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1년 상인들 "명절대목 실종..3·5·10 조정을"
서울 동작구 소재의 노량진수산시장. 2017.9.21/뉴스1© News1 전민 기자
(서울=뉴스1) 전민 기자,이원준 기자 = "지난 1년간 매출이 많이 줄었어요. 법안 취지를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서울시내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저마다 근심걱정을 털어놓았다.
특히나 김영란법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농수산물·화훼를 취급하는 상인들의 시름은 더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상인 윤모씨(52·여)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윤 씨는 이 시장에서 20년째 전복·새우 등 해산물을 팔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1년간 매출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윤씨는 기다렸다는 듯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답했다.
그는 "예년과 비교해 1년새 매출의 3분의1이 줄었다"며 "명절 대목을 앞두고 해물 선물세트 예약이 들어와야 할 시기
이지만 예약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표적 명절 선물 중 하나인 전복 등 해물은 가격이 많이 비싸 김영란법 기준인 선물 5만원을 맞추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A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A씨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지난 설부터 이미 명절 대목은 사라졌다"며 "김영란법의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물 5만원은 해물 판매 상인들에게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서초구 소재의 서울고속터미널 꽃상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한산한 화훼상가…"연휴 때도 장사 안되면 가게 접어야 할 판"
화훼업계도 명절을 앞두고 울상을 짓기는 마찬가지다. 22일 오전 찾은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화훼상가는 오가는 사람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도 "벌이가 점점 팍팍해져만 간다"고 입을 모았다. 10년간 꽃가게를 운영해왔다는 최모씨(65)는 "지난 1년간 매출이 20% 이상 급감한 것 같다"며 "이정도 벌이로는 가게 유지하기에도 벅차다"고 한숨지었다.
최씨는 "비어있는 상점들도 버티고 버티다 장사를 접은 경우"라며 "김영란법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꽃이 잘 팔릴리
있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건물 3층에 위치한 화훼시장 곳곳에서 주인을 잃은 꽃과 화분들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상인 김모씨(52·여)는 "김영란법을 개정해달라고 그렇게 요구해왔지만 대목인 명절을 앞두고도 결국 변한 것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김씨는 "이번 연휴 기간마저 장사가 안되면 정말 (가게를) 접어야 할 판"이라며 "이곳 상인들 다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난과 화환 등 화훼류 소비는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법 시행 전인 지난해 1월부터 9월16일까지 aT 화훼공판장 경매 금액은 약 795억원 이었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인 올해의 경우 같은 기간 경매액이 758억원에 그쳤다.
올해 실적이 전년 대비 약 4.3% 쪼그라든 셈이다.
소매업도 마찬가지다. 한국화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1200여곳 화훼가게 거래 금액이
1년 전보다 27.5%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폐업률도 약 12%에 이르러 많은 화훼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훼·농축수산물 도소매업, 음식점업 등 300개사 대상 설문조사의 음식물·경조사비·선물
적정 가액범위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 News1
◇커져가는 3·5·10 개정요구에 법안 발의도…여론은 반대높아
현행 청탁금지법은 수수(收受) 범위를 음식물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금액 제한이 너무 과해 액수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화훼·농축수산물 도소매업, 음식점업 등 300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의견이 60%에 달했으며 56.7%는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57%의 업체는 '금액 기준을 현실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이들이 답한 적정 금액은 Δ음식물
5만4000원 Δ선물 8만7000원 Δ경조사비 13만2000원 등으로 조사됐다.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법 개정 움직임도 나오는 중이다.
강효상·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과 박준영·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은 각각 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의 개정안은 가액범위를 음식물 10만원·선물 10만원·경조사비 5만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도 개정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청탁금지법 시행이
공직 투명화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완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검토할 시점이 됐다"며 연말까지 대안을 마련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일 소상공인·중소자영업자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고 있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특정 산업 분야가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경제·사회적 영향을 바탕으로 보완 방안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검토하기로 했다"며 가액 상향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개정 움직임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사회학회가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청탁금지법에 대한 인식에 대해 지난해 11월과 지난달, 두차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규제의 범위와 강도가 지금
보다 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규제의 범위와 강도가 지금보다 더 강해야 한다는 의견은 1차 설문조사에서 43%, 2차 설문조사에는 48%가 나왔으며, 현재가 적절하다는 의견도 1차 38%, 2차 32%에 달해 개정을 원하는 여론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교직원 5만여 명 조사
학부모 84% "선물 등 부감 감소"
교직원 82% "부정청탁 사라져"
학부모 넷 중 한 명 아직도 법 잘 몰라
조희연 "교육 등 법 안착 위해 더 노력"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학부모가 상담 차 학교를 방문
할 때 요즘 풍경이다. 오는 28일은 청탁금지법 시행 1주년이다.
학부모들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선물 부담이 줄고, 학교를 방문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법 적용이 ‘비현실적이고 규제가 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선물 등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법 시행 후 학교 교육과 관련해 느낀 변화에 대해 물었더니, 학부모의 84%가 ‘학교 방문 시 선물 등 부담이 감소했다’고 답했고. 다음으로 ‘선물·식사 등 접대 감소’(63%), ‘촌지 등 금품수수 관행 근절’(62%)’ 등의 순으로 응답이 높았다.
법 시행 후 대부분 학교는 가정통신문과 핸드폰 문자 등을 통해 학부모에게 ‘학교 방문 시 일절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공지를 보내고, 학교 행사도 ‘선물 없는 행사’로 진행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
스승의 날 행사가 대표적이다.
한편, 학부모 넷 중 한 명(26%·9386명)은 여전히 법 적용의 세부 사항을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직원은 9%(1591명)가 ‘청탁금지법의 세부 사항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청탁금지법이 시행 초기 다소 혼란과 논란도 있었지만 학교 현장에서 청렴 문화 확산 등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며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 청탁금지법이 학교에 더 잘 적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현진·이태윤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
'3·5·10만원' 상한액 규정 현실성 논란
"소비위축" vs "다수 국민 개정 원하는지 의문"
권익위 "경제영향평가 바탕 검토" 신중한 입장
청탁금지법은 시행 초기 “사제지간에 캔커피 한 개, 카네이션도안 되느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시행 첫날 한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건넸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다는 주장과 평가자의 위치에 있는 교수(교사)와 학생 사이에선 소액이라도 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논란은 11월 권익위·법무부·법제처 등 관계부처가 모여 ‘안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청탁금지법은 시행 1년을 맞는 동안 사회 곳곳에서 점차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평가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8일부터 지난 21일까지 접수된 청탁금지법 신고 접수 건수는 부정청탁 179건, 금품 등
수수 207건, 외부강의를 포함한 기타 23건까지 총 409건이다.
법 시행 6개월간 전체 공공기관에 접수된 신고는 2311건이었다.
이 가운데 금품 등 수수 신고는 412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공직자들이 금품 수수 시 반환·자진 신고한 건수가 255건(
62%)에 달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터키 알파고 "긍정적 방향,터키에도 있었으면"
일본 오누키 "처음엔 요란하더니 많이 안바뀌어"
중국 루싱하이 "탄핵정국에 묻혀,편법 접대 계속"
미국 페스트라이쉬 "국회의원 빠진 것은 문제"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은 김영란법 1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알파고="식사비 3만원처럼 현실성 없는 부분은 조정돼야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회가 투명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건
맞다. 전체로 보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화훼농가나 한우업체 등에서 김영란법 이후 어려워졌다고 호소한다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불법) 안마업소를 금지해서 안마업소 주인들이 못 살겠다고 한다고 그걸 풀어줘야 할까. 언젠가 터키에도 도입하고
싶은 법이다."
-여러분들의 나라는 어떤가. 비슷한 법이나 규정이 있나. ^오누키="일본엔 2000년에 일본판 김영란법인 ‘국가공무원윤리법’이 도입됐다.
1998년에 대장성(재무성의 전신) 엘리트들이 금융업체에게 접대를 받은 게 들켜서 생겼다.
‘노팬티 샤브샤브 사건’이라고 너무 유명하다.
여종업원들이 속옷을 입지 않고 서빙을 하는 비싼 샤브샤브집에서접대를 받아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식사비를 신고토록 했고,골프 접대는 안되고, 장례식 부조금도 제한하는 내용이다.
김영란법과 달리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된다.이렇게 규정이 돼 있지만 계속 어기는 사례들이 나온다."
^알파고=“터기엔 ‘꿀 항아리를 잡는 사람이 당연히 손가락을 빤다’는 속담이 있다.
권력이 있다면 어느정도 비리는 당연하다고 보는 인식이 있다.
큰 비리는 뇌물죄 같은 형법으로 다스린다.”
-식사비 한도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알파고="한국은 (터키에 비해 공무원 부패)나은 편인데 식사비까지 정해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친한 사람들에게 좋은 식사를 사고, 식사를 대접받는 건 한국 고유의 문화 아닌가. 일본처럼 큰 사건이 터진 뒤였다면 사람들이 불만이 없을텐데 (식사비 규정은)억지로 법을 만든 듯한 느낌이다.
사회 정의를 위해 한 민족의 정서를 바꾼다는 건 무리가 따른다."
^오누키="한국 사람들은 더치페이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공감을 못하는 것 같다. 한국 문화에 안 맞아 정착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초등학생 엄마들끼리 만나도 한 사람이 ‘오늘은 내가 낼 게요’하지 않나.
일본은 생활속 더치페이에 익숙하다.
택시를 타도 똑같이 나눠내고, 12명이 밥을 먹어도 12분의 1씩 잔돈까지 계산해 낸다. 한국의 택시 기사분이 ‘일본인
관광객 손님들이 택시비를 더치페이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
기다리기 힘들다’고 하더라. 식사비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본질을 벗어나 있다.
법 취지는 ‘접대받지 말고 더치페이를 하라’는 것인데 논란은 금액문제로, '3만원은 오케이, 3만1000원은 안된다'로
번지더라. 이상했다."
^페스트라이쉬="식사비 내는 게 한국사회에서 큰 문제는 안되는 것 같아서 이해가 안된다.
교수는 큰 비리를 저지를 위치도 아닌데 대상으로 포함시킨 것도 그렇고, 특히 국회의원들이(국회의원의 청원활동이) 빠져 있는 건 큰 문제 아닌가. 큰 비리는 그쪽에서 터지는데."
-선물 비용도 제한돼 있는데 바꿔야 하나. ^루="아이가 한국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더라.
예전 같으면 명절 같은 때 선생님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이나 농가의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한국은 추석 때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가 중국보다 더 정착돼 있다.
그래서 더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얼마 전 폐기해야할 정도로 오래된 미국 헬기를 샀다는 (방산비리)보도가 있었
는데 그런 비리를 어떻게 막을건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나."
^페스트라이쉬=(학생으로부터 캔 커피를 받아도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를 듣더니)"외국의 교환학생이 고국에 다녀오면서 사온 초콜릿도 안되는 것이냐.
당혹스럽다."
강혜란·문병주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연합뉴스TV 제공]
비싼밥 안 먹고 저녁이 있는 삶..법시행 1년의 변화
공무원들, 민원인과 식사 꺼리고 고급식당 발 끊어..교사들은 간식·선물 사절
대학생은 교수에게 선물 대신 '감사 이메일'..'란파라치' 실적은 전무
(서울·세종=연합뉴스) 이율 양정우 임기창 이재영 기자 = "가장 큰 변화요?
민원인들이 박카스나 비타500을 사 오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더라고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에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무엇을 가장 큰 변화로 여기는지 묻자 이런 답변이 나왔다.
과거에는 청사를 방문한 외부인들이 담당 공무원에게 건넬 음료수 박스를 두세 개씩 들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흔히 눈에 띄곤 했다. 지금은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종시에 있는 정부세종청사 역시 민원인이나 기업 대관업무 관계자 방문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처럼 음료수나 간단한 선물을 들고 방문하는 이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청탁과 접대가 일상적이던 공직사회 문화를 근본부터 바꾸고자 곡절 끝에 도입된 청탁금지법이 오는 28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영세·중소기업이나 식당업계, 축산농가, 화훼농가 등이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며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공직사회 곳곳에서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는 등 법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이다.
◇ 민원인과 밥 안 먹고 비싼 식당 안 간다…공직사회 변화 중
관가에서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크고 작은 변화가 눈에 띈다.
업무와 관련된 민원인과 식사하는 일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고, 행여 오해를 살지 몰라 비싼 식당에는 아예 발길을
끊는 분위기다.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1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몇 차례씩 업계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의했는데,
법 시행 이후 그런 제안이 뚝 끊겼다"며 "어쩌다 저녁을 먹어도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정도"라고 말했다.
청사 주변 일식당이나 한식당 고급식당들은 문을 닫거나 리모델링을 거쳐 3만 원 이하 메뉴를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모임을 해도 인근 전통시장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식당을 찾는 일이 일상화했다.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전과 달리 비싼 식당에는 아예 가지 않고, 저녁을 먹더라도 간단히 1차만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세종청사 인근 한 식당은 청탁금지법 규정에 맞춰 가격을 3만 원에 맞추되 '조용한 대화'를 좋아하는 공무원의 특성을 고려해 독립된 방을 여러 개 만드는 쪽으로 리모델링했다.
이 식당은 당일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책잡힐 만한 상황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도 커졌다. 서울 시내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일선 공무원이 점심시간을 전후해서는 민원인과 만남이나 회의를 가급적 피하려 하고 있다"며 "식사 자리는 아예 삼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직 내부 '악습'도 사라졌다.
상사와 부하 직원이 저녁을 먹을 때 일부 자리에서는 부하 직원이 밥값을 내는 관행이 있었으나, 이런 문화가 사실상
없어졌다고 여러 공무원은 전했다. 회식 등 직장 술자리 자체가 눈에 띄게 감소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됐다는
경우도 많다.
관가의 이런 풍토 변화는 공무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금융권 등 업계 분위기도 바꾸고 있다.
대관업무를 주로 맡아 온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주말 골프 약속이나 평일 술자리가 줄어 입사
이후 처음으로 취미활동이나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이는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공직자는 아니지만,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언론사 기자들 역시 공무원과 식사 자리가 줄었다. 저녁 시간을 자녀와
보내거나 평소 하고 싶던 공부를 하며 자기계발을 시작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한 방송사 기자 A(35·여)씨는 "전에는 저녁 약속과 야근이 이어져 일주일 내내 친정에 아이를 맡기는 주가 많았는데
청탁금지법 덕분에 그런 주가 없어졌다"며 "법 시행 전과 비교해 약속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 아이들도 "김영란법에 걸린다" 농담…교육현장도 법 정착
교사에 대한 청탁이나 금품·향응 제공이 '촌지'라는 말로 대표되던 일선 학교에서는 청탁금지법이 무난히 정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情)이 없어질 만큼 '지나치게 잘 정착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30) 씨는 "자녀가 학급회장이 되면 반 친구들에게 '한턱 쏘는' 일도 없다"면서 "체육대회나 체험학습 때도 담임교사 식사를 따로 챙기지 않아도 돼 교사와 학부모 서로 부담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김씨는 "예전 생각에 학교로 햄버거 등을 보내는 학부모도 있지만, 담임교사는 먹지 않고 학생들만 먹도록 지도한다"
면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주면 주변 아이들이 '너 김영란법 걸린다'고 농담할 정도"라고 말했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맘 카페' 등에는 "정말 고마운 선생님이 있는데 청탁금지법에 걸리지 않고 간식이나 작은 선물을 드릴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위원도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폭위원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여년간 교직 생활한 교사 이모(58)씨는 "스승의 날이나 명절 등에 '받지 않고 주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은
좋지만, 기존 관습이나 문화를 생각하면 서운한 것도 사실"이라며 "학급 내에서 음료 하나, 간식 하나를 챙긴다고 해도 법 적용 대상인지 알아봐야 하는 등 주변 눈치를 보게 됐다"고 푸념했다.
대학가에서도 학생이 교수에게 선물하는 모습이 사실상 사라졌다. 학생과 교수들은 "청탁금지법이 머리에 입력된 후로 교수들이 일절 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다 보니 학생들도 이제는 자연스레 준비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좋은 세미나가 있길래 열심히 하는 학생 한 명을 데리고 갔더니 며칠 뒤에 카카오톡으로 음료 기프티콘을 선물하더라"면서 "법에 저촉될까 봐 '선물 거절' 버튼을 누르고 마음만 받았다"고 말했다.
법 시행 이후 대학생이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이메일 보내기'가 주를 이루는 분위기다.
대학생 조모(25)씨는 "여러 교수님이 '음료수 선물도 조심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고, 학생들도 괜히 교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기 싫으니 학기 끝나고 '수업 너무 좋았다'는 이메일을 보내는 정도로 표현하게 됐다"고 전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학생들이 교수에게 전달한 감사 영상 메시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음료수 한 병보다 인사 한 번이나 질문 한 번이 더 고맙다"면서 "청탁금지법 때문에 사제
관계가 서먹해진다는 우려는 전혀 현실이 아니다"라며 법 시행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한 학생들이 수업에 빠지더라도 학점이나 출석을 인정해주던 관행은 '선심'이 아닌 '제도'로 변화
하고 있다. 교수 재량으로 이뤄지던 이같은 관행 역시 청탁금지법상 부정청탁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는 올 2학기부터 교육부 지침에 따라 학칙에 출석 인정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한양대는 취업이 결정된 졸업예정자가 기말시험 전까지 재직증명서 등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최장 8주까지 공결을 인정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온라인 강의나 과제 제출 등 대체 수단을 마련한 대학도 있다.
◇ '란파라치' 실적 전무…"대상자들 몸 사리고 입증도 어려워"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에는 신고포상금을 받고자 법 위반 사례를 찾아다니는 '란파라치'가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까지 청탁금지법 신고자에게 포상금이 지급된 사례는 0건이다.
지난해 란파라치 교육 프로그램을 별도로 만든 서울의 한 공익신고 교육 학원은 수강생으로 북적거리던 법 시행 초반과 달리 조용한 모습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란파라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자들이 몸을 사리고 매우 조심한다"면서
"공익신고 요원 입장에서 보면 '사냥감이 없어졌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가 예상보다 쉽지 않아 란파라치 활동이 저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제3자 신고는 위법행위가 발생한 시간과 장소, 내용을 기재하고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신고자가 위법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 란파라치 학원 관계자는 "신고하려면 법 위반행위가 확실하고 증거물을 제출해야 하는데 당사자들이 서로 입을 맞추면 그만"이라며 "한 건 입증하려면 경비만 나가고 '생고생'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임창오 한국신고포상양성협회 회장은 "란파라치는 처음부터 없었다"며 "청탁금지법을 피할 각종 '꼼수'가 등장하고
, 이를 밝힐 증거는 찾기 어려울 게 분명했는데 '돈이 된다'는 부분만 강조돼 엉터리 교육이 난무했다"고 지적했다.
법 시행 이후 1년이 지나는 동안 경각심이 무뎌져 법 저촉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는 공직사회와
언론계 등의 평가도 있다. 한 공무원은 "처음에는 밥값을 각자 냈지만, 요즘은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며 "청사 주변 일부 식당에서는 다시 비싼 메뉴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대검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8일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올해 8월까지 111명(동일인 중복 합산)이 수사를 받았고 이 가운데 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 회부된 7명 중 구속기소가 3명, 불구속 기소 2명, 벌금형 약식기소 2명이었다.
1심 판결이 선고된 인원은 현재까지 2명이다. 지난 7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비한 도로개량 사업을 맡아 도로포장 업체로부터 현금 200만원을 받은 한국도로공사 전 직원이 벌금 500만원의 처벌을 받았다.
전체 피의자 중 71명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고, 25명은 혐의없음(3명), 각하(22명) 등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보호사건으로 법원에 이송되는 등 기타 경우는 8명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 마련된 부패ㆍ공익침해 신고센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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