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확진자 접촉으로 중단된 필리버스터 / 사진=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재석 의원 287명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2.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국민의힘과 정의당 등 야당이 다수의 힘을 과시 중인 더불어민주당에 이렇다할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 입구에서 여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박병석 국회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서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교대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2.12. photo@newsis.com
실리' 잃고 '조롱'까지 당하는 야당
국민의힘·정의당, '다수의 힘' 과시하는 여당의 '동네북' 전락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21대 국회 첫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고 압도적 의석(174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과시하며 원하는 법안들을 대거 강행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반발, 요청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민주당 뜻대로 민주당 입맛에 맞는 법안들만 통과됐고, 일부는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등을 위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한을 1년 6개월 연장한 '사회적참사법',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등 100여 건의 법안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9일)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한 곧바로 열린 12월 임시국회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으로 토론이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처리가 가능하다.
공수처법 개정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국민의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원했던 정의당은 철저히 배제됐다.
심지어 다수의 힘을 과시하는 여당에 조롱까지 당했다.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더니, 이제 와 상대 정당을 독재로 몰아가는 이런 행태야 말로 정말 독선적인 행태다."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지난 8일 공수처법 개정안 법사위 의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의 일방 처리에 반발해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 '민주주의 유린 공수처법 저지', '권력비리 방탄 공수처법 저지'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항의하자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은 숙원 과제였던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기 위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한 후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다른 두 건의 법안에 대해선 여유로운 모습이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방법이 있지만, 그 시기를 조정해 야당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충분한 토론 기회를 드리기로 했다"며 "법안 처리는 충분한 토론을 하고 나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수처법 개정과 관련해선 야당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더니,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혁법안에 대해선 '야당 존중'을 이유로 시간을 더 줄 테니 한 번 떠들 테면 떠들어 봐라, 실컷 떠들고 나면 우리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일부 내용을 두고 '막말 부스터'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막말 부스터가 됐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잘생기고 감성적이라 지지했던 여성들이 요즘 고개를 돌린다'는 발언과 '아녀자'라는 표현이 어떻게 신성한 본회의장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나올 수 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즉각 사과함이 마땅하다.
필리버스터의 뜻이 무제한 토론이지, 무제한 막말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씨 아버지 이용관 씨 등과 정의당 지도부가 1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20대 국회 말 준연동형비례제 선거법 개정을 고리로 민주당에 협력했다가,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뒤통수를 맞은 정의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처리된 다음 날인 11일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업재해 사망 유가족들과 함께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민주당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면서 무기한 노숙 단식에 돌입했다.
이 법은 이낙연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여러 차례 처리를 언급했으나, 이번에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100여 건의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지난 10일 재차 "이른 시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의당은 더 이상 민주당 지도부의 말은 믿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민주당은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며 "정의당은 절박한 마음으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이 법을 올해 안에 제정하기 위해 김용균·이한빛 부모님과 함께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했다.
또한 정의당은 지난 8일 조혜민 대변인이 낙태죄 개정 국회 공청회와 관련해 김남국 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놨다가 협박이 섞인 항의 전화를 받는 수모(?)도 겪었다.
정의당에 따르면 김 의원은 이날 저녁 일면식도 없는 조 대변인에게 전화해 왜곡된 브리핑이라 몰아붙이면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낙태죄 폐지는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정의당이 하는 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는 논평을 정의당 측이 내자 김 의원은 "피해자의 사과 요구를 '갑질 폭력'으로 매도하다니, 정의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지 모르겠다"며 "정의당은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정당인가. 정의당 대변인의 왜곡 논평에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하며, 대변인의 책임 있는 사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재차 정의당을 몰아붙였다.
정의당은 그간 국회 운영의 고비마다 민주당 손을 들어주면서 협조해 왔지만, 정치적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손해만 봤다.
그 끝에 이런 푸대접까지 당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야당의 견제 기능은 사실상 실종됐다.
그렇다고 다수 여당이 야당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까지 하는 건 의회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과 정의당 의원들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의 대표자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라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민주당은 마치 영구집권을 자신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지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은 역사에서 증명된 말이다.
지금 이 권력이 영원하리라 믿고 있다면 하루빨리 그 꿈에서 깨야 한다.
sense83@tf.co.kr-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20.12.9/뉴스1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화상화면으로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2020.12.9/뉴스1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
에서 열린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20.12.9/뉴스1 skitsch@news1.kr
반기문 참사 겪고도 똑같다" 선거 한탕만 노리는 野 고질병
■ [외면받는 보수정당] ④인재고립
「 요즘 정치권에선 단연 윤석열 검찰총장이 화두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기 대선후보 1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꼭 1위가 아니더라도, 어느 여론조사를 막론하고 야권 잠룡들 중엔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다.
‘윤석열의 부상’은 누가 봐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다.
그렇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의 위기이기도 하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이 야당의 존재를 지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전국 18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그 전주보다
2%포인트 낮아졌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총선 패배 후 지금까지 국민의힘 지지율은 20% 박스권을 못 벗어나고 있다.
심지어 보수 성향 유권자들조차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다.
응답자 가운데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들(22.8%) 중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43%로 과반에 못 미쳤다.
한 마디로 ‘윤석열을 택할지언정, 국민의힘은 아니다’란 것이다.
왜 이렇게 보수야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일까.
건전한 정당 정치를 위해선 능력있는 제1야당의 재건이 필수적이다.
중앙일보는 보수야당이 처한 현실을 ①가치상실 ②세대고립 ③지역고립 ④인재고립 ⑤계급고립의 5개 분야로 나눠 하나씩 짚어본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처리를
비판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매번 되풀이 되던 청년팔이 만행이 벌어졌고, 그 꼬임에 속아 청년들은 티슈처럼 쓰고 버려졌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에서 각각 중앙미래세대위원장과 서울시당 청년위원장 등을 지낸 김성용(34) 전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지난 3월 15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19년 당 역사상 처음 열린 조직위원장 공개오디션에서 우승해 송파병 당협위원장이 됐고, 총선 전까지 1년 넘게 지역구를 닦았다. 그러나 총선은 뛰지도 못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곳에 혁신통합추진위원으로 활동했던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공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연줄·빽·학벌·직업만 보고 공천할 거면 도대체 당협위원장의 존재 의미는 뭔가. 이 상황에서 어떤 청년이 당에 들어오고 싶겠는가”라고 항변했다.
같은 날 김용태(30) 국민의힘 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은 월셋집을 계약했다. 광명에 공천을 받았지만, 연고도 지낼 곳도 없어 급하게 집을 구한 것이다. 그는 2017년 바른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뒤 계속 서울 송파을에서 선거를 준비했고 총선 예비후보 등록도 이곳에 했지만 결국 출마한 곳은 당이 정한 ‘청년 벨트’ 중 한 곳인 광명을이었다.
송파을에는 2018년 자유한국당이 영입한 배현진 의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의 결정을 이해했지만, 아무 인연도 아는 사람도 없는 지역에서 갑자기 선거를 뛰라고 했을 땐 참 막막했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국민의힘을 휩쓰는 ‘인재 영입 폭풍’의 한 단면이다. 각계 저명인사가 물망에 오르고, 일부는 화제를 모으며 당에 들어온다. 당에서 활동하던 인사는 “참신하지 않다”며 공천과 더 멀어진다.
그리고 다음 선거가 다가오면 “인물이 없다”며 다시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
김성용 전 위원장은 “인재를 배출해 낼 역량이 없는 정당이라는 걸 스스로 보여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탄핵’ 후 주저앉은 보수정당 지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에선 “후보가 안 보인다”(10월 16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고 하고, 그 사이 당 바깥 인사들이 ‘유력 야권 주자’ 타이틀을 꿰차고 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비(非)여권 주자 중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는 유일한 인물이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공공연히 ‘윤석열 대망론’이 거론된다. 서울시장 선거를 두고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내린다. 제1야당 내부보다,
여권과 대척점에 있던 외부 인사들의 존재감이 더 두드러진지 오래다.
“후보가 안 보인다”고 한 김 위원장도 역시 외부인사다.
총선 참패후 사태를 수습하고 당 개혁을 이끌 사람이 없다며 김 위원장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총선 때까지 운전대를 잡은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역시 당 밖에 있을 때 보수진영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대표가 되기 두 달 전까지는 당에 몸담은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당에서 배우고 성장한 인재는 안 보이고, 선거 때마다 외부 인사에 기대니 당에 인물이 있겠나.
국민의힘의 고질병”이라고 지적한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수혈하다 보니 정당 자립성은 사라지고, 뽑힌 사람은 존재감을 드러내려 격렬한 정치를 하게 돼 정치도 나빠진다”며 “공직 후보자를 양성하지 못하면 선거 기획사지 정당인가. 내부 장기를 건강하게 해 튼튼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매번 장기를 교체하니 몸이 좋아질 수 없다”고 분석했다.
“반기문 사태에도 배운 게 없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퇴임 후인 2017년 1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당시 '반기문
대망론'이 절정에 달했지만, 반 전 총장은 입국한지 한달도 채 안돼 불출마를 선언했다. 중앙포토
당 밖에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태를 겪으면서도 아무 교훈을 못 얻은 것 같다”는 지적도 많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윤 총장을 마치 야권 대선 주자처럼 여기며 정권 탈환을 꿈꾸는데,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의 인물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오랜 시간 당을 이끌 수 있는 제대로 된 리더십은 단기간에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2017년 당과 별 인연도 없던 반 전 총장을 서포트하겠다며 당내 핵심인사부터 실무진까지 앞다퉈 줄을 섰던 게 생생하다”며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반 전 총장은 떠났고, 당은 대참사를 겪었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회상했다. 황 전 대표의 등장 때도 비슷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당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다. 그러나 입당과 동시에 ‘친황’이라는 계파가 형성됐다.
박상헌 정치평론가는 “단기적인 선거 이익만 따지다 보니 지속가능한 정당이 되려는 노력을 안 한다”며 “두산 베어스가 꾸준히 강팀인 이유는 좋은 전력과 시설을 갖춘 2군에서 인재가 배출되기 때문인데, 국민의힘은 인재 육성 시스템 없이 스타만 데려오는 팀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문총장이 2017년 2월 1일 국회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국회를
떠나는 모습. 중앙포토
거물 수혈에 내팽개쳐진 인재 육성
━바깥의 거물을 수혈하는 ‘정치적 한탕주의’에 빠져있다가 보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재를 키우는 데는 소홀했다.
당내 청년들이 “선거만 되면 유명인을 모셔와 좋은 지역구를 나눠 주고, 당에서 헌신한 사람은 인지도가 없다며 험지로 보내 고사 시킨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다.
253곳 지역구 중 ‘보수 청년’은 5명 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총선에서도 통합당은 경기 수원정 등 수도권 8곳을 ‘청년 벨트’로 지정하고, 45세 미만 청년 16명을 ‘퓨처 메이커’(future maker)로 지칭하며 이곳에서 경쟁하도록 했다.
그러나 8곳 모두 당선 확률이 극히 낮은 험지였고, 실제 전부 패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회가 다변화하며 정당도 큰 담론보단 다양한 이익을 대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국민의힘은 그 해결방법으로 외부 인재 영입을 택해왔다”며 “문제는 그들이 일회성으로 이용되고 그친다는 점이다.
당에 들어와 주류에 묻혀버리고 내쳐진다”고 비판했다.
영국이나 독일 등에선 ‘청년 보수당’이나 ‘영 유니언(young union)’ 같은 조직이 인재를 육성한다.
일본의 경우 정당에 속한 건 아니지만,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이란 정치 인재 육성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길러진 정치인들이 정계로 대거 진출하기도 했다.
이곳 출신들은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15명이 한 번에 당선되며 큰 주목을 받았고,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를 배출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명시적인 인재 육성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총학생회를 비롯한 운동권 조직이 사실상 교육과 후진 양성 역할을 담당했다.
의원과 보좌진 관계도 고용과 피고용인 관계라기보다 ‘동지’의 성격이 짙어 자연스레 후진 양성이 이뤄지는 측면도 있다.
엄경영 시대전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은 보좌관이나 비서로 정치를 시작해 중진의원이나 국무총리, 장관 등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지만, 국민의힘은 의원과 보좌진이 주종관계에 가까워 당 실무자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할만한 환경이 아니다”며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 속에서 당의 젊은 인사를 무시하니 선거 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외부 수혈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이 지난 3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열린 임시회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의 전신)의 퓨처 메이커 후보 명단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실제 2018년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에선 민주당보좌관협의회(민보협) 출신 36명이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선거 이후 한 토론회에서 “진보좌파는 정치에 관심 있는 후배들을 육성해 왔는데 우리는 세대교체를 위한 충원구조를 충실하게 구축하지 못했다. 우리의 취약한 구조가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재풀 찾아야 할 여연, 해체 거론될 만큼 쇠퇴
인재 충원 방식과 관련해 여의도연구원(여연) 개혁도 거론된다.
과거엔 정치 신인이지만 여연을 거치며 훈련 받은 이들이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었지만 정치는 처음이었던 40대 초반의 유승민 전 의원이 당에 들어온 2000년부터 3년 넘게 여연(당시 여의도연구소)에 있으며 역량을 키웠다.
그러나 최근까지 여연의 역할과 위상은 급격하게 축소돼왔다.
4ㆍ15 총선 직후에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먼저 “여연을 제대로 개혁하려면 아예 해체하고 새로운 연구 법인을 세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여의도연구원 로고. 중앙포토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과 보수진영 연구단체, 학계, 민간 전문가 등을 연결해야 하는 고리가 여연이라 인재풀 양성에서도 허브가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여연을 강화하고 진짜 싱크탱크가 될 인재들도 많이 양성해야 수권정당의 면모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진보 어젠다까지 흡수하며 장기집권한 독일 기민당
「 독일에서 유학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보수정당이 가야할 길을 독일의 기독민주당(기민당)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저서『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는 “보수정당이지만 스스로 보수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보수주의를 실천하고 좌파의 어젠다까지 선점했다”고 적었다.
기민당은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끌던 시절 1983년부터 1998년까지 16년 동안 장기집권했다.
이후 7년간 정권을 내줬지만, 다시 정권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15년째 집권 중이다
. 두 사람은 나란히 독일 역대 최장수 총리 1ㆍ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기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지만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정책 수정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연성을 중요 무기로 삼은 메르켈 총리는 집권 기간 동안 원전 폐쇄, 복지 확대, 동성애, 증세, 최저임금 문제 등에 있어 진보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주요 가치들까지 과감히 흡수했다.
또 재무ㆍ외교 등 주요 8개 부처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주며 대연정을 통한 개혁을 추진했다.
김 위원장이 저서에서 “좌파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고 설명한 이유다.
한영익ㆍ윤정민ㆍ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yunjm@joongang.co.kr
21대 국회 국민의힘 지역구 당선인 출신지역 분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신공항 갖고 서로 할퀼때 알아봤다, 영남당 전락한 국민의힘
[외면받는 보수정당] ③지역고립
37.2%(2008년)→50.3%(2012년)→45.7%(2016년)→66.7%(2020년)
18~21대 총선 때 현 국민의힘 계열인 보수정당의 영남 지역구 당선자 비중이다.
이 기간 영남에서는 50~60석가량을 유지했지만, 전체 지역구 의석수가 137석(2008년)→127석(2012년)→105석(2016년)→84석(2020년)으로 줄어들며 영남 의석 비율이 확 커졌다.
지난 4월 총선에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확보한 지역구 84석 가운데 56석(66.7%)이 영남 지역구였다. 출신지가 영남인 지역구 의원은 58명(69.0%)으로 더 많았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영남 지역구 비율은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이다.
2000년대 초반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의 영남 지역구 의석 비율도 57.1%(2000년), 60.0%(2004년)로 높았지만, 2008년엔 친박연대(영남 5석)를 포함해도 37.2%에 그쳤다.
이후 출범한 새누리당 때는 50.3%(2012년), 45.7%(2016년)로 50% 안팎을 유지했다. 21대 총선 들어 영남 지역구 의석 비율(66.7%)이 20대 국회 대비 20%포인트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는 수도권 의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역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수도권 의석수는 18대 총선(2008년) 때 8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43명(2012년)→35명(2016년)→16명(2020년)으로 수직 하락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국민의힘 인사는 “과거에는 수도권 의원들이 당 중심의 한 축을 맡았지만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영남 보수파가 당의 유일한 주류가 됐다”고 말했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수도권에서의 국민의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지역적 기반이 있는 영남 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과잉 대표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역논리·이념색 강화→지역정당화’…악순환 고리 빠져
2000년 이후 국민의힘 지역별 의석 변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지역정당화의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일방적 지지 성향이 강한 영남이 당 내부에서 압도적 주류가 되면 개별 이슈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응성을 떨어뜨린다. 집토끼, 영남의 이해관계에만 과하게 반응해 매몰될 수 있다”(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것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이런 식으로 영남 비중이 급증하면 영남당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국민의힘은 애초 지역정당 성격이 강해 선거에서 이기려면 확장성이 핵심인데, 이념색채가 짙어지며 오히려 지역편중 이미지가 더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를 ‘영남 딜레마’로 표현한다.
영남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인구·문화·기술 등 모든 게 다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정작 국민의힘은 수도권에 국회의원이 적다.
정당은 지지층 의사를 반영해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데, 지지층의 뜻이 곧 영남 주민의 뜻이라면 그게 곧 지역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표를 끌 만한 정책을 추진해도 이는 기존 지지층의 이해와는 관계가 적다.
이대로라면 ‘수도권이냐. 영남이냐’는 딜레마 상황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해 4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 길을 막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투쟁력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것도 영남 지지층이 과대표되는 과정에서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TK(대구·경북)의 한 재선의원은 “지역구에 가면 늘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간곡한 호소와 함께 ‘왜 그렇게밖에 못 싸우냐’는 호소를 듣는 게 일”이라며 “그런 얘기를 듣고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강경투쟁’의 효과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결사 항전에 나섰지만 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법안(선거법·공수처법) 통과 저지에도 실패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대를 때려도 상대가 아프게 때려야 하는데 허공에 주먹질한 꼴 아니냐. 지난해 장외·강경투쟁을 해서 남은 건 지지층을 향해 ‘우리 이렇게 열심히 싸웠다’고 호소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지난해 9월 공수처법 저지를 위해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릴레이 삭발을 하고, 연말 장외집회에도 적극 나섰지만, 이듬해
4·15 총선에서 참패했다.
야당 시절 ‘호남 고립’ 때문에 고전하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호남+충청)을 형성해 지역 프레임을 뚫고 정권을 잡았다. 이후에도 민주당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등 아예 PK(부산·경남) 출신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영남표를 줄기차게 공략했고 이게 대선 승리의 주요 원동력이 됐다.
한 야권 인사는 “현재 국민의힘에선 영남고립을 어떻게 극복할 지에 대해 정교한 전략이나 정치적 상상력이 보이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야당되면서 더욱 지역 이슈에 매몰
부산 가덕도(사진 오른쪽)와 부산항 신항 일대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오후 국민의힘 부산시당 회의실에서 하태경, 황보승희, 안병길, 박수영 의원 등이
신공항 관련 외부 인사들과 '부산 가덕도신공항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이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진 의원들이 지역 이슈에 함몰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정부가 ‘김해신공항’ 사업 관련 재검토 취지의 결론을 내린 뒤,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두고 TK(반대)와 PK(찬성)가 사실상의 내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당시 부산 의원 15명이 ‘부산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발의하자 주호영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던진 이슈에 말려들면 안 된다”며 질책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PK의원 사이에선 “주 원내대표가 자기 지역구(TK) 논리에만 매몰돼있다”는 뒷말이 나왔다. 당 지역구 의석의 66.7%를 차지하는 TK·PK가 내분 양상을 벌인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는 묻혔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내부 갈등 국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분위기가 살벌해 무슨 말을 하기도 조심스러웠다”고 기억했다.
당 전체의 이슈보다 지역구 사정만 신경 쓰는 사례도 허다하다.
10월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에서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울산 중구, 초선)이 질의시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발언을 끝냈다. 지역 현안인 부산·울산 광역철도 송정역 신설과 관련한 질의에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검토해보겠다”고 답하자 박 의원이 “그러면 거의 된 거로 알고, 시간이 1분20초 남았지만 질의를 마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여당 소속인 진선미 국토위원장이 “말이 안 나오네”라고 하는 등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당시 상황을 전해 들은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부동산 문제 때문에 국민들이 난리가 났는데 야당 의원이 주무 장관을 몰아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지역구 민원이나 챙길 때냐”며 한숨을 쉬었다.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세기 미국에는 남부 농민만을 타깃으로 한 제3당이 있었지만 결국 확장에 실패하고 소멸한 사례가 있다. 국민의힘이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특정 지역의 파이가 커지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영남 보수의 목소리가 톤 다운되지 않으면 지역정당으로의 더 몰락이 더 심화될 수 있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전국정당으로 회복할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수도권을 향한 어필 전략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부 견제로 융통성 발휘, 집권 놓지 않는 日자민당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 이래 정권을 빼앗긴 것은 1993년과 2009년 두 차례로, 기간은 합쳐서 5년8개월에 불과하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선 자민당을 포함한 보수정당이 과반을 확보한만큼, 2009년 패배에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자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중의원 의석 480석 가운데 119석만 확보하며 민주당(308석)에 말 그대로 참패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뒤인 2012년앤 294석을 확보하며 민주당(57석)에서 정권을 탈환, 건재를 과시했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배경에는 특유의 정치문화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된다.
그 중 자민당 내부에서 작동하는 ‘견제와 균형’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우파 빅텐트 성향의 정당인만큼 ‘극우에서 중도까지’ 파벌연합체적 성격이 있어, 국민의힘과 달리 노동·환경 문제 등에 있어 실용적이고 융통성있는 의제 설정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 9월 열린 자민당 총재선거 '소견 발표 연설회'에서 나온 경제정책 관련 발언의 종류도 다양했다.
“일자리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스가 관방장관, 현 총리)는 전통적 논리도 있었지만 “성장 과실의 분배를 생각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기시다 정조회장) “철도 및 도로·정보망이 발달할수록 도쿄 일극 집중이 진행되는 게 이 나라의 구조”(이시바 전 간사장) 등 결이 다른 해법도 다수 언급됐다.
한영익·윤정민·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주호영(왼쪽) 국민의 힘 원내대표와 이재오 국민통합연대 중앙집행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폭정종식을 위한
정당·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0.12.10. park7691@newsis.com
국민의힘, '극우 손절' 기류 확산 "아스팔트 우파 거리 둬야
과거로 회귀해선 안 돼" "강경 태극기 세력에 휘둘리지 말자"
비상시국연대 반문투쟁 지지해도 적극적인 참여는 안 할 듯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국민의힘이 재야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반문 연대' 결집에 나서면서 일부 강성보수 세력과도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자 당 내에선 우려를 나타내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보수진영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연석회의에 참석해 조기 정권퇴진을 목표로 하는 '폭정종식 민주쟁취 비상시국연대' 출범에 힘을 보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분열된 보수 진영이 재결집하는 양상을 보이자, 정치권 일각에선 문재인 정권 퇴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극우 세력과도 다시 손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내 과거와의 단절과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문정권 폭압이 심해진다고 과거와의 연대로 회귀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내 허물을 남의 허물로 덮어선 안 되고 덮을 수도 없다.
문정권의 실정이 과거 우리 당의 잘못을 모두 없던 것으로 덮어주지 않는다"며 "국민은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 만큼 내 허물을 성찰하는 사람에게 지지를 보낸다. 아파도 잘못된 과거는 절연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반문재인 연대와 투쟁은 맞지만, 강경 태극기 세력에 휘둘리거나 탄핵반대 세력이 주도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며 "문재인 반대를 외치지만, 아스팔트 우파가 중심이 되는 반문 연대는 중도층을 등돌리게 하고 국민들의 눈살을 더 찌푸리게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주호영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반문재인 투쟁이 절박하고 긴요하다면 우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연대해서 정당이 주도하는 장내 투쟁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야당 밖의 시민사회와 연대할 경우에도 '탄기국'과 '범투본'처럼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비호감 세력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에 제대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야당이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야당, 즉 비호감 이미지를 해소하고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을 승리할 수 있는 중도층 견인이 가능한 야당이어야 한다"며 "도로 새누리당, 도로 한국당, 도로 태극기로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배준영 당 대변인은 이날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상시국연대'를 묻는 질문에 "문재인 정권의 무능, 폭정, 법치민주주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 범야권이 뜻을 한 번 같이 했다는데 의미가 크지 않나 생각한다"면서도 "정권교체가 꼭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정당, 시민단체도 각자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서 그 방향에서 그것을 극대화한 후에 또 한 번 뭉쳐서 시너지 효과도 내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문 비상시국연대를 지지하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국민의힘 복당 문제에 대해서도 "본인이 복당을 원하시고 또 적극적으로 하시면 문호가 열릴 수는 있는데 다만 그 시기 문제라든지 방법상의 문제라든지 이런 거는 우리 정당 내부의 어떤 공감대가 형성돼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본다"고 답했다.
김은혜 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호영 원내대표가 비상시국연대 공동대표로 추대된 데 대해 당 차원의 공식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원내대표가 개별적으로 갔다 온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시국연대의 투쟁 동참 여부에 대해선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하시고 당은 당대로 할 일이 있다"며 "주 원내대표가 말할 사안이지만 저는 들어본 적 없다. 비대위원장도 선을 그어서 염려 안 해도 될 듯하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jh@newsis.com
국민의힘 당사. 오종택 기자
회의실 백드롭만 만드는 당 아닌가요" 이게 국민의힘 현실
[외면받는 보수정당] ①가치상실
대한민국 제1야당의 최우선 정책 순위가 뭐냐고 묻자 모른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화여대 재학생 102명에게 ‘국민의힘이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있는 가치ㆍ정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결과다.
부정적 반응보단 “모르겠다”(34명)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에 가깝다. 대화체로 재구성한 그들의 생각.
A(경영학부)=“그런 거 없는 듯. 그냥 민주당 막기에 급급해 보여요. 분명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텐데…
당 지도부 회의할 때 뒤에 거는 배경 문구를 제일 열심히 만드는 것 같아요.
정작 내세우는 정책은 뚜렷하지 않아요.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있는 가치ㆍ정책이 있는지 의문.”
B(정치외교학과)=“대안이 너무 부실해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초딩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원론적인 얘기만 하지말고 제대로 된 대안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C(사회학과)=“거대 여당 아래서 103석은 힘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현재로선 ‘일단 살아남자.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마당에 뭘 할 수 있겠나’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의 목표는 생존.”
D(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특정 가치를 추구하는 것 보단 현정부 비판이 최우선 아닌가요. 저는 여당의 빈틈을 노려 보수정당 중심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걸로 봐요.
문제는 알맹이가 없다는 거죠. 현재로서 추구하는 가치는 반문재인, 친재벌, 기득권 지키기, 대북강경정책, 틀딱이미지 벗기….”
20대 이대생이 바라본 보수정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민의힘 내부에선 “정체 불명이란 비판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출범과 동시에 정강정책에서 박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국민행복’과 ‘창조’ 등을 삭제하고 7가지 핵심가치를 내세웠다.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이 우선 순위에 올랐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2월 미래통합당을 출범시킬 땐 ‘삶의 질 선진화’를 필두로 경제 이슈로 우선 순위가 이동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당의 기본정책은 더 크게 달라졌다. 김 위원장은 6월 취임후 첫 당 경제혁신특위 회의에 참석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지금의 현상보다 나은 위치로 옮겨놓을 것이냐, 이것이 지상 목표”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 ‘경제 혁신’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등의 문구가 전면에 배치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리더십 교체기마다 당 핵심가치가 달라지면 당이 정신적으로 공중분해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제시한 대안이 제대로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냐”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에 대해 민주당에서도 냉소 어린 시선이 적지 않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박근혜 이후 유권자와 소속 의원의 제대로 된 지지를 받는 리더십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도 능력은 있는 사람이지만 보수정당에 로열티와 정통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며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관된 가치와 그에 기반한 리더십이 없다 보니 ‘반대’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다”는 비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 투쟁에 몰두하기 보다 정확한 데이터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힘은 전략 기획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며 “그러니 국민 입장에선 민주당이 아무리 못해도 국민의힘을 찍는다고 나아질 거란 확신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탄핵’ 후 주저앉은 보수정당 지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더욱이 최근에는 ‘여당 vs 제1야당’의 지지율 싸움이 동반 상승·하락 추세를 보이는 경우가 잦다. 11월 2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전주 대비 1.9%포인트 하락할 때 국민의힘 역시 0.7%포인트 동반하락했다. 9월 4주차 같은 조사에서도 민주당(34.6%→34.0%), 국민의힘(29.3%→28.2%) 지지율이 함께 떨어졌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인 취향이 예전보다 존중되면서 고정적으로 정파성·당파성이 고정되지 않고 사안에 따라 표류하는 층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여당 아니면 제1야당을 선택하는 이분법적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결국 대안으로 비전을 인정 받아야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비호감의 벽’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폭죽을 쏘아올리며 파면을
축하했고,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오종택·조문규 기자
높은 비호감도 역시 국민의힘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물이다. “너무 높은 비호감도가 오래 누적돼 국민이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메시지를 떠나 메신저의 신뢰도가 떨어져있어 어떤 말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비호감도는 한국갤럽의 9월 넷째주 여론조사에서 60%를 기록했다.
3개월 전에 비해 9%포인트 낮아지긴 했지만, 지난해 10월 조국 사태 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호감도 62%와 큰 차이가 없다.
보수 유권자도 외면하는 보수정당.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비호감도를 낮추기 위해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정리가 선결 과제란 주장이 나온다.
탄핵 이후 떨어져 나간 보수정당 전성기의 40% 가량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복원하는 데서 비호감도 낮추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한국리서치가 4월 총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과거 새누리당 지지층의 62.9%(잔류보수)밖에 복원하지 못했고, 37.1%는 민주당 지지층에 편입되거나 무당파로 이탈(이탈보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진행했던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정책적 요인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수정당의 태도 때문에 보수가 균열한 것”이라며 “딜레마적 상황이다. 경제 이슈에 대해 유능하다는 과거 이미지도 많이 사라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정희 고도성장시대,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패러다임이 세계화, 탈이념화 등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보수가 집중하지 않았던 양극화 등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해법을 보여줘야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수정당이 제시해야 할 비전ㆍ담론’에 대해 다시 이대생 102명에게 물었다. 냉소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지만 “탈이념ㆍ실용적 경제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제정책’(9명) ‘탈이념ㆍ실용’(8명) ‘시장 존중’(7명) ‘부동산 정책’(4명), ‘자유민주주의’(3명) 등의 순서였다.
A(국제학부)=“진정성부터 가져라. 뭘 하든 쇼로 보이는 게 문제다.”
B(국어국문학과)=“진보와 보수 프레임을 버리고 실용정책에 집중해달라. 20대는 이념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세대다.
2020년에 ‘보수의 희생’을 논하다니…호텔개조와 같은 대책을 말로만 제압하지 말고 실용적 정책으로 제압해달라. 부디 보수의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어느 정도는 시대변화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 지금이 80~90년대는 아니지 않은가.”
C(사회학과)=“일단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으라. 대신 인권 감수성을 함양해 사회 문제와 관련해선 진보적 정책을 내달라. 여성ㆍ환경ㆍ재해 이슈에는 진보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승부는 경제로 내라. 경제를 못 살린다면 보수정당이 있을 이유가 없다.”
일반적으로 젊은 고학력 여성들은 보수야당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계층으로 분류된다. 이런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기존 외연을 확대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보수 야당의 재기는 요원하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면서도 핵심가치는 지킨 영국 보수당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영국 보수당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닮은 점은 1997년 역사적인 총선 참패 이후 13년 간의 방황기다.
보수당은 1997년 36세 윌리엄 헤이그를 당수로 선출하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는 등 쇄신에 박차를 가했지만, 집권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제3의길’을 주창 중도 노선을 강화하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돌파구를 마련한 건 2005년이었다.
그해 12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당 당수로 당선되면서다.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내세워 영국 보수당의 ’대처리즘‘ 이미지 극복에 나섰다. 시장과 자유교역을 중시하되, 약자에 대한 배려ㆍ분배에 관심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대신 완고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ㆍ여성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며 이슈 선점에 나섰다. 환경친화적 정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당 로고를 연두색 나무 모양으로 바꾸기도 했다. 내부 불만도 나왔지만 보수당이 2008년 5월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을 20%포인트 앞서고 런던시장직을 빼앗아오며 당 내부의 비판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한영익·윤정민·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칼럼] 좌파는 단결하고, 우파는 분열하는 이유
우파에서 갈등을 수습하는 모습 도무지 보기 어려워
좌파는 좀 달라...압도적 차로 MB에게 정권 내줬어도 곧장 '광우병 파동' 만들어내
세력 투쟁 마친 좌파의 위계질서 배후엔 北김씨조선 정권과 '민주기지론' 있어
좌파의 일사불란한 단일 대오와 조직력, 평양 정권의 영향력 고려않곤 이해 어려워
그렇다면 우파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명제가 오랫동안 상식처럼 통용돼 왔다. 하지만, 이 명제는 현실과 다르다.좌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온갖 갈등과 분열을 노정하면서도 결국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번 이견이 드러나면 도무지 갈등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갈등을 수습해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는커녕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이 다시 열이나 스물로 가지치기를 하는 모습이 우파 진영 내부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당장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파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인 대통령 탄핵을 놓고 탄핵 수용파와 탄핵 거부파로 나뉘었고, 이 갈등은 수습은커녕 점점 더 복잡다기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21대 총선 결과의 수용을 놓고 제기된 선거 부정론도 우파 사이에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과 적대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다시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도 똑같은 양상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좌파는 좀 다르다. 지난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여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530만 표, 22.6%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단순 득표수로 보자면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557만 표 차이로 누른 것이 가장 큰 득표 차이지만, 득표율로 보자면 이명박 후보의 승리가 가장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시작한 지 겨우 3개월만인 2008년 5월에 광우병 파동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당시 뇌송송 구멍탁 운운하던 광우병 괴담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지금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당시 광우병 괴담은 막 출범한 이명박 정권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고,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운동권 가요인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쇼맨십으로 민심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당시 좌파 진영이 광우병 괴담을 대중들에게 과학적 사실로 각인시키고 엄청난 인파가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게 만든 기획력과 동원력은 2016년 촛불 시위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역할을 나눠 행사 기획과 동원, 홍보 등을 체계적으로 수행했고, 그 조직과 자금 규모는 몇몇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열과는 거리가 멀고 부패로 망한다는 우파는 왜 이렇게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지리멸렬한 모습이고, 분열로 망한다던 좌파는 잘 조직된 군대처럼, 철통같은 규율을 연상시키는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강철 대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하루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결과도 아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거대한 힘과 영향력을 가진 정치적 존재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힘과 영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즉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정받고 떠받들어지는 정치적 권위 △원하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 조직 △조직을 운영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력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을 위협하고 심지어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라면 저런 3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영향력을 한두 해 정도가 아니라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이런 요소를 모두 갖춘 존재는 딱 하나, 바로 북한 김씨조선 정권이 유일하다.
북한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남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에서 지도부 역할을 하겠다는 원칙을 공공연하게 표명해왔다.
1945년 12월 17일 김일성이 ‘북한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한 이른바 민주기지론이 그것이다.
민주기지론은 북한의 대남혁명의 기본 전략이 되어왔고 이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으로 발전하고,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의 기초가 되었다. 3대 혁명역량이란 북한 자체의 혁명기지역량, 남한혁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혁명지원역량 등을 말한다.
민주기지론은 6.25 도발 등 무력통일론으로 대변됐다가 이후 연방제를 내세운 통일론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그 기본노선은 정세 변화에 맞춰 표현을 달리했을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민주기지론이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의 기본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내부 좌파들의 운동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북한과 김일성 주체사상 추종을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NL주사파의 행보는 무엇보다 뚜렷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87년 개헌투쟁 국면에서 드러난 NL주사파의 행보이다.
당시 NL주사파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투쟁 목표로 내세웠다. 이 노선은 전두환정권과 대립하던 김대중과 김영삼 등 보수야권의 정치적 요구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좌초된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보수야권과 국민들의 대중적 요구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학생운동권이나 재야 등 제도 정치권과 구별되는 좌파 진영이 보수야권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정치노선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런 상식 파괴가 가능했던 것이 바로 민주기지론의 영향이었다. 민주기지론이 갖는 정치적 함의는 ‘한반도 내에서 혁명 지도부는 평양정권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즉, 김일성 정권만이 유일한 혁명 지도부이고 박헌영의 남로당 등 남한 내부의 혁명역량은 평양정권의 지도를 받는 하부 단위라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남한 내부의 좌파 운동가들은 독자적인 혁명 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남한 내부의 혁명가 조직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도를 받는 하부 단위이기 때문이다.
만일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혁명 지도부를 건설한다면 이는 분파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논리는 자연스럽게 ‘남한의 혁명 세력은 보수 야당과의 협력을 대전제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독자적인 혁명정당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보수 야당의 반체제 활동의 외피를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NL주사파의 이런 노선을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 이른바 식민지 반봉건((植民地半封建) 사회론이다. 대한민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이며, 사회적으로 봉건적 요소가 극복되지 않았다는 논리이다.
물론 남한 좌파 운동권 내부에서 NL주사파의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당시에도 NL주사파의 이런 노선에 반대하는 좌파 운동권은 있었다. 흔히 PD 계열과 혼동되곤 하는 ND(National Democracy Revolution) 계열이 그들이다.
이들은 직선제 개헌 노선에 반대하는, 제헌의회 소집 투쟁을 내세웠다.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라는 슬로건이 그들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제헌의회 소집 투쟁의 명분으로 ‘직선제 개헌은 개량주의적이고 타협적인 보수 야당 세력에게 민중 투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넘겨주게 된다’는 것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명분의 밑바탕에는 ‘남한 즉 대한민국은 북한과는 완전히 별개의 사회 발전단계와 자체 모순을 갖고 있으며, 당연히 이를 해결하는 남한만의 독자적인 혁명정당이 필요하다’는 사회구성체 분석 논리가 깔려 있었다.
실제로 제헌의회 그룹에 이은 노해동(노동자해방투쟁동맹) 그리고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그룹 내에서는 보수우파를 연상시킬 정도의 반북 정서가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 그룹은 개헌투쟁 국면의 주도권을 NL주사파에게 뺏긴 후 사노맹까지 해체되면서 거의 NL주사파 그룹에 흡수되거나 핵심 활동가들이 활동을 포기한 상태이다.
NL주사파 그룹이야말로 1980년대를 관통했던 반체제 운동의 승리자였고, 그 정치적 과실을 거의 독점했다.
1987년 6공화국의 성립은 NL주사파 그룹의 대표적인 정치적 과실이다.
우파는 6.29 선언이라는 정치공학 카드로 정권을 뺏기는 사태는 막았지만,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로 좌파의 주도권에 휘둘리는 신세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협했던 광우병 사태나 2016년 촛불 시위에 이은 탄핵 등은 모두 이 좌파 주도권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NL좌파는 1987년 당시 보수 야당 즉 민주당 계열의 깃발 아래로 들어갔지만, 결국 보수 야당의 내부를 잠식해 들어가 이 당의 주도권을 차지했다. 사랑방 손님이 안방을 차지한 셈이다.
이는 평양 정권의 민주기지론을 바탕에 깐 좌파 진영의 통일전선전술의 승리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NL주사파 진영에게 문호를 열어 이들이 제도권 내부에 안착하는 결정적 계기를 부여했다.
결국 현재 좌파 진영이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단일 대오와 조직력은 평양 정권의 영향력과 리더십에 대한 고려 없이는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민주기지론은 한반도에서 무려 70여년 동안 살아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치노선이라고 봐야 한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우파 진영의 끝없는 분열과 갈등, 지리멸렬한 조직 상태는 이러한 전략 단위 즉 정당의 부재라는 시각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우파 진영의 고질을 해결하는 방안도 정당의 기능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전략단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을 어떻게 찾아내고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전략단위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 즉 정당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창당 과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정당 조직 전문가에게 맡기면 창당 자체는 몇 주 만에도 가능하다.
과거 김영삼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씨가 순식간에 선관위에 뚝딱 정당 등록을 하곤 했던 것이 그 사례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창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정치세력에게 그만한 정치적 상징자산이 축적돼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해방정국 당시의 한민당에서부터 몇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정치적 상징자산이 있었고, 김종필 역시 5.16 이후 20여년 이상 축적해온 산업화 세력이라는 기반이 있었다. 이런 상징자산은 결코 단기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파의 전략단위 건설에서도 이런 상징자산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결국 건국과 산업화라는 정치적 상징자산을 유산으로 받은 국민의힘을 기반으로 전략단위를 건설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문제는 특정 몇몇 정치인이나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국민의힘은 우파 성향의 시민들을 가장 폭넓게 자신의 자장 안에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우파 시민들은 우파 정치세력과의 결합은 매우 느슨하다. 우파 대중이 우파 정당의 적극적인 지지자 즉 정치적 군대가 아니라, 단순한 구경꾼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우파의 정치적 부활은 이들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조직하고 동원하여 본격적인 정치투쟁에 나서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 출발점은 이들 우파 대중을 진성당원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월 1만원 이상의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들에게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나아가 대통령 등 공직 선거의 공천권을 부여해야 한다. 당대표 선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선출 과정에 정당의 주인인 당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개입 즉 여론조사 반영 등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당원들 사이에서 공천을 둘러싼 토론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이것이 정치적 훈련과 조직화의 출발이 된다. 그리고, 이들 진성당원에게 자신만의 정치적 메시지를 제기하고 설득해 지지를 얻어내는 정치인이 바로 우파의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우파뿐만 아니라 정당정치 자체의 거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좌파들 역시 사실상 정당정치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우파가 본격적으로 진성당원제를 도입했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좌파 정치는 의사결정의 불투명성과 왜곡 조작이 특징인 시민단체 정치를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가 우파와의 정치투쟁에서 우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정치이념이다.
우파에 비해서 그들의 정치이념은 비교적 정교한 세계관과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도그마의 완성도가
높은 것이다.
이들의 이념은 철저하게 정치투쟁에 특화돼 있다.
거기에 비해서 우파는 거의 무장해제 상태로 이들의 날선 공격에 노출돼 왔다.
우파의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도 진성당원제에서 나올 수 있다. 거대한 상징자산에 근거한 정치토론과 훈련, 조직화가 그 답이다. 이런 해답은 오직 건국과 산업화라는 정치 유산을 이어받은 국민의힘의 혁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
법률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는 무제한토론을 마친 뒤 동료의원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연합]
'언론과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달 3차 재난지원금 지급 추진…피해 큰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집중될 듯 (0) | 2020.12.14 |
---|---|
전국 곳곳 대설특보…중부지방 오후까지 많은 눈 (0) | 2020.12.13 |
2.5단계에도 확진자 700명 육박..'최후의 3단계' 카드 꺼내나 (0) | 2020.12.12 |
조두순, 관용차 타고 만기출소..'욕설·계란' 아수라장 (0) | 2020.12.12 |
거부권 없앤 공수처법 통과… 文 “새해벽두 출범” (0) | 2020.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