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gang Amadeus MozartClarinet Quintet in A major K.581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V 581
Clarinet Quintet in A major 'Stadler' k.581 이어듣기
1 mov. Allegro
3 mov. Menuetto
4 mov. Allegretto con variazioni
[2013.03.14/15] 첼리스트여미혜 : 슬로바키아 Bratislava에서 Slovak Philharmonic와협연
(지휘: Ernest Hoetzl)
Clarinet Quintet In A major “Stadler” k.581 (1789)J
Mozart, Wolfgang Amadeus (1756-1791 Aust.)
Jozef Luptocik : Clarinet
Slovak Quartet
1st Violin : Aladal Mozi
2nd Violin : Aloiz Nemec
Viola : Milan Telecky
Violincello : Jozef Sikola
이 클라리넷 5중주곡은 클라리넷과 현악4부(1st 바이올린, 2nd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해 1789년 9월 29일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곡은 당시 모차르트의 친구인 클라리넷의 명수 안톤슈다트라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것이다.
이 5중주같은 악기 편성은 모차르트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는 실내악의 악풍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브람스가 작품 25번의 나 단조를 작곡했다.
클라리넷을 완전한 주도적인 위치에다 두지는 않았지만 우월적 역할을 담당케하고 현은 오브리카토로 취급하고 있다. 클라리넷의 음악이 이 악곡에 품위있는 칸타빌레의 분위기를 마련하여 전체가 매혹적인 선율로 되어 있다.모짜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년전인 1789년에 완성된 "클라리넷 5중주곡”은 브라암스의 작품과 더불어 이 분야의 명곡으로 널리 애호를 받고 있다.
모짜르트는 1781년 대사교와의 의견충돌로 고향인 잘쯔부르크를 떠나 비엔나에 정주하게 된다. 모짜르트는 여기서 한 사람의 클라리넷 주자와 알게 되는데, 이 사람이 안톤 시타틀러(Anton Stadler, 1753~1812). 이 사람은 과거 잘쯔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에서 단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깊은 교류는 없었다. 그런데 비엔나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두 사람은 두터운 우정을 나누게 되었고, 모짜르트는 이 사람에게 경제적인 도움까지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모짜르트는 음악적으로는 아직 발달하지 못한 클라리넷의 성능이라든가 주법에 대해서 그를 통해 많은 자문을 구하게 되었고, 그 답례의 뜻이 있었던지 만년에 클라리넷을 중심으로 하는 2곡의 작품을 시타틀러에게 헌정하게 된다. 즉 1곡은 “시타틀러 5중주곡”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클라리넷 5중주곡이며, 다른 하나는 1789년에 착상되어 1791년 9월 28일부터 10월 2일에 걸쳐 뒤쪽의 2개의 악장을 완성 추가한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클라리넷은 베에토벤 이후의 관현악 작품에서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악기가 되었다. 이 악기가 발명된 것은 비교적 근대의 일로 플룻이나 오보에, 파곳보다 뒤의 일이다.
대체로 1690년경 뉘른베르크의 관악기 제작자 덴너(Johann Christoph Denner 1655~1707)가 이 악기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클라리넷’이라는 이름도 덴너가 살루모(Chalumeau)라는 악기를 개량해서 만든 악기의 음색이 마치 트럼펫의 별명인 클라리노(Clarino)와 비슷하다고 해서 ‘작은 클라리노’즉 ‘클라리넷’이라고 이름지어진 것이다.
이 악기의 본격적인 사용은 18세기 중엽부터로 보여지며, 모짜르트가 클라리넷을 알게된 것은 1763년부터 1766년에 걸쳐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등지로 여행하던 때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앞서 있던 만하임 오케스트라나 런던 오케스트라 등에서 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모짜르트가 처음으로 이 악기를 사용한 것은 한참 뒤의 일로 1771년 11월에 밀라노에서 작곡된 “디베르티멘토 Eb장조 KV.113"에서 2개의 클라리넷을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이 “클라리넷 5중주곡”은 모짜르트가 봉직하고 있던 리히노브스키 공을 수행해서 북부 독일을 여행하고 돌아와 때마침 아내가 병환으로 누워 있었고, 생활은 극도로 어려운 상태에 있었던 1789년 9월 29일 비엔나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아내 콘스탄체의 병환이나 생활에 허덕이는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맑고 청순한 선율과 기품있고 화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악기 특유의 유화한 음질을 충분히 살린 명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악기 편성은 클라리넷(A조), 바이올린2, 비올라, 첼로로 구성되어 있다.
제 1 악장 : Allegro, A장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우하한 제1주제가 현악 4중주로 제시되고 클라리넷이 후반부를
장식한다.
이것이 반복되고 경과부로 이어지면 F#단조로 바뀌며 새로운 선율이 클라리넷에 이어 첼로로 연주된다.
이 에피소드는 재현부에서도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제2주제라고 볼수는 없다. 제1주제와 제2주제가 모두 장조이기 때문에 그 중간에 이러한 단조로 선율을 삽입해서 앞으로 나오는 제2주제를 인상지어 주는 수법을 모짜르트는 비엔나 시대에 곧잘 사용해 왔었다.
제2주제는 첼로의 피치카토의 유도로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화음을 지속시키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이 유창한 선율을 노래한다. 이 주제가 클라리넷으로 반복되지만 이때 E장조에서 E단조로 조바꿈을 한다. 그리고 현과 클라리넷이 대응을 하는 종결주제와 이어 제1주제로 제시부를 끝맺게 된다.
전개부에서는 짧은 도입에 이어 C장조로 제1주제를 클라리넷과 현이 연주하고, 제1주제의 마무리를 클라리넷이 하면 이에 현악기들이 대응을 한다. 그리고 끝부분이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순으로 이어질 때 클라리넷이 분산화음으로 크게 상하로 움직이면서 장식해 간다.
재현부에서는 먼저 제1주제가 현과 클라리넷에 의해 재현되지만 이때 제시부에서 클라리넷이 연주했던 중간 이후의 후반부가 이번에는 제1바이올린이 맡아 연주한다. 이 제1주제는 반복되지 않고 제시부 때와 같이 새로운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제2주제가 관례대로 나오지만 처음에는 제1바이올린이 A장조로 옮겨져, 다시 나오고 제1주제를 가지고 마무리를 하는 종결부로서 이 악장을 힘차게 끝맺는다.
제 2 악장 : Larghetto, D장조, 3/4박자, 3부 형식. 이 제2악장에서는 클라리넷의 감미로운 음색이 잘 살려져 끝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라리넷의 작품으로 쌍벽을 이루는 “클라리넷 협주곡”의 제2악장 아다지오와 같은 성격과 분위기를 갖는 우아하고 유려한 선율의 악장이다.
곡은 가냘픈 2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뒷받침 위에 클라리넷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주제를 노래한다. 이 선율이 한참 이어지다가 일단락 지으면 이번에는 제1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마치 오페라의 사랑의 2중창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한다. 이 아름다운 2중주의 대응으로 제1부가 끝나면 곡은 제2부인 중간부로 이어진다.
이 중간부에서는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의 2중주의 선율이 여러가지로 전개되고 처리된 다음 곡은 제1부가 되돌아오는 제3부로 이어져 다시 클라리넷의 주제가 재현되고 제1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2중주를 거쳐 조용히 끝난다.
제 3 악장 : Menuetto, A장조, 3/4박자, 2개의 트리오로 구성된 미뉴에트.
곡은 먼저 전합주로 미뉴에트 주제를 활발하게 제시하며 시작된다. 단아하면서도 활기있는 미뉴에트 악상이 전개되고 주부가 일단락 지어지면 A단조의 제1트리오의 중간부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클라리넷이 쉬고 현악기만으로 쉼표를 사이 사이에 삽입한 특징있는 주제를 서로 주고 받으며 경쾌한 스케르쪼와 같은 악상을 전개해 간다.
그리고 제2트리오에서는 A장조로 왈츠의 리듬에 실어 클라리넷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선율을 연주한다. 곡은 다시 처음의 미뉴에트의 활기있는 악상을 재현하고 끝난다.
제 4 악장 : Allegretto, A장조, 2/2박자, 변주곡 형식. 주제와 6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변주곡 형식이지만, 끝의
2개의 변주곡은 자유로운 변주로 종결부 역할을 한다.
주제는 A,B,A의 3부 형식으로 A가 반복되고 BA가 반복된다.
주제의 선율은 리드미컬한 것으로 현악기가 주도하고 클라리넷이 마무리를 하면서 들어온다.
제1변주는 주제의 제시부와 같이 중간부를 제외하고는 현악기들이 주제를 연주하면 클라리넷이 밝은 선율을 노래해 간다. 제2변주는 주로 제1바이올린이 주제를 변주해가면 클라리넷이 이따금 들어와 이를 거들고 장식적인 채색을 한다. 제3변주는 A단조로 바뀌고 여기서는 4개의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서로 얽히면서 약간 거친 변주를 해가고 이에 대해 클라리넷이 분산화음으로 분위기를 유연하게 조화시켜 간다.
제4변주는 다시 A장조로 되돌아가 다른 악기들이 주제를 연주해 가면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이 교대로 눈부시게 움직이면서 이에 색채감을 더해 준다. 그리고 4마디의 간주를 거쳐 속도는 느린 아다지오로 바뀐다.
이 아다지오 부분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틀림없는 제5변주이다. 여기서는 앞서 나왔던 제2악장 라르게토에서 볼 수 있었던 서정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어 곡은 5마디의 간주를 거쳐 속도가 일변해서 빠른 알레그로로 바뀌어진다. 이 알레그로도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제6변주이다.
여기서는 빠른 속도에 의한 주제의 변주로 전반부는 원형대로 후반부는 약간 변형되어 나온다. 곡은 이 활발한 최후의 변주에 이어 짧은 마무리로 경쾌하게 끝난다.
모짜르트는 클라리넷을 위한 작품으로서, 클라리넷 5중주와 클라리넷협주곡이란 불후의 명곡과 더불어 4중주 분야서도 클라리넷을 사용한 작품을 3곡이나 썼다. 그는 교향곡에도 클라리넷이란 악기를 끌어들인 최초의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어 그가 이 악기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실려 크게 알려진 클라리넷협주곡과 쌍벽을 이루는 감상적인 곡이 바로 클라리넷 5중주 K.581 `Stadler'.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들러(Anton Stadler)에 의해 연주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Clarinet Quintet in A major, K581)》와 《클라리넷 협주곡(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을 연주하여 클라리넷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되었으며 점차 클라리넷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짜르트와 슈타들러
안톤 슈타들러는 역사적으로 세계적인 작곡가와 맞물려 기억되는 첫 번째 클라리네티스트이다. 슈타들러와 모짜르트는 음악적 동지이면서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친분을 내내 유지하며 지낸다. 안타까운 일은, 늘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모짜르트가 빚 때문에 궁지에 몰렸을 때에도 슈타들러는 모짜르트에게 진 빚을 갚지 않는 무례를 범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모짜르트나 그의 아내 콘스탄짜로부터는 언급되지 않으나, 모든 친지와 친구들의 빈축을 사는 계기가 된다. (혹자는 모짜르트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슈타들러의 음악적 명성을 깎아내릴 수는 없었다.
1. 배경
구스타브 쉴링에 의하면, 슈타들러의 아버지 요셉(Joseph Stadler 1724.3.4. Wolfpassing, Austria -1777.1.6.Wien)은 비인 예수회 교회의 카펠마이스터(악장)였다고 하며, 다른 사람에 의한 슈타들러 조상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안톤(Anton Stadler)의 1753년 출생기록은 정확한 날짜가 확인되지 않으며, 1812년 6월 15일 비인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두 동생은 궁정 합창단의 가수로 활동하다가 베이스 연주자로 명성을 드높인 펠릭스(Felix Joseph Stadler 1754.1.13.-1824.9.30)와 안톤과 함께 클라리넷과 바세트 혼을 뛰어나게 연주하던 요한(Johann Nepomuk Stadler 1755.5.6.-1804.5.2.) 이다.
안톤과 요한의 선생님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 둘은 1773년과 1775년에 비인의 음악가 협회(Tonkunstlersocietat)의 연주로 데뷔한다.
2. 모짜르트와 클라리넷
한편, 모짜르트가 그의 곡에 클라리넷을 처음 사용한 것은 1771년 밀라노의 후원자를 위해 작곡한 디베르티멘토 K.113 이었으며, 이 곡이 1777년 잘쯔부르크에서 연주되었을 때에 슈타들러 형제가 연주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는 모짜르트의 아버지로부터 1777년 9월26일 잘쯔부르크 연주에 대한 슈타들러 형제의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클라리네티스트 슈타들러
1780년 3월, 슈타들러 형제는 다시 비인의 음악가 협회 연주를 가지며, 이 때부터 1783년까지 갈리친이라는 러시아 귀족에게 고용되어 클라리넷과 바세트 혼을연주하였다.
1783년부터 8명으로 구성된 궁정 악단(Imperial Wind Band)에서 동생 요한이 퍼스트를, 안톤이 세컨드 클라리넷을 맡아 연주한다. 이는 실력에 따른 배치가 아니라 안톤의저음에 대해 각별하였던 애정에 대한 반증이다. 동생 요한은 이후까지 솔리스트로는 인정받지 못하나 형 안톤과 수많은 듀오 무대를 가진다.
4. 모짜르트와 슈타들러
바세트 혼 이라는 악기는 1770년 경 파사우(Passau, Germany)에서 발명되어 모짜르트가 클라리넷과 더불어 사랑하는 악기로 자리잡는다. 모짜르트가 바세트 혼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781년 작곡된 '그랑 파르티타 (Gran Partita KV 361)' 와 발레 음악 '이도메네오(Idomeneo)' 에서이다.
1781년부터 모짜르트는 비인에 정착하게 되며, 이 시기에 그의 애제자 프란체스카(Francesca von Jaquin)와 그녀의 하우스 콘서트를 위해 성악과 클라리넷, 바세트 혼을 위한 곡들을 작곡한다. -Three voices and accompaniments for clarinets and basset-horns KV 346, KV 436-9, KV 549 (1788) 이 시기에 안톤의 누이 테레사가 성악을 담당하여 노래하곤 하였다.
프란체스카를 위하여 모짜르트는 케겔 슈타트 트리오를 작곡(1786)하였으며(Kegelstadt trio for clarinet, viola and piano KV 498), 이 곡은 스키틀 게임을 하는 가운데 완성되었다.
모짜르트가산만한 가운데 작곡하기를 즐겨한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그래서 그가 작곡중일 때는 아내에게 옆에서 이야기를 해 달라고 자주 부탁하곤 하였다.
안톤 슈타들러가 처음으로 모짜르트의 작품을 연주한 것은 1784년 3월 23일 비인의 국립 궁정 극장에서의 '그랑 파르티타' 가 무대에 올랐을 때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작곡가와 클라리네티스트는 함께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KV 452)를 함께 연주한다.
모짜르트는 1784년에 '프리메이슨' 에 가담하며, 슈타들러 역시 1785년에 가입함으로써 둘 간의 가까운 이해와 결속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된다. 1785년 9월 모짜르트는 비인에 존재하던 8개의 로지(lodge-프리메이슨 조직의 작은 단위) 중 가장 작은 '팜 트리(Palm Tree)'에 소속되어 있었다.
같은 해 10월 20일에 '팜 트리'가 다른 로지들을 초대하는 음악회가 열린다. 프리메이슨의 신비주의적 양상은 예술가적 성향에 큰 자극을 주었으리라 생각되며, 모짜르트와 슈타들러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데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1786년에 작곡된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프라하의 공연에 모짜르트와 슈타들러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이 초대된다.
(1787년 1월) 이 여행길에서 모짜르트와 그의 친구들은 서로서로를 포함한 여러 인간형과 개인에게 성격을 반영하는 별명을 붙여주게 된다. 이는 모짜르트가 프란체스카의 오빠 고트프리트(Gottfried von Jaquin)에게 보낸 편지에 잘 소개되고 있다.
" 친애하는 힝키티홍키(Hinkity Honky)에게. 이게 너의 새 이름이야. 우리가 여행길에 우리들 모두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내었다. 여기 소개하자면-나는 펑키티티티(Punkitititi), 내 아내는 샤블라품파, *호퍼는 로츠카품파, 안톤은 노치비키치(Noschibikitschi).
내 하인 요셉은 사가다라타, 나의 강아지 가우켈은 샤마누찌, 콸렌베르크 부인은 룬찌푼찌, *밀 크룩스는 라믈로 슈리무리, 프라이슈타틀러는 가울리마울리…."
(*호퍼 - Franz Hofer 바이올리니스트, 콘스탄챠의 여동생과 결혼.
*밀 크룩스 - 마리안느, 13세의 바이올리니스트
노치비(Notschibi)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을 뜻하고, 키치비(Kitschibi)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5. 모짜르트 클라리넷 5중주
슈타들러 형제는 1787년 비인 궁정 오케스트라에 고용되어 수석과 부수석을 맡는다. 이들의 연봉은 400플로린(약 70 달러)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모짜르트의 연봉도 800플로린으로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낮은 수준이었으며, 잘쯔부르크의 부악장이던 모짜르트의 아버지도 연봉 300플로린을 받을 뿐이었다.
따라서 음악가들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손을 벌려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만일 그들이 영역을 넓혀 연주여행을 하고자 할 때에는 장거리 여행 자체가 큰 부담이 되곤 했다.
1787년 안톤은 작곡가 롯츠(Lotz)의 곡을 자신이 개발한 '바세트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이 악기는 저음부의 '레'까지의 키를 덧붙인 것이었으며, 후일 발명된 '베이스 클라리넷'은 '도#'과 '도'를 덧붙인다.
안톤은 이렇게 네 개의 음(eb,d,c#,c)이 추가된 A조의 클라리넷을 즐겨 연주하였다. 이 악기의 설계도나 실제 모델은 전해지는 바가 없으나, 모짜르트에게 영향을 주어 '클라리넷 5중주(KV 581:1789년)'와 '클라리넷 협주곡(KV 622 :1791년)'을 작곡하게 된다.
슈타들러는 이 곡들을 당시에 사용되던 5개 키의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기에 넉넉한 실력의 소유자였으나, 때때로 어려운 부분에 대해 작곡자에게 불평을 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모짜르트는 안톤에게
" 이 악기가 이 음들을 내재하고 있다면, 그 다음은 네가 연주하겠다는 의지로 이루어야 한다" 고 말했다 한다.
그 유명한 5중주는 1789년 12월 22일, 비인 음악가 협회에서 초연되었으며, 안톤과 찌슬러(Zistler)현악 4중주가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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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10월, 모짜르트는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러 프랑크푸르트로 여행하게 된다. 같은 시기에 그의 아내 콘스탄짜가 병석에 누워 원래 넉넉하지 않던 살림에 이번 여행은 큰 부담이 된다. 다급한 마음에 모짜르트는 슈타들러에게 돈을 빌리려 하나 슈타들러가 너무나 높은 이자를 요구했기에 빌리지 못하고, 전당포에 그의 악보와 아내의 보석을 저당잡혀 돈을 빌린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연주회 등에서 모짜르트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겨우 콘스탄짜의 보석을 되찾을 돈만을 벌어 가지고 비인으로 돌아온다.
안톤에 대한 신뢰로 모짜르트는 말주변이 좋지 못한 자신을 대신하여, 나머지 물건들과 저당권을 되찾아 올 것을 안톤에게 부탁한다. 안톤은 일부 물건들을 되찾아 오나, 저당권은 없었다고 전했으며, 모짜르트는 그를 끝까지 믿었다.
그러나 다른 친지들은 슈타들러가 저당권을 챙겼으리라고 비난하였다.
반면, 모짜르트가 황제로부터 50 두카트를 선물받았을 때에는, 슈타들러가 그를 찾아와 자신의 고단한 처지를 눈물로 호소하여 황금을 받아간다.
모짜르트는 이 때, 슈타들러에게 저당권을 해결할 것을 당부하나, 슈타들러가 이를 해결하지 않아 이후 50 두카트 상당의 이자와 원금을 다시 해결해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모짜르트는 슈타들러를 언제나 친구로 맞아들였으며, 사업적인 면에서도 끝까지 신뢰하였다.
7. 잃어버린 악보들
1791년 10월, 모짜르트는 클라리넷 협주곡 마지막 악장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마쳤고, 슈타들러가 프라하로 여행할 경비를 대 주었으며, 슈타들러는 10월 16일에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연주하게 된다. 이 시기의 역사적 미스터리 중 하나는,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의 첫 199마디를 제외한 나머지와 5중주의 악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모짜르트 사망 후, 아내 콘스탄짜가 악보 출판사에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가 있다.
"이 악보들에 관해서는 클라리네티스트 슈타들러에게 물어보셔야 할 겁니다. 그가 늘 원보를 가지고 다녔으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세트 혼 트리오(후일 2클라리넷과 바순을 위한 트리오로 재편성된다.KV 439b:1783년) 악보의
복사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슈타들러가 프랑크푸르트로 여행했을 때, 악보와 악기가 들은 가방을 도둑맞았다고 하는데, 그 가방은 그 지방의 전당포에 73두카트에 잡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1801년, 이 협주곡은 악보 전문 출판사 오펜바하(Offenbach)에 의해 당시의 상용 클라리넷을 위한 것으로 출판된다. 조금 다른 형태로 같은 해에 브라이트코프(Breitkopf & Haertel) 와 지버(Sieber) 에서도 출판이 이루어진다. 악보가 나온 후에도 이 곡의 해석은 막연하기만 했다.
단지, 예외로 헤름슈테트(Hermstedt - 다음 장에서 다루어집니다.)가 있었을 뿐이다. 1838년 런던에서 윌리엄 에 의해 연주되었을 때에는, '3악장은 비경험자의 작곡, 1악장은 가발을 쓰고 나타난 마에스트로, 2악장은 진정한 모짜르트의 음악' 이라는 평을 듣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비평의 베일이 벗겨진다. 왜냐하면,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모짜르트가 병들고 지친 몸이었어도,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오늘날까지 가장 뛰어나고도 사랑받는 레퍼터리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8. 모짜르트의 죽음
1791년 12월 5일, 모짜르트 사망.
사망 후, 모짜르트가 남긴 빚은 모두 800플로린이었고, 슈타들러를 포함한 그의 가까운 친구들이 이를 떠 맡는다. 특히 안톤은 이 중 500플로린을 자신의 부담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따르자면, 슈타들러가 모짜르트에게 진 빚을갚았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과거의 잘못을 모두 갚았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9. 슈타들러의 작품과 교육
프라하에서의 연주가 성공한 데에 힘입어 안톤 슈타들러는 해외 연주길에 나선다. 베를린, 상 페테르스부르크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를 돌아 성황리에 연주를 마치고 1796년, 비인으로 돌아오니, 그의 궁정 악단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그를 힘들게 했지만, 그는 비인을 떠나지 않고 계속 활발한 연주활동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비인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동생 요한과 함께 은퇴한 이후까지 계속 연주하였으며, 1805년과 1806년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그가 새로이 개발한 클라리넷을 선 보인다. 악기의 발명 이외에도 그는 많은 클라리넷 작품을 남긴다.
작품 개요 및 구성 실내악의 진수를 전해주는 이 장르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곡은 모차르트가 33세인 1789년 가을에 작곡하였다.속칭 '시타틀러 5중주'라 불리는 이 곡은 위에서 소개드렸던 '아다지오'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2년 앞둔 시기의 작품으로서 최고의 걸작이다.
실제로 명곡이라 불리우면서 인류에게 사랑받는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그의 만년 5~6년 시기의 것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빚에 쪼들려 소액의 고료를 위해 밤낮 없이 일해야만 했고, 아내는 병들어 온천을 전전하리 만큼 만년의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으나, 그러한 고통을 '아다지오'와 마찬가지로 이 곡에서도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수채화처럼 맑고, 그리고 우아하면서도 독특한 애수가 애잔하게 흐르는 감동이 있다.
유려하게 흘러가는 현악 선율을 바탕으로 로맨티시즘을 가득 담은 우수의 클라리넷 선율은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음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를 찬란하게 샘솟게 한다. 사랑으로 번민하는 소녀의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 같은 아름다움 때문에 더 한층 감동을 주는 클라리넷의 음색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P> 클라리넷을 주축으로 한 실내악의 역사를 통털어 볼 때 이 음악에 도전하고 대적할 만한 작품은 1세기 후에 쓰여진 브람스의 5중주에서나 찾을 수 있을 만큼 이 장르 최고의 명곡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작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제 1악장 알레그로, 소나타 형식으로 이 작품을 시작하는 4개의 2분음표 음형은 1악장을 지탱해주는 일곱 마디의 악구 구조 만큼이나 신중하다.
이 음형은 클라리넷의 경과구 주제를 반주하며, 제시부와 재현부를 끝맺을 때에도 사용된다. 클라리넷의 경과구 주제를 첼로가 받아서 연주할 때,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 사이에는 다소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등장한다.
클라리넷의 첫 등장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앞서 나온 차분한 2분음표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모두 아르페지오와 16음표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 악장의 끝부분에서 현악기들과 클라리넷은 동등한 비중으로 서로의 동기를 함께 연주해 나간다. 그리고는 모두 같이 마치 교과서처럼 명료한 형식의 이 악장 분위기를 다소 완화시킨다.
이제 모짜르트는 구조,내용,음악언어,어법 들이 마치 하나 인듯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단순하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은 형식은 자신의 표현을 위한 자연스러운 수단이 된다. 개작은 너무 미미하여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이지만, 침착하게 이 악장을 이끌어 나간다.
예컨대 재현부에서 보이는 제1주제의 단축, 클라리넷 제2주제의 미묘한 변화,종결부의 상행하는 4개의 8분음표 확장등을 주목해보라.
클라리넷을 주축으로 한 실내악의 역사를 통틀어 놓고 볼 때 이 음악에 도전하고 대적할 만한 작품은 1세기 후에 쓰여진 브라암스의 5중주 정도라고 여겨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비인의 클라리넷 주자 `안톤 슈타틀러'를 위하여 작곡되었다고 하는 이 작품에서 allegro의 유려함과 adagio의 심금을 울리는 정갈함 앞에 누구도 옷깃을 여미고 숨죽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65년 프랑스 영화 `행복'(Le Bonheur)에서, 모짜르트 클라리넷 5중주 k.581이 전편에 깔린다. (마치 모네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화면 속에 흐르는 모짜르트는 가히 일품이다. 평범한 가장이 우체국 여직원 에밀리(프랑스와 보바이에 분)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눈다. 가정을 버릴 수 없었던 이 가장은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가정을 버릴 생각도 사랑을 버릴 생각도 없다'는 남편의 말에 `당신의 행복이 나에게도 기쁨'이라고 순순히 말하는 아내. 그러나 그녀는 곧 연못에 투신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내의 두 아이와 남편은 에밀리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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