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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퀸' 그녀가 바로 역사였다…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애플이 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소식을 접한 후 마련한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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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제공

 

 

 

 

 

 

 

 

 

버킹엄궁에 도착한 찰스 3세

(AFP=연합뉴스)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

(현지시간) 첫 대국민 연설을 위해 버킹엄궁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

2022.9.9 

 

 

 

 

 

'퀸' 그녀가 바로 역사였다…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살아있는 현대사’ ‘영국 연방 최장기 재임 군주’.

 

70년 재위 내내 영국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6세. 영국 왕실은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고령인 여왕은 지난 6일 밸모럴성에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사임을 보고받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행사를 치렀다.

지팡이를 짚은 채 활짝 웃는 얼굴이 대중에게 보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스코틀랜드 동북부 애버딘셔 지역에 위치한 밸모럴성은 통상 여왕이 긴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다.

 

임명 행사 다음날 주치의들 권고를 듣고 여왕이 일정을 취소했다는 소식에 이어 8일 아침 검진에서 "건강이 우려스럽다"는 판단이 흘러나왔다.

이상 징후를 느낀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등 왕실 가족들은 밸모럴성으로 달려갔다.

 

영국 국민들은 앞서 지난 2월 코로나19 감염도 이겨냈던 여왕의 쾌유를 빌었지만 이날을 넘기지 못한 채 서거 소식을 맞닥뜨렸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6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만나기 위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밝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1926년 출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

 

 

드라 메리. 1952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인 영연방의 여왕에 즉위했다.

이후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한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영연방의 군주로 기록됐다. 기존 최장 기록인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63년 7개월였다

. 지금 영연방에 포함된 국가는 영국·호주 등을 포함해 54개국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은 현대사 자체다.

공주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육군으로 참전했으며, 즉위 후에는 영국 식민지의 독립을 지켜봤다.

그의 재임 기간 미·소 냉전 대립, 공산권 붕괴와 독일 통일,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여왕이 만난 미국 대통령만 14명이고, 지난 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가 그의 즉위 이후 15번째 영국 총리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애초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선대 왕의 둘째 아들이었다.

후계 서열 1위인 형이 에드워드 8세로 즉위했지만 미국의 평민 출신 이혼녀 월러스 심프슨 부인과 사랑에 빠져 왕위를 버리면서 1936년 조지 6세로 즉위했다.

 

후계 1순위가 된 맏딸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2차대전 후 병환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여왕에 즉위했다.

즉위 이듬해인 195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여왕의 대관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으며, 2500만명이 지켜봤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6월 2일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보기 위해 왕실 가족들과 발코니에 나와 있다. 왼쪽으로 아들 찰스 왕세자,

오른쪽에 손자 며느리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와 증손자 루이 왕자, 증손녀 샬럿 공주 등

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실의 전통을 고수했다.

총리 임명권자이지만 의회의 결정을 존중했으며, 의회 시정 연설에서도 총리실에서 작성한 원고를 받아들였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총리와의 면담 때도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올해 6월 성대하게 치러진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에는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축하를 보냈다.

 

재임 기간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회하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다.

여왕의 방문이 역사가 된 순간도 있었다.

1965년, 당시 서독 방문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외교 행사가 됐다.

 

또 2011년, 옛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공화국을 방문해 해묵은 갈등 봉합에 힘썼다.

당시 여왕은 “우리가 모두 지난 역사 속에서 과도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슬프고 유감스럽다” 말했다.

 

여왕은 영연방에서 두루 사랑을 받았지만, 가족과 관련해선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장남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비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지지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다이애나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불운의 사고로 사망한 뒤엔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 왕실이 대중의 비난까지 받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왼쪽)과 부군인 필립공. 중앙포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부군인 필립 공(에든버러 공작)과 194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2021년 필립 공이 99세를 일기로 별세하기까지 평생을 해로했다.

 

전기 작가에 따르면 13세의 릴리벳 공주는 18세의 필립을 만난 이후 다른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2차 대전 중에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쌓은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난 뒤 1947년 결혼에 골인했다. 슬하에 세 왕자(찰스·앤드류·에드워드)과 앤 공주를 뒀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여왕이 만난 한국 대통령만 6명(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국빈으로 영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1999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필립공과 함께 3박 4일 국빈 방문했다.

이때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해 이곳에서 73세 생일상을 받았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나중에 90세가 된 2016년 주영한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때를 떠올리며 “하회마을에서 한식으로 마련해준 생일상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지난 6일 트러스 신임 영국총리를 접견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마지막 1주

일도 임무 다하고 앓을 새도 없이 떠났다

 

서거 이틀전 트러스 신임 총리 임명…

주말엔 가족·성직자와 재밌게 대화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 전 마지막 1주일간도 임무를 다하고 주말에는 성직자, 가족과 즐겁게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여왕이 최후로 수행한 중요 임무는 별세를 불과 이틀 앞두고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사임을 정식으로 수락하고, 리즈 트러스 새 총리를 자신의 15번째 총리로 임명한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8일(현지시간) "여왕은 75년 전 21세 생일을 맞아 자신의 전 생애를 국가에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극기심을 갖고 공적 의무를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조용한 여름휴가를 보낸 후 생애 최후의 며칠 동안 활기차게 왕실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존슨 전 총리와 트러스 총리가 스코틀랜드로 가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1천 마일(1천609㎞)에 달하는 왕복 여행을 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왕의 건강이 최상이 아니라는 우려가 대두됐다.

당초 여왕은 자신이 직접 런던으로 가겠다고 했으나, 여왕의 편의를 위해 이같이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밸모럴성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96세인 여왕은 지난 2일 자신의 70년 재위 기간 몇 차례만 제외하고 즐겨 참가하던 스코틀랜드 전통의 브래머 개더링 축제에 불참할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날 찰스 왕세자 등이 축제에 참석하는 대신 여왕은 밸모럴성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후 지난 6일 여왕은 존슨 전 총리에게서 먼저 사직서를 제출받고 나중에 트러스 신임 총리와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여왕이 지팡이를 짚기는 했어도 이때까지 현장에 있던 누구도 그의 마지막 임무 순간이 되리라고 예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여왕은 당시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일국의 군주이면서도 할머니 같은 편안함을 국민에게 안겨 줬다.

그는 트러스 신임 총리와 내각 구성에 관한 공식 회동 후 사적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7일 오후 6시 직전 여왕의 몸이 안 좋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가 왔다.

이날 저녁에 열릴 예정이던 추밀원(국왕을 위한 정치문제 자문단) 회의가 연기된 것이다.

 

버킹엄궁 대변인은 "어제 하루 일정을 온전히 소화한 후 여왕 폐하는 오늘 오후 의사들의 휴식 권고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급기야 8일 오후 12시 30분께 여왕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뉴스가 타전됐고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직계가족들이 속속 병상으로 모여든 가운데 여왕은 서거했다.

 

9일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여왕은 서거 전 주말인 지난 3일과 4일 왕실교회에서 설교하러 온 스코틀랜드 성직자와 각각 만찬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재미있게 보냈다.

이언 그린쉴즈 은퇴목사는 여왕이 심각히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놀랍게도 정정했다면서 "생기와 총기가 가득했다"고 당시 모습을 전했다.

 

그러면서 여왕이 유년 시절 얘기와 40년 전에 탔던 말들과 사람 이름, 장소들을 언급했다면서 "그 춘추에 기억력이 놀라웠고 진짜로 웃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왕이 가족들에 둘러싸여 즐거워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는 등 폭넓은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불과 며칠 전 발생한 일까지도 기억하고 있어 믿을 수 없었다고 그린쉴즈 목사는 말했다.

 

 

 

 

 

 

 

서거 이틀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틀 전인 지난 6일(현지시간) 밸모럴성에서 신임 리즈 트러스 총리 접견을 위해

대기 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AFP 연합뉴스 

 

 

 

 

여왕은 그 전주 주말도 다른 성직자와 있으면서 밝고 기분 좋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 여왕과 함께했던 마틴 페어 목사는 "폐하는 시사와 역사 등 모든 것에 대해 최신 흐름을 꿰고 있었다"면서 "폐하는 분명히 강한 신앙의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왕실은 지난 6월 여왕의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 이후 여왕의 일정을 줄여왔다. 그러나 여왕은 주례 총리 회동과 추밀원 회의는 꼭 참석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왔다.

 

 

 

 

sungji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

(런던 AFP= 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선왕 엘리자베스 2세 서거 다음날인 9일

(현지시간) 런던 버킹엄궁에 들어서고 있다. 2022. 9. 9 photo@yna.co.kr

 

 

 

 

 

 

 

지난 2005년 결혼식 때의 찰스 3세(당시 왕세자)와 커밀라 파커 볼스 왕비.

AP=연합뉴스

 

 

 

 

 

 

 

 

 

커밀라 파커 볼스 영국 왕비. AP=연합뉴스

 

 

 

 

 

 

 

찰스3세, 정치적 견해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 될 듯

 

 

왕세자 시절 각료·의원들에 보낸 '검은거미 메모' 논란도

선왕 수년 중단했던 해외순방 재개 전망…종교에는 열린 자세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69년 이상 왕세자로 있다 마침내 왕위에 오른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선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는 달리 때로는 정치적 의견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가 될 것이라고 영국 언론매체들이 전망했다.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이후 더타임스, 텔레그래프, 스카이뉴스 등 영국 매체들은 새 국왕 찰스 3세가 어떤 국왕이 될 것인지에 관한 보도를 쏟아냈다.

평소 자신의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선왕과는 달리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기후변화 대응, 환경 오염 대처 등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자선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지난 2004~2005년 농업, 유전자 변형, 지구온난화, 사회적 소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편지와 메모를 정부 각료와 의원들에게 보낸 사실이 몇 년 뒤 언론 보도로 밝혀져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의 글씨 모양을 빗대어 '검은 거미 메모' 사건으로 언론이 이름 붙인 이 일로 인해 그는 '간섭하는 왕자'(meddling prince)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53년 전 찰스 왕세자

1969년 찰스 영국 왕세자(당시)가 대령 군복을 입고 경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당연히 국왕의 지위가 주는 무게감은 왕세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처신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찰스 3세는 지난 수십년 동안 자신이 옹호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싸움도 마다치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수십년간 그를 지켜보고 기록해온 전기작가 페니 주너는 이 신문에 "내 짐작으로는 찰스 3세가 명백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간섭하지는 않겠지만 정당하게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서 선왕보다는 훨씬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총리는 정기적으로 국왕을 만나 국정 현안에 관해 보고한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또 다른 전기 작가인 조너선 덤블비도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총리와 만나는 자리에서 국정 현안에 관한 자기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전하면서 "이 같은 방식은 헌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잠재적 폭발성을 지닌다"고 밝혔다.

 

그는 왕궁 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필요하면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허락해 왕실 재정 수지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궁정 관리들에게 표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텔레그래프는 찰스 3세가 국가 또는 왕실 소유의 수많은 궁전과 거주시설을 모두 왕실이 차지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으며 선왕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을 국가에 돌려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찰스 3세는 특권을 누리는 왕실 구성원의 범위도 대폭 축소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쳐 왔다.

지난 2012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 때 왕궁 발코니에서 인사하는 왕족을 자신의 직계로 제한한 것이나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의 왕족 특권을 박탈한 데에는 찰스 3세의 강력한 의도가 작용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방문한 찰스 왕세자

1970년 미국을 방문한 찰스 왕세자(당시)가 워싱턴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대외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2015년 이후 중단한 해외순방, 특히 영연방 국가들에 대한 국빈방문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일부 영연방 국가들은 공화국으로 전환하자는 내부 논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찰스 3세의 즉위 이후 이런 움직임이 가속할 수도 있다.

 

찰스 3세의 한 친구는 "찰스 3세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국가원수로 모신다는 것이 조금은 우스꽝스럽다는 견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 영연방국가의 공화국화 움직임이 가시화하더라도 그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논란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국왕은 국교회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찰스 3세는 모든 신앙을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 선왕은 즉위 이후 한번도 하지 않았던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더 타임스는 심지어 찰스 3세가 과거 자신의 즉위식을 다종교 의식으로 치르기를 원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전통에서 완만하게 변화하는 것이 될지, 혹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 양상을 띠게 될지가 그의 재임 기간이 어떤 모습일지 추측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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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결혼 당시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오른쪽)과 남편 필립공. [사진 출처 = 연합 뉴스]

 

 

 
 

13세 공주였던 英여왕이 첫 눈에 반했던 이 남자…누구길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이하 현지시간) 서거한 가운데 70년 넘게 부부의 연을 이어간 남편 필립공과의 일화도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9일 가디언 등은 1947년 부부가 돼 2021년 필립공이 사망하기까지 74년 해로했던 두 사람의 일화를 재조명했다.

여왕은 1939년 7월 당시 13세의 공주였던 시절 다트머스 왕립해군 학교에 방문했을 때 18세의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했다.

이후 8년 만인 1947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긴 세월을 함께 하면서 크게 부딪힌 적도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왕은 매사에 신중하고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반면 필립공은 무뚝뚝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또 필립공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대중 앞에선 겸손하지만 왕궁 내에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여왕은 가족 문제에 있어선 대체로 필립공의 의견을 따랐다.

 

일례로 결혼 초기 필립공이 여왕과 삼촌인 마운트배튼경을 차에 태우고 폴로 클럽에 가던 도중 속도가 빨라지자 긴장한 여왕이 들릴 정도로 소리를 내며 숨을 골랐다.
이를 참지 못한 필립공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마운트배튼경이 여왕에게 "왜 항의하지 않았나.

여왕의 말대로 차가 너무 빨리 달렸다"고 하자 여왕은 "그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셨나"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여왕이 순종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전기작가 새라 브래드퍼드에 의하면 여왕은 "필립, 입 다물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와 같은 말도 서슴없이 했다고 한다.
1954년 여왕 부부가 호주를 방문했을 당시 일화도 전해졌다.

당시 촬영기사는 여왕 부부의 코알라·캥거루 관람을 촬영하기 위해 숙소인 오두막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필립공이 날듯이 집 밖으로 나왔고, 여왕은 따라 나와 돌아오라 소리쳤다. 결국 여왕은 필립공을 끌고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왕은 사진기사에 "모든 결혼생활에 이런 일은 있다"며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사진기사는 당시 장면이 찍힌 필름을 햇빛에 노출해 못쓰게 한 뒤 비서에 제출했다.

사진 기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노인이 된 뒤에도 필립공을 보는 여왕의 눈은 소녀처럼 반짝거렸으며, 필립공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걸 보면 얼굴이 밝아지곤 했다.


여왕의 비서였던 차터리스경은 가디언에 "필립공은 여왕을 그저 한 인간으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며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런 행동을 가치 있게 인정한다고 나는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영국 버킹엄궁 앞 여왕 추모 인파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는 추모인파가 크게 늘었다.

2022.9.9 photo@yna.co.kr

 

 

 

 

 
 
 
 

 

여왕 말만 꺼내도 눈물..찰스 3세 버킹엄궁 첫 등장에 환호

 

 

 

추모객 크게 늘어 헤치고 지나가야..지방에서도 꽃 들고 찾아와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로 구호 변화.."슬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날"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여왕 얘기하려고 하면 이렇게 바로 눈물이 나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 꽃다발과 편지를 들고 친구와 온 마거릿(67)씨는 여왕에 관해 말을 꺼내자마자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났다.

 

그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고, 버킹엄궁 발코니에 선 여왕을 더 못 본다고 생각하니 믿을 수가 없다"며 "손자·손녀들과 같이 편지를 써왔다"고 말했다.

함께 온 말린(68)씨의 편지엔 본인 어머니 얘기가 담겼다.

 

그는 "어머니가 여왕보다 한 살 더 많았고 젊었을 때 곁에서 일했다"며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해서 어제 온종일 울었다"고 말했다.

 

 

 

 

꽃을 들고 온 친구 말린씨(왼쪽)와 마거릿씨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는 추모

인파가 크게 늘었다. 2022.9.9 photo@yna.co.kr

 

 

 

 

 

버킹엄궁 앞에는 여왕 서거가 발표된 직후인 전날 밤보다 추모 인파가 훨씬 더 늘어나서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야 했다. 오전에는 한참 먼 곳까지 길게 줄이 늘어섰다.

부모들은 어린아이들 손을 잡거나 목말을 태워 오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들렀다.

런던 밖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이들도 있었다.

 

 

 

 

 

엄마와 함께 온 4살 애그니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는 추모인파가 크게 늘었다.

2022.9.9 photo@yna.co.kr

 

 

 

옥스퍼드에서 기차로 20세 아들과 함께 온 로버트(60)씨는 "평생 봐 온 나의 여왕이기 때문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픈 유니버시티(방통대) 음악 강사인 그는 "민주주의와 결합한 영국 군주제는 좋은 정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손에 꽃을 든 레티씨는 여왕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동생과 함께 인사를 하려고 왔다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옥스퍼드에서 온 로버트씨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는 추모인파가 크게 늘었다.

2022.9.9 photo@yna.co.kr

 

 

 

오후 1시가 되자 주변 하이드파크 등에서 쏘는 예포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예포는 여왕 나이만큼 96발이었다.

이어 경찰이 접근을 통제하고 버킹엄궁 정문을 열자 애도는 설렘으로 변했다.

 

버킹엄궁의 새 주인인 국왕 찰스 3세의 등장을 짐작한 사람들은 스타를 기다리듯 일제히 스마트폰을 치켜들었다.

하늘에 헬기들이 타타타 소리를 내고 맴돌자 분위기가 고조됐고 드디어 밸모럴 성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임종을 지켰던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검은 상복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런던 버킹엄궁 앞 찰스 3세 국왕을 기다리는 사람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버킹엄궁 앞에 모인 영국인들은 새로운 국왕 찰스 3세 등장에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환호를 보냈다. 2022.9.9photo@yna.co.kr

 

 

 

환호와 박수가 우렁차게 터졌고 영국 국가인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를 부르거나 구호처럼 힘차게 외쳤다. 국가 제목은 전날 낮까지만 해도 '여왕'이었는데 이제는 '왕'이 됐다.

찰스 3세 부부 입장 전에도 근위병이 '여왕의 경비대'(Queen's Guard)가 아닌 '왕의 경비대'(King's Guard)라고 구령을 붙였다.

 

누군가 '오, 킹(King)!'이라고 하자 주변에서도 변화를 실감하는 듯 되풀이했다.

국왕 부부는 담장을 따라 걸으며 추모객들과 10분간 악수하고 얘기를 나누고선 궁 안으로 첫발을 디뎠다.

 

 

 

 

 

버킹엄궁 앞 지지자 만나는 영국 찰스 3세 국왕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 앞에서 한 여성이 찰스 3세 국왕의 손에 키스하고 있다.

2022.9.9 photo@yna.co.kr

 

 

 

 

당초엔 추모객들이 담 밑에 놓은 꽃만 들여다보고 갈 예정이었지만 국왕 부부가 즉흥적으로 경비 라인 밖에 선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국왕의 뺨이나 손에 키스를 하기도 했다.

 

예상 못 한 접촉에 놀랍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찰스가 왔다"라거나 "커밀라도 있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입에 익지 않은 탓에 국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전처럼 찰스, 혹은 찰스 왕세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찰스 3세 국왕과 악수한 마크씨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는 추모인파가 크게 늘었다.

2022.9.9 photo@yna.co.kr

 

 

 

어린 딸을 어깨에 태운 마크씨는 찰스 3세와 악수를 했다면서 "찰스를 좋아하고 새로운 자리에서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남부 항구도시 포트머스에서 가족이 함께 왔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밸모럴성에서 하루를 보낸 뒤 이날 런던으로 돌아와 버킹엄궁에서 리즈 트러스 총리와 첫 면담을 하고 저녁엔 첫 TV 녹화연설을 내보냈다.

 

 

 

 

 

공무원 댄씨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는 추모인파가 크게 늘었다.

2022.9.9 photo@yna.co.kr

 

 

 

정부 소송 변호 관련 일을 하는 공무원인 댄씨는 "동료와 함께 현장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왔다"며 "찰스 3세가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할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슬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기"라며 "군주제는 국가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등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왕이 영국뿐 아니라 세계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만큼 버킹엄궁 앞에는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취재 중이었다. 워낙 많다 보니 붙잡고 보면 기자인 경우도 있다.

영국은 말 그대로 국상 중이다. BBC 라디오에는 대부분 느린 음악이 나오고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뿐 아니라 상점 유리창 등에도 여왕의 사진과 추모 메시지가 걸려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가기도 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여왕 서거 후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런던 버스정류장 여왕 추모 사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9일(현지시간) 런던 등 영국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상점

등에는 여왕 추모 사진과 메시지가 게시됐다. 2022.9.9 photo@yna.co.kr

 

 

 

 

군주제에 모두가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더욱 그렇다.

특히 찰스 3세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 10대 남학생은 "메신저에서 얘기가 나왔는데 대체로 여왕은 좋지만 다른 왕실 인사들은 맘에 안 든다고들 했다"며 "그러다가 아일랜드계 친구가 여왕은 마녀라고 했다가 분위기가 잠시 싸늘해졌다"고 말했다.

 

SNS에선 왕관에 X자 표시를 한 그림을 프로필에 올리는 이들도 있고 주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 취소에 항의하는 움직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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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B하나은행 관계자가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초상이 도안으로 쓰인 50파운드

지폐를 펼쳐보이고 있다. 곁의 10파운드·20파운드 지폐 도안에도 여왕의 초상이 보인다.

9일(한국시각)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로 지폐 도안은 새 국왕 찰스 3세의 초상

으로 변경될 전망이다. ⓒ뉴시스

 
 
 
 

 

 

국가부터 지폐까지…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로 '다 바뀐다'

 

 

 

찰스 3세, 70년만에 '남성 국왕' 즉위

'신은 여왕을 지키소서' 가사 변경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지폐·동전 '여왕 초상' 도안 바꿔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새 국왕으로 즉위함에 따라, 영국의 국가(國歌) 가사부터 지폐 도안까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영국의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는 제목이 바뀐다.

새 국왕 찰스 3세는 남성이기 때문에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로 바뀔 전망이다. 1952년 조지 6세 서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실제로 조지 6세 시절에는 국가가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로 불렸었고, BBC에서도 방송 종료시에 그러한 제목과 가사의 국가를 틀었었다.

 

단순히 '여왕(Queen)'만 '국왕(King)'으로 바꾸면 끝나는 상황도 아니다.
여성형 소유격 'her'을 남성형 'his'로 바꾸는 등의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영국 국가 1절 중의 '그녀에게 승리를 가져다달라(Send her victorious)'는 구절이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달라(Send him victorious)'로 바뀌는 식이다.

제창할 때는 알아서 새 가사로 부르면 되지만, 녹음된 것을 트는 경우에는 새 녹음 수요가 상당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는 영국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는 '영연방 왕국'들의 왕실송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국가도 제목과 가사를 바꾼다.

캐나다는 독자적인 가사로 이뤄진 3절을 가지고 있는데 'True to herself and Thee(그녀와 신께 진실되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True to himself and Thee(그와 신께 진실되게 하소서)'로 바뀔 전망이다.

 

국가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 실생활에서 가장 와닿는 변화는 지폐 도안의 변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영국 파운드화의 5·10·20·50파운드 등 모든 지폐 앞면에는 공통적으로 여왕의 초상이 담겨 있다.

1·2·5·10·20·50펜스와 1·2파운드 동전 앞면에서 모두 여왕의 초상이 들어간다. 이러한 지폐와 동전의 도안은 새 국왕 찰스 3세의 즉위에 따라 모두 변경될 전망이다.

화폐 도안 변경도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캐나다 20달러 지폐와 모든 동전 앞면, 호주 5달러 지폐와 모든 동전 앞면, 뉴질랜드 20달러 지폐와 모든 동전 앞면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

 

카리브해의 옛 영국령 도서국가 6개국과 영국령 도서 2개 지역이 함께 사용하는 동카리브 달러의 모든 지폐에도 여왕의 초상이 도안이다.

 

이렇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도안으로 들어간 화폐의 유통 규모는 800억 파운드(약 127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모든 화폐가 새 국왕 찰스 3세의 초상 도안으로 교체되는데에는 수 년이 걸릴 전망이다.

 

영국은 군주제 국가인 만큼 공공관서부터 로열 메일(Royal Mail·왕립 우편)의 우체통까지 곳곳에 군주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EIIR(Elizabeth II Regina)'이 쓰인다.

이 중 깃발과 같이 간단히 교체할 수 있는 문양은 빠르게 교체를 하되, 철제 우체통에 음각한 것처럼 교체가 쉽지 않은 부분은 그냥 계속해서 쓰일 것으로 보인다.

 

우체통의 경우, 영국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조지 6세(재위 1936~1652)의 문양 'GVIR'이 새겨진 것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있다.

심지어는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의 문양 'VR'이 새겨진 우체통도 여전히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엘리자베스 2세(오른쪽) 영국 여왕이 작년 6월 13일 런던 서부 윈저궁을 예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를 환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英 여왕 장례식 갈 것… 찰스 3세와도 잘 알아

 

 

 

외국 국장 참석, 美 대통령으로선 이례적
존슨은 1965년 처칠 국장에 안 가 '구설'
美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여왕 안 만나
닉슨의 경우 1970년 佛 드골 국장에 참석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國葬)이 오는 19일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될 예정인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영국에 가 조문할 뜻을 밝혀 눈길을 끈다. 미국과 영국이 ‘특수관계’라고는 하나 20세기 이후 영국에서 열린 주요 국장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어서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찰스 3세 새 국왕, 그리고 리즈 트러스 새 총리와 차례로 만나 미·영 동맹을 더우 굳건하게 다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9일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州)의 인텔 반도체 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뒤 수도 워싱턴으로 복귀하기 위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과 짧은 일문일답을 나눴다.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흔쾌히 “그렇다”(Yes)고 했다.

 

그러면서 “세부 절차는 아직 모르지만 아무튼 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새 국왕과 전화로 통화했느냐”는 물음에는 “나를 그(찰스 3세)를 잘 알지만 아직 통화를 하진 않았다”고 답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워싱턴 주미 영국대사관을 방문해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문록에 전날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위한 애도사를 적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도 백악관은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영국 측에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을 여왕의 국장에 정식으로 초청하는 절차를 밟기도 전에 미국 대통령이 먼저 “나는 간다”고 말하는 것이 의전에 어긋나고 자칫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에어포스 기내에서 기자들한테 같은 질문을 받자 “공식적인 의전 절차라는 게 있고, 우리가 앞서가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다만 장피에르 대변인도 바이든 대통령이 장례식 참석을 원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

 

20세기 이후 영국에서 서거한 국왕의 국장은 1901년(빅토리아), 1910년(에드워드 7세), 1936년(조지 5세), 1952년(조지 6세) 열렸고 그 뒤 70년간은 없었다.

 

미국 대통령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조지 6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나치 독일과 싸운 전우를 기리는 차원에서 해리 S 트루먼 당시 대통령이 딘 애치슨 국무장관을 자기 대신 장례식에 참석시킨 적이 있을 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왼쪽)과 린든 B 존슨 전 미국 대통령(1963∼1969년 재임). 존슨

은 1965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윈스턴 처칠 전 총리 국장에 불참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재위 중 여왕과 만나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왕에 버금가는 인물로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인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장례식이 1965년 국장으로 치러진 바 있다. 린든 B 존슨 당시 대통령은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려 했으나 그의 건강을 우려한 의료진의 만류에 결국 뜻을 접었다.

 

원래 부통령이다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로 그 자리를 승계한 존슨이 경호 문제 등에 극도로 민감했던 것도 한 원인이다.

 

당시 미국에선 ‘처칠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대통령이 직접 가서 조문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그로 인해 존슨이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때 영국을 방문할 기회를 놓침으로써 존슨은 엘리자베스 2세 재임 기간 중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왕과 만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1969년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드골과 절친했던 닉슨은 이듬해인 1970년 드골이 서거하자 직접 장례식에

참석했다. 리처드닉슨재단 홈페이지

 

 

 

 

 

반면 존슨의 후임자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몸소 국장에 참석했다. 이는 그가 드골과 워낙 절친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국은 마침 총리와 국왕이 한꺼번에 바뀌면서 미·영관계를 시급히 재정립해 할 입장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런던행(行)은 이런 필요성에 비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 NBC는 “여왕의 장례식은 전 세계 지도자 및 지도자급 인사들이 참석하는 정상외교의 장이 될 것”이라며 “찰스 3세와 바이든 대통령의 첫 회동은 오는 17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장례 기간에 트러스 신임 총리와의 정상회담 역시 성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파리의 주프랑스 영국대사관을 찾아

조문록에 전날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기리는 애도사를 적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마크롱의 여왕 추모에 감동한 英… "佛, 우리 친구 맞다"

 

 

 

장문의 애도 성명 발표 후 영어로 추모 연설
"여왕은 프랑스어에 통달… 우리 문화 사랑"
英 누리꾼들 "마크롱의 애도가 가장 인상적"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내놓은 애도 성명, 그리고 추모 연설이 영국인들을 감동시켰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마크롱이 영국의 친구인지 적인지 모르겠다”는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의 발언 이후 냉랭했던 양국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왕을 추모하는 연설을 영어로 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게재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나,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 대통령으로선 이례적 행동이다.

 

“영국과 영연방의 친애하는 시민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한 마크롱 대통령은 “여왕의 지혜와 공감은 우리 모두가 지난 70년의 역사적 부침을 헤쳐나가는 길을 인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찬사를 바쳤다. 이어 “여왕의 서거 앞에 우리 모두는 극도의 허전함을 느낀다”고 비통한 심경을 드러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직 국왕이 되기 전인 1948년 프랑스를 공식 방문해 당시 뱅상 오리올 대통령과 함께한 만찬 등 여러 행사에서 프랑스어로 행한 연설은 완벽에 가까워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프랑스에 대한 여왕의 깊은 애정에 감사한다”며 “엘리자베스 2세는 우리 언어에 통달했고, 우리 문화를 사랑했으며, 우리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말했다.

 

 

 

 

 

2021년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주요7개국) 정상회의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왼쪽 두번째)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세번째)이 만나는

모습. 여왕 왼쪽은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 콘월=AP연합뉴스

 

 

 

 

앞서 서거 당일 발표한 성명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은 물론 우리 유럽 대륙, 그리고 한 세기의 역사를 써 내려간 여왕에게 프랑스는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왕은 프랑스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었고, 또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며 엘리자베스 2세와 프랑스의 ‘특수관계’를 언급했다.

 

여왕은 재위 기간 6번 프랑스를 국빈방문했고 1947년 이후 취임한 모든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왕만큼 엘리제궁 계단을 자주 오르내린 외국 정상은 없다”고 단언했다.

 

영국 일간 더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의 영어 연설을 ‘감동적’(moving)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서 트러스 총리는 마크롱이 영국의 친구인지 적인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나온 성명 및 연설을 통해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고 강조했다.

 

트러스 총리가 보수당 총재를 뽑기 위한 선거운동 기간 중 어느 토론회에서 “마크롱은 영국의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라는 질문을 받고선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답해 양국관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영국의 친구냐, 적이냐’를 두고 설전을 벌인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이런던’(MyLondon)은 영국 누리꾼들이 SNS에 올린 반응을 소개했다. “마크롱이 우리 두 나라 사이의 진정한 우정을 보여줬다” “우리 편 그 누구보다도 프랑스 대통령이 애도와 추모를 가장 잘했다”

“해협 너머에서 들려온 사랑스러운 말에 감동했다” 등 칭찬 일색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부친 조지 6세가 1952년 서거했을 당시 뱅상 오리올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장례식에 참석한 전례가 있다.

오는 19일로 예정된 여왕의 국장(國葬)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여왕 장례식에 가겠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AFP=뉴스1) 포토공용 기자 = 8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앞 대형 전광판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관련 추모 메시지가 상영되고 있다.ⓒ AFP=뉴스1 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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