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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1일 만달레이에서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 도중 사제 총을 든 한 시민이 독재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EPA연합ⓒEPA연합 저작권자 © 시사저널
총 맞은 시민 옮기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 사진은 만달레이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은
시민을 옮기는 모습. 2021.3.27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총격에 숨진 7세 소녀 킨 묘 칫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과 친지 [SNS 캡처.
7일 아침 미얀마에서 학교 교사들과 학생 등이 쿠데타 항의하기 위해 평화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운동가 로 나이 산 르윈 트위터)
길가 무작위 검문·비밀 정보원”… 미얀마 쿠데타 3개월째 상황은
[천지일보=이솜 기자] 의사, 학생, 미인대회 우승자, 배우, 기자, 메이크업 블로거….
매일 밤 8시 미얀마 군부 TV 뉴스에 나오는 머그샷(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의 주인공들이다.
이들 중 몇몇은 얼굴이 붓고 멍들었는데 심문을 받은 결과로 추정된다. 이들의 얼굴을 매일 밤마다 TV를 통해 내보내는 것은 지난 2월 1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 정권이 자신들에게 반대하지 말라는 경고다.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쿠데타가 발생한 지 석 달째인 미얀마의 상황은 전시나 다름이 없는데, 군부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겨냥해 잔혹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국의 시위대 역시 군부에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든 항의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군경은 한밤중부터 사냥을 시작한다. 미얀마 전역의 인터넷을 차단해 밤처럼 정보에도 어둡게 만든다. 도시를 휩쓸며 총격을 가하고, 납치, 폭행을 일삼는다.
밤마다 군경이 문을 두드리자 시민들은 스스로 보호에 나섰다.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고, 휴대전화 카드를 부러뜨리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그의 당을 지지했던 흔적을 없애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 미얀마에서는 수치 고문의 사진이나 등록되지 않은 휴대전화, 외화 한 장 등을 소지하고 있으면 위반 행위로 징역형을 살 수 있었다. NYT를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북한에 견줄 만 했다고 전했다.
미얀마의 민주화 실험이 장성들의 권력 장악으로 무너진 지 석 달 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0년 동안 미얀마에 대한 군부의 통치는 이념이 아닌 두려움으로 이어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쿠데타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가운데 새로운 군사정권은 다시 무력 집권에 의존하며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쿠데타에 반대해 잠적한 전직 경찰인 고모에 옌나잉은 NYT에 “미얀마는 이웃들이 나를 신고해 아무 이유 없이 체포될까봐 겁에 질렸던 나쁜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감옥은 다시 한 번 시인, 승려, 정치인들로 가득 차있다.
군 당국의 구금 상태를 추적하는 단체에 따르면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실종됐고 군경에 살해된 민간인들은 77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는 수십명의 어린이들도 있다.
미얀마가 경제, 정치,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불과 5년 전 군부가 선출된 수치 고문 정부와 권력을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시민들은 인터넷을 거의 접속할 수 없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빠르게 채웠다.
이에 오늘날 미얀마 시민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계적으로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무트로(미얀마)=AP/뉴시스]7일(현지시간) 미얀마 카렌주 무트로 지역 숲에 카렌 민족해방군
병사들이 앉아 있다. 반군 고위 간부는 카렌족 게릴라가 미얀마 군부대 전초기지를 점령해
불태웠다고 밝혔다. 2021.05.07.
7일 아침 미얀마에서 학교 교사들과 학생 등이 쿠데타 항의하기 위해 평화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운동가 로 나이 산 르윈 트위터)
경찰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세워 반군부 세력이나 지원 단체를 찾는 데 나섰다.
이들 중 일부는 신발 밑창에 쿠데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의 사진을 붙여 그 얼굴 사진을 짓밟고 다니곤 했는데, 경찰은 이제 사람들에게 신발 밑창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달란’이라고 알려진 정보원들이 다시 등장해 이웃들의 속삭임과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으며 수치 정부의 출범 이후에도 군사 통제 하에 있었던 총행정부는 행정관들에게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를 감시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
가정 등록’이라는 제도가 다시 도입됨에 따라 지방 공무원들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집 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착수했다.
NYT는 군부가 중국제 무기와 러시아 전투기를 획득해 군무기를 현대화 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저항은 더 커지고 있다.
쿠데타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는 국가 파업과 시민 불복종 운동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경제를 마비시키고 정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은행과 병원은 거의 문을 닫았다.
이날 수치 고문 측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국민 통합 정부는 미얀마군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 방위군’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틀 전 국경지역에선 전투 중이던 카친독립군(KIA)이 군부의 헬기를 격추했다. 현지매체인 이라와디에 따르면 최근 몇 주 동안 미얀마 공군 장교 80여명이 탈영해 현재 은신하고 있으며 보병부대에서는 이미 수백명이 탈영해 저항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린 텟 아웅 대위가 전했다.
현재 잠적해 있는 한 공군 대위는 “정치는 군인의 일이 아니다”라며 “이제 미얀마군은 테러리스트가 됐고, 나는 그것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
지난 2018년 미얀마 카친 반군 내 한 무장 군인의 모습. [AP]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가 미얀마군에 맞서기 위해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PDF)’ 창설을 공식화함에 따라 양측간 무력 충돌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외신에 따르면 NUG는 전날 군부의 폭력과 공격으로부터 지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방위군을 창설했다고 밝혔다. 국민통합정부는 시민방위군이 연방군(Federal Army) 창설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불복종 운동(CDM)으로 대표되는 비폭력 평화시위를 견지해 온 민주진영이 무장 투쟁으로 노선 전환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합정부는 지난달 중순 구성 이후 20여 개 소수민족 무장조직과 연대해 연방군을 창설하는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수 십 년간 투쟁해 온 이들의 요구를 하나로 녹여내 연방군 창설로 연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전 단계로 시민방위군을 창설해 시민 보호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현지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2월1일 쿠데타 이후 전날 현재까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이만 769명이어서, 연방군 창설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은 커질 대로 커진 형국이다.
통합정부는 시민방위군이 어떻게 조직되는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얀마군과 격렬하게 충돌 중인 카친독립군(KIA)과 카렌민족연합(KNU) 반군과는 별개로 일부 지역에서 조직된 주민방위군이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서부 사가잉 및 중부 마궤 지역, 그리고 북부 친 주에서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방위조직을 만들어 미얀마군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친주에서는 지난달 초부터 시민들이 친주방위군(CDF)을 조직, 사냥용 총 등으로 무장하고 군경 폭력에 맞서고 있다. 같은 달 말에는 이들 방위군의 공격으로 군경 10명 이상이 숨지기도 했다.
지난 1~4일에도 주도인 하카에서 CDF 공격으로 군경 9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매체 이라와디가 주민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친주와 마궤 지역의 접경 지역에서도 충돌이 발생하면서 지금까지 최소 16명의 군경이 숨졌다고 매체는 전했다.
지난달 3일(현지시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반(反) 쿠데타 시위대가 사제 총기로
미얀마 군경의 공격에 맞서고 있다. [로이터]
미얀마, 내전 본격화?…민주진영, 비폭력서 무장투쟁으로 전환
약 800명 사망에 연방군 전 단계 시민방위군 창설
폭탄 테러·군경 대상 공격 늘듯
마궤 등 주민방위대와 반군훈련 거친 청년들 가담 관측
“2주 훈련받고 현지 대기 중”
NUG측도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이 지역의 방위군과 논의를 해왔다고 이라와디에 밝혔다.
이와 함께 쿠데타 이후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깨닫고 남동부 카렌민족연합(KNU)이나 북부 카친독립군(KIA) 군사 캠프로 가 군사훈련을 받았거나 현재 받는 중인 미얀마 청년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들은 적지 않은 미얀마 청년들이 계속되는 유혈 탄압에 절망해 반군에 입대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2주간 ‘단기 코스’로 무장 투쟁에 관한 기초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양곤을 중심으로 주요 지역에서 군사정권 건물이나 경찰서를 겨냥한 사제 폭발물 테러가 이어지는 것이 이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KNU 외교담당 책임자인 파도 소 토 니는 최근 현지 매체 프런티어 미얀마와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은 군부의 유혈 탄압에 보복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많은 젊은이가 우리에게 오는 이유”라며 “KNU는 수년에 걸쳐 군사 훈련을 진행하고 의무병 등도 6개월 교육과정이지만, 이들은 더 단기간의 군사교육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대가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생후 20일 신생아까지 인질로 데려간 미얀마 군부
시위대 잡으러 아이 포함 가족들 인질로 잡아가
인권단체 파악한 인질 규모 60여명
[헤럴드경제]미얀마 군부가 시위대를 잡기 위해 생후 20일된 신생아까지 인질로 데려가는 등 반인도적인 행위까지 자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밤 미얀마 남부 몬주 무돈 지역에서 군경이 대규모 시위대 수색작업을 펼쳤다. 군경은 반군부 거리시위를 주도해온 딴 윈 등 시위 지도부의 집을 수색하면서 딴 윈의 부인과 생후 20일된 신생아를 인질로 데려갔다.
남아있는 아들에게 아빠(딴 윈)에게 전화해 군경이 엄마와 동생을 데려갔다고 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딴 윈은 은신중이라 집에 없었고, 집에는 그의 가족들만 있었다”며 “군경이 출산한지 얼마 안 된 부인과 그의 아기를 데려갔다”고 전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군부가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공무원이나 반군부 거리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그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오전에도 이라와디 지역 파떼인에서 수배 중이던 시위대를 찾지 못하자 군경이 시위대 지도부의 어머니와 동생을 데려가기도 했다.
AAPP는 “군경이 매일 시민들을 인질로 잡아가고 있다”며 “7일 기준 59명이 인질로 잡혀간 상태”라고 말했다.
6일 기준으로는 군경의 폭력에 희생된 미얀마 시민이 774명, 체포되거나 구금된 이는 4849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제공/AFP통신(미얀마=국제뉴스) 박원준 기자 = 7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보안군이
군사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시위대를 수색하고 있다.
출처 : 국제뉴스(http://www.gukjenews.com)
[미얀마의 5·18] ① 민주화 요구에 발포 명령..41년만에 재현된 악몽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7세 어린이가 총에 맞았다.
집안까지 쳐들어온 군인들이 무서워 아빠 무릎 위에 앉아있다가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거리에서도 시민들이 군부의 총에 쓰러졌으며 '쿠데타', '군사정부'와 같은 용어가 기사에 실리지 못하도록 명령이 내려지고 언론인 수십명이 체포됐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그리고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이다.
'플래시몹' 시위 벌이는 미얀마 쿠데타 규탄 시위대 (양곤 AFP=연합뉴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2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대가 군경의 단속을 피하려고 플래시몹 형태의
거리 시위를 벌이며 독재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2021.5.2 [AFPTV 제공 영상 캡처] sungok@yna.co.kr
민주화 회복을 외치는 시민들의 '피의 봄'
미얀마 시민들의 반군부 시위와 5·18은 부당하게 권력을 잡은 군부에 저항해 자유와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 주도 저항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평화 시위로 시작돼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많은 시민이 군부의 무차별 폭력에 희생당한 점, 시민들이 이에 저항하며 무장투쟁도 불사한 점 등도 유사하다.
그러나 미얀마의 시위는 최대 상업도시 양곤을 시작으로 즉각 전국으로 퍼져나가 3개월 넘게 진행 중이지만 5·18은 군의 통제 속에 광주와 주변 도시에서 약 열흘간 진행됐다.
한국의 신군부는 당시 5·18을 불순분자들의 폭동이라고 왜곡하며 외부 연락과 언론 보도를 차단했고, 대규모 진압이 끝난 후 수십 년간 광주 시민들과 전국의 대학생, 시민단체, 정치권이 진상 규명을 해왔다.
미얀마 군부도 인터넷 차단, 언론 통제를 시도했으나 21세기에 군부의 완벽한 은폐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2월 1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인사들을 구금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부정이 발생했음에도 정부가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시민들은 2월 2일 밤 양곤에서 차량 경적과 냄비 두들기는 소리를 내는 '딴뽕띠' 시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매일 군부의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군사정권 하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의료계, 은행권, 교육계, 철도, 항만 업계로 이어졌다.
물대포, 고무탄으로 진압하던 군부는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총탄을 발포하기 시작했고 3개월 동안 800여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시위 학생들을 연행하는 계엄군 (서울=연합뉴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26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군이 정보활동을 위해 채증한 사진을 공개했다.
2019.11.26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실 제공. photo@yna.co.kr
한국에서는 오랜 유신정권에 이어 1979년 12·12사태로 또다시 군사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됐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발령했고 계엄군은 대학교정에서 항의하는 학생들을 폭행했다.
신군부는 시위 규모가 컸던 광주에 무장 군인과 탱크를 보냈고 5월 20일 최초로 시민과 학생들에게 직접 발포했다.
시민들은 조직을 꾸려 저항했지만 결국 5월 18일∼5월 27일 열흘 동안 최소 165명이 사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고 수많은 부상자와 부당 체포자,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
새롭게 공개된 사진첩에 포함된 나경택 전 기자의 사진 (광주=연합뉴스) . 사진은 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이 취재한 것이다.
2019.11.26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실 제공. pch80@yna.co.kr
"미얀마 폭력 중단" 국제사회·광주시민들 연대와 지지
미얀마인들은 시위 초창기부터 SNS를 중심으로 자국의 상황을 알리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초 모 툰 주 유엔 대사는 지난 2월 26일 유엔 총회에서 쿠데타를 비판하고 영화 헝거 게임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나왔던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이후 세 손가락 경례는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하는 상징이 됐다.
지난 3월 2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미인대회에 미스 미얀마로 출전한 한 레이 역시 군부의 유혈 진압 영상을 소개하며 도움을 호소했다.
지난 4월 24일 열린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미얀마의 즉각적인 폭력 중단 및 인도적 지원 등을 담은 5개 조항에 합의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합의 실천을 촉구했다.
그러나 군경의 총격과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어 미얀마인들은 더 적극적인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얀마 시위 지지' 광주서 딴봉띠 집회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3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재한 미얀마인들이 미얀마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미얀마 시위인 '딴봉띠' 집회를 재현하고 있다.
2021.3.13 iny@yna.co.kr
한국에서도 미얀마 시민들의 항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참여연대 등 국내 71개 시민사회단체는 쿠데타 다음날 바로 국문·영문 성명을 내고 각국 정부에 미얀마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전국 사회단체들은 SNS로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고 성금 모금 등을 하고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도 미얀마 민주화 회복을 지지하며 미얀마 유학생 돕기 운동 등을 하고 있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광주시민들도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은 연대기구를 만들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미얀마 시위를 지지하기로 했다.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 모금 운동을 펼치고 마스크 같은 생필품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들 단체는 ""41년 전 고립됐던 광주 시민들은 미얀마인들의 상황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국제사회를 향해 지속해서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에서 투쟁하는 미얀마인들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reum@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시위대가 5월3일 양곤에서 군부에 맞서 시가전을 펼치고 있다.ⓒAP연합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4월19일 만달레이에서 사제 무기로 무장한 시위대가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EPA연합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5월6일 만달레이에서 사제 무기로 무장한 시위대가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에 나서고 있다.ⓒEPA연합
결국 미얀마 국민을 무장투쟁으로 내몬 국제사회
미얀마 국민은 또 속았다. 4월24일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미얀마 군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발포 중단을 포함한 ‘즉각 폭력 중단’에 합의했지만, 이후에도 유혈 진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세안도 약속을 어긴 미얀마 군부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5월5일 G7 외교장관 회의에서 군부를 강력 규탄했지만, 이제 국민들은 유엔도 아세안도 그리고 G7도 믿지 않고 스스로 무장에 나섰다. 국제사회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군부와 맞서 싸우는 길만이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가 군부에 맞서기 위해 ‘시민방위군’ 창설을 공식화하면서 시위 참여 국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내전이 불가피해지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는 미얀마의 운명은 결국 국민의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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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기지에 들른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 사령관[이라와디 사이트 캡처.
무장 반군에 지고 탈영병은 늘고'…궁지에 몰리는 미얀마군
군부 쿠데타 이후 공군 장교·사병 80명 탈영…"저항세력에 동참"
샨주에서 미얀마군 20명 숨져…반군 공격에 사상자 계속 늘어
(하노이=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미얀마군이 소수민족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탈영까지 잇따르는 등 궁지에 몰리고 있다.
7일 현지매체인 이라와디에 따르면 군부가 지난 2월1일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지금까지 공군에서 80여명이 부대에서 이탈했다.
사관학교 출신으로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한 린 텟 아웅 대위는 "탈영한 장교는 10여명에 달하는데 이중 가장 높은 계급은 대위"라면서 "반군부 저항세력에 동참하기 위한 사례들도 다수"라고 밝혔다.
그는 또 보병부대에서는 이미 수백명이 탈영해 저항운동에 동참했다고 덧붙였다.
탈영은 주로 양곤과 만달레이 등지의 공군기지와 항공통신 부대에서 나오고 있으며 공군의 행정 기능에 타격을 준다고 그는 전했다.
미얀마군의 무장 헬기가 지난 3일 카친독립군(KIA)의 공격으로 격추된 직후 공군에서 탈영이 발생했다는 현지 언론보도도 나왔다.
군사 전문가들은 헬기 격추 때문에 미얀마군의 공습이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군사 전문가는 "미얀마군은 지상에서 카친독립군을 이길 수 없어 공습을 해왔다"면서 "헬기 격추를 계기로 비행 고도가 높아지면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얀마군이 카친독립군과 카렌민족해방군(KNLA) 등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의 교전에서 밀리는 사례가 자주 나오면서 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얀마 군부에 맞서 출범한 국민통합정부(NUG)가 지난 5일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을 창설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도 향후 미얀마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과 타앙민족해방군(TNLA)
[이라와디 사이트 캡처.
이런 가운데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타앙민족해방군(TNLA)은 지난 4일부터 이틀동안 샨주의 쿳카이 마을에서 미얀마군 소속 99경보병사단 및 45보병대대와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20여명의 미얀마군이 숨졌다고 한 주민은 전했다.
이들 무장단체와 아라칸군(AA)은 지난 3월말 군부가 시위대 학살을 멈추지 않으면 다른 소수민족 무장조직 및 반 군부 세력과 협력할 것이라고 공동성명을 내는 등 군부에 맞선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카친주의 모마욱에서도 전날 카친독립군과 미얀마 군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또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지난 3월 27일부터 이달초까지 카렌주와 바고 지역에서 미얀마군과 407차례 전투를 벌여 미얀마군 194명이 숨지고 22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KNLA측은 9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고 덧붙였다.
bumso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사진제공/AFP통신 (미얀마=국제뉴스) 박원준 기자 = 7일(현지시간) 미얀마 양곤에서 군사
쿠데타 반대시위대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무트로(미얀마)=AP/뉴시스]7일(현지시간) 미얀마 카렌주 무트로 지역에서 카렌 민족해방군
의 한 병사가 미얀마군 초소에서 발견한 박격포탄 무더기 옆에서 박격포탄을 들고 있다.
2021.05.07. /사진=뉴시스
키워드로 본 미얀마 쿠데타 100일..'군부·소수민족·외교전
지난해 11월 미얀마 총선거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NLD당이 압승한 이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NLD당은 전체 664개 의석 가운데 군부에게 헌법상 자동적으로 할당되는 166개 의석(25%)를 제외하고 396석을 얻었다.
민 아웅 흘라잉 군 사령관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NLD당이 원하는 건 헌법 개정이었기 때문이다. NLD당은 군부에게 과도한 권력을 보장하는 헌법을 바꾸고 싶어했다. 흘라잉 사령관은 결국 2월 1일에 쿠데타를 선택했다.
5월 11일은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봄의 혁명’이라 불리는 시민들의 저항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100일 동안 미얀마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앞으로 미얀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내 미얀마 전문가 4명과 인터뷰를 진행한 후 현재 미얀마 상황을 관통하는 단어 3가지를 선정하고 그 배경과 의미를 짚어봤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순으로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교수, 홍문숙 부산외대
아세안연구소 교수, 딴뚯우 동국대 글로벌경제통상학부 교수,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군부 : 60년간 미얀마를 장악하고 있는 절대 권력
“미얀마라는 국가 안에 군부가 지배하는 또 다른 국가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역 군인뿐 아니라 퇴역한 군인들, 그리고 군 가족들까지도 특혜를 누립니다. 군인들만 가는 학교가 있고요.
군인들만 가는 병원이 있고, 군인들만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 또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장준영 교수)
미얀마에서 군인은 특권 계층이다. 60년에 걸친 군사정권 기간 동안 군부는 미얀마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
시작은 1962년 네윈 군부의 쿠데타였다.
그 이후 군부는 민간 정권의 관료들을 모두 해고하고 군인들로 대체했다.
그리고 군부는 미얀마 경제를 장악했다.
“군부는 외국인투자법과 회사법, 보험법, 국영 기업법 같은 법들을 만들었습니다.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전부 자기들하게 유리한 경제 구조를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은 이미 제도화해서 차지했고 그 다음은 돈이 필요하니깐요.”(딴툿우 교수)
“군부는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합니다. 군부 기업들은 특정 산업 분야에서 독점적인 행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옥이나 루비와 같은 보석류가 있고요.
은행이나 방송국, 통신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대부분 기업들은, 웬만한 기업들은 다 군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가 있겠죠.
그런데 막대한 수입에 대해서 외부에 알려진 자료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장준영 교수)
미얀마 군부는 국민들에게 3대 대의를 강요했다.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3대 대의를 헌법보다 더 중요한 개념으로 여겼다. 2008년에는 헌법마저 바꿨다.
권력을 영구적으로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2008년 헌법은 현재 미얀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 미얀마 군부는 2008년 헌법을 근거로 쿠데타가 합법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미얀마 헌법에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군 총사령관이 대통령 권력을 이양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3대 대의는 군부가 1990년대에 만든 일종의 프로파간다입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발간된 모든 출판물과 인쇄물의 앞 뒤에 국민의 3대 대의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데요.
연방의 분열 방지, 국가의 결속, 주권의 영속을 의미합니다. 연방 분열이나 주권 영속에 방해되는 일이면 처벌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장준영 교수)
“현재 미얀마는 군 통수권이 대통령이 아니고 군사령관에게 있습니다. 내무부와 국방부, 국경부 장관은 현역 군인이 맡습니다.
또 의회 의석의 25%가 현역 군인에게 의무적으로 할당돼 있습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7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25%가 이미 군인인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딴툿우 교수)
쿠데타 이후 저항하는 시민들을 잔인하게 탄압하는 행태에 대해 국제 사회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군부는 쿠데타 이전과 그 이후 달라진 게 없다.
국영방송을 통해 자신들이 집권해야 미얀마가 통합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웅 산 수 치 측 세력인 민족통합정부를 비난하면서 미얀마 통합을 방해하는 단체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군부가 존재해야지 미얀마 연방의 구심점이 된다, 그래야 다른 나라처럼 분열되지 않는다,
나라가 분열되면 중국이나 태국, 인도와 같은 대국들이 소수민족 영토를 흡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 군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성입니다. ”
(장준영 교수)
■소수민족 : 군부 저항 세력이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
“소수민족과 버마족이 화해를 하면 군부가 정당성을 잃게 됩니다.
군부가 그런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군부는 계속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통합을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 NLD 의원들이 소수민족 지역에 찾아갈 때마다 거기에서 군부가 일부러 폭행 사건도 일으키고 문제를 발생시켰어요.
그런 것들이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관계를 계속 방해하려고 했던 겁니다.” (딴툿우 교수)
지난해 미얀마 총선거에서 당선된 NLD당 의원 17명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미얀마 연방의회 대표위원회, CRPH는 현재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는 구심점이다. CRPH는 지난달 16일에 민족통합정부를 출범했다.
쿠데타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국가고문 자리에는 우윙민과 아웅 산 수 치가 임명됐다.
부통령과 총리를 비롯해 11개 부처 장관은 새로 선임됐다.
이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카친족과 카렌족, 친족 등 소수민족 출신이 6명이나 포함됐다는 점이다.
민족통합정부가 소수민족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내각 명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방군을 만드는 것이고. 연방군을 만들기 위해서 소수민족 반군들이 필요합니다.
소수민족 반군을 결합해서 연방군을 만들어야 미얀마 군부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딴툿우 교수)
민족통합정부가 소수민족에 손을 내미는 것은 연방군 창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UN이나 미국 등의 군사적 지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체적인 군사력이 절실하다. 물론 연방군을 창설하더라도 군부와 직접적으로 맞붙기는 힘들다.
소수민족 반군은 다 합쳐도 7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군부의 규모는 50만 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군사력이 있어야만 저항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민족통합정부의 판단이다.
“영국의 통치 전략 자체가 다수와 소수를 이간질하는 전략이었어요.
영국은 버마족을 무시하고 소수민족에게 많은 특혜를 줬고 독립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미얀마가 독립하면서 버마족이 기득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수민족이 원했던 미래가 하루아침에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버마족은 소수민족을 영국에 협력한 앞잡이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버마족은 우리를 항상 지배하려고 하는 그런 집단으로 보는 것이죠.”(장준영 교수)
하지만 연방군이 만들어지는 것조차 쉬운 것은 아니다. 그만큼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갈등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은 여러 차례 버마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아웅 산 수 치의 아버지 아웅 산 장군이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줬던 1947년 ‘팡롱회담’이 아웅 산 장군의 죽음과 군부 쿠데타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소수민족들은 아웅 산 수 치가 집권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지난 민주정부 시절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소수민족들에게도 군부는 가장 큰 적이기 때문에 연방군 창설을 포함한 협력 논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버마족과 소수민족이 화학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70년 이상 정부와 군부랑 싸웠는데 과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서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며 연방군 창설에 가담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장준영 교수)
■외교전 : 미얀마의 미래를 결정하는 키포인트
쿠데타 이후 군부와 민족통합정부가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분야는 외교전이다.
서로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자신들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유엔이나 아세안 같은 국제기구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버마와 아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미얀마 정부를 군사 정부로 규정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았어요.
2011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미얀마를 방문했던 일이 중요한 모멘텀이었어요.
그리고 2012년에 22년 만에 미국이 미얀마에 외교대사를 보냈습니다.
정치적인 제재가 풀리니까 수출입 은행 같은 것들이 생기면서 기업들도 들어가게 됐죠.”(홍문숙 교수)
미국은 의외로 미얀마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 2010년에 미얀마가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총선거를 치르기 이전까지 미국은 미얀마를 군사독재 국가로 규정하고 각종 금융제재를 해왔다.
2011년부터 관계를 회복했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크지 않다.
2016년 기준으로 미얀마 외국인 투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건 아니다.
직접 금융제재에 나서는 한편 미국·일본·인도·호주 4자 동맹인 콰드(Quad)를 통해서 미얀마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군부가 장기 집권을 하는 방식으로 가게 되고 그 장기 집권을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경우엔 태평양과 인도를 엮으려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력이 의심받겠죠. 또 미얀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었던 국가잖아요.
자유 민주주의 세력의 입장에서 미얀마가 민주주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못 이뤄내는 것이 이데올로기적이나 정치 외교적으로 임팩트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홍문숙 교수)
현재 미얀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미얀마에 송유관과 가스관, 철도 도로망, 댐 등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1949년 건국 이후에 최초로 수교를 맺었던 국가가 미얀마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미얀마와 중국은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맺었던 국가 관계이고요.
대체로 중국이 미얀마에 대한 경제적인 원조 형태로 미얀마의 아주 극빈한 경제적 상황에 일정한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원동욱 교수)
“2008년 이후에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봉쇄 전략 때문에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중동 원유가 말라카 해협을 통해서 중국으로 오게 되는데 미국 해군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말라카 해협을 지난다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부담이죠.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양양 전략이라고 하는, 소위 태평양과 인도양 양쪽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그런 전략 구도에서 미얀마의 항만을 통해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게 군사 전략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원동욱 교수)
이 때문에 중국도 미얀마가 내전 사태로 치닫는 건 원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은 내정불간섭이라는 외교 기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됐던 내외신 기자 회견을 보면 당시 왕이 외교부장이 나름대로 어떤 해법을 제시하거든요? 지금까지 진행됐었던 민주화로의 전환 과정을 지지한다고 하는 그런 입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각 이해 당사자들이 협상 테이블로 들어와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중국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세안이라고 하는 일종의 협상 기제, 협력 기제를 활용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 그런 의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원동욱 교수)
미얀마 쿠데타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아세안이다. 지난달 열린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깜짝 합의문이 나왔다. 즉각 폭력을 중단하고 군부와 반 쿠데타 진영이 아세안의 중재 아래 대화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다음날 미얀마 군부가 또다시 강경진압을 하면서 합의를 번복했지만 진전은 있었다는 평가다.
미얀마에 많은 투자를 한 아세안의 개별 국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국가 중 핵심은 일본과 인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인도가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이 굉장합니다.
그 다음에 미얀마에서 큰 역할을 하는 국가들은 싱가포르와 태국,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베트남입니다.
미얀마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런 나라들이 어떻게 지금 미얀마 군부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저는 이게 앞으로 수개월 동안 미얀마의 군부를 누가 설득할 수 있느냐의 키라고 생각합니다.“(홍문숙 교수)
현재까지의 균형추는 아무래도 군부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민족통합정부는 군부보다 주변 국가들을 설득할 유인책이 적기 때문이다.
군부는 주변 국가들에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혜택을 미끼로 주면서 자신들의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설득할 가능성이 크다. 민족통합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기보다는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족통합정부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 민족통합정부를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저는 적극적으로 공감하고요. 다만 정부가 받을 수 있는 카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민족통합정부가 대체로 온라인으로 지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떠한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을 가질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대신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의 의회가 나서주는 부분인 것 같아요.
한국의 의회와 전문가 그룹들, 그리고 이제 시민사회가 함께 민족통합정부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죠.“ (홍문숙 교수)
이현준 기자 (hjni1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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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7일(현지 시각)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대가
확성기와 깃발을 든 채 행진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반군에 잇단 패배, 탈영도 늘어… 미얀마軍 궁지 몰리나
지난 3일 오전 10시쯤 미얀마 북부 카친주의 모마욱 마을 상공. 지상 공격을 하던 미얀마 군부의 무장 헬기 한 대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농장으로 추락했다. 헬기를 격추시킨 세력은 미얀마 카친 독립군. 카친주에 기반을 둔 소수민족 ‘카친족(族)’의
무장단체다.
이 단체는 이날 미얀마 군부가 공습에 나서자 대대적인 반격에 돌입, 집중 사격으로 헬기 격추에 성공했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는 “2월 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공습에 나선 미얀마군 헬기가 격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미얀마 정부군은 지상 전투에서는 카친 독립군을 이길 수 없어 공습을 실시해 왔다”며 “(이번) 헬기 격추를 계기로 (정부군이) 비행 고도를 높이다 보면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얀마 사태가 본격적인 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군부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쿠데타 발생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민주화 세력의 저항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민주화 세력은 지난달 16일 국민통합 정부를 구성한 데 이어 지난 5일에는 자체 군사 조직인 시민방위군을 창설했다.
국민통합 정부는 미얀마 전역의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손잡고 ‘군부와의 전쟁’을 공식 선언했다.
일부 시민은 미얀마 북부와 남부 국경 지대에 있는 무장단체들을 찾아가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미 CNN은 한 군사훈련 장소를 소개하며 “이곳에서만 200여 명이 훈련을 받고 있다”며 “이런 곳이 접경 지역 곳곳에 있다”고 말했다.
저항군의 게릴라전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정부군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미얀마 북동부 지역에 있는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과 타앙민족해방군(TNLA)은 지난 4일부터 이틀 동안 샨주의 쿳카이 지역에서 정부군 99경보병사단 및 45보병대대 병력과 교전을 벌여 미얀마군 20여 명을 사살했다.
남부 지역에 있는 카렌민족해방군(KNLA)도 지난 3월부터 이달 초까지 카렌주와 바고 지역에서 정부군과 407차례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정부군 194명이 죽고, 220명이 부상했다.
정부군에선 내부 균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현지 매체는 미얀마 육군과 공군에서 탈영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공군에서만 장교를 포함해 80여 명이 부대를 이탈했다.
육군에서도 이미 수백 명이 탈영해 저항 세력에 합류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방위군 사관학교 출신으로 최근 저항 세력에 합류한 린 텟 아웅 대위는 “공군 장병의 탈영은 주로 양곤과 만달레이 등의 공군 기지와 항공통신 부대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군부 공군의 여러 기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탈영 장병 중 장교는 10여 명인데 가장 높은 계급은 대위”라며 “이들은 대부분 반군부 저항 세력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정부군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태국 접경 지대인 꼬따웅 지역에서 탈영한 찬 먀 투 육군 중위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현재 군부 장병의 80% 정도가 복무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더 많은 군인이 이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사태가 내전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인명 피해가 급증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쿠데타 발생 이후 지금까지 군부의 폭력 진압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는 772명에 달한다. 하지만 군부는 이 정도의 인명 피해에 대해선 눈도 깜짝 않고 있다. 지난 1988년 일어났던 ‘8888 민주화 항쟁' 땐 사망자가 3000여 명에 달했다.
5일 AP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순회 의장을 맡은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언론 브리핑에서 미얀마 사태를 언급하며 “그곳에서 최근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으며 양측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안영 기자
▲ 23일(현지시간)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군경의 총에 맞아 사망한 14살 소년 툰 툰
아웅의 장례식에서 가족들이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만달레이 EPA 연합뉴스
▲ 중국이 지난 2일 미얀마에 지원한 자국산 코로나19 백신용 냉장 컨테이너.
미얀마 주재 중국 대사관 페이스북
중국산 백신 거부, 차라리 코로나19 걸려 죽겠다” 미얀마 시민들
군부쿠데타 혼란 속 ‘설상가상’ 코로나 확산
시민들, ‘친군부’ 中 백신 거부로 악화일로
中, 미얀마 군부에 백신 50만회 무상 지원
미얀마 확진 14만명↑…사망 3200명 넘어서
보건의료인 백신 접종 거부·업무 거부로 체포
폭압적인 군부 쿠데타 이후 석 달이 넘도록 혼돈 상황이 이어지는 미얀마에서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확산되면서 누적 확진자가 14만명을 넘어서는 등 3차 대유행이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폭력적인 군부의 유혈 진압에 수많은 희생의 아픔을 겪은 시민들은 군사정부에 우호적인 중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백신은 맞지 않겠다며 집단 거부하고 나섰다.
시민들은 “중국산 백신을 맞느니 차라리 코로나19에 걸려 죽겠다”며 접종을 기피하고 있어 코로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中왕이 “中 기증 백신은 양국의 우정”
미얀마 네티즌 2000명 “중국산 거부”
7일 미얀마 보건당국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미얀마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누적 14만 2000여명이고, 사망자는 3210명이다.
2월 1일 쿠데타 발생 후 민주화 요구 시위와 유혈 진압이 반복되면서 코로나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제 감염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국가 프로그램도 난항을 겪고 있다. 미얀마 보건 당국은 인도가 선물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접종을 시작했고, 최근 중국산 백신이 도착하자 이를 배포하고 있다.
쿠데타 발생 직전 미얀마를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백신 30만회 분량 무상지원을 약속했는데, 실제로는 50만회 분량이 이달 2일 양곤에 도착했다.
주미얀마 중국대사관은 페이스북에 “중국이 기증한 백신은 양국의 우정을 보여준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자 미얀마 네티즌 2000여명은 댓글로 “차라리 코로나19로 죽겠다.
중국이 준 백신은 맞지 않을 것”, “중국산 백신은 결국 군인들한테 주로 제공될 것”, “우리는 중국산 백신을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석 달 넘게 이어지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시위
타웅지 AFP 연합뉴스 2021-05-02
▲ 3개월 넘게 지속되는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
양곤 AP 연합뉴스 2021-05-04
“군부 제공 백신거부운동 중에
中이 군부에 백신 보내” 반중 감정↑
보건의료인, 항의 표시로 접종 업무 거부
의사 “백신 제때 접종 못해 효과 없어졌을 것”
특히 “미얀마 시민들이 군사정부가 제공하는 백신 접종 거부 운동을 벌이는 상황에서 중국은 군부에 백신을 보냈다”며 반중 감정을 드러냈다.
미얀마 정부는 1월 27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보건의료인 우선 접종을 시작했지만 2월 1일 쿠데타 이후 상당수 보건의료인들은 군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2차 접종을 거부했다.
시민들은 “사람들을 살해한 군사정부가 제공하는 백신은 싫다”, “군사정부의 친구인 중국이 제공한 백신을 거부한다”는 등 이유로 접종을 꺼리고 있다.
군부는 지금까지 전체 인구 5400만명 가운데 150만명 이상이 1차 접종을, 31만여명이 2차 접종을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얀마 국영 언론사들은 군인과 종교인 등이 백신을 맞는 사진을 종종 게재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접종을 거부하고 있고, 특히 백신을 주사해야 하는 보건의료인들이 업무를 거부하고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속속 합류한 뒤 잇따라 군경에 체포됐다.
양곤의 한 의사는 “(인도산) 코로나19 백신은 제때 접종하지 못하고 너무 오래 보관해 효과가 없어졌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얀마 보건체육부 대변인은 “코로나19 감염자 가운데 60% 이상이 무증상자”라면서 “3차 유행이 우려된다. 많은 군중 사이에 발병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얀마에서는 지난해 3월 23일 첫 확진자가 확인됐으며 지난해 여름에 2차 유행이 있었다.
▲ 지난 9일 미얀마 바고에서 군경의 무차별 발포로 사망한 한 뜨윈 칸(오른쪽)과 그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도 군경에 끌려간 뒤 고문으로 숨진 채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뜨윈 칸 외에
다른 두 아들도 군경에 의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트위터 @EaindrayMoe6
▲ 미얀마 군경의 총격에 희생된 아들을 안은 채 울부짖는 아버지.
트위터 @LyaHaru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 사령관이 지난 2일(현지시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위치한 고급 영리병원 개원식에 참석한 모습. [미얀마 군부 정권 제공]
▲ 미얀마 작가의 ‘피투성이 쿠데타’, 전남대 박물관은 5.18 41주년을 앞두고 10일부터
미얀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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