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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SM 음악

Georges Moustaki-Ma solitude

 

 

 

 

                

 

 

 

 
Georges Moustaki-Ma solitude

 

 

 

Ma solitude

 

 

 

 

Pour avoir si souvent dormi
Avec ma solitude
Je m'en suis fait presqu'une amie
Une douce habitude


Ell' ne me quitte pas d'un pas
Fidele comme une ombre
Elle m'a suivi ca et la
Aux quatre coins du mond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Quand elle est au creux de mon lit
Elle prend toute la place
Et nous passons de longues nuits
Tous les deux face a face


Je ne sais vraiment pas jusqu'ou
Ira cette complice
Faudra-t-il que j'y prenne gout
Ou que je reagiss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Par elle, j'ai autant appris
Que j'ai verse de larmes
Si parfois je la repudie
Jamais elle ne desarme
Et si je prefere l'amour


D'une autre courtisane
Elle sera a mon dernier jour
Ma derniere compagn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

언제나 함께 하였지
그래서 고독은 마치 친구처럼,
친숙한 습관처럼 되었어

고독은 그림자처럼 친숙하게
나를 따라다녔지
내가 가는 곳은 어디나 따라다녔어

이제 난 외톨이가 아니야
왜냐하면 고독이 나와 함께 있으니까

고독은 내 침대에 나와함께 누워
내 공간을 채우지
그리고 우리는 긴 밤을 단 둘이
마주보며 지내지
고독이 어디론가 가버릴지도 몰라

난 고독을 좋아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고독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

심지어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까지도
나는 가끔 고독을 버리려고 했지만
고독은 나를 결코 버리지 않았어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택한다 하더라도
고독은 끝내
나의 동반자가 되어 줄거야


 

 

 

 

 

 

 

그리스 출신의 샹송 가수 조르주 무스타키가 나의 고독(Ma Solitude)을 처음 노래한 건 1968년이었다.
"그토록 숱한 밤을 함께 했기에 고독은 나의 친구며달콤한 습관이 되었다네, 고독은 충실한 그림자처럼 한 발짝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아 이 세상 어디든 날 따라다녔다네."

 

이집트 태생의 그리스인으로 프랑스로 건너가이방인들 틈에서 외롭게 살아온 그였기에 고독과 함께라면 결코
외롭지 않다며 현대인들의 고독감을 달래준 덕에 그는 일약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됐다.

무스타키는 분명 샹송을 노래하고 있지만, 정작 출생지는 프랑스가 아닌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이다.
그의 부친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프랑스 서적을 취급하는 큰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책방이 가지는 문화적 분위기나
책방을 드나드는 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교양과 예술적 기질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10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기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기타를 마스터했고,이 무렵에는 부친의 수입 덕에 비교적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13세 때에 처음 접한 프랑스 여행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프랑스 대학 1차 시험에 합격하여

두 번째로 프랑스를 방문하고이집트로 돌아온 후 아들이 훌륭한 건축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던 아버지를 설득해
결혼한 자신의 누나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를 떠돌며 여러 사람들과 교분을 넓히면서 샹송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다가 한 고급 캬바레에서 우연히
조르주 브라상드의 노래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작곡생활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53년 당시 신인이었던 자크 드와이앙의 노래를 듣고는 그에게 노래를 주어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워 싸구려 호텔바텐더 등으로 일하다 20세에 한 결혼도 곧 실패하고 말았다.

타고난 방랑벽으로 인해 작가 친구를 따라 벨기에의 브뤼셀로 떠나프랑스로 돌아올 여비도 없이 기타를 들고 술집을

 전전하다 간신히 술집 한 곳과 계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무스타키가 샹송가수로 태어나게 된 최초의 동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이 점차 알려지게 되면서 샹송의 전설이라는 에디뜨 삐아프도 만나게 되었고, 무스타키를 처음 보았을 때

 

그에게서 받은 인상을 잊을 수없었다던 삐아프가 오히려 무스타키가 만든 <에덴 블루스>와
<미롤르>를 발표하면서 샹송계에 점차 조르즈 무스타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67년, 여성가수 피아 콜롬보에게 준 곡이 대 히트하고, 자신이 부른 노래도 2년이 넘도록 히트차트를 누비는 등
대성공을 거두는가 하면, 이후 발표한 감성적 우수가 깃든 여러 곡의 노래들이 그때마다 히트하는 행운이 뒤따랐다
.

불우하고도 어려웠던 시간들 속에서 얻어진 인간적 고독과연민을 잘 추스려 시적인 샹송으로 승화시키는 인물로
사랑받고 있는 그는 지난 95년 내한공연을 가져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들을 선사하기도 했다.

시인 랭보와 보들레르 베를레느를 좋아하는 그는 지금도프랑스 세느강변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으면
손수 커피를 끓여 대접하는 자상한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1934.5.3 ~ 2013.5.23)

 

  이집트 태생의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1960년대부터 활동하며 시를 낭송하듯 부드럽게 읊조리는 보컬로 유명했고,

그리스, 터키, 아랍,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전통 음악을 샹송에 접목시켜 프랑스 음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르 메테크(Le Métèque)>(1969), <마 솔리튀드(Ma Solitude)>(1969),

<일 에 트로 타르(Il Est Trop Tard)>(1969), <르 팍퇴르(Le Facteur)>(1969) 등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1934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951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샹송 가수 조르주 브라상(Georges Brassens)과 교류했고,

 조르주 브라상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이름을 ‘조르주 무스타키’로

 바꿨다.

 1954년 샹송 가수 앙리 살바도르(Henri Salvador)와 함께 <일 니 아 플뤼 다망드(Il N'y A Plus D'Amandes)>를 공동작곡하며 작곡가의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1958년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를 만나 연인이 되었고, 1959년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밀로르(Milord)>의 가사를 썼다.

1960년 데뷔 앨범 《레 조르테유 오 솔레유(Les Orteils Au Soleil)》를 발표하며 음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세르주 레지아니(Serge Reggiani), 바바라(Barbara), 이브 몽탕(Yves Montand) 등

많은 가수의 음반에 작곡가로 참여하며 명성을 얻었다.

 

 

 

  1969년 2집 앨범《르 메테크(Le Métèque)》를 출시했고, <르 메테크>, <마 솔리튀드>, <일 에 트로 타르>,

<르 팍퇴르> 등을 히트시키며 가수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72년 브라질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해

 엘리스 헤지나(Elis Regina), 지우베르투 지우(Gilberto Gil) 등의 브라질 뮤지션들과 교류를 가졌고,

1973년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트로피칼리아(tropicalia) 음악을 도입한 앨범 《데클라라시옹(Déclaration)》을

발표했다.

 

  1974년 조르주 브라상에게 바치는 앨범 《레 자미 드 조르주(Les Amis De Georges)》, 1976년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가 참여한 앨범 《프렐뤼드(Prélude)》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1984년 그리스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Manos Hadjidakis)의 작품 <포르노그라피(Pornographie)>를

수록한 앨범 《포르노그라피(Pornographie)》를 출시했고, 1985년에는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1992년 프랑스 가수 막심 르 포레스티에(Maxime Le Forestier), 일본의 작곡가이자

시인 마츠무라 테이조(松村禎三) 등이 참여한 앨범 《메디테라네앙(Méditerranéen)》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음반과 공연 활동을 이어갔고, 2008년 벵상 들렘(Vincent Delerm), 스테이시 켄트(Stacey Kent), 칼리(Cali)와 같은 젊은 뮤지션들이 참여한 앨범 《솔리테르(Solitaire)》를 출시했다.

2011년부터 심각한 기관지 질환을 겪으며 공연 활동을 중단했다. 2013년 5월 23일 프랑스 니스에서 사망했다.

 

 

 

 

 

 

 

 

[디스코그래피: 스튜디오 앨범]

1960년 《레 조르테유 오 솔레유(Les Orteils Au Soleil)》

1969년 《르 메테크(Le Métèque)》

1971년 《일 이 아베 욍 자르뎅(Il Y Avait Un Jardin)》

1972년 《당스(Danse)》

1973년 《데클라라시옹(Déclaration)》

1974년 《레 자미 드 조르주(Les Amis De Georges)》

1975년 《욍블러망 일 에 브뉘(Humblement Il Est Venu)》

1976년 《프렐뤼드(Prélude)》

1977년 《에스페랑스(Espérance)》

1979년 《시 쥬 푸베 테데(Si Je Pouvais T'aider)》

1979년 《에 푸르탕 당 르 몽드(Et Pourtant Dans Le Monde)》

1981년 《세 라(C’est Là)》

1982년 《무스타키 앤드 플레어크(Moustaki & Flairck)》 무스타키 앤드 플레어크

1984년 《포르노그라피(Pornographie)》

1986년 《주주(Joujou)》

1992년 《메디테라네앙(Méditerranéen)》

1996년 《투 레스트 아 디르(Tout Reste A Dire)》

2003년 《오데옹(Odéon)》

2005년 《바가봉(Vagabond)》

2008년 《솔리테르(Solitaire)》

 

ㅡ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