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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페루 안데스 음악 - El Eco

 

 

 

 

 

 

El Eco (이 노래는 페루의 전통 민요입니다.

아트 가펑클이 Mary was an only child이란 제목으로 불러 히트시켰습니다.)

 

 

 

안데스의 음악에는 정복당한 역사의 한이 서려 있으면서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오들의 꿈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남미 대륙의 서부를 종단하면서 북으로는 카리브 해까지, 남쪽으로는 남극 바다와 닿아 있는 안데스 산맥.

안데스 음악은 이 고원의 척박한 땅에 문명을 일구었던 인디오들의 음악이다.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이 안데스 국가에 속한다.

한 나라나 민족, 지역, 또는 하나의 문화가 지켜 온 음악 전통이 담겨 있는 월드 뮤직의 대부분은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그 정서적 특징이 만들어진다.

특히 다른 문화에게 정복당한 역사를 경험한 지역의 음악은 그 ‘한(恨)의 정서’로 인해 음악적 감동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신대륙 발견의 선봉에 섰던 스페인에게 찬란했던 잉카 문명을 정복당하고 고난의 역사를 살아야만 했던 인디오들의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안데스 음악 역시 그중의 하나로 세계 음악팬들에게 감동을 전해 왔다.

 

 

안데스 음악 속에 담긴 잉카의 번영과 몰락

 

‘하늘까지 이어지는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안데스에는 잉카 문명 이전에도 수천 년에 이르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었다.

기원전 페루의 고지대에 이루어졌던 차빈(Chavin) 문명이나 기하학적인 그림의 신비로움으로 유명한 나스카(Nazca) 문명 등이 안데스 지역의 역사 속에 존재했으며, 잉카(Inca) 문명은 12세기경 현재의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데스의 험준한 고원 지대에 꽃피웠던 이 문명들은 다른 지역의 문명과 마찬가지로 제국과 도시를 건설하고 여러 가지

 신화를 남기기도 했고, 그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민속음악의 특징들이 안데스 음악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 지역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안데스 음악의 배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잉카 문명이다.

안데스 지역에 이루어진 마지막 원주민 문명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안데스 음악의 근간을 바로

 잉카 제국의 번영과 몰락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잉카 문명이 이루어졌던 곳은

 페루와 볼리비아, 그리고 에콰도르 정도이다. 잉카 제국의 옛 수도인 쿠스코(Cuzco)는 인구가 이십만이 넘는 큰

도시였고, 15세기경부터는 본격적인 정복 사업을 시작해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 지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가파른 고원에 계단식 밭을 일구고 살았던 인디오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대지를 위대한 어머니로 여겨 파차마마

(Pachamama)라는 대지의 여신을 섬기며 살았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특정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음악은 가장 중요한 감성 표현의 도구였고,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기록의 수단이기도 했다.

 원래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어서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았다고 하며, 씨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공동 경작을

했기에 음악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안데스 인디오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이 담긴 음악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픈 정서를 보듬게 된다.

 

영토의 확장과 함께 번성을 누리던 잉카 문명은 스페인으로부터 온 이방인에 의해 허무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스페인의 군인이자 남미 대륙 원정의 선봉에 있었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라는 인물은 이 지역에 황금이 가득하다는 말을

듣고 1532년 200여 명에 불과한 군대를 이끌고 쿠스코로 들어갔다.

 

당시 잉카 제국을 다스리던 왕은 아타왈파였다.

피사로의 계략과 인디오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유럽의 무기는 근위병 수천 명을 순식간에 제압했고, 사로잡힌

아타왈파 왕은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피사로에게 몸값으로 주었지만 끝내 살해당하고 말았다.

스페인이 안데스 사람들의 영혼에 준 지울 수 없는 상처는 그렇게 어이없이 시작되었다.

 

 

(왼쪽)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초상화. (오른쪽) 스페인 군사들에게 붙잡히는 잉카 제국의 아타왈파(Atahualpa)

 

 

이어 정복자들은 꼭두각시 왕을 내세워 민심을 수습하려 했지만, 잉카의 혈통임을 자각한 그 왕은 안데스 깊숙이 도주해 스페인에 대항했다.

스페인의 횡포에 시달리던 많은 잉카인들이 힘을 모았지만, 물리적으로 스페인의 군대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삭사이와망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수많은 잉카인의 피로 대지를 물들이며

쿠스코를 완전히 빼앗겨버렸다.

피사로가 황금을 찾아 잉카의 대지에 들어온 지 40년이 되는 1572년, 마지막 왕인 투팍 아마루(Tupac Amaru)가

처형당하면서 제국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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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관광지가 된 삭사이와망(Saqsaywaman). 과거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스페인 군대에게 대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Violeta Parra - Gracias a la vida (original version)

 

안데스 음악에 배어 있는 한 맺힌 슬픔은 이때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만과 야욕에 찬 스페인은 수많은

인디오들을 광산으로 몰았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데려온 흑인들까지 동원해 약탈해 간 금과 은, 그리고 천연자원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을

 것이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일부 안데스 지역에는 강제 노동의 역사에 이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탄광의 노동자로

일하는 인디오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복자들은 또한 잉카의 후예들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종용했고,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안데스 사람들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음악을 ‘악마의 음악’으로 규정하고 그 전통을 지우려 했다.

음악가들이 탄압을 받고, 페루의 한 지역에서는 모든 전통악기들을 수거해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노골적인 침략과 수탈로 이어지는 뼈아픈 역사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인디오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들만이

 지녔던 문화의 명맥을 유지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광산의 어두운 지하에 그들이 믿었던 토속 신앙의 신을 모셔 두었고, 안데스 대자연의

정기가 담긴 음악 역시 잊지 않았다.

오히려 스페인으로부터 들어온 서구의 음악어법을 자신들의 음악 속에 포용하고, 기타와 하프를 차랑고(charango)와

아르파(arpa)라는 악기로 개량해 안데스의 정서를 불어넣기도 했다.

 

 

 

Mercedes Sosa - Gracias a la vida (생에 감사해)

 

 

굴곡진 역사 탓에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안데스 음악들은 잉카 시대 음악의 원형과는 달리 서구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데스 고원의 바람소리를 닮은 전통악기들의 합주를 통해 피워 올리는 안데스 음악 고유의 향취 속에는 자연과 호흡하며 살았던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인디오들의 질박한 감성이 분명히 담겨 있다.

 또한 화려했던 잉카 문명의 옛 영광을 반추하며 자신들이 겪었던 슬픈 역사를 한 서린 감성으로 표현하는 음악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서글픈 한을 쌓으며 살아남은 잉카인들의 음악은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이 출몰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속에서 들풀처럼 일어서는 저항정신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 민속음악의 발굴에 평생을 바쳤던 아르헨티나의 아타왈파 유팡키(Atahualpa Yupanqui)와 칠레

민속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a)의 음악 속에 안데스 인디오들의 숨결이 담겨 있었고, 노래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던 아르헨티나 음악의 대모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와 음악으로 잘못된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지녔던 칠레의 저항 시인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음악 속에도 안데스의 음악 전통이 그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음악의 대모 메르세데스 소사.

또한 이들의 노래는 음악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던 누에바 칸시온

(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이라는 노래 운동으로 확산되며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안데스 음악은 전통악기들의 선율과 깊은 울림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안데스 인디오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음악이다.

 

안데스 고원 대자연 속에서의 삶, 유럽 문화와 대면하며 겪었던 아픈 역사,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팍팍한 현실까지도

 

 

Los Kjarkas - El amor y la libertad (Full Album)

볼리비아의 힘 ‘카르카스’

 

한편 페루와 함께 잉카의 중심 지역이었던 볼리비아의 안데스 음악은 다른 안데스 국가의 음악들에 비해 뛰어난 연주력을 바탕으로 강렬한 색채감을 전한다. 카르카스를 비롯해 인티 라이미(Inti Raymi), 루미야흐타(Rumillajta), 하차 마이쿠(Jacha Mallku) 등의 그룹들이 특히 뛰어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중 카르카스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남미를 비롯한 미주 지역은 물론 유럽 전역과 이웃 일본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안데스 그룹으로 손꼽히는 이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그들만의 개성으로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전통악기들의 밀도 높은 합주와 풍성한 멜로디, 그리고 남성미 넘치는 시원스러운 보컬은 카르카스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견고한 바탕이 되었다.

대표곡인 ‘El Amor y la Libertad(사랑과 자유)’와 ‘Llorando Se Fue’ 는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일찍이 로스 잉카스가 유럽에 남미 민속음악에 대한 붐을 일으키며 안데스 음악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카르카스의 음악성은 로스 잉카스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 사실이다.

 

카르카스의 등장 이후 안데스 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이다.

안데스 인디오들의 말인 케추아어로 ‘힘’이라는 의미를 지닌 카르카스를 그룹명으로 한 이들은 1971년, 곤살로 에르모사 곤살레스(Gonzalo Hermosa Gonzalez)를 중심으로 삼형제가 주축을 이루어 그룹을 시작했다.

92년과 2008년에 나머지 두 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곤살로 에르모사의 아들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을 멤버로 충원해 가면서 40년을 뛰어넘는 음악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안데스의 전통 악기

처음에 안데스의 많은 악기들은 흙과 돌, 동물의 뼈,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또한 잉카 시대까지만 해도

관악기와 타악기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라나 고동으로 만든 나팔, 오카리나, 북 등과 함께 지금도 대표적인 악기로 사용되고 있는 관악기인 케나와 시쿠

정도였다. 현재 안데스 음악에 쓰이는 가장 대표적인 악기로는 케나(Quena)와 시쿠(Siku), 차랑고, 봄보 정도를

 들 수 있으며, 여기에 기타나 하프를 개량한 아르파(Arpa) 등이 사용된다.

케나

케나는 안데스의 피리로 많은 곡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안데스를 대표하는 민속 악기다.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로 현재는 목재가 주로 쓰이지만 오랜 옛날에는 동물이나 사람의 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데스의 장례는 주로 풍장(風葬)이었는데, 에콰도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뼈를 깎아 만든 케나를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취주부가 U자 형태로 파여 있는 종적으로 앞면에 여섯 개, 뒷면에 한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나라의 단소나 일본의 사쿠하치와 비교할 만한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만든 사람에 따라, 또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게 표현된다고 한다.

 

주로 라마를 보살피는 목동들이 만들어 불었다고 전해지는 이 악기는 안데스의 가장 보편적인 악기로 사랑받았으며,

전통 의식과 축제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케나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 다른 모양의 비슷한 악기로 사용되어 왔다.

쓸쓸하면서도 깊은 음색을 지닌 케나는 수천 년 전부터 대자연과 호흡하며 살아온 안데스 사람들의 소박한 정서와

애환을 구성진 선율에 담아내는 악기로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 전통 복장을 입고 케나를 연주하고 있다. 케나는 악기 입구가 U자로 파여 있고, 앞쪽에 6개, 뒷면에

1개의 구멍이 있다.

 

 

 

시쿠

시쿠는 케나와 함께 안데스 음악에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관악기로 팬파이프 형의 모양이다. 스페인어로 삼포냐

(Zampoña)라고 불리기도 하며, 잉카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티티카카 호수 주변 지역에서 비롯된 악기이다.

 케나보다 투박한 바람소리가 더 많이 들어 있어 안데스 음악 속의 여러 소리들 가운데 특별한 매력을 전한다.

 악기 시쿠는 관의 윗부분을 불어 연주한다.

보통 7-8개에 이르는 여러 개의 관을 두 열로 겹쳐 만들고, 관의 머리를 불어서 연주한다. 역시 지역과 음역, 생김새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저역을 연주하는 긴 길이의 시쿠는 겹쳐져 있는 한 쌍의 관 열을

두 개로 나누어 두 사람이 한 음씩 번갈아 연주하는 호켓 방식으로 연주한다.

차랑고

 

안데스 음악의 사운드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악기인 차랑고는 스페인에서 전해진 기타를 모방해서 만든 현악기다. 일반적으로 다섯 쌍의 현을 가지고 있으며, 현의 길이가 짧고 울림통의 두께가 얇아서 대단히 선명하고 찰랑거리는 음색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울림통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원래는 안데스에 서식하는 포유류인 아르마딜로(Armadillo)라는

 동물의 가죽으로 울림통의 뒷부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악기를 “노래하는 작은 동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케나와 시쿠 등 관악기가 없는 부분의 연주에서 안데스 음악임을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안데스 음악의 감초 같은

악기이다.

 주로 리듬을 담당했던 악기지만, 새로운 연주 스타일이 생겨나면서 독주악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차랑고는 잉카의 전통이 담긴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남미 곳곳의 포크 음악에서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영혼을 담아내는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노래하는 작은 동물’ 이라고 불리는 안데스 기타. 차랑고는 기타를 모방하여 만들었지만 기타에 비해 사이즈가 작아 소리가 선명하고 찰랑거린다.

봄보

 

봄보는 안데스의 전통 타악기를 대표하는 오래된 북이다. 지름이 큰 편은 아니지만 키가 큰 악기여서 울림이 깊고 소리가 멀리 가는 악기이다.

안데스 지역에 서식하는 라마의 가죽을 씌워서 만들며 안데스 음악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타악기로 손꼽힌다.

봄보 외에도 다양한 타악기들이 사용된다.

봄보보다 크기가 작은 티니아(Tinya)나 카하(Caja) 등의 북이 있고, 동물의 발톱을 연결해 흔들어 소리를 내는

 차차스(Chachas)도 안데스의 여러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취미의 발견>월드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