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편집:천종석
열 손가락 없이 히말라야 완등 후 실종된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사진 이경호 부장
김홍빈 대장. 사진제공|전라남도교육청 SNS‘
히말라야 14좌 완등’ 장애산악인 김홍빈 대장 실종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김홍빈 대장(57)이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 완등 후 하산 도중 실종됐다.
이번 원정대에는 김 대장을 비롯해 류재강 등반대장, 정우연, 정득채 대원 등 총 4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산 등반 세르파를 고용하지 않고, 캐퍼밴 포터만 고용하는 등 등반상황이 좋지 않았다.
김 대장은 출발 전 인터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보답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안전히 집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즐겁고, 안전하게 살아 돌아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김 대장이 브로드피크 정상에 발자국을 찍은 것은 현지시간으로 18일 오후 4시58분, 한국시간으로 오후 8시58분이다.
2006년 가셔브룸Ⅱ(8035m)를 시작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우리 중 13개의 정상을 밟았던 그가 마지막 14좌 완등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앞서 김 대장은 2015년에도 브로드피크에 도전했으나, 7600m 지점에서 악천후를 만나 하산했다.
지난해에도 등정 준비를 마쳤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도전을 미뤘다.
이번 등정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장애인으로 세계 첫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다.
국내에선 엄홍길, 박영석, 김재수, 한왕용, 김창호, 김미곤 다음으로 7번째 완등자다.
김 대장은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코로나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장애인 김홍빈도 할 수 있으니 모두들 힘내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산 도중 해발 7900m 부근서 실족
김 대장은 하산 중 해발 7900m 부근에서 실족해 낭떠러지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산악연맹은 김 대장이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대장은 19일 오전 9시58분쯤(현지시간) 직접 무전으로 대원들에게 구조 요청을 했고, 근처를 지나던 러시아 등반대원들이 사고 현장에 접근해 로프와 등강기(고정된 줄을 타고 오르게 돕는 등반장비)를 내려보내 끌어올렸지만, 줄이 끊겨 더 깊은 낭떠러지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파키스탄과 중국 당국에 수색 헬기 등 구조대 파견 등을 요청해 파키스탄 군 헬기가 급파돼 현장을 수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홍빈 대장은 누구?
김 대장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1983년 송원대학교 산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산과 본격적 인연을 맺었다.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올랐고,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어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했다.
16시간에 걸친 현지 구조대의 노력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열흘 만에 의식이 돌아왔지만, 사고로 동상에 걸린 손은 7번의 수술 끝에 모두 절단해야 했다.
장애를 입은 뒤 알파인스키로 전향하기도 했다.
1999년 처음 국가대표가 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동계패럴림픽에 출전했다.
산이 전부였던 그에게 좌절은 컸고 방황의 시간은 길었다.
재기를 시작한 곳도 산이었다.
목표는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 1997년 유럽 엘부르스(5642m)를 시작으로 2009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7m)까지 12년에 걸쳐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고, 틈틈이 히말라야에 올라 마침내 14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돌아오라, 김홍빈!”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은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온전한 몸으로 오르는 것과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자가 오르는 것은 다르다.’
김 대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김 대장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열 손가락을 움켜쥔 채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도전의식을 고취시켰고, “어떤 위험 속을 헤쳐나갔느냐가 중요하기보다 어떤 조건으로 극복했느냐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좌절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그가 자신의 말에 답할 차례다.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좌절의 시대에 등불이 되어주어야 한다.
“돌아오라, 김홍빈!”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광주 동구 '김홍빈의 희망만들기' 사무실 계단에 김 대장의 등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2012년 7월31일 촬영된 케이2(8611m) 등반당시 모습.
/뉴시스
열 손가락 없이 히말라야 완등 후 실종된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은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온전한 몸으로 오르는 것과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자가 오르는 것은 다르다.”
‘열 손가락을 잃은 산악인’으로 유명한 김홍빈(57) 대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그는 “어떤 위험 속을 헤쳐나갔느냐가 중요하기보다 어떤 조건으로 극복했느냐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오르는 자가 가진 story(이야기)와 극복 의지가 맞물릴 때 가장 클 것이라 믿는다”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산악인 김홍빈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을 동경했지만,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고산 등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술, 담배도 멀리하고 스키, 사이클, 스케이트도 열심히 탔다.
그는 1989년 동계전국체전에 출전, 노르딕 개인전 2위에 입상하고 그 해부터 1991년까지 바이애슬론 부문에서 1, 2,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9년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스키 대회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도로사이클 개인도로 독주 24㎞ 2위, 트랙경기 팀스프린트 1위도 기록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부쩍 늘었고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어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도 참여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 손목까지 절단하며 산악인으로서는 좌절의 시간을 겪게 됐다.
산이 전부였던 그에게 좌절은 컸고 방황의 시간은 길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한반도의 모든 산을 오르고 구르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자신을 비롯해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르고 또 오르며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다시 산을 오를 수 있겠느냐’는 편견에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던 그는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해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나선다.
그는 2009년 7대륙 최고봉을 13년 만에 완등하고 히말라야 14좌 중 13좌를 정복했다.
모두 장애인으로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최초의 기록이다.
2019년 히말라야 13좌 등정에 성공하고 이제 마지막 1개인 브로드피크(8047m) 등정만을 남겨뒀다.
당초 지난해 등정 계획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해야만 했다.
그는 국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도전에 나섰고 지난 18일 14좌 완등이라는 소식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는 완등 이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겨 감동을 안겼다.
하지만 필생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불과 하루 만에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남겨 충격을 줬다.
‘열 손가락을 움켜쥔 채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도전의 아이콘은 이 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선사할 것이다’는 그의 말처럼 국민들은 불굴의 의지로 편견과 한계를 극복하고 ‘최초인’이라는 역사를 써 내려간 그가 다시금 ‘무사귀환’이라는 기적을 쓸 것이라고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이슬라마바드=AP/뉴시스] 파키스탄 알파인클럽이 20일(현지시간) 공개한 촬영
날짜가 알려지지 않은 사진에 김홍빈(오른쪽) 대장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카라르 하이드리 총무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1.07.20.
김홍빈, 7900m지점서 타국가 대원 고립 보고 우회로 이용하다 조난"
조난 후 위성전화로 "무전기·주마 2개·우리 대원 와라" 요청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브로드피크(8047m급)에서 실종된 김홍빈(57) 대장이 해발 7900m지점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운데 타국가 여성 대원이 하산용 밧줄을 이용하고 있어 우회로를 선택하다 조난 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홍빈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20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대장의 조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대책위는 "김 대장은 등정을 마친 뒤 하산을 하던 중 7900m 지점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곳은 암벽·빙벽·설벽으로 이뤄져 있어 하산을 할 수 있도록 로프가 설치돼 있으며 다른나라 여성 산악인이 먼저 이용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로프는 여성 산악인이 완전히 내려가는 것을 확인 한 뒤 이용 할 수 있는데 (여성 산악인이) 힘이 빠졌는지 내려가지고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고 구조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광주=뉴시스] 광주시산악연맹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피크
(해발 8047m)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고 19일 밝혔다. 정상 도전을 앞두고 베이스캠프
(5135m)에서 찍은 김홍빈 대장. (사진=광주시산악연맹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이 때문에 김 대장은 저기압에 산소도 부족한 고지대에서 오래 머물 수 없어 우회로를 선택한 것 같다"며 "능선을 따라 왼쪽은 파키스탄, 오른쪽은 중국 방향인데 중국방향으로 하산을 시도하던 중 날이 저물고 체력이 떨어져 조난을 당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대장의 마지막 위성전화 음성도 이날 공개됐다.
김 대장은 하산을 하던 중 19일 자정께 조난을 당했고 오전 9시55분께 위성전화로 구조를 요청했다.
[광주=뉴시스] 송창헌 기자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지난 18일 오후(현지시간) 파키스탄 브로드피크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하던 중
7900m 지점에서 빙벽(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했다.
브로드피크 산악원정 루트. (사진=광주시 제공) 2021.07.21 photo@newsis.com *
대책위는 "김 대장은 날이 밝자 위성전화를 이용해 날씨를 알려주는 국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며 "무전기 가져와, 주마(암벽 등강기) 2개 필요해, 우리 대원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대장의 전화를 받은 국내 담당자는 곧바로 베이스캠프에 연락했다"며 "베이스캠프는 러시아 구조팀에게 연결헤 구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 구조팀은 김 대장을 발견하고 조난지점에 내려가 의식 여부를 확인한 뒤 주마를 이용해 15m 정도 끌어올렸지만 알수없는 원인으로 김 대장은 다시 추락했으며 다른나라 여성 산악인은 구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gryu77@newsis.com
데일리 한국 신영선기자
김홍빈 대장 조난 후 이틀반....생존 골든타임 안타까움
파키스탄 브로드피크(8047m) 등정 후 하산 길에 실종된 김홍빈(57) 대장의 구조작업이 악천후로 인해 지연되면서 ‘생존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 가운데, 김 대장의 조난 경위에 대한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김홍빈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20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대장의 조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대책위는 “김 대장은 등정을 마친 뒤 하산하던 중 7900m 지점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곳은 암벽·빙벽·설벽으로 이뤄져 있어 하산을 할 수 있도록 로프가 설치돼 있으며 다른 나라 여성 산악인이 먼저 이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로프는 여성 산악인이 완전히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뒤 이용할 수 있는데, (여성 산악인이) 힘이
빠졌는지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이 때문에 김 대장은 저기압에 산소도 부족한 고지대에서 오래 머물 수 없어 우회로를 선택해 중국 방향으로 하산을 시도하던 중 날이 저물고 체력이 떨어져 조난을 당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책위와 광주시산악연맹 등에 따르면 김 대장은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시간 오후 8시 58분) 고소(高所) 포터(짐꾼) 4명과 함께 브로드피크 정상을 밟은 후 포터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하산을 시도했다. 포터 중 1명은 먼저 캠프4(7570m)에 도착했고, 3명은 나중에 도착했다.
광주시산악연맹 등은 등정 이후 김 대장과 연락이 닿지 않자 포터 3명을 3시간가량 쉬게 한 후 다시 올려보내 김 대장을 찾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고소 포터들과 다시 만나지 못한 김 대장이 조난당한 시점은 등정 후 7시간이 지난 19일 0시쯤으로 추정된다.
김 대장이 자신의 조난 사실을 알리고 구조요청을 한 것은 등정 후 13시간 만이다.
김 대장은 19일 5시 53분(한국시간 9시 53분)에 피길연 광주산악연맹 회장에게, 5시 55분에 후배 산악인 조벽래 씨에게 각각 위성전화를 걸어 자신의 조난 사실을 알렸다.
김 대장은 조 씨에 대해선 2017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쇠를 잘 다뤄서 열 손가락이 없는 내게 맞는 등산 장비를 고안해준 고마운 후배”라고 소개한 바 있다.
김 대장은 피 회장과 조 씨에게 “꼴(빙하 표면의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를 지칭 )에서 밤을 새웠다.
주마(등강기) 2개가 필요하다. 무전기를 보내달라. 고소 포터들만 오면 소통에 문제가 있으니 소통할 수 있는 대원이 필요하다. 위성전화 배터리는 충분하다.
엄청 추워, 엄청 추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전해 들은 현지 원정대는 캠프4에 있던 정하영 KBS 촬영감독의 주마 2개를, 때마침 정상을 향해 오르던 이탈리아 원정대원에게 들려 보냈다.
당시 우리 측 원정대원들은 ‘고소 현상’과 체력 소진으로 매우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주마는 김 대장 조난 지점에 가까이 있던 러시아 원정대에 전달됐다.
러시아 원정대는 김 대장이 구조요청을 한 지 5시간 만인 19일 오전 11시 7900m 지점에서 김 대장을 발견했다. 당시 김 대장은 의식이 있었고, 손을 흔들기도 했다고 한다.
러시아 대원 1명이 내려가 김 대장에게 물을 제공한 후 구조활동을 펼쳐 15m가량을 끌어올렸다.
이후에는 김 대장이 주마를 이용해 올라오던 중 줄이 헐거워지면서 등선 아래로 추락했다는 게 러시아 대원들이 이날 오후 1시 42분 우리 측 연락관에게 알려온 내용이다.
줄이 끊어졌는지, 주마가 고장 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 대장의 현재 몸 상태는 알 길이 없지만, 체력 소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장이 17일 오전 11시 30분에 캠프4를 출발해 정상에 오르기까지 29시간 28분이 걸렸다.
또 등정 후 21일 오전 7시 현재까지 62시간이 더 흘렀다.
김 대장의 정신력이 강하고 주변에 식수를 대용할 수 있는 얼음 등이 있는 점은 긍정적 요소이지만, 장시간 음식 섭취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 뻔하고 구조 요청 당시 이미 심한 추위를 느끼고 있었던 점 등은 좀 더 구조 작업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파키스탄 측에서 구조 헬기를 띄울 준비를 마친 상태이나, 악천후로 인해 아직 띄우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991년 미국 알래스카 매킨리(6194m)를 오르다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김 대장은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하는 위업을 이룬 직후 실종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광주=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피크(8047m급) 등정을
한 뒤 하산을 하던 중 실종된 가운데 20일 오전 광주 동구 '김홍빈의 희망만들기'
사무실 계단에 김 대장의 등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2021.07.20. hgryu77@newsis.com
장애산악인' 김홍빈 실종 대책위·지원반 가동
광주시·산악연맹 등 8개 기관 대책위·지원단 구성
실종지점 고산지대·코로나19로 구조대 파견 난항
[광주=뉴시스] 송창헌 류형근 기자 = 장애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 도중 실종된 가운데 광주시와 산악연맹·장애인체육회 등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색지원에 나선다.
광주시와 광주시산악연맹, 대한산악연맹, 대한장애인체육회, 광주시장애인체육회, 광주시체육회는 20일 ㈔광주전남등산학교, ㈔김홍빈과 희망만들기와 함께 사고대책위와 실무지원단을 구성했다.
대책위 사무실은 시청 12층에 마련됐다.
사고수습대책위는 조인철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을 위원장으로 정원주 브로드피크 원정대 단장과 피길연 광주시산악연맹 회장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실무지원단은 김준영 광주시 문화관광체육실장을 단장으로 13명 규모로 구성됐다.
대책위와 지원단은 코로나19로 구조대 파견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현지 대원들과 연락체계를 구축하고, 사고 수습·지원에 관한 사항 총괄관리, 현지 요청사항 지원과 가족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중앙부처 차원에서는 사고수습 지원을 위해 외교부에서 관련 부처인 문체부와 협력해 대책반을 운영중이다. 시 수습대책위는 중앙대책반과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다.
구조대 지원을 위해 추가예산도 확보할 계획이다.
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브로드피크 정상 부근 기상이 나빠져 캠프4에 남아있던 대원들도 하산하고 있다"며 "이들이 21일께 50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정확한 상황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실종지점이 브로드피크 7900m 정상 부근이어서 국내에서 구조인력을 파견하면 고산지대 적응훈련 등으로 시간이 소요되고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광주대책위는 최대한 현지원정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예산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대장은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에도 불구, 14좌 완등에 성공한 불굴의 산악인"이라며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구조활동에 나설 것이다"고 전했다.
이용섭 시장은 이날 화요간부회의에서 "너무나 황망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삶 자체가 인간 승리의 역사였던 김 대장에게 불가능은 없는 만큼 이번에도 모진 역경 이겨내고 살아 돌아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김홍빈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께(현지시간) 파키스탄 브로드피크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을 하던 중 7900m 지점에서 빙벽(크레바스)아래로 추락했다.
김 대장은 위성전화를 이용해 구조요청했으며, 러시아 구조팀이 발견하고 밧줄을 이용해 끌어 올렸지만 15m를 남겨두고 다시 추락한 뒤 실종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goodchang@newsis.com, hgryu77@newsis.com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장애 등반가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고 하산 과정
에서 안타깝게 조난을 당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김홍빈과 희망만들기
’‘김홍빈 희망나눔 원정대’ 사무실 계단에 김 대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돌아오라, 김홍빈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분류할 때 쓰는 말 중에는 비장미·우아미·해학미 등과 함께 숭고미가 있다. ‘숭고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높고 고상하다’이다.
인간의 일반적 인식을 넘어서는 대자연이나 생명의 경이로움·위대함,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쓴다.
누군가의 경이로운 행위나 정신을 접할 때도 우리는 숭고미를 느낀다.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다.
알피니즘(Alpinism)으로 표현되는 등반가들의 정신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거친 눈보라 속에 고산병과 싸우며 암벽·빙벽을 한 걸음씩 묵묵히 차근차근 걸어올라 마침내 정상에 서는 사람들이다.
자연에 맞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그들의 도전 정신이 감동을 안기는 것이다.
산악인의 등정길은 갖가지 고난을 이겨내야 하는 우리의 인생을 닮아 공감은 더 깊어진다.
1953년 5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세계에서 처음으로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 애드먼드 힐러리는 “우리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히말라야의 고봉 브로드피크(해발 8047m) 등정에 나선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정상 정복 후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이 20일 전해졌다.
빙하가 갈라진 깊고 좁은 틈인 크레바스에서 조난당했다.
러시아 원정대의 구조 도중에 다시 추락했다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열 손가락이 없는 산악인’인 그의 등반가로서의 삶은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
김홍빈은 북미 최고봉인 디날리 등반 중 동상으로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이를 딛고 7대륙 최고봉을, 이번 브로드피크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했다.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흘렸을 피와 땀,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은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그의 의지가 뜨겁게 다가온다.
완등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들을 위로하고, 희망과 꿈을 나누고자 한 그의 뜻이 숭고하다.
산을 오르며 입은 장애를 다시 산에 오르며 극복한 그다.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14좌 완등을 한 것처럼 ‘김홍빈 희망나눔 원정대’의 빈 사무실로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도재기 논설위원
6월1일 광주장애인국민체육센터에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완등에 도전하는
김홍빈 산악대장(앞줄 오른쪽에서 다섯째)이 브로드피크 원정을 앞두고
발대식을 열고 있다.
성공 뒤 장애인에 헌신한다”더니…김홍빈 실종에 산악인들 ‘침통
“김홍빈(57) 대장은 이번 등정만 성공하면 더는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려고 했어요. (한숨) 남은 인생은 장애인을 위해 살겠다고 했죠.”20일 피길연 광주광역시산악연맹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 대장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이렇게 기억했다.
김 대장은 지난 18일 브로드피크(8047m) 정상에 오르며 장애인으로는 세계 처음으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 등정에 성공한 뒤, 이튿날 해발 7900m 부근 파키스탄과 중국의 접경 지역을 혼자 통과하다 크레바스(빙하 틈)에서 실족해 떨어진 뒤 실종된 상태다.
이에 외교부 요청에 파키스탄 당국 등이 수색·구조작업 공조에 나섰고, 전국 각지에서 김 대장의 무사귀환을 비는 시민들의 염원이 이어졌다.
피 회장은 “평소 김 대장은 ‘나는 산에 다니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히말라야 14좌 등반에 성공하면 더이상 높은 산에 오르지 않고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만들기’를 통해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도전 정신을 전파하려 했다.
이번 등반은 김 대장의 마지막 도전이어서 더욱 안타깝다”며 울먹였다.
김 대장은 실족 뒤 지인과 마지막 통화에서 “매우 춥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0시께 조난을 당한 김 대장이 새벽 5시55분 위성전화로 피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요청을 하려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김 대장은 한국에 있는 다른 지인에게 연락해 “등강기(주마) 2개가 필요하다. (베이스캠프와) 무전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지인은 “무전기 밧데리가 충분하냐”고 물었지만 김 대장은 “매우 춥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고 피 회장은 전했다.
한편, 외교부 요청에 따라 파키스탄 당국은 이날 육군 항공구조대 헬기를 투입해 현장 수색에 나서려 했지만,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뜨지 못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김홍빈 대장.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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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실종 산악인 김홍빈은 누구?
손가락 없는 장애인 최초 7대륙 최고봉·히말라야 14좌 등정
"'어떤 위험' 보다 '어떤 조건'으로 극복했느냐를 높이 평가해야"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은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온전한 몸으로 오르는 것과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자가 오르는 것은 다르다."
'열 손가락을 잃은 산악인'으로 유명한 김홍빈 대장(57)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그는 "어떤 위험 속을 헤쳐나갔느냐가 중요하기보다 어떤 조건으로 극복했느냐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오르는 자가 가진 story(이야기)와 극복 의지가 맞물릴 때 가장 클 것이라 믿는다"고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산악인 김홍빈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을 동경했지만,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고산 등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술, 담배도 멀리하고 스키, 사이클, 스케이트도 열심히 탔다.
그는 1989년 동계전국체전에 출전, 노르딕 개인전 2위에 입상하고 그 해부터 1991년까지 바이애슬론 부문에서 1, 2,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9년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스키 대회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도로사이클 개인도로 독주 24㎞ 2위, 트랙경기 팀스프린트 1위도 기록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부쩍 늘었고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어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도 참여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가 조난을 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 손목까지 절단하며 산악인으로서는 좌절의 시간을 겪게 됐다.
산이 전부였던 그에게 좌절은 컸고 방황의 시간은 길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한반도의 모든 산을 오르고 구르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자신을 비롯해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르고 또 오르며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다시 산을 오를 수 있겠느냐'는 편견에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던 그는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해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나선다.
그는 2009년 7대륙 최고봉을 13년 만에 완등하고 히말라야 14좌 중 13좌를 정복했다. 모두 장애인으로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최초의 기록이다.
2019년 히말라야 13좌 등정에 성공하고 이제 마지막 1개인 브로드피크(8047m) 등정만을 남겨뒀다.
당초 지난해 등정 계획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해야만 했다.
그는 국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도전에 나섰고 지난 18일 14좌 완등이라는 소식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는 완등 이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겨 감동을 안겼다.
하지만 필생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불과 하루 만에 하산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남겨 충격을 줬다.
'열 손가락을 움켜쥔 채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도전의 아이콘은 이 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선사할 것이다'는 그의 말처럼 국민들은 불굴의 의지로 편견과 한계를 극복하고 '최초인'이라는 역사를 써 내려간 그가 다시금 '무사귀환'이라는 기적을 쓸 것이라고 기원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출처 : 팩트경제신문(http://www.facten.co.kr)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김홍빈씨. 콜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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