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연합뉴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연합뉴스 자료사진]](http://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7/11/17/AKR20171117130400014_01_i.jpg)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 군인 1명이 지난 13일 북한군 추격조의 40여 발의 총격에도 목숨을 걸고 귀순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영화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의 줄거리는 비무장 지대 순찰 중에 지뢰를 밟아 위기에 처한 남한의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뜻밖에 북한군의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에 구조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과 이 병장의 동료 남성식 일병(김태우)은 절친한 사이로 지낸다.
군사분계선(MDL)을 경계로 말을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남쪽 병사가 수시로 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로 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총격이 벌어져 이 병장과 남 일병이 북한군 2명을 본능적으로 살해하고 가까스로 복귀
한다는 내용이다.
판문점 MDL 위에 세워진 중립국감독위·군사정전위 회의장 건물을 축으로 하는 반경 400m의 원형지대인 JSA에서는
실제 영화와 같은 사건들이 벌어졌고, 해프닝도 많았다.
1976년까지만 해도 MDL 표식이 없었고 북측, 유엔사측 초소가 남쪽 또는 북쪽을 가리지 않고 설치되어 있었다.
양측 경비병들은 JSA를 자유롭게 통행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사건 이후 북측, 유엔사측 초소가 남북으로 엄격히 갈라졌고 폭 50㎝, 높이 5㎝의
시멘트 구조물로 표시된 MDL을 경계로 분할 경비를 서게 됐다.
![판문점 JSA 북한 경비병[AP Photo=연합뉴스]](http://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7/11/17/AKR20171117130400014_02_i.jpg)
1998년 말에는 JSA 경비병들이 북한군과 수시로 접촉하며 각종 선물을 건네받은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해 2월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변용관 상위(당시 계급)의 진술 등을 통해 접촉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이듬해 당시 천용택 국방장관이 국방위에 출석해 이 사건과 관련해 "JSA 경비대대 소속 한국군 병사 25명이 호기심으로 북한군과 접촉해 대화를 나누고 물품을 수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물품을 받은 사병은 16명에 달했다. 김일성 배지, 술과 담배, 인삼, 달력, 편지엽서, 시계, 금반지 등이 물품 목록이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사건 이듬해 영화 JSA가 나왔다.
북한군이 JSA내 MDL을 넘은 것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2001년 가을에는 북한군 하사 1명이 알밤을 줍다가 MDL을 넘었다.
JSA MDL 남측 평화의 집에서 서북쪽으로 150m가량 위치에 있는 밤나무는 MDL 선상에서 자라 가지가 남북 양측으로 뻗어있으나 하필 남측 가지에 밤알이 굵고 비교적 많이 열린다고 한다.
당시 북한군 하사는 남측 지역에 떨어진 밤을 줍기 위해 3∼5초간 잽싸게 MDL을 1∼2m가량 넘었는데 이 장면이 유엔사 측에서 설치해 놓은 카메라에 포착됐다.
1989년에는 '조선군사정전위 중국인민지원군' 소속 중국군 소령이 부인과 JSA를 통해 망명했다. 중국군이 판문점을
거쳐 탈출한 첫 사례가 됐다.
이에 앞서 1984년 1월에는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수습보조원 바실리 마투조크씨, 1981년 10월에는 중립국 감시위원회 소속 체코인 로버트 오자크 일병이 JSA내 MDL을 넘어왔다.
이들은 탈출 후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망명이 허용돼 도미했다.
또 1984년 11월에는 옛 소련인 관광안내원 바실리 야코볼리비치 씨가 JSA를 통해 탈출했다. 북한군은 이를 저지하고자 JSA내 MDL을 넘어와 총격전을 벌였다. 한국군 1명이 전사하고 미군 1명이 부상했으며 북한 경비병도 3명이 죽고 1명
이 부상했다.
이 사건은 북한군이 JSA내 MDL을 넘어와 총격을 가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1959년 1월에는 옛 소련의 당기관지 프라우다의 평양특파원 이동준 씨가 군정위 본회의 취재를 나왔다가 유엔측 사무실로 넘어와 귀순했다. 1967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도 위장 귀순했다.
판문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1998년 6월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 1천여 마리를 트럭
50여 대에 싣고 북한으로 향한 일이다.
이는 비무장지대의 긴장된 역사를 화해와 협력으로 반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면서 한민족은 물론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threek@yna.co.kr


유엔사, JSA영상 미공개 이유는 기자들 때문?
당초 16일, 26초짜리 편집 영상 공개예고…
‘음모론’ 우려 나오자 연기
지난 15일, 국방부에 있던 기자들은 유엔사령부가 북한군 병사의 귀순 당시 CCTV 영상을 공개한다는 예고를 듣고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16일 오전에 공개할 CCTV 영상이 귀순 당시를 담은 전체 영상이 아니라 편집한 26초짜리 영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과거 ‘천안함 폭침’ 때나 ‘연평도 포격도발’ 때, 세월호 침몰 사고 때와 같이 ‘음모론’이 생겨 사회적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유엔사령부가 26초짜리 CCTV 편집 영상을 공개하겠다면서 북한군 추격조의 사격과 이들이
군사분계선 월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장면은 모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방부 기자단은 “40여 분 동안 일어난 일을 26초짜리 영상만으로는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전체 영상 또는 그에 준하는 영상 공개를 요청했다고 한다.
국방부와 유엔사령부 측은 이 같은 건의를 받아들여 회의를 가진 끝에 CCTV 영상 공개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유엔사령부 측은 “결정권자인 빈센트 브룩스 유엔군 사령관이 해외 출장 중이고, 내부 의견조율이 더 필요
하다”고 공개 연기 사유를 밝혔다고 한다.
북한군 병사가 JSA로 귀순할 당시 CCTV 영상은 결국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16일 밤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북한군 병사가 귀순할 당시 북한군 추격조 4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왔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군 병사의 귀순 당시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북한군 추격조 4명 중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거리는 약 3~4m, 시간은 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소식통에 따르면 CCTV에는 추격조 중 1명이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장 건물
중간 부분 아래까지 내려온 모습이 찍혔다”고 덧붙였다.
JSA 지역 내에 남북 양측을 감시하는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장 건물 주변에는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선 또는 철책 등이 없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당시 JSA경비대대 측은 북한군 추적조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을 본 뒤에도 사격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의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월선(越線)한 상황이라고 판단, 대응사격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이었다.
국방부 소식통에 따르면, 유엔사령부가 확보한 CCTV 영상은 1분 남짓 분량이라고 한다.
이 CCTV 영상에는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소형 군용차량을 몰고 군사분계선으로 접근하는 모습,
이를 뒤쫓던 북한군 추격조 4명이 권총과 AK-74소총을 쏘면서 뒤쫓는 모습과 엎드려 쏴 자세로 조준사격을 하는 모습, 귀순 병사가 몸을 웅크리다 비틀거리며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 북한군 추적조 가운데 1명이 중립국 감독위원회 건물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다 멈칫하며 돌아가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고 한다.
현재 수원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북한군 병사는 ‘활력 징후(Vital Sign)’가 안정을 되찾는 등 생명이 위독
하지는 않지만, 소장 안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기생충과 북한군 추적조의 사격으로 총상을 입은 골격과 장기
훼손이 심해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으며,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호흡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현안보고에서 국정원 측은 “귀순한 북한군 병사는 20대 중반의 하사로 JSA 판문점 경비대 소속”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치권과 언론계 등에서는 JSA로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북한군의 총에 맞았는지, 한국군은 왜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총상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수원 아주대 병원밖에 없고, 전문가 또한 이국종 교수 외에는 없다는 점, JSA 지역을 경비하는 감시 장비에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점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JSA를 통해 귀순하는 북한군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총상 환자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경웅 기자
북한군 추격조가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는 북한 병사를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까지 쫓아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북한군 추격조의 MDL 침범 여부는 육안으로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출처] - 국민일보
(사진=자료사진)
JSA장병들이여! 어깨를 펴라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군 병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을 놓고 대응사격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 논란으로 최전방에서 북한군의 눈빛을 보며 부동자세로 24시간 근무하는 JSA 장병들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결론부터 말하자. 귀순병사를 구조한 JSA 경비대대 한국군 대대장인 권영환 중령 이하 경비대대 장병들의 행동은
메뉴얼에 따른 용감한 행동이었다.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사건발생 시간은 13일 오후 3시 14분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때는 북한군 초병 3명이 긴급히 뛰어가고 북한군 1명이 지프차를 타고 MDL을 넘어오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한군 4초소 부근 배수로에 지프차 바퀴가 빠졌고(3시 15분) 차량탈출이 불가능해지자 차량을 버리고 우리 측으로 달려오는 상황이었다.
이때 뒤쫓아 온 북한군 경비병 등 4명이 귀순병을 향해 권총과 AK 소총 40여발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귀순병은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귀순자에 대한 북한군의 총격이 발생한 지 16분 뒤인 오후 3시 31분 우리 군은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화면을 통해 귀순자 위치를 최종 확인했다. 단 몇 분 만에 벌어진 상황이다.
JSA 경비대대 장병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로 유엔사 교전규칙이다. 유엔군 교전규칙은 '확전방지'가 목적이다.
유엔사 교전규칙은 JSA 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침범할 경우 ▲적발 즉시 경고와 함께 신원확인 ▲이에 불응
하거나 도주할 경우 등을 규정하고 있다.
JSA 장병들은 유엔사 교전규칙이 적용돼 초기 대응사격을 할 수 없었지만 구조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권영환 중령 이하 경비대대 장병들은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50m, 북측 초소는 60여 m 떨어진 곳까지 낮은 포복을 뛰어 들어갔다.
은폐ㆍ엄폐할 장소도 없었다.
움직임은 그대로 노출돼 북한군이 다시 조준사격이 충분히 가능한 지역이었다.
귀순자 신병을 확보한 것은 3시 56분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42분 만에 구출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격실력이 떨어져 대응사격도 못한 채 구출작전에 나섰을까.
JSA 장병들이 사용하는 권총탄의 량은 육군전체 권총탄의 90%를 차지한다.
그만큼 권총사격만큼은 군내에서도 인정하는 실력자들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365일 훈련하는 부대, 24시간 훈련이
끊이지 않는 부대로 유명하다.
이들은 북한군을 1m 거리 코앞에서 마주하는 곳에서 경계근무를 설 때면 주먹을 쥐고 팔을 약간 굽히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 이 자세가 바로 권총을 바로 뽑을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선발방식부터 다르다. JSA는 훈련소에서 병사를 가장 먼저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우수한 병사를 JSA에 배치하기 위한 방편이다.
면접 때도 본인이 오기 싫다면 부대에서도 선발대상에서 제외시킨다.
그만큼 JSA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자부심도 뛰어날 수 밖에 없다.
장교들도 근무평정, 평판조회 등을 검토한 후 3배수로 선발한 후보 중 최우수 장교만 선발한다.
사소한 행동으로도 남북간 군사적충돌이 가능한 지역인 만큼 까다로운 선발기준은 기본이다.
언론에서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질타하는 것은 JSA 경비대대 장병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정전협정에 따라 JSA 내 작전지휘권은 유엔사가 갖고 있지만 한국군이 경비를 담당하는 만큼, 유엔사가 무력사용과 자위권 행사 판단과 권한을 한국군 대대장에게 넘겨야 한다는 뜻도 담겨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쪽으로 총알이 넘어왔다면 비조준 대응사격이라도 하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
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도 이런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JSA들이 북한군 앞에서 풀이죽거나 낙심해 어깨가 처질까 걱정이다.
북한군 귀순 병사가 각종 검사에서 수치상 다소 호전됐다고 한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귀순병사가 완쾌 된 이후 JSA를 찾아가 북한군 코앞에서 권영환 중령과 보란 듯 포옹을 하며 자유를 만끽했으면 한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한미 국방장관이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대북 메시지를 발표한
지난달 27일 북한 병사들이 남측을 바라보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JSA 귀순 병사가 보여준 현실, 그리고 숙제
지난 13일,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북한군 1명이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것이다.
귀순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북한군 추격조가 40여발의 무차별 총격을 가하며 쫓아오자 우리 군도 전투 준비태세에 돌입했다. 우리 장교들이 총상을 입고 쓰러진 북한군에 낮은 포복으로 접근해 안전지대로 대피시켰다.
현재 2차 수술을 마친 귀순 병사의 생사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선 우리 군의 대응을 문제삼지만, '위기의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그보다 큰 시사점을 던진다.
비극적 휴전의 현실과 우리 군이 처한 무력한 현실, 이 두 가지 '불편한 진실'로 접근해 볼 수 있다.
북한군의 귀순은 종종 있었다. 지난 6월23일에도 북한군 병사 1명이 최전방 중부전선에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우리 군 GP(최전방 감시초소)로 귀순했지만 크게 주목받진 않았다.
이번엔 2007년 9월 이후 10년 만의 JSA를 통한 북한군 귀순인 데다, 1984년 이후 33년만에 벌어진 판문점 총격사건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특히 당시 40여발의 조준사격 상황과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교수의 수술 집도가 시시각각 전해지면서 북한군의 잔혹함이 재조명됨과 동시에 귀순 병사의 생존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체제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이 병사가 처한 비극적 상황은 우리가 평소 잊고 사는 휴전의 현실을 드러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 우리 군이 북한군의 총격에 대응사격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우리 군이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전협정 교전규칙상 JSA에서 무력사용은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해 우리 군의 임의적 대응이 불가능하다. 남북 간 통신망이 끊겨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에 항의하기도 어렵다.
북한 이슈가 늘 그렇듯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귀순 병사의 입장에서 그의 생존을 한목소리로 응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정은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다. 분단 70년, 통일이 헛된 구호 취급을 받는 오늘도 JSA에는 남북 병사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우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저작권자 ©the300,

=
'언론과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해순 "남편 유산 놔두고 시집이나 가라는 태도 억울" (0) | 2017.11.19 |
|---|---|
| 이국종 교수가 바라 본 대한민국 (0) | 2017.11.19 |
| [포항지진]진앙 부근서 '액상화 현상' 첫 관측…정밀조사 요구 (0) | 2017.11.18 |
| ,무가베, 짐바브웨 경제 어떻게 망쳤나…'阿 곡창지대'의 몰락 (0) | 2017.11.18 |
| 특수활동비 칼바람 부른 '이헌수 리스트' (0) | 2017.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