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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소비자 울리는 ‘실손의료보험 보장범위

가입땐 모두 보장… 면책사항 설명 소홀…치료비 못돌려받아

 

교통사고 이후 허리와 무릎 통증을 호소하던 김모(52) 씨는 한 한방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을 통해 정밀 검사를 받고, 근육 통증 완화에 좋다는 추나 치료를 6개월간 받았다.

추나 치료는 비뚤어진 뼈와 근육을 밀고 당겨서 통증을 치료하는 데 진료비만 400만 원에 달했다. 실손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던 터라 보험사에 MRI 비용, 침 치료, 추나 치료 비용 등을 청구했던 김 씨는 단 1원도 병원비를 돌려받지 못했다.

김 씨가 가입한 실손의료보험 보장 약관에 따르면 비급여 항목인 MRI 촬영에 대한 보상은 일반병원에서만 가능하고, 침 치료는 1회 진료 시 1만5000원 이상 청구된 금액에 대해서만 보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보험사 측은 “추나 요법의 경우 교정 치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질병 또는 상해로 인한 치료 보상 조항에서 제외된다”고 답했다. 김 씨는 “가입할 때는 한방치료도 다 보장된다고 하더니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상 면책 사항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 황당했다”면서 “가입 전에 미리 보상이 제외되는 항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한방병원이 아닌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든지, 보험 가입 자체를 재고했을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박모(여·35) 씨도 최근 산부인과에서 부인과 검사를 받던 중 자궁경부암환자에게 주로 나타나는 바이러스를 발견해 3차례에 걸쳐 예방 접종을 실시한 후 보험사에 의료비를 청구했지만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의사는 박 씨의 몸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없어 예방 백신을 맞아야 자궁경부암 단계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보험사는 “실손의료보험에서는 예방접종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박 씨는 “예방 백신이 치료제 역할을 하는데 보험사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보험사가 면책 사항을 적용할 때 전후 맥락에 대한 판단이 전혀 없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각종 사고나 질병에 대해 실제 병원비와 입원비 등을 보상하는 실손의료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보장 범위를 둘러싸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상이 다 된다’는 설계사들의 말을 믿고 보험에 가입하지만 막상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가 보장을 제외하는 조항인 ‘면책 사항’에 가로막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은 가입자가 병·의원 및 약국에서 실제 지출한 비용을 정해진 한도 내에서 보상하고, 국민건강보험에서 적용되지 않는 MRI, 초음파, 특진료 등 비급여항목, 치과치료, 항문질환, 한방치료 등을 보상한다. 하지만 실손의료보험이 모든 병원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 만큼 가입 시 면책 사항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가입자들이 뒤늦게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난해 말 개정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중 실손의료보험 면책 사항에 따르면 ▲정신과질환 및 행동장애 ▲비만 ▲비뇨기계 장애 ▲비염증성 장애로 인한 습관성 유산·불임·인공수정 관련 합병증 ▲선천성 뇌질환 ▲직장 또는 항문질환 중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질병 치료 목적이 아닌 건강검진, 예방접종, 영양보충과 한방병원에서 MRI 검사비용 등은 보장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보험 가입 단계에서 설계사들은 이러한 면책 사항에 대한 설명을 소홀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5개 손해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계약자 중 3년 이내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1200명을 선정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4명꼴로 면책 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면책 사항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응답한 가입자 중에서도 보상 제외 항목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가입자는 10명 중 1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 더해 최근에는 실손의료보험 보상한도 축소를 둘러싼 민원도 급증하고 있다. 정부와 소비자단체가 함께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는 보험사로부터 실손의료보험 보상한도 축소와 관련한 고지를 듣지 못했다는 계약자들의 민원이 즐비하다.

실손의료보험 보상한도 축소문제는 2009년 7월 보험업법 개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당국은 의료비 한도를 종전 1억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보상비율은 100%에서 90%로 줄이도록 보험업법을 개정하고 보험사에 두 달간 유예기간을 줬다.

보험사들은 이 기간 동안 ‘100% 보장받는 실손의료보험에 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평생 1억 원 보장’이라며 가입자를 끌어 모았지만, 3년 뒤 가입자들에게 변경 약관에 대해 정확한 고지를 하지 않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월 발표한 82개 금융사에 대한 민원 발생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 계약 변경과 보험료 인상 민원이 전년보다 30%가 늘었다. 지난 10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6개 손해보험사에 ‘일방적인 보험 보상한도 축소는 무효’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보험사들이 이를 거부하고 나서 관련 논란은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 가입 시에는 보장내용이 정확한지, 면책 사항은 어떠한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면서 “금감원의 공시자료를 통해 보험사별 불완전 판매 비율을 알아보고, 특약 사항을 점검해 불필요한 항목을 없애는 방법으로 실손의료보험과 관련한 불이익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료 : 문화일보(박정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