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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Professor Green - Just Be Good To Green (feat. Lily Allen)|


 




 기사의 0번째 이미지 







Just Be Good To Green




Friends tell me I am crazy
That I’m wasting time with you
you’ll never be mine
Just be good to me
just be good to me


Huh just be good to green
All I need is a woman to be good to me
I’m an easy man, I’m easily pleased


and you provide me with everything that I need,
Look, you know I make ends off crime
so hold on to yours, we’re spending mine
Though you try, I’ll never let you by


But if I was broke, would you still be spending time? Yes
And I believe you would
Don’t think P’s too fucked to treat you good


I’ll walk street with you, Yes; talk deep with you,Yes
Even slip and spend all week with you, and I’m off
You wish I’d put an end to the torment,


Stop, but one thing it’s not ever, is boring
What would you rather me be like,
I ain’t ever gonna change, are you ever going to realize?

(People always talk about ..)
Look, anekatips people are always going to talk, babes
(reputation)
I’m not even going to lie, sh!t,


it ain’t like you to know what mine is
(I don’t care what you do to them just be good to me)
I’ll try, I’ll try, I’ll try

Look, babes, you know who I am,
But as crooked as I am, I’ll be as good as I can


I can try and try, but we’ll settle that
my angel face is disguise for the devil inside
You’re good to me, I ain’t good to girls me
I’m a bad boy something every good girl kill me ?


Honesty can avoid all your tantrums
but I’m a naughty boy and I always have been
What, and I ain’t changing anytime soon,


I can’t have you with me whenever I move
Whatever I do, I come back to you,
See, the good attracts me and the crook attracts you Whatever


What, we all got our ways, remember us talking
of course it was game
But it’s all gonna change, now she got me cutting off links
like I’m trying to shorten my chain

(People always talk about)
Look, people are always going to talk, babes
(reputation)


I ain’t even going to lie, shit, it ain’t like you to know what mine is
(I don’t care what you do to them, just be good to me)
I’ll try, I’ll try, I’ll try


Friends are always telling me
You’re a user
Professor Green


Not me, anekatips not ever
Ain’t no other man going to treat you better


Lily Allen
I don’t care what you do to them, just be good to me
Professor Green
I’ll try, I’ll try, I’ll try


I’ll be good to you, you’ll be good to me
We can be together, be together (just be good to me)
I’ll be good to you, you’ll be good to me
We can be together, be together (just be good to me)


Why you always gotta listen to your friend
why you always listenin’ to them
Why you always gotta listen to your friend
I don’t care what you do to them, just be good to me

 










영국의 에미넴! UK 힙합 씬의 떠오르는 신예 프로페서 그린 (Professor Green) ‘영국의 에미넴’ 이라는 별칭답게 런던 슬럼가 출신, 부친과의 불화, 트러블로 얼룩진 성장기,


고등학교 중퇴학력을 극복하고 랩배틀에서 승승장구하던 UK 백인 래퍼 ‘프로페서 그린’. 2009년 5월, 런던의 나이트

클럽에서 깨진 병으로 습격당해 목을 다쳐 트라우마에 빠졌지만, 그 2개월 후에는 릴리 알렌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실현시키는 등 다시 전환기가 찾아온다.


 Facebook에서 80년대 히트곡인 The S.O.S. Band의 ‘Just Be Good To Me’를 샘플링한 곡에 대해 채팅중에,

 릴리 알렌의 마음에 들어 피쳐링 참가가 결정된 것.

또한 릴리 알렌의 UK,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투어에도 함께 출연하였고, 이제 Virgin 레이블과의 첫 메이저 계약으로

 데뷔 앨범 [Alive ‘Till I'm Dead]를 발매했다.


"Just Be Good To Green (feat. Lily Allen)"은 달콤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도발적이고 거침없는 가사를 노래하는 릴리 알렌의 피쳐링에 날 선 보이스 톤, 강렬한 라임에 영국인 특유의 유머 감각이 더해진 ...




 





데일리경제] 힙합계의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을 예감케 하는 대형 신인 뮤지션이 등장했다.

가디언, BBC, NME 등 주요 매체들이 ‘영국의 에미넴’이라는 별칭과 함께 흥분된 리뷰를 쏟아 내고 있는 랩퍼

 프로페서 그린(Professor Gree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7월 19일 영국에서 먼저 발매된 프로페서 그린의 데뷔 앨범 ‘Alive Till I’m Dead’가 7월 22일 국내 발매된다.
2008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완성한 첫 번째 공식 음반인 ‘The Green EP’를 내놓으면서 주류 힙합 씬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 그린은 2009년 5월에 런던의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예상치 못한 싸움에 휘말리며 깨진 병에 목을 가격당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그


그는 엄청난 피를 쏟으며 앰블런스에 실려 갔지만, 다행히도 베인 상처가 목 동맥을 끊지 않아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찔했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프로페서 그린은 회복하자마자 바로 스튜디오로 들어가 자신의 정식 데뷔 앨범 작업에 전념하였고, 첫 싱글 ‘I Need You Tonight’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UK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르며 영국 전역에서 대 히트를 기록한 ‘I Need You Tonight’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호주

 록 밴드 이넥세스(INXS)의 대표적 히트곡 ‘Need You Tonight’를 샘플링한 곡으로 원곡의 음울하지만 경쾌한 리듬감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곡이다.

두 번째로 발표한 ‘Just Be Good to Me’는 영국 음악계의 귀여운 악녀 릴리 알렌(Lily Allen)이 피쳐링한 곡으로

UK 싱글 차트 5위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프로페서 그린 스타일의 ‘Lose Yourself’이라고 봐도 좋을 비장한 힙합 트랙 ‘Do For You’, 고전 소울의

그루브와 빠른 비트가 결합된 첫 트랙 ‘Kids That Love To Dance’ 등의 수록곡들 모두 만만치 않은 음악적 매력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번에 발매된 프로페서 그린의 데뷔 앨범 ‘Alive Till I’m Dead’는 그간 영국과 유럽 지역에서 등장했던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반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충분히 잊게 해 준다.


그간의 영국의 흑인 랩퍼들도 그렇게 잘 구현했다고 보기 힘든 미국 동부 힙합 타입의 유연하면서도 강렬한 플로우에 영국 특유의 유머 감각까지 추가된 그의 랩 실력은 오랜만에 거물급 힙합 스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황태환 기자  good1985@empal.com










 




파일:attachment/hiphop.jpg





보통 힙합이라 하면 음악의 한 장르를 뜻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힙합이란 말은 '엉덩이를 흔들다'(hip hopping 혹은 hopping hip)라는 는 말에서 유래했다.


당초에는 1970년대 후반 브롱스 남쪽을 비롯한 뉴욕 내 빈민가에 거주하는 흑인이나 푸에르토리코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힙합을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문화'라고 평하기도 한다.

힙합을 이루는 요소로는
·디제잉·그래피티·비보잉·비트박스가 거론된다.

힙합을 크게 나누어 음악, 춤, 미술의 영역에서 설명한다.

음악

시간상으로 봤을 때 블락파티가 먼저였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힙합 음악은 클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Hip Hop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힙합음악의 기반은 디스코, 훵크, (댄서블한)재즈음악 등 과거 60 70년대에 흑인들이 즐겼들었던 음악인데, DJ라는 일종이 선곡자가 노래를 틀고 사람들은 디제이가 틀어주는 [3]훵키한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디제이는 음악을 틈과 동시에 쇼호스트로서 파티의 분위기를 이끌었는데,사람들이 춤을 추면 디제이가 간간히 흥을

돋구기 위해 여러 미사여구를 덧붙였다.

 디제이의 쇼 호스트로서의 역할은 따로 분파되어 MC가 맡게되었는데,MC가 내뱉는 미사여구는 문학적으로 발전되어 Rap이라는 형태로 거듭나게되었다.


MC의 뜻은 보통 한국에서 말하는 방송 MC처럼 Master of Celebration의 약자로, 쇼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였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와 역사의 맥락탓에 현재에 와서 실제 뜻은 전혀 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엠씨같이 쇼호스트와 미사여구를 내뱉어 좌중을 웃게 만들고 파티의 흥을 돋구는 역할과 마찬가지로,

훵크 곡의 첫부분이나 1절, 2절 부분이 아닌 브레이크 부분에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현재 힙합 댄스를 다루는 B-boy와 B-girl, LockerPopper등의 기원이다.


이렇듯 힙합의 처음은 매우 자유분방하고 흥겨운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으며, 때문에 이러한 힙합의 독특한 성향은

 매우 포괄적이며 다른 요소들과 쉽게 섞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이 두드러지는 힙합의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이다.

 은 강하고 빠른 느낌의 비트 에 가사를 빠르게 내뱉는 것이었으나, 이후 이것은 편견으로 여겨지게되어 Rakim등의 뉴스쿨 래퍼들과 같이 이러한 랩의 한계를 깨뜨리는 래퍼들이 생겨났으며, DJ Premier와 같이 과거의 비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감이나 생략화, 혹은 단순화된 비트를 만드는 beat maker가 생겨났다.


 그러나 랩에 과거와 오늘날에 걸쳐 유지되고 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이는 라임, 우리말로 환원하자면 운율이다. 이는 과거 빨리 내뱉어지는 가사에 리듬감을 주기 위해 덧붙여진 시에서 차용된 요소인데, 본래 운율이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만큼 운율은 랩이라는 노래 아닌 노래를 더욱 예술적으로 격상시켰다.

랩과 더불어 힙합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디제잉이다.

  디제잉은 두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같은 곡들을 반복해서틀어 loop을 만들거나, 곡을 짜집거나 편집하여 전혀

다른 곡을 만들어낸다.


2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속도를 맞추어 두 곡을 한꺼번에 틀거나 한 곡 뒤에 바로 이어 다른 곡을 트는 개념도

힙합에서 제일 처음 정립되었다


. 클럽에 가 보면 알겠지만 파티나 공연장 등지에서 적절히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는 사람을 보고 DJ라 부르는데, 힙합 DJ는 단순히 음악을 트는 역할을 넘어, 두대의 턴테이블에 얹어진 같은 LP판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인 저글링이나,

 곡안에 담긴 노래의 드럼라인만을 소리 조각마다 시간차로 긁으며 연주하는 고도의 기술인 드러밍을 하거나 또는

턴테이블을 악기로서 다루어 스크래치를 한다.


 여기서 기술적으로 심화된 이들과 원래의 DJ개념인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 1995년도에 DJ Babu가 턴테이블리스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더불어 힙합 디제이의 저런 신묘한 기술을 가능케 하는 장비는 보통 두대의 턴테이블 사이에 놓이게 되는 믹서인데,

믹서에는 Crossfader라는 부품이 있다.


이 Cross Fader는 디제이가 탄생하기전에도 존재하였으나, 힙합문화가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랐듯, 디제이들 역시 가난하였으므로 기존에 존재했던 비싼 장비를 구할 수 없거나 또는 그 존재 조차 몰랐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Cross Fader을 개량한 사람이 오늘날에도 디제이로서 활동하는 전설적인 디제이인

Grandmaster Flash이다. 


이때쯤부터 힙합에서 말하는 DJ는 턴테이블리스트 DJ를 가리키게 되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에 더해서 비트박스도 4대요소로 뽑지는 않아도 힙합의 하위 카테고리로 구분을 할 수 있다.

태동 이후, 힙합 음악으로 음반을 낼 시기 부터
샘플링이 당연시 되어왔던 장르로 과거에는 샘플링이 완전히 새로운

음악 작법이었고, 관련 법규도 미미했지만, 이 샘플링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힙합 뮤지션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면서

저작권에 관련된 문제들이 생겨났고, 그 후부터 샘플링은 항상 힙합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곡 마다 일일이

 샘플링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고 사용비를 지불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무단 샘플링이 만연해 있다.


G-DRAGON표절사건 때문에 이 논란이 더 심해졌다.

 샘플링이면 다 표절인 줄 알고 샘플클리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디시뉴스에 슈프림팀이 표절했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고, 리쌍의 곡 중 일부가 모 뮤지션의 곡들과 흡사 해서 알아봤더니 본인들이 선배 뮤지션을

 존경하는 뜻에서 재창조 했는데 이게 표절이냐 아니냐 라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음악장르나 예술이 어느정도는 모두 그렇지만, 힙합은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미 시간적으로 죽어버린것을 다시 가지고와서 부활시키는 것에 비교적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풍조가 있다.


그래서 래퍼 아이스-티가 남긴 "힙합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단지, 모든 것을 재창조했을 뿐."이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자기 자랑, , 명예, 파티, 섹스 등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가사 내용 역시 단골 까임거리이다.

 남녀차별적인 가사도 아주 많다. 물론 찾아보면 그렇지 않은 가사들도 많다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가사는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에(...) 더욱 선입견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남녀차별 적이고 범죄미화 등의 성향은 80년대 중후반 서부 힙합의 영향으로 이후 래퍼들의 문체나 어투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돈 자랑 같은 경우 흑인노예법을 마지막까지도 놓지 않았던, 그리고 아직도 미국 내

제일 유색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의 분위기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반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본토 힙합 뮤지션들은 심심하면 감옥에 들락날락 거리는 걸로 유명하지만 국내 힙합 뮤지션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바른 생활 사나이들이 대부분.  갱스터 힙합의 실재적 경험에 의거한 텍스트를 그대로

가져왔다가는 국내에서 탄압 받기 딱 좋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면에서 조심하는 편.

다른 장르에 비해 정체성 논란이 심한 편이다. 그냥 장르 이름일 뿐인데 "누구누구는 힙합이 아니다" 같은 논쟁에

명예를 거는 걸 보면 리스너들에게 힙합은 단순한 장르를 뛰어넘은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패션 모드로 봐도 좋을 정도.

모든 대중음악이 그렇듯 힙합의 경우도 지역에 따라 음악적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발상지이자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크게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와 LA를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여기에 흑인 인구가 많은 미 남부 전역에 산재한 여러 지방도시

(애틀랜타,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휴스턴, 멤피스...)를 거점으로 한 서던 (Southern, Dirty South라고도 한다),


 시카고와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중서부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미드웨스트(Midwest, 혹은 북부)까지도 구분할 수 있다. 보통 동, 서, 남부 힙합으로 나눈다.

현재 2016년에는 남부의 애틀랜타캐나다의 실질적인 수도인 토론토가 제일 뜨겁다.


현재의 정서와도 제일 잘 맞는 음악을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성공한 아티스트를 최근에 제일

많이 배출했기 때문인듯.

큰 줄기라 할 수 있는 이스트/웨스트간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1996년 이후 지역 간의 구분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으며, 1998년경 이후로 점증한 서던 힙합 등 다양한 영향들이 힙합 전체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힙합의 경우도 이에 영향을 받아 여러가지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처럼 대놓고 사우스를 표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한국은 원체 땅덩어리가 좁기도 하고 뮤지션들이 다 서울 올라와서 음악하는 탓에 지역으로 씬을 나누는 짓은

안 한다.


 같은 지역 출신들끼리 크루를 이루거나 자기 출신지를 부각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예를 들어 제이통의 부산. 그런데 제이통도 서울에 재능있는 래퍼들이 더 많고 빈약한 와중의 인프라도 그나마 서울이 부산과 비교할 수 없이 좋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인지 제이통의 크루 벅와일즈도 초창기에나 부산 중심의 크루였지 나중에 가서는 서울 출신이 더 많아진다.


한국에서의 힙합 음악

한국에서의 특징 중 하나는 과는 달리 대중음악에서 견고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한 장르란 점이다.

비록 1990년대 초에는 힙합음악은 댄스곡에 들어가는 양념요소에 불과했지만, 1997년부터 점차 이현도, 김진표,


 지누션 등이 힙합앨범을 내게 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드렁큰 타이거의 정규 1집 <Year Of The Tiger>가 발매되고 이 앨범이 엄청나게 히트를 치면서 천리안이나 신나라 레코드 등을 통해서 힙합 컴필까지 내는 등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리쌍 등의 무브먼트 쪽의 힙합뮤지션들과 조PD, 주석 등의 곡이 히트를 치면서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락, 힙합이 모두 대중적이지 않던 시절, 대한민국에서 힙합이란 장르를 본격적으로 대중가요에 불러와 큰 영향을 끼친 그룹이라면
서태지와 아이들현진영, 듀스를 꼽을 수 있다.

  최초로 힙합을 선보인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많지만,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 셋은 뉴잭스윙적 요소도 다분했기에 드렁큰타이거가 등장했을 때 이른바 정통힙합을 내세울 수 있었다)

최초의 랩음악으로 알려진 홍서범의
김삿갓의 경우 다소 뜬금없는 노래제목과 가사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엄밀하게 보자면 최초의 힙합음악이라 부를 수 있다.

홍서범의 김삿갓이라는 곡은 (훅에 한국적 뽕삘이 약간 있지만)펑키한 디스코 사운드에 랩을 올린 형태로 초창기

올드스쿨 힙합음악의 작법을 그대로 유지했다


. 가사 또한 시대를 감안한다면[20]한다면 운율을 통한 라임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다.

 다만 가사가 김삿갓을 소개하는 내용이라 굉장히 뜬금없었고, 홍서범 개인의 랩스킬이 다소 부족한데다 패션이나

 춤 또한 힙합과 무관[21]하게 정장차림에 율동정도이었던 지라...


다만 80년대 중반엔 미국에선 런-D.M.C.가 등장해 힙합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힙합음악에 격렬한 춤을 추는 뉴잭스윙이 떠오르는지라 조금 늦은감은 있다. 더불어 홍서범은 락커출신에 힙합음악도 김삿갓 일회성에 그치기에 희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 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은 당시 유행하던 뉴잭스윙을 한국에 들여와 음악 뿐 아니라 패션,

춤까지 소개하며 최초의 힙합 뮤지션으로 인지된다.

그 후에
지누션, DJ DOC, 드렁큰 타이거, 1TYM 등이 본격적으로 랩다운 랩을 선보였다. 특히, 드렁큰 타이거나 지누션 그리고 원타임의 테디는 미국 본토에서 힙합을 가까이 접하면서 자라왔던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나라 힙합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2010년 요즘의 중고등학생들이 힙합에 열광하는 것과는 다르게, 1990년대 한국에 소개되었던 힙합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중반즈음에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았는데, PC통신 동호회가 유행하였고 여러가지의 동호회 모임중 힙합 동아리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Black Louder Exploders(Blex)https://ko.wikipedia.org/wiki/BLEX와 Show N Prove(이하 SNP)https://ko.wikipedia.org/wiki/SNP_(%ED%9E%99%ED%95%A9_%ED%81%AC%EB%A3%A8)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 힙합 1세대에서 1.5세대들은 1990년대 말 즈음에 PC통신을 통하여 만난 사람들과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힙합을 즐기고 또는 직접 했던 사람들이다.

Verbal Jint,
P-type, 데프콘은 나우누리 SNP출신이고 가리온의 MC Meta는 하이텔 동호회 였던 Blex에서시삽을 맡아 활동하였다.


회고에 따르면 그때는 미국의 힙합 음반을 구하기가 여러모로 굉장히 어려웠는데 누군가 음반을 구하거나 TV음악전문 프로그램에서 간간히 틀어주던 힙합을 녹음하면, 모두가 모여 그것을 함께 감청하고 들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도 하며 힙합을 즐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이 예전에 썼던 가사에는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들었다는 표현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티비를 통해 알려지던 힙합과 미국 본토에서 어렵게 수입되던 힙합에는 언어적 차이점을 무시하고라도 상당한 모순이 있었다.


그것은 이 때까지 알려졌던 랩이라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대중의 인식이 그저 빨리말하면 되는 것에 머물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방송을 통해 알려지던 랩과 힙합이 가진 반항기라는 컨셉을 주된 컨셉으로 삼았던 아이돌 그룹의

역할이 컸는데, 1990년대 말 H.O.T와 같은 아이돌 그룹이 했던 랩은 은율을 무시한 채 그저 말을 빨리 내뱉거나

 또는 "내가 했었지, 나도 했었지, 밥먹어야지, 내일 학교 가야지"와 같은 반복적인 매우 초보적인 은율을 사용했었다.


이러한 모순을 느꼈던 PC통신 힙합동아리 회원들은 이 문제에 심각하게 논의하였고, 이들 중 어느 사람들은 힙합을

듣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힙합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한국식 랩에 대한 방법론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모순점과 한국어로 내뱉는 랩에 대한 방법론은 당시 동호회들 사이에서 굉장한 논의거리였다.

SNP와 Blex는서로를 비판하며 충돌하고는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경쟁과 논쟁은 한국어로 뱉는 한국식 랩의

자양분이 되었다.


 Blex는 두자리 라임을 주로 사용하고 반복되는 어휘를 최대한 피해 랩을 함에 있어서 은율이 주는 리드미컬함과

 은율 자체의 다양성을 꾀했던 반면 SNP의 멤버들의 방법론은 보다 다양해서 피타입은 랩을 드럼으로 여겨 운율을

사용함과 함께 한 어절이나 음절에 집중하여 억양과 발음의 강약을 조절함으로서 리드미컬한 랩을 꾀했고, 반면

버벌진트는 다음절 라임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여 말 그대로 많은 음절로 이루어진 복잡한 은율로써 리드미컬한 랩을

 꾀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2008년 힙합플레야와 리드머라는 힙합전문 웹사이트로까지 이어졌는데, 이 때에도 사람들의 논의의 요점은 크게 나뉘어져서 모음과 자음을 이용한 은율에 대한 의견들과 더불어, 다음절 라임에 대한 실용성과 효과와

두세음절 롸임에 대한 효과와 실용성에 대한 비교와 토의가 논의의 주제였다.


그러나, 미국의 여러 래퍼들이 그들의 노래에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버벌진트의 다음절 라임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다음절 라임은 만들어내기가 까다로워 사람들은 점차 이 2가지 방법을 혼용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우리나라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시작이었다.

가요계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네티즌들에게 까이고 까이는 장르 중 하나다. 일반인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비율의

힙합 뮤지션들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군면제 또는 의가사전역을 할 정도의 심각한 유리멘탈 정신질환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는 온갖 허세와 자신들은 개의치 않는다는거나 까려면 까든가 투에 뻔한 레퍼토리.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을 경우 이 쯤 되면 유명 힙합가수들이든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든 멋있긴 커녕, 소위 힙찔이라고

 표현하는 현상은 당연한 듯 보인다.


여기에다 마약문제까지 추가하면 첩첩산중(...)이다. 그리고, 걸핏하면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인 표절에다 일명

힙부심이 높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까이는 일이 많다.

물론 지누션, 타블로 또는 박재범 등 처럼 애초에 병역의 의무가 없는 외국인들은 물론 논외다. 국내에서 상업 활동을 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논란은
힙합 문서와는 벗어난다.

물론, 이 문제는 꼭 힙합이란 분야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연예계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힙합을 사회 비판을 하는 장르 또는 사회비판이 뿌리인 장르라고 보는것은 엄연한 '착각'이다.

 말 그대로 래퍼들은 하고 싶은말을 랩으로 할 뿐이라 주제는 자기자랑일 수도 있고 디스가 될수도 있고 감성일수도,

 스토리텔링일수도 있다.


그냥 래퍼 본인이 사회비판이 하고 싶다면 사회비판하는 가사를 쓰는 것일 뿐.

다른 장르들과 하등의 차이점이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약간 미묘한 문제인데, 미국에서는 힙합이 나름대로는 뿌리가 있는 장르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는

 한국과 가깝고 교포들이 많은 90년대 서부 힙합 위주로 들어왔었다.


당시 NWA 등 첨예 사회 비판적 경향은 미국에서도 커다란 화제였기에 한국에서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인식했고,

 미국에서 화제가 되는 음악임과 동시에 한국적인 정서에도 상당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상당히

 많았다. 90년대 한국은 대중음악에도 상당히 높은 예술적, 사회적 가치와 성취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실제로 성취하고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민중가요 등 7, 80년대부터 쭉 이어진 젊은이들의 사회비판적 경향과

더불어 공익적 가치에 대한 존중은 00년대, 10년대보다 훨씬 강렬했기 때문에 힙합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알릴 수 있었다.

힙합이 너무나도 생소했던 시절 부족한 랩스킬과 비트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가사로 써냈다면 기성세대를 비롯한

기존의 대중들이 보기에는 무슨 거지같은 놈들이 희한한 옷과 머리로 몰려나와서 어중떠중 떠드는 타령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미국에서 최신 유행하고 있는 사회비판 장르의 한국화라는 위치를 획득하면 훨씬 모양이 좋아보였다.


90년대 말은 인디 락씬도 그렇듯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전통적인 감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TV에 나오는 화려한 댄스와 발라드 음악의 지분도 엄청났지만, 민중가요와 포크 등으로 대변할 수 있는 감성에 대한

수요도 분명히 존재했고 그 틈새를 사운드와 문화적 아비투스로 무장한 인디 락과 힙합이 잠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한국에서 이 장르는 힙합이라기보다는 주로 갱스터 랩으로 불렸으며, 비단 드렁큰 타이거나 업타운 등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짝 나타났다 사라진 많은 그룹과 가수들이 갱스터랩을 시도했었다.

 물론 이는 HOT로 대변할 수 있는 세기말 반항아적인 감성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원래 힙합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힙합이 한국에 도입된지 벌써 20년이 넘은 시점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원래 힙합은 사회비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힙하퍼들과

 사회비판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한국 힙합 자신의 모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 힙합은 사회비판이라는 주제와 그 주제의 이점을 확실하게 이용해서 한국에서의 정착과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힙합은 본토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고,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으며, 그 점을 힙하퍼들 본인도

 확실하게 자각하는 만큼 힙합과 사회 비판은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은 몰라도, 한국 힙합과 사회 비판이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은 틀린 얘기이다.


이용할 때는 좋다고 이용해 놓고 다 컸다고 스스로의 뿌리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힙합이 그런 장르가 아니라지만, 한국 힙합은 끊임없이 디스코나 소울 등 힙합의 원류가 되는 사운드에 소홀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 힙합과 본토 힙합은 분명히 다르다. 초창기 한국 래퍼들 가운데 사회비판적 요소를

차용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비판적 요소를 통해 힙합이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만큼 대중들의 인식은 분명히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 와서 편한 대로 과거를 세탁할 수는 없다.

힙부심을 부리는 힙하퍼들은 다른 힙하퍼에게도 까이기 마련이다. 특히, 타블로는 라라라에 출연 했을 당시, "요즘

 힙합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최고다라는 가사만 쓰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음악이 절대로 옳다고

 하지 않는다.

 음악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면서 힙부심을 부리는 힙하퍼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다.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는 현재 한국 가요계답게 힙합을 추구하는 아이돌 그룹들도 늘고 있다.

 힙합계에서는 기획사의 기획에 계획되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있고, 넷상에선 아이돌과 힙합의 부정적 인식을 동시에 받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주류씬 한정으로 공격적이거나 퇴폐적이라는 이미지가 희석되어가고 있다.

말랑말랑하고 듣기좋은 사랑노래가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일은 아니긴 하지만, 묘하게 미국과는 반대가

되어가고 있다.


언더에서 하고싶은 말은 다 하고 살던 MC들이 오버로 나오면서 발라드 랩으로 부드러운 남자들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한국 힙합 팬덤들은 복잡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지금 힙합을 컨셉으로 하고 있지만, 데뷔 당시에는

 댄스그룹으로 시작했던 DJ DOC가 갱스터 힙합을 하는 유일한 그룹이라고 했을까...


다만 쇼미더머니같이 대중적 프로그램에서도 대놓고 욕을 할정도로 현재는 이런 현상이 많이 사라졌다. 특정인에 대한 디스곡이 인기차트에 올라갈 정도이다.

한국엔 특성상 아마추어들이 인터넷에 엄청 많다. 비트를 구하기 쉬우며, 가사 쓰고 랩 하면 되는 간단한 구조

때문이다. 웬만한 힙합 커뮤니티에는 자작곡 올리는 게시판이 거의 다 있다.

제대로 된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 프로로 전향한 사람은 정말 손에 꼽힌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산이, 빈지노, 블랙넛, 테이크원 정도가 있다.

다만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걸그룹에서는 도태된 장르이다.

소나무가 비주얼이 극상위권에 가창력도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로 걸그룹 생활을 출발한 탓에 가요계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