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ave you all the love I got
I gave you more than I could give
I gave you love
I gave you all that I have inside
And you took my love
You took my love
Didn't I tell you
What I believe
Did somebody say that
A love like that won't last
Didn't I give you
All that I've got to give baby
I gave you all the love I got
I gave you more than I could give
I gave you love
I gave you all that I have inside
And you took my love
You took my love
I keep crying
I keep trying for you
There's nothing like you and I baby
This is no ordinary love
No ordinary Love
This is no ordinary love
No ordinary Love
When you came my way
You brightened every day
With your sweet smile
Didn't I tell you
What I believe
Did somebody say that
A love like that won't last
Didn't I give you
All that I've got to give baby
This is no ordinary love
No ordinary Love
This is no ordinary love
No ordinary Love
I keep crying
I keep trying for you
There's nothing like you and I baby
This is no ordinary love
No ordinary Love
This is no ordinary love
No ordinary Love
Keep trying for you
Keep crying for you
Keep flying for you
Keep flying I'm falling
I'm falling
Keep trying for you
Keep crying for you
Keep flying for you
Keep flying for you I'm falling
I'm falling...

마돈나(Madonna), 신디 로퍼(Cyndi Lauper)등
뉴 웨이브풍의 댄스뮤직이 지배하고 있던 1980년대 중반,
끈적한 재즈 색소폰 연주에 차갑고 허스키한 보이스..
종전의 보사노바에다 블루스를 가미시킨 당시 팝계에선 상당히
독특한 이력으로 나타난 나이지리아 출신 혼혈가수 샤데이(Sade)..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영국 가수 Billy Ocean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출신답게 당시 아프키카 열풍과 함께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60년대에 유행됐던 보사노바를 8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장본인이 바로 샤데이 그녀다...
1980년대의 팝 음악 씬을 돌아보자면 항상 '소란스러움'이라는 느낌이 먼저 기억된다.
이것은 사운드 자체가 시끄럽다거나 크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의 팝 음악 씬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언제나 '가볍다'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기억을 말한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진지함을 피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던 1960-70년대와 달리 본격적인 소비 문화가 꽃을 피우던
1980년대는 항상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던 음악들 속에서 진지함이나 심각함을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Wham과 듀란 듀란(Duran Duran), 컬쳐 클럽(Culture Club)과 마돈나(Madonna), 신디 로퍼(Cyn야 Lauper)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시대였던 1984년에 등장했던 샤데이(Sade)의 모습은 너무나도 색달랐다.
이 밴드가 만들어 내던 사운드와 팀명이 똑같이 샤데이라고 불리는,헬렌 폴세이드 아두(Helen Folsade Adu)라는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는 LP 한 장이 다 돌아간 뒤에도 이상하게도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동그란 이마에 커다란 입술과 눈망울을 지닌 이 혼혈의 여인의 출생에 관한 얘기도 언제나 화제가 되곤 했다.
나이지리아인 이었던 아버지와 영국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가서 정착했다는 이 여인이 만들어내던 이상스럽게도 고혹적이고
슬픈 이미지는 한번 보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 패션을 공부하던 샤데이는 몇몇 밴드들에서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다가 음반사들의 주목을 받고 팀을
대표하는 프론트우먼으로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은 샤데이를 단지 한 명의 여성가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흡입력이 너무나 강했던 결과였다.
이후 샤데이가 만들어냈던 성공은 한마디로 기이할 정도였다.
1984년에 발표되었던 데뷔 앨범인 Diamond Life는 'Your Love Is King', 'Smooth Operato',
'Hang on To your Love' 등의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단지, 히트곡들을 쏟아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샤데이라는 밴드가 만들어내던 이국적인 사운드(최근에 우리는 이러한 사운드에 적합한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에쓰닉(ethnic)'이라는…)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촉촉하게 젖은 듯한 습기 어린 보이스칼라가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전혀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동시대 음악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요란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차트 밖으로 내려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이것은 이후 나온 모든 샤데이의 앨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이 되었다. 1985년에 발표되었던 Promise에서는 'Never As Good As The First Time'과
'Sweetest Taboo'가 터져 나왔다.
특히, 'Sweetest Taboo'는 샤데이 음악의 전반적인 형태를 결정짓는 밴드와 그녀의 대표곡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로 극단적이지 않으면서도 무한의 슬픔을 표현해내는 수작이었다.
샤데이의 팬들은 점점 더 밴드와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다. 샤데이의 음악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분위기에서도
잘 어울렸다.
일면, 늘어지고 또 한편으로는 밝지 않은 분위기의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어렵다는 느낌 없이 계속해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988년의 Stronger Than Pride에서도 꾸준히 'Love Is Stronger Than Pride',
'Nothing Can Come between Us'같은 히트곡들이 나왔다.
이전의 늘어지기만 하던 샤데이의 보컬이 이 앨범에서는 약간은 소울풀하고 블루지한 힘을 가미한 창법으로 바뀌는
시도를 한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샤데이의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앨범이었던 이 작품도
간단히 플래티넘을 넘기며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샤데이는 4년 동안의 첫 번째 잠행을 행한다.
그녀가 그 4년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는 평소의 그녀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이렇게 그녀와 그녀의 밴드인 샤데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던 1994년 샤데이는
가장 아름다운 앨범인 Love Deluxe로 씬에 복귀한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한마디로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있던 습기의 자욱은 이 앨범에서는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건조한 듯 변한 것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드러내지 않는 슬픔의 표현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전에 발표되었던 어떠한 앨범보다 훨씬 더 큰 슬픔을 담은 앨범은 여전히 식지 않은 그녀와 밴드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특히, 이 앨범에 담긴 'Pearls'라는 곡에서 나타난 인간에 대한 슬픔과 연민의 감정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샤데이는 자취를 감췄다. 정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꾸준히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샤데이 본인은 거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샤데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그녀가 지난 8년 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단지, 그녀가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40세가 넘은
나이가 됐다는 사실들만이 확실할 뿐이다.
하지만, 언론을 극도로 싫어하고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는 항간의 보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단지 언론에 노출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들을 피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오히려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함께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사실, 샤데이는 언론에 음악과 자신의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인터뷰를 위한 여하한 접촉을 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자세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것과 대중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음악뿐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그녀를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밴드를 기다렸지만 8년이라는 세월은 그다지 짧지 않았다.
음악계의 흐름은 마구 변해갔고 1980년대의 영화를 노리고 복귀했던 많은 스타들이 나자빠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샤데이가 음악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며 인터넷에 팬페이지들을 꾸며오던 팬들은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샤데이의 팬들은
그 응집력이 무척이나 강하고 그들의 음악 스타일처럼 팬 층의 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데이의 음악은 연령도, 인종도, 종교도 초월해서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던 라틴 펑크 밴드인 '프라이드(Pride)'에서 출발한 소피스티 팝 밴드 '샤데이'는
밴드의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샤데이 아두(본명 : Helen Folasade Adu)'의 이름을 밴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국 밴드이다.
어린 시절 소울 음악을 즐겨 들으며 자란 샤데이 아두는 10대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밤마다
실컷 들을 수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샤데이 아두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열열한 환호를 보내는 바를 찾은 관객들의 반응에 이끌려
자신도 언젠가는 저런 무대에서 노래 부를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경제학 교수로 흑인이었던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영국 출신의 간호사였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샤데이 아두는 나이지리아의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이바단(Ibadan)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샤데이 아두가 네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샤데이 아두는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와 에섹스(Essex)주의 해변 마을인 홀랜드온시(Holland-on-Sea)에서
성장하게 된다.
평화로운 해변 마을에서 성장한 샤데이 아두는 열여덟살이 되자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입학하게 된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 학교에 막 입학한 샤데이 아두는 뜻하지 않게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일의 시작은 그녀의 오랜 친구 두명이 밴드를 결성하여 그녀에게 보컬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면서 부터 였다.
하지만 당시 친구들의 요청을 수락하여 밴드의 보컬을 맡게 된 샤데이 아두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대 공포증을 겪기도 했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단련시켜 나갔던 샤데이 아두는
마침내 무대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무대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샤데이 아두는 라틴 펑크 밴드인 프라이드의 백보컬로 가입하여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샤데이 아두를 포함하여 8인조였던 프라이드는 장기간의 영국 순회 공연 활동을 소화하면서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재즈적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샤데이 아두의 인기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프라이드와 샤데이 아두가 무대에서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샤데이 아두가 직접 만든 곡인
'Smooth Operator'였다.
'Smooth Operator'의 히트는 음반사의 관심을 끌게 되어 마침내 1983년에 샤데이 아두는 '에픽 음반사(Epic Records)'와 솔로 음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솔로 음반 계약에는 샤데이 아두가 제시한 특이한 옵션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그것은 프라이드의 멤버들인 스튜어드 매튜맨, 폴 스펜서 덴만, 앤드류 헤일과 함께 계약한다는 조항이었다.
샤데이 아두와 프라이드의 세 멤버는 새로운 밴드의 이름으로 샤데이 아두의 이름을 따서 샤데이로 짓고 데뷔 음반
녹음 작업에 들어가 1984년 2월 25일 첫번째 싱글인 'Your Love Is King'을 발표하였고
7월 28일에는 데뷔 음반 'Diamond Life'를 발표하였다.
데뷔 싱글을 영국 싱글 차트 6위에 올려 놓은 샤데이는 두번째 싱글로 'When Am I Going to Make a Living'을
발매하여 영국 싱글 차트에서 36위를 차지하였다.
차트 진입에 실패한 세번째 싱글 'Hang on to Your Love'에 이어 발표한 네번째 싱글이자 음반의 마지막 싱글인
'Smooth Operator'를 1984년 9월 15일에 발표한 샤데이는 이 곡으로 마침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19위에 그친 이 곡은 1985년 3월에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Billboard Hot 100)에서 5위 까지 진출하며 히트 곡이 되었고 유럽 각국의 싱글 차트에서도 20위권에 진출하는
히트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즈적인 분위기와 소울의 요소가 녹아 들어간 샤데이의 데뷔 음반은 히트 곡 'Smooth Operator'의 성공으로
앨범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들였다.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 샤데이의 데뷔 음반은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5위 까지 진출하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앨범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던 샤데이의 멤버들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게 된다.
누군가 샤데이의 음악을 '커피 향이 나는 음악'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샤데이의 데뷔 음반에서는 오늘도 진한 커피 향이 스며나오며 지난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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