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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윤석열 정부의 이중잣대, 김건희 여사의 과거 잊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저널  양선영

 

 

 

 

 

 

윤석열 정부의 이중잣대, 김건희 여사의 과거 잊지 않았다

 

 

 
 

임원 X는 직원들을 마른걸레처럼 쥐어짜 경영실적을 올리는 비기(祕技)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고 비속어를 남발하고 욕을 내뱉으면서 모멸감을 안기는 게 주특기였다.

수지 개선과 조직 효율화라는 공보다 인간성 파괴라는 과가 돋보였다.

직원들의 고통과 원성 속에 몇 년간 '완장 권력'을 누리던 그는 어느 날 임원 재계약 해지를 통보받고 짐을 쌌다.

사전에 어떠한 언질도 없었다.

위임받은 권력을 제 권력으로 알던 자의 쓸쓸한 말로였다.

국민에 대한 예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고 힘자랑을 즐기는 정권의 공통점은 유난히 기강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대한 총경급들의 회동을 두고 "중대한 국가 기강 문란"이라고 비판했다.

6월 치안감급 인사안이 대통령 재가 전에 언론에 보도됐을 때도 비슷한 표현을 썼다.

뭐 국가지도자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경찰 중립화/민주화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관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을 테니.

그런데 이 정권이 국가 기강을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국가 기강의 기반은 공정성이다. 공권력과 법은 국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

지난 4월 검찰 직접수사권 폐지 법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검사들은 공공연히 모여 집단반발을 표출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역대 정권에서 그 조직의 권한을 축소하려 할 때마다 비슷한 행태를 보여 왔기에.

그런데 이런 일로 문책 받은 검사는 한 명도 없다.

반면 이번 경찰 모임을 주도한 류삼영 총경은 대기발령에 처하고, 현장 참석자 50여 명은 감찰을 받게 됐다. 똑같은 공무원인데 왜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을까?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는 "회의 참석자에 대한 대기발령과 감찰 조치는 공무원의 집단행동에 있어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검찰은 되고, 한 수 아래인 경찰은 안 된다는 '검로경불'"이라며 "검찰과 경찰 두 집단을 대하는 정부의 차별적 조치에는 어떤 공정도 상식도 없고 헌법상의 평등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양심'으로 불리는 임은정 검사도 페이스북에 같은 취지로 윤 정권의 이중 잣대를 꼬집었다.

임 검사는 "검찰에서의 검사회의 개최, 성명 발표가 공무원에게 금지되는 집단행동이 아니라 법령 개정안에 대한 폭넓은 의견 수렴과 하의상달의 의사 표현이라면, 경찰 역시 다를 바 없다.

 

그것이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하는 집단행동이라면, 검찰 역시 그러면 안 된다"면서 해당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검찰지상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게 법치다.

검치를 법치로 여기는 편향적 사고도 문제지만, 대상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법치라면, 즉 불공정한 법치라면 나라 기강을 세우는 데 외려 걸림돌이 된다.

법가(法家)의 대부 한비자가 말한 법치는 '만인에게 평등한 법'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법치가 아니다.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들은 법으로 지배계급 및 특권계급을 견제하고 계급질서의 장벽을 허물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법치가 덕치보다 민주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공정하지 않은 법치는 특권과 차별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법을 우습게 알면 국민을 우습게 안다.

 



김건희 여사의 경우

 
 
 
 

▲  지난 3월 4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서울 서초구

서초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연합뉴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는 대선 때 검찰의 출석조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새 정부 출범 후 수사 지휘라인이 바뀌고, 김 여사 변호인이던 조상준 전 검사는 국가정보원 요직에 올랐다.

 

주가조작 공소시효는 10년. 기소된 14명의 범죄가 종료된 시점이 2012년 12월이기에 김 여사의 '범죄 의혹'에 대한 공소시효는 반년도 남지 않았다.

알다시피 공소시효는 검찰의 요술방망이다. 검찰은 난처하거나 하기 싫은 수사는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미루는 관습이 있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사건 수사와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직권남용으로 고발당한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윤 전 서장 동생 윤대진 검사를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무혐의) 처분했다.

시민단체가 두 사람을 고발한 것은 2019년 8월. 2013~2014년 경찰이 윤 전 서장을 수사할 때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였다.

 

직권남용죄 공소시효는 7년.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죄를 가릴 시기를 놓쳐 무혐의 처분했다니 사건의 진실은 신도 모른다.

오직 검찰만이 알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찰이 수사하는 김 여사의 허위경력 의혹 사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김 여사는 과거 대학 시간강사와 겸임교수에 지원할 때 이력서에 거짓 경력과 학력을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 대선 때 사과까지 했다.

시민단체들이 업무방해, 사문서위조, 사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는데, 수사 속도가 한없이 더디다.

김 여사는 7월 초에야 경찰에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다. 고발당한 지 9개월 만이다.

업무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의 공소시효는 7년, 사기죄는 10년이다.

조사 대상은 2001년부터 2016년까지 김 여사가 재직한 5개 대학.

 

업무방해 혐의는 근무 시기와 기간에 따라 공소시효가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사문서위조 혐의는, 언론이 보도한 내용만 놓고 보면 시효가 끝났을 개연성이 있다.

반면 사기죄가 적용된다면 시효가 넉넉한 편이다.

젊은 날 허물없는 사람 드물다. 일반인이라면 별문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인은 다르다.

더욱이 이 정권 탄생에 이바지한 검찰은 누군가의 비슷한 비리 의혹에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던가?

야당의 전 대선후보 부부에 대해서도 그렇고.

나는 지난 3월 대선이 끝난 다음 날 칼럼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국민 화합을 위해 본인과 처가 비리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

도의적 차원에서 대국민 사과도 검토할 만하다'고 주문했다.

'특검(?)을 비롯한 수사기관 조사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면서.

하지만 사과와 협조는커녕 김 여사는 '조용한 내조'라는 대국민 약속을 보란듯 깨트렸다.

이런저런 모임과 행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팬클럽을 통해 '보안 사항'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국제무대에까지 진출했다.

빗나간 팬심과 과시욕에 취해 국민 뜻을 무시한 것이다.

 



운 좋게 당선된 대통령, 국민이 우습나

 
 
 
 

▲  지난 7월 28일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통일부와 과학

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후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에서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을 얕보면 대놓고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이 대표 사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기관장들이 사퇴를 강요당했다는 여권 주장에 발맞춰 검찰 움직임이 빨라졌다.

 

4개월 전 산업통상자원부를 털어댄 검찰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일부 등을 같은 혐의로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확대했다.

청와대 등 '윗선' 개입 혐의를 찾겠다는 것이다.

보복수사나 표적수사 논란이 있지만, 불법 의혹에 대한 수사라는 명분이 있으니 법치의 영역이라고 봐줄 면도 있다.

그런데 전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임기가 보장된 방송통신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의 사퇴를 대놓고 압박하는 건 어찌 해석해야 할지?

두 사람이 임기 완수 의지를 밝힌 후 감사원은 두 기관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논리야 있겠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다.

방송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낸다.

여권의 사퇴 압박과 보수단체의 국민감사 청구와 수사. 어쩜 이리 이명박 정부 초기의 행태와 비슷한지. 다른 예 들 것도 없다.

2008년 8월 감사원은 보수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해 누적적자와 인사권 남용 등의 이유로 해임을 요구했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상태에서 해임된 정 전 사장은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내 2012년 최종 승소했다. 검찰 수사도 완패였다. 검찰은 그를 배임죄로 기소했는데, 법원은 무죄로 판결했다.

2019년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당시 정 전 사장이 무리한 기소로 피해를 봤다며 검찰총장에게 사과를 권고했다.

이렇게 빤히 잘못된 역사를 답습하려 하다니. 다 국민을 우습게보고 권력에 취해서다. 최고 권력자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면 정권 신뢰도에 쩍쩍 금이 간다.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검사의 공직기강비서관 임명,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민간인들의 공적 업무 수행과 사적 채용, 고발사주 사건으로 기소된 검사의 영전 등이 다 그런 사례다.

정권 출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권력다툼을 벌이는 여권 정치인들,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커진 경찰을 정권 품으로 돌려주려 총대를 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검찰 권력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수사구조 개혁의 성과를 무시한 채 시대착오적인 검찰공화국 건설에 일로매진하는 법무부 장관의 활약도 기억할 만하다.

 

논문 표절에도 꿋꿋이 버팀으로써 윤석열 정부의 도덕불감증을 몸소 보여준 교육부 장관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자고로 공직자가 국민보다 권력자를 바라보면 민주주의가 흔들린다.

 

불공정한 법치는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훼손한다.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고 계층 갈등을 부추기고 양극화를 깊게 한다. 권력은 잠시 맡았다가 돌려주는 것이다.

마름이 주인 행세하다가는 X처럼 비웃음과 원성만 사다가 불행한 결말을 맞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를 잊지 말아야 한다. '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대로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려면 말이다.

 

지금 시행하는 정책 중에 이에 부합하는 게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집단을 대변하는 지도자가 아닌, 모든 국민의 지도자라는 믿음을 주는 일이 시급하다.

윤 대통령은 운 좋게 당선됐다는 점을 잊지 말고 주인인 국민 뜻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국내외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맞아 전 정권 혼내주기에 정부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일인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깊이 헤아리면 좋겠다.

마침 지지율도 바닥이다.

 

국정의 목표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아무리 정권이 못마땅해도 초장부터 망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많지 않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연합뉴스

 

 

 

 

기어코 좌 범찰 ,우 경찰.... 윤석열 정부 속도전이 위험한 이유

 

 

 

 
사상 초유의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가 지난 23일 열렸다.

현장에 모인 사람은 50여 명이었지만 화상으로 참석까지 포함하면 200명에 달했다.

 

회의에 참석 못한 총경들은 무궁화 화분을 보내 지지 의사를 표했다.

전국 총경급 간부 6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동참했다.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후폭풍도 이례적이다.

경찰 지휘부는 이번 서장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에 '대기발령' 조치했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했다.

 

그러자 이젠 7월 30일 경찰 팀장(경감·경위) 회의가 예고됐다.

경찰 움직임의 확산이다. 

검사들이 자신들과 관련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평검사 회의나 부장검사 회의 같은 것을 열어온 것에 비하면 경찰의 단체행동은 그간 거의 전무했다.

경찰 수뇌부에선 이번 서장회의 참석을 만류하고 강력 경고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뜻을 접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찰 조직문화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전국 총경이 모였다.

고위 간부가, 그것도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움직인 일은 경찰 역사에 없었다.



정치 개입 자제했던 역대 정부...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

 
 
 
 


▲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모습. 연합뉴스

 
 

 

사실 경찰을 향한 정권 차원의 외압·개입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 당시 댓글조작으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구속됐고, 박근혜 정부 때는 총선 개입 문건 작성으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구속됐다.

아직도 재판을 받는 경찰 고위 간부만 하더라도 10여 명이 넘는다.

 

역사적·시대적 과정을 거치면서 경찰 내·외부의 여건도 많이 달라졌다.

경찰에 투신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구성원들의 수준이 많이 향상됐다.

독립성·중립성을 향한 경찰 내부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서 경찰의 자부심은 한껏 고무됐고 경찰에 대한 사회적 평가 또한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경찰이 겪어온 이런 시대적·역사적 연원을 도외시했다.

정치적 개입을 자제했고 조심했던 역대 정부와는 완전히 태도를 달리해 공공연하고 분명하게 경찰 장악의 의도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먼저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이라는 구시대적 유물을 부활시켜 행안부장관의 경찰 장악의 제도적 수단을 마련했다.

전임 정부 치안정감 전원을 퇴직시키고 나선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개별 면담을 통해 치안정감들을 승진시켰다.

 

그중에서 경찰청장을 뽑아 길들이기와 줄 세우기를 하는 고도의 정치적 편향을 보였다.

지난 18일 이상민 장관은 중대 사안에 대한 수사 지휘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경찰의 반발을 초래해가면서까지 '행안부 내 경찰국'이라는 강수를 두는 건 무엇 때문인가.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을 확실히 정리한 윤 정부는 이제 경찰마저 장악해 '좌 검찰 우 경찰'의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그들이 제일 잘하는 '수사'라는 칼을 휘두르려는 것이라고 본다.

수사 대상은 전임 정부와 야당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는 정치적 중립을 위한 열망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발표를 마친 이상민 장관이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우성

 
 
 
 
 
 

 
보수적이고 현상 유지의 성격이 강한 경찰 집단은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반대하며 집단적 움직임에 나섰다.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들이 권력에 밉보이는 불이익을 감수한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정치적 중립에 대한 열망과 충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 경찰이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한 것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이한열 열사 사망사건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출발해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이뤄진 소중한 결실이었다.

이후 역대 정권들은 경찰을 도구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실제 도구로 활용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윤석열 정부처럼 대놓고 공공연하게 경찰을 향한 종속과 굴복을 강요하진 않았다.

게다가 지난 6월 윤 대통령은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로 논란이 커지자 '국기문란'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경찰을 직접 겁박까지 했다. 

민주화 이후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이 외형적으로나마 존중되면서 경찰은 그나마 정치적 시비에서 벗어나 법 집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본다.

필자는 그 결과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치안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정치를 가까이 하지 않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존립기반임을 깨달았다.

경찰의 이런 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당연히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경찰 지휘부는 류삼영 총경 대기발령에 이어 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감찰조사에 나서는 등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껏 검사회의에 참석한 검사를 '감찰'하고 '대기발령'하고 '징계하려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주말에 소속 조직의 중대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왜 대기발령되고 감찰조사 받는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검사는 되고 경찰은 안된다는 식의 발상은 윤석열 정부의 존립기반이 오로지 검찰임을 말해주는 것이고 오만과 독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검찰이 하면 로맨스고 경찰이 하면 불륜, '검로경불'인가. 

경찰의 반발에도 윤석열 정부는 경찰국 설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행안부는 경찰국 신설안 등의 입법예고 기간을 통상 40일에서 4일로 대폭 줄였다(7월 16~19일).

지난 21일엔 차관회의에서 관련 시행령안을 통과시켰고, 26일 국무회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경찰국 신설 시행령안 등이 국무회의서 통과되면 오는 8월 2일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은 중립성을 표명하는 법 집행기관을 힘으로 찍어 눌러 무릎 꿇리는 것과 같다.

권력은 견제와 균형으로 빛을 발하는 도구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대체 이 과신과 오만과 독선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27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환송나온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수 논설위원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나라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28%까지 폭락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7월 첫주 데드크로스(긍정 37%-부정 49%)가 일어나고, 악어 입처럼 격차가 벌어지더니, 3주 만에 30% 벽도 무너졌다.

 

남녀·지역·직종을 가릴 것 없고, 2040은 십중팔구가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 첫 휴가 기사는 “뭐 한 일이 있다고…”란 악플로 덮였다.

 

워싱턴의 안보전문지(내셔널인터레스트)엔 “인기 없는 윤 대통령이 너무 빨리 미국의 짐(liability)이 됐다”는 글이 실렸고, 뉴욕의 경제전문지(블룸버그)는 물가·코로나가 아니라 경찰과 싸우고 있는 한국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에 물음표를 달았다.

취임 80일 만에 동네북 된 채 대통령 부부는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흔히 데드크로스는 대통령을 찍은 스윙보터가 떠나고, 국민과의 허니문도 끝났다는 뜻이다.

30% 붕괴는 콘크리트 지지층까지 등돌린 신호로 읽는다.

악몽 같았을 7월, 집권세력엔 제 발등을 찍은 세 컷이 있었다.

 

#대통령의 표리부동 =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윤 대통령이 7월26일 권성동 여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문자는 5년 갈 파문을 일으켰다. ‘윤심’은 ‘윤핵관’이었다.

 

“당무에 관여하지 않는다”던 말이 거짓이 된 내상도 컸다.

이 문자는 ‘대통령 처음 해봐서’란 실언, ‘법률가(검찰)의 정·관계 진출이 많은 게 법치’라는 편견,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 한 치안감 인사번복 사태를 경징계한 황당함과는 결이 다른 설화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곤 국가지도자가 국민·당원에게 어떤 설명·사과도 없이 휴가를 갔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던 약속은 허언이 됐다.

대통령 말이 이리 가볍고 여반장(如反掌)이어선 리더십과 영이 설 수 없다.

#섬이 된 집권당 = 권 대행은 물러났다.

 

검수완박 합의 번복, 대통령실 9급 사적 채용에 이어진 3번째 사과는 리더십 상실이었다.

윤핵관은 비상대책위로 방향을 틀었다.

성비위 문제로 당원권이 6개월 정지된 이준석 대표 복귀를 봉쇄하는 길이다.

 

이 대표는 잠시 들른 울릉도와 ‘양두구육 여의도’를 이 섬과 그 섬으로 갈랐다.

윤핵관·당권주자의 이합집산에 따라 섬 숫자는 오륙도로 늘 수도 있다.

기자에게 포착된 대통령 문자가 우연이면, 윤핵관과 이준석 간 권력쟁투는 필연이다.

전대·총선·대선까지 갈 주류·비주류 내전이 집권 100일도 전에 시작됐다.

 

#정부의 자기부정 = 통일부가 3년 전 발표한 ‘흉악범죄 북한주민 추방’을 ‘북한어민 강제 북송’으로 번복했다.

새 증거는 없었다.

 

통일부에선 “통일부는 통일부다!”라는 노동조합 성명이 나왔다.

익명의 직원들도 ‘분단국 특성의 통일업무’를 자처한 통일부가 국방부보다도 정쟁 돌격대로 나선 걸 민망해하고, 일관성과 신뢰를 잃은 뒷날을 걱정했다.

 

인권지킴이를 표방한 검찰은 대법원이 인정한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 보복 기소’의 사과를 거부했다. 부처들의 혼 없는 반성문과 자기부정이 쓴웃음 짓게 한 7월이다.

대통령은 말과 인사로, 집권당은 책임정치로, 정부는 정책과 예산으로 세상을 움직인다.

 

그 힘이 뚝 떨어졌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메신저로서의 믿음을 잃으니 말도 협치도 국정도 바로 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반대다.

대통령·윤핵관의 비선정치는 “잘하고 있다”는 정신승리에 여념없다.

전 정부 탓, 여소야대 탓, 어느새 대통령 입에선 정책 홍보가 안 된 탓도 늘었다.

 

잘하는데, 잘할 건데 언론과 국민이 몰라준다는 걸까.

이리 빨리 민심 위에 붕 떠버린 ‘부평초 정권’은 없었다.

당·정·대의 80일에 평점 D를 매긴다. F는 퇴장이니까.

 

정치원로들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금칙이 있다.

지지자를 부끄럽게 하지 말고, 민생과 먼 지도자로 보이지 말며,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나라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 가지가 다 깨졌다.

 
 

2012년 12월19일이다.

대선 날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극장에 걸렸다.

파리 민중들이 바리케이드 치고 부른 마지막 합창은 지금도 코끝이 찡해온다.

 

대혁명 후에도 삶의 변화가 오지 않은 19세기 프랑스는 민주화 후에도 빈곤·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대한민국과 공명(共鳴)한다.

오늘의 고물가·코로나·경제위기도 약자부터 잡아먹고 있다.

 

국정지지율 28%는 멈추라, 낮추라, 바꾸라, 함께 살자는 주권자의 명령이다.

<레미제라블> 마지막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너는 민중의 노래를 듣고 있는가

 

 

 

 

 

 

 

 

 

 

 

 

가난과 고물가 시대에,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부자와의 동행'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획재정부, 이중잣대 집어 치워라"

눈을 뜬 거 보니 죽지 않고 살아가 본다.

살겠다고 밥과 약을 먹는다

. 치아가 많이 부실해서 씹는 것이 어렵다.

 

살아가는 일이 제일 힘들다.

내가 아파 병원에 있으면 와줄 사람도, 돈 한 푼 빌려줄 사람도 없으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매일 끼니 때우는 것도 힘들다.

그 밥에 그 반찬들."

 

- 가계부조사에 참여한 수급자 가계부 중

 

어묵, 김치, 된장국, 김, 그리고 고추장. 수급 생활자의 밥상은 뭉근하게 반복되었고 대동소이했다.

김치와 김, 고추장이 중심을 잡았고, 종종 무말랭이와 멸치가 올랐다.

라면은 주식 같았으며, 고구마, 호떡 등 주전부리가 끼니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고기나 생선, 딸기와 같은 제철 과일은 밥상의 기록에서 찾기 어려웠다.

 

"딸기가 먹고 싶어요. 하지만 비싸서 먹을 수 없어요." 

'2022년 수급자가계부조사' 차 필자가 찾아 뵌 수급자분은 약을 먹기 위해 끼니를 잇는다 하셨다.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석회건염, 오십견 등 이곳저곳 아프신 곳이 많아 약을 거르면 건강의 위기로 직결된다.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는 생활.

 

가끔 정말 먹고 싶은 과일이 있어도 먹을 수 없는 생활.

수급자의 밥상은 수급액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조곤조곤 기록된 수급자의 심경과 함께. 

 

가난과 고물가 시대 

25가구를 표본으로 한, '2022년 수급자가계부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거급여를 제외한 소득대비 식비 비율은 37.2%에 이른다.

그럼에도 고기나 과일을 단 한 번도 먹지 못한 가구는 절반에 이른다.

대신 저렴한 햄이나 김치 같은 반찬류, 즉석 냉동식품 등 기타식품 소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루 세끼 평균 8618원의 식사비를 감안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지출이다.

의류비와 같은 자기돌봄을 위한 소비, 그리고 친구를 만나는 등 관계돌봄을 위한 소비는 언감생심이다. 

올해 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기한이 다 된 식료품을 찾아다니는 노고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민생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데, 민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삶을 연명하는 수급 생활자들에게는 더욱 큰 위기로 다가선다. 국가가 서민과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강하게 책임져야 할 상황이다. 

 

 

 

 

 

 

 

 

 

 

▲ 지난 7월 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수급자의 밥상' 전시회. ⓒ강지헌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를 요구한다

매년 8월 1일까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기준중위소득을 정한다.

76개 복지제도의 기준선이자 생계급여를 비롯한 수급액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정부가 내건 '약자와의 동행'이 말뿐인 선언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시험대다.

 

하지만 차년도 기준중위소득을 논의하는 자리, 기획재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선언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지난 19일, 25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2023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을 두고 원칙안(최종증가율 5.47%)과 감액안(최종증가율 4.19%)을 논의했다.

 

기획재정부는 감액안을 주장했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국민의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줄어 민생이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어김없이 재정부담론을 꺼내들었다.

경기변동, 최저임금 인상률 등을 빗대 감액안을 주장하지만 몽니에 가깝다. 

 

기준중위소득은 현실보다 한참 낮게 책정되어 있다.

기준중위소득 산정의 기반이자,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가구소득의 '현실' 값으로 합의한 통계치인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값에 기준중위소득은 한 참 뒤떨어진다.

2020년까지 기준중위소득을 책정하며 사용한 통계치인 '가계동향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2021년부터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기준중위소득 산정의 통계치를 전환하며 발생한 12% 상당의 격차까지 6년에 걸쳐 좁히는 중이다.

값을 환산하면 1인 가구 기준 약 60만 원 정도가 현실보다 뒤쳐져 있다.

수급 생활자는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의 30%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기획재정부는 평범한 국민의 소득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사회안전망을 운용하면서,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를 위한 인상률마저 깎으려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요구는 기준중위소득 인상이 아니라 '현실화'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와의 동행'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대규모 감세를 시행하며 모순의 정점을 찍었다.

기준중위소득 인상율의 원칙안과 감액안의 1.28%p 차이를 생계급여 예산으로 환산하면 1000억 원 정도인 데, 최근 경기변동을 감안하여 이마저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지난 21일 누적 60조 규모의 대규모 부자감세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해 MB정부로 회귀했고, 종합부동산세 또한 대규모 삭감했다.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폐지하여 최고세율을 6.0%에서 2.7%로 떨어뜨렸다.

소득세와 상속세, 증여세도 흔들었다.

노골적인 '부자와의 동행'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으로 모자라 생명줄마저 옥죄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대기업과 투기로 자산을 불린 다주택 부자에게 파격적인 감세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생계급여에서 증가되는 1천억의 예산마저 아끼자면서, 60조의 부자감세를 감행하는 것은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경제 불안정이 심화될수록 재정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적자를 보는 기업이나 가계는 법인세나 소득세를 깎아줘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

감세는 경제의 불안정에는 크게 영향 받지 않지만 세부담 능력을 가진 부자들에 대한 특혜다.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으로 위태로운 중소기업과 민생,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면 국가 재정 근간을 흔드는 감세가 아니라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했어야한다. 

 

 

 

 

 

 

 

 

▲기초생활보장법 바로 세우기 공동행동, 장애인과 가난한사람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

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이날 열리는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앞두고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급여 현실화 등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29일, 이중잣대를 집어치워라 

다가오는 7월 29일, 2023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들이 원칙안을 채택했음에도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는 감액안을 고집한다고 전해진다.

기획재정부는 경제불안정을 근거로든 이중잣대를 집어치워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기준중위소득 인상에는 몽니를 부리고, 부자감세는 강행하는 모순적 행보를 그만두어야한다.

한국 사회에서 수급 생활은 존엄을 상실한 연명을 의미한다.

끼니'만' 겨우 잇는 삶을 의미해왔다.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이제 그 마저도 위태롭다.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는 원칙대로 기준중위소득을 현실화하라!

부자와의 동행을 당장 멈추고, 약자와 동행하라!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지구대를 찾아 현장 경찰관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병 주고 약 주나”“쿠데타로 몰아붙이더니”···

윤 대통령 지구대 방문에 일선 경찰들 분통

 

 

“병 주고 약 주는 거냐.” “겉으론 웃고 있었을지 몰라도 속은 썩어 있었을 것.”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사전 예고없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지구대를 방문하자 경찰 내부에선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곳곳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지 채 며칠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이뤄진 대통령의 ‘기습 방문’에 냉소적인 반응도 쏟아졌다.

 

한 경찰관은 “행안부 경찰국 신설로 경찰 조직이 만신창이가 됐는데, 대통령으로서 사과는 못해도 설명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신촌지구대를 찾아 경찰의 치안대응 태세를 점검했다.

내달 2일 경찰국 출범을 앞두고 치안 현장 최일선을 찾아 ‘경찰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총경 회의 등 경찰의 집단 반발에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라며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복 공무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처우를 개선해나가는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겠다”며 “국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경찰관들의 모습을 보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든든하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에 대한 경찰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서울 관내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전날 윤 대통령이 지구대를 방문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경찰 내부망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며 “그동안은 국기문란이라며 경찰을 쿠데타 세력으로 몰더니 목표한 경찰국 신설이 확정되자 사탕이라도 물려주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부산 지역 한 경찰관도 “제도와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는데,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인 경찰청장의 장관급 격상 같은 것은 왜 안 지키는지 설명이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찰국 신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부와 일선 경찰 사이의 갈등은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도 타격을 끼쳤다.

한국갤럽이 지난 26∼28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8%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주보다 4%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부정 평가 이유에 ‘경찰국 신설’(4%) 문제가 새롭게 추가됐다.

경찰청은 지난 28일 세종을 시작으로, 29일 광주·전남·대전·울산·경기북부·충남·전북·경북에서 경찰국 신설 등과 관련해 일선 경찰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은 서울·부산·대구·인천·경기남부·강원·충북·경남·제주 지역에서 경찰관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부터).

[동아DB]

 

 

 

 

 

입이 화근.... 다변의 윤석열. 이재명. 이준석

 

 

 

 

[뉴스토마토 임유진·최병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그로부터 "내부총질 당대표"로 낙인이 찍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차기 민주당 당대표가 유력한 이재명 의원까지, 대한민국 정치를 움직이는 세 사람은 '다변'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논란 대부분이 자신의 말에서 비롯되는 공통점도 안고 있다.  

 

세 사람 모두 '말'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넘친다.

윤 대통령의 경우 검찰총장 재직 당시 대검 간부회의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윤 총장은 농담조로 검찰 내 술자리 기피대상 1호로도 꼽혔는데, 말 많은 상사라는 게 이유였을 정도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윤 대통령의 다변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말을 주도하는 건 윤 대통령이다.

이는 술자리로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이재명 의원의 경우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설화(웹툰 '오피스 누나'를 놓고 "제목이 확 끄는데요")에 따른 기자들 질문을 피하기 위해 잠시 백브리핑(즉석 질의응답)을 중단한 경우가 있었는데, 당시 측근들조차 "놔두면 본인이 못 견뎌서 말한다"고 할 정도였다.

이 의원은 당시 "(참모진으로부터)제가 발언을 금지당했다.

미안하다"며 질문을 받지 않았지만, 측근들 예상대로 며칠 가지 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준석 대표 역시 열변을 토해내는 다변가로 정평이 나있다.

정치 패널로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갈고 닦은 다변은 당대표가 되고서도 이어졌다.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은 꼭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은 그를 계속된 다변가로 만들었다.

대표실 측근들조차 아예 손 놓고 두고보기만 했다. 

 

 

 

 

 

 

 

 

 

윤석열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다변은 필히 실수를 부르게 되고, 이는 설화로 연결됐다. 

장성철 정치평론가는 3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화법은 때와 상황에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막 던지는 스타일인데, 도어스테핑(약식회견)을 하다보니까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실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추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도어스테핑 등을 통한 정제되지 않은 직설적 화법이 지목됐다.

윤 대통령은 계속된 인사 참사 지적에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며 기자들에게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고, 검찰 출신 편중 논란에는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특히 이준석 대표를 가리켜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지칭, 여당 내홍을 부채질했다.

앞서 대선 과정에서도 '주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 등 수많은 설화를 남겼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윤 대통령 화법을 보면 방어하는 과정에서 단호하게, 또 즉흥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다보니 다소 '거칠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라며 "시원한 발언이라고 호응을 얻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불안해 보일 수 있는 요인이 있는 만큼 준비된 발언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석 대표 (사진=연합뉴스)

 
 
 
 
 
 
 
 

말 많기로 소문난 이준석 대표 역시 대표직 수행 내내 과거 방송 패널 같은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장성철 평론가는 "이 대표는 말이 많은데, 특히 논쟁에서 공격을 좋아하고 지기 싫어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말이 좀 거칠다"고 진단했다.

 

지적대로 이 대표는 거친 돌직구 발언으로 숱한 논란을 야기했다.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제안하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사진'과 함께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조롱하는가 하면,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고, 차기 당권 연대설이 나돈 안철수(간만 보는 안철수) 의원과 장제원 의원을 가리켜 '간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상대 공격에는 반드시 갚는다는 성정이 거친 말과 얽히면서 아군 진영 내에서도 기피대상 1호로 전락하자 "진중할 것"을 여러 이들로부터 조언 받았지만 고쳐지지 못했다.

급기야 자신을 "내부총질 당대표"로 규정한 윤 대통령에게 "양두구육"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정면대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진 원장은 "이 대표의 경우 강한 외향성을 지닌 따발총 스타일로, 상대가 공격하든 안 하든 간에 적극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라며 "톡톡 튀는 화법들이 많아 어디서나 주목을 받고 이슈 파이팅을 하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상대방에게는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민주당 의원(사진=연합뉴스)

 
 
 
 
 
 
 

'다변'이라면 이재명 의원도 뒤지질 않는다.

장성철 평론가는 "이 의원의 화법은 두 사람(윤석열·이준석)의 화법을 섞어놓은 것에 회피형까지 포함됐다"며 "논쟁에서 지기 싫어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언론 탓'을 하는 화법까지 구사하는 핑계형"이라고 혹평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에 휩싸였던 이 의원은 성정을 죽이며 침묵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선언을 계기로 또 다시 각종 설화를 낳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저학력·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

 

"오늘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의원, 이번 주 가장 많은 항의 문자 받은 의원 등(의 집계를) 해보려고 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되자 이 의원은 발언의 진의가 왜곡됐다며 이를 언론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당대표 경쟁자인 박용진, 강훈식 의원이 즉각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고, 조응천 의원은 "1일 1실언"이라고 혀를 찼다.

 

친명계 의원들조차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인데 왜 이리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반명 전선만 확고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진 원장은 "이 의원은 '사이다'로 불리는 직설 화법으로 메시지가 시원시원하고 분명하다"며 "반면 호불호가 분명히 생기면서 전선이 확실하게 형성이 되다 보니, 지지층과 부정층을 동시에 양산해 낸다는 점에서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지도자에게는 항상 '말의 절제'와 준비된 발언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장점을 극대화하고 불필요한 논란이나 국민의 불안감, 상대 진영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유진·최병호 기자 limyang83@etomato.com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

 

 

 
 
 

집값이 너무 심하게 올랐어요. 내 집 마련은 평생 불가능할 것 같네요.”

“아니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게 문재인 정권 탓이란 말이에요?

이번에 서울시장으로 오세훈 뽑겠네요.”

 

“아이고 그런 뜻이 아닌데, 쓸데없는 말을 해 죄송합니다.”

“이미 기분이 상했으니, 당장 그만두고 환불해주세요.”

 

2021년 3월 서울의 어느 네일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경향신문(2021년 4월1일)에 실린 <“한국사회, 무조건 자기편만 지지” 82%>(류인하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내가 조금 각색해 소개한 것이다.

 

어느 설문조사 내용을 보도한 이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기와 같은 편을 지지(82.5%)하며, 중도적인 의견은 무시되는 사회(71.4%),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과 편하게 정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사회(79.7%)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젠 이미 상식이 돼버린 이야기다. 그런데 언론은 진보건 보수건 그런 상식과는 거리가 먼 정치 논평을 일삼고 있다. 언론에서 유권자를 탓하는 주장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게다. 잘못된 정치의 모든 책임은 100%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게 언론의 한결같은 주장이요 신념이다. 고객들에게 지적질을 하긴 어려우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유권자가 달라지지 않고서 정치의 변화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유권자는 언론 비판의 성역인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언론은 유권자를 초등학생처럼 다룬다. 유권자의 잘못된 행태도 정치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정치인을 비판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비판에 앞장서던 언론인들이 변신해 정치판에 들어가면 기성 정치인들보다 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교수들, 법조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좀 정직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점에서 미국 언론인 에즈라 클라인의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오늘날 정치의 주요 문제로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 현상과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만은 당파적일 때 가장 치명적

미국에서 1964년에는 유권자들의 약 80%가 자신들이 공화당원이거나 민주당원이라고 말했지만, 2012년에는 그 비율이 63%로 떨어졌다.

 

이렇듯 정당은 약해졌지만, 미국인들의 당파성은 더욱 강해졌다.

이게 바로 ‘약한 정당-강한 당파성’ 현상이다.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서 기인하는 당파적 행동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클라인은 이런 ‘부정적 당파성’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50년 동안의 미국 정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투표에서 특정 정당을 더욱 일관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투표하는 정당을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편 정당을 더 싫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희망과 변화가 미약해지는 순간에도 두려움과 혐오는 계속된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희망과 변화는 사라지고 두려움과 혐오가 정치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는 게 말이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37%와 민주당원의 31%가 상대 당을 ‘국가의 안녕에 대한 위협’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6년 조사에서 이 수치는 공화당 45%, 민주당 41%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이런 ‘부정적 당파성’을 입증해 보인 대표적 인물이 텍사스주 민주당 하원의원 베토 오루크다.

그는 2016년 민주당이 아주 싫어하는 공화당 정치인 중 하나인 테드 크루즈를 상대로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승산은 희박했지만 오루크의 출마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는 상원 경선 사상 가장 많은 돈을 모금했다.

그는 3% 차이로 패했지만, 갑자기 치솟은 지지 덕분에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하게 되었다.

 

오루크는 대대적인 광고, 고액의 모금액과 함께 2020년 민주당 예비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여론조사에서 빠르게 추락했다.

이 추락에 대해 클라인은 “오루크의 상원 선거운동 촉매제는 크루즈에 대한 진보 진영의 혐오감, 그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스릴이었다”며 “오루크가 다른 민주당원과 대결했을 때, 상원 선거운동에서 보여줬던 그의 마법 같은 카리스마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 당파성’은 한국에서 대통령 윤석열의 지지율 추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누구나 다 인정하겠지만,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다수 유권자들이 갖고 있던 강한 반감의 수혜자였다.

 

게다가 그의 승리는 대선 사상 최소 표차(24만7077표, 0.73%포인트)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던가.

윤석열은 대선 승리 후, 대통령 취임 후, 그리고 지방선거 승리 후, 겸손하고 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했건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른바 ‘어퍼컷 세리머니’에 여전히 취해 있는 듯 보였다.

 

적(敵)이 분명했던 냉전시대엔 적에 대한 공포감으로 기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적이 사라진 탈냉전시대엔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1995)에서 “냉전은 신이 내린 일종의 선물이었노라고 이제 우리는 회고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렇게 말해야 한다”며 “확실히 그것은 공포에 입각한 질서로서 내적 위기를 계속 외적 원인, 즉 적들에게로 전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그런 역사적 교훈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적이 사라진 상황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문재인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사라졌다.

민주당의 막강한 의석수는 건재했을망정 이제 더 이상 여당이 아닌 야당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알박기 인사들이 도처에 버티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한줌’에 불과했다.

패배의 상처와 증오로 똘똘 뭉쳐 윤석열 정권을 향해 저주의 언어를 난사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겐 너그러움을 베풀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만 대신 겸손, 불만 대신 감사를

가장 중요한 건 윤석열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공포와 혐오를 느낄 대상이 사라졌거나 그 대상을 무시해도 좋을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권교체는 윤석열이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얻을 반사이익이 사실상 소멸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부정적 당파성’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재명이 민주당 대표가 돼 이전의 비호감 대결구도를 되살리는 ‘적대적 공생’의 가능성엔 아예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다.

대통령의 체급은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정권교체는 윤석열 스스로 지도자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이지 않으면 이전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달라질 건 전혀 없다는 듯 검찰총장 시절의 건들건들한 언어 구사법을 고수했다.

 

자신이 공격했던 문재인 정권의 나쁜 점까지 답습했다. 내로남불과 ‘전 정권 탓’을 그대로 가져다 써먹었다.

약속마저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부인 김건희의 처신에 대한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지키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이건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었다.

 

상황의 차이에 대한 무지도 심각했다.

문재인은 국정농단 사태로 만들어진 보수의 폐허 위에서 집권했다.

무슨 일을 해도 박수받게 돼 있었다.

 

물론 오히려 이런 호조건이 문재인 정권을 망친 이유가 되었지만, 윤석열 정권은 최악의 조건에서 탄생했음에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스스로 망가질 위기에 처해 있다.

 

겨우 ‘0.73%포인트 격차’로 탄생한 데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라는 장벽 앞에 선 윤석열 정권은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이변’이 내포한 경험의 부족과 편향의 한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 모든 걸 오히려 정반대로 해석했다.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여기면서 자신감을 뿜어냈고, 이는 자해의 극치라고 해도 좋을 오만으로 이어졌다.

 

“오만은 당파적일 때 가장 치명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치명의 갈림길에 선 윤석열이 살 길은 딱 하나다.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을 경우를 늘 상상하면서 사는 것이다.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눈을 돌리면서, 오만 대신 겸손, 불만 대신 감사의 자세를 갖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 방한 공식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건희 여사,

조코위 대통령, 윤 대통령, 조코위 대통령 배우자 이리아나 여사.[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에 대한 합리적 상상

 

 

 
 

이유가 있었나?

출범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은 허니문 기간임에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집권 초기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간 우호적 입장을 보였던 보수 언론들조차 윤석열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는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어 보인다.

보통 어떤 정부든 집권 초기에는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이 기간에는 국민들의 기대도 높아지는 시기다. 국민의 가려운 곳을 선제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더불어 신선한 개혁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모으려고 한다.

특히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에서는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절실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자신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독야청청 자신의 의지를 믿고 과감하게(?) 일방 독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기하는 의미에서 그런 징후들을 정리한다.

먼저 보수언론까지 지적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 인사에 대한 문제다.

 

거대 야당의 집중적인 견제도 한몫했지만, 일방적으로 인사를 강행했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능력 위주의 발탁이라고 강조했지만 일부 공직자들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몇몇 공직 후보자를 국회 인사청문 절차도 없이 국회 공전을 이유로 임명을 강행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그것을 능가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28일 오전 전북 익산시청 기자실에서 익산 퇴직 경찰관들이 경찰국 신설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다음은 검찰의 수사권 박탈에서 비롯된 경찰국 설치 강행을 꼽을 수 있다.

수사권 독립으로 막강한 힘을 갖게 된 경찰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프레임 씌우기를 통한 일방독주에 불과하다.

경찰의 집단적 반발을 두고 ‘쿠데타’라고 규정한 것은 현 정부의 경찰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나아가 경찰대 개혁을 명분으로 경찰국 신설에 반대한 경찰조직을 갈라치기를 시도한 것이라는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4년제 경찰대를 졸업해 7급 경위에 임용되는 것이 문제라면, 수십 년 이 제도를 시행해 온 것은 무엇이 되는가.

또한 이 논리대로라면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존재 이유도 다시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찰국 신설은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추진 동기나 과정이 일방적 강요와 갈라치기로 일관한 듯 보이는 것이 문제다.

절차도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법치, 법리에 맞는지도 의심받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문자에 의하면, 이준석 대표에 대해 윤 대통령 스스로 ‘내부 총질하는 대표’라고 할 정도로 대통령이 여권 내 갈등의 중심이 된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집권 초기 정부와 여당은 개혁 드라이브로 정국을 주도해야 하는 시기에 자중지란이라니. 대선과정에서부터 시작된 갈등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것이 정치력 아닌가.

의도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내심이 이번 문자 파동으로 확인되어 버렸다.

특히 내부총질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는 매우 적대적이다.

 

그래서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라는 여권의 대표가 대통령과 나눈 문자 대화치고는 참으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에 대한 이준석 대표는 겉과 속이 다른 ‘양두구육’이라며 격렬하게 반응했다.

 

친윤계의 한 사람인 도 출신 이철규 의원은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 사람들을 속여 정신을 홀리고 세상을 어지럽힘)과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웃음)라고 대응하면서 여당 갈등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그리고 점점 강경해지는 대북 관계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남한 정권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놨다.

 

김 국무위원장은 그들이 주장하는 27일 전승절(정전협정일) 연설에서 “남한 정권과 군부가 군사적으로 북한과 맞서볼 궁리를 하고 선제적으로 북한 군사력의 일부분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거고, 윤석열 정권과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나섰다. 한반도 긴장완화은 고사하고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집권 초기 유연한 대북 협상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기보다는 이전보다 강경한 대응으로 남북 모두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앞서 언급한 징후들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의 최근 행태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바로 최근 불거진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이 대통령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다.

그 중 내부총질보다 ‘강기훈 함께 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생인 강기훈 씨는 자유의새벽당 공동대표를 지냈던 사람이다.

 

그가 창당한 자유의새벽당은 극우적 주장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지난 2020년 4·15 국회의원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 중국공산당이 개입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강 씨는 현재 정식 발령은 나지 않았지만, 청와대 기획비서관 행정관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야당은 강 씨의 과거 행적을 두고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극우 유튜버의 일자리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행정관 한 사람이 대통령실을 좌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방어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입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단서를 찾았으면, 상상의 범주지만 ‘합리적 상상’을 해보는 것이 순서다.

바로 현재 대통령실 관계자의 면면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고백하건대, 대통령실 핵심에서 일하는 사람의 성향을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라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생산되는 최근의 정책 기조를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만약 극우 성향의 인물들이 대통령실 행정관 등 낮은 직급이지만 실무자로 포진해 있다면, 수석이나 비서관 등은 제한된 정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상상이다.

상식적으로 집권 초기 정책운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에 기인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 추정이다.

그러므로 집권 초기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행보와 함께 민생중심의 개혁기조를 보임으로써 폭넓은 국민적 지지을 확보하는 전략을 접어둔 채, 일단 전 정부에 대한 대립각을 강화하는 것 역시 윤석열 대통령실의 구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문자에 나타난 ‘강기훈’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실 구성원의 성향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혹시 구성원의 성향에 의해 정국 혼란을 부추기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상상의 범주이지만, 오죽했으면 ‘합리적 상상’이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됐을까.

 

 

 



강원사회연구소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가 지난 1월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선 '원팀'을 다짐하며 포옹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