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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Mireille Mathieu-Amour Defendu


 

 

 

 


Mireille Mathieu-Amour Defendu

Amour Defendu

 

 


Le vent d'octobre froissait la riviere
Les plis de ma robe frolaient la bruyere
L'air etait si tendre que j'ai voulu prendre
Ta main qu'une bague m'avait defendu


10월의 바람은 강을 주름지게 하고
내 옷의 주름들은 히스나무를 가볍게 스치네
하늘이 너무나 부드러운 느낌을 줘서
나는 네 손을 잡길 원했지 반지때문에 잡지말아야할 네 손을


La seule faute restera la mienne
J'ai oublie l'autre et j'ai dit 'je t'aime
Les fleurs de la lande aux couleurs de l'ombre
ont tout recouvert et mon coeur s'est perdu


그 유일한 잘못은 내 잘못으로 남을 거야
나는 다른 사람을 잊고 널 사랑해라고 말했지
들판의 꽃들은 어두운 빛깔로 모든 것을 뒤덮고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지


Amour de reve, amour de l'automne
Quand le jour se leve c'est l'hiver qui sonne
on a pris le monde pour quelques secondes
Mais on ne vit pas d'un amour defendu

꿈같은 사랑, 가을의 사랑
동이 틀 때 찾아온 것은 바로 겨울이야
우리는 잠시동안 세상을 얻었지만
우리는 금지된 사랑으로 살지 않았지


Il y avait l'autre il y avait ses larmes
J'ai repris ma faute j'ai jete les armes
Les fleurs de la lande aux couleurs de l'ombre
Ou l'on s''est aimes ne me reverront plus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는 눈물을 흘렸지
나는 내 잘못의 책임을 다시 졌고 나는 무기를 팽개쳤지
들판의 꽃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던 그늘의 빛깔로
더 이상 내게 떠오르지 않을거야


Amour de reve, amour de l'automne
Quand le jour se leve c'est l'hiver qui sonne
on a pris le monde pour quelques secondes
Mais on ne vit pas d'un amour defendu

꿈같은 사랑, 가을의 사랑
동이 틀 때 찾아온 것은 바로 겨울이야
우리는 잠시동안 세상을 얻었지만
우리는 금지된 사랑으로 살지 않았지


on a pris le monde pour quelques secondes
Mais on ne vit pas d'un amour defendu
Mais on ne vit pas d'un amour defendu

우리는 잠시동안 세상을 얻었지만
우리는 금지된 사랑으로 살지 않았지
우리는 금지된 사랑으로 살지 않았지


 

 

 



 

 

새처럼 노래하는 [Avignon(아비뇽)]의 참새[Mireille Mathieu(미레이유 마띠유)]는 1946년 7월 22일
프랑스 남동부 [Avigno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가난한 집 14명의형제자매 중 맏딸로 태어나 마치 현대판 신데렐라처럼 동화같은 삶을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 [Roger]는 비석공이었는데 그의 수입으로는 생활에 어려움이 많아식구들이 모두 나가 함께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던 집은 물이 새는등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녀의 재능은 어렸을때 부터 알려져 그녀가 처음으로 무대에 출연한것은 4살때 성당의 자정 미사때 였다.

 

어릴 적 그녀의 꿈은 같은 프랑스 국적에 31년연배인 [Edith Piaf(에디뜨 삐아프: 1915.12.19~1963.10.11)] 처럼 유명한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정말 그녀의 꿈처럼 처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Edith Piaf]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음색과 창법이 비슷했다.

 학교에서그녀는 [Edith Piaf]의 [La Vie En Rose(장미빛 인생)]을 불렀다.

 

학교를 다니던 도중 그녀는 [Laure Colli?re]라는선생에게 발탁되어 가수가 되는길과 인격체 형성등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것는 그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으로 만들었고노력없이 얻을수 없다는 집념으로 노래에 전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15세때 [Avignon]의 샹송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여 [Barclay(버클레이)] 레코드의사장 [Eddy Barclay

(에디 버클레이)]에게 스카웃되었다.

그녀가 19살때인 1965년 12월프랑스 국영 TV 방송국은 1963년에 사망한 [Edith Piaf]의 대를 이을 가수를 발굴하는
신인무대 성격의 프로그램으로 [Tele Dimanche(텔레 디망쉬)]라는 아마추어 샹송콘테스트를 열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 결승에서 19살 작은 체구의 그녀는[Edith Piaf]의 명곡 [L'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를 불러서 우승을차지하였다.

매스컴에서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2년전에 세상을 떠난[Edith Piaf]가 다시 탄생했다고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그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가수[Johnny Hallyday(조니 할리데이: 1943년~)]의 매니저
[Johnny Stark(조니 스타크)]가 마침 그 프로를 보고 있었는데[Mireille Mathieu]와 계약을 맺고 4주만에 그녀를

 모든 샹송 가수들의꿈인 올랑피아 극장 무대에 서게 하였고 그는 죽기전까지 그녀 곁에 함께 하였다.

그녀는 다음해 1966년 봄에 데뷔하였고 '사랑의 신조'가 히트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Paul Mauriat(폴 모리아)]가 작곡한 데뷔곡 [Mon Credo(나의 신조)]란 그녀의 샹송모음집이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것이다.

 

그녀는 하루 사이에 애수에 젖은 깊은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가수로서 성공의 길을 걷게 된다.

 

이로인해[Mireille Mathieu]는  프랑스의 노래하는 대사의 역할을 하게되며 [Mireille Mathieu]는 모든 팬들을 위해

자신의 노력을아끼지 않는 최고의 가수로 성장한다.

 

[Mireille Mathieu]는 불어, 독어, 영어, 이태리어,스페인어, 러시아어, 핀란드어, 중국어등 9개국 언어로 1,200여
곡을 불렀는데 그녀의 공연은 [Tom Jones]등 세계적인 가수가 따라다녔고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억 5천만장

 이상의 판매고 기록도 남겼다.

[Mireille Mathieu]의 초기 음악은 [Edith Piaf]와 같은 샹송이었지만 70년대이후 음악은 샹송과 팝을 섞어 놓은

프렌치 팝의 형태로 바뀌어 버렸다.

프랑스에서는[Mireille Mathieu]를 [Chanteureuse A Voix(샹퇴뢰즈 아 브와)]라고 부르는데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는게 목적인 가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불리우는가수들은 마이크가 필요없을 정도로 강한 오페라적인 발성을 하는 공통점이있는데 [Luis Mariano

(루이스 마리아노)]와 [Edith Piaf]가 들었던그 호칭을 [Mireille Mathieu]가 이은 것이다.

 

[Mireille Mathieu]는 [Edith Piaf]가 선망하는롤 모델이었지만 [Edith Piaf] 그늘만 따라 다녀야 했던
[Mireille Mathieu] 하지만 먼 훗날 자신이 그녀의 위치에 올라설미래를 떠올리게 돼서 영광이라 하며 행복해 했던

 [Mireille Mathieu][Mireille Mathieu]의 키는 150cm 정도 선이지만 그녀의 음악 스케일은 크고
까만 빛나는 눈동자와 검은 금발에 초코 송이같은 단발 머리형이 [Mireille Mathieu]의상징으로 되어있다.

 

 이 곡은 곡명처럼 잔잔한 왈츠 리듬의 노래로 첫 눈에 반한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남자가 배신하고 상처만 남긴 채 떠나간다는 슬픈내용인데 [Mireille Mathieu]의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그녀의 혼 속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고

 있다.



 

 

 

 

 

 

 

 

'영화주제곡 '로망스'로 유명했던, '프랑스 영화' 금지된 장난'이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미, 'TV방송'을 통해 여러차례 방영한 적도 있으며,'1952년도'에 만들어진 작품이며,

감독은, '르네 끌레망'입니다.

 

이 영화는 '1952년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산마르코 금사자상(작품상)'과 '아카데미외국 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의 주제가로 나왔던 '로망스'는, 원래, '16세기'부터 전래되어왔던 '스페인 민요'이며, '원제'는 '작가 미상의 로망스'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 '로망스'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으며, '나르시소 에페스'가 '기타'로 '편곡 연주'하여 유명해진 곡입니다.

이 영화는, 원래, '프랑소아즈 보이어의 소설' 'Jeux Interdits'에 기초를 두었으며, 이 소설은 '1947년도 작품'입니다.

 

그럼, 이 영화에 대한 줄거리 소개를 하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6월' '남프랑스의 농촌 마을'에, '파리'에서 피난 오다,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해,

'부모'도 잃고 '죽은 강아지'를 안고 헤매던, 소녀 '폴레트가, 근처 어느 농가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곳은, '전쟁'과 상관 없다는 듯이 아주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폴레트는, 여기서, '어린 암소'를 찾아 헤매던, '소년 ''미셸'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미셸은, 폴레트를

가엾게 여겨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되죠..

 

미셸은, 부모님을 설득하여, 폴레트를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하고, '폴레트의 죽은 강아지'를 '무덤'에 묻어준 뒤,

'십자가'를 세워주게 되죠.. 미셸은, 죽은 쥐까지도 '죽은 강아지무덤'옆에,  무덤을 만들어서 십자가를 만들어주죠..

모든 죽은 것들에 대해서는 무덤을 만들어주고, 십자가를 세워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폴레트는,

'신부님'에게, '주기도문 외우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요.. 미셸은, 폴레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새, 벌레'등 죽은 동물들'을 모아, 무덤을 만들어 주고,십자가를 만들어주죠..

 

십자가를 세워줄 때마다 무덤은 점점 늘어나게 되고, 십자가 더욱 필요해진 미셸은 ,'교회제단'에 놓여진

'십자가'를 훔치려 하고, 거기에 거치지 않고, '죽은 형의 영구 마차'에서 십자가를 훔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폴레트의 죽은 강아지무덤'옆을 이쁘게 치장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미셸은 심지어, '성당'에서도 '미사'에 사용하는 십자가를 훔치려다 '신부님'께 크게 혼이 납니다.

'죽은 형의 무덤'에서 십자가가 사라진 것을 본 아버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옆집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옆집과 크게 싸움을 벌이게 되죠.. 이에, '신부님의 중재'로, '미셸의 짓'으로 판명이 되는대요..

 

'묘지 십자가의 행방'을 추궁하던 미셸의 아버지가, '전쟁 고아들'을 데려가려던 경찰이 오는 것을 보게 되자,

미셸에게, 십자가의 위치를 얘기하라고 닥달하죠..

이에, 미셸은, 폴레트와 헤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다 실토하게 되지만, 결국, 폴레트는,

'적십자 고아센터'로 압송되어, '대합실'에서 혼자 대기하게 되죠..

 

'혼자 있을 때, 무서우면 곧장 달려오겠다'던 미셸의 말을 기억하던, 폴레트는, 울먹이면서,

'미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대합실을 뛰어나가는 모습이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이자,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금지된 장난'이란, '죽은 사람을 위한 무덤'에 십자를 세워주는 데 있어서, 순진 무구한 아이들이, 장난삼아,

이 십자가를 훔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참상'을, 순진 무구한 아이들의 동심을 통해서, 본  '어른들의

에고이즘(이기주의)'를 고발하여,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서, 잘 묘사한 작품입니다.

 

 

 

 

 

 



 

 

 




 

 

 

 

 




 





 

 

 

 

 

 

 

 







 

 

 

 

 

 

 

 

 


 

카루소(Caruso),



1986년에 발표한 루치오 달라의 앨범, "DallAmeriCaruso"에 수록된 '카루소(Caruso)'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인 나폴리에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약한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를 추억하는 노래이다.

중병을 앓고 있던 카루소는 1921년 자신이 활동하던 뉴욕에서 고향인 이탈리아로 건너오게 된다. 고향에 도착한 카루소는 나폴리 만의 남쪽에 위치한 또 다른 항구도시인 쏘렌토로 가서 그 곳의 유서 깊은 호텔 Excelsior Vittoria에서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낸다.

이 호텔에서 카루소가 묵었던 방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그 테라스에 서면 가까이 나폴리 만의 푸른 바다와 그 너머 나폴리가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방이 바로 카루소와 루치오 달라를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80년대 초 어느 날 루치오 달라는 쏘렌토에 있는 이 호텔을 방문해 카루소의 방을 둘러 보았다. 그가 방문한 시간은 밤이었는데,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나폴리 만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 호텔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카루소를 떠올렸고 마침 호텔 방에 있던 피아노에 앉아 거의 즉석에서 '카루소'를 작곡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