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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Schumann, Kinderszenen Op.15

Schumann, Kinderszenen Op.15

‘Scenes from Childhood’

슈만 ‘어린이 정경’

Robert Schumann

1810-1856

Alfred Cortot, 1935

Carl Friedberg, 1953

Walter Gieseking, 1951

Vladimir Horowitz, Live in Wien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악기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은 낮은 수준의 연습곡 혹은 바가텔이나 소나티네 같은 소규모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주로 교육과 연습을 목적으로 한 작품들로서 어린이 그 자체가 작품의 목적이나 동기는 아니었다. 어린이 혹은 요정들이 등장하는 오페라, 극음악은 간헐적으로 발표되긴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작곡가가 어렸을 때 작곡한 것이거나 그저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이를 등장만 시킨 음악이었다. 그럼 눈높이를 낮추어 동심이라는 렌즈를 통해 어린이 세계를 바라보면 어떨까. 그 새로운 상상력을 발견한 최초의 작곡가는 바로 슈만이 아닐까 싶다. 일종의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독창적인 작품은 추억을 회상하기 위한 일기장과도 같기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상상의 세계

1838년 2월은 슈만에게 있어서 클라라와의 사랑에 한창 빠져 있던 행복한 시기였다. 자신이 창조해낸 피아노 작품을 그녀와 공유하면서 현실에 대한 행복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음악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 당시는 슈만이 굳이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음악이 솟구쳐 오르던 시기였다. 그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악보에 음표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질 때였다. 슈만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클라라를 초대하고자 <어린이 정경>을 작곡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은 클라라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가정을 꾸릴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독일풍의 검소하면서도 근면한 가정을 꾸린 뒤, 아이들이 뛰어노는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작곡가의 강한 의지가 이 곡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슈만은 클라라와의 미래를 꿈꾸며 창작력이 왕성한 시기에 이 곡을 작곡했다.

클라라가 슈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나는 당신에게 어린애처럼 보일 때가 많은 것 같아요”라는 문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하기 시작한 <어린이 정경> Op.15는, 서른 곡 정도를 작곡한 뒤 13곡으로 추린 피아노 모음곡 형식이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화려함에 고도의 기교를 더하던 당시의 작곡 경향을 벗어나 비르투오소적인 효과를 철저히 배제한 혁신적인 작품이다. 특히 어른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교를 위한 기교를 없애고, 어린이다운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선율만으로 구성해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더욱 높다. 클라라는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담은 이 동심의 만화경 같은 세상에 매료되었다. 당시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각광받기 시작했던 그녀는 이 작품을 직접 연주하여 <어린이 정경>의 독특한 마력을 청중들에게 일깨워주었다.

 

아래 유투브 동영상은 올린 이가 1987년 6월 21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있었던 Horowitz ‘The last concert’의 연주를 일러스트레이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과 애니메이션(닐스의 대모험)으로 꾸민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감하세요~~

Horowitz - Schumann ‘Kinderszenen’ Nos.1~6. Illustration 'Alice in Wonderland'

Horowitz - Schumann ‘Kinderszenen’ No.7 "Träumerei"

Horowitz - Schumann ‘Kinderszenen’ Nos.8~13. Animation 'The Wonderful Adventures of Nils'

 

높은 예술성과 고도의 시정을 머금고 있는 이 아름다운 걸작은 내용에서도 이례가 없을 정도로 환상적일 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미래지향적이다. 슈만은 1848년 9월 자신의 장녀인 마리아에게 크리스마스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자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을 작곡한 바 있는데, 이 작품만 하더라도 어린이가 피아노를 연습하고 상상력을 계발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슈만 사후 무소르그스키의 <어릴 적의 추억>이나 바르토크의 <미크로코스모스>, 비제의 <어린이의 놀이>, 포레의 <돌리 모음곡>, 드뷔시의 <어린이 차지>,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등이 작곡되며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장르는 역사적 연속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동심에 대한 반영이 아니라 천재 예술가의 회상으로 채색된 그 독특한 세계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 유일무이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많은 피아노의 대가들이 이 작품에 도전해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준 바 있지만, 초절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으로부터 풍부한 상상력과 시정 넘치는 아련함을 이끌어내기란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을 제대로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7곡인 ‘트로이메라이’는 단순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많은 연주자들과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소품이지만 그 내용과 표현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1986년 모스크바에서 이 작품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게끔 한 것과 같은 그러한 내적인 강렬함과 절실함을 필요로 하는, 진정한 비르투오소가 아니고서는 슈만의 저 찬란한 시성을 표현해낼 수 없는 난곡 가운데 난곡이다.

 

아래의 각 곡은 발렌티나 리시차의 연주입니다.

Valentina Lisitsa - Schumann, Kinderszenen Op.15-1

'Von Fremden Ländern Und Menschen' (Of Foreign Lands and Peoples)

1. 미지의 나라들 : 아름다움과 낯설음에 대한 어린이의 호기심을 그려낸 작품.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2

'Kuriose Geschichte' (A Curious Story)

2. 신기한 이야기 : 처음 듣는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의 즐거움을 묘사한 대목.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3

'Hasche-Mann' (Blind Man's Bluff)

3. 숨바꼭질 : 여기저기 숨으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빠른 16분음표로 묘사된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4

'Bittendes Kind' (Pleading Child)

4. 어린이의 희망 : 어린이의 간절한 바람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통해 실려 나온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5

'Glückes Genug' (Happy Enough)

5. 완전한 만족 : 행복함으로 충만한 어린이의 평온함을 그려낸 음악.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6

'Wichtige Begebenheit' (An Important Event)

6. 중대한 사건 : 옥타브의 도약을 통해 어린이의 굳센 단호함과 신선한 의지가 배어나온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7

'Träumerei' (Dreaming)

7. 트로이메라이 : 꿈을 꾸는 어린이의 온화하고도 아름다운 정서가 폴리포니 구조 안에 담고 있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8

'Am Kamin' (At the Fireside)

8. 난롯가에서 : 난로 앞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가족의 친밀감과 안락함이 묻어난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9

'Ritter Vom Steckenpferd' (Knight of the Hobbyhorse)

9. 목마의 기사 : 용감하면서도 진취적인 리듬이 어린이의 고양감을 도취시킨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10

'Fast Zu Ernst' (Almost Too Serious)

10. 대단히 심각하게 : 진지하게 고민하는 어린이의 사색적인 순간을 포착한 장면.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11

'Fürchtenmachen' (Frightening)

11. 무서움 : 느림-빠름의 대조를 통해 이성적인 무서움과 본능적인 장난스러움을 동시에 표현해낸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12

'Kind Im Einschlummern' (Child Falling Asleep)

12. 아이는 잠들고 : 독특한 화음을 통한 기묘한 분위기와 평화로운 멜로디가 꿈나라의 신비로움을 그려낸다.

Valentina Lisitsa: Schumann, Kinderszenen Op.15-13

'Der Dichter Spricht' (The Poet Speaks)

13. 시인은 말한다 : <어린이 정경>에서 화자의 심상이 가장 응축된 장면이다. 은밀한 상처를 남기는 듯한 단호한 어조와 이를 아물도록 위로하는 듯한 탐미적인 어투가 대조를 이루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추천음반 1935년 이 작품 전곡을 최초로 녹음한 알프레드 코르토의 연주(Biddulph)는 슈만의 피아노 작품에서 시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읽어낸 역사적인 녹음으로 그 아름다움은 영원히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슈만의 다면적인 성격과 탐미적인 스타일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아날로그 녹음(SONY)은 이 작품 최고의 해석으로 일컬어지며 뭇 피아니스트들을 긴장케 했다. 클라라 슈만의 제자로서 슈만의 피아니즘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카를 프리드베르크는 기교를 배제한 순수한 피아니즘의 세계를 그려낸 역사적인 연주(Green Door)로 그 가치가 높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찬연한 슈만의 시정을 노래 부른 라두 루푸의 연주(DECCA) 또한 적극 추천한다.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의 역자. 클래식 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설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 2011.04.25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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