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
No more champagne
And the fireworks are through
Here we are, me and you
Feeling lost and feeling blue
샴페인도 다 떨어지고
불꽃놀이도 끝났어요
이제 당신과 나는 여기에
씁쓸히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어요
It's the end of the party
And the morning seems so grey
So unlike yesterday
Now's the time for us to say
파티가 끝나고 맞는
아침은 너무도 쓸쓸해요
어제와는 정말 다르군요
이제 이렇게 말할 시간이에요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May we all have a vision now and then
Of a world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You and 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 모든 이웃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래요
행복한 새해 맞이하세요
모두 희망과 도전할 의지를 갖기를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누운 채 죽어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당신과 나와 함께
Sometimes I see
How the brave new world arrives
And I see how it thrives
In the ashes of our lives
Oh yes, man is a fool
And he thinks he'll be okay
Dragging on, feet of clay
Never knowing he's astray
Keeps on going anyway
때로 나는 세상이 얼마나 용감하게
시대를 살아 왔는지 알게 되요
그리고 인생의 파편을 딛고
번성해 온 것도 깨닫게 되죠
그래요,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진흙탕에 빠진 발을 끌고 있지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걸 몰라요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에요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May we all have a vision now and then
Of a world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You and 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 모든 이웃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래요
행복한 새해 맞이 하세요
모두 희망과 도전할 의지를 갖기를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누운 채 죽어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당신과 나와 함께

Seems to me now
That the dreams we had before
Are all dead, nothing more
Than confetti on the floor
It's the end of a decade
In another ten years time
Who can say what we'll find
What lies waiting down the line
In the end of eighty-nine
예전에 간직했던 꿈들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남은 건 마룻바닥에 흩어진
색종이 조각들 뿐이에요
1970년대가 막바지에 다다랐어요
또 10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무엇을 찾게 될지,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1989년의 마지막이 되면 말이에요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May we all have a vision now and then
Of a world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You and 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 모든 이웃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래요
행복한 새해 맞이 하세요
모두 희망과 도전할 의지를 갖기를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누운 채 죽어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당신과 나와 함께
ABBA
아바는 1970년대에 유럽의 음악 인기 순위를 장악했던 그룹이다.
아바는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워털루>로 대상을 차지했으며, 1975년에 발표한 <아바>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멤버는 작사·건반 연주를 맡은 베니 안데르손, 작사·기타 연주를 맡은 비외른 울바에우스, 보컬인 앙네타 펠트스코그와 아니프리트 링스타트로 구성되었다.
안데르손과 링스타트,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가 각각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대표곡으로는 <맘마미아>·<댄싱 퀸>·
<슈퍼 트루퍼>·<위너 테이크스 잇 올> 등이 있다.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아바의 곡들을 결합하여 뮤지컬 <맘마미아>를 만들었다. 이 뮤지컬은 1999년 런던에서
초연한 뒤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바는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룹은 1970년대에 기억하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곡들을 발표하여 유럽의 음악 인기 순위를 장악했다.
그룹의 멤버들은 작사 및 건반 연주를 맡은 베니 안데르손(1946. 12. 16 스웨덴 스톡홀름~), 작사 및 기타 연주를 맡은 비외른 울바에우스(1945. 4. 25 스웨덴 예테보리~), 그리고 보컬을 담당한 앙네타 펠트스코그(1950. 4. 5 스웨덴
이왼쾨핑~)와 아니프리트 링스타트(1945. 11. 15 노르웨이 나르비크~)로 구성되었다.
그룹 결성 이전부터 수많은 포크와 팝 프로젝트를 함께 작업했던 안데르손과 울바에우스가 1969년에 링스타트와
펠트스코그를 만나면서 그룹 형성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4인의 그룹 구성원들은 음악 작업을 함께하는 사이였을 뿐만 아니라, 안데르손과 링스타트,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가 각각 데이트를 하면서 두 쌍의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 남녀 혼성 4인조는 카바레 공연을 주로 하는 페스트포크(Festfolk)라는 그룹명으로 데뷔했다. 페스트포크라는
이름은 거의 동일한 발음을 가지면서도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는 면에서 채택되었다.
스웨덴어 'festfolk'는 파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면서, 약혼한 커플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1970년대 속어
'fastfolk'를 뜻하기도 한다.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는 1971년에 결혼했고, 뒤이어 1978년에는 안데르손과 링스타트가 결혼했다. 패스트포크라는 그룹 이름으로 스웨덴에서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1972년에 '비외른과 베니, 앙네타와 아니프리트'라는
그룹명으로 녹음했던 노래 〈피플 니드 러브 People Need Love〉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해에 이 4인조 남녀 혼성그룹은 싱글 〈링 링 Ring, Ring〉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할 스웨덴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3위에 입상했다.
그 성공에 힘입어 그룹 매니저인 스티그 안데르손은 그룹 구성원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ABBA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밴드는 1974년 유로비전에 다시 출전했고 〈워털루 Waterloo〉라는 노래로 대상을 차지했다.
유로비전에서 승리를 거둔 지 1년여 만에, 그룹은 1975년에 발표한 〈아바 ABBA〉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맘마미아 Mamma Mia〉와 〈에스 오 에스 S.O.S.〉 등의 싱글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이 그룹은 4인조 그룹의 카리스마를 활용하기 위해 새롭게 떠오르던 뮤직비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했다.
1977년 발매된 아바의 앨범 〈어라이벌 Arrival〉이 디스코 열풍이 한창인 미국에 소개되었고,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하나인 〈댄싱 퀸 Dancing Queen〉은 미국에서 1위 싱글이라는 영광을 차지한 아바의 유일한 곡이 되었다.
그 곡은 따라 부르기 쉽고 디스코 클럽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앨범 The Album〉(1978)은 일종의 일탈을 보여준
앨범이었다.
그 앨범의 곡들 가운데 돋보이는 싱글 〈테이크 어 챈스 온 미 Take a Chance on Me〉는 비록 직설적이면서 종교적
합창음악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매우 훌륭한 곡이었고, 같은 면의 다른 곡들은 아트록을
암시했다.
한편 그 앨범의 뒷면은 〈금발머리 소녀 The Girl with the Golden Hair〉라는 제목의 '미니 뮤지컬'(mini-musical)로 채워졌다.
〈앨범〉이 그룹의 예술적 진전을 이루는 동안,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가 〈불레 부 Voulez-Vous〉(1979) 발매에 앞서 이혼함으로써 그룹 내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울바에우스와 펠트스코그 커플은 자신들의 결별로 인해 밴드 활동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당시 발매된 〈슈퍼 트루퍼 Super Trouper〉(1980)는 이전 곡들에서 볼 수 없었던 침울함이 배어 있었다.
특히 그런 분위기는 〈위너 테이크스 잇 올 The Winner Takes It All〉과 〈레이 올 유어 러브 온 미
Lay All Your Love on Me〉 같은 곡들에서 두드러진다.
안데르손과 링스타트도 〈비지터스 The Visitors〉(1981)를 녹음하는 중에 이혼했다. 이 앨범에 담긴 노래
〈원 오브 어스 one of Us〉의 레게 리듬은 그룹에 만연했던 어두운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두 번째 결별은 아바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1982년 밴드는 해체되었다. 아바의 그룹 해체 이후에
펠트스코그와 링스타트는 솔로 활동으로 제법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작사가 팀 라이스와 공동작업으로 〈체스 Chess〉(1984)를 만들었다.
앨범 〈체스〉는 〈방콕에서의 하룻밤 one Night in Bangkok〉이라는 놀라운 라디오 인기 곡을 만들어낸 컨셉트 앨범이자 뮤지컬 연극이었다. 그룹은 그 후 몇 년에 걸쳐 그들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한 빈번한 루머들을 부인했지만, 아바의 음악은 결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적은 없었다.
여러 그룹들이 아바의 노래에 대해 다양한 애정을 표시하면서 그룹의 노래를 연주했다.
특히 영국의 댄스 팝 그룹 이레이저는 〈아바 풍의 ABBA-esque〉(1992)라고 어울리는 앨범 제목을 붙인 EP음반
전체를 아바의 노래들로 채울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아바의 음악은 또한 영화에 자주 삽입되는 단골 음악이 되었고,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의 모험
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1994), 〈뮤리엘의 웨딩 Muriel's Wedding〉(1994)
같은 영화들에서는 줄거리와 배경 음악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뮤지컬 연극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던 울바에우스와 안데르손은 아바의 과거 발표곡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맘마미아 Mamma Mia!〉를 만들어냈다.
이 뮤지컬은 1999년 런던의 웨스트 앤드 극장가에서 초연한 뒤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을 맡은 〈맘마미아〉의 영화 버전은 2008년 세계 박스 오피스에서 최고의 영화들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룹은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아바(ABBA)
|
'POP SONG & ROCK'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roon 5 - Sugar (0) | 2016.01.02 |
---|---|
maroon 5 - Lucky strike , goodnight goodnight , (0) | 2016.01.02 |
Mireille Mathieu- Woman In Love(Une Femme amoureuse) (0) | 2015.12.30 |
Ben E King- Don`t Play That Song (0) | 2015.12.30 |
Nazareth - Love Hurts (0) | 201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