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isco Tarrega Eixea
Recuerdos De La Alhambra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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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는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주에 있다.
그곳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했던 흰눈이 1년 내내 머무는 높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을 이루는
작은언덕, 세로 델 솔(태양의언덕)위에 배 모양을 한 작은 대지가 바로 궁전의 터다.
타레가는 근대 기타의 아버지로서 현대 기타 발전의 터전을 닦아놓은 은인이었다.
그는 필연성에 의한 작곡만을 했으므로, 모든 작품이 기타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알함브라궁전의 회상은 타레가가 그라나다 교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한 후 작곡했다.
제자인 콘차부인과 같이 갔던 그날 밤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던 모양인지, 궁전의 아름다움을 트레몰로 주법으로
그려놓았다.
곡은 전반 가단조와 후반 가장조로 반복된다. 코다에서는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인상깊게 새기며 끝난다.
이 곡은 원래 <알함브라풍으로>라고 이름짓고 <기도>라는 부제를 덧붙여 놓았는데, 출판사에서는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 고쳤다 한다.
전곡을 은구슬 뿌리듯 관통하고 있는 트레몰로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준다.
더욱이 우수적인 멜로디는 콘차부인과 실연의 아쉬움을 더해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스페인의 영혼을 되살린 타레가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기타는 스페인에서까지도 많은 괄시를 받았다. 이 전설적인 비르투오소(음악의 대가)에 의해 19세기 후반부터 기타는 부활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안드레스 세고비아에 이어져 황금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클래식기타 테크닉과 레파토리에 대한 기여가 매우커서 '근대기타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있는 타레가(Francisco Tárrega Eixea)는 1852년 11월29일 스페인의 바렌시아주 카스텔론의 빌라레알(Villareal)에서 한 가난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타레가는 8세 때 맹인 기타리스트인 마누엘 곤잘레스(M.Gonzales)에게 최초로 기타지도를 받고 이어 훌린안 아르카스(Fulian Arcas), 토마스 다마스(T.Damas)에게 사사받았다. 그러던 중 브리아나의 재벌을 만나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고 1875년에는 콩쿨에서 1등을 획득했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그 후 타레가는 기타리스트로서 마드리드에 데뷰한 후 스페인은 물론 런던, 파리, 스위스 등을 연주여행 했으며,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절찬을 받았다. 그는 기타에 관한 일관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공부한 그가 기타에 전념하게 된 것은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부터였다. 기타의 어떤 모습도 타레가가 이 악기로부터 회의를 품도록 만들지 못했다.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타레가는 그곳 알함브라극장에서 기타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가졌으며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등 전국 주요도시의 순회 연주회에서 타레가 특유의 신선하고 독특한 연주를 하여 절찬을 받았다. 1881년에는 파리, 런던 등지에서 연주, 귀국후에는 스페인 전역에 걸쳐 연주여행을 가졌고 결혼하여서는 바르셀로나에 정주하였다. 타레가는 겸손, 온화, 학구적인 성격으로 그는 화려한 스테이지에서 멀리하는 한편 기타 예술의 탐구를 위한 엄격한 수도자의 생활을 하였다. 정녕 이 거장은 기타에 혼신을 다해 몰아의 경지로 올라갔다. 어려움을 당했어도 오히려 자기 완성을 위한 시련으로 삼았으며, 이를 극복해 나갔다. 무엇보다도 타레가는 기타 음색과 악기 자체의 연주가능성이 있는 테두리내에서만 작곡했다. 또한 편곡에 있어서도, 그의 천재성과 지식 그리고 경험에서 얻어진 능력의 가능성을 다 동원했다. 타레가가 이룬 많은 업적 가운데 일부는 기타로 하여금 그 소리가 더욱 맑게 울려 퍼지도록 한 것과 기타의 울림에 풍부한 색채감을 준 것, 그리하여 복잡한 악곡들도 기타로 연주할 수 있게 한 것 등이다. 이 모든 업적은 기타의 주법 개발과 기타의 디자인 혁신으로 인해 가능했다. 타레가는 음색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타레가가 기타를 위해 손을 댄 작품으로는 기타자체를 위한 오리지널 작품과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베버 그리고 바그너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편곡작품이 있다. 이 위대한 기타음악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대단한 개성과 스페인의 철저한 향토성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투리나(Turina), 토로바(Torroba), 팔라(Falla), 빌라로보스(VillaLobos)로 이어지는 스페인 음악의 첫주자였다. 단순하고 명상적인 '전주곡'은 Lagrima(눈물)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마주르카의 두 제목은 여자의 이름을 나타내는데 그 특징은 틀림없이 음악에 비추어져 있는 듯 싶다. 13개의 전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아라비아 기상곡 등 작곡, 편곡을 합해 300곡이상의 걸작이 있다. 그의 대표작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타레가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한 후 깊은 감명을 받고 작곡한 트레몰로 연주곡이다. 원래는 <알함브라 풍으로>이라 이름을 붙였고, <기도>라는 부제목을 덧붙였는데, 출판사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바꾸었다 한다. 깊은 사상 그리고 넓은 지식은 물론 높은 정신을 가져야 잘 연주할 수 있다고도 한다. 타레가는 젊었을 때부터 지병인 안질로 계속 번민해 오다가 중풍이 발작하여 1909년까지 고생하던 끝에 그해 12월 5일 바르셀로나에서 서거하였다. 타레가는 생애의 반을 손톱을 사용한 주법으로 연주했으나 자신의 손톱에 결함이 생겨 손톱없이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수개월간 연구끝에 개발하여 그후로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연주회까지 손톱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레가의 직계 문하인 에밀리오 푸홀(E.Pujol 1886~ 스페인)은 타레가가 손톱없이 연주하게 된 원인은 타레가 자신의 손톱에 결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살이외의 불필요한 물질을 사용하여 탄주하는 것보다 신경과 직결될 수 있는 살을 사용함으로써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현대의 기타리스트중에서 타레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타레가가 존재하지 않았던들 지금의 기타는 진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타레가는 종래의 기타연주나 작곡에서 철저한 개혁을 하였으며 아구아도 주법을 떠나 기타연주 기법의 백지상태에서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한까지 연구, 개척하였다. 왼손의 운지법, 오른손의 탄주법, 또는 음색, 음량의 풍부한 변화와 화음의 확충등, 수많은 업적은 우수한 문하생들에게 계승되어 20세기 기타 르네상스를 낳게 하였다. 금세기 초에 활약하였던 스페인의 저명한 음악가 루이스 미류트는 타레가를 찬양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마도 작곡가로서의 타레가는, 페르난도 소르의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타의 진짜 위대한 면을 발견해낸 것은 타레가라고 생각한다." 현재 타레가의 유해는 출생지인 카스텔론에 안장되어 있으며 프라아나에는 타레가 일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상이 세워졌다.
이 서글펐던 벽을 무너뜨린 은인은 바로 타레가(Francisco Tárrega)였다.
타레가는 한 후원인의 도움으로 바렌시아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그가 사망한 후에는 브리아나로 가서 기타교수 생활로 가난하게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의 연습과 연주는 마치 농부가 한 알의 밀알을 뿌려 온갖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짓는 열성으로 기타를 개척해 나갔다.
타래가의 일상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소년시절 피나는 연습기였고, 둘째는 명성을 얻은 뒤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테크닉을 연구 개발했으며,
마지막은 1906년 혈전병을 얻어 오른쪽 손발이 마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했던 불굴의 의지력이었다.
타레가는 연주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뛰어났고, 어떤 테마가 영감에 떠오를 때 필현성을 절감하며 작곡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정선된 숨결과 같아 복잡하지 않았다.
이렇게 혼신의 정성을 다 쏟았으므로, 그의 편곡은 마치 작곡자 자신이 기타를 위해 쓴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후반을 맑고 깨끗한 물결흐르듯 흐르는 트레몰로곡인 이 곡은, 고금동서를 통하여 최고 명곡으로 꼽히며, 테크닉과
Sharon Isbin performs Francisco Tarrega's
"Recuerdos de la Alhambra"
on Korean Television January 2002.
붉은 궁전 알함브라에 드리워진 추억
타레가가 발전시킨 트레몰로 주법이 그 신비로움과 애절함을 더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가 그라나다를
방문했을 시 접한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받은 감동을 기타로 옮긴 것이다.
이 궁전은 에스파냐에 존재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중반에 세우기
시작했으며 증축과 개보수를 거쳐 완성된 것으로서, 현재 남아있는 궁전의 모습은 대부분 14세기에 완성된 것이다.
특유의 인공미는 물론이려니와 자연과의 조화 또한 일품으로서, 그 아름다운 때문에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알함브라 궁전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 해, 스페인의 페르난드 2세의 공격을 막지 못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이 궁전을 평화적으로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난 것이다. 그리하여 스페인은 비로소 근대 국가로의 이행을 걷게 되었지만, 알함브라 궁전에는 이전 800여년 간 내려온 이슬람 문화의 찬연함을 간직한 채 홀로 오롯이 서있게
된 것이다.
트레몰로 주법이 자아내는 그 애잔한 분위기와 낭만성 넘치는 멜로디 라인은 이러한 알함브라 궁전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일설에 따르면 작곡가의 개인적인 사건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896년 타레가는 그의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했고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이 알함브라 궁전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달빛이 드리워진 이 궁전의 아름다움을따라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며 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영화 [킬링 필드]의 주제가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아름다운 명곡을 들으며 자신의 추억이나 옛사랑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몹시 메마른 가슴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인 작품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곳은 알카사바 입니다.
알카사바는 우리말로 '성채'라고 합니다.
지금은 성벽과 병사들이 살았던 숙소의 터만 남아 있었습니다.
벨라의 탑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눈쌓인 저 산맥은 네바다 산맥 이라고 합니다.
그라나다 시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네바다 산맥의 눈쌓인 풍경이
제 가슴속에도 큰 산맥을 이루고 자리를 크게 잡았답니다.
세계 유수의 역사적인 유산인 알람브라 궁전의 건축이 시작된것은 13 세기 였다고 했습니다.
그후 15세기 말까지의 250년간 그라나다 왕국은 경제와 문화 예술등
많은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1492년 코르도바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781년에 걸친 이슬람 지배의 영향은 건축이나 미술방면은 말할것도 없고
그라나다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헤네 랄리페 정원의 풍경입니다.
이곳은 나스르 왕조 궁전 입니다.
이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의 주인공 이라고도 할수 있답니다.
헤네 랄리페에서 바라본 나사리 궁전과 알카사바의 모습입니다.
해가 질녁의 오후 풍경이라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네요.
궁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알바이신(Albaicin) 지구의 풍경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이유를 이해하게 했습니다.
스페인에서 대성당,궁전등을 관람하며 건물의 예술성에
감탄사를 너무 많이 남겨두고 온곳 같습니다.
알바이신 지구는 알람브라 궁전과 가까운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슬람 교도들이 처음으로 요새를 쌓았으며 그라나다가 그리스도교들에게
함락되자 이슬람 교도들의 거주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벽 장식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정성이 지금도
살아 숨쉬는듯 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조가 번영을 누리던 자리에 영화로운 역사의 현장이 생생히 남겨져서
먼 나라, 이웃나라 사람들이 찾아가는 관광명소로 가치를 남기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이라는 아름다운 선율의 기타음악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음악의 선율이 이제는 정말정말 가슴에 와닿는답니다.
알람브라 궁전을 상상속에 그려 보다가 직접 제 발로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슬람 문화의 화려함에 매료되었던 금쪽 같았던 시간이
어느새 기억저편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리움으로 남겨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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