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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세월호의 모든것







1073일동안 바닷속에 가라앉아있던 세월호가 드디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304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 ...




1073일째가 되는 이날 수면 위로 처음 떠오르게 됐다.

선채 인양되어 오르는 순간... 그 안에 숨겨진 진실까지 인양되어 오르기를.....




2017년 3월 23일 오전 3시 45분대에 전남 진도군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세월호 선체가 처참한 모습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제공=해양수산부]












세월호 침몰 사고(영어: Sinking of MV Sewol)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이다.

 세월호는 안산시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는 탑승인원 476명을 수용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으로[4]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에 병풍도 북쪽 20km 인근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침몰 사고 생존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













청해진 해운

인천시 중구에 본사를 둔 청해진해운은 1999년 2월에 창립한 연안여객선사로, 4척의 여객선으로 인천-제주, 인천-백령, 여수-거문도의 3개 항로를 운항하였었다. 2003년에는 마루에이 페리에서 대형 카페리 오하마나호를 들여와

운용하였고, 2013년 3월에는 세월호를 들여왔다.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고,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약18년이 된 세월호(1994년 건조)를 사들여 선령 20년의 오하마나호(1989년 건조)와 함께 운항할 수 있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의 증가·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개조·증축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청해진해운은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여 과징금 30만원을 물기도

 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의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으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제주 항로를 독점해 온 청해진해운은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2014년 5월

 인천~제주 운항 면허가 취소되었다.





▲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가운데)이 지난 4월 1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선원

대한민국의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







세월호



세월호는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 하야시카네 조선(林兼造船)[내용주 1] 에서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

(RoPax, 로로선)이다.


일본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페리 나미노우에'(フェリーなみのうえ)라는 이름으로18년 이상 가고시마~오키나와

나하 간을 운항하다가 2012년 9월 퇴역하였으며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중고로 도입하여 선미쪽에 증축·개조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하였다.[16][17][18] 세월호의 이름은 "세상(世)을

 초월(越)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월호는 총 배수량 6,835톤에 전장 145m, 선폭 22m이고, 21노트의 속도로 최대 264 마일을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 정원 921명에 차량 220대를 실을 수 있으며, 적재 한도는 3,794톤으로 되어 있다.


세월호의 내부는 5층으로, 갑판 아래에 위치한 1층과 2층에는 화물칸, 갑판 위의 3층과 4층에는 승객을 위한 객실이

마련되어 있고, 5층에는 조타실과 승무원실, VIP실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인천-제주 항로

인천-제주 항로는 1995년 5월에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인천~제주 항로를 처음으로 운항한 것은 청해진해운의 전신격인 ㈜세모의 '세모고속페리'호였다.

 세모고속페리호는 최대 500명의 승객과 차량 100여 대를 싣고 편도 16시간으로 인천항과 제주항 사이를 주 3회

왕복하였다


 2001년에는 청해진 해운이 춘양호를 추가로 투입하여 세모 고속페리 1호와 함께 최대 600여 명의 승객을 싣고 편도

13시간으로 1일 1회 운행하였다.

 2003년 3월에는 6,322톤급의 대형 카페리 오하마나호가, 2013년 2월에는 6,852톤급의 세월호가 두 선박을 대체하였다.


인천~제주 항로는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휴항되었으며, 2014년 5월 청해진 해운의 인천~제주 항로 면허 취소로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사고 해역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맹골수도가 위치한 곳으로,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거차도 사이이다.

이 곳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최대 6노트).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 자체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항해 장애물이 없다.



해군 잠수요원들이 세월호 선내 탐색구조작전을 위해 바닷속으로 잠수하기 직전

안전요원과 신호를 주고받고 있다.


사고 및 구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자 476명(잠정) 중

172명이 구조되고 304명이 사망·실종되었다.


사고 발생 전날 (2014년 4월 15일)


안개 때문에 출발이 2시간 30분 지연된 세월호는 오후 9시에 476명(잠정)의 인원과 짐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하였다.

세월호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이 탑승하였다고 알려졌다.

세월호에는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렸음이 사고 후에 밝혀졌는데,이로부터 인천항을 출발할 당시의 차량과

화물, 승객의 체중을 모두 더하면 적재 한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계산되기도 한다.


사고 발생일 (4월 16일)



선박자동식별장치의 항적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오전 8시 30분경 맹골도와 서거차도 사이를 최고 속도로 진입하였고, 항로를 바꾼 후 지그재그로 운행하다가 8시 49분경에 병풍도 부근에서 다시 급격히 항로를 바꾸어 급선회했다. 항로는 'J'자를 그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전 8시 52분 32초 (KST),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최초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최초 신고자인 학생이 던진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고, 이후 그는 배가 침몰하고 있음을 알렸다.

당시 신고전화를 받은 전남소방본부 관계자는 내용을 듣고 목포해경을 연결했다 (54분 07초).


그런데 목표 해경은 최초 신고자에게 제일 먼저 경도와 위도를 말하라며, 배의 위치를 물었다.

당황한 최초 신고자가 '네?'를 연발하자 119관계자는 그가 탑승객임을 알렸다.

하지만 해경은 반복해서 GPS를 거론하는 등, 위치를 물었다.


 그로부터 1분 30초 뒤 해경 측은 선박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최초 신고자는 "세월호"라고 답했다

(이러한 시간 지연에 대하여, 후일 박진수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선박 이름부터 묻는 것은 기본임을 지적하고

 "구조를 하려면 순서를 누가, 어디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우리는 육하원칙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비판했다). 세월호는 최초 신고보다 3분 후,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관제센터(VTS)에 교신해 배가 침몰 중임을 알렸다(8시 55분).

그리고 다시 이 제주관제센터(VTS)는 목포해경이 아닌 제주해경에 연락했고(8시 56분), 8시 58분에 비로소 목포해경이 사고를 접수했다

(이 사고접수도 세월호 승무원들이 아닌 학생의 신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추후 상황을 파악한 진도관제센터

(VTS)가 9시 6분에 세월호와 교신하여, 세월호를 호출하여 직접관제를 시작하였다.


9시 17분의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에서 세월호 선원은 배가 50도 이상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하였다

진도관제센터와 교신 내용에 따르면, 9시 7분에 2,755톤급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진도관제센터와 교신 후 세월호를 육안으로 확인하였다.


 둘라에이스호는 세월호의 구조를 위해 접근하였고, 9시 29분에는 세월호에서 구조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둘라에이스를 확인하였다.

세월호는 좌현에 대기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두라에이스호는 밀물때여서 계속 밀리고 있었다고 응답하였다.



사고 접수 후, 해양경찰은 출동 및 구조에 나섰다. 해경은 헬기 1대와 경비정 20척을 현장에 투입해 헬기로 승객 6명을 구조했고, 100 여명은 경비정에 옮겨 태워 인근의 진도목포시 등지로 이송했다.

 대한민국 해군도 구조작업을 위해 사고 해역으로 유도탄고속함 1척과 고속정 6척, 해상초계가 가능한 링스헬기 1대 등을 투입했다.


 민간 어선 선장 박영섭(56)은 16일 새벽 조업을 마치고 귀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 선장은 오전 9시 3분경 수협목포어업통신국이 송신한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받고, 병풍도 북쪽 1.5마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 바로 뱃머리를 병풍도 쪽으로 돌렸다.


 오전 10시 30분경 사고 현장에 도착한 박 선장은 해경과 구조작업에 참여해 승객 27명을 구조하였다.

조도면 청년회원 김형오(47) 역시, 이장단장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자신의 1.1t급 소형어선을 몰고 구조작업에

 동참하여, 총 25명을 구조하였다


그 외에도 메시지를 받고 10여분 만에 출항준비를 마친 조도면의 어선이 60여척, 어민은 150여명에 달했으며

전속력으로 도착까지 20여분이 소요되었다고 전해져 초동구조에 민간 어선들이 큰 역할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오전 9시 19분부터 YTN 을 시작으로 각 언론에서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긴급 타진하기 시작했고, 오전 10시부터

정부는 여객선 침몰 사고에 대응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를 구성하여 가동에 들어갔다.


사고 당일 구조된 세월호 탑승자는 승무원 23명, 단원고생 75명, 교사 3명, 일반인 71명으로 모두 172명이었다.





수색 및 인양

수색 및 인양 작업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색 작업 종료를 발표한 11월 11일까지 총 209일간 계속되었다.

 바다 밑 수색은 거센 조류와 탁한 시야, 낮은 수온으로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작업 일정이 길어지면서 피로의 누적과 그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해군해난구조대원이 수중 탐색구조작전 투입에 앞서

잠수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잠수요원

잠수요원들은 우선 수면에서 선체까지 가이드라인(유도선)을 연결한다. 이 선은 빠른 유속과 가시거리가 10~20cm에 불과한 사고 현장에서 잠수요원들이 안전하게 선체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길이다.

물속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짚어가며 움직여야 한다.


또한, 빠른 유속 때문에 유도선을 연결하더라도 선끼리 꼬일 수 있고(꼬이면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잠수요원의 마스크까지 벗겨질 수 있다.

꼬인 선을 정리해가며 선체로 진입이 가능한 선실과 화물칸 입구, 조타실 등에 도달한다.

그리고 선을 그곳에 매어 놓으면, 그때부터 선체진입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진입 입구를 확보하고, 다시 자신의 몸의 생명줄을 이은 뒤, 선체 내부로 진입을 시도한다.

선체 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므로 방향을 잃게 되면 선체 내에 고립되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선체로 진입 후에는 휴대 조명 장비로 매우 혼란스러운 선체 내부를 일일이 눈으로 수색해야 한다.


러나 수심에서의 작업시간은 최대 30분에 불과하여, 잠수요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따라서 고도로 훈련된 일부 잠수요원만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또, 잠수요원들이 산소를 공급받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산소통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 스쿠버 다이빙 방식이며, 둘은 공기호스가 연결된 다이빙 헬멧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 머구리 방식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16일 대한민국 정부는 머구리 방식은 탁 트인 수중에서 수중 작업을 위한 용도이며, 세월호의 선체를 굽이굽이 들어가서 작업하려면 생명선이 꼬이거나 절단될 위험이 있다며 스쿠버

 다이빙 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스쿠버 다이빙 방식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만 작업할 수 있다.

수심 30 미터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데, 잠수병의 문제로 천천히 부상해야 하기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때문이다.

 급부상을 브라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잠수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속해서 머구리 방식을 주장했다.

머구리 방식은 그만큼 잠수병 확률도 높지만, 머구리들이 다이빙 헬멧을 쓰고 서해 40미터 해저 바닥을 3시간 동안이나 걸어다니면서 키조개를 캘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 한계는 20~30분이 아닌 3시간이다.

결국, 정부는 투입에 반대하다가 투입을 허가했는데, 머구리들이 투입후 선체 내부 진입에 최초 성공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내기 시작해 22일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방식이 머구리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7월 11일 예정된 미국 수중재호흡기 잠수팀의 검증잠수가 작업현장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실시하지 못하고 미국 잠수팀이 철수하기로 했다고 다음날인 12일에 밝혔다.

수중재호흡기(Rebreather) 잠수는 잠수사가 내쉰 공기를 배출하지 않고 정화해 재활용, 잠수시간을 최대 6시간까지

 늘리는 잠수방식으로 대책본부는 검증작업을 거친 후 세월호 수색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사고해역 검증 잠수현장에서 미국 잠수팀이 갑자기 "침몰지점 해상에 정박한 바지 탓에 잠수사 안전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바지가 없는 상태에서만 잠수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사고대책본부는 "'나이트록스' 잠수방식을 주력 잠수수단으로 활용하고 수중재호흡기 잠수를 보조 수단으로

병행할 예정인 현 상황에서 바지를 철수해 달라는 미국 잠수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수중재호흡기 투입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나이트록스는 잠수를 오래 할 수 있도록 산소 농도를 높인 기체를 말하며, 이 기체를 쓰는 잠수 방식이 나이트록스

잠수다. 잠수사들이 들이마시는 기체만 달라진 거라서 외관상 달라 보이는 건 없다.

지만 기존의 '표면 공기 공급 방식'이 산소 농도가 21%인 일반 공기를 썼던 반면, 나이트록스 잠수사들은 산소 농도가 28%까지 올라간 기체를 공급받는다.


 이 기체를 마시면서 잠수하기 때문에 기존의 2배인 최대 60분까지 잠수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수색 시간이 2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정밀 수색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구조당국은 자칫 나이트록스 방식을 잘못 쓰게 되면 산소 중독으로 인한 잠수병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도입 시기를 늦춰 왔었다.





[세월호 침몰] 무인로봇 투입 성공.."아이들 구할 수 있나?"


공기주입 및 리프트백 설치

공기주입은 선체 내에 공기호스를 주입하여, 혹시 모를 선내 생존자들의 생존시간을 늘리는 역할과 부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체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중력에 상응하는 부력이 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기는 부력을 증가시켜줄 수 있다.


따라서 일종의 부력주머니인 리프트백과 공기주입을 정부는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는 이해가 잘 안된다고 논평했다.

 공기주입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에 해야 함에도, 제일 상갑판인 조타실에 공기주입을 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조타실의 구조적 특성을 근거로 공기가 주입되어 다른 쪽으로 공기가 퍼져 에어포켓을 형성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그는 오히려 공기주입은 일단 조사 후, 식당 등 사람이 살아 있을 확률이 있는 곳에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18일 진행된 정부의 리프트백 설치 양상이 단지 배가 거기 있다고 표시하는 어떤 풍선처럼 돼 있을 뿐, 어떤 부력을 작용하는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양수산부 세월호선체인양단이 세월호 인양 후 선체 내 미수습자 수습과 잔존물 반출, 분류, 보관, 처리하는 작업인 선체 정리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세월호선체인양단이 세월호 인양 후 선체 내 미수습자 수습과 잔존물 반출,

분류, 보관,처리하는 작업인 선체 정리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뉴시스





선체 절단

5월 10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붕괴 위험이 확인된 곳은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30인실 통로 등 4곳이다

 이런 상황으로 잠수 수색이 불가능한 구역이 생기자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하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27일 오후 진도군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족들은 애초

 실종자 유실 위험 때문에 주저했으나 정부가 선체 부근과 외곽에 3차에 걸쳐 유실 방지를 위한 에어백과 그물,

안강망 등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해 한 명의 유실도 없이 시행될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절단은 4층 선미 우현부터 우선 추진하며, 절단 방법은 1차적으로 산소 아크 절단법을 사용하고 2차 대안으로 초고온 절단봉이 제시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30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오후 2시 10분께 4층 선미 창문 3곳의

 절단 작업을 시작, 현재 창문 하단 가로 4.8m를 절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오후 2시께 예정된 '수색구조지원 장비기술 연구 전담반(TF)'회의에서는 4층 선미 절단 진행 상황 점검과

전날 오후 가족들이 건의한 4층 선수 구역 절단 여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선박 인양

수습 변수


선박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한 방법은 잠수요원 투입이다.

잠수요원은 선박인근 및 선박내부를 수색한다.


그러나 맹골수도의 특성상 조류가 빠르고, 가시거리가 10~20cm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잠수요원들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상


기상 역시 사고 수습을 더디게했다.

심지어 17일 오후에는 기상상황이 나빠져 구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저체온증

박준범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0도~15도 사이의 물에 사람이 한두 시간 정도 있게 되면 이미 의식을

 잃어요.

체온이 떨어지면서.


한두 시간이 지난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빠진다고 할 수 있고요"라고 언급하였다.

위급한 상황에는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맥박이 느려지는 서맥과 심방 및 심실세동, 심하면 심장정지까지

올 수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인체는 근육을 통해 열을 내 온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근육양이 낮은 고령자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저체온증상태가 되면 구조과정에서도 작은 충격으로 심한 부정맥이 오거나 출혈이 생기기 쉬워 주의를 요한다.












에어포켓

그나마 일부 전문가들이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에어포켓이다.

정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 명예교수는 배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이유를 "컵을 물속에

엎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았고, 다행히 선수 부분은 손상이 없기 때문에 공기가 갇혀 있는 거죠.


 소위 에어포켓이 형성되어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에어포켓에 공기가 8㎥가량 있다고 가정하면, 마지노선은 최대 72시간으로 계산된다.

한편, 가라앉지 않은 부분에 의해 추산되는 선내 공기량은 500~1000 세제곱미터 였다.


다만, 이 에어포켓이 승객이 있는 3~5층에서 얼나마 형성되어 있을지는 추산된 바가 없다.

대서양에서는 선박전복 사고 후, 선원이 에어포켓에서 60시간을 버티다가 구조된 사례가 있다.










(사진 1) <세월호 참사> 세월호에 섬광등 설치

(서울=연합뉴스) 세월호 침몰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내부로 어류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섬광등을 제작, 투입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어류 퇴치를 위해 수중용 섬광등을 제작해 세월호 격실에 1차로(5.155.23) 46개를 투입,

2차로(5.24) 50개를 투입할 계획이다.

사진은 세월호에 설치될 섬광등 모습.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제공)


격실

격실이란 사고의 파급을 방지하기 위해 격리시켜 만든 공간으로 대부분의 선박은 이 격실들을 갖추고 있다.

한국해양대학교 공길영 교수는 “지금 상황은 천안함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며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으려면


수밀격실이 돼야 하는데 배에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급격히 뒤집히는 대 혼돈 속에서 문을 닫는 조치가 취해져있을지 비관적이다"고 말했다. 격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문을 닫는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격실에 에어포켓이 있다면 이론적으로 48시간을 버틸 수 있다.









1·2차 수색 관련

사고 발생 3개월이 다돼가도록 정부가 주먹구구식 수색 계획을 내놓고 있어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6월 30일 오후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날 오전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정밀 수색 및 7월 수색 계획 설명회가 예정됐으나 계획이 미흡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취소됐다"고 밝혔다.


이어 세부 수색 계획이나 잠수 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전혀 없는 부실한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설명회를

중단하고 수색 계획 재수립을 요구했으며, "실종자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객실이 어디인지, 무슨 근거로

추정하는지도 없고 2층 화물칸 진입 통로 수색 여부, 잠수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안 등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잠수사 교대 투입, 휴식 보장을 위한 인력 확충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현재 이에 대한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들은 리브리더(수중재호흡기) 등 시속 1.8노트 이상의 유속에서도 장시간 잠수가 가능한 새로운 잠수기법과

30m 수심에서 25분, 40m 수심에서 10분 정도인 현행 잠수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안 도입이나 장마 등 기상 여건

 대비책 등 가족 및 수색구조 TF 전문가들이 검토를 요청한 사안들이 빠져 있었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한편 대책본부 측은 이에 대해 "실종자 잔류 추정 구역은 예약 현황,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선정한 것"이라며

 "해당 구역을 수색했음에도 찾지 못한 실종자의 경우 정확한 위치 추정이 어렵다"고 해명, 당장 개선안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2층 화물칸은 실종자 잔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차량과 화물로 인해

잠수사 투입을 통한 수색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이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으로부터 수색평가자문위원회 구성을 위한 전문가 명단을 전달받았으며 이 중

 5명 내외를 선정해 자문 활동을 요청할 계획이다.


구조팀은 지난 6월 6일부터 1차 정밀 수색을 진행하고 6월 20일을 1차 수색 종료 시점으로 발표했으나 두 차례

연기했고, 6월 30일에 수색과 관련한 설명회를 열기로 했으나 실종자 가족들의 반대로 취소됐다.









지원 헬기 추락 사고

2014년 7월 14일부터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지원하고 2014년 7월 17일에 춘천으로 복귀하던

강원도 특수구조단 소속 헬기가 추락해 탑승자 5명이 모두 순직했다.










사고 원인


대한민국 정부 공식 조사

사고 원인에 대하여는 현재 해양경찰청(이하 해경) 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부분이다.

 해경은 4월 17일 긴급 브리핑에서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등 선박직 승무원들을 조사한 결과, 침몰 원인을 무리한

변침으로 잠정 결론 내린 상태임을 알렸다.


이후 4월 19일 검경합동수사본부에서도 무리한 변침을 침몰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그러나 다른 여러 원인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조타기의 결함, 과적 화물의 느슨한 고정, 암초 충돌이다.


 이후 5월 13일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드러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복합적이다.

곧 선박 증축에 따른 복원성 부족문제,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르는 화물 과적문제, 화물 고박(고정 결박) 불량,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덜 채우는 대신 그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실은 문제, 물살이 유난히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격한 변침(항로 변경)까지 한 상황문제 등이다.






가설들


암초충돌설

사고 발생 초기에는 언론이 안개에 의한 암초 미발견으로 인한, 충돌가능성을 집중 조명했다.

 생존자 중 일부가 들었다는 '쿵' 소리와 당시 기상상황이 안개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백점기 부산대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은 배의 좌초로 인한 사고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해당 해역에 암초가 없으며, '쿵' 소리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에 따라, 유력한 사고 원인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구조결함설

세월호와 같은 로로선은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자주 지적되던 선박이다(

로로선 사고 목록 참조).

2009년 11월 일본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건조하여, 마루에이 페리사가 운행하던 아리아케호가 침몰했다.


이 선박은 과거 세월호가 나미노우에호로 활약하던 시절 운행한 해운사가 동일했고 선박 디자인과 배수량이 유사한

로로선이다.

2009년 아리아케호 사고 직후, 마루에이 페리는 동일 선박인 나미노우에호를 2012년 퇴역시켰다.


그것을 청해진해운에서 싸게 수입하여 1년간 개조하였으며, 2013년 3월 이름을 세월호로 개명하고 운행을

시작하였는데 1년 1개월 만에 좌초된 것이다.

 한 해상전문가는 "선체가 그렇게 빨리 기운다는 것은 선박 복원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이는 선박의 구조적 결함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구조변경설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김길수 교수는 사고의 원인이 구조변경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수입된 뒤, 이듬해 3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객실을 증설하였다.

3~5층에 객실이 증설되었고 승선정원은 181명 추가된 921명으로 많아졌으며, 선박 무게도 239t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무게중심이 원래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배를 급격히 돌린다고 전복이 되지는 않는다" 며 "구조 변경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갔다면

내ㆍ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배가 뒤집힌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 등록 검사를 맡았던 한국선급 관계자는 "객실 증설은 합법적인 공사, 점검 결과 운항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등록 검사를 정상 통과했다" 고 밝혔다.


 한편, 객실만 증축한 게 아니라, 배 앞쪽 램프웨이도 철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입구를 줄이면 화물을 더 실을 수 있고, 배 전체 무게가 가벼워져 그만큼 객실 증축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쪽에만 있던 램프웨이를 없애면서 오른쪽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변침설(항로변경설)

변침(變針) 이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침몰한 세월호가 좌로 기울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해양운송시스템학부 교수는 "세월호 여객선 참사 원인이 암초가 아닌 급선회에 따른 외방경사로

 추정 된다" 고 밝혔다.


 그는 유속이 빠른 해역에서 선박이 회전하게 되면 선체가 5~ 10도 가량 기울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선체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나 화물이 한쪽방향으로 쏠려 선박과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 했다. 이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발생한 '꽝' 소리는 결박된 화물들이 풀리면서 선박에 부딪혀 발생한 소리로 보고 있다.

이 설은 17일 해경이 긴급 브리핑에서 잠정 결론으로 발표한 견해이기도 하다.

내부폭발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와 임교수는 이견을 보였다. 그는 "변침은 침몰의 1차적 사고 원인이 아니다.

 배가 이미 기운 상태에서 변침을 시도했다면 문제가 된다" 며 "가능성이 낮다" 고 했다.

그는 "조타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 조타 장치를 작동해 봐야 무용지물이다" 면서 "내부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컨테이너에도 무엇이 실렸는지 봐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는 암초설에 대해서는 해양 조사원들이 해도에 항로에 있는 암초들을 기입해둘 뿐 아니라 승무원들도 그 항로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며 암초에 의한 좌초가능성을 일축했다.

과적 및 선체결함설

이 견해는 2014년 4월 19일자 오전 10시경 부산일보와 그날 오후에 종편 방송사 JTBC에서 제기한 것이다.

 부산일보 4월 19일자 보도 상, 한국해운조합에 따르면 세월호는 4월 15일 출항 전 화물 657t,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조합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실제 확인 결과 세월호는 화물 1천157t, 차량 180대를 싣고 있었기에 이는 화물은 무려 500t, 차량은 30대를

초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곧 화물 500t 차량 30대 초과한 상태에서 밧줄로 제대로 묶지도 않았기에 선박 하중조절 실패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견해이다.


한편 세월호에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기관사는 먼저 선박이 회전을 할 때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 양 측면의

 스태빌라이저가 결함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스태빌라이저는 선박 측면에 날개 모양의 형태로, 선체의 안과 밖을 반복적으로 왕복한다.


 급회전 시 이 스태빌라이저가 작동하지 않으면 배가 기울어버린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화물의

과적재이다. 이에 대해 청해진해운 측은 과적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JTBC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세월호의 전체 중량은 6,825톤인데, 이것은 선박 자체, 화물, 승객, 연료 등의 무게를 모두 더한 수치다(만재배수톤수). 이 무게를 넘어서게 되면 과적이 돼 출항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세월호 배 자체의 무게는 3,031톤, 선사 측이 밝힌 화물과 승객 무게는 3,638톤이다.

모두 더하면 6,825톤을 넘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배의 연료와 평형수 등의 무게가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연료로 쓰인 벙커C유와 내부 발전용인 경유를 환산한 무게는 약 160톤으로 이를 더하면, 6,825톤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윤종희 한국해양대 교수는 "모든 것을 실은 상태에서 거기 화물도 있고, 연료·물·선용품 음식 등 이런 거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 종류도 다 포함돼요."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해진해운 측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평형수 문제 역시 선박의 동적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거론 한다.


 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침몰되기 한 시간 전인 7시 40분경부터 이미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이른바 평형수 탱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평형수 탱크는 선박 가장 아래 부분에 위치하는데, 좌우 3개씩 모두 6개의 물탱크로 이루어져 있다.


평형수는 해수를 담아 배의 좌우 균형을 맞춰준다.

그런데, 최근까지 세월호에서 일했던 전직 선원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물이 한쪽으로 실리는 경향이 있어요. 한 번 물을 딱 맞춰 놓으면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즉,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JTBC는 평형수 시설이 2월에 수리를 하고, 안전점검까지 받아 통과했지만 그 이후에도 선원들은 전혀 고쳐진

바가 없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스태빌라이저 역시 부품이 없어 수리를 받지 못했고. 적재된 컨테이너 역시 쇠줄이 아닌 밧줄로 묶여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네티즌 '자로'의 다큐멘터리 '세월X'에 의하면 당시 세월호는 과적을 한 것이 사실이나 참사 당시보다 적게

 실은 날이 단 4번 뿐이었고, 3배 이상 과적하여 운항한 날도 있어 이 가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느슨한 결박설

세월호 전 항해사 김모씨는 4월 21일자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와의 대화에서 스태빌라이저나 평형수, 변침 등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침몰한 세월호는 결박을 제대로 안했을 것"이라 했다.

 또, 인천항 선박의 화물 결박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하는 인천항운노조는 컨테이너 결박에 꼭 필요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전문 장비가 세월호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잠수함 충돌설 등이 있다.


책임론


승객들을 선박에 두고, 1차 탈출한 선박직 승무원들에 대하여 사회윤리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세월호 사고의 공학적·물리적 분석에 따른 직접원인 보다 근본원인을 지적한다.

선박이라는 한 집단의 범위 내에서는,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항해와 승객 구조임무 책임을 지닌 리더인데,

그들의 리더십 부재가 세월호라는 한 집단의 침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로, 충분한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음에도(약 2시간) 승객들에게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과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기적절한 유효 조치가 없었다는 점.

오히려 방송 지시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탈출을 시도했던 승객들이 생존율이 높았다는 점.


선장 이준석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뒤로하고 1차 탈출했다는 점을 든다.

따라서 이 분석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문제가 리더들의 판단착오와 책임감 부재로 인재(人災)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원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청해진 해운 직원 대부분이 구원파 신도들이다.

한편, 세월호 선원들이 침몰사고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4월 17일 오후 9시에 인천항에서 청해진해운 대표 김한식 대표가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대한민국 사회



세월호와 대한민국 사회를 유비추론한 사회 전반의 책임론이 대두된다.

선일보 이종현 기자는 "침몰하는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세월호의 핵심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남겨두고 먼저 탈출하는 모습을 위기에 처하면 몰래 빠져나가는 재벌 회장, 국회의원 같은 한국 사회지도층의 모습과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과 해군을 믿지 못하고 민간 잠수부 투입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점, 해경이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조롱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정부의 공식 발표보다 더 힘을 얻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 스스로 권위와 신뢰를 잃은 결과라 지적했다



구조인력 인명피해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4월 27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수색 지점의 수심이 깊어지면서 잠수병 증상을 호소하는 대원들도 늘고 있어 잠수사 1명당 1일 투입횟수를 최소화하고 휴식을 안배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월 1일, 오전 1시 15분께 민간 잠수사 김모(40)씨가 경상남도 사천시의 삼천포서울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로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전날 오후 전남 진도 해역에서 세월호 수중 수색작업을 마치고 나서 바지선 위 감압챔버에서 의식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응급조치를 받고 의식은 회복했지만 극심한 두통 등 잠수병 증세가 심각해 삼천포서울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측은 곧바로 고압산소치료센터에서 수심 40~50m 정도의 환경인 6대기압으로 김씨를 4시간 50분 동안 치료했다. 치료를 받은 김씨는 두통이 완화되는 등 상태가 호전됐으나 골반 통증 등을 호소해 잠수병 관련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다.[318] 이 같은 일은 2일, 14일, 17일에도 여러번 발생했다.


5월 6일,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 중이던 이모씨(잠수사)는 새벽 6시께 유속이 약해지는 정조시간에 맞춰 사고

 해역에서 선체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5분만에 교신이 끊겨 다른 잠수부들에 의해 구조됐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헬기로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병원 측은 7시10분께 환자가 이송돼 왔는데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사망한 민간잠수사 이모씨는 마린 인더스트리 측이 임시로 고용한 잠수사로,

희생자 수습작업에는 이날 처음으로 투입됐으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5월 7일 오후 8시 20분께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대기 중인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에서 해양경찰청 인천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쓰러져 의식 불명에 빠졌다.

정 경사는 지난 6일 오전부터 인천에서 24시간 근무를 한 뒤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곧바로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

 수색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 경사는 이날 오후 8시 20분 교대 근무를 마친 뒤 어지럼증을 호소했으며 혈압 수치도 높게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4시간 동안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후 의식을 회복했지만 2주일 정도 진행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잠수사들의 인명피해가 빈발하자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5월 19일 "바지선에 기존 물리치료사 3명 외에 7명을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라며 "의료지원 강화를 위해 침술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한의사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19일 밝혔다.


5월 21일 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전남 진도 사고 해역에서 수색 작업 중이던 이모 경장이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5월 30일 선체 절단작업에 투입된 민간잠수사 1명이 숨졌다. 잠수사 이씨는 4층 선미 외판 절개를 하기 위해 이날 오후 1시 50분께 입수했다. 이어 2시 20분께 이씨가 작업을 하던 부근에서 충격음이 들렸고 이씨는 얼굴 등에 피를 흘린 채 다른 잠수사에 의해 20여 분만이 2시 40분께 구조됐다.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이씨는 인근에 있던 헬기에 의해 목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 등을 받았지만

숨졌다.

해경은 6월 17일 낮 12시 40분께 사고해역 인근에서 수색지원 중이던 해경대원 진모씨가 3000톤급 해경 3011함에서

1512함 소속 단정으로 이동 중,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단정 의자에 옆구리를 부딪혔다고 밝혔다.


진씨는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갈비뼈 3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삼천포서울병원은 세월호 구조 수색작업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 13명이 잠수병 증상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7월 13일 밝혔다.


지난 7월 10일과 11일 언딘 소속 김모(31)씨 등 11명과 해경 소속 백모(39)씨 등 3명이 피로 누적과 두통, 전신 통증을 호소해 이 중 13명이 입원했다.

 특히 김씨는 급성 경추 디스크 증상으로 수술했다.




 



구조인력·장비 조정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수색 잠수사와 해군함정 등 인력과 장비를 대폭 축소해 운영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6월 29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해경·해군 관계자 등이 지난 21일 수중탐색 협조회의에서 오는 7월
15일까지를 목표로 수중탐색 기간을 연장하고 추가연장 여부는 유가족 반응과 탐색결과를 고려해 결정하기로 했다.

또한 장기 수색에 지친 해군 잠수사들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투입 잠수사 수를 7월 1일부터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이고, 15일 이후에는 현재 기준 2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인다는 내부 방안이 제시됐다.
이 계획대로라면 다음달 1일부터 해군 SSU 잠수사가 현재 109명에서 70여 명으로, UDT 잠수사가 현재 89명에서 60여명으로, 총 198명에서 160여명으로 줄어든다.

7월 15일부터는 현재의 절반가량인 100여명의 잠수사가 현장을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 계획에는 또 물살이 거센 대조기, 중조기에는 잠수사들을 전원 철수시켜 휴식을 취하게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현재는 대조기, 중조기에도 조류의 흐름을 지켜보며 현장 바지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있다.

장비지원도 줄어들 전망인데, 우선 독도함은 정비와 훈련 참가를 이유로 다음달 15일께에는 진도 해역을 떠나 진해
 지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또 실종자 감소로 현장구조지휘본부 역할이 감소했다며 지휘본부 인원도 현재 28명에서 18명으로 줄여 해군 3함대
사령부로 이관할 계획이다.

당초 합동구조팀은 1차 정밀수색이 끝나는 이달 30일 이후에는 해군, 해경, 민간이 각각 맡았던 수색 구역을 교대해
 다시 정밀수색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스미싱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를 전하는 내용으로 위장한 스미싱이 발생하였다.

미래창조과학부한국인터넷진흥원은 18일 세월호 사고를 사칭한 스미싱 문자가 추가로 발송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스미싱 문자와 연결된 악성 애플리케이션 유포지를 차단 조치했다고 밝혔다.


각 교육청 조치

경기도교육청은 2014학년도 1학기에 예정된 소재 각 학교의 현장 체험학습을 보류하였다고 밝혔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시내 모든 초, 중고등학교에 현재 계획 중인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의 안전상황을 재점검하고 안전에 우려가 있으면 즉각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18일, 공식 보도 자료로 '수학여행 수련활동 및 청소년 단체 활동 학생 안전사고 예방안내’(2014.4.16.)

공문에 4월 21일 실시 예정인 관내 학교 6개교(초 5, 고 1) 의 제주행 수학여행을 취소 및 보류하였다고 하였다.


 대전광역시교육청은 안전이 답보되지 않은 행사는 학교 구성원의 사전협의에 따라 일정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중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서대전고등학교서일여자고등학교 가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기름 유출

19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세월호는 벙커C유 120㎘, 경유 50㎘가 적재된 상태로 침몰하였다.

 이에 대한 여파로 기름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18일 오전까지는 세월호 주변 100m 반경에 엷은 유막이 형성됐지만 하루 만에 훨씬 짙은 기름띠로 변했다.



세월호의 의인들


세월호 승무원 박○○(23)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우며,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사망하였다. 생

존자인 학생의 인터뷰에 따르면 “배가 기울면서 3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


당시 10명이 함께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모자라 승무원 누나가 학생들에게 조끼를 양보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누나는 왜 조끼를 입지 않느냐.”고 묻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라고 답하였다고 전했다.

덕분에 그와 함께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고 전해진다.[329] 그 외에도 선원으로서 의무를 다 하다가 실종된 선원은 더 있었다.


세월호 사무장 양○○(46)은 아내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 통장에 돈이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고 말했다.

“아내가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양 사무장은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끊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 결혼을 앞둔 사이였던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28)씨와 사무직 승무원 정○○(28)씨도 사고 당시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숨졌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담임교사 남○○(36)은 16일 오전 10시쯤,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어 탈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는 등 대피를 돕다 사망하였다.

2학년 5반 담임교사 이○○(33)은 난간에 매달려 있는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실종되었고, 체육교사 고○○(43)도

 제자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탈출을 돕다가 본인은 나오지 못했다.


최○○ 교사도 사고 상황 속에서 SNS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에게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말하며 학생들을 구출하였다.

이후 그녀는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교사 김○○ 역시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구조된 후 자살한 교감 강○○(52)은 앞장서 출입구를 열고 올라가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힘이 들더라도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대학생 일행의 탈출을 도왔고, 먼저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빨리 나와라.

이쪽으로 와라."고 외치며 끝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나중에야 배에서 빠져나왔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정○○(18)은 아수라장이 된 선실에서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네주고, 물이찬 선실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끝내 사망하였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양○○ 역시 침몰 직후 갑판으로 나와 구조될 수 있었으나 선실에 남아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다시 물이 차오르는 선실로 들어갔고 끝내 나오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조○○은 배가 기울자 여학생 방을 찾아 구명조끼를 나줘주며 대피하라고 알리고 여학생을 직접

 끌고 올라오는 등 20여명을 구해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박○○ 역시 울고 있던 어린 아이를 급히 업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라 둘 다 생환할 수 있었다.


박군은 "나도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부모를 찾으며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먼저 나올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배관 설비사 김○○(59)은 제주도에 있는 건축회사에 첫 출근을 하던 중 사고를 겪었다.


그는 배가 기울어지던 30여분 동안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방호스와 커튼을 묶어 선박 1층에 있던 학생 20여 명을

6~7m가량의 위층 난간으로 올려주었고 그 자신을 포함하여 이들은 모두 생환하였다. 그

는, 그 사이에 1층에는 물이 가득 차는 바람에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화물 운전기사 김○○(50)은 사고 당시 여객선 3층 화물운송 기사 전용 객실에서 동료 기사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배가 기울자 일반 객실이 몰린 4층으로 이동해 호스와 밧줄을 던져 10여 명의 사람들을 구하고 생환하였다.

 특히, 그가 구한 이들 가운데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다가 사고를 당한 어린이 권지연(6, 여)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자 지정

보건복지부5월 12일 '2014년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사고로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여),

김기웅(28), 정현선(28·여)씨 등 3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인천광역시5월 23일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를 의사자로 지정해달라며, 유족의 동의를 얻은 뒤 목격자 진술,

필요 서류 등을 갖춰 이날 오후 보건복지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신청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두 갖췄다"며 "복지부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국민적 여론이나 언론

보도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의사자 인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사무장은 세월호 고위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탈출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를 위해 배를 지키다가 끝내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고 초기부터 이들 '살신성인' 교사들을 의사자로 지정해달라는 누리꾼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의사자' 신청은 유보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교사 유가족들은 '순직' 처리를 통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 숨졌다'는 점을 입증해 의사자로 등록하기 보다는 국가공무원으로서 공무수행

중 희생당했다는 점을 인정받는 것이 용이해 이 같은 방향으로 추진 중으로 전해졌다.

모든 교사가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희생되거나 실종된 교원 12명 중 기간제 교사인 2명은 공무원이 아니며, 이들은 공무원연금

관리공단의 '공무상 사망'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못 된다.

한편 유가족 대책위는 '세월호 특별법'에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을 전원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또한 의견이 나뉘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일보







해수부는 24일 세월호 미수습자들이 있을 만한 대략적인 위치를 정해두고 선체가 확보되면 집중 수색할 방침이다.
현재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에는 250X150m 크기의 펜스가 설치된 상태다.

이는 세월호 인양 과정에서 미수습자나 유류품이 빠져나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세월호가 안전하게 인양돼 이동하면 잠수부들이 투입돼 펜스 내 구역을 샅샅이 수색하게 된다.

잠수부들은 펜스 주변부터 시작해 안쪽으로 이동하며 수색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조류 등으로 인해 유류품 등이 펜스 쪽으로 모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누워 있던 해저에는 잠수부들이 집중 수색을 하게 된다.

 세월호가 3년간 바닷물 속에 있으면서 창문 등을 통해 유실물 등이 흘러 내렸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안전하게 목포 신항으로 옮겨지고 나서는 본격적인 선체 수색이 시작된다.
객실을 완전히 분리하거나 부분적으로 떼어내는 방안, 선체 일부를 절단하거나 선택적으로 구멍을 뚫어 작업자의 진입로를 확보하는 방안, 선체 창문 쪽으로 비계를 만들어 접근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정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 선체를 훼손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해수부는 그동안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미수습자들이 있을 만한 장소를 추정해 놓았다.
수색 준비가 끝나면 미수습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부터 바로 들어갈 방침이다.






세월호 인양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는 로이터통신 인터넷판 




“세월호 인양은 파면된 박근혜에 결정적 타격” 외신 세월호 인양


[박근혜 검찰 소환] 노무현과 전두환 사이에서






세계 주요 외신들도 23일(현지 시간) 참사 후 3년 만에 세월호가 인양되었다는 소식을 속보와 함께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큰 관심을 나타냈다.


AP통신은 "6,800톤에 달하는 한국 선박이 남서해안 거친 바다에 전복되어 침몰한 지 거의 3년 만에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며 "이(목요일)날은 이러한 최악의 비극적인 재앙을 끝내고자 수색을 계속한 한국(국민)에게는 감정적인

순간(emotional moment)이었다"고 보도했다.


또 "박근혜는 침몰 당일 수 시간을 연락이 두절됐다는 혐의에 관해 방어에 급급했다"며 "이러한 혐의(allegations)는

그의 광범위한 부패 의혹과 함께 국회의 탄핵안에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로이터통신은 "대부분이 수학여행 학생 등 304명이 사망한 한국 여객선이 목요일 천천히 잿빛 바닷가에서 드러났다"며 "이는 온 나라에 상처를 준(traumatized) 암울한 비극을 다시 회상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수습자인 조은화 양의 어머니인 이금희 씨는 '내 딸 은화가 저곳에서 3년이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심장이 찢어진다"고 울먹였다'고 인터뷰 내용을 전했다.


AFP통신은 "300명 이상이 사망한 침몰한 세월호가 거의 3년 만에 인양된 사건은 지금은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결정적인 일격(crushing blow)을 가하고 있다"고 기사 첫 문장에서 언급했다. 이어 "박근혜는 '7시간' 동안 행위에 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며 "그의 참사에 대한 대응은 부패 스캔들과 함께 파면을 당하는 의혹에 놓였다"고 꼬집었다.



미 CNN 방송도 "한국의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만에 뒤늦게 인양 작업이 시작됐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 과도 정부에 의해 인양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 방송은 이어 “정부의 뒤늦은 인양이 희생자 유가족들의 분노를 키웠다”며 “유가족들은 인양 현장 근처에 모여

 세월호 인양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인양된 배가 2주 안에는 항구에 도착해 희생자 가족과 만날 예정"이라며 "아직도 침몰한 배 안에

 갇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9구의 미수습자 (수습) 문제가 가족들의 중요한 요구 사항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공영 NHK 방송은 "한국 정부는 23일 밤에는 인양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전망했다"며 "그 후, 선체는 해수를

분리한 다음 가까운 항구로 이동시켜 (미수습자) 9 명의 수색이 이뤄진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주요 방송사가 특별 프로그램을 짜고, 선체 인양의 모습을 생중계로 전하는 등 한국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은 "다수의 (희생자) 친척들이 인양 현장 근처에서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며 "다른 유가족들은

인양 현장에서 1.5Km 떨어진 동거차도의 산등성이 캠프에서 (인양 작업을) 주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 유가족은 "가족들은 왜 이러한 참사가 발생했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다"고 이 매체 특파원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이 참사가 발생한 지 거의 만 3년 만에 세월호가 인양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주요 외신들은 주로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다시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유가족들은 세월호 침몰 사건에 관한 철저하고도 완전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무위키 벡과사전에서 발췌 사진을 편집했음












Julian Rachlin, Violin

 Mischa Maisky, Cello

 Nobuko Imai,Vi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