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ie Francis- Beautiful Brown Eyes
Beautiful Brown Eyes
Willie, oh Willie, I love you my darling
I Love you with all my heart;
Tomorrow we might have been married,
But liquor has kept us apart."
chorus: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Beautiful, beautiful brown eyes,
I'll never love blue eyes again .
"Seven long years l've been married,
l wish l was single again;
A woman never knows of her troubles
Until she has married a man."
Down to the barroom he staggered,
Staggered and fell at the door;
The last words that he ever uttered,
"l'll never get drunk any more."
(or I'll never see brown eyes no more)
윌리,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내 마음을 다해 사랑해요
내일 우리는 결혼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방랑벽이 우리를 갈라놓았어요
아름다운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아름다운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나는 결코 다시 푸른 눈을 사랑하지 않으리
그는 비틀거리며 술집을 누볐지요
그러다 문가에 쓰러져 버렸어요
그가 입밖에 낸 마지막 말은
난 이제 결코 갈색 눈을 더 이상 못볼거야 였지요
[Connie Francis]는 50년대말에서 60년대초까지가장 유명한 여성 보컬리스트였다. 또한 그녀는 최고의 인기와
최악의 불행을 10년씩 나누어서 누리고 겪었던 가수이기도 하다.
한 해에무려 9곡을 히트시켰던 가수가 [Connie Francis] 였으며 이 세상의 온갖 불행을다 맞이했던 가수도 역시
그녀였다. [Connie Francis]는 삶의 극과 극을 치달았던 가수이자한 여인이었다.
1938년 12월 12일 뉴 저지주에서 [Concetta Rosemarie Franconero]라는본명으로 태어난 [Connie Francis]는 네 살때부터 아코디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코디언연주실력으로 그녀는 그 당시 어린 가수와 연주자들의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NBC TV 쇼인[Startime]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후 나중에 그녀의 매니저가 되는프로듀서인 [George Scheck]가 [Connie Francis]에게
아코디언을 그만두고노래에 집중할 것을 권하여 이후 4년동안 매주 [Startime]에 출연하여노래를 하게 된다.
[Startime]의 진행자였던 [Arthur Godfrey]의제안으로 [Concetta Rosemarie Franconero]라는 본명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인 [Connie Francis]로 개명했다.
[Connie Francis]가 17세이던 1955년에는 그녀의재능을 지켜보던 MGM 레코드사의 제안으로 레코딩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첫 출발이 순탄 하지만은 않았다. 1955년 그녀의첫 싱글인 [Freddy]를 발표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약 2년동안에 걸쳐 발표한 9곡의 싱글 모두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첫 앨범실패 가수들을 내치는 레코드 업계의 관행으로 볼 때 이렇게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함에도불구하고 레코드사에서 그녀에게 지속적인 레코딩을 허락한것 역시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때 [Connie Francis]의 아버지는 흘러간 명곡들을 리메이크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제안을 했다.
얼른 마음에 내키지않았지만 [Connie Francis]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결국 이후부터 연속적인 히트곡을
쏟아놓게 되었다.
그녀의 최초의 히트곡은[Who's Sorry Now] 였다. 이 곡은 [Bert Kalmar & Harry Ruby]의 1923년
오리지널 히트곡으로 1946년에 [Harry James] 악단의 노래(보컬: 윌리스미스)로 다시 히트하기도 했다.
[Who's Sorry Now]의 히트는그녀를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에서는 넘버 4를 기록했다.
1958년 [Dick Clark]의 [American BandstandTelevision Show]에 데뷔한 [Connie Francis]는 1958년
한 해에만 모두 다섯 곡을 히트시키며 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 중에는 [Neil Sedaka]가 작곡해준 [Stupid Cupid]가 차트 14위에 그리고[My Happiness]가 2위를 기록했다.
[My Happiness]는 [John & Sandra Steel]콤비의 1948년 오리지널 히트곡이었다.
[Connie Francis]의 전성기는 1958년부터 1962년까지였다.
이 기간에 그녀는 매년 평균 8곡의 차트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58년에 5곡을 히트시킨 [Connie Francis]는 1959년에도 7곡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 중 [Lipstick on Your Collar]가 5위, [Among My Souvenirs]가 7위 그리고
[Trankie]가 차트에서 9위 히트를 기록했다.
1960년에는 무려 9곡의 차트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 [Everybody's Somebody's Fool]과
[My Heart Has A Mind Of It's Own]이 넘버원 히트를기록했다.
그리고 [Mama]는 8위 히트를 기록했다.
1961년에도 그녀는 무려 9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했는데그 중 [Where The Boys Are]가 4위에 [Together]가
6위 그리고[When The Boy In Your Arms(Is The Boy In Your Heart)]가 10위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1962년에는 6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Don't Break The Heart That Loves You]가
넘버원 히트를 기록했고 그 뒤를 이어[Second Hand Love] 7위, [Vacation]이 9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Connie Francis]는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탑 텐 히트곡만 알아보아도 지면이 다 차버릴 정도로 팬들의
사랑속에푹 파묻혀 인기를 누렸던 가수였다.
화려한 히트 활동을 계속하며 그녀는 [Ed Sullivan],[Dean Martin], [Bonoff], [Dick Clark], [Perry Como]등이 진행하는 TV 쇼의단골 출연자가 되었고 당대 대중문화 최고의 명사로 부각되며 60년대를 완전히자신의 연대로
만들었다.
[Connie Francis]는 많은 나라의 언어들로 그녀의히트곡들을 레코딩하여 세계 여러 나라들의 차트에 올려놓았다.
또한팝 뿐 아니라 몇장의 컨트리 앨범을 녹음하기도 하였다.
다재다능하였던 [Connie Francis]는 노래뿐만 아니라[Follow the Boys(1963)], [Looking for Love(1964)]
그리고[When the Boys Meet the Girls(1965)]등의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며타이틀송들을 직접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70년대는 불운의 연대였다.
사실음악적인 성공에 반하여 그녀는 결혼을 네 번이나 하는등 그다지 행복한 생활을 하지는못했다.
그녀의 더 큰 불행은 1974년 11월 8일에 시작되었다.
이날 [Connie Francis]는뉴욕주 롱 아일랜드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근교 모텔에 투숙했는데 창문으로 뛰어든
불량배에게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Connie Francis]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더 커다란 불운이 계속 되었는데 암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사망했고뒤이어 남동생이 총격을 당하고 목숨을 잃는 사고를
맞이했던 것이다.
뿐만아니라[Connie Francis]는 몇 해전부터 앓아오던 축농충으로 고통끝에 1977년에수술을 했으나 수술이 잘못되어 모두 네 번에 걸쳐 다시 대수술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곱고 낭랑했던 목소리를 되찾지는 못했다.이 당시 그녀는 세 번째 결혼까지 파경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가수로서 [Connie Francis]의 생명은 완전히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토록 화려했던 [Connie Francis]의60년대, 그러나 70년대에는 60년대의 화려한 영광을 시기하고 찾아든
엄청난 불행으로 몸부림쳐야 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견딜 수 없었던 고통을그녀는 이겨냈다.
아마 불행과 싸워이길 수 있었던 것은 60년대의 영광이 있었기에가능했을 것이다.
70년대말 [Connie Francis]는 지난날 화려했던 시절을 발판삼아 새로운앨범과 함께 재기했다.
그리고 80년대초에 발표했던 앨범 [There's Still A Few Good LoveSongs Left In Me]에 이르기까지 히트 차트에 오르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한 번떠난 스타덤은 좀처럼 그녀의 곁으로 돌아올줄 몰랐다.
60년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근 10년 가까운 허무한 공백의 세월을 보낸 뒤에 재기한
[Connie Francis]에게 변화무쌍한 팝 음악계는 스타덤의 자리를 내어 주지않았다.
결국 1970년 이후 [Connie Francis]의 노래는 차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 [Connie Francis]는 60년대 팝음악계의 전설로서 어제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그녀의 노래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애청곡으로 들려지고 불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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