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 Vissi - Paramithi Hehasmeno(전설같은 사랑)
Paramithi Hehasmeno(전설같은 사랑)
A forggotten fairytale is
The love you are asking.
당신은 내게
잊혀진 전설같은 사랑을 원해요.
A faked coin that was passed on
Among the sounds of the market.
Tonight I'm going to tell you
And sing for you
시끌벅적한 시장의 소리에
가짜 동전이 실려가듯이...
오늘밤 당신에게
슬픈 노래를 불러드릴께요
A sad song about those who stay late at night
Talking about the weather.
날씨를 얘기하며 늦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 관한 노래를 말이예요.
I am crying in my dreams
And I wake up sobbing
나는 꿈속에서 울어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깨어나지요
Love is lie, I tell myself
And a game for the fools.
사랑은 거짓이라고 그리고 바보들의 장난이라고
내 자신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스풍의 미모와 가창감각으로 [Anna Vissi(안나 비시)]는 많은 놀라운 앨범을 출반하였고 일련의 감동적인
히트곡들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우리들에겐 애틋한 발라드 음악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으나 그리스의 마돈나로 불리고 있는 만능 가수이다.
[Anna Vissi]의 음악적인 다양성은 오페라에서 부터 사랑의 발라드로, 팝/락, 댄스음악으로 그리고 그녀의 모국어에서 영어로 매끄럽게 넘어간다.
100만장 이상 팔린 황금음반 이외에도 3배의 100 만장이 팔린 플래티넘을 기록하였으며 수많은 매진된 쇼를
공연하였고 미국의 그래미상과는 조금 다른 그리스 음악상의 1997년도 최고 여성가수상과 최고 라디오방송 노래상을 포함한 많은 중요한 상을 받았다.
[Anna Vissi]는 1957년 키프러스에서 태어났다.
[Anna Vissi]는 겨우 6살때에 키프러스 음악학교 입학을 허가 받았고 [Anna Vissi]가10대에 접어들 무렵
[Anna Vissi]의 가족들은 그리스로 이사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Anna Vissi]의 음악적인
출세가 싹을 보일 수 있었다.
머지않아 이 재능있는 가수는 제작자와 나중에 [Anna Vissi]와 결혼한 유명 작사,
작곡가인 [Nicos Karvelas]를 포함한 많은 음악계 종사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96년에 [Anna Vissi]는 데뷔 앨범인 열대성 기후라는 의미의 [Klima Tropiko]를 발표하였다.
[Anna Vissi]의 첫번째 혼신의 역작은 평론가들의 달아 오르는 논평을 불러왔고 플래티넘을 빠르게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년후에는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노래부르도록 초청받았는데 그것이 [Anna Vissi]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되었다.
일년후에는 상과 히트곡들이 벌써 쌓여갔었다.
[Anna Vissi]의 두 번째 앨범 [Travma]도 시장에 나왔는데 출반 2주도 안되어 데뷔 2년생의 가수가 100만장의
골드를 해냈고 반년후에는 3배의 플래티넘에 달하였다.
[Travma]에서 히트한 곡중의 하나가 [Ric Wake(릭 웨이크)] 작품의 [Forgive Me This] 이었다.
[Ric Wake]는 아마도 국제적인 스타 [Celine Dion(셀린 디온)]과의 작품으로 제일 잘 알려져 있을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처음에 [Anna Vissi]를 한곡의 기적적 히트나 몇달 이내의 단명 스타로 생각하였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1998년에 최우수 앨범, 최고의 노래, 최우수 여성가수 그리고 최고의 라이브 출연을 포함한[Anna Vissi]의 명성에
일곱개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파퓰러 음악상 수상식에서 걸어나갈때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틀렸음이
증명된 것이다.
[Anna Vissi]는 멈출수 없는듯 미국과 영어권 시장을 겨냥하여 그녀의 앨범 [Everything I am]의 출반으로
[Anna Vissi]의 명성을 넓혀갔다.
이 앨범은 [On A Night Like This], [Still In Love With You], [Supernatural Love], [Kick The Habit],
[No More The Fool]과 같은 멋진 노래들을 담고 있다. 출반을 지지 응원하기 위하여 [Anna Vissi]는
미국 여행길에 올라 뉴욕과 로스앤젤리스같은 중요 지역들에서는 쇼도 공연하였다.
2000년 이후 소니뮤직과 [Anna Vissi]의 경영진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불굴의 [Anna Vissi]에게는 전세계가
마치 열린 무대처럼 보였다.
1990년에 우리나라 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과 '천국의 아이들'에 OST로 사용된 [Paramithi Hehasmeno
(전설의 사랑)]가 사용된 이후 [Anna Vissi]란 아티스트가 우리에게 각인되어 졌으며 흥미로운건 그리스음악의
대부분에서 애조와 슬픈감정이 담겨지고 터키를 중심으로 중동의선율이 녹아 흐르는데 이는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던
그리스의 불행한 역사속에 동서양의음악이 만난 산물이라는 것을 [Anna Vissi]의 노래에서도 심심찮게 터키풍의
선율을 맛볼수 있다
1990년 MBC드라마 "폭풍의 계절"에 사용된 Paramithi Hehasmeno(전설의 사랑)가 사용된 이후 Anna Vissi란
아티스트가 우리에게 각인되어졌으며 그리스풍의 미모와 가창감각으로 Anna Vissi 는 많은 놀라운 앨범을 출반하였고 일련의 감동적인 히트곡들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그녀의 음악적인 다양성은 오페라에서 부터 사랑의 발라드로, 팝/락으로 그리고 그녀의 모국어에서 영어로 매끄럽게
넘어간다.
100만장 이상 팔린 황금음반 이외에도 3배의 100 만장이 팔린 플래티넘을 기록하였으며 수많은 매진된 쇼를
공연하였고, 미국의 그래미상과는 조금 다른 그리스 음악상의 1997년도 최고 여성가수상과 최고 라디오방송 노래상을 포함한 많은 중요한 상을 받았다.
그녀는 겨우6살 때에 키프러스 음악학교 입학을 허가받았다. 그녀가 십대에 접어 들 무렵 그녀의 가족들은
그리스로 이사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그녀의 음악적인 출세가 싹을 보일 수 있었다.
머지않아 이 재능있는 가수는 제작자와 나중에 그녀와 결혼한 유명 작사작곡가인 Nicos Karvelas를 포함한 많은
음악계 종사자들의관심을 끌게 되었다.
1996년에 Vissi는 그녀의 데뷰앨범 열대성 기후라는 의미의 Klima Tropiko 발표하였다.
그녀의 첫번째 혼신의 역작은 평론가들의 달아 오르는 논평을 불러왔고 플래티넘을 빠르게 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년후에는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노래 부르도록 초청 받았는데 그것이 그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수있는
최초의 기회가 되었다.
그녀의 두번째 앨범 Travma 도 시장에 나왔는데 출반 2주도 안되어 데뷰 2년생의 가수가 100만장의 골드를 해냈다.
반년후에는 3배 프래티넘에 달하였다.
Travma 에서 히트한 곡중의 하나가 Ric Wake 작품의 "Forgive me this" 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처음에 Anna Vissi를 한곡의 기적적 히트나 몇달 이내의 단명스타로 생각하였었다면 1998년에 최우수
앨범, 최고의 노래, 최우수 여성가수 그리고 최고의 라이브 출연을 포함한 그녀의 명성에 일곱개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파퓰러 음악상수상식에서 걸어 나갈때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틀렸음이 증명된 것이다.
Vissi 는 멈출수 없는듯 미국과 영어권 시장을 겨냥하여 그녀의 앨범 [Everything I am]의 출반으로 그녀의 명성을
넓혀갔다.
이 앨범은 on a night like this, Still in love with you,Kick the habit, Supernatural love와 No more the fool
같은 멋진 노래들을 담고 있다.
출처 : http://donjoon_kr.blog.me/60115694242
전설 같은 사랑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지는 꽤 됐다.
아마 칠레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누군가로부터 그녀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칠레나로서 꼬레아노와 결혼해 예쁜 딸 한 명 낳고 아주 행복하게 살다가 전직 마도로스였다는 남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고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다고......
말로만 듣던 그런 그녀를 우연히 집 근처에서 처음 만났다.
마치 유령처럼 서늘한 미소를 머금고 귀여운 딸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모습.
그녀들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그 칠레나인 줄 알았다.
그녀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바쁜 일도 없고 해서 멀찌감치 두 모녀를 따라갔다.
고개를 곧추세우고 흐트러짐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는 모습이 내게만 처연하게 보였을까?
손을 잡고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동양인의 모습이 느껴지는 화사한 딸의 모습에서도 순간순간 알 수 없는 그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안데스산맥의 눈 녹은 물이 회색빛으로 흐르는 마뽀초 강을 건너 메르까도 센뜨랄에서 생선 몇 마리와 조개를 사고
근처에 있는 수뻬르 메르까도에 들러 생필품을 몇 가지 사서 볼사(비닐봉지)에 담아 손에 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주위 풍경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간간이 찍으며 딴 척하는 듯 줌으로 그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인 남편 살아 생전에 단란하고 행복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돌아가는 길 역시 바쁘지도 않고 또 느리지 않은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단아하게 걸어갔다.
그녀 집이 가까운 곳까지 왔고 나 또한 숙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돌아가서 사진 작업과 밀린 글들을 쓸 생각에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몇 걸음인가 걷고 있는데 누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주위에 행인도 별로 없고 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녀가 머뭇거리면서 ‘세뇰!’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빠라 미?’라고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묻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생글거리면서 아까부터 뒤따라오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알았다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계면쩍게 웃으며 인터넷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뚜리스따(여행자)라고 대답하자,
눈을 반짝이며 자기 남편도 한국 사람이었다며 자기 집에 가서 까페나 모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차를 같이 마시자고?
하긴 내 인상이 그렇게 험하게 보이지 않는 탓도 있겠지.
나도 전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뭔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도 하나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부에노(좋아요).’라고 대답하고 그녀들을 따라갔다.
중남미에서는 백여 년 된 집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녀가 사는 집도 상당히 오래된 집같이 보였다.
그래도 곳곳에 이 세뇨라의 손길이 닿았는지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되어 있었고 많은 꽃이 작은 정원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안내된 작고 아늑한 거실 곳곳에 한국인의 숨결을 느낄만한 장식품들이 보였다.
아~, 이름 모를 어느 동료 선원이 머나먼 이국에서 예쁜 딸과 행복하게 머물다 떠나간 곳.
그녀와 그녀의 딸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간단한 한국말은 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편은 큰 배를 타다가 칠레, 발빠라이소 항에서 패스포트만 갖고 배에서 내렸다고 했다.
나도 전직 마도로스라고 말했더니 더욱 반가워한다.
부지런했다는 그녀의 남편은 말도 안 통하는 칠레에서 부두 막일을 하며 일 끝나면 그녀가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세르베사(맥주) 한 잔 마시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고 했다.
발길이 잦다 보니 서로 인사를 할 사이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사랑을 고백할 단계까지 왔다고 한다.
그녀도 편모슬하에서 혼자 자랐기에 별 반대 없이 자기 의사대로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고, 그녀도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돈을 보태 지금의 집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딸을 낳고 조금 지나서부터 ‘깐사도(피곤하다).’라는 말을 가끔 하더니 힘든 일을 버거워하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이곳이 생활비를 적게 쓰려면 극히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나라라서 일주일에 며칠만 일하면 먹고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딸이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어 집안에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 가 보자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하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조용히 숨을 멈추었다고 했다.
병원에라도 가보지, 왜 그렇게 병원 가는 걸 싫어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라며 아마 자기가 죽더라도 이 집은 남겨주려고 그런 것 아니냐고 묻는데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때야 거실 한편에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진이 보여 그것을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사진을 갖고 왔다.
사실 아까부터 발빠라이소 항에서 하선했던 선원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혹시 내가 근무하던 H 해운의 갑판원이었던
K 형이 아닌지 궁금했었다.
그녀가 갖고 온 사진을 보니......
저런, 혹시나 했더니 역시냐고 이십여 년 전에 이곳에서 무단 하선했던 그 K 형이 방긋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놀라는 모습과 눈에 비친 이슬을 보더니 두 모녀도 금방 울 것 같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다가 내가 도울 일이 없느냐고 겨우 말하니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냐고 되물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 남편을 화장해서 곱게 빻아 예쁜 상자 안에 넣어서 매일 쓰다듬고 껴안고 자는데 이제는
남편 나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그녀 역시 울먹이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말로만 듣던 이런 사랑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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