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s on Me
I know that once in love
You don't think of the devil who's inside
And maybe there'll come on day
When you feel safe
And I won't have the time
You'll hear what you wanna hear
Blink once I could disappear
Some rules to the game will make it right for both of us
Just say what you wanna say
I've got it to give away
We both wanna make it last so keep
Your eyes on me
Your eyes on me
It's not an illusion
That you're the one and I have fallen deep
I said right from the start
When we're apart
You must only think of me
Temptation is all around
Take good care of what you're found
That's why when I turn around
You better keep...
You better keep your eyes on me
No matter what you think I need
No it doesn't really matter what you once believed
Say Yeah
I wanna be the air you breathe
Yeah you better be everything you said you'd be
So you better say yeah
I wanna be the only one or we can't go on
No matter what you think I need
You better keep your eyes on me...
Say that you want me
Open up your hear
Even if it's hard
Say that you need me
Better let 'em know
Baby don't put on a show
Say that you need me
Tell 'em how you feel
Let 'em know it's real
And if you love me
Never turn your back
Gonna keep my eyes on that
Temptation is all around
Take good care of what you've found
That's why when I turn around
You better keep...
You better keep your eyes on me
No matter what you think I need
No matter what you once believed
If you're mine
So you better say yeah
No matter what you think I need
Not it doesn't really matter what you once believed
Say yeah
I wanna be the air you breathe
Yeah you better be everything you said you'd be
You better keep...
I wanna be the only one or we can't go on
No matter what you think I need
You better keep your eyes on me...
Your eyes on me...
Your eyes on me...
Celine Dion (셀린 디온)
1968년 3월 30일생이니 올해로 만 45세이고 직업은 가수이면서 작곡가, 배우, 사업가이다.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를 꼽는다면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라이어 캐리와 셀린 디온을 꼽을 것이다. 90년대의 시작과 더불어 소니 뮤직의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90년대 최고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머라이어 캐리의 기록에 비하면 셀린 디온의 시작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현재 두 디바의 위치를 놓고 보면 결코 셀린 디온의 인기가 뒤쳐진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1968년 14명의 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음악적 천재성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퀘벡주에서 태어난 셀린 디온은 5살 때 샹송을 부르며 무대 데뷔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과 초기
Dion은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Céline Marie Claudette Dion[셀린 마리 클로데 디옹]이다.
The youngest of 14 children born to Adhémar Dion and Thérèse Tanguay,
both of French-Canadian descent 1973 년 8 월에는 5살의 어린 디옹은 그녀의 오빠 미셸의 결혼식장에서
그녀의 첫 노래하는 모습이 공개 되었다.
그녀의 부모 작은 피아노 바에서 그녀의 형제 자매와 노래하며 디온은 연기자가 되는 꿈을 키워왔다.
1994년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가족과 내 고향을 떠나와서 그리워하지만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진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녀가 12세 때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 자크와 공동으로 작곡한 그녀의 첫작품 "그것은 단지 꿈"
"Ce n'était qu'un rêve" ("It Was only a Dream")을 오빠 미셸이 매니저 르네 Angélil에 데모테이프를 보냈다.
Angélil는 디온의 목소리듣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았고, 그녀를 스타로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1981 년 그는 자신의 집을 저당잡히고 그녀의 첫 번째 앨범 La voix du bon Dieu ("The Voice of the Good God좋은 하나님의 음성")를 발표하여 성공하였고 그녀가 1982 일본 도쿄 야마하 세계 음악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금상을 받자
1982 Yamaha World Popular Song Festival in Tokyo 그의 인기는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3년 이후에도 디온은 펠릭스 상을 수상하는 등 계속 성공하였으나 그녀의 성공은 불어권에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메니저 르네는 디옹의 이미지 변신을 과감하게 계획하고 스포트라이트 뒤로 물러나 영어교육을 받고
치과수술 등 외관 개선에 주력하였다.
1989 년 시크릿 투어 콘서트 도중, 디온은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이 생겨 성대수술도 받았다.
> 그리고 12살이 되던 해 그녀는 데모 테잎을 만들어 퀘벡의 음반 기획자였던 르네 안젤릴에게 가져다 줬고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에 빠진 르네 안젤릴은 자신의 집까지 저당 잡히며 그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르네 안젤릴은 이후 26살 연하의 셀린 디온과 결혼한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불어권의 지역에서 넉넉하지 못한 음반 기획자의 후원 속에 활동을 시작한 그녀이기에 시작부터 큰 빛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런 그녀의 실력은 수 차례에 걸친 음악 페스티벌 수상으로 차츰 국제 무대에 떠오르게 된다.
82년 그년는 도쿄에서 열린 야마하 월드 송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83년 15세의 나이로
[D`Amour Ou D`Amite]를 발표해 7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캐나다인 최초로 프랑스 골든 레코드를
수상했고, 20세인 88년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에서 그랑프리로 입상하는 등 초기 그녀의 경력은 실력을 인정받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불어권에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했던 듯하다. 세계시장 진출을 꿈끈 그녀는 영어가 필수임을
인식하고 영어공부에 전력을 기울여 마침내 부자연스럽지 않은 발음으로 영어권 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다.
90년 발표된 첫번째 영어 앨범인 [Unison]은 캐나다에서의 대성공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1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하게 되고 수록곡인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는 빌보드에서 4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녀는 이 성공을 통해 미국내 최고의 대형 프로듀서인 David Foster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첫 앨범의 성공을 발판으로 92년 그녀는 두번째 영어 앨범 [Celine Dion]을 발표한다.
앨범 내에 4곡이 빌보드 40위권에 올랐다.
그 이후, 셀린 디온의 음악적 성공은 말할 필요 없이 승승장구를 한다. 두번 연속 그래미상까지 거머쥔 그녀다.
하지만 그녀도 잠시 공백기가 길었던 시절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 르네 안젤릴의 후두암이다. 그녀는 병간호를 위해 음악 활동을 자제하고
인공수정으로 임신까지 성공하는 등 남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왔다.
2000년 말엽에 공식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한 셀린 디온.
그녀의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 셀린 디온의 모습은 그때 무척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미국의 연예정보지 ‘피플’ 인터넷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동안 인공 수정 등으로 수차례 임신을 시도해 온
셀린 디옹 부부가 6번의 인공 수정 끝에 쌍둥이 임신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2010년 5월 보도에 따르면 셀린 디옹은 그동안 뉴욕에 거주하며 한방 침 치료를 병행하는 등 임신을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셀린 디옹은 임신 14주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매체를 통해 “어렵게 임신에 성공한 만큼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나길 바란다”면서 “한 번에 두 명의 아이를
갖게 돼 두배의 축복을 누리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셀린 디옹은 남편 르네 안젤릴 사이에 아들 르네 찰스 안젤릴(8살)을 두고 있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 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
(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었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
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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