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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Red Hot Chili Peppers -snow

 

 

 

 

 


Red Hot Chili Peppers -snow


 

snow


Come to decide that the things that I tried
Were in my life just to get high on
When I sit alone
Come get a little lone


But I need more than myself this time
Step from the road to the sea to the sky
And I do believe that we rely on

When I lay it on
Come get the play it on
All my life to sacrifice

Hey Oh
Listen what I say oh
I got your

Hey Oh
Now listen what I say oh


When will I know that I really can go
To the well one small town to decide on


When its killing me, when will I really see
All that I need to look inside
Come to believe that I better not leave


Before I get my chance to ride

When its killing me, what do I really need
All that I need to look inside

Hey Oh
Listen what I say oh
Come back and


Hey Oh
Look at what I say oh

The more I see the less I know
The more I'd like to let it go

Hey oh
Whoa oh whoa


People need the cover of another perfect wonder
Where its all white as snow
Marry me divided by a work so undecided
And theres no where to go


In between the cover of another perfect wonder
And its all white as snow
Running through the field where all my tracks will be concealed
And theres no where to go



When to descend to a man for a friend
All the channels that are broken now
Now you bring it up, Im gonna ring it up
Just to hear you sing it out


Step from the road to the sea to the sky
And I do believe what we rely on

When I lay it on
Come get the play it on
All my life to sacrifice

Hey Oh
Listen what I say oh
I got your Hey oh
Listen what I say oh


The more I see the less I know
The more I'd like to let it go

Hey oh
Whoa oh whoa


People need the cover of another perfect wonder
Where its all white as snow
Marry me divided by a work so undecided
And theres no where go


In between the cover of another perfect wonder
Where its all white as snow
Running through the field where all my tracks will be concealed
And theres no where to go


I said hey hey yeah
Aw yeah

Tell my love now
Hey hey yeah
Aw yeah

People need the cover of another perfect wonder
Where its all white as snow
Marry me divided by a work of undecided
And theres no where go


Deep beneath the cover of another perfect wonder
Where its all white as snow
Running through the field where all my tracks will be concealed
And theres no where to go


I said hey
Aw yeah
Aw yeah
Tell my love now
Hey hey yeah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는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록 밴드이다. 
보컬리스트 앤서니 키디스, 베이시스트 마이클 "플리" 발자리, 드러머 채드 스미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록과

 펑크 록, 그리고 헤비 메탈, 사이키델릭 록을 섞은 음악적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2011년 10월경 전세계 음악계 종사자들의 최고 명예로 손꼽히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 2012년 헌액 후보에 포함

 되었으며,2011년 12월에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등과 함께 헌액이

확정되었다.



1집 The Red Hot Chili Peppers (1984년)
2집 Freaky Styley and The Uplift Mofo Party Plan (1985년)
3집 Uplife Mofo Party Plan (1987년)
4집 Mother's Milk (1989년)
5집 Blood Sugar Sex Magik (1990년)

 

6집 one Hot Minute (1993년)
7집 Californication (1998년년)
8집 By the Way (2002년)
9집 Stadium Arcadium (2006년)
10집 I'm With You (2009년)


 

 


 

 

 

랩과 록의 펑키하고 신나는 결합, Red Hot Chili Peppers


 


 

제인스 어딕션에서의 활동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4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가입했다가 1998년 탈퇴한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가 1967년 6월 7일 출생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L.A.에서 '80년대 초반 결성된 밴드이다.

 

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 동창 지간인 보컬리스트 앤소니 키에디스(Anthony Kiedis)와 이미 밴드 활동 중이던

 베이시스트 플리(Michael 'Flea' Balzary)가 '83년 기타리스트인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 드러머인 잭 아이언스(Jack Irons)와 만나면서 이들은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EMI와의 계약 아래 발표한 데뷔 앨범 [Red Hot Chili Peppers]에 이어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프로듀스한 2집이 발매되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점점 이름을 알려간다.

'88년에는 [The Uplift Mofo Party]와 EP [Abbey Road]를 발표하는데 그 이후 헤로인 과용으로 힐렐 슬로박이

사망하고 만다.

 

또 이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슬로박의 오랜 친구였던 마티네즈 역시 밴드를 탈퇴한다.

그들의 자리는 드러머인 채드스미스(Chad Smith)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가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발표한 EMI에서의마지막 앨범 [Mother's Milk]는 첫 번째로 골드를 기록하기도 한다.

 

'91년에는 유명한 프로듀서인 릭 루빈(Rick Rubin)과 함께 [Blood Sugar Sex Magik]을 드디어 내놓는다.

 이 앨범은 그들의 어려웠던 시절을 노래한 싱글 'Under The Bridge'의 인기에 힘입어 200만장 이상의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90년대 최고 인기 밴드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93년에는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탈퇴해 솔로 활동에 전념한다. 걸맞는 기타리스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RHCP는 '94년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에서 활동하던 데이브 나바로를 데려와 그 해의 우드스탁

(Woodstock) 공연에 참가하고 '95년에는 몇 년만의 정규 앨범인 [One Hot Minute]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거의 1년 동안 차트에 등장하는 인기를 얻었지만  엄청난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다.

'96년의 투어를 끝내고 여러가지 과외 작업들을 해오던 데이브 나바로는 결국 '98년 밴드를 떠난다.

 

또다시 공백이 된 기타리스트 자리를 누가 메꾸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해체설이 나도는 가운데 놀랍게도 나바로의

후임으로 다시 존 프루시안테가 5년만에 돌아오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4년의 공백을 깨고 '99년 새 앨범

 [Californication]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애수 어린 'Scar Tissue'가 사랑을 받았다.

oimusic 2001년 06월 장은비

L.A메탈이 위세를 떨치던 1984년, 언더그라운드 하드코어 펑크 씬의 그들은 동명 타이틀 앨범 Red Hot Chilli

Peppers로 역사적인 데뷔를 하였다.

 

 FREAKY STYLE('85), THE UPLIFT MOFO PARTY PLAN('87), 그리고 MATHER'S MILK('89)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적 영역을 형성해 나간 Red Hot Chilli Peppers는 1991년 불후의 명작 Blood, Sugar, Sex, Magic으로 펑키

얼터너티브 록을 완성, 이윽고 '90년대 Nirvana, Perl Jam과 함께 음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아 얼터너티브 록 씬에서 부동의 지위를 굳혔다. 처음 그들이 화면을 채웠을 때의 느낌? 그것은 ‘Freaky man's club'의 광기였다.

 

gmv 2000년 10월 이애자.이동미

처음 그룹을 결성한 '83년. 플리(Flea)의 두드러질 만한 베이스 연주와 때로 우둔해 보이지만 매력적인 앤소니 키에디스(Anthony Kiedis)의 보컬, 그리고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장르의 혼합과 독특한 편곡은 데뷔 당시부터 서부 록 신의

 이야깃거리로 등장해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해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FREAKY STYLE에는 훌륭한 랩 송으로 여겨지는 American ghost dance를 수록하는 등 훨씬 진보된 모습을 갖추어, 지금까지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3집 THE UPLIFT MOFO PARTY PLAN 발표 후 기타리스트 하이렐의 예기치 않던

죽음은 불행으로 다가왔고, 결국 2년 후에 발표한 MOTHER'S MILK에서는 잭 아이언스(Jack Irons)를 대신한 현

드러머 채드 스미스 (Chad Smith)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를 새 멤버로 한 완벽한 라인업으로 (If you see me getting high)knock me down과 같은 명곡을 수록하여 세인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92년쯤이었다. Under the bridge의 성공과 더불어 BLOOD SUGAR

 SEX MAGIK은 확실히 블록버스터로 구분될 만한 일련의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전에 발표했던 네 장의 앨범이 모두 과대 평가된 작품이었다고 언급할 정도였으니 그 결과는

 짐작할 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가도에 모든 것이 순조롭지 만은 않았다. 롤라펄루자 페스티벌을 앞둔 바로 전날 존이 밴드를 떠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고, 이후 해마다 기타리스트가 교체되는 상황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새 음반 작업을 위해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라는 거물급(?) 기타리스트가 가담함으로써

화제를 뿌리며 일단락되었다.

 

4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발표한 만큼 앨범 onE HOT MINUTE는 그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데이브 나바로의 가세로

 다소 거칠고 두터운 사운드를 들려준 이 앨범은 Warped, My friends, Aero plane 등의 수록곡이 큰 호응을 얻으며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기록되었고, 이후 [Beavis And Butt Head Do America]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해 Love

rollercoaster를 히트시키는가 하면 계속된 공연으로 끊이지 않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gmv 1999년 06월 김미아

 

 



 

 

 

 

그동안 한국을 찾은 해외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미국, 영국 등 현지 음악계에서는 이미 수퍼 스타로서의 전성기를 지난 \흘러 간 밴드라는 점은 부인 할 수 없다.

 

이번 one Hot Day"의 헤드라이너는 미국은 물론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에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Backstreet Boys, Nsync 등 보이밴드의 유행이 저물어 가며 다시 록 음악으로 바톤 터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고 있는 팝 음악계를 다시 록 음악으로 평정할 거목으로 기대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제인스 어딕션 등의

 인기 밴드가 참가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페스티발 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수준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현재 올 여름 유럽의 10여개 페스티발의 헤드라이너로 결정되어 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6월 중순 워너 뮤직을 통해 새 앨범을 전세계에 발매할 예정이며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뭉친 제인스 어딕션 또한 곧 많은 팬들이 기다린 대망의 5집 정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광기와 재미로 똘똘 뭉친 펑키보이스(Funky Boys)
Red Hot Chili Peppers

 



한국 최고의 아티스트인 서태지 및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또는 우상으로 삼고 있다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70년대 후반 고등학교 동창 사이로 만난 밴드의 핵심인 보컬 안소니 카이디스(Anthony Kiedis)와 이미 밴드 활동

중이던 베이시스트 마이클 '플리' 발자리(Michael 'Flea' Balzary)는 1983년 기타리스트 하이렐 슬로벡

 

(Hillel Slovak), 드러머 잭 아이언스(Jack Irons)와 투합하여 RHCP를 결성하고 L.A.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새로운 기타리스트 잭 셔먼과 드러머 클리프 마티네즈와 함께 발표한 이들의 첫 데뷔 앨범인 [Red Hot Chili

 Peppers]는 그들을 펑키락의 메인 스트림에 참여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첫 번째 골드 앨범인 [Mother's Milk]의 성공에 힘입어, 이들은 드디어 1991년 미국내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그 유명한 [Blood Sugar Sex Magik]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그들을 세상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록계의 업그레이드된 위치에 올려놓은 앨범이다. 랩의 성공과 함께

여러 페스티발과 MTV등 방송매체에 등장하게 되며, 92년 싱글 [Give It Away]로 그래미상을 수상하며 이들은

90년대 초 가장 인기있는 밴드이자 펑크락의 신화적인 존재로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

1994년 Jane's Addiction에서 활동하던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를 영입, 94 우드스탁(Woodstock) 공연에 참가하고 몇 년만의 정규 앨범인 [One Hot Minute](1995)을 발표하는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거의 1년 동안이나 줄곧 차트에 등장했고, 96년에는 영화 [Beavis and Butthead]에 삽입된 'Love Rollercoaster'로 no. 1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한다.

자신의 솔로앨범을 위해 팀을 떠난 데이브의 후임으로 존 프루시안트가 5년 만에 재 합류하여 초창기 라인업으로 4년의 공백을 깨고 앨범 [Californication]을 1999년 6월에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라디오헤드의 신화적인 앨범 [Ok Computer]의 성공에 비할 만큼 RHCP를 세계적인 수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앨범으로 평가된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잘 다듬어진 깊이 있는 펑크 록 사운드로 일단은 지금까지 RHCP의 앨범들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7월,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앨범(BY THE WAY) 발표와 함께 찾아온 RHCP의 공연은 그들을 기다리던 많은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만큼 멋진 무대가 기대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 윤도현 밴드

80년대의 들국화, 90년대의 부활 그리고 지금은 윤도현 밴드가 한국 락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1997년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발표 이 후, 지금까지 매년 새로운 앨범을 선보이며 지금까지 총 7장의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강한 비트와 멜로디가 가미된 락발라드를 선보이며 한국 정서에 가장 잘 맞는 그룹이라는 칭송도

받고 있다.

95년 라이브 극장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 서온 윤도현 밴드는 고향의 따스함과

정겨움이 배어있는 데뷔앨범과 보다 락(Rock)적인 변신을 꾀한 두 번째 앨범으로 확실하게 한국 대표 록커로

거듭나기 시작했고, 정통록에서 블루스, 레게 등 각 멤버들의 탁월한 연주실력을 바탕으로 노련한 무대매너 등을

 선보이며 국내의 가장 독보적인 락밴드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모던 록의 독보적 존재,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

진보적인 4인조 밴드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은 1986년 보컬리스트 페리 페럴(Perry Farrell), 데이빗

나바로 (David Navaro, 기타), 에릭 애버리(Eric Avery, 베이스), 스테펀 퍼킨스(Stephen Perkins, 드럼)와 함께

결성되었다.

 

이들은 펑크, 락, 포크를 결합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도어즈 (The Doors), 벨벳 언더그라운드 (Velvet Underground), 페이쓰 노 모어 (Faith No More) 등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최면적이고 도발적인 사운드로 주목을 끌었다.

 

 초창기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매한 제인스 어딕션은 1988년 본격적인 메이저 진출 데뷔 앨범 [Nothing's

Shocking]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에는 피쉬본 (Fishbone)과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ed Hot Chili Peppers)의

멤버들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1990년에 발표된 2집 앨범 [Ritual De Lo Habitual]은 깊이와 복잡함에서 한층 진일보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숨어있는 멜로디와 미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어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창조적인 아티스트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1992년 이 후, 각 멤버가 포르노 포 파이러스 (Porno for Pyros)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1997년 기존의 미 발표곡들과 라이브 곡들로 채워진 새 앨범 [Kettle Whistle]을 내놓았으며, 이번 투어를 통해 그 동안의 역량을 과시하며 곧 발매될 새 앨범에 실릴 곡들도 선보일 계획이다.

크라잉 넛

95년 십대의 거센 돌풍으로, 다소 생소했던 인디음악으로 데뷔한 이들은, 수 많은 라이브 공연을 통해 그들의 음악을

전파하고 있다.

작은 클럽에서 몇 안되는 사람들 앞에서 처음 연주를 시작했으나, 이 후 96년 5월 "스트리트 펑크쇼"에 출연해서

 광적인 무대매너를 보인 크라잉 넛은 펑크락을 개척하는 발을 내딛었다.

크라잉 넛은 이상민(기타, 보컬), 이상혁(드럼, 퍼쿠션), 박윤식(기타, 보컬) 그리고 한경록(베이스,보컬, 댄스)으로

구성된 4인조 그룹으로 99, 2000년 일본 최고의 페스티발인 후지락 페스티발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어 국내 락음악의

 실력을 일본에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영화 '이소룡을 찾아라'에 출연 및 음악도 맡아 활동 폭을 넓혀 가고 있다.

크라잉 넛이 국내 음악계에 남긴 것이 있다면 이들의 기발한 음악과 광적인 무대 매너로 클럽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인디 밴드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표본이라는 점이다.

보다 성숙한 밴드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크라잉 넛은 펑크락의 선배격인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함께 하는 무대에서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스카펑크의 선두주자, 레이지본

"Lazy Diary"란 앨범을 들고 혜성처럼 나타난 레이지본. 데뷔 전부터 언더에서 클럽 활동을 해 온 레이지본은 데뷔와

 동시에 인형 같은 아이돌스타에 지친 언론과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노진우. 임준규(기타). 이준원(보컬.랩). 안경순(베이스). 김석년(드럼)과 일본 청년 진 토시오(트럼펫)로 구성된

레이지본이 구사하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스카펑크록이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는 스카펑크란 장르를 이만큼 대중의 관심도 속에 끌어 놓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미 한국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칠리와 후추가 만나면 어떨까?
정말 견딜 수 없는 짜릿한(?) 맛이 될 것 같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음악계에서 맵고 톡 쏘는 밴드'가 되기 위해서

 칠리와 후추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들의 조합을 늘어놓았다.

 

베이시스트 마이클 플리 발자리(Michael Flea Balzary)와 기타리스트 하이렐 슬로벡(Hilel Slovak), 드러머

 아이언Jack Irons)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 이들은 스쿨 밴드 'Anthym'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몇 곡의 카피 곡들을 연주하는 정도로 소극적인 활동을 하던 'Anthym' 멤버들은 보컬 앤써니 카이디스(Anthony Keidis)와 의기투합하여 제대로 된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플리가 팀을 떠나게 되고 이들은 'Whit Is This?'라 팀명을 바꾸고 활동을 한다.
'와, 이게 바로 RHCP의 전신이구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이 EMI와 계약을 하기까지의 눈물겨운 스토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플리가 다시 돌아오고 이들은 'Rhythm Lounge Club'이란 유명한 클럽에서 공연을 따내게 된다. 그때 급조해서 만든 곡이 'Out in L.A'라는 곡으로 이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당시의 팀명은 'Tony Flow & The Miraculously

 

Majestic Master Of Mayhem'
이었다.
 
이름이야 어떻든지 간에 이들은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게 되고, EMI와 계약을 체결해 1984년 당당히 데뷔 앨범 <The Red Hot Chili Peppers>를 내게 되었다.
이 데뷔 앨범은 마약중독과 계약문제 등으로 멤버들이 탈퇴한 후 새로 영입한 멤버 기타리스트 잭 셔먼(Jack Shermen)과 드러머 클리프 마티네즈(Cliff Martinez)와 함께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아무리 많은 공연을 가져도 마이너리그는 배고프기 마련이다.

 

이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마약으로 달래게 된다. 그렇게 RHCP의 문제의 싹은 점점 커지게 된다.
 
85년 펑크계의 대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손을 거쳐 이들의 2집 <Freaky Style>이 선을 보였다. 1집에서의 미숙한 점들이 100% 보완된 2집은 오히려 데뷔 앨범에 비해 더욱 열정적이고 펑크가 고루 묻어있는 앨범이 되었다. 그리하여, 활발한 공연 활동을 통해 이들의 이름을 알리기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드러머 마티네즈가 탈퇴를 선언한다.
 
초창기 멤버였던 잭 아이언스가 다시 영입되어 3집 <Uplift Mofo Party Plan>을 작업하게 된다. 그들은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와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 등의 대형 밴드의 오프닝 공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러나 원색적이고 외설적이라는 꼬리표는 내내 이들을 따라다닌다.

마약과 기괴한 행동들, 연예인들과의 스캔들 등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결국 <Uplift Mofo Party Plan>은 빌보드 차트

 143위에 오르게 된다.(빌보드 차트에 오른다는 자체가 당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래미 어워즈에서 상을 휩쓰는 락밴드가 되었지만..)

이러한 기류를 타 이들은 4집앨범을 기획하는데, 4집을 내기에 앞서 비틀즈(Beatles)의 <Abbey Road>를 모방한 <The Abbey Road> EP 앨범을 발표한다. 건널목을 지나는 비틀즈 멤버들의 모습을 벌거벗은 네 남자가 걸어가는 사진으로 바꿔 이들의 익살스러움을 보여준다.
 
사고뭉치였던 이들에게 신은 함께 하지 않았다. 헤로인 과용으로 슬로벡이 사망하고, 그의 오랜친구였던 마티네즈도 그 충격으로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후에 마티네즈는 펄 잼(Pearl Jam)의 드러머로 활동한다.

 

그 후 현재의 드러머인
채드 스미스(Chad Smith)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트(John Frusciante)가 합류하여 한동한 안정된 라인업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 오랜 좌절과 시련 끝에 1989년 첫번째 골드 앨범 <Mother's Milk>를 발표하고 드디어 메인스트림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앨범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Higher ground'를 리메이크 했고, 슬로벡이 죽기 전 작업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Fire'의 리메이크 곡 역시 수록되어 있다. 죽은 슬로벡에 대한 추모곡 'Knock me on', 베이시스트 플리가 트럼펫 연주를 한 'Subway to Venus'와 'Taste the pain', 'Pretty little ditty'가 수록되어 있다.
 
<Mother's Milk>는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해 이들은 EMI에서 Warner Bros로 이적한다. 이곳에서 RHCP는 그들의 인생을 바꿀 인물을 만나게 된다.

 

프로듀서계의 마이더스의 손, '
릭 루빈(Rick Rubin)'과의 만남은 이들 최고의 명반 <Blood Sugar Sex Magik>를 탄생시켰고, 이 앨범으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빌보드 차트 1위에 등극하게 된다.
 
락 스피릿으로 가득한 <Blood Sugar Sex Magik>은 70년대 사이키델릭과 하드락에 기반을 두고 쾌락과 탈선의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다. 데뷔 7년만에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이들의 얼굴은 롤링 스톤즈와 스핀 등 각종 음악잡지의 커버를 장식하고, 공연티켓은 전회 매진된다.

그러나 오랜 투어 생활을 견디지 못한 존이 팀을 떠나고 94년 제인스 어딕션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데이빗 나바로(David Navaro)를 영입하고, 94년 우드스탁에 참여한 후 오랫만에 <One Hot Minute>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1996년 투어를 마친 후 솔로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빗이 떠나고 5년만에 존 프루시안트가 재합류하여 99년 발표한 <Californication>은 RHCP 최고의 앨범으로 남고 있다.

 

 

 

 

 

 

 

 

'Red Hot Chili Peppers' 라는 팀의 천재 기타리스트

 'John Fruciante'

 

 

 

 

 

 

 

 

 

 

제인스 어딕션 활동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4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가입했다가 1998년 탈퇴한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가 1967년 6월 7일 출생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LA에서 '80년대 초반 결성된 밴드이다.

 

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 동창 지간인 보컬리스트 앤소니 키에디스(Anthony Kiedis)와 이미 밴드 활동 중이던

베이시스트 플리(Michael 'Flea' Balzary)가 '83년 기타리스트인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 드러머인 잭 아이언스

(Jack Irons)와 만나면서 이들은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EMI와의 계약 아래 발표한 데뷔 앨범 [Red Hot Chili Peppers]에 이어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프로듀스한 2집이 발매되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점점 이름을 알려간다. '88년에는

[The Uplift Mofo Party]와 EP [Abbey Road]를 발표하는데 그 이후 헤로인 과용으로 힐렐 슬로박이 사망하고 만다.

 

또 이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슬로박의 오랜 친구였던 마티네즈 역시 밴드를 탈퇴한다. 그들의 자리는 드러머인 채드

 스미스(Chad Smith)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가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발표한 EMI에서의

마지막 앨범 [Mother's Milk]는 첫 번째로 골드를 기록하기도 한다.

 

 '91년에는 유명한 프로듀서인 릭 루빈(Rick Rubin)과 함께 [Blood Sugar Sex & Magik]을 드디어 내놓는다.

이 앨범은 그들의 어려웠던 시절을 노래한 싱글 'Under The Bridge'의 인기에 힘입어 200만장 이상의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90년대 최고 인기 밴드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93년에는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가 탈퇴해 솔로 활동에 전념한다. 걸맞는 기타리스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RHCP는 '94년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에서 활동하던 데이브 나바로를 데려와 그 해의 우드스탁

(Woodstock) 공연에 참가하고 '95년에는 몇 년만의 정규 앨범인 [One Hot Minute]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거의 1년 동안 차트에 등장하는 등 인기를 얻었지만 전작의 엄청난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다.

'96년의 투어를 끝내고 여러가지 과외 작업들을 해오던 데이브 나바로는 결국 '98년 밴드를 떠난다.

 

또다시 공백이 된 기타리스트 자리를 누가 메꾸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해체설이 나도는 가운데 놀랍게도 나바로의

후임으로 다시 존 프루시안테가 5년만에 돌아오면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4년의 공백을 깨고 '99년 새 앨범

[Californication]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애수 어린 'Scar Tissue'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02년 [By The Way]를 내놓으며 한결 부드럽고 원숙해진 모습을 뽑냈다.


RHCP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앤소니 키디스(Anthony Kiedis), 플리(Michael “Flea” Balzary), 힐렐 슬로박

(Hillel Slovak), 잭 아이언스(Jack Irons)의 라인업으로 1983년 LA에서 결성되었다. 훗날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광적인 무대 매너를 뽐내며 입 소문을 타기 시작한 그들은 1984년 데뷔작 [Red Hot Chili Peppers]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에 매진했다.

 

그룹은 당시 LA 언더그라운드 신을 장악하고 있었던 펑크(punk)와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팔러먼트(Parliament) 등의 우산 아래 있는 펑크(funk)의 크로스오버를 일궈낸 점 덕에 특히 호평 받으며

 서서히 세를 넓혀나갔다.

1985년 RHCP는 2집 [Freaky Styley]를 펑크(funk)의 대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진두지휘 아래 펑크의 고향 디트로이트에서 녹음,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자연스레 결과물은 대만족. 앨범은 비록 상업적으로 히트하진 못했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지도를 넓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주었다.

그러나 막 성공 가도의 입구에 들어섰던 그 무렵에 위기가 찾아왔다. 1987년 3집 음반 [The Uplift Mofo Party Plan]을 선보인 후, 힐렐 슬로박이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데 이어 잭 아이언스가 밴드를 등지고 만 것.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와 채드 스미스(Chad Smith)를 새로이 보강한 RHCP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최강의 라인업을 구축하며 음악적 절정기를 구가했다.

 

[Mother's Milk](1989년)와 [Blood Sugar Sex Magik](1991년) 두 작품이 이 시기를 대변해주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만의 사운드트랙이다. 특히 후자는 같은 해에 등장한 너바나의 [Nevermind], 펄 잼의 [Ten]과 함께 막

 태동한 얼터너티브가 이뤄낸 최상의 예술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밴드는 이후 25년만에 다시 개최된 1994년 우드스탁(Woodstock)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예의 화끈한 공연을

 선보이는 등, 여러모로 탄탄대로를 질주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富)에 따른 부작용은 RHCP 역시 여지없이 급습했다. 과도한 약물 중독 증세를 보인 존 프루시안테가 결국 밴드를 떠나게 되었던 것.

 

애릭 마샬(Arik Marshall), 제시 토비아스(Jesse Tobias)등이 잠시 거쳐간 후,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를

 후임으로 최종 낙점한 그들은 1995년 [One Hot Minute]를 통해 재기의 의지를 불살랐다.

하지만 성적표는 그리 신통치 못했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임을 비로소 인식한 데이브 나바로와 RHCP는

서로에게 작별을 고했다.

RHCP는 이후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을 영입한 것을 비롯해, 전성기 때의 멤버십으로 회귀한 뒤 발매한

 [Californication]으로 1999년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작품은 단숨에 빌보드 정상을 꿰차고 'Scar Tissue', 'Otherside' 등의 차트 1위 싱글들을 배출하는 등, 어느새 노장이 되어버린 밴드에게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주었다.

 

계속해서 그룹은 2001년의 [By The Way]를 통해 자신들이 음악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들었음을선포하였다.

아울러 이후 2년이 지난 2003년 말에는 베스트 음반 [Greatest Hits]를 발표, 펑크 메탈 제왕의 풍채가 지금도

여전함을 과시하고 있다.


처음 그룹을 결성한 '83년. 플리(Flea)의 두드러질 만한 베이스 연주와 때로 우둔해 보이지만 매력적인 앤소니 키에디스(Anthony Kiedis)의 보컬, 그리고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장르의 혼합과 독특한 편곡은 데뷔 당시부터 서부 록 신의

 이야깃거리로 등장해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해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FREAKY STYLE에는 훌륭한 랩 송으로 여겨지는 American ghost dance를 수록하는 등 훨씬 진보된 모습을 갖추어, 지금까지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3집 THE UPLIFT MOFO PARTY PLAN 발표 후 기타리스트 하이렐의 예기치 않던 죽음은 불행으로 다가왔고, 결국 2년 후에 발표한 MOTHER'S MILK에서는 잭 아이언스(Jack Irons)를 대신한 현

드러머 채드 스미스 (Chad Smith)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를 새 멤버로 한 완벽한 라인업으로 (If you see me getting high)knock me down과 같은 명곡을 수록하여 세인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92년쯤이었다. Under the bridge의 성공과 더불어 BLOOD SUGAR

 SEX MAGIK은 확실히 블록버스터로 구분될 만한 일련의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전에 발표했던 네 장의 앨범이 모두 과대 평가된 작품이었다고 언급할 정도였으니 그 결과는

 짐작할 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가도에 모든 것이 순조롭지 만은 않았다. 롤라펄루자 페스티벌을 앞둔 바로 전날 존이 밴드를 떠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고, 이후 해마다 기타리스트가 교체되는 상황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새 음반 작업을 위해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ro)라는 거물급(?) 기타리스트가 가담함으로써

화제를 뿌리며 일단락되었다.

 

 4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발표한 만큼 앨범 onE HOT MINUTE는 그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데이브 나바로의 가세로

다소 거칠고 두터운 사운드를 들려준 이 앨범은 Warped, My friends, Aero plane 등의 수록곡이 큰 호응을 얻으며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기록되었고, 이후 [Beavis And Butt Head Do America]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해 Love

rollercoaster를 히트시키는가 하면 계속된 공연으로 끊이지 않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레릭된 스트라토 케스터 와 예수님을 연상 시키는 외모 그리고 그가

걸어온 인생을 반증하는 입을 벌린 일그러진 표정의 솔로 모습등 이다.

 

 

 1970년 3월에 태어난 이 뮤지션은 뉴욕에서 피아니스트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영향 탓인지 어려서 부터 기타를 배운 존 이었으며 어린 시절 부터 신동 소리를 들은 천재파 였다.

 

 유년 이미 Red Hot Chili Peppers 는 어느정도 인기를 부가 하고 있었는데 이 팀의 팬이었던 그는 1988년 이 팀에

 합류하게 된다.

 어려서 부터 락스타를 꿈꾸던 존은 마약에 자주 손을 댔는데 프랭크 자파가 만든 'Frank Zappa's Band' 의 오디션도 보러 갔으나 마약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합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의 사진을 보면... 노란머리, 장기에프 머리 등등;; 굉장히 반항적이고 제멋대로 일 것 같은 이미지 .

위에 링크한 예수님 느낌의 사진과는 정 반대

 

 예전 이팀 영상을 보면 우드스탁 공연중 완전 전신을 탈의하고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연주한 영상도 있으며

성기에 양말 하나 끼고 연주 및 공연을 한 영상도 있다

한가지 재밌는건 다른 블로그를 통해서 본 글인데 존이 Funk 라는 장르를 하게 된건 이팀에 합류하고 나서 부터 였다고 .

그의 천재성이 눈여겨 봐 지는 대목 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저런 글들을 보면 그 역시 음악 공부나 연습을 많이 안한 유형의 기타리스트 였다고 한다.

헌대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쿨럭.. (아마도 그 스스로 연습이나 노하우에 대한 언급을 많이 안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그는 그 스스로 밴드가 유명해 지면.. 그 팀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약간 언더 틱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으며 그 이후 그가 참여한 'Blood Sugur Sex Magik' 앨범이 대박이 났고 밴드가 유명해 질수록 존은 더 괴로워

했다고한다.

 

 그러다 1992 년 돌연 갑자기 팀을 나가버리고 만다.

서로 합의된 탈퇴가 아닌 돌연 탈퇴 였기 때문에 맴버들도 맨붕이 왔겠지만

 

 맴버들도 맴버들 이었겠지만.. 평소 마약을 하던 존은 팀을 탈퇴한후 점점 더 심하게 마약중독이 되었고.

마약을 사기위해 기타를 모두 팔고... 자신의 팔을 불로 지지는 자학 행위까지 하게 된다.

 

 다른 포스팅 글을 참조 하니  얼마나 마약 중독이 심했는지...

치료를 위해서 이를 모조리 다 빼고 코가 심하게 변형대고 녹아내려 현재는 성형수술과 임플란트를 통해 재기된(?)

얼굴이라고 합니다..(죽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 였다고 하니

 양팔의 흉터는 현재까지도 남아있는데 흉터 때문인지 공연때 보면 초기 레드핫의 공연들은 팔토시를 하고 한 공연들이 많다고 한다.

 

 그가 탈퇴하고 그 자리에 들어온 'Dave Navarro' 가 연주한 곡 중에는 Coffee Shop 이라는 곡이 제일 유명 하다.

헌대 이 곡은 사실 플리의 베이스 때문에 더 유명한 곡이다

이렇듯 삶의 가장 밑바닥 언저리 까지 내려 갔던 그는.. 불현듯 예수님 컨셉을 가지고 다시 부활 하였으며,

롤링스톤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 13위에 랭크 되는 등 아직 까지도 계속 음악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Red hot Chili peppers 에서는 2009 년 탈퇴 하여 현재는 솔로 앨범을 내고 솔로로 활동 중인데 노래도

뭔가 점점 더 과거의 에너지 넘치고 화려했던 느낌 보다는 더 농익고 어쿠스틱 한 곡을 만들고 있다.

 이제 Red Hot Cili Peppers 에서는 그를 대신 하여 'Josh Klinghoffer' 조쉬 클링호프 라는 기타리스트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