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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Andrea Bocelli & Sarah Brightman -Canto della Terra

 

 

 

 

 

 

 

 

 

 

Canto Della Terra 

 

 

Si lo so
Amore che io e te
Forse stiamo insieme
Solo qualche instante
Zitti stiamo Ad ascotare
Il cielo Alla Finesta
Questo mondo che
Si Sveglia e la notte e'
Gia cosi lontana
Gia lontana

그래요 나는 압니다
사랑이여 그대와 나는
살짝 떨어져 함께 섰을 겁니다
말없이 창가에서
하늘의 노래를 듣지요
이 세상은 잠이 깨고
밤은 이제 그리도 멉니다
이제 멉니다

 



Guarda questa terra che
Che gira insieme a noi
Anche quando e' buio
Guarda questa terra che
Che gira anche per noi
A darci un po' di
sole, sole, sole

우리와 함께 돌아가는
이 땅을 보세요
한줌의 햇빛을, 햇빛을
햇빛을 안겨주기 위해
우리와 함께 도는
이 땅을 보세요



My love che sei l'amore mio
Sento la tua voce
e ascolto il mare
Sembra davvero il tuo respiro
L'amore che mi dai
Questo amore che
Sta li nascosto
In mezzo alle sue ond e
A tutte le sue ond e
Come una barca che

내 사랑, 그대가 내 사랑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바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그대의 숨과 꼭 닮아 보입니다
그대가 내게 주는 사랑
이 사랑은 저 멀리
그 물결 사이에 숨었지요
그 모든 물결 사이
한 척의 조각배처럼



Guarda questa terra che
Che gira insieme a noi
Anche quando e buio
Guarda questa terra che
Che gira anche per noi
A darci un po' di
sole, sole, sole
Sole, sole, sole

우리와 함께 돌아가는
이 땅을 보세요
어둠이 찾아와도
한줌의 햇빛을, 햇빛을,
햇빛을 안겨주기 위해
우리와 함께 도는
이 땅을 보세요
태양, 태양, 태양



Guarda questa terra che
Che gira insieme a noi
A darci un po' di sole
Mighty sun
Mighty sun
Mighty sun

우리와 함께 돌아가는
이땅을 보세요
거대한 태양이여
거대한 태양이여
거대한 태양이여

 

 

 

 

 

 

 

 

“20세기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자명하다.

지금은 남남지간이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두번째 부인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다.

영국 태생으로 아름다운 음색의 고음을 구사하는 그녀의 명성은 두 세기에 걸쳐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녀의 무대경력은 13세 때부터 시작된다.

데뷔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하며,하루도 빠짐없이 발레 레슨을 받는 등 매사에 성취욕이 강한 여인이었다.

16세에는 댄스그룹(Pans People)의 멤버로 참여하고,18세에는 알린 필립스의 무용단(Hot Gossip)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웨버와의 첫 만남은 81년 ‘캐츠’의 오리지날 캐스팅에서였다. 그 후 ‘송 앤 댄스(Song and Dance)’,‘레퀴엠

(Requiem)’의 제작에 함께하는데,특히 ‘레퀴엠’은 앨범판매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끌어 그녀를 ‘그래미

 최우수 클래식 신인상’ 후보에 오르게 한다. 여세를 몰아 제작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오페라 유령’. 영화 ‘타이타닉’과 ‘쥬라기 공원’을 제치고 20세기 최고의 입장권 수익을 기록한 이 작품에서 사라의 인기는 천장부지로 상승한다.

 

 그래서 ‘유령’은 웨버가 부인 사라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의도적 작품이란 설까지 나왔다.

뮤지컬에서 시작된 그녀의 활동영역은 음악적 깊이를 더해 가며 세계로 확산된다. 92년에는 바르셀로나올림픽 개막식에서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식 주제가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를 불러 지구인을 침묵시킨다. 몬주익

경기장에 뛰어드는 황영조 선수의 자랑스러운 모습과 함께 우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노래였다.

 

웨버의 히트곡들로 구성된 뮤지컬 콘서트 투어도 시작하는데,작년 한해 동안만도 전세계 81개 대도시에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둬 이른바 ‘사라 브라이트만 신드롬’까지 일으킨다.

 

웨버와의 결별은 사라의 음악적 자존심에서 비롯됐다. 사라에게 웨버는 사랑하는 남편이자,동료이며,음악의 파트너였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그녀의 성공을 웨버의 그늘 덕이라 평가하자 분연히 독자적 행보를 내디뎠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잠시의 공백기를 거쳐 97년 사라는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부른 ‘이별의 시간(Time to say goodbye)’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이목을 모으며 자력갱생의 위대한 여가수로 재등장한다.

 

 새 천년,사라는 99년 3월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선시티 공연실황을 담은 비디오 앨범 ‘에덴에서의 하룻밤

(One Night in Eden)’을 내놓고 또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내 성공은 내 노력의 결과다”라며 웨버가 선사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버린 사라 브라이트만. 올해 이미 마흔

(우리 나이로)에 접어들었지만,아직도 그녀의 노래 여행은 끝나지 않은 듯싶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Sarah Brightman" 은 1960년 8월 영국 버크 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타고난 능력은 어릴 때부터 특출했다고 한다.
3살 때부터 에름허스트 발레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12살이 되는 해에 데뷔를 하였다.
그리고 16살 때에는 Dance Group "Pan People"의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18살 때 초연된 뮤지컬 "캣츠"의

 공개오디션에 합격해 뮤지컬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남편인 Andrew Lloyd Webber와 결혼하면서 "오페라의 유령","레퀴엠" 등 그의 대표작 초연 무대에 전격

 발탁되어 그녀의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녀가 출연한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음으로서 당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과 같은 성악가들과 협연을 함으로써그녀는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앤드류와 이혼하면서 잠시 공백기간이 있었지만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프랭크 피터슨이 만든 "Time to say Goodbye"를 1996년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불러
전 세계적으로 1천만장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탈리아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보첼리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았다. 부모는 농기구를 팔고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했는데, 특별한 음악적 재능은 없었다.

 보첼리는 6세 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해 몇 년 뒤에는 플루트와 색소폰도 연주했고 집에 있는 이탈리아 테너 가수들의 음반을 따라 불렀다.

 

12세 때 축구를 하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뇌출혈을 일으키면서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시력 장애에 굴하지 않고 피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피아노 바와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러

학비를 벌었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으나 음악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서 성악을 배웠다1992년 보첼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팝 스타 추케로 포르나차리로부터 저명한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위해 만든 곡 <미제레레 Miserere〉의 데모 음반을 녹음하자는 요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파바로티는 보첼리의 목소리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벗으로 삼기에 이르렀으며, 이듬해 보첼리는 녹음 계약에

서명했다.

 

 그의 데뷔 앨범은 유럽에서 플래티넘 음반이 되었다.

1995년에는 〈작별할 시간 Con te partiro〉이 출시되었다.

 나중에는 이 노래를 새러 브라이트먼과 함께 영어로 부르기도 했는데, 2곡 모두 대히트를 기록했다.

1999년 보첼리는 고전음악가로는 드물게 오페라와 대중음악 양쪽에서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1997년 출시 음반 〈로만차 Romanza〉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음반은 줄잡아 1,500만 장이 팔렸다. 1999년에 나온 〈소뇨 Sogno〉가 출시된 지 2개월이 안 되어 약 300만 장이 팔리면서 보첼리는 대중음악 차트 1위에 오른 앨범을 가진 첫 고전음악가가 되었다.

 

 시각장애인이었지만, 보첼리는 주로 콘서트에서 공연했다.

 1999년 그는 그래미상 최우수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팝 스타 셀린 디온과 함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기도 The Prayer〉를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다. 1999년에는 '보첼리 열풍'이 이탈리아로부터 유럽

전역을 거쳐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이르렀다보첼리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오페라라고 하면서도, 녹음을 할 때 아리아에 대중음악을 섞는다. 이를 가리켜

매스컴에서는 '팝페라'(popera)라고 한다.

 

 

 

 

일부 비평가들은 오페라계에서 진지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경량급이라고 보첼리를 폄하한다.

그러나 그는 1999년 7월에 오페라 〈즐거운 과부 The Merry Widow〉에서 아리아 3곡을 불렀고, 11월에는 미시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줄 마스네의 〈베르테르 Werther〉에서 주역을 맡아 미국 오페라 관객 앞에 선을 보였다.

 

1999년이 저물 때 보첼리는 뉴욕시티의 새해 전야제로 열리는 밀레니엄 콘서트 '세기의 파티'에서 공연했다.

이후에도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오페라 〈라보엠 La Boheme〉, 〈토스카 Tosca〉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정명훈 지휘로 오페라 〈나비부인 Madame Butterfly〉에서 핑커톤 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정통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