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annah Woman
Savannah woman dressed in white
Stands out of tropical rains
She pulls her gin and tonics tight
And curses her lonely domain
Brazilian winds, winds blow warm in Rio
A white estate they call 'La Nada'
Meant for her soul or so she says
Hides her sadist gin made eyes
No one knows but me
How she left me so behind
Savannah woman
I could never leave you so unkind
Snow white and with desire
That vamp from the magazine
Cold and distant as the moon
Why can't she burn like fire?
No one knows but me
How she left me so behind
Savannah woman
I could never leave you so unkind
Hello, Again
Slowly that scent reaches me,
the perfume you wear I can't forget.
Floating so lightly 'pon the air,
just like the smoke from a cigarette.
I just turned around and there you were,
returning almost faster than you'd gone.
My, but times been good to you,
sleek and graceful as a swan.
And by the way, hello again.
I'm so pleased to have your company.
We'll count the stars under misty sky,
and watch them fall into the sea.
Your voice so whispers soft and smooth,
telling me tales of a human cloud.
Who walked a thousand miles,
just to touch their ladies gowns.
A noble thought, there's no doubt,
and I must confess I can't compete.
Clouds that walked a thousand miles,
just to touch their ladies feet.
출처 : http://blog.daum.net/park68888/1992829
1975년, 리치 블랙모어가 당시 3기 라인업의 보컬리스트인 데이빗 커버데일과 베이시스트인 글렌 휴즈가
서로 리드 보컬리스트 자리를 놓고 싸우고 다투는 모습에 진저리를 치면서 자신의 밴드인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하고 그룹 딥퍼플(Deep Purple)을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팬들은 이제 딥 퍼플도 끝인가...언제 해산할 것인가...
궁금해하며 그들의 행보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리치 블랙모어의 후임으로 젊은 토미 볼린
(Tommy Bolin)을 영입하여 전기 딥 퍼플의 마지막 앨범이 된 "Come Taste the Band"를 발표했다.
어린 나이에 "프랭크 자파 그룹(Frank Jappa Group)"과 제임스 갱(James Gang)"과 같은 걸출한 밴드들을
거친 불세출의 신예 스타를 영입한 그들이었지만 팬들은 반신반의 했었다.
과연 저 애송이가 어떻게 리치 블랙모어의 공백을 메울 것인가...
앨범 "Come Taste the Band"는 그런 팬들의 의심속에 별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하고 토미 볼린 역시 그런 편견 속에
전기 딥 퍼플의 마지막 공연이 된 일본 부도칸 라이브 이후로 이내 딥 퍼플을 탈퇴하면서 결국 1984년,
리치 블랙모어와 이언 길런, 로저 글로버 등이 만나 재결성 하기까지 10년간 해체 상태에 놓이게 된다.
당시엔 토미 볼린이 심한 혹평을 받았지만 근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토미 볼린의 진가는 재평가 받게되고
이 앨범 "Come Taste the Band"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쓸쓸한 명예회복까지 덤으로 얻게된다.
27살인가...?? 젊은 나이에 이미 죽고 난 이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은 토미 볼린은 그래서 더욱 그의 외로운 삶에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다.
"Come Taste the Band"를 천천히 음미해보면 "You Keep on Moving"이랄지 "This Time Around"같은
작품은 정말... 이게 20대의 어린 기타리스트의 작품인가...
놀랄 정도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철학이 배어있는 걸작일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 균형있게 담겨 있다.
딥 퍼플 탈퇴후, 토미 볼린은 27살에 요절할 때까지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하나가 유명한
"Savanna Woman"이 실려있는 "Teaser"와 이 페이지에 링크시켜놓은 "Hello Again"이 실려있는
동명 타이틀 앨범이다.
다시 한번 안녕...
아마도 그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이 앨범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미 볼린은 삶을 마감하고 만다.
천재적인 음악가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것,
지미 핸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같은 나이로(27살인가..28살인가..??) 삶을 마감했고
마크 볼란 역시 28살에, 그리고 토미 볼린도 27살에 요절하는 걸 보면...
천재는 그 삶이 짧다는 속설이 어쩐지 서글프면서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 노래 헬로 어게인은 겨울이 생각나는 노래다.
음악의 느낌, 분위기, 토미 볼린의 불운했던 삶까지 모두..
어쩐지 황량하고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이...
눈쌓인 겨울밤, 맨발로 눈밭을 걸으며 슬픈 방황에 지친 가련한 인생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당시에 제대로 그의 음악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이 생각나는 겨울 오후다.
출처 : http://apostle5.egloos.com/tb/5540973
단 25년만을 살고 세상을 떠난 토미 볼린은 요절한 록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그 죽음
이 가 장 안타까운 뮤지션 중의 한 명이다.
단 7년이라는 짧은 커리어에도 불구하고토미 볼린은 록 기타리스트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했고,
원숙함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블루스 록, 재즈 록 , 하드 록에서 헤비메탈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거쳐간 모든 영역에서 그의 이름을 남겼다.
그가 지금까지도 살아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면 아마도 토미 볼린은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토미 볼린은 1951년 백인 아버지와 시리아계 여성 어머니 사이에 서 태어난 혼혈이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사회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 강게 남아있었고
피부색이 백인과는 다른 토미 볼린은 어려서 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혼자서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토미 볼린은 다양한 악기를 배웠고 기타의 매력에 이끌리게 되었다고 한다.
토미 볼린이 프로무대에 데뷔한 것은 콜로라도 주의 로컬 밴드 Zephyr를 통해서 였다.
제니스 조플린의 보컬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워풀한 여성 보컬리스트 캔디 기븐스(Candy Givens)가
이끌던 제퍼는 당시 미국 전역을 휩쓸던 블루스 록을 들려주고 있었는데, 블루스 록의 에토스를 잘 표현해낸
토미 볼린 역시 프로 음악계의 주목을받게되었고, 지미 페이지의 눈에 띄어 레드 제플린 라이브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나서기도 했다.
1971년 Goin' Back To Colorado를 끝으로 Zephyr를 탈퇴한 토미 볼린은 천재적인 퓨젼 재즈 드러머
Billy Cobham 솔로 앨범인 Spectrum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퓨젼 재즈 음반의 최고 명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이 음반에서 토미 볼린은 이전에는들을 수 없었던 진보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게 되는데, 역시 천재적인 기타리스트 중
한명 으로 불리는 Jeff Beck이 토미 볼린의 사운드에 영감을 받아 제프 벡 최고의 명반으로 여겨지는
Blow By Blow와 Wired에서 토미 볼린의 그것과 유사한 스타일을 도입 했다고 하니, 음반에서 토미 볼린의
비중과 역량이 확인되는 것이라 하겠다.
빌리 코브햄과의 음반 작업이 끝난 직후, 토미 볼린은 Joe Walsh의 후임으로 당시 미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던 James Gang에 가입하게 된다. 1973년의 Bang과 1974년의 Miami 단 두 장의 음반에만 참여했지만
이 음반들은 James Gang 최고의 음반들로 남아있다.
1974년 토미 볼린은 당시 하드 록/헤비 메탈계를 주도하던 밴드 Deep Purple에 가입하게 된다.
당시,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갑작스런 탈퇴로 어수선하던 분위기에서 당시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이던
데이빗 커버데일은 토미 볼린이 스펙트럼에 서 들려줬던 인상적이고 진보적인 사운드를 기억해낸 것이다.
하지만, 딥 퍼플에서의 생활은 길지 않았다.
이언 길런, 리치 블랙모어 등 핵심적인 멤버의 탈퇴가 이어지던 딥 퍼플은 토미 볼린과 함께 한 음반
Come Taste the Band를 제작한 뒤 해체되 기 때문이다.
1975년 딥 퍼플과 함께 하던 동안 토미 볼린은 솔로 앨범을 만든다.
토미 볼린의 관능적인 기타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Teaser였다. 국내 광고음악으로 쓰이며 인기를
얻기도 한 Savana Woman,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Dreamer, 등이 수록 음반인데, 딥 퍼플에서
들려주던 헤비한 사운드와는 판이하게 다른 재즈 록적 인 접근이 두드러진 음반이다.
알토 섹소폰의 데이빗 샌본, 건반 연주자 얀 해머, 제네 시스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필 콜린스 등이 게스트로서 참여했다.
1976년 토미 볼린은 솔로 2집이자 유작이 된 Private Eyes를 발표한다.
Hello Again Gypsy Soul과 같은 명곡들이 수록되있는 음반으로서 기타리스트로서 뿐만이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그의 역량이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보여주는 음반이라고 할수있다
1976년 경제적인 문제와 음악적 고뇌등으로 갈등하던 토미 볼린은 이미 심각한 약물중독 상태에 놓여있었다.
공연을 위해서 마이아미를 찾았던 토미 볼린은 여전히 약물에 취해있었고, 결국 같은 해 12월 4일, 여자 친구에 의해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이었다.
토미 볼린의 음악적 스타일은 어느 한 가지로 집어 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제 퍼 시절에는 1집 제퍼에서 탁월한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로서 St James Infinimary 와 같은 블루스 명곡을
재해석했고, 2집에서는 재즈 록적인 접근 법을 보여주었다.
또한 제임스 갱, 딥 퍼플 시절에는 하드 록 스타일의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토미 볼린의 기타 사운드가 "재즈적 어프로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록 기타리스트였지만, 빌리 코브햄, 알폰스 무존과 같은 퓨전 재즈 뮤지션들과 교류를 가졌고,
그들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탁월한 실력을 뽐냈다.
또한, 토미 볼린의 기타연주 스타일은 여타 기타리스트들에 비해 솔로라인이강하지도 않고, 자극적으로 튀지도 않는다.
허나, 에로틱하다고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연주는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토미 볼린의 죽음은 록 역사 상 가장 안타까운 죽음의 하나다. 20세를 갓 넘긴 어린
나이에 그가 록 기타 역사에 그은 한 획은 결코 작지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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