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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Mendelssohn-Auf fluegeln des Gesanges, Op.34-2

 

 

 

 

 

 

 

 

 

 

 

 

 

펠릭스 멘델스존 

 

 

 

 
Sop, Jo Su Mi

 

 

 

                                                                                                                    

 
Mendelssohn / Auf Flugeln des Gesanges                                                                                                                                                                                                         

                       

 

 

 

 

 

Auf Flugeln des Gesanges Op.34-2)

 

 

 

노래의 날개위에

 

 

Auf Flügeln des Gesanges,
노래의 날개 위에,
Herzliebchen, trag’ich dich fort,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당신을 실어 운반한다 멀리,

 
Fort nach den Fluren des Ganges,
멀리 갠지스강의 평원을 향해,
Dort weiss ich den schönsten Ort.
거기서 나는 안다 대단히 아름다운 장소를.


Dort liegt ein rotblühender Garten
거기엔 붉게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네
Im stillen Mondenschein;
고요한 달빛 속에;
 

 

 

Die Lotosblumen erwarten
연꽃들이 기다리네
Ihr trautes Schwesterlein.
그들의 소중한 자매를.

Die veilchen kichern und kosen
제비꽃들은 낄낄대며 정답게 이야기한다
Und schaun nach den Sternen empor;
그리고 별들을 쳐다본다;
 Heimlich erzählen die Rosen
은밀하게 속삭灌� 장미꽃들은
Sich duftende Märchen ins Ohr.
향기로운 동화를 귀에다.

Es hüpfen herbei und lauschen
껑충껑충뛰며 귀를 기울인다
Die frommen, klugen Gazell’n;
친절하고 영리한 가젤영양에게;
 Und in der Ferne rauschen
그리고 멀리서 솨솨 소리를 낸다
Des heiligen Stromes Well’n
성스러운 강의 물결이


Dort wollen wir niedersinken
거기서 우리는 주저앉고 싶다
Unter dem Palmenbaum
종려나무 아래

 

 


Und Lieb’ und Ruhe trinken
그리고 사랑과 휴식을 마시고 싶다
Und träumen seligen Traum.
그리고 황홀한 꿈을 꿈꾸고 싶다.


 

 

 

 

 

 

 

이 가곡은 멘델스존이 25세인 1834년 뒤셀도르프에서 지휘자로서 활약하고 있던 시대에
작곡된 것이다. 그 다음 해에 그는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지휘자가 되었고
그 악단의 실력을 유럽 일류의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이 노래의 날개위에는 멘델스존의 많은 가곡 중에서는 가장 대중화된 가곡으로서 원래의
시는 하이네의 것이다. 멘델스존의 음악이라면 일관하여 품위 있고 행복감에 넘치는 것이
많은데, 이 가곡도 역시 역시 기품이 있고 낭만의 향기가 높은 가곡이다.

반주는 일관하여 아르페지오의 음형을 취한다. 바이올린 곡이나 피아노 곡으로도 편곡되어
많이 연주되고 있다.    



 

 

 

1834년에 작곡되었으며, 유토피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멘델스존의 가곡은 베를린 리트악파(樂派)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절도 있는 시의 해석과 유절형식

(有節形式)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어,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섬세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슈베르트와 같은 새로운 수법을 구사하고 있지 않아 신선한 매력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만큼 연주회 같은 데서 연주되는 일도 드물지만, 이 곡만은 독일가곡 가운데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바이올린곡 등으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된다

[시해설] 서정적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노래의 날개 위에 실어 가고자 한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인도의 갠지즈

평원으로 서정적 자아가 낙원으로 생각하는 곳이다.

 

제2-4연은 그 낙원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온갖 꽃들의 속삭임과 껑충거리는 영양, 그리고 강물 소리뿐인 그 곳은 동화의 세계처럼 천진 무구한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자 하는 열망은 보다 자유롭고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보아도 좋다. 낙원으로 인도가 등장한 것은 당시 독일에 유행된 인도 예찬의 영향이다. 이 시는 하이네의 초기 서정시의 대표적 작품이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 있던 멘델스존 동상은 1936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펠릭스 멘델스존은 1809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철학자였고,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였다.

그의 집은 늘 유명한 학자, 예술가, 음악가, 과학자들로 붐볐다.

 "온 유럽의 지성이 멘델스존의 응접실에 모였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멘델스존은 매우 지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네 명의 자녀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켰다. 네 남매 모두 클레멘티의 제자인 루드비히 베르거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멘델스존과 그의 누이 판니는 카를 프리드리히 젤터에게 대위법과 작곡법을 배웠다.

젤터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협연자 중에 사라 레비라는 건반악기 주자가 있었다.

 

그는 바흐의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과 카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제자였는데, 바흐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숭배하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가 멘델스존의 음악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21년, 12살의 어린 소년 멘델스존은 젤터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작가 괴테를 만났다.

 

괴테는 자기 앞에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다른 재능의 소년에 깊이 감동했다.

 그 후 멘델스존은 몇 번 더 괴테에게 불려가 놀라운 즉흥 연주 솜씨로 노작가를 감동시켰다.

멘델스존의 집에는 개인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덕분에 멘델스존은 청소년 때부터 자기가 작곡한 곡을 직접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을 수 있었다.

15살 때인 1824년 그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첫 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

멘델스존은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 외국어, 그림, 철학,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6살 때 테렌스의 《안드리아》를 번역해서 스승을 크게 감동시켰는데, 이듬해 헤이세는 '내 제자 펠릭스의 번역'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멘델스존은 1826년부터 3년 동안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이때 헤겔의 미학과 에드아르트 간즈의 역사학, 카를 리터의 지리학 강의를 들었다.

1829년, 멘델스존은 베를린 성악 아카데미의 연주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발표했다.

 

이 곡은 바흐가 죽은 후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멘델스존에 의해 처음 알려졌는데, 이것이 바흐 음악의 부활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바흐 열풍이 불었으며, 이와 더불어 당시 20살이던 멘델스존의 명성도 크게 높아졌다.

그 후 몇 년 동안 멘델스존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지냈다.

 

 

1833년, 멘델스존은 뒤셀도르프 시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도시의 촌스러움에 실망한 나머지 이듬해에 바로 그만두었다.

그리고 1835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그 후 그는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수준을 높이는 데 전력했다.

연주회에서 자기 곡뿐만 아니라 바그너나 슈만 같은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연주했다. 슈만으로부터 슈베르트의

제9번 교향곡 악보를 넘겨받고 이를 초연하기도 했다.

 

 

1840년, 멘델스존은 베를린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어 하는 프로이센 황제로부터 베를린에 와서 음악학교를

설립하고, 교회음악을 개혁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라이프치히에서의 지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일 년 중 일정 기간만 베를린에 머물기로 했다.

하지만 애초에 약속했던 음악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궁정에서 그에게 주기로 했던 보수, 지위, 콘서트 프로그래밍에 대한 권리도 약속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미련 없이 라이프치히로 돌아갔다.

 

1843년,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영국을 방문했다. 1829년 처음 영국을 찾은 후 여덟 번째 방문이었다.

이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다섯 번 지휘했다.

 

1846년에는 버밍엄에서 오라토리아 〈엘리야(Elijah)〉를 초연했으며, 184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과 자신의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Symphonie No.3 'Scottish' Op.56)〉를 연주했다.

 

1847년 5월,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던 누이 판니가 세상을 떠났다.

멘델스존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누이의 사망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과로가 겹쳤는지 그 후 그는 여러 차례 뇌졸중으로 인한 발작을 일으켰다.

 이렇게 고생하다가 누이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만인 1847년 11월 4일, 38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멘델스존의 음악에는 과도한 반항 의식이나 투쟁 의지, 병적인 자기도착 증세나 자기과시 같은 것이 없다.

순탄했던 삶처럼 음악도 그렇게 조용하고 수월하게 흘러갔다.

이런 그의 음악을 가리켜 인생에 대한 절실한 번민을 담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멘델스존의 음악에서는 전통을 파괴하는 신선한 충격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화성이나 선율, 리듬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도 없다.

상상력의 영역이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음악을 형성하는 뼈대는 고전적이다.

음악의 균형을 방해하는 극단적인 감정을 피하고, 음악 이외의 영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고전적이다.

 

멘델스존은 모두 다섯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중 세 곡에 제목이 붙어 있다.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그린 제3번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그린 제4번 '이탈리아

(Italian)', 1830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제5번 '종교개혁(Reformation)'이

그것이다. 이 중 제4번 '이탈리아'는 1833년 베를린에서 완성했다.

 

이탈리아의 밝은 태양과 푸른 하늘, 맑은 공기를 연상시키는 밝고 경쾌한 곡이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남국적인 느낌의 밝고 화사한 제1주제와 감상적인 정취가 풍기는 제2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악장은 서정미와 종교적인 감성을 담은 가요풍의 선율로 시작한다. 3악장은 자유로운 스케르초 형식이며, 4악장은 춤곡의 일종인 살타렐로풍으로 전개된다.

 살타렐로는 이탈리아의 민속춤곡인데, 남녀가 손을 잡고 앞뒤로 돌아가며 추는 춤이다.

후에 또 다른 춤곡인 타란텔라가 나타난다.

춤곡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발랄한 악장이다.

 

 

 

멘델스존의 오리토리아 〈엘리야〉 육필 악보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즉흥 연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으로는 15살 때 작곡한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론도 카프리치오소(Rondo Cappriccioso)〉와 1829년부터 1845년 사이에 작곡한 〈무언가(Lieder ohne Worte)〉가 유명하다.

 

〈무언가〉는 '가사 없는 노래'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48개의 피아노 소곡이 들어 있다. 19세기에는 소박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소품이 널리 유행했는데, 멜로디가 아름다우면서도 연주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실린 곡들은 모두 하나의 악상을 노래하듯이 짧고 소박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은 〈봄노래(Chanson de printemps en la majeur)〉이다.

음과 음 사이에 영롱한 장식음이 붙는 곡으로 장식음이 마치 봄 동산을 수놓는 갖가지 빛깔의 아름다운 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서정적으로 흘러가는 멜로디 사이사이마다 장식음이 첨가되어 곡에 화사하고 화려한 빛깔을 돌게 하고 있다. 또한

〈무언가〉에는 〈베네치아 뱃노래(Barcarolle Venitienne)〉가 세 곡 들어 있는데, 낭만적인 베네치아의 분위기를

묘사한 야상곡 같은 곡이다.

 

협주곡으로는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각각 두 곡씩 작곡했다. 그중 1844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은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이다.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 개의 악장을 중단 없이 연속적으로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처음에 나오는 1악장의 제1주제 선율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멘델스존 특유의 화사한 열정이 숨 쉬는

매력적인 악장이다.

이어지는 2악장은 바이올린으로 부르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노래이며, 3악장은 약동하는 생기와 발랄함을 보여 준다. 작은 불꽃 같은 음들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눈부신 악장이다.

 

멘델스존은 제목이 붙은 서곡도 여러 편 작곡했다. 그중에서 스코틀랜드에 있는 전설의 동굴을 보고 받은 인상을 그린 〈핑갈의 동굴(Die Fingals―Höhle)〉, 괴테의 시에서 악상을 얻은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 Op.27)〉가 유명하다.

 

극음악으로는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곡을 붙인 〈한여름 밤의 꿈〉과 프랑스 시인 라신의 희곡에 붙인 〈아탈리아〉,

 그 외의 성악곡으로 오라토리오 〈엘리야〉, 〈성 요한〉과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