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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Alicia Keys- Girl On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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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rl on Fire




    She’s just a girl,
    and she’s on fire
    Hotter than a fantasy,


    lonely like a highway
    She’s living in a world,
    and it’s on fire
    Feeling the catastrophe,


    but she knows she can fly away
    Oh, she got both feet on the ground


    And she’s burning it down
    Oh, she got her head in the clouds
    And she’s not backing down
    This girl is on fire
    This girl is on fire


    She’s walking on fire
    This girl is on fire
    Looks like a girl,


    but she’s a flame
    So bright, she can burn your eyes
    Better look the other way


    You can try but you’ll never
    forget her name
    She’s on top of the world
    Hottest of the hottest girls say


    Oh, we got our feet on the ground
    And we’re burning it down
    Oh, got our head in the clouds


    And we’re not coming down
    This girl is on fire
    This girl is on fire


    She’s walking on fire
    This girl is on fire
    Everybody stands, as she goes by
    Cause they can see the flame


    that’s in her eyes
    Watch her when she’s lighting
    up the night
    Nobody knows that she’s a
    lonely girl


    And it’s a lonely world
    But she gon’ let it burn, baby,
    burn, baby


    This girl is on fire
    This girl is on fire


    She’s walking on fire
    This girl is on fire
    she’s just a girl,
    and she’s on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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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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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R&B의 여왕
    2000년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 명
    [5]이자 200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흑인 여성 가수

    미국의 R&B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최고의 권위있는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를 통산 15개나 수상하며 대중들과 평론가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대중음악 평론지인 롤링스톤지애서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뮤지션 100인으로도 선정했다.[6]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는 '열쇠'란 애칭을 갖고 있다.


     또한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 '흑인치곤 예쁜 여자'로도 유명하다(...).

    이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니 조심하자.

    주요 장르는 피아노를 기반으로 한[9] 알엔비 소울이며 힙합,재즈, 팝과 록 등을 크로스오버한 음악을 만들어왔다.


    미국 메인스트림 여가수중에서는 드물게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이다. 

     동세대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등과 함께 가창력으로 유명한 디바이며,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몇 안되는 알엔비 소울 가수이기도 하다.


     십 여년에 걸쳐서 그녀의 백업보컬로 활동했던 저메인 폴은 미국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더 보이스'에서 알켈리의

    I Believe I Can Fly를 열창해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앨리샤도 '더 보이스' 시즌 11의 코치로 합류했다


    엄마는 아일랜드계 백인, 아빠는 흑인이다.

    앨리샤는 두 살때 아빠와 헤어지고 싱글맘이 된 엄마에게 슬하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엄마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앨리샤에게 피아노 레슨은 꼬박꼬박 시켜줬다고 한다.


    무법천지인 뉴욕 슬럼가의 헬스키친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총을 휴대했다고 한다. IQ가 154나 되고 공부도 매우 잘한 그녀는(대표적인 엄친딸....)

     미국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교에 이미 16살 때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교육이 음악가로서 창조성을 해친다고 판단해 중퇴했다고 한다.


    그러다 앨리샤 키스는 1996년에 콜럼비아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맨인블랙 OST에 참여하며 메이저에 데뷔하였다.

    그러나 선배디바들과 같이 보컬을 강조한 디바로 키우려 했던 레이블과 달리 그녀는 스스로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레이블 담당자가 그녀가 만든 Fallin'을 빼앗아 다른 신인 가수에게 주려하자 앨리샤 키스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클라이브 데이비스 가 설립한 J레코드의 첫번째 아티스트로 계약했다.


    이어서 2001년에 첫 앨범 Songs in A Minor를 발표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본래 앨범의 제목은 'Soul in A Minor'이었지만, 메인스트림 라디오에서 그녀의 음악을 틀어주지 않을 것을 의식해 현재와 같은 타이틀로 변경됐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 동료가수였던 인디아 아리등과 함께 오프라윈프리쇼에 출연했는데, 여기에서 부른 Fallin'이

    미국 시청자들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신인 가수임에도 스스로 작사,작곡, 프로듀싱까지 해내는 그녀의 천재성은 언론과 대중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다.


     오프라쇼에 출연한 이후 1집 앨범의 선주문이 3배 이상 증가했으며, 발매와 동시에 235,000장의 판매고로 1위로 데뷔했다.

    그리고 입소문은 더욱 퍼지며 둘 째주에는 4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로도 그녀의 성공은 탄탄대로였다.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올해의 노래와 신인을 비롯해서 5개 부문을 거머쥐며 전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Songs in a Minor은 네오 소울을 기반으로 힙합과 재즈, 가스펠 등을 결합한 앨범으로 애정 관계의 복잡함을 가사로 담았다. 앨범 대부분의 곡을 스스로 썼으며 프로듀싱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740만장  전세계적으로 약 13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데뷔곡 Fallin'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흑인 소울의 감성과 고전적인 클래식, 그리고 재즈를 두루 선보인 수작. 데뷔 앨범에서 선보인 레게 머리와 카우보이 모자, 그리고 특유의 보이쉬한 스타일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000년대 초 국내에서도 흑인음악이 크게 각광을 받을 떄 유수한 알엔비 가수들이 앨리샤 키스의 음악과 패션에 영감을 받았다. 



    키스는 1집의 대성공으로 2집 앨범을 작업할 때 큰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가볍게 날려 버리며 2집 앨범도 대히트를 한다. 

     그녀가 일기를 쓰듯 매우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으며 기존의 알엔비 소울의 기반을 유지하되, 60~70년대의 복고적인 감성을 더한 앨범이다. 


     2003년 12월에 발매된 2집 앨범인 The Diary of Alicia Keys은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며 첫주에 미국에서 618,000장을 팔아치웠다. 미국에서 약 480만장, 전 세계에서 9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앨범 뿐만 아니라 싱글도 성공적이었는데, You Don't Know My Name(3위) , If I Ain't Got You(4위) , Diary(8위), Karma(20위)가 모두 빌보드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If I Ain't Got You는 그녀를 대표하는 히트곡이자 2000년대를 상징하는 알엔비 발라드가 됐다.

    수 많은 유명가수들이 이 곡을 커버했으며, 미국 현지에서도 데뷔곡 Fallin'과 함께 오디션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한다. 국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팝송중에 하나일 것이다.


    평단의 평가도 전작보다 더 찬양일색이었으며,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이번에도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빌보드 뮤직어워즈 7개부문을 석권했다.

    키스의 대중적 인기가 정점에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최고의 남자가수였던 어셔와 염문을 뿌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함께 노래를 부른 My Boo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듬 해에 키스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내한콘서트를 열었다.

    당시에는 최전성기의 팝스타가 내한해 콘서트를 여는 경우가 드물었다 보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거미(가수)[24]가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2005년 자신의 첫 라이브 앨범인 Unplugged 를 발표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채널인 mtv는 유명 가수와 함께 라이브 앨범을 줄곧 발매해왔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음악시장의 판매고가 저조해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다가 10년만에 앨리샤 키스와 손을 잡았다. 


     하늘을 찌르던 그녀의 인기에 힘입어 정규앨범이 아님에도 빌보드 차트 1위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에서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전세계에선 200만장이 판매되었다.

    기존의 히트곡들과 몇 곡의 신곡을 더한 앨범으로 그래미어워즈에서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당시 If I ain't got you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많이 오른 상황이다 보니, 케이블 채널인 M.net과 mtv등에서 라이브 앨범의 DVD 영상물을 자주 틀어주곤 했다.

    Unplugged 이후 2년의 공백[27]을 가진 그녀는 2007년 말 3집 앨범을 발표한다.


    As I Am은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통일성 있고 대중적인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그녀의 음악을 팝적인 성향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U2등의 영감을 받아 록을 접목시키기도 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초 대박을 기록했다.


     특히 히트 싱글인 No one은 빌보드 5주 1위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No one은 알리샤의 노래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히트곡이며 2000년대 결산 6위, 2013년 빌보드55주년 기념 최고의 100곡에서 역사상 48번째로 성공한 노래 로 선정되기도 하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As I Am은 발매 첫주에 75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31] 전작의 초동을 뛰어넘었다.

     미국에서 총 390만장이 팔리며 빌보드 연말결산 1위를 차지했고 전세계적으로 65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에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이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오프닝공연을 비롯, 3곡을 열창해 언론으로 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에이미와인하우스, 리오나 루이스 등을 제치고 007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본 앨범으로 그래미어워즈도 3개를 추가했다. 

     키스는 이듬 해, 한국에서 두번째 콘서트를 열었다.

    태양(빅뱅)이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전작에서 2년의 공백을 가진 앨리샤는 2009년 12월 마지막 주 4집 The Element of Freedom을 발표한다. 기존의 3집과 비슷한 음악을 이어갔지만 이번에는 얼터네이티브 록음악을 접목했다.
     '모든 장벽과 한계를 제거한 자유로움'을 컨셉으로 한 앨범으로 특별한 보정없이 그녀의 보컬을 있는 그대로 녹음했다. [34] 그녀의 인기가 정점에서 다소 내려온 시기이다. 

     첫 싱글인 Doesn't Mean Anything이 충공깽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알리샤 키스 싱글들 중 가장 망하는 바람에 싱글들이 전체적으로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앨범은 잘 팔렸다. 불황임에도 미국에서 첫주에 42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총 160만장, 영국에선 110만장이 팔렸고 전세게적으로 4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앨리샤의 연속 1위 기록은 이 앨범에서 깨졌다. 영국에서는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엑스펙터에 출연해 히트곡 메들리를 열창했는데 대중으로 부터 굉장히 큰 주목을 이끌었다.
    이에 힘입어 1집 이후 처음으로 영국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초대박을 터뜨렸다.

     이 시기에 제이지에 피쳐링을 해준 'Empire State Of Mind'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으며 그녀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2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2년 5번째 정규앨범 Girl on Fire를 발표하였다.
    일렉트로 소울과 힙합에서 락, 레게 등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앨범의 프로듀싱은 미니멀을 추구했다.
    키스는 애정관계, 그리고 신에 대해 가사를 썼다.

    몇몇 곡은 그녀의 결혼,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과 같은 개인적인 내용을 담았다.
    첫 싱글인 동명 타이틀의 Girl on Fire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앨범도 첫 주에 16만장의 판매고로
     1위로 데뷔하였다.

     현재까지 미국에선 80만장, 전세계에서 1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오랜 싱어송라이터 활동으로 전작에서 매너리즘을 느끼기 시작한 그녀는 본작에선 자신의 영향력을 줄이고 영국의
     흑인 뮤지션인 에밀리산데와 싱어송라이터 브루노마스등 외부의 뮤지션들과 공동작업을 늘리기 시작했다.

    타이틀곡을 비롯한 상업적인 곡도 실렸지만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소 실험적이고 마이너하다는 팬들의 의견이
    많았다.
    이에 따라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저조한 차트 성적을 냈지만 망해가는 음악시장에서는 여전히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미어워즈에서 '알엔비 앨범'부문을 수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다.

    키스는 앨범 홍보를 위해 그래미어워즈, VMA, NBA 올스타전, 아메리칸아이돌, 엑스펙터 등에 출연했으며 수퍼볼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한국에선 앨범수록곡 Tears always win이 음원차트를 중심으로 소소하게 인기가 있었다.
    가온차트의 팝부문에서 2주연속 1위를 지켰다. 카페나 레스토랑 등에서 자주 틀어준 편이니 익숙할 수도 있다.

    2015년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 단체인 Keep A Child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고, 전세계의 고통받는 어린이들,
    여성들, 동성애자 등의 인권을 대변하기 위해 We Are Here를 발표했다. 
    2016년에 11월 8일 자정, 6집 앨범 Here을 발표했다.

      리드싱글로 In Common을 공개했다. 하향세 와중에 4년이란 긴 공백 탓에 주목도는 많이 떨어진 듯하다.
     퀄리티가 상당했으나 망했다. 
     아무튼, 기존의 잔잔한 발라드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자음을 더한 트로피칼 사운드가 매우 신선하다는 호평이 많았다. 

    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해 더이상 메이크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팬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인기가 없었고 앨범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인지 In Common은 디럭스버전의 보너스트랙으로만 포함됐다.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킬링트랙을 앨범에서 제외한 것은 다소 의아하다는 팬들의 의견이 많았다.
    통일성에 맞지 않아서 제외된 듯 하다.
    메이크업을 지워버린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컨셉을 추구하며 프로모션이 평소보다는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그래도 대표적인 알엔비가수답게 그래미어워즈, 더보이스, 엘렌쇼, 챔피언스 리그 및 BET 어워즈 등 굵직굵직한 쇼에는 대부분 초대됐다.
    앨범을 위해 10일만에 30곡을 썼다는 그녀는, 본작에 가난한 흑인 커뮤니티의 현실비판, 자전적인 재혼가정 등 다양한 사회적 메세지를 가사에 담았다.

    화려하게 치장한 상업성보단 음악 자체에 집중해서인지 평론가 평점은 전체적으로 우수한 편이다.
    발매 첫주에 4만 2천장(스트리밍 포함 5만장)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2위로 데뷔했다.


    비욘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지존급 가창력으로 평가받는다.
    흑인답게 그루브가 뛰어나며 음색도 매우 좋다.
    다만 무리한 목 사용으로 라이브에서 삑사리가 참 자주 난다.

    이는 알리샤 키스 음악의 주된 테마인 '소울' 창법 때문이기도 한데, 소울 벨팅 창법 자체가 쌩목으로 긁어대는 창법인 데다가 데뷔초부터 난이도 높은 노래를 오직 라이브로만 공연해왔기 때문. 그리고 알리샤 키스의 트레이드마크인
     피아노 역시 문제가 된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데, 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자세는 목, 어깨, 가슴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노래하는데 그리 좋은 자세는 아니기 때문.
    한두곡 정도야 상관없지만 데뷔 이후로 계속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공연을 고수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

    비교적 데뷔 초기였던 첫 내한공연에서는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국내 언론과 팬들로 부터 찬사가 쏟아졌지만 3집
    앨범의 투어였던 두번째 공연은 큰 화제는 되지 못했다.
    아예 백업코러스에게 목소리가 묻힐 정도로 목이 많이 상한 것 같다는 팬들의 의견도 많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라이브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신 1~2집 때와는 달리 곡의 음역대 자체가 낮아졌다.

     1~2집 때는 E5(3옥타브 미)정도 되는 음이 많았고 F5(3옥타브 파) 까지도 종종 냈는데, 이제는 D5(3옥타브 레) 이상 되는 음은 거의 쓰질 않는 듯. 1~2집 시절 히트곡을 공연할 때는 백업 코러스가 노래를 많이 불러준다.

    4년의 공백끝에 컴백한 뒤로 워낙 오래 쉰 탓인지(...) 어느정도 보컬을 회복한 편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공연을 라이브로만 소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디바가수들은 생각보다 립싱크 공연이 많다.
    앨리샤 키스는 선배 가수인 휘트니 휴스턴등과 함께 라이브만 고집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이점때문에 성대가 많이 상한 편이긴 하다. 
     스스로 곡을 만드는 작곡자이다보니 신곡들의 경우는 그녀의 현재 목상태를 감안해 노래를 만드는 듯 하다

    스스로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그 유명한 If I Ain't Got You와 Fallin'을 '혼자' 만들었다! 
     네오 소울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고전적인 소울 음악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고전적인 소울에 현대적인 감성의 R&B와 힙합 등을 더하는 것.

    3집과 4집 앨범은 팝과 얼터네이티브 록 등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으며 최근에는 전자음을 더하거나 사회적인
    메세지를 가사에 담는 등 음악가로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듯하다.
    지난 2010년 유명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스위즈 비츠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스위즈가 전부인인 마숀다와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와 만남을 가져서 논란도 있었다.
    최근에는 전부인도 자녀들을 동반한 채 피서지 휴가에 동참한 장면이 파파라찌에 찍히는 등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참 쿨한 서양식 마인드...) 

     여담으로 앨리샤 키스는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서 동성애자 의혹이 끊이지 않았는데, 결혼과
     함께 관련 루머는 종결된 듯 하다.



    제이지, 비욘세 부부와 친하다. 동갑인 비욘세와는 14살 때 컴럼비아 레코드에 비슷한 시기에 계약하며 친해졌다.

    각자 1집 앨범을 발표한 뒤 합동 투어를 했으며,  함께 듀옛을 한 Put It In A Love Song은 서로의 성공을 자축하는

     의미를 담은 곡이다. 

     사실상 타이달[108]에 참여한 멤버들과는 모두 친하다고 생각하면 될듯...


    그밖에 존메이어, 어셔등과도 친구이다.

    과거에는 프린스와도 친분이 있어서 그의 헌정공연을 수차례 했으며 함께 투어에서 공연도 했다.


    한국에선 크게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대표곡 If I ain't got you는 가수보다 유명하다..

    발매된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노래방 팝차트에서 10위안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다.

     발표 당시 한국에서 내노라는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 곡을 커버했으며 최근까지도 오디션쇼에 꾸준히 선곡되왔다.


    이 곡은 미국 오디션쇼에도 그녀의 데뷔곡 Fallin'과 함께 수없이 불러졌다. 하지만 원곡이 너무 유명한데다 곡

    의 맛을 살리기 힘들어서인지 아마추어 출연자들은 대부분 이 곡을 부르고 망했다.. 다만, 더보이스2의 배틀라운드에서 이뤄진 공연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데로 한국에서 가수 자체의 인지도는 크지않지만 흑인음악팬층을 중심으로 상당한 매니아층을 거느렸고,

     워낙 유명한 노래를 가진 덕분에 국내에서 2번 내한 콘서트를 열었다.

     The Diary of Alicia Keys를 발표한 2004년과 As I Am활동시기인 2008년이다. 각각 거미(가수)태양(빅뱅)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국내에 피아노여류시인 ALICIA KEYS란 팬카페가 있다.(또는 있었다..)

    그녀가 데뷔한 2001년에 개설되어 3집 앨범시기까지는 운영이 잘 되었고..(그녀의 공백 시기가 길다는걸 감안하면

     이때도 10년가까이 잘 운영된거다.)


     5집 앨범까지는 어느 정도 명맥이 이어졌지만.. 이후에 앨리샤가 4년을 더 쉬어버렸고.

    . 지금은 유령카페가 됐다.

    2집 앨범이 한국에서도 대히트를 했을 때는 회원수 15,000명에 하루 조회수가 2천이 넘어가기도 했다.


     그녀가 내한 공연을 한 2004년과 2008년 콘서트에 각각 티켓 120장씩 팬클럽형식으로 공동구매를 했으며 현수막과

    티셔츠를 자체 제작하는 등 마치 아이돌팬덤마냥..

    열심히 그녀를 서포팅했다..
























     









     

    11.11 Good monig america

     

     

     

     

     

    11.15 Black 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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