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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아키히토 일왕, 2019년 4월30일 퇴위...나루히토 왕세자 5월1일 즉위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 나루히토 왕세자(왼쪽)


아키히토 일왕 부부와 나루히토 왕세자(왼쪽)




아키히토 일왕 부부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키히토 일왕 부부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 부부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 부부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키히토 일왕과 부인 미치코 왕비(자료사진)

© AFP=뉴스1




日왕실회의 '아키히토 일왕 내후년 4월 말 퇴위' 결정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일이 내후년 4월 말로 정해졌다.
NHK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궁내청(왕실 담당 기관)에서 열린 왕실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2019년 4월30일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면 다음날인 5월1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새 일왕에 즉위'하는 것으로
일왕 양위(讓位·왕위를 물려줌) 일정에 관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당초 아키히토 일왕 퇴위일을 2019년 3월31일, 나루히토 왕세자의 일왕 즉위일을 2019년 4월1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 내에선 "2019년 4월에 각급 지방선거가 연이어 치러지는 만큼 이 시기를 피해 양위 일정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됐으며, 이에 따라 이날 회의에서도 아키히토 일왕 퇴위일이 내년 4월 말로 정해진 것
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오는 8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일왕 양위 일정을 최종 의결할 계획이다.
1933년생인 아키히토 일왕은 작년 8월 TV영상메시지에서 "고령으로서 일본의 상징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는 말로
 양위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올 6월 아키히토 일왕 1대에 한해 '생전퇴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왕실전범(典範) 특례법'을
마련해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일본 정부는 내년 초 관련 위원회를 구성, 구체적인 양위 의식과 나루히토 왕세자 즉위 후 사용할 새 연호 마련 등에
착수할 계획이다.


ys4174@






인사이트
연합뉴스







물러나는 아키히토 일왕…전쟁책임 반성·'백제 핏줄' 강조

'국가원수→국가상징' 변화 첫 일왕…'국민과 함께한다' 각인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일본 정부의 8일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1년 5개월 뒤인 2019년 4월말 물러나게

 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그는 '국가의 상징'으로 활동한 첫 일왕이었다.

2차대전 당시 일왕으로 전쟁 가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국가 원수' 히로히토(裕仁·1901~1989)에 이어 즉위한

그는 일본 국민과 고락을 같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주력했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상징으로의 역할을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으로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는 재임 중 전쟁 희생자 위령이나 재해지역 방문 등의 일정에 신경을 쏟았다.

왕비와 함께 재해지를 방문해 국민의 아픔을 보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본 국민도 아키히토 일왕의 행보에 박수를

 보냈다.

   

현재 집권 자민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극우 일변도의 행보를 보이며 침략전쟁이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것과 달리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도 밝혔다.

일본의 패전일인 지난 8월 15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쟁 피해자 추도식에서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이후 3년 연속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몸에 한국의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지난 9월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마(高麗·'고구려'라는 뜻)신사를 참배했다.

/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 2019년 4월30일 퇴위...나루히토 왕세자 5월1일 즉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일이 오는 2019년 4월 30일로 결정됐다.
1일 열린 일본 왕실회의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2019년 4월 30일 퇴위하고 그의 아들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이튿날인 5월 1일 즉위하는 방안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는 1993년 1월 나루히토 왕세자의 결혼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왕실회의 이후 25년 만이다.

이날 회의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히타치 왕자 등 왕족, 중·참의원 의장과 부의장, 최고재판소장 등 9명이

참석했다.

오전 9시 47분쯤 시작한 회의는 오전 11시쯤 끝났다.


일본 정부는 '2019년 3월 말 퇴위, 4월 1일 즉위', 2019년 4월 말 퇴위, 5월 1일 즉위' 방안을 놓고 검토한 결과, 2019년 3~4월에 열리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피하기 위해 4월 말 퇴위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일본 왕실은 "조용한 환경에서 퇴위식과 즉위식을 치르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해왔다.
일본 정부는 이날 결정된 내용을 오는 8일 열리는 각의(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사진제공=EPA]


 

일본, 나루히토 새 일왕 5월 즉위 축하차 열흘간 연휴 추진



【서울=뉴시스】이재준 기자 = 일본 정부는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하는 5월1일을 전후해 열흘간의 장기 연휴를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교도 통신이 6일 보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1일 도쿄 궁내청 특별회의실에서 중참 양원 의장과 최고재판소 장관(대법원장 격) 및 왕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왕실회의를 열고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4월30일 퇴위하고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가 5월1일 즉위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나루히토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5월1일을 축일로 정할 경우 축일법 규정에 의해 그 전후인 4월30일과 5월2일도 휴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쇼와의 날과 어린이날 등 휴일을 끼고 4월27일부터 10일 연휴가 된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국민생활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열흘 동안의 황금연휴에 대한 충분한 주지기간을 두는 한편 정부 제출 아니면 의원입법으로 관련 법안을 서둘러 마련할 의향이라고 한다.

한편 일본 정부는 새 일왕 즉위일인 5월1일에 맞춰 아키히토 일왕의 탄생일인 12월23일을 그대로 축일로 할지에 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의식과 나루히토 왕세자의 즉위식 등에 대해서도 협의할 전망이다.




  yjjs@newsis.com








일왕 아키히토



일왕 아키히토ⓒAP/뉴시스





아카히토 일황의 동생인 히타치 마사히토 공(오른쪽)과 부인 하나코 공비가 됴쿄의

 궁내청에서 열린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일정과 후임의 취임일을 결정하기 위한 일본

왕실 회의에 참석해 있다.


/ 2017년 12월 1일, 일본 도쿄




지난 9월 17일(현지시간) 일본유족회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아키히토
(明仁) 일왕(왼쪽)과 미치코(美智子) 왕비(오른쪽)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패전추도식에 참석한 아키히토 일왕 부부


패전추도식에 참석한 아키히토 일왕 부부 [AP=연합뉴스 자료사진]


日왕비 "안식 갖게 된 것에 평안함 느껴"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지난해 '생전퇴위' 입장을 밝힌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019년 3월 31일 퇴위하고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같은 해 4월 1일 즉위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가 최종 검토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오는 22일 중의원 선거 이후 내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왕족 등이 참여하는 회의를

개최한 뒤 퇴위 특별법 시행일을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해 8월 발표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중도 퇴위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전문가회의 구성 등을 통한 논의를 거쳐 지난 6월 국회에서 아키히토 일왕 퇴위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정부 내에선 당초 아키히토 일왕이 2018년 12월에 퇴위하고 2019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연호를 사용하는 방안도 제기됐지만, 왕실을 담당하는 궁내청은 연말연시에 왕실 행사가 많아 이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는 총리관저가 이후 궁내청 의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나루히토 왕세자가 2019년 4월 1일 즉위하는 동시에 새로운 연호를 적용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하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픽] '생전퇴위' 의사표명 아키히토 일왕 2019년 3월말 퇴위할 듯


[그래픽] '생전퇴위' 의사표명 아키히토 일왕 2019년 3월말 퇴위할 듯


현재 연호인 헤세이(平成)를 대체할 새 연호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단계로 전해졌다.

새 연호는 내년 봄이나 여름에 사전 발표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83세 생일을 맞은 미치코(美智子) 왕비는 궁내청 출입기자단의 질의에 서면 답변하며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를 위한 특례법이 통과한 것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미치코 왕비는 아키히토 일왕이 "오랜 기간 오로지 '상징'의 바람직한 모습을 찾아 여기까지 걸어왔다"며 "고령이

된 지금, 잠시 안식의 날들을 가지게 된 것에 헤아릴 수 없는 큰 평안함을 느끼고 이를 가능하게 해 주신 많은 분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치코 왕비는 최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핵무기금지조약을 이끌어낸 비정부기구(NGO)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선정된 것에 대해 "핵무기 문제에 관해 일본의 입장은 복잡하지만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 피폭자들의 오랜

 노력으로 핵무기의 비인도성, 한번 사용된 경우의 무서운 결과 등에 세계의 눈이 향하게 된 것에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피폭자의 마음이 결코 전쟁의 '연속'를 만드는 보복이 아니라 항상 미래 평화의 희구를 향해왔다는 것에

세계의 눈이 쏠리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사이트
연합뉴스





올해도 서울 한복판서 ‘일왕 생일 기념행사’ 열려


서울 도심의 호텔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파티가 올해도 열린다.

7일 오후 6시 일본 대사관은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일본은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인 12월 23일을 ‘일왕 탄생일’이라고 부르며 국경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매년 12월

 각 재외공관에서 주재국 인사들을 초청해 축하 행사를 연다.


외교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서울에서 일왕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에 대해 “외교관례에 따라 우리의 우방인 일본 대사관이 연례적으로 주최하는 국경일 행사”라며 “서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일본 대사관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인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교부 일부 인사도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2016년에도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일왕 생일파티가 진행됐다.

이에 당시 몇몇 시민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지난 9월 20일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마(高麗·'고구려'라는 뜻)신사를 참배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고마 후미야스 구지(宮司)다. [사진=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지난 9월 20일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마(高麗·'고구려'라는 뜻)신사를 참배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고마 후미야스 구지(宮司)다.


[사진=연합뉴스]












아키히토(일본어: 明仁 (あきひと), 문화어: 아끼히또,


1933년 12월 23일 ~ )는 일본의 현임 천황(제125대)으로 쇼와 천황고준 황후의 장남이다.

어릴 적 칭호는 쓰구노미야(일본어: 継宮 (つぐのみや))이다. 연호는 헤이세이(일본어: 平成 (へいせい))이다.



아키히토는 1936년 3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일본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홀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1940년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했으나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화가 심화됨에 따라 동생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正仁)과 함께 도쿄를 떠나 일본 도치기 현 닛코 시의 다모자와 황실 별저에서 칩거했다.


1949년 가쿠슈인 고등과에 입학한 후 미국인 가정교사 엘리자베스 바이닝 부인의 특별 지도를 엄격하게 받았으며,

1952년 일본 가쿠슈인 대학교에 진학하여 정치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영국으로 유학, 옥스포드 대학교 대학원 어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십수 편의 논문을 일본 국내 및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것이 있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52년 11월 10일 입태자례(立太子禮)를 치르고 일본 황태자에 올랐으며, 1953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공무에 나섰다.

 1959년 4월 10일 쇼다 미치코와 혼인식을 올렸는데 이는 메이지(明治) 시대 이래 첫 평민 출신의 황태자 비의 탄생

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전국민적인 붐(이른바 "미치 붐"(ミッチー・ブーム))을 일으켰다.


1975년 아내와 함께 일본 오키나와를 방문했다가 화염병 테러 미수사건로 아찔한 순간을 겪었음에도 의연히 대처하여 오키나와 섬에서 많은 지지를 얻기도 했다.


1989년 1월 7일 부황 히로히토의 서거로 아들 아키히토 황태자는 부황 히로히토을 이어 도쿄 황거에서 일본 제125대

천황에 즉위하였고, 연호를 1월 8일 오전 0시 0분 0초부터 쇼와(昭和時代)에서 헤이세이(平成時代)로 바꾸면서, 쇼와

시대는 저물었다. 그리하여 아키히토 천황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첫 상징 천황으로써의 의무를 다하게 되었다.


2016년 8월 8일 82세의 고령이었던 아키히토는 생전에 황위를 장남인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생전에 황위를 물려주는 것은 황실 전범에 규정되어 있지 않고, 일본국 헌법에서 위배되는 논란이 있다. 이를 위해 아키히토는 선위를 할 수 있도록 황실 전범 개정을 추진했다.


 한편, 아키히토의 이양 선언은 일본의 극우파와 자유민주당 등 일본의 보수주의 세력이 천황을 일본국의 명예 원수로 하는 개헌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논란이 있었다.

2017년 6월 9일에는 일본 참의원이 《천황의 퇴위 등에 관한 황실 전범 특례법》을 채택했으며, 2017년 6월 16일

기해 공식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아키히토는 모든 지위와 직무를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물려주게 되었고, 1817년에 퇴위한 고카쿠 천황 이후에 202년 만에 생전 퇴위한 상황(上皇)으로 남게 되었다.

아키히토의 퇴위 시기는 정령(政令)에 따라 법률이 채택된 시점에서 3년 이내로 명시되었다.

2017년 12월 1일 일본 정부는 아키히토 천황이 2019년 4월 30일을 기해 퇴위한다고 결정했다.











아키히토 일왕(왼쪽)과 미치코 왕비


(자료사진) © AFP=뉴스1







아키히토와 백제(대한민국)와의 관계


2001년 1월, 아키히토는 68세 생일의 기자 회견에서 천황의 모계 혈통이 백제계라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직접 언급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자신의 선조의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 10대손이라는

 속일본기의 내용을 인용했다.


속일본기는 793년 당시 간무 천황이 펴낸 역사서로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직계 후손인 화씨부인이라고 적고 있다. 헤이세이 천황은 또 백제 무령왕 당시부터 일본에 5경 박사가 대대로 초빙됐으며 백제 무령왕의 아들 백제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 줬다고 말했다.

 한편 1990년 대한민국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천황의 한국 혼혈에 대해서 언급하여 한국과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일본은 천황을 국가 원수로 보는 견해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헌법 제1조)이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각각 국회내각의 지명에 근거하여 행정부(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최고

재판소장관을 임명한다(제6조)는 내용에 근거한다.


또한 “국권의 최고 기관이며, 국가의 유일한 입법기관”인 국회를 소집(제7조 2호)·해산(제7조 3호)하는 등, 국정의 중요한 행위를 ‘국사행위’로 수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제7조, 다만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함). 또한


“전권위임장 및 대사, 공사의 신임장을 인증”(제7조 5호)하고,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 외교 문서를 인증”

(제7조 8호)하며,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제7조 9호)하는 등, 일반적으로 국가 원수가 수행하는 외교상의 주요 행위를 천황이 실시하다고 정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천황이 국가 원수라고 본다.[주 2]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로는, ‘천황은 국가 원수’라고 한 1990년 5월 14일 참의원내각법제국 장관 답변이 있었다.

 또한 천황을 ‘나라의 상징이며, 또 일정 부분의 외교 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한정된 의미의 국가 원수로 표현했다.

천황 플래카드 사건에서 도쿄 지방재판소는 ‘국가원수인 천황’이라고 표현하여 천황을 국가원수로 표현했다.

천황을 국가원수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는 일반적으로 일본국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이 “헌법이 정한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국사행위로 규정된 내용도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를 인증"하고,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하는 등의 의례적인 행위에 해당되어,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지난 2016년 12월 8일 일왕 생일 파티에 항의하는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해 일왕 생일파티를 진행한 12월 8일 시민들은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앞을 찾아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시민들은 “왜놈왕 생일 웬말이냐”며 생일파티

 개최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강제징용 조선인 600만 명, 일본군 위안부 20만 명,

여기에 오고 싶니”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기도 했다.


ⓒ제공 : 뉴시스



서울 도심 일왕 생일파티 항의 시위 



인사이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