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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 짐바브웨 경제 어떻게 망쳤나…'阿 곡창지대'의 몰락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짐바브웨 무가베, 군부 쿠데타로  통치 끝 (PG)


짐바브웨 무가베, 군부 쿠데타로 통치 끝

(PG)[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사진출처 AP, EPA




'무가베의 몰락'이 남일 같지 않을 아프리카 독재자들


NYT "무가베 사태, 장기 집권자들에게 불편할 것"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독립 영웅'의 영예를 발판으로 신생독립국 짐바브웨를 이끌기 시작했던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이 '최악의 독재자'의 수식어를 단 채 37년만에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게 됐다.

전 세계 대부분의 독재자가 걸었던 비참한 말로를 따를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장밋빛 미래가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아프리카엔 무가베의 몰락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국가 지도자들이 다수 있다.


17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수많은 지도자는 헌법을 뜯어고쳐 임기 제한을 폐지하거나 야당을 탄압하는 등의 방식으로 집권을 연장해왔다.


지난 9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38년의 집권을 끝내고 자리에서 물러난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전 대통령과

 무가베 대통령을 제외해도 아프리카에는 30년 이상 '장기집권 베테랑'들이 4명이나 된다.

이들의 집권 기간을 더하면 137년이다.




테오도르 오비앙 옹게마 적도기니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테오도르 오비앙 옹게마 적도기니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테오도르 오비앙 옹게마 적도기니 대통령(75)은 1979년부터 한 번도 대통령직을 놓지 않았다.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84)도 5연임에 성공하며 35년 동안 장기집권 중이다.

드나 사수 응게소 콩고공화국 대통령(73)은 선거에서 패배해 잠시 권좌에서 밀려난 적도 있지만 총 33년 동안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73)은 31년동안 집권하고 있다.


집권 기간을 30년 아래로 낮추면 그 수는 두 손을 합쳐도 모자란다.

 외세의 개입으로 정치·사회가 불안정한데다 민주주의 제도도 자리 잡지 않아 독재가 쉽게 똬리를 틀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확립, 장기집권 초석을 마련했던 무가베 대통령처럼 이들 역시 갖은 방법을 이용해

자리를 지키는 데 고심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월드팩트북에서 기니에서는 "대통령이 정치 체제에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야당을

막는 법적·장벽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콩고공화국 역시 지난해 대선 직후 야당 지지자들을 부정 체포하는 등 석연찮은 모습을 보였다.

미 국무부는 콩고공화국의 문제점으로 제한적인 언론 환경, 반대 진영에 불리한 선거 과정 등을 지적했다.




드니 사수 은게소 콩고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드니 사수 은게소 콩고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이 뿐만 아니라 이들 지도자는 호시탐탐 자신의 권좌를 가족이나 측근에게 물려줄 궁리를 하고 있다.

무가베 대통령이 '부부 세습'을 꿈꿨던 것과 같은 모양새다.

오비앙 대통령이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줄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하다.


그의 아들은 사치스러운 행각으로 수차례 구설에 올랐다.

산토스 대통령은 대통령직은 여당 인사에게 양보했지만,  통치 기간 동안 그의 일가는 앙골라 경제 대부분을 장악했다.


무가베 대통령과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내부 동요를 우려하고 짐바브웨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NYT는 짐바브웨의 상황이 "아프리카에서 수십년간 권력을 유지하는 지도자들에게 불편한 시사점을 준다"고 분석했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seunghee@





      


지난 4월18일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독립 37주년 기념식에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왼쪽)이 부인 그레이스 여사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AFPBBNews=뉴스1


지난 4월18일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독립 37주년

 기념식에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왼쪽)이 부인 그레이스 여사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AFPBBNews=뉴스1



무가베, 짐바브웨 경제 어떻게 망쳤나…'阿 곡창지대'의 몰락



짐바브웨 군부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을 가택연금하고 실권을 장악하면서 37년간 이어진 무가베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릴 분위기다.
올해 93세인 무가베는 세계 최고령, 최장기 통치자다.

짐바브웨 군부는 쿠데타 설을 부인하며 무가베 주변의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게 이번 군사행동의 목표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무가베 정권이 그동안 최악의 경제난 속에 부정부패로 비난받아왔다고 지적했다.
무가베가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운 부인 그레이스(52)는 명품을 선호하는 낭비벽으로 현지에서 '구찌 그레이스'라고
불릴 정도다.

CNN머니는 15일(현지시간) 한때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린 짐바브웨가 최악의 경제난을 겪게 됐는지 분석했다.
CNN머니는 산업 및 통화정책 실패, 식량부족, 만연한 부정부패 등을 문제 삼았다.
교사 출신인 무가베 대통령은 일찍이 아프리카의 반식민·민족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1963~74년 옥고를 치른 뒤 석방돼 게릴라전에 합류했다가 1980년 영국에서 독립한 짐바브웨의 첫 총리로 선출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에 비견될 정도의 칭송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을 앞세운 정책이 짐바브웨 경제에 독이 됐다고 지적한다.

 푼미 아킨루이 실크인베스트 포트폴리오매니저는 "무가베는 언제나 포퓰리스트 성향이 짙었다"며 "경제에 꼭 필요한 게 아니라 대중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길 바랐다"고 지적했다.
짐바브웨 경제는 1980년대에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무가베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며 교육·건강 정책을 확대하면서도 경제정책은 보수적으로 유지했다.
덕분에 짐바브웨는 담배를 비롯한 농산물과 일부 공산품의 수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날씨도 1년 내내 농사를 짓기에 적합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무가베 대통령은 정치력이 시들해졌고 강권통치와 부정부패 등에 대한 불만에 직면했다.
 CNN머니는 무가베 정권이 이때 농업 부문을 잘못 건든 게 경제적 재앙을 부추긴 변곡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무가베 정권은 당시 백인 지주들의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한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1992년에 제정한 토지수용법(Land Acquisition Act) 아래 지주들이 토지 소유권을 포기하도록 강제해 되찾은 땅을
재분배했다. 무가베 정권은 저항하는 백인 지주들을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무가베 정권의 토지개혁은 2000년 절정에 달했다.
 이때까지 강압으로 제 땅을 포기한 백인 지주가 4000명에 이른다. 백인 지주들에 대한 무장조직의 위협도 이어졌다. 짐바브웨 고등법원이 정부의 토지 몰수를 불법으로 판결했지만 무가베 정권이 법원을 탄압하면서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무가베 대통령은 2001년 11월 사실상 모든 백인 지주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하는 걸 허용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토지 몰수 과정에서는 폭력사태가 잇따랐다.
이 여파로 짐바브웨에선 농산물이 급감했다. 2000년 200만t에 달했던 옥수수 수확량이 2008년 45만t으로 줄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03년 10월 낸 보고서에서 짐바브웨 인구 절반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건조한 날씨로 2년 연속 최악의 작황을 기록한 짐바브웨는 같은 해 60년 만에 최악의 기근에 시달렸다.

식량 등의 부족이 만성화하자 짐바브웨는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중앙은행은 수입대금을 치르기 위해 무작정 돈을 찍어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 셈이다.
위기가 한창일 때 짐바브웨 물가는 하루에 2배씩 올랐다.

 미국 싱크탱크 카토연구소는 2008년 짐바브웨의 월간 물가상승률이 최고 79억%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같은 해 짐바브웨 경제는 18% 역성장했다.
무가베 정권은 2009년 인플레이션에 맞서 휴지조각이 된 자체 통화를 폐기했다.
대신 미국 달러를 기본으로 남아공 랜드 등 9개 통화를 쓰기로 했다.

무가베 정권은 2010년 국제사회의 제재에 자국 내 서방 자산을 모두 몰수하겠다는 위협으로 맞섰다.
농업에서 광업으로 눈을 돌려 다이아몬드 광산 국영화에 나서기도 했다.
 몇 안 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짐바브웨의 고립이 심해졌다.

전문가들은 짐바브웨가 자원이 풍부해 정정불안이 좋게 해소되면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한다.
실크인베스트의 아킨루이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짐바브웨는 다이아몬드, 석탄, 구리, 철광석 등 자원을 갖고 있다"며 "적임자가 권력을 잡으면 빠른 반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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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을 조롱하던 무가베 대통령이지만, 그를 제거한다고 이러한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자료=ZBC






왼쪽부터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그레이스 무가베,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

군부 수장 콘스탄틴 치웬가 장군.


 [사진제공=AP, EPA연합뉴스]




그레이스 무가베[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레이스 무가베[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치·불타는 권력욕…무가베 37년 독재 종친 41세연하 부인



별명이 '구찌 그레이스'…정적들 숙청하다 군사정변 되치기
타자원으로 무가베 만나 불륜 싹틔우고 4년 후 퍼스트레이디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독재국가 짐바브웨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52)의 권력욕에서 비롯됐다는 게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남편으로부터 대통령직을 물려받으려는 무리수가 결국 군부 반발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레이스 무가베 짐바브웨 영부인[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레이스 무가베 짐바브웨 영부인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레이스 무가베는 남편보다 마흔한 살이나 젊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그동안 사치로운 생활, 폭행 혐의 등으로 각종

 논란을 불러왔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국민이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과 높은 실업 등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묵묵히 내조하는

 '퍼스트레이디'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그레이스 여사는 1980년대 후반 무가베 대통령의 타자원으로 일하다가 무가베 대통령의

 구애를 받고 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무가베 대통령의 첫째 부인은 투병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의 사랑은 불륜관계로 볼 수 있다.


그러다 1996년 무가베 대통령과 그레이스 여사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무가베 대통령의 첫째 부인이 죽고 나서 4년이 흘렀을 때였다.


영부인 자리에 오른 그레이스 여사는 '구찌 그레이스'라고 불릴 정도로 사치스런 명품을 좋아했다.

2007년 미국 대사관도 보고서에서 "그레이스의 주된 관심은 쇼핑"이라고 지적했다.





그레이스 무가베[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레이스 무가베[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작년에는 결혼 20주년 기념 선물로 135만 달러(약 16억2천만원)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문했다가 취소하는 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렸다.

또 그레이스 여사는 짐바브웨 동부지역의 불법 다이아몬드 광산사업에 관여한 사실이 위키리크스 폭로로 드러나기도

 했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AP=연합뉴스 자료사진]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과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쇼핑뿐 아니라 폭력으로도 구설에 올랐다.

올해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0대 여성 모델을 수차례 때린 혐의로 논란을 일으켰다.

앞서 2009년에는 홍콩에서 쇼핑하다 자신을 촬영하던 영국 출신 사진기자를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사치스런 생활을 이어가던 그레이스 여사의 권력욕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3년 전이다.


무가베 대통령의 기력이 약해지면서 부인에게 갈수록 의존적으로 변한 점과 무관치 않다.

그레이스 여사는 2014년 집권여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의 산하조직 '여성연맹'의 수장에

올랐다.


또 그해 남편의 유력한 맞수였던 조이스 무주루 전 부통령을 대통령 암살 연루 혐의로 해임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이스 여사는 남편의 뒤를 이어 짐바브웨를 통치하고 싶다는 뜻을 부인하지 않았다.





짐바브웨 무가베, 군부 쿠데타로  통치 끝 (PG)


짐바브웨 무가베, 군부 쿠데타로 통치 끝

 (PG)[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사진출처 AP, EPA


BBC 방송에 따르면 그레이스 여사는 2014년 한 집회에서 "사람들은 내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왜 안 되느냐"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레이스 여사는 2015년 "우리는 무가베 대통령이 100세가 될 때까지 통치할 수 있도록 특수 휠체어를 제작할 예정"이라며 남편에 지지를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몰락으로 가는 길일 줄이야…


몰락으로 가는 길일 줄이야…(하라레 AFP=연합뉴스)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왼쪽)이 부인 그레이스 여사(52)와 함께 지난 8일(현지시간) 수도 하라레에서 열린

집권당 행사에 참석, 그레이스 여사를 지지해달라는 연설을 하고 있다. 독립투사 출신으로
영국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1980년부터 집권한 무가베는 37년째 집권하며 최근 부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다 15일 군부의 쿠데타로 몰락의 위기를 맞았다.




그레이스 여사는 최근 부통령 경질을 계기로 무가베 대통령을 이을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혔다.

무가베 대통령이 지난 6월 에머슨 음난가그와(75) 전 부통령을 전격 경질하면서 그레이스 여사의 대선 가도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그레이스 여사는 남편에게 음나가그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며 경질을 부추겼다.

그레이스 여사는 ZANU-PF의 젊은 정치인 그룹 'G40'의 지지를 받는 등 여당 내 입지도 탄탄해 보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군부의 반격으로 정치적 야망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레이스 여사의 측근인 이구나티우스 촘보 재무장관은 군부에 감금됐고 그레이스 여사는 남편과 함께 가택연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바브웨 군부는 전날 국영 ZBC방송을 통해 "무가베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안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noja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10년만에 또 2억% 초인플레? 돈찍기 바쁜 그곳




2억% 초인플레 또? 종잇장 돈 다시 찍는 짐바브웨
짐바브웨산 미국 달러 ‘발러(Bollar)’


 




요즘 짐바브웨에선 돈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돈’이 통용됩니다.
 ‘본드노트’라는 일종의 유사 화폐입니다. 
지난해 말 짐바브웨 정부가 “미국 달러만큼 가치를 쳐준다”며 발행했고요, 
로이터통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홈메이드 미국 달러’입니다.
 
본드노트 등장 뒤 짐바브웨엔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약 10년 전 짐바브웨를 덮친 초인플레이션이 반복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거죠.   
2004~2009년 국가를  인플레이션을 겪은 뒤 2009년 짐바브웨는 자국 통화(짐바브웨달러·Z$)를 포기했습니다.  
 
미국 달러(US$)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고, 현재는 8개국의 화폐가 법정화폐로 통용됩니다.
 미국 달러, 남아공 랜드, 보츠와나 풀라, 영국 파운드, 호주 달러, 중국 위안, 인도 루피, 일본 엔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외환이 바닥나자 정부는 또 ‘돈’을 찍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본드노트입니다. 8월 말 3억 달러어치를 추가 발행해 5억 달러어치가 유통 중입니다.  
      거덜 난 국가 살림을 돈을 찍어서 메우는 일을 또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2008년 초인플레이션 당시 돈다발을 들고 있는 짐바브웨 남성. [ 중앙포토]


2008년 초인플레이션 당시 돈다발을 들고 있는 짐바브웨 남성.


 [ 중앙포토]



짐바브웨 정부는 본드노트를 발행하면서 ▶미국 달러와 1대1로 교환된다
▶기존의 미국 달러 계좌를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소매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달러를 쓰듯이 본드노트를 쓸 수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본드노트에는 ‘발러(Bollar)’라는 별명이 붙었는데요,
‘달러(Dollar)’의 D를 본드노트의 B로 대체한 신조어입니다. 
 
그러나 발행 직후부터 본드노트 가치는 뚝뚝 떨어집니다.
짐바브웨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안팎으로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본드노트로는 대외거래가 불가능하니 미국 달러가 우대받을 수밖에 없죠.  
 
지난 2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소매업자들이 미국 달러를 내는 소비자에게는 50%를 할인해준다”고 상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주유소는 달러용 펌프와 본드노트용 펌프를 구분했고요, 상점들은 같은 물건에 두 개씩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정부의 감독을 피할 수 없는 대형 업체들은 차라리 상품 가격을 올렸죠. 암시장에선 30%의 프리미엄이 얹어진 미국
달러와 본드노트가 거래됐습니다.   
      ‘달러:발러=1:1’이라는 공식이 완전히 깨져버린 겁니다. 
 
외환 바닥…정부가 암시장서 달러 거래  
 
지난 8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짐바브웨의 외환 보유액은 8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는 짐바브웨 정부 발표
이고, 국제통화기금(IMF)은 6억 달러도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9월 말 기준 3846억7000만 달러입니다. 돈줄이 꽉 막힌 북한의 경우도 20억 달러는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달 초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짐바브웨 은행들은 1인당 인출액을 1주일에 미화 50$로 제한했습니다.
미 달러가 귀해지자 수도 하라레의 암시장에선 미화 100$가 185본드노트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암시장에서 본드노트를 주고 미국 달러를 사재기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산하의 금 거래소가 금을 사들이면서 본드노트로 일부 결제한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한달 전엔 전액을
 미국 달러로 거래했는데 말입니다.  



 
     
짐바브웨의 2달러짜리(위)와 5달러짜리 본드노트.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짐바브웨 정부는 미국 달러와 1 대 1 가치를 지닌다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짐바브웨의 2달러짜리(위)와 5달러짜리 본드노트.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짐바브웨 정부는 미국 달러와 1 대 1 가치를 지닌다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달러를 대체한다며 유사 화폐를 발행하더니, 이제는 그 가치를 정부가 나서서 후려치고 있는 셈입니다. 당연히 미국
달러 가치는 연일 상승 중이고요.
요즘 짐바브웨는 약 10년 전 초인플레이션이 연상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아프리카 신생국, 초인플레로 유명세
1980년 영국에서 독립한 짐바브웨는 한동안 꽤 괜찮은 국가였습니다. 
90년대 초까지 높은 농업 생산력과 풍부한 광물 자원, 경제개발 계획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부침은 있었지만 1980~90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를 넘었죠. 특별한 존재감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건실했던
제3 세계 신생국가였습니다. 
 
그랬던 짐바브웨는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됩니다.    
       짐바브웨 경제가 본격적으로 흔들린 건 1990년대 말입니다. 
90년대 중반 극심한 가뭄으로 경제가 악화되고, 민심이 사나워지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가베 정권이 아무 정책이나 내놓기 시작한 겁니다. 
 
97년 정부는 독립해방군 출신 퇴역 군인들에게 5만 짐바브웨 달러(Z$)씩 보너스를 주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짐바브웨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하는 막대한 지출이었죠. 이듬해엔 콩고 내전에 개입해 계획에 없던 돈을 씁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왼쪽)과 그의 부인 그레이스. [EPA=연합뉴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왼쪽)과 그의 부인 그레이스.


[EPA=연합뉴스]




또 이즈음 토지개혁을 명목으로 백인들의 땅을 빼앗아 농장 운영 경험이 없는 흑인들에게 불하합니다.
당연히 농업 생산성은 낮아지고 서방 국가와의 관계도 악화되는 후유증이 나타났고, 크게 의존하던 대외 원조는
뚝 끊어집니다.  
 
이때 짐바브웨 정부는 최악의 수를 둡니다.
화폐를 마구 찍어 적자를 메우기로 한거죠.  
 
그 결과가 2004~2009년의 초인플레이션입니다.
전쟁 중도, 내전 중도 아닌 국가에서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막장 정책이 짐바브웨에서 펼쳐집니다.
 
100조Z$ 지폐 내봤자 달걀 3알 
짐바브웨 정부가 발표한 2008년 1~7월 인플레이션율은 2억 3000%였습니다. 엄청난 숫자지만, 그 마저도 줄이고
 줄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2008년 말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율은 897해%였습니다.   
 
89,700,000,000,000,000,000,000
0이 20개 붙은,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숫자입니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최근엔 수집가들 사이에 30~60달러에 거래된다. [위키피디아]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최근엔 수집가들 사이에 30~60달러에 거래된다.


[위키피디아]




지폐의 액면가가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해 수 차례 돈을 새로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말 1US$가 200만Z$까지 치솟자 중앙은행은 1000만Z$, 2500만Z$, 5000만Z$짜리 지폐를 발행합니다.
그러나 5000만Z$의 가치는 금세 1.4US$까지 추락합니다. 
결국 2008년 8월 정부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합니다.

 모든 금액 단위를 일률적으로 하향 조정한 겁니다. 100억Z$가 하룻밤 새 1Z$가 돼 버린 거죠. 화폐 개혁으로 새 돈도 찍어냅니다. 그러나 무용지물. 
2009년 초엔 100조Z$ 지폐를 발행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2달 만에 자국 통화를 완전 포기합니다. 
 
돈은 휴지, 증시에 돈 몰려…10년 전 판박이  
당시 짐바브웨는 그야말로 대혼돈이었습니다.
골프 라운드 한 번 돌고 나면 음료수값이 50% 올라 있었고, 상점에선 하루에도 몇번 씩 가격표를 새로 적었습니다.
 휴지조각만도 못한 돈뭉치는 수레로 싣고 다녔고요,
 100조Z$ 지폐를 내봤자 돌아오는 건 달걀 3알 뿐이었습니다. 



  
     
짐바브웨 증권거래소의 산업 지수 추이.


짐바브웨 증권거래소의 산업 지수 추이.



 
바로 이런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재 계속 나오고 있는 겁니다.  
달러는 품귀고, 본드노트의 가치가 쭉쭉 빠지자 사람들은 현물을 보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사고 부동산을 사들입니다. 은행 잔고의 가치는 떨어져도 유형 자산은 남으니까요.  
 
주식 시장에도 자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짐바브웨 증권거래소(ZSE)의 산업지수(INDZI)는 연일 상승해 연초 대비 3배 이상 올랐습니다. 연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요. 
인플레이션이 극단으로 치닫던 2007년 상반기에도 짐바브웨 증시는 상승률 4500%를 돌파했었죠.  
 
무가베 사치는 여전…200만$ 생일파티 
짐바브웨 정부는 초인플레이션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달러 암거래 단속을 위해 경찰에 강력한 권한을 줬고요,
적발된 암거래상을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도 강화했습니다.
가격을 이원화한 상점도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더구나 무가베 대통령 일가의 초호화 생활은 멈출 줄을 모르니 정부의 말발이 먹힐리 만무합니다. 
올해 2월 무가베 대통령은 약 200만 달러를 들여 자신의 93세 생일 파티를 여는가 하면, 지난 7월 처형(그레이스의
언니) 생일엔 미화 6만 달러를 선물했습니다. 
 
10년 전 짐바브웨 사람들은 액면가 수백, 수천조의 화폐를 지니고도 가난뱅이로 살았습니다.
 과연 그 악몽이 반복될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2000년대 중반 초인플레이션 당시 짐바브웨인들은 가난한 백만장자였다. [중앙포토]


2000년대 중반 초인플레이션 당시 짐바브웨인들은 가난한 백만장자였다.


 [중앙포토]

 


초인플레이션의 재앙
통제가 불가능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超)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보통 한달 새 전달 대비 물가가 50%넘게 상승했을 때를 말하죠. 
전쟁·내란·재해 등 변고가 있을 때 초인플레이션이 주로 발생하는데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19~21년 사이 물가가 약 1조배 올랐다고 하죠. 전쟁 중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전후 공급은 달리는데 수요가 폭증하자 생긴 현상이었습니다.  
이때 발행된 돈들도 어마어마한 액면가를 자랑하는데요,
 1924년엔 역대 주화 가운데 최고가로 남은 1조 마르크 동전이 나옵니다. 




   
1924년 발행된 1조 마르크 동전.


1924년 발행된 1조 마르크 동전.




1919~24년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헝가리는 2차 세계대전 뒤 더 심각한 상황을 맞습니다.
1945~46년엔 매 시간 물가가 뛰었죠. 이때 1해 (100,000,000,000,000,000,000) 펭귀 지폐가 나오기도 합니다.
역시 물자는 부족한데 수요가 늘자 대책없이 돈을 찍어낸 결과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헝가리는 1946년 7월 화폐 단위를 펭귀에서 포린트로 바꿉니다.
이때 교환비율은 40양(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펭귀당 1포린트였죠.
양(穰)은 1000의 9제곱인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헝가리가 발행한 1해짜리 지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헝가리가 발행한

 1해짜리 지폐.



최근엔 베네수엘라가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전임자 우고 차베스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몰락을 자초한 결과입니다. 
세계 1위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석유만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오일머니에 의존해 무상 복지를 펴고, 일자리를 나눴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차베스 시절엔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유가를 반토막 났고, 오일머니에 기대던 베네수엘라 재정은 파탄났습니다. 화폐 볼리바르의 가치도 급락했고요. 마두로 역시 돈을 마구 찍었습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뒤따랐죠.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재앙입니다. 식품과 생필품은 동이나 인구 약 3000만 명 가운데 4분의 3이 평균 몸무게
 8.7㎏를 잃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입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IMF는 내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230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EPA=연합뉴스자료사진]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EPA=연합뉴스자료사진]




무가베 몰락으로 본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말로'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아프리카 대륙은 외세의 개입과 내부 갈등으로 정정이 불안하고 민주주의 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탓에 독재자가 유난히 많이 출현했다.

대부분 군인 출신으로 쿠데타로 집권한 이들은 철권을 휘두르며 무소불위의 권좌에서 군림했으나 비참한 말로로 생의 끝을 맞았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AP통신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장기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몰락을 계기로, 다른 독재자의 경로를 간단히 소개했다.

1994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흐야 자메 전 감비아 대통령은 지난해까지 무려 22년간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예상을 뒤엎고 대선에서 패했지만, 이에 불복해 대통령직 이임을 거부하다 유엔, 아프리카 연합

 등 안팎의 압력으로 세네갈로 망명했다.


모부투 세세 세코 전 콩고 대통령은 1965년 역시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가 31년 만에 1997년 무력으로 축출돼 모로코로 망명해 암으로 생을 마쳤다.

이디 아민 다다 전 우간다 대통령은 잔혹한 아프리카 독재자의 대명사 격인 인물이다.


그의 집권 기간(1971∼1979년)은 다른 독재자에 비해 짧았지만 반대 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30만∼50만명을

 대학살해 '아프리카의 히틀러'로 불렸다.

내부 반발을 진압하려고 1978년 탄자니아를 침공했다가 패전하는 바람에 1979년 리비아로 도망쳤다. 2003년 8월

사우디에서 병사 할 때까지 귀국하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1969년 27세에 쿠데타로 왕정을 전복하고, 헌법과

입법부를 폐지해 실질적인 '왕'에 올랐다.

2011년 '아랍의 봄' 운동으로 축출될 때까지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했다.


 원유수익을 바탕으로 경제 발전과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성과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정확한 통계가 없을 만큼 무자비

하게 반대파를 숙청하고 테러조직을 지원했다.

황금 권총, 100분 유엔총회 연설, 여성 경호대로 대변되는 기행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도주 중 2011년 10월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에게 총에 맞아 죽었다.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AP=연합뉴스자료사진]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AP=연합뉴스자료사진]


찰스 테일레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1997년 집권 뒤 두 차례 내전을 벌였다.

25만명이 숨졌다. 2003년 미국과 반군에 밀려 실각하고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가 3년 뒤 체포됐다.

다이아몬드를 받고 시에라리온 반군을 지원한 혐의로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산하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에서

테러, 살인 등 혐의가 인정돼 5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블레즈 콩파오레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도 1987년 유혈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

2014년까지 24년간 철권 통치하다 반정부 시위에 쫓겨 코트디부아르로 도망쳤다.

이센 아브르 전 차드 대통령도 198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쿠데타로 쫓겨난 1990년까지 8년간 반대 정파 4만명을 살해, 아프리카 연합 특별법정에서 종신형을 받았다.





재판정에 선 이센 아브르 전 차드 대통령[EPA=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정에 선 이센 아브르 전 차드 대통령[EPA=연합뉴스자료사진]


hskang@yna.co.kr




막 내리는 무가베 시대… 떨고 있는 아프리카 독재자들 기사의 사진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