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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Bob Dylan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 One More Cup Of Coffee

 


Bob Dylan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It ain't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It don't matter anyhow
And it ain't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If you don't know by now

가만히 앉아서 고민해봐도
아무 소용 없어요
어찌 됐든 상관 없어요
당신이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고민해봐도
아무 소용 없어요

When your rooster crows
at the break of dawn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You're one of the reasons
why I'm traveling on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날이 밝아 수탉이 울 때
창 밖을 바라 보면
난 떠나고 없을 거예요
내가 방랑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한가지는 당신 때문이에요
고민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But ain't no use
in turning on your light, babe
That light I never know
And it ain't no use
in turning on your light, babe
Cause I'm on the dark side of the road

불을 밝혀도
아무 소용 없어요
난 그런 불빛은 알지 못해요
불을 밝혀도
아무 소용 없어요
나는 어두운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Still I wish that there were something
we could do or say
Try and make my mind up
That I'm back to stay
We never did too much talking anyway
Don't think twice
I'll give you my heart
Don't think twice
And I want to give you my soul

난 아직도 우리가 함께 하거나
나눌 대화가 있었으면 해요
내가 다시 돌아 오도록
내 마음을 바꿔 봐요
우리는 대화도 충분히 나누지 못했잖아요
고민하지 말아요
당신께 내 마음을 드리겠어요
고민하지 말아요
당신께 내 영혼도 그리겠어요

It ain't no use
in calling out my name, boy
like you never did before
It ain't no use
in calling out my name, boy
Cause I'm on the dark side of the road

내 이름을 크게 불러도
아무 소용 없어요
당신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죠
내 이름을 크게 불러도
아무 소용 없어요
나는 어두운 길을 가고 있으니까요

I'm thinking and I'm a-wondering
walking down the road
I once loved a man, a child I'm told
I give him my heart
But he wanted my soul
But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그 길을 가며
난 생각에 잠겼어요
아이같은 한 남자를 사랑했었죠
그에게 마음을 주었는데
그는 내 영혼까지도 원해요
고민하지 말아요, 다 괜찮아요

 

 

 

 

 

 

 


 

 

 

One More Cup Of Coffee

 


 

Your breath is sweet

Your eyes are like two jewels in the sky

Your back is straight your hair is smooth

On the pillow where you lie

But I don't sense affection

No gratitude or love

Your loyalty is not to me

But to the stars above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Your daddy he's an outlaw

And a wanderer by trade

He'll teach you how to pick and choose

And how to throw the blade

He oversees his kingdom

So no stranger does intrude

His voice it trembles as he calls out

For another plate of food.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Your sister sees the future 

Like your mama and yourself

You've never learned to read or write

There's no books upon your shelf

And your pleasure knows no limits

Your voice is like a meadowlark

But your heart is like an ocean

Mysterious and dark.


One more cup of coffee for the road

One more cup of coffee 'fore I go.

To the valley below

 

 

 

 

 

 

 

생년월일 : 1941.5. 24. 현재 나이[57세]
고 향 : 미국. 미네소타주.덜루트
본 명 : 로버트 앨런 짐머맨 [Robert Allen Zimmerman]
데 뷔 : 1961.


딜런은 어린 시절 자주 집을 가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가출이유는 반항심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음악의 갈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딜런이 12살 때, 시카고 교회에서 만난 블루스 맨 "빅 죠 윌리엄스 " 이다.

죠는 그 때 "블루스"는 여러 곳에서 여러사람을 접촉하여 얻어지는 음악이라고 딜런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은 포크 뮤직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우디 가스리" 이다.

그가 19세 때인 1960년 겨울 그는 우디 가스리의 병문안차 뉴욕으로 간다.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Gerd 의 포크 시티. 개스라이트. 이지 영[Izzy Young]의 민속센터등에서

거스리를 모방한 창법으로 노래했으나 큰 반응을 얻진 못하였다.

 

겨우 핸리 벨라폰테의 Midnight Special 을 하모니카로 연주하여 호평을 받기 시작하였고 1961년 딜런이 그 곳

커피하우스에서 노래하고 있을 때. 그 해 10월, 제작자이자 하모니카 연주자였던 존 하먼드의 소개로 콜럼비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는 20세라는 약관의 나이로 존경하는 음악선생이자 우상인 우디 가스리를 기리는 ' Song To Woody ' 와 고생했던

뉴욕의 이야기를 담은 ' Talk In Newyork '과 'House Of The Rising Sun'이 담겨져 있는 자신의 데뷔 앨범[흑인 냄새를 풍기는 백인 블루스 사운드가 강한..] Bob Dylan을 1962년에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에 한계를 느낀 딜런은 우디 가스리에게 사사받으며 작곡에 전념하게 된다.


그리하여 62년과 64년사이에 앨범 [ Freewheelin' Bob Dylan ] [Time They Are A-changin'] 을 발표하여

그 유명한 Blowin In The Wind 와 [Masters Of War] [Tolking World War 3 Blues]등을 아울러 히트시키며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하면서 타임지나 라이프지에 딜런의 기사가 실릴 정도로 화제의 인물이 되었으며

비로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실력을 인정 받게 된다..


1964년에는 4집 Another Side Of Bob Dylan 을 발표하여 반전운동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All I Really Want To

Do] [It Ain't Me, Babe]등을 힛트시켰지만 반항적인 송 라이터로서만이 아닌 사랑의 테마를 노래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또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이 때부터 그는 포크 록으로 전향하여 포크 송 라이터로서의 자세를 버리는 듯 했다.

그래서 그를 두고 커다란 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그는 가사와 표현 방법등을 심사숙고 하여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리듬으로서의 표현방법도 중요한것임을 깨닫고 포크 록으로 전향하기 시작한다.


1965년에 내놓은 5번째 앨범. [Bring It All Back Home]에서는 처음으로 전기 기타와 드럼을 사용하여 포크 록의 걸작이라고 일컷는 [Mr. Tambourinman]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는 전기 기타를 사용한 [Subterranean Homesick Blues] [It's All Over] [Baby Blue]등이 기존의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가사를 좋아했던 포크 팬들에게는 야유를...

새로운 록팬들에게는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찬반양론과 함께 질시와 실망. 그리고 환호와 인기를 동시에 받게 된다..


1965년7월 25일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의 전기기타를 선보인 딜런을 많은 청중들이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었던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그 후 딜런은 [Highway 61 Revisited]를 발표하며 변화하는 록세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해가는가 하면

 [Don't Look Back]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도 하였으며 마이크 부름필드가 기타를,

알 쿠퍼가 올겐을 연주한 [Like A Rolling Stone] 을 발표하여 크게 히트 시키기도 하였다.


1966년 더블앨범으로 발표 한 [ Blonde on Blonde] 에서는 성숙한 음악성으로 인정을 받았고

수많은 버젼으로 유명한[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을 힛트 시켰으며 또한 Sara Lowndes 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그 해 6월 불의의 모터 사이클 사고를 당하여 1년 반동안이나 산속에 칩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68년 침묵을 깨고 앨범 [John Wesley Harding ] 을 발표하며 돌아왔고, 카네기에서 열린 우디 가스리 추모

연주회에도 참가 하였으며 쟈니 캐쉬와는 콘서트에서 공연도 함께 하였다.


앨범 [ John--]에서는 칸츄리 적인 요소가 더욱 강력하게 나타나 딜런 특유의 거칠고 생명력있는 목소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져 훈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되었다..

1969년 발표한 [Nashville Skyline]에서도 그 분위기는 같았으며 쟈니 캐쉬의 Tv 쇼에서는 쟈니와 함께 Girl From

The North Country를 함께 부르기도 하였다.

 

1970년에는 앨범 [Self Potrait] [New Morning]을 발표하여 칸츄리 사운드를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딜런은 또다시 은거생활에 들어간다..

1971년에는 은둔생활을 끝내고 죠지 해리슨과 라비 샹카, 레온 러셀과 함께 라이브 음반의 명반으로 꼽히는 것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 난민을 위한 콘서트에 출연하여 멋진 연주를 보여준다..

 

1973년이 되면서 딜런은 영화 [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 에 출연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명곡

 " Knocking on Heaven's Door " 를 힛트 시킨다.

 

 이 노래는 80년대 Heaven 이라는 그룹에 의해서 메탈분위기로 멋지게 버젼되어 개인적으론 딜런의 곡과 함께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물론 건스 앤 로지스의 것도 있지만


이 후 앨범 [Planet Waves] 에서 'Digi'를 힛트 시키고 The Band와의 협연인 [Before The Flood]를 내놓는다..

1975년 1월 다시 [Blood on The Tracks]를 발표하며 1976년에는 [Desire]를 발표,

국내에서 크게 사랑받는 곡 ' one More Cup Of Coffee '를 발표한다.

 

1975년에는 예전에 녹음 해뒀던 The Band와의 협연을 한  [The Basement Tapes]를 발매하여 호평을 받았다.

1976년에는 믹 존스, 존 바에즈, 로저 맥퀸, 조니 미첼, 로니 블랙클리, 등과 함께 한 공연을 비디오로 방송하여 화제를

 모았으며 앨범 [Hard Rain] 을 발표하여 "Mozambiqe"를 힛트 시켰다.

 

 하지만 1970년대후반은 그에게 불행한 시기였다고 한다.

 1977년 이혼문제를 비롯하여 자녀 양육권에 관한 법적인문제, 자포자기 상태에서 쏟아진 스캔들, 늪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집의 붕괴 사건, 음악생활에 대한 위기 의식과 좌절감,등... 끝없는 난제들이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그러나 1978년 3월 1일 일본 공연 실황을 담은 [ Bob Dylan At Budokan ]을 79년 5월에 발표하였고

가을에는 [Slow Train Coming] 을, 80년에는 앨범 [Saved]를 통해서 종교적인 색채를 띄었으며

81년에는 [Short Of Love] 83년에는 [Infidels] 85년에는 [Real Live] 를 85년에는 [ Empire Burlesque]

86년에는 자신의 힛트곡을 모은 [Biograph]를 내놓으면서 재기에 성공하였다.

 

87년에는 87년판 영화 "스타탄?quot;[Hearts Of Fire] 에서 피오나와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고 에릭 클립톤, 론 우드,등이참여한 [Heart Of Fire]에서 세곡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89년에는 그레이트 풀 데드와 조인트 앨범 [Dylan & Dead] 를 발표하였고 그10월에는 [Oh Mercy]를 발표하였다.

 

1991년에는 지난 20년간의 음악생활등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지난 날들의 힛트 곡과 신곡들을 한데 묶은 앨범

[The Bootleg Series {Rare & - Unrelesed} 1961-1991] 를 발표한다.

 

1992년 딜런은 기타와 하모니카로만 연주한 [Good As I Been To You]를 발표하였고

1992년에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공연을 통해 그의 오랜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도 했으며

이 실황앨범을 1993년 데뷔 30주년 기념작품으로 선택하였다.

 

이 앨범에는 당 대의 수퍼스타들이 대거 참여 하였는데 스티비 원더, 에릭 클립톤, 닐영, 조지 해리슨, 등이

함께하며 Knockin' on Heavens Door 를 합창하여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한다..


최근에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지난 1998년 1월 25일 미국의 La에서 열린 제 40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딜런은

최신 앨범 [ Timeout Of Mind ]로 올해의 앨범상.최우수 컨템퍼러리 포크 앨범상. 최우수 남자 록 가수상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아들 제이콥 역시자신의 밴드와함께 최우수 작곡상. 최우수 록 그룹 보컬상을받았다는 것인데 ....

두사람은 부자지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상식장에서는 함께하지 않았다 한다..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컴백한 딜런은

" 우리는 뭘 했는지 모를 때가 많다"며 음악 인생 말년에 받은 영예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언제나 털털하다못해 자다 부시시한 모습의 딜런의 모습과 금방이라도 바스스 부서질 것같은 드라이한 목소리..

[차라리 웅얼거림의 외침이리라]

 자신의 영혼으로 부터 쏟아져 나오는 관조와 독설의 언행들을 참지 못하는팝계의 반항적 시인..

인위적인 가식과 쇼맨쉽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그.... 밥 딜런..

 


 

 

 

 

 

 

 

Bob Dylan


미국의 대중음악 가수·작사가·작곡가. 포크송운동에 뛰어들어 공민권운동에서 널리 불리면서 이 운동의 상징적  되었다.
 1965년부터 로큰롤의 요소를 대폭 도입해 음악적인 방향을 전환했다.

주요작품 《바람에 날려서 Blowinin the Wind》(1962) 《미스터 탬버린 맨 Mr.Tambourine Man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다. 미네소타주()에서 출생하였다.

유대계이다.

 

고교시절부터 로큰롤을 부르고 기타를 쳤으며, 그 후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나가 당시 유행했던 포크송운동에

 뛰어들어 1962년 《바람에 날려서 Blowinin the Wind》를 발표, 인기가 높아지면서 당대의 총아가 되었다.

 

 이 노래는 딜런 자신의 본의와는 달리 공민권운동에서 널리 불리면서 그는 이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는데, 딜런은

 이렇게 되는 것을 싫어한 듯 1965년부터는 로큰롤의 요소를 대폭 도입한 《미스터 탬버린 맨 Mr.Tambourine Man》 등으로 음악적인 방향전환을 명시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젊은층의 많은 팬을 확보하고, 레코드도 히트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의 정력적인 음악활동은 1970년대에 들어서자 주춤해지고, 1980년대가 되면서는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져, 데뷔 당시에 가졌던 반체제적인 이미지는 크게 사라졌다.

 

 

 

 

 

밥 딜런(Bob Dylan, 1941년 5월 24일~)은 미국의싱어송라이터, 시인, 화가이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 (히브리어 샤브타이 지셀 벤 아브라함)이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비공식 작자와 저항음악의 대표로서 사랑을 받았다.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준"Blowin' in the Wind"그리고 "The Times They Are a-Changin'"과 같은 노래들은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저항적 노랫말로 시민권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으며,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 되었다.
대중음악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음악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an). 1941년 미네소타주(州) 출생. 유대계. 고교시절부터 로큰롤을 부르고 기타를 쳤으며, 그 후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나가 당시 유행했던 포크송 분야에서 1962년 《바람에 날려서 Blowin’in the Wind》를 발표, 인기가 높아지면서 저항가수의 상징이 되었다.

 

1965년부터는 로큰롤의 요소를 대폭 도입한 《미스터 탬버린 맨 Mr.Tambourine Man》 등으로 음악적인 방향전환을 명시하여 화제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의 정력적인 음악활동은 1970년대에 들어서자 주춤해지고, 1980년대가 되면서는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져, 데뷔 당시에 가졌던 반체제적인 이미지는 크게 사라졌다.

 

밥 딜런이 데뷔한 시기인 1960년대의 미국은 흑인운동이 일어나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미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밥 딜런 평전(마이크 마퀴스 지음, 실천문학사)에서는 밥 딜런과 그 주변인물들을 탐색하면서, 당시 사회에 밥 딜런 노래가 갖는 의미, 계속해서 저항가수의 아이콘으로 남길 바라는 사회적 요구와 이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밥 딜런의 음악여정을 추적하고 있다.

 

아울러 밥 딜런의 자서전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성장배경이나 1965년 뉴포트, 1966년 맨체스터에 대해서 함구하고,

얼버무린다고 비난한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신에 머물러 있는 밥 딜런을 변절자가 아닌 자유로운 보헤미안으로 기억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965년 뉴포트에서부터 개인적 음악으로 전환한 뒤 록큰롤, 컨트리음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으며 사회에 대한 저항보다는 가정의 안정을 갈망했던 밥 딜런.

그는 아직도 자신을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그에게 사회적 발언을 요구하는 요구하는 세력에게 개인의 기호일 뿐이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자리를 모면한다.

 

어찌됐든 문학적이며 철학적인 밥 딜런의 노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고 싶은 인간의 존엄성과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기에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밥 딜런의 인기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포크송은 1960년대 말부터 가요계를 주도하면서 대중들의 높은 인기를

얻었다.

포크송의 시 같은 노래말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면서 수많은 금지곡을 낳아 어두운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다

 

밥 딜런이 데뷔한 시기인 1960년대의 미국은 흑인운동이 일어나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미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밥 딜런 평전(마이크 마퀴스 지음, 실천문학사)에서는 밥 딜런과 그 주변인물들을 탐색하면서, 당시 사회에 밥 딜런 노래가 갖는 의미, 계속해서 저항가수의 아이콘으로 남길 바라는 사회적 요구와 이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밥 딜런의 음악여정을 추적하고 있다.

 

아울러 밥 딜런의 자서전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성장배경이나 1965년 뉴포트, 1966년 맨체스터에 대해서 함구하고,

얼버무린다고 비난한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신에 머물러 있는 밥 딜런을 변절자가 아닌 자유로운 보헤미안으로 기억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965년 뉴포트에서부터 개인적 음악으로 전환한 뒤 록큰롤, 컨트리음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으며 사회에 대한 저항보다는 개인의 안정적 삶을 갈망했던 밥 딜런.

그는 아직도 자신을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그에게 사회적 발언을 요구하는 세력에게 개인의 기호일 뿐이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자리를 모면한다. 그는 평생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실히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두었는데,

 자신의 노래를 보수와 진보가 자기이익대로 달리 해석하는 것을 왜 그냥 두고 보았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찌됐든 문학적이며 철학적인 밥 딜런의 노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고 싶은 인간의 존엄성과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기에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밥 딜런의 인기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포크송은 1960년대 말부터 가요계를 주도하면서 대중들의 높은 인기를

 얻었다.

 포크송의 시 같은 노래말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면서 수많은 금지곡을 낳아 어두운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다.

 

 

 

 

 

 

왼쪽에서부터 스티브 잡스(Steve Jobs), 조안 바에즈(Joan Baez), 밥 딜런(Bob Dylan)

[사진출처]한국경제 2013.1.18자 "스토리&스토리"란의 예술가의 사랑 (34)조안 바에즈
2011년 타계한 스티브 잡스는 자서전에서 조안 바에즈가 자신의 우상이었던 밥 딜런의 연인이자 정신적인 동지였던

존 바에즈와 한 때 연인사이였는데 "그냥 많이 좋아하기만 했던 것 같다"라고 잡스럽게시리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