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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Definition of Baroque music

 

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Partita No.3 in E major, BWV1006

 

 

  르네상스 음악의 뒤를 이어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에 걸쳐 바로크 음악이 전개된다. 원래 바로크(Barock, Baroque)란 말은 주로 미술사에서 사용되어 온 시대 양식의 개념이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플랑드르의 루벤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웅대한 구도,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색채, 과장된 매시브한 곡선, 열띠고 극적인 표현 등이 바로크 예술의 특징이다.

르네상스 예술과 바로크 예술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르네상스는 조화가 잡힌 조용한 예술이지만,

바로크는 감동이 힘차며 직접적으로 압도하려 드는 예술이라 하겠다. 

  르네상스 음악에 바로크 음악이 잇따르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하 일이었다 .

왜냐하면 르네상스 음악은 적어도 팔레스트리나, 랏수스 등의 예술적인 작품은 대위법적이어서 일반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므로 민중은 더 쉽고 친근해 질 수 있는 것을, 그것도 되도록 르네상스의 그것처럼 너무나

 정돈되어 변화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운동감이 있는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요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새로운 바로크 음악을 만든 최초의 사람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있던

소장음악가들이었다. 그들은 대위법의 음악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 간소한 음악의 필요성을 통감하여,

음악애호가인 바르디 백작 집에 모여서 새로운 음악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 사람들을 카메라타(camerata)라고 하였다. 그들은 르네상스 정신에 따라 음악도 고대 그리스의 것부터

재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대위법 대신 단순한 선율에 간소한 화음 반주를 붙인 양식을 고안하였다.

 

이것은 소위 단음악이며, 이것으로 바로크 음악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크 음악의 사회적 기초는 절대주의의 왕제와 귀족제이며, 주로 극음악과 기악음악의 장르에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갔다.

 

극음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페라이다. 극과 음악을 맺는 시도는 그 이전부터 실행되고 있었지만

16세기말 피렌체의 카메라타들, 즉 캇치니(Caccini, Giulis 약 1550-1618), 페리(Peri, Jacopa 1562-1633)등이 당시의 인문주의적인 이념위에 서서 고대 그리스 극의 재흥에 노력하고, 레치타티보 풍의 모노디 양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근대 오페라의 방향이 기초지워졌다.

 

 그들의 노력은 딜레탄트 이상의 것은 아니었지만, 몬테베르디(Monteverdi, Claudio 1567-1643)의

 "오르페오"로 인해 이 방향은 확정되었다. 몬테베르디는 그후도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여, 만년에도 "폽페아의

대관"과 같은 걸작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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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7년에는 베네치아에서 공개 오페라 극장이 시작되자, 곧 유럽 전역에 파급되어, 오페라는 오늘날의

 영화와 비슷한 사회적 기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롯시(Rossi, Luigi 1598-1653), 체스티(Cesti, Marc' Antonio 1623-1669), 스트라델라(Stradella, Alessandro 1642-1682) 등이 베네치아 오페라의 거장으로서 활약, 시대와 더불어 초기의 모노디 양식은 선율이 풍부한 감미로운 아리아와 이야깃조의 레치타티보로 분리되어 갔다.

 

아리아의 형식도 차츰 확정되고 서곡이나 간주곡등의 기악합주곡도 작곡, 연주되었다.

다시 18세기가 되면

나폴리를 중심으로 알렛산드로 스카를랏티(Alessandro Scarlatti1660-1725), 페르골레지(Pergolesi,

Giovanni Battista 1710-1730), 요멜리(Jommelli, Nicelo 1714-1774), 피치니(Piccini, Nicolo 1727-1800),

치마로사(Cimarosa, Domenico 1749-1800) 등 소위 나폴리 악파의 작곡가들이 나타나 아리아는 그 선율이 점점 풍부하고 감미롭게 되며, 다 카포 아리아의 정형도 형태를 갖추어 소위 이탈리아식 서곡의 형식이라든가 오페라

전체의 구성법도 고정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극보다 음악의 정서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어 가수의 성악 기교가 중심이 되는 위험도 안게 되었다. 18세기에는 오페라의 심각한 요소와 코믹한 요소가 분리되어, 하나는 오페라 세리아로서 고전적인 신화,

 사화로 이루어지는 서정비극이 되고, 하나는 오페라 부파로서 일상생호라을 제재로 한 희가극이 되었다.

오페라의 극적인 수법은 종교음악의 장르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종교적인 제재에 의한 극음악으로서 오라토리오가 발생하여 카발리에리(Cavalieri, Emilio 1550-1602), 카발리(Cavalli, Francesco 1602-1676)등의 작곡가를 낳게 되었다.

오라토리오도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아리아, 레치타티보, 기악합주 등을 가지게 되었는데, 한편 오페라와는 달리

시각적인 요소를 없애고연주회 형식에 의거하게 되었다.

  17세기 후반에는 카릿시미(Carissimi, Giacomo 1605-1674)가 합창을 중용하여 웅대한 서사적 오라토리오를 창작, 오라토리오 사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그후의 칼다라(Caldara, Antonio 1670-1736), 요멜리등의 오라토리오에 이르면 정서적인 경향이 강하여져 오페라의 대용곡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 그리스도의 수난을

취급하는 수난곡도 널리 작곡되었다.

 

극음악의 이념을 실내악적인 방향으로 추구해가는 칸타타도 이 시대에 성하여 오페라에 가까운 내용의

칸타타 다 카메라와 소 오라토리오라고도 할 칸타타 다 키에사가 만들어 졌다. 전자는 세속적, 후자는 종교적 성격을 가진다. 미사나 모테트등의 전례음악도 극음악의 이디옴에 의하여 작곡되게끔 되고, 몬테베르디나, 베네볼리(Benevoli, Orazio 1605-1672)등의 기념비적 작품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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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악음악의 장르에서도 이탈리아의 주도성이 두드러진다. 오르간 음악에서는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Girolamo 1583-1643)가 종래의 성악양식에 의거한 기악서법을 정리, 오르간 특유의 이념을 추구하여,

 토카타나 푸가등의 형식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기악합주곡에서는 특히 트리오 소나타의 형식이 널리 쓰여졌다. 몇몇 다른 무곡 풍의 악장을 간추린 조곡 내지 소나타 다 카메라와 함께 호모포닉한 악장과 폴리포닉한 악장을 배합한 소나타 다 키에사 등이

작곡되고,

레그렌치(Legrenzi, Giovanni 1626-1690),

 비탈리(Vitali, Giovanni Battista 1644-1692),

토렐리(Torelli, Giuseppe 1658-1709), 그리고 특히 코렐리(Corelli, Arcangelo 1653-1713),

또한 알비노니(Albinoni, Tomaso 1671--1759), 타르티니(Tartini, Giuseppe 1692-1770),

로카텔리(Locatelli, Pietro Antonio 1695-1764)등이 명작을 낳았다.

 

 또 바로크 음악의 특징의 하나인 경주양식은 콘체르토라는 독특한 곡종을 만들어 냈다.

 

특히 대비적인 두 합주군-소합주군 과 대합주군과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콘체르토 그로소가 애호되고, 코렐리, 토렐리,

제미니아니(Geminiani, Francesco 1674-1762) 그리고 비발디(Vivaldi, Antonio 1675-1741)등의

작품이 알려졌다.

  독주 클라비어를 위한 소나타, 혹은 플루트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나 콘체르토 등도 활발하게 작곡되었는데,

특히 독주 클라비어의 장르에서는 도메니코 스카를랏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의 공헌이 크다.

 

 18세기 중엽이 되면, 기악음악의 장르에서도 사마르티니(Sammartini, Giovanni Battista 1698-1775)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오페라의 영향이 현저하여 듣기 좋은 감미로운 선율이 환영되고,

동시에 구성도 보다간결하고 응축된 것으로 되어, 차츰 고전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이상과 같이 바로크 음악의 중심무대는 이탈리아였으며,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가는

 전 유럽 악단에서 활약함으로써,

이탈리아 음악이 바로 국제 음악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의 나라에서도 각각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민족적 특질을 반영한 음악이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륄리(Lully, Jean Baptiste 1632-1687)가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고, 프랑스 오페라와 발레 음악의

방향에 대하여 기초를 닦고, 캄프라(Campra, Andre 1660-1744) 그리고 라모(Rameau, Jean Philippe 1683-1764) 등에게 계승되었다. 륄리가 창시한 소위 프랑스식 서곡의 형식은 다른 나라에서도 모방되었고,

라모가 그의 "화성론" (1722)으로 근대 음악이론 확립에 공헌한 것도 빼놓을수 없는 일이다.

 

교회음악의 장르에서도 륄리, 달란드, 샤르팡티에(Charpentier, MarcAntoine 1636-1704)등이 활약하였고,

또 기악음악에서는 샹보니에르(Chambonnieres, Jacques Champion 1602-1672), 쿠프랭(Couperin,

Francois 1668-1733), 라모,다캥(Daquin, Louis Claude 1694-1772)

등의 클라브생 및 오르간을 위한 음악, 마레(Marais, Marin 1656-1728)등의 현악 음악 등 다채로운 전개를 보였다.

 프랑스의 기악음악은 특히 표제적인 경향이 두드러진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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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은 17세기 전반에 있었던 정치동란으로 음악의 발전도 저해되어 있었는데, 오아제복고와 함께 이탈리아 및

프랑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배워들여, 블로우(Blow, John 1649-1702), 그리고 퍼셀(Purcell, Henry

1659-1695), 험프리(Humfrey, Pelham 1647-1674)등의 오페라, 교회음악, 기악작품에 특색있는 결실을

안겨 주었다. 독일의 음악은 르네상스 때까지는 다른나라에 뒤져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기법을 흡수하고, 거기다 독일의 독자적인 요소를 크게 살려서 그 후의 독일 음악 황금시대를 이룩하게 되었다.

 

 독일어로 씌여진 최초의 오페라는 쉬츠(Schutz, Heinrich 1585-1672)가 작곡한 "다프네" (1627)인데,

그 음악은 오늘날 분실되고 없다.

 

 독일은 이탈리아 처럼 공개 오페라 극장이 성하는 사회적 기초가 없었으므로

오페라는 주로 궁정을 중심으로 상연되었다.

 

그러나 17세기 말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는 오페라 극장이 설치되어, 쿠서(Kusser, Johann Sigismund 1660-1727), 카이저(Keiser, Reinhard 1674-1739), 마테존(Mattheson, Johann 1681-1764)등이 활약하고 있었다. 청년 헨델도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또 마테존은 음악이론의 중요한 저술을 남겼다.

 

종교음악의 장르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작곡가의 활약이 활발하여, 오라토리오, 수난곡, 칸타타는 본국인 이탈리아를

능가할 정도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방면에서도 쉬츠의 공헌은 매우 컸으며, 다시 샤이트(Scheidt, Samuel 1587-1654), 샤인(Schein, Johann Hermann 1586-1630), 이어 베크만 (Wechmann, Matthias 1619-1674), 로젠뮐러(Rosenmuller, Johann 1620-1684), 북스테후데(Buxtehude, Dietrich 1637-1707),

 

타일레(Theile, Johann 1646-1724)등이 나타났다.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코랄을 중추로 하여, 더욱이 이탈리아 풍의 극음악양식과 협주양식을 동화한

 이색적인 작품이 씌여졌고, 바하나 텔레만(Telemann, Georg Philippe 1671-1767)등의 작품의 기초가 되었다.

  오르간 음악에서는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의 스벨링크(Sweelinck, Jan Pietersz 1562-1621)의 강한 영향아래, 독일 독자적인 오르간 음악의 전통이 시작되었고, 특히 샤이트, 툰더(Tunder, Franz 1614-1667), 프로베르거(Froberger, Johann Jakob 1616-1667), 라인켄(Reinken, Jan Adams 1623-1722), 케를(Kerll,

 

 Johann Caspar 1627-1693), 북스테후데, 파헬벨(Pachelbel, Johann 1653-1706), 뤼벡(Lubeck, Vincent 1654-1740) 등을 거쳐 바하로 이르는 위대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코랄을 중심으로 한 코랄 전주곡과 함께 푸가의 형식을 쓴 것이 개척되어 오르간의 이념이 여전히 추구되었던 것이다.

 

클라비어 음악면에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풍의 것이 성하였지만 동시에 클라비어 조곡의 형식을 고정시키는

 프로베르거의 노력, 또 조가 다른 전주곡과 푸가 곡집에 대한 피셔(Fischer, Johann Caspar Ferdinand

 1650-1746)의 시도, 쿠나우(Kuhnau, Johann 1660-1722)의 표제적 독주 클라비어 소나타라든가 텔레만의 기악합주곡의 출판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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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바로크기는 근대음악의 성장시대였다.

 오늘날 널리 씌여지고 있는 곡종, 특히 기악음악의 그것은 이 시대에 탄생하고, 이 시대에 발달한 것이었으며,

근대 음악의 갖가지 원리, 이디옴도 이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명확한 것으로 된 것이다. 이러한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나타나 그 시대의 모든 경향을 종합하여 최후의 대성으로 이끈 것이 헨델(Handel, Georg Friedrich 1685-1759)과 바하(Bach, Johann Sebastian 1685-1750)이다.

 

이 두사람에 의해 바로크 음악은 완성되었으며, 이 둘은 바로크 음악 최호의 그리고 최대의 음악가이다. 이러한 기악음악 발전과 더불어 중세기 이래의 갖가지 기악이 개량되기도 하고, 신종을 낳기도 하였다.

또 그 주법도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예스런 비올라대신 바이올린이 등장, 이 시대에 제작된 아마티(Amati)일가, 과르네리(Guarneri)일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일가의 바이올린은 오늘날까지 존중되고 있다. 관악기의 진보도 눈부시어, 그 작품도 많이 작곡되었다.

 오르간도 음전이 늘어나고 페달주법도 진보하여 색채적 효과가 추구되고, 또 챔발로(클라브생), 클라비코드 등의 건반악기도 중용되었다. 피아노도 18세기 초두에 발명되었지만 일반화 된 것은 이 시대가 끝나고 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