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과 시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96세로 서거..차기 국왕 찰스 즉위


 

 

 

 라효진 기자

 

 

 

 

 

 

라효진 기자

 
 
 
 
 
 
 
 
 
[런던=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6월 5일(현지시간) 런던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플래티넘 주빌리 카니발에 모인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여왕은 성명을 통해 “모든 행사에
다 참석하진 못했지만,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 있었다”라며 “가족의 도움으로 여러분을 계속
섬기겠다”라고 말했다. 2022.06.06.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향년 96세·재위 70년

 

 

 

왕실 여름 휴가지 발모랄성서 서거

에드워드 8세 '왕위 포기 사태'로

조지 6세 즉위해 왕위계승 1순위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했다.

향년 96세이자 재위 70년만이다.

9일(한국시각) 영국 BBC 등 복수 외신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이날 영국 왕실의 여름 휴가지인 스코틀랜드 발모랄 성에서 서거했다. 서거한 시각은 영국 시각으로 8일 오후 6시 30분으로 전해졌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 4월 21일 요크 공작 조지의 장녀로 태어났다.

요크 공작 조지는 당대 영국 국왕 조지 5세의 차남이었으며, 위로 형인 에드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당시에는 왕위계승과는 무관한 처지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10세이던 1936년, 왕위에 올랐던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의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혼인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동생인 요크 공작 조지가 조지 6세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도 자동적으로 왕위계승 1순위가 됐다.

 

 

 

2차대전 종군…1952년 왕위계승
재위 70년간 15명의 총리 거쳐가
처칠 등 '여왕 폐하의 내각' 이끌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4월, 당시 16세의 공주 엘리자베스 2세의 모습.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은 2차대전 중에 영국군 여군 부대에서 운전장교로

복무했다. ⓒAP·뉴시스

 

 

 

 
 
 

공주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군 여군 부대에 운전장교로 입대해 대위로 예편했다. 이후 전쟁이 끝난 뒤인 1951년 11월, 부왕 조지 6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엘리자베스 2세는 섭정으로 임명됐다.

섭정으로서 영연방 국가를 순방하던 엘리자베스 2세는 케냐 방문 중이던 1952년 2월 부왕 조지 6세의 부음을 접했다. 부왕이 서거하면서 여왕은 케냐에서 자동적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정식 대관식은 이듬해 6월에 치러졌다.

 

이후 7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여왕은 △제2차 중동전쟁에서의 굴욕 △식민지의 잇따른 독립에 따른 대영제국의 해체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CC) 가맹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승전 △파운드화 위기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부결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영국의 EU 탈퇴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지켜봤다.

 

70년 재위 기간 동안 영국 총리만 15명이 여왕의 곁을 거쳐갔다.

여왕이 가장 처음 맞닥뜨린 총리는 윈스턴 처칠 경이었으며, 열다섯 번째 총리는 가장 최근에 임명된 리즈 트러스다. 그외에도 앤서니 이든·해럴드 윌슨·마거릿 대처·토니 블레어 등 영국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대정치가들이 '여왕 폐하의 내각'을 이끌었다.

 

70년의 재위 기간은 영국 국왕으로서는 역대 최장의 재위 기간이며, 중세 이후의 세계 군주로서도 프랑스의 루이 14세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한다.

 

 

 

부군 필립 대공과의 사이에서 3남 1녀
장남 찰스 왕세자, 자동으로 왕위계승
정식 대관식까지는 수 개월 소요될 듯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64년 11월 새로 총리로 임명된 노동당 소속 해럴드 윌슨

영국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여왕은 70년의 재위 기간 중 윈스턴 처칠·앤서니 이든·

마거릿 대처·토니 블레어·보리스 존슨 등 15명의 총리를 거쳤으며, 윌슨 총리는

그 중 5번째 총리에 해당한다. ⓒAP·뉴시스

 

 

 
 
 
 
 

가족 관계로는 부군 필립 대공과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낳았다.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족인 필립 대공과는 1947년 11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혼인식을 가졌으며, 이에 따라 영국의 에딘버러 공작이 된 필립 대공은 지난해 99세를 일기로 먼저 타계한 바 있다.

 

1948년 11월에 태어난 장남 왕세자 찰스는 이날 여왕의 서거로 73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여왕은 영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14개 '영연방 왕국'의 국왕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 지위도 이날로 찰스 왕세자에게 계승됐다.

 

왕위는 자동적으로 계승됐지만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르기까지는 수 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여왕도 1952년 2월 6일에 부왕 조지 6세가 서거했지만, 대관식은 이듬해 6월 2일에야 치렀다. 찰스 왕세자는 찰스 3세로 즉위할 수도 있지만, 다른 왕명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외에 여왕과 필립 대공 사이에는 1950년 8월생인 앤 공주, 1960년 2월생인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1964년 3월생인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가 있다.

 

 
 
 

 

 
 

©(주)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런던 뉴시스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96세로 서거..차기 국왕 찰스 즉위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여왕은 25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영국의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다.

 

 

 

 

 

 

 

 


영국 최장수 군주이면서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재위하며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여왕은 즉위 70년 만에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

건강 문제에도 지난 6일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등 마지막까지 역할을 충실히 다했다.

이날 왕실이 여왕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공개한 뒤 왕실 직계 가족들은 속속 밸모럴성에 모여들었고 BBC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하는 등 전국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학휘 기자hwi@sbs.co.kr

저작권자 SBS & SBS Digital News Lab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AFP연합뉴스

 

 

 
 
 

이 떠났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96·본명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이 8일 오후(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스코틀랜드에 있는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망 당시 여왕의 곁에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와 부인 커밀라,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 등이 곁에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 버킹엄 궁전은 조기를 게양해 여왕의 서거를 알렸다.

찰스 왕세자는 즉시 왕위를 물려받아 ‘찰스 3세’로 즉위했다.

여왕은 지난 6일 차기 총리 내정자인 트러스 총리를 자신이 머물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으로 불러들여 만났다. 런던의 정궁(正宮) 버킹엄에서 차기 총리를 임명해온 관례를 처음으로 깬 것이다.

 

당시 왕실은 “여왕이 일시적 이동 문제가 있어 런던으로 가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다음 날 7일의 추밀원(樞密院·국왕 자문기관) 온라인 회의까지 연기되면서 여왕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8일 오후 버킹엄궁이 “주치의들의 진찰 결과 여왕의 건강 상태가 우려되는 상태”라고 발표하면서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왕실 직계 가족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여왕이 위독한 상황에 빠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날까지 만 70년 127일을 재위해 영국 군주 중에서는 최장, 세계 역사에서는 둘째로 오래 통치한 군주로 남았다.

 

역사상 최장 재위 군주는 4세에 등극해 72년간 통치한 프랑스 루이 14세다. 지난 2012년 6월 엘리자베스 2세는 64년간 영국을 통치했던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재위 60주년)를 맞았고, 올해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를 치렀다.

 

그는 2012년 즉위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국왕’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왕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의 사망 이후 급격히 쇠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병원에 하루 입원했고,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올해 2월에는 찰스 왕세자를 만난 뒤 신종 코로나에 확진돼 한동안 외출을 못 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들은 “여왕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으로 암 발병 가능성과 함께 신종 코로나 후유증 등이 언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서거로 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파키스탄 등 현재 56국이 가입한 영연방의 군주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그의 통치 영역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는 사망 때까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등 15국(총인구 1억2900만명)의 국가 원수였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2국 이상의 독립국을 다스렸던 유일한 군주였다.

여왕은 언제나 대중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찰스 왕세자 등 세 자녀의 이혼,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사망 등 갖가지 왕실 스캔들과 불운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에 밴 겸손함과 온화한 미소, 돋보이는 유머 감각, 철저한 자기 관리로 70여 년간 영국과 영연방 국민의 한결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여왕은 찰스 3세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낳았고, 이들로부터 8명의 손자와 12명의 증손자를 얻었다.

 

 

 

 

 파리 정철환  특파원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카밀라 파커 볼스 콘월 공작부인AP연합뉴스

 
 
 
 
 
 
 
 
 
 

캐나다를 방문한 찰스 당시 영국 왕세자와 부인 카밀라 부부가 20일(현지시간) 캐나다

방문을 위해 뉴브런스윅주 프레드릭턴 공항에 도착, 전용기 트랩을 내려서며 키드

애쉬필드 연방 수산부 장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AP연합뉴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왼쪽)과 카밀라 파커볼스(오른쪽)가 2013년 6월 18일(현지시간)

런던 애스콧에서 열린 경마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AP뉴시스

 

 

 

 

 

英 '국민 불륜녀'로 미움받아온 찰스 3세 아내 카밀라, 결국 '왕비 칭호' 받나

 

 

 

 

30년간 걸친 불륜으로 ‘비호감 밉상녀’로 찍혀

다이애나 "이 결혼에는 세 사람이 있다"저격도

2005년 찰스와 재혼하며 ‘국왕 배우자’ 등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카밀라 파커볼스가 ‘왕비 칭호’를 받게될지에 대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통상 영국 국왕의 아내는 남편의 즉위와 함께 ‘왕비 (Queen Consort)’란 칭호를 받지만, 찰스 3세와와 수십 년간 불륜을 저지른 카밀라가 왕비 자리에 오르는 것에 대한 영국 국민 여론이 매우 안 좋기 때문이다.

 

찰스 3세와 카밀라는 30여 년간 걸친 불륜관계를 유지했다.

찰스 3세가 지난 1981년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결혼한 뒤에도 두 사람의 밀월 관계는 이어졌다.

카밀라와 찰스 3세의 관계에 화가 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은 1995년 공영방송 BBC 인터뷰를 통해 "이 결혼에는 세 사람이 있다"며 남편이 카밀라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과 관계가 틀어지며 1996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했고,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이 때 이후로 찰스 3세에 대한 영국 국민의 비호감도는 상당히 높은 상태이다.

카밀라 역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 사망 뒤 사람들의 비난에 거리를 나서지 못할 정도로 위협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찰스 3세와 카밀라는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 사망 뒤에도 연인 관계를 이어나갔고, 결국 지난 2005년 윈저 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영국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사망한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불행의 씨앗이었던 카밀라가 왕세자비 호칭을 얻는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컸다.

 

이를 의식한 카밀라는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사용했던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Princess of Wales)’ 대신 ‘콘월 공작부인(Duchess of Cornwall)’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왔다.

왕실에 입성한 카밀라는 수십 개의 자선 단체의 후원자가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정 폭력에 반대하는 등 본인의 비호감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카밀라의 호칭 논란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여왕이 카밀라를 지지한 바 있어, 그가 ‘왕비’ 칭호를 받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2월 즉위 70주년(플래티넘 주빌리)을 맞은 여왕은 찰스 당시 왕세자가 왕이 되면 그의 아내인 카밀라가 ‘왕비’(Queen Consort) 칭호를 받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왕은 "아들 찰스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대중들이) 나에게 보내준 것과 같은 지지를 카밀라에게도 줄 것으로 안다"며 "그때가 되면 카밀라가 왕비로서 충성을 다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동안 카밀라에 대해 ‘왕세자의 배우자’란 칭호도 인색했던 것에 여론에 비춰 파격적인 격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찰스 3세 또한 아내 카밀라에게 ‘왕비’ 칭호를 주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온 만큼 ‘비호감 국왕 부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선영 기자

Copyrightⓒmunhwa.com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53년 6월 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

을 갖고 있다. ⓒ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