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유익한 정보

민주노총 사무총장 이영주 도심 한복판에 연금된 박근혜 정권 제거 1순위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양지웅 기자

 




[경향신문] 서울시 중구 정동길 5. 서울 정중앙 광화문 네거리에서 700m밖에 안 떨어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이다.

 이곳에 2년 10개월째 ‘연금’ 상태에 있는 한 여성이 있다. 한겨울에는 난방이 끊어진 건물 구석에서 냉기와 싸워야

하고, 더운 여름에는 샤워시설이 없는 화장실에서 대충 씻어야 한다.


물론 이번 길고 긴 추석 연휴에도 집에 갈 수 없다.

그는 80만 조합원의 합법적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52)이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처음 직선제로 선출된, 그리고 첫 여성 사무총장이다.


그는 2015년 11월 14일 이후 경찰의 수배를 피해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생활한다.

 민주노총이 조사한 결과 그는 2015년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가장 많이 통신자료를 수색한 인물이었다.

그는 본인뿐 아니라 남편과 두 아들의 통신자료까지 탈탈 털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수석부위원장 출신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인 그는 박근혜 정권이 제거하려 했던 1순위 인물로 꼽혔다.

 새로운 촛불정부가 들어선 지 4개월이 넘은 지금 이것이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지론에 맞는 것인가.





1계급 특진 현상금 걸린 수배인물



“여기서 일하다 먹고 자고 눈뜬다.

식사(점심·저녁)는 경향신문 구내식당(민주노총은 경향신문 건물에 입주해 있다)에서 해결하고 휴일에는 당직자가

밖에서 사다준다.


외국의 노총 간부들이 찾아와 ‘집으로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고 한다.

 (하~하~ 그는 웃었지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작년 초 구속됐던 동지들이 ‘냉난방되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서울구치소가 훨씬 편하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그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고 한 남편의 아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도, 어머니 역할도 전혀 못한다.

그는 “두 아들이 한 달에 한두 번 면회오듯 찾아온다”면서 “이번 추석 연휴에는 가족들이 번갈아 찾아오도록 날짜를

일일이 찍어줬다, 우리 가족이 민주노총 당직을 서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무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유는 그를 잡으면 1계급 특진이라는 ‘매우 큰 현상금’이 걸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선 그 1계급 특진을 노린 정·사복 경찰이 건물 주변에 쫙 깔렸다.

심지어 은밀히 폐쇄회로TV(CCTV)까지 설치했다. 박 정권이 무너진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경찰의 수배조치는

해제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노동부 장관이 이곳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정부가 수배 해제조치를 내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날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방문해 ‘한상균 위원장 실형 선고는 문제가 있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돌아가 바로 ‘석방돼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것이 현 정부의 한계와 정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실형선고는 문제가 있지만, 석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과 나는 공범으로 사안이 같다.

 한 위원장을 석방할 의지가 있다면 수배를 해제할 텐데 그 의지가 없다.”

마침 지난 9월 15일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한국종교협의회 등 6개 종단 지도자와 민변 등이 이번 추석에 한 위원장을 비롯한 30여명의 양심수 가석방을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이 사무국장은 “민주노총 입장에서 가장 큰 행사가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라며 “적어도 그때까지 나와서 무대에

함께 섰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위원장은 9월 19일 첫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은 내년 2월까지 노사정위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1989년 노사정위를 탈퇴했고, 한국노총도 2016년 노사정위를 탈퇴한 상태다.


민주노총은 노정 교섭을 먼저하고, 노사 교섭을 거쳐 노사정 교섭으로 간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 총장은 “노정 교섭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정위에 나오라는 것은 너무 진도가 나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성현 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으로 처음 노사정위원장에 임명됐다. 별 감흥이 없는가.


“어떤 사람이 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지금 민주노총에 노사정위에 들어오라는 얘기는 예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리해고를 결정한 곳이 노사정위였고, 재작년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악을 시도했던 곳도 노사정위다.

새로운 정부는 새로운 노정 테이블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집권하면 ‘민주노총과 전교조부터 해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총장은전교조 출신에 민주노총 실무책임자로 두 해체 대상 모두에 포함된다.

결국 보수 측 제거대상 1호인 셈이다.

“(하~하~) 홍준표 후보에게 대단히 감사하다.


이렇게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런데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어떻게 해산할지 되묻고 싶다.

민주노총·전교조는 해체가 불가능한 조직이다.


 오히려 ‘공기나 바다를 없애겠다’는 공약이 더 쉬울 것이다.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면서 더 강해졌다.

법외노조 탄압 이전과 이후 조합원 수는 별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2013. 10. 24)조치가 왜 내려졌다고 보는가. 교학사 교과서 반대 때문인가.

“박근혜 정권은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노동탄압을 통한 재벌의 안정적 독점 제공 등의 독재정권의 모든 경향성이

 종합된 정권이었다. 교사들이 그 시기에 가장 뭉쳐 있었다.”


-홍준표 후보가 민주노총을 해산하려 한 것은 노동조합이 정치집단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끊임없이 정치세력화를 추진했고, 민주노총 내부에도 이런 노선에 반발하는 세력이 있었다.

“우리 민주노총 강령 2호에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 민족의 자주성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확립하고 민주적 제 권리를 쟁취하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특정 정당을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방법은 논의할 수 있지만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목표이자 임무다.”

그는 2013년 5만 조합원을 가진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 국면에서 수석부위원장으로 위기 돌파의 책임자였다.


그는 해직 전임자를 내쫓고 비루하게 연명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화 투쟁의 역사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맞설지를 결정

해야 했다.

그는 “우리가 6개월 동안 고민하고 선택한 것은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이라며 “조합원이 감소하고 탄압이

심해져도 민주화 정신을 훼손시켜선 안된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오른쪽)이 한상균 위원장과 백기완 선생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오른쪽)이 한상균 위원장과 백기완 선생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정치세력화는 민노총의 목표이자 임무”

여기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였다. 마침 그날은 전교조가 정부청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농성을 더 지속할 수 없어 곧장 세월호 투쟁으로 전환했다. 그는 “교사 입장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교사가 수없이 학생에게 한 말로 세월호 참사는 교사들에게 가슴에 박혔다”면서 “선생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박근혜와 전면전을 해야겠다’고 결의한 것은 선생님들 반성의 표시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 사무총장은 역사왜곡이 ‘정신’을 유린한 것이라면, 노동개악은 ‘몸’을 괴롭히고 것이었고, 세월호 참사는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비유했다.


분노한 선생님들은 2015년 11월 5일 제1차 민중총궐기에 붉은 깃발을 들고 앞서 나갔다. 그는 “민주노총 대중집회에선 금속노조나 건설노조의 활동이 컸는데, 그날은 공공부문 노조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면서 “그날 깃발 들고 가장 앞장선 사람이 전교조 선생님과 청년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1965년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83년 서울교대에 입학해 87년부터 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의 교사생활은 평소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학생에게 해서는 안될 것들이 위에서 지시로 내려왔다”면서 “내가 이러려고 교사가 됐나 하는 회의와 반성의 시기를 보낼 때 전국교사협의회

(전교협)가 구세주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1987년 전교협에 가입해 적극 활동하던 그는 89년 전교조가 설립되자 당당히 투쟁선봉대장으로 섰다. 노동투쟁 현장에서 검게 타고 우락부락한 현장 노동자만 보던 TV 카메라 기자들은 ‘예쁘장한’(그는 50대지만 지금도 주름살이 거의

없다) 여성 투쟁선봉대장을 보고 집중 크로즈업을 했다.

이 화면을 보고 ‘반한’ 같은 전교조 교사가 그의 단식농성장을 찾아왔는데 그가 지금 남편이다.


전교조 초기 투쟁선봉대장으로 활약


그는 2012년까지 서울 중랑구 신현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전교조 지부장, 수석부위원장(2013~2014)을 거쳐 2014년 민주노총 초대 직선집행부에서 한 위원장과 함께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한 위원장의 쌍차투쟁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그의 전교조 투쟁은 시청앞 등 거의 같은 장소에서 투쟁했지만 한 위원장은 그를 몰랐다.


나중에 ‘어떻게 모를 수 있나’라는 물음에 한 위원장은 ‘나는 여성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예상을 깨고 첫 민주노총 직선 위원장 선거에서 최종진 전 서울시지하철노조 위원장과 함께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러닝메이트로 당선됐다.


그는 한 위원장에 대해 “회의에서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려도 다음날 아침 ‘이렇게 하면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해결책을 구상해 온다”면서 “한 위원장만큼 돌파력과 집중력을 가진 활동가는 처음 봤다”고 평가했다.

한 위원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2016년 12월 구속됐다.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현재 화성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하지만 이 사무총장은 매주 옥중의 한 위원장에게

민주노총 상황을 보고하고 매주 화요일 사업 의견을 담은 ‘업무지침’을 받는다.

 올해 말로 직선 지도부 3년 임기가 끝난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한 위원장의 옥중 출마설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결정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로 이를 부인했다.


그는 민주노총 직선 1기 지도부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5년 아무도 투쟁하자는 말을 하지 않을 때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한 것이 민주노총이었다.

 아무도 모이지 않을 때 민중총궐기를 통해 13만명을 모은 것도 우리 민주노총이다.

지금 우리가 잊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이 우리 민중총궐기로 저지됐다.


 우리 1기 지도부의 공약인 박근혜 퇴진과 노동개악 저지를 실현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민주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다. 그러면 큰 공약은 지킨 것이 아닌가.

3년차인 올해 비정규직을 의제로 총파업을 계획했는데, 그것을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올 연말 임기가 끝나면 경찰에 출석할 것이다. 수배조치가 해제되지 않았으니 바로 구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위원장과 공범이지만 위원장이 3년 실형을 받았으니 나는 3년 이하를 받지 않을까(하~하~)”라며 “위원장이 사면되고 내가 집행유예가 되면 전교조의 법외노조 투쟁과 해고무효 복직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동안 눈시울을 자주 붉혔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초등학생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남편·아들과 외식도 하는 그런 보통 여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책상 주변에 꽃화분이 가득한 보통의 여성이다. 그런 그를 삭발까지 하는 강인한 투사로 만들고, 이렇게 서울 한복판에 연금시킨 주범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비이성적 교육제도와 비인간적 노동조건, 그리고 비정상의 정치권력이 아니었을까.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민주노총 임원선거 운동, 어떻게 되고 있나?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10월 말에 시작된다. 10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후보등록 기간이고, 11월 6일부터 29일까지
선거운동 기간이다(24일간). 투표일은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다.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12월 14일부터
20일까지 결선 투표가 진행된다.
이 글은 이번 선거가 치러지는 조건과 좌파 측의 대응 전망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직 유동적인 상황이지만 후보군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먼저, 좀 더 온건한 경향들에서 거론되는 후보부터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⑴ 전국회의는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이나 윤택근 전 부산본부장, 최정명 기아차 비정규직(363일간 고공농성)이자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세우는 것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최정명 씨가 후보가 되면, ‘정치세력화’와 함께 비정규직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⑵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다.

박유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후보로 출마할 듯한데, 둘 사이의 공조도 점쳐지고 있다.

조상수 씨는 전태일을 따르는 노동운동연구소의 지지를 받는 인물로, 이번 선거에서 공공운수노조 중앙파와

사회진보연대의 지지도 받고 있다. 박유기 씨는 금속노조 중앙파다.


조상수 씨는 공공운수노조 좌파의 표를, 박유기 씨는 금속노조 좌파의 표를 잠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조는

 사회연대전략과 사회운동대안노조의 모호한 혼합물로서 정규직 양보론을 제시할 공산이 크다.

⑶ 좌파 단체들은 본격적인 대응 논의에 아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노동당이 민주노총 선거 공동 대응 논의를 두 차례 했고,변혁당 등에 참가를 제안한 상태다.

그러나 좌파 공조 전망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좌파 단체들은 각각 내부적으로 후보를 선정하거나 물색하는 과정에 있다. 노동전선은 이호동 공동대표가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정해질 가능성이 큰 듯하다.


그는 2002년 발전노조 위원장으로 파업을 이끈 바 있고, 공공연맹 위원장을 지낸 이후 오랫동안 전해투 대표를 해 왔다. 변혁당과 노동당도 각각 후보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특정 인사가 가시화되고 있지는 않다.

선거를 둘러싼 조건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문재인 정부 취임 초반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치러진다. 이번 선거를 둘러싼 상황의 특징들로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상당한 상황에서 치러진다.

물론 이미 사드 문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등을 놓고 불만이 꽤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 존중”을 표방한 문재인이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연맹·노조들을 안정적인 대화 파트너로 삼을 것이라는

노조 고위 상근간부층의 기대가 크고, 현장조합원들도 이런 전망에 관심을 보일 것 같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 그 토대가 허약해, 현장조합원들의 정서는 점차 왼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것은 지난 임원선거와 다른 조건이다.

 지난 선거는 2014년 말에 치러졌는데, 그때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2년가량 지나면서 노동자들이 정권 초기 좌절감

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찾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교조의 정부 규약시정명령 거부와 철도 파업 등이 중요한 구실을 했고, 세월호 참사와 항의도 중요한 계기였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스스로 투쟁에 나설 정도로 자신감이 높지는 않았어도, 지도부가 잘 싸워 주기를 바라며 투쟁적·좌파적 지도부를 선택할 가능성이 꽤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시 노동자연대는 박근혜가 남은 임기 동안 고용률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내세우며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운동 내의 정규직 양보론과 정규직 ‘포기’론을 비판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강조했다.

마침, 선거운동 초반에 박근혜가 노동개혁안을 발표함으로써 한상균 선본의 주장은 큰 힘을 받았다.





노동과 세계




둘째, 좌파 지도부에 대한 기대가 지난 선거처럼 모아지기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지난 선거는 민주노총을 비교적 온건한 지도부들이 10년 넘게 이끈 뒤에 치러지는 선거였다.

이수호 집행부 이후로만 보더라도 국민파와 중앙파와 전국회의는 때로 독자적으로, 때로 연합해서 지도권을 잡았는데, 이 기간에 기업들과 정부의 공격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상당히 누적됐다. 그런데도 국민파-중앙파-전국회의 선본은 “준비 없는 투쟁 경계”론을 되뇌고 있었으므로 지도부를 투쟁적·좌파적으로 바꿔 보자는 주장이 호소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좌파 지도부의 재선 시도가 크게 기대를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어도, 조합원들이 차선으로 생각하고 좌파를 다시 지지해 줄 수도 있고, 각 후보 진영이 어떻게 구성되느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처음 직선제로 치러졌던 지난 선거보다 관심이 덜할 수 있다.

직선제로 뽑혀도 상층 기구의 작동 메커니즘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조합원들이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상균 집행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상균 위원장은 2015년 4월 24일 하루 파업, 9월 23일 하루 파업, 11월 민중총궐기를 주도하고 구속·수감됐다.

이후에도 노동자 투쟁이 제한적인 수준에서 벌어졌다.

 이것이 경제 회복 지연 같은 다른 불만들과 맞물리면서, 2016년 상반기 총선에서 박근혜가 패배했다.


이는 한편으로 집권당의 심각한 분열을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줘 여름과 가을에 갑을오토텍

투쟁,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투쟁, 철도 파업 등이 벌어졌다.

2016년 중반 이후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정세 주도력을 발휘하며 투쟁을 전개할 수도 있었지만, 전진의 기회는 민주노총의 기존 고위 상근간부층의 개혁주의라는 제약에 거듭 부딪혔다.


이것은 박근혜를 퇴진시킨 민중운동의 주도권과 성과를 민주당이 가져가도록 허용하는 효과를 냈다.





2014년 선거유세 중인 한상균·이영주 후보 

                                                                                                                                           



한상균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평균적인 조합원들의 눈으로 봤을 때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임기 전체를 돌아보면 여러 쟁점에서 동요하고 점점 더 우파 지도자들과 타협의 길로 나아갔음을 간과하기

어렵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아래와 같다.


⑴ 공무원연금 투쟁은 초기 사례의 하나다.

한상균 선본은 노동개악 저지와 함께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를 당면한 투쟁으로 매우 강조했다.


 그리고 좌파 선본으로서 국민대타협기구와 양보론을 비판했다.

그러나 한상균 집행부는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에 직면해 혼란과 동요를 보였고, 그 결과 사실상 양보론을 절반쯤 수용하는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⑵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타협적 태도는 취임 초 인사(人事)에서 이미 드러나기도 했다.

한상균 선본은 세월호 투쟁당시의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인 무기력을 비판하면서, 민주노총이 사회·정치 투쟁을 주도

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판의 대상이었던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민주노총 측 책임자 한석호 씨를 신임 사회연대위원장에

임명한 것이다. 이는 선본의 공약을 어긴 처사였고,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은 임기 내내 정규직 양보론을 주장했다.

⑶ 한상균 위원장은 2015년 11월에 총파업 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총궐기로 대체했다. 그는 총궐기를 통해 얻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안타깝게도 총궐기 이후 자진출두해 구속·수감됐다.


⑷ 한상균 집행부는 2016년 정세를 오판했다.

특히, 기이하게도 2016년 총선 이후 사기가 저하했다.

 그래서 집권당의 분열 상황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위원장의 구속·수감으로 지도부가 불안정에 빠진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객관적인 정세가 결코 어둡지 않았으므로 총선 이후 자신감 있게 투쟁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료 기구 내부의 세력관계가 불리해졌다는 협소한 전망 속에서 이런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점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불과 몇 주 전에 있었던 한상균 위원장 사퇴 에피소드에서도 잘 드러났다.

⑸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한상균 위원장은 일자리위원회의 조기 참가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사례들을 봤을 때 한상균 집행부가 “언행일치 지도부”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거운동 당시 이영주 사무총장 후보의 구호가 “박근혜는 한 명도 구하지 못했지만, 전교조는 한 명도 버리지 않았다”

였다는 것을 기억해 보면, 최근 전교조 중집의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반대와 그에 대한 민주노총 집행부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전교조 중집 입장 철회를 요구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모순적인 연대 선언(전교조와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공동입장문)을 주선했을 뿐이다. 전교조 중집 입장은 사실상 ‘정규직 조합원만 버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말이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전기련)에 대해서는 노조가 아니라는 형식적인 이유로 연대 호소에 응하지도 않았다. 민

주노총이 비정규직의 확고한 편이 돼야 그들을 조직할 수 있고, 힘의 부족과 좌절을 경험한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혜에 목 매달고 정부의 이간질에 이용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주노총의 평균적인 조합원들의 눈으로 봤을 때 한상균 집행부가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대단한 투쟁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옥고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좌파 지도부라서 뭔가 다르고 우파 지도부와는 선명히 구별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지는 못했다.

특히 전투적·좌파적 조합원들의 눈으로 봤을 때 더 그렇다.

한편 좌파는 지난번 선거 참여에 성공하면서 자긍심이 커진 것이 가장 큰 성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좌파 노조 지도부와 동맹해 얻고자 했던 효과(즉, 현장 노동자들이 좌파 지도자가 지시하고 선언한 파업 투쟁에 안전감을 느끼면서 참가해 그 속에서 자신감이 회복되는 것) 면에서는 성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좌파 공조의 난점들

이번 선거가 치러지는 조건과 좌파 내부의 상황을 볼 때 좌파 공조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더 어려워졌다고 보인다.

 아래에서 그 요인들을 살펴보자.

첫째, 이번 임원선거의 주요 쟁점 하나가 될 것임이 틀림없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와 대응 방향 문제는 좌파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문제가 될 것은 아마 말이나 정책이 아니라 실천의 모호함일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일부 노동조합 좌파들은 ‘사회적 합의’ 문제에서 흔히 동요했다.

현재 중요한 쟁점 하나인 정규직 양보론에 대해 노동조합 좌파는 부정적인 의견을 펴면서도, (정규직 조건 방어가

 다소 내키지 않다 보니) 실천에서는 일관되지 않았다.


따라서 ‘격차 축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정규직 양보)’ 문제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시 보여 준 약점이 되풀이될 우려가

 있다.

여기서 고려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나 조직 통합을 지지하지 않거나 모호했던 사람이 좌파측 후보가 돼 사회적 합의(‘격차 해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된)를 비판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칫 어설프게 주장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기보다 ‘정규직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둘째, 좌파로서는 재선을 노리는 것인 만큼 지난 집행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그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에 좌파들이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안은커녕 한상균 집행부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공유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또는 좌파 단체들 간에 비판의 기조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일부 단체는 회원들이 한상균 집행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비판적 평가를 꺼릴 수 있다.


또, 혁명적 좌파가 한상균 집행부를 왼쪽에서 비판하는 것에 대해 “선본 참여 단체들이 한상균 집행부를 뒷받침해

 주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혁명적 좌파에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좌파 치고는 부족했던 여러 점들이 단지 관료 기구 내 세력관계 상 불가피했다기보다 한상균 집행부의 적극적 선택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견해일 뿐이다.


셋째, 후보가 정말 중요한데, 현 시점에 필요한 정치적 지도력을 갖춘 후보로 단일화가 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한상균 위원장은 비록 앞서 살펴본 정치적 약점이 있었다 해도, 조합원 대중의 눈으로 봤을 때 77일간의 공장점거

 투쟁을 이끈 지도자였다.


이런 점에서 한상균 위원장은 투쟁적 지도부를 강조하는 당시 좌파 공조의 내용에 걸맞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재선을 호소하는 처지인 만큼 좌파 후보는 한상균 집행부의 약점을 발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추고 있어야 대중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좌파 공조의 전망이 밝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좌파 공조는 그나마 지난 몇 주 동안 점점 악화돼 왔는데, 젠더 이분법적 페미니즘이 좌파를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 내 일부가 ‘아재 정치 아웃’ 같은 구호로 분리 성향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이것이 노동당 내부를 향하더니

(이갑용 대표가 남성 정규직으로 당의 지향성에 맞는 후보가 아니라거나 허영구 대변인에 대한 백인위 문제 제기를

다시 끄집어 내는 식으로), 뒤이어 노동당 여성위 등은 노동자연대에 낙인찍기 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노동당 노동위는 여성위를 의식하며 최근 노동자연대가 주도하는 연대 활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노동위 전국

운영위)했다.


변혁당은 심지어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가 쓴 책의 폐기를 요구하는 서명을 하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노동자연대 추방 시도에 동참하더니, 급기야 〈변혁정치〉에 ‘노동자연대에 요구한다’는 글을 실어 노동자연대를 ‘성폭력

 2차가해 단체’라고 비난했다.


이런 행동은 좌파 선거공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좌파 공조를 안 하겠다는 선언이자 노동자연대가

포함된 선본을 바깥에서 비난하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사실, 변혁당은 좌파 공조에 별 관심이 없고, 공조보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활동을 중시해 왔다.


특히, 갖가지 문제에서 우리 단체와의 연대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 왔는데, 우리가 그 단체를 중간주의(혁명적 노선과 개혁주의적 노선 사이에서 지그재그로 동요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심지어

단지 사소한 전술적 이견이 그 사유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노동자연대는 임원선거 좌파 공조를 변혁당에도 제안하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는데, 변혁당은 노동자연대를 ‘성폭력 2차가해 단체’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답변한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좌파 선거 공조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한상균 선본에서 후보들과 참가 단체들은 시간을 끌면서 입장 표명을 미루고 노동자연대의 선본 지지 활동이

지속되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좌파들의 분열상 때문에 이미 그 지형이 지난번과 다르다.

종합을 해 보자면, 혁명적 좌파가 노동조합 좌파 지도자와 제휴한다면 그것은 현장 노동자들의 자력 활동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다.


현재는 개혁주의의 공간이 약간 열려 민주노총 고위 상근간부층이 조합원들을 실망시키기 좋은 시기이다.

 이럴 때일수록 혁명적 좌파는 노동조합 좌파 지도자와의 제휴 목적과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그것을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2015년 9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박근혜의 꼭두각시 노사정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2015년 9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박근혜의 꼭두각시

 노사정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뉴시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이영주 사무총장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이영주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2015년 11월28일 시민대회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2015년 11월28일 시민대회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이영주 사무총장 페이스북






민주노총 첫 직선제 선거 당선자(우측부터 한상균 위원장 당선자, 이영주 사무총장 당선자, 최종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자)



민주노총 첫 직선제 선거 당선자(우측부터 한상균 위원장 당선자, 이영주 사무총장 당선자,


 최종진 수석부위원장 당선자)ⓒ민주노총 제공




쌍차범국민대회 당시 백기완 선생과 함께 서 있는 한상균과 이영주



쌍차범국민대회 당시 백기완 선생과 함께 서 있는 한상균과 이영주


ⓒ이영주 사무총장 페이스북






쌍차범국민대회 당시 나란히 함께 걷고 있는 한상균과 이영주, 최종진



쌍차범국민대회 당시 나란히 함께 걷고 있는 한상균과 이영주, 최종진


ⓒ이영주 사무총장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