 명성이 드높아짐에 따라 리더인 커트 코베인의 정신적인 질환과 갈등도 커져 갔고,

약물과용으로 몇 번의 혼수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권 총자살을 시도하고, 1994년 4월 8일 그의 집에 경보장치를 설치하러 온 전기공에 의해 시체 로

발견되었다.

 

 그들의 이름처럼 해탈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펑크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커트 코베인의 의도도, 사후에 발매된

수많은 상술적인 트리뷰트성(tribute) 앨범과 라이브 앨범으로 무색하 게 되었다.

그러나 굳이 거짓 신봉자에 의한 우상화 작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커트 코베인 과 너바나의 음악이 X세대의

 대변인이자, 고통받는 염세주의의 상징임은 영원히 록 음악사 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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