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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漢詩

다른 여인에겐 주지 마셔요 - 허난 설헌

 

 

 

 



 

    다른 여인에겐 주지 마셔요


    我有一端綺, 拂拭光浚亂
    對織雙鳳凰, 文章何燦爛
    幾年疼中藏, 今朝持贈郞
    不惜作君袴, 莫作他人裳

     

    아름다운 비단 한필 곱게 지녀왔어요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한쌍의 봉황새 마주 보게 수놓으니
    반짝이는 무늬가 그 얼마나 아름답던지,


    여러 해 장농 속에 간직해 두었지만
    오늘 아침 님 가시는 길에 드리옵니다
    님의 바질 만드신다면 아깝지 않지만
    다른 여인의 치마감으론 주지 마세요.

     

     

    곱게 다듬은 황금으로
    반달 모양 만든 노리개는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붉은 비단 치마에 차고 다녔죠


    오늘 길 떠나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먼 길에 다니시며 정표로 보아 주세요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는 않지만
    새로운 연인에게만은 달아 주지 마셔요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다. 기생들에게나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은 노리개감으로불리워지기 위해서 붙여졌던 이름이엇을 뿐이다.

    어렸을 때 간난이, 큰년이, 언년이 등의 아명으로 불렸지만 정작 족보에는 남편의 이름만 실려졌다.
    말하자면 일생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게다가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때문에 여자는 죽을때까지 남자에게 매어지내야만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시대에 살면서 떳덧하게 이름과 자, 그리고 호까지 지니고 살던 여자가 바로 허초희다.
    그는 초희라는 이름외에도 경번(景樊)이라는 자를 가?으며 나설헌이라는 호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여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바로 불행의 시작이엇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남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가려내는 행위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어간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스스로가 평범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이땅위에서 겨우 스물일곱해를 살다가 갓지만 그 ?은 세월 속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여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간 것이다.
    난설헌의 시가 정한의 눈물로 얼국지게 된 것은 김성립에게 시집간 뒤부터이다.

    안동 김씨 집안인 시댁은 5대나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이었다.


    김성립의 아버지 김첨과 허봉이 호당의 동창이었으며 각별히 사이가 좋았으므로

    이들 사이에서 혼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김성립은 허초희와 짝이 될 수가 없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얼굴이 못생겼으며 방탕성까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기보다 너무나 뛰어난 난설헌에게 자존심이 상하여   

    그처럼 빗나갔을 것이다. 게다가 과거 공를 한다고 해서 집에 붙어있지를 않았다.

    강가 서당에서 글을 읽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시를 지어 보냈다는 사실까지 비난하던 시대상황 속에서 그의 상상력은 자연히 신선세계에 노닐게 되었다.


    그녀가 죽을 무렵에 이르러 친정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딸이 어려서 죽고 뱃속의 아기까지 죽었으니 난설헌의 슬픔과 괴로움은

    엎친데 덮친 셈이다. 이러한 자기 삶과 갈등을 표현한 것이 <난설헌집>에 실린 211편의 시이다.


    난설헌은 죽으면서 자기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지만

    아우 허균이 자기가 베껴놓은 것과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 엮어낸 것이다.

     

     

    (허경진 엮음  許蘭雪軒 詩選 머리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