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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명상록

스토아학파 (Stoicism)

 

 

 

 

 

스토아학파 (Stoicism)

 

키프로스의 제논이 스토아 포이킬레에 창설한 철학의 한 유파를 말한다.  BC 3세기부터 로마 제정(帝政) 말에 이르는

후기 고대(古代)를 대표한다.

 

키프로스섬 태생의 개조(開祖) 제논과 그 제자로서 적빈(赤貧)과 노동으로 이름 높던 소아시아의 아소스인(人)

 

클레안테스, 그 제자로서 스토아파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킬리키아의 항구 도시 솔로이(솔리)의 크리시포스,

 

 스토아 학설을 로마 사람에게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만든 로도스섬의 파나이티오스, 종교적 경향이 강한 오론테스강

 

하반(河畔)의 아파메아인 포세이도니오스, 로마황제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 파의 주요 인물들이다.

 

 

  제논이 아테네의 광장에 있던 공회당 ‘채색주랑(彩色柱廊)’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제자들을 ‘스토아파’

 

(柱廊의 사람들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스토아파 철학은 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고전기(古典期) 그리스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좋은 가문 출신

 

사람들의 철학이 아니라, 변경(邊境) 사람이나 이국인의 철학이었으며, 그리스 문물이 좁은 도시국가의 틀을 넘어서

 

널리 지중해(地中海) 연안의 여러 지방에 영향을 미친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철학의 여러 파와 스토아파 사이의 대립은 격렬하였다.

 

 

  고전기까지의 철학의 여러 학설을 수용하여 일반화 ·통속화한 점에서 절충주의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 기반에는

 

고전 철학과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단지 로마시대 사람들의 저작을 제외하고는 스토아파의 저작은 오늘날 거의 전해지지 않아서 연구상 어려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토아학파는 자연관에 있어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와 변화에 관한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하면서

 

 윤리학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특히 퀴닉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

 

  스토아 철학의 전개과정은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초기는 B. C 3세기경으로 대표자는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제논(336∼264 B.C.), 그의 제자인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이고 중기는 B. C 2세기경에 해당하는 시기로 이 때 활동한 사람은 키케로가 있다. 후기는 A. D 1세기 로마시대

 

에 해당하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있다.

 

 

  초기 스토아 철학은 이전 철학과 달리 지식의 추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헬레니즘 철학을 대표한 스토아 철학은

 

보편적이고 평온하며, 질서있는 존재와는 거리가 먼 생활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삶의 방편(ars vitae)을

 

내놓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기에 영원한 우주질서와 불변적인 가치의 근원을 드러내는 일은 이성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은 곧 인간 존재가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이성의 빛이란 세계 전체에 경이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여 질서있게 살아가는

 기준이다. 스토아 도덕철학도 세계가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도시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이 도시의 충성스런 시민으로서 덕과 올바른 행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일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스토아 도덕철학은 도덕 가치, 의무, 정의, 굳센 정신 등과 같은 덕목에 중심을 두고 보편적인 우애와 신처럼 넓은 자비심을 강조함으로써 가장 호소력 있는 학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애지(愛知:철학)는 논리 부문과 윤리 부문, 자연 부문으로 나뉘나, 이들은 각각 독립된 분파가 아니라 서로 나누기 어렵게

 

결합되어 있어 하나의 지혜를 사랑하고 구하는 애지를 구성하는 3요소가 된다.

 

  지혜는 ‘신의 일과 사람의 일에 관한 지식’이라고 정의되지만, 이것은 사물에 관한 관조적(觀照的) 지식이 아니라,

 

인간생활에서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처리하기 위한 실천적 지식이다.

 

지혜의 이러한 실천적 성격에 스토아파의 특징이 있으며, 이 원리에 바탕을 두어 스토아철학은 고대철학원리의 주체적인

 

 반성철학이 되었다.

 

 애지(愛知)는 이러한 지혜를 습득하기 위한 ‘삶의 기술(ars vivendi)’의 연습이며, 이러한 재주를 갖는 사람이 현자

 

(賢者)인 것이다.

 

그리고 현자의 지혜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충동’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병으로서의 정념(情念)이 있다. 이 정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데에 ‘활달한

 

삶의 흐름’이 있다.

 

스토아파의 현자의 이상은 바로 거기에 있다. 스토익이라고 불리는 비정한 금욕주의적 심정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자의 유덕한 삶이란 이성을 갖춘 유한한 개개의 자연물(인간)이 자연에 의하여 부여된 그대로의 자기의

 

 ‘운명’을 알고, 운명대로 살아감으로써 본원(本源)인 자연과 일치하는 ‘동의(同意)’의 삶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 그 자체가 이성적 존재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자기귀환(自己歸還)에의 활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현자는 모든 자연물의 근원인 자연 그 자체로서의 신과 일치한 자이며 신과 같은 자, 바로 신 그것인 것이다.

 

  스토아 철학의 특징은, 이와 같은 자연존재에서의 개별성(個別性)과 전체성(全體性)의 두 계기의 강조와 양자의

 

긴장 관계에 있으며, 이것에 의하여 스토아 철학은 고대철학 원리의 집성인 동시에 다음 시대의 철학원리를 준비하는

 

 것이 되었다.

 

언어연구 ·논리학 ·인식론에서도 구체성과 개별성을 중요시하는 스토아 철학은 전통철학에 없었던 새로운 요소를 많이

 

 초래하였다.

 

   스토아 철학의 세계관은 유물론과 범신론적인 세계관으로 나타난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자연세계에 관한 기본적인 사고 방식은 낙관주의적이며 형이상학의 내용은 유신론과 유물론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사상들이 교묘히 결합된 범신론이다.

 

그들이 생각한 우주의 참모습은 자연의 이법(理法)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잘 조화되어 변화하는 코스모스로 파악하였다.

우주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시간 속에서 발생했고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끝없는 세계이다.

자연 속의 사물들은 공기, 물, 흙, 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요소는 불이다.

 

 불은 물질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생동하는 신적 원리, 즉 로고스(logos)로서 세계의 모든 존재 속에 스며 있는

세계 영혼이다.

자체로 완전하고 영원하며 질서정연한 물질적인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보편적 이성은 곧 신이라고도 불리운다.

프네우마, 예견, 운명도 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스토아철학은 신 즉 자연이라는 범신론적인 주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스토아 사상의 신은 유신론의 신과 유사하게 완전하고 최고선이며 인격을 갖추고 인간에게 복과 징벌을 내린다.

그러나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유신론의 대표적인 유일신론에서 말하는 신은 창조주로서 세계 바깥에 자유롭게 존재하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세계를

만들어 내었지만 범신론에서는 신이 세계 바깥에 초월해 있지 않고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 내재해 있다.

그리고 창조주로서의 신이라는 개념도 부정한다.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은 소위 신의 무한성을 훼손시킨다.

 

무한한 속성을 지닌 신이 자신 밖에 따로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창조 행위로 나타나는 결과의 세계는 신 이상의 것이 된다. 이는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넘어선 세계를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불가능하며, 더구나 무한한 신에 유한한

 세계를 더한다는 것은 신의 무한성 개념과 모순되기 때문에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은 신의 무한성을 모독한 결과를

자초한다. 그리하여 범신론은 유일신론과 달리 신은 생성 변화해 가는 자연 과정의 필연적인 실체로서 우주만물에

내재한다고 이해한다.

 

이와함께 스토아 철학의 인간관과 윤리관은 이성주의와 금욕주의로 대표된다.

 즉, 스토아철학자들은 이성의 법칙에 의해 운행하는 자연에 대한 사고와 다르게 인간과 삶에 대하여는 비관주의적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신적 이성이 지배하는 자연속에서 이성을 공유하고 있는 점에서 신의 일부이다.

소우주에 해당하는 인간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이성법칙에 따라야만 인간의 타고난 자연적인 본성에 부합된다.

이성적 영혼이 인간을 지배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고 행복하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비이성적인 부분 즉, 감정, 욕구, 정념을 지배케 함으로써 자연법에 일치시키고 인간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알맞은 의무를 드러내고 실천하게 만듬으로써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삶의 최고 목표는 실천적 덕이다. 덕은 그 자체로 가치로운 것이며, 일체의 존재에 대한 지혜로운 통찰과 동일한 것이다.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덕을 목표로 삼을 때 행복은 달성된다.

  이러한 이성에 투철하고자 하는 철학은 헬레니즘이란 무대배경을 통하여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성적인 자연세계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이성법칙에 따라 질서롭게 조화를 이루는 결정론적인 세계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세계는 전쟁과 패배, 불행과 고통으로 점철되는 무질서의 세계이다.

 

더이상 인간은 일상적인 행복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세속적인 성공과 행복의 성취는 우리의 능력 밖에 머문다.

따라서 스토아학파에서 말하는 행복은 능력의 발휘보다는 인간의 욕구를 억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혼돈의 세계속에서도 인간은 이성에 따라 통찰하고 운명을 감수하며, 의지의 힘으로 현실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다.

 

삶의 목적은 오로지 이성의 의한 냉담한 부동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는 육체적인 욕구, 충동, 정서로부터 해방된 자유이며 인간영혼의 덕인 것이다.

  스토아철학 초기의 비관적이고 숙명론적인 성격은 로마시대에 접어들면서 건실한 로마의 정신으로 변모하여 사회에 대한 엄격한 의무감, 동포애, 윤리적인 사명감을 대변하게 된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도서]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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