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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Sarah Brightman-First of May

 

 

 

 

 

 

 

 

 

 

 

 

 

 



 

Sarah Brightman-First of May

 

 

 

 

 

First Of May

 

 

 

When I was small,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내가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크게 느껴졌지요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다른 친구들이 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사랑을 나누곤 했지요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왜냐고 묻지 마세요. 세월은 우리도 모르는 새 흘러 버렸거든요
 some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누군가가 저 멀리서 이사를 왔거든요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이제 우리는 자라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작게 느껴지네요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당신은 그 시절에 대해 묻지 않네요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에요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5월의 첫날이 오면 누가 눈물짓고 있는지 생각해 주세요
 
The apple tree that grew for you and me.
사과나무는 당신과 나를 위해서 자라났어요
 I watched the apples falling one by one.
난 사과가 나무에서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보았죠

 

And I recall the moment of them all,
그리고 난 지난 모든 순간들을 회상해요
 the day I kissed your cheek and you were gone.
당신의 뺨에 입맞춤 하던 날과 당신은 달아났지요
 
Now we are tall,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이제 우리는 자라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작게 느껴지네요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당신은 그 시절에 대해 묻지 않네요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하지만 그대와 나,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에요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5월의 첫날이 오면 누가 눈물짓고 있는지 생각해 주세요
 
When I was small,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내가 어릴적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크게 느껴졌지요
 
do do do do do do do do do...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내게 왜냐고 묻지마세요. 세월은 우리도 모르는 새 흘러 버렸거든요
 some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누군가가 저 멀리서 이사를 왔거든요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빚어낸 순수한 이미지와 영롱한 음색은 이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성역으로 자리 잡았으며 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다양한 레파토리 역시 오늘날

그녀가 누리고 있는 성공을 뒷받침하는 요소가 되었다.

1960년 8월 14일 영국의 버크햄스테드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사라 브라이트만은 일찍부터
예술적 소양을

쌓으며 성장하였다.
다양한 성악곡들을 항상 들을 수 있었던 가정환경은 사라 브라이트만을 자연스럽게 뮤지컬 무대로 이끌었고 예술전문학교와 왕립음악학교를 거치면서 점차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13살 되던 해인 1973년 런던 웨스트 엔드의 피카딜리 극장에서 공연된 [I And Albert]는 그녀가
출연한 첫 공연이자 뮤지컬의 매력을 온몸으로 흡수한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기도 했다.


평상시 (Maria Callas)와 존 서덜랜드의 음악세계를 동경해오던 그녀는 이제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감지하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노래에서 뿐만 아니라 무용에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사라 브라이트만은 16세가 되던 해
댄스 그룹인 팬스 피플

(Pans People)에 참여하였고 2년 뒤인 18세 때에는 전문적인 무용단인 알린 필립스의 핫 가쉽(Hot Gossip)에

 입단하여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마음껏 뽐내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스튜어트와의 결혼 생활동안 그녀는 두 번에 걸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결혼한 첫 해에 발표한 싱글 앨범 [I Lost My Heart To A Starship Trooper]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은 것과 1981년 런던에서 공연된 [Cats]의 오리지널 캐스팅 멤버로 참여하며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인 [Song And Dance]에 출연하면서 애정을 키워온 사라와 앤드류는
마침내 84년 결혼에 이르게 되었고, 부부이자 음악적인 동반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1985년 [Requiem]에서 주연을 맡아 뉴욕과 런던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펼치며 그래미의 Best New Classical Artist 후보에 올랐고, 1986년에는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뮤지컬 [The Phantom Of Opera]에서 크리스티나 역을 맡으며 최고의 뮤지컬 가수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사라 브라이트만은 88년 Drama De나 Award의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뮤지션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이른다.

1989년에는 자신의 첫 솔로앨범 [The Songs Got Away]를 발표하며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였지만
다음해인 1990년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의 6년간에 걸친 결혼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혼 후에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브로드웨이 캐스트 [Aspects Of Love]에 출연하며 음악적인 동반자로 남은

이들은 [The Music Of Andrew Lloyd Webber In Concert]를 통해 변치 않는 우정을 드러내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피할 수 없었던 사라 브라이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이루기 위해 모든 열정을 불태운
한 여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춰지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Amigos Para Siempre'를 불러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고,

 1993년에는 앨범 [Dive]를 발표하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일본 순회연주를 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콘서트활동과 앨범작업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그녀가 본격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앨범 [Timeless]를 발표한

 1997년 이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만큼이나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 프랑크 피터슨과 손잡고 발표한 [Timeless]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그녀를 일약 최고의 크로스오버 가수로 평가받게 하였다.


세계 챔피언인 권투선수 헨리 마스케의 은퇴경기에서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함께 부른 'Time To Say Goodby'가 담겨져 있어 더욱 앨범을 가치를 빛내주었고, 영화음악, 종교성악곡, 오페라 아리아, 팝음악 등 폭넓은

 레파토리를 담아내어 그녀의 진가를 드러내었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성공적인 행보는 99년 작[Eden]에서도 계속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2백만 장이 넘는 음반판매고를 올린이 작품으로 그녀의 명성은 이제 확고한 것이 되었다.

 2000년에 발표한 [La Luna] 역시 빌보드의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차트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이 여세를 몰아

개최한 북미 순회공연에서는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최정상의 뮤지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뮤지컬의 여왕에서 크로스오버의 디바로 화려한 변신을 보여준 사라 브라이트만이 또 다시 우리앞에 펼쳐 보일

 음악보따리는 분명 그녀의 열정이 쏟아내는 만큼의 산물이겠지만,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비로운 매력은 그녀의 음악여정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주요앨범

[The Andrew Lloyd Webber Collections]


사라 브라이트만이 타이틀 롤을 맡았던 [Requiem], [The Phantom Of Opera], [Cats] 등에 수록되었던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들을 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뛰어난 음악세계와 뮤지컬 가수로써 사라브라이트만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품.

[Timeless]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이혼한 후 프랑크 피터슨과 손잡고 발표한 1997년 작품.

싱글로 발매되어 전 세계적으로 1000만장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렸던 ‘Time To Say Goodbye'가 수록되었다. 빌보드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차트에 35주 동안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사라 브라이트만을 크로스오버의 여왕으로

등극시켰다.

 

 

 


[Eden]
클래식과 팝을 아우르는 다양한 레파토리를 담고 있는 이 작품에는 프랑크 피터슨의 뛰어난 편곡과 사라 브라이트만의 풍부한 감성이 잘 조화되어 [Timeless] 못지않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인 ‘My Heart Will Go on'을 이탈리아어로 번안하여 부른 ‘Il Mino Coure Va', 칸사스

(Kansas)의 대표곡 ’Dust In The Wind', 푸치니의 오페라 [Turandot]에 수록된 ‘Nessun Dorma' 등 정겨운

선율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La Luna]
더욱 세련되어진 사라 브라이트만의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된 작품. ‘A Whiter Shade Of Pale', 'Skarborough

 Fair'와 같은 팝의 고전들과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헨델의 클래식곡들을 그녀만의 신비로운 음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빌보드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며 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작품.

[Classics]
사라 브라이트만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소품들을 프랑크 피터슨의 편곡으로 들려주고 있다. 쇼팽, 슈베르트,

푸치니의 작품들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Requiem]에 수록되었던 ‘Pie Jesu'의 새로운 버전 등 그녀의

새로운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화제작.

[A Whiter Shade Of Pale]
2000년도에 발표한 [La Luna]의 수록곡인 ‘A Whiter Shade Of Pale'의 다양한 버전들과

’A Question Of Honor'의 리믹스 버전이 수록된 싱글 앨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지금은 남남지간이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두번째 부인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다. 영국 태생으로 아름다운 음색의 고음을 구사하는 그녀의

명성은 두 세기에 걸쳐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녀의 무대경력은 13세 때부터 시작된다. 데뷔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발레 레슨을 받는 등

 매사에 성취욕이 강한 여인이었다.

16세에는 댄스그룹(Pans People)의 멤버로 참여하고,18세에는 알린 필립스의 무용단(Hot Gossip)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웨버와의 첫 만남은 81년 '캐츠'의 오리지날 캐스팅에서였다. 그 후 '송 앤 댄스(Song and Dance)', '레퀴엠

 (Requiem)'의 제작에 함께하는데, 특히 '레퀴엠'은 앨범판매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어 그녀를 '그래미

 최우수 클래식 신인상' 후보에 오르게 한다. 여세를 몰아 제작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오페라 유령'.

영화 '타이타닉'과 '쥬라기 공원'을 제치고 20세기 최고의 입장권 수익을 기록한 이 작품에서 사라의 인기는 천장부지로 상승한다.

그래서 '유령'은 웨버가 부인 사라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의도적 작품이란 설까지 나왔다.

 
뮤지컬에서 시작된 그녀의 활동영역은 음악적 깊이를 더해 가며 세계로 확산된다. 92년에는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식 주제가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를 불러 지구인을 침묵시킨다.

 

몬주익 경기장에 뛰어드는 황영조 선수의 자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우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노래였다.

 웨버의 히트곡들로 구성된 뮤지컬 콘서트 투어도 시작하는데, 1999년 한해 동안만도 전세계 81개 대도시에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둬 이른바 '사라 브라이트만 신드롬'까지 일으킨다.

웨버와의 결별은 사라의 음악적 자존심에서 비롯됐다. 사라에게 웨버는 사랑하는 남편이자, 동료이며, 음악의

파트너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성공을 웨버의 그늘 덕이라 평가하자 분연히 독자적 행보를 내디뎠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잠시의 공백기를 거쳐 97년 사라는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부른 '이별의 시간(Time to say goodbye)

'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이목을 모으며 자력갱생의 위대한 여가수로 재등장한다.

2000년, 사라는 99년 3월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선시티 공연실황을 담은 비디오 앨범 '에덴에서의 하룻밤

(One Night in Eden)'을 내놓고 또 다른 행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내 성공은 내 노력의 결과다"라며 웨버가 선사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버린 사라 브라이트만. 올해 이미

마흔일곱(1960년 생)의 불혹의 후반에 접어들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