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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U2 - One 가장 아름다운 가사 1위로 뽑힌 곡


 


















 




One





Is it getting better
Or do you feel the same
Will it make it easier on you
Now you got someone to blame



좀 나아지고 있나요
아니면 아직도 그대로인가요
이제 비난을 돌릴 사람이 있으니
당신에게 좀 수월해질까요



You say one love one life
When it's one need in the night
It's one love, we get to share it
It leaves you baby
If you don't care for it


한밤에 한가지 원하는 게 있다면
당신은 하나된 사랑, 하나된 삶이라고 하죠
우리가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은 사랑이에요
당신이 신경쓰지 않는다면
사랑은 떠나고 말거에요

Did I disappoint you?
Or leave a bad taste in your mouth?
You act like you never had love
And you want me to go without


제가 당신을 실망시켰나요
아니면 씁쓸한 맛을 남겨 주었나요
사랑을 한번도 못해본 것처럼 행동하는
당신은 내가 당신없이 살길 원하는군요

Well it's too late tonight
to drag the past out into the light
We're one but we're not the same
We get to carry each other
Carry each other, one


오늘밤에 과거를 끄집어
들추어 내기에 너무 늦었어요
우린 하나지만 예전 같지 않아요
우린 서로를 이끌어 주어야 해요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이끌 주어요

Have you come here for forgiveness
Have you come to raise the dead
Have you come here to play Jesus
to the lepers in your head


용서를 빌러 여기 왔나요
죽은 자를 깨우러 왔나요
당신 머리 속에 든 병자 앞에 선
예수 행세를 하러 온건가요

Did I ask too much more than a lot
You gave me nothing
Now it's all I got
We're one but we're not the same
We hurt each other then we do it again


제가 너무 많이 물어 보았나요
당신이 내게 준 것은 아무 것도 없기에
그게 내가 가진 전부에요
우린 하나지만 예전 같지 않아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러고 있어요

You say love is a temple
Love a higher law
Love is a temple
Love the higher law


You ask me to enter
But then you make me crawl
And I can't be holding on to
what you got when all you got is hurt


사랑은 신전이라고 당신은 말하죠
사랑은 최고의 법이라구요
사랑은 신전이고
사랑은 최고의 법이라고 하죠


당신은 내게 그 안으로 들어 오라 하고선
나를 힘들게 하는군요
상처만 가진 당신에게
계속 매달릴 수는 없어요

One love, one blood, one life
You got to do what you should
One life with each other
sisters, brothers


사랑과 피와 삶이 하나가 되어
당신의 몫을 해야 되요
서로가 하나의 삶이 되는 거에요
형제 자매들이여

One life but we're not the same
We get to carry each other
Carry each other, one


우린 하나지만 예전 같지 않아요
우린 서로를 이끌어 주어야 해요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이끌 주어요






 



최고의 밴드, U2의 이야기

아일랜드 출신의 4인조 록밴드 U2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U2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라도, 이들의 음악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단순히 산술적인 기록으로만 살펴보더라도 U2의 음악적 커리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에 있는데, 우선 U2는 록밴드로서 그래미의 트로피를 가장 많이 가져간 기록의 주인공이다.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등을 포함해 그들이 그래미에서 수상을 한 횟수만 총 22회이다.

또, 얼마 전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의 조사에 따르면, U2는 투어공연으로 전세계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밴드로 알려졌다.

 특히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있었던, ‘U2 360° Tour’에서 이들은 티켓 판매로만 7억 3천 6백만 달러라는 사상초유의 수익을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적인 성공으로만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면 록그룹 U2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영향력과 여기에 보내지는 성찬이 모두 그저 그런 ‘빈말’정도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성에는 좀 더 남다른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적인 재난과 질병문제,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그 어떤 아티스트들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U2가 음악이 아닌 사회운동가로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그룹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 가디언(Guardian)지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SNS로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는U2의 리더 보노

 (Bono)의 페이스북 가치는 9억 7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chtung Baby] 20주년, 그 뒷이야기 전격 공개!

그러나 이런 최고의 밴드 U2에게도 음악적으로는 여느 아티스트와 똑같은 고뇌가 뒤따랐다.

 ‘자신들의 색깔을 유지할 것인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고뇌의 시발점은 1990년 [Achtung Baby]의 앨범작업에서였다.


 보노는 지금까지 U2의 음악에서보다 좀 더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 보고자 했는데, 이는 곧 다른 멤버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밴드를 해체의 위기로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를 깨고 나오듯, 그렇게 새로운 것의 창조에는 고통이 뒤따랐다.


 난항을 거듭하던 [Achtung Baby]의 작업은 독일 통일에서 영감을 얻기 위한 시도로 베를린에 위치한 한사스튜디오

(Hansa Studios)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U2는 그곳에서 자신들만의 또 다른 역사를 써내려 가게 되었다.


갈등이 깊어지고 고뇌가 더해질수록 멤버들은 서로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내듯 자기성찰적이면서 부담 없는 사운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Achtung Baby]는 기존 U2의 록적인 스트레이트 사운드에서 벗어나 얼터너티브 스타일에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 접목시킨 새로운 U2만의 음악 색깔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오랜 시간 U2의 팬이었던 이들이 [Achtung Baby]의 새로운 사운드에 깜짝 놀란 것도 잠시, 곧 이 앨범은 U2의

골수 팬은 물론이고 이전 그들의 음악을 접해보지 못했던 대중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Achtung Baby]는 데뷔와 함께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18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제 35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록 퍼포먼스 그룹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파격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Joshua Tree] 이후 U2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Achtung Baby], 2011년 이 화제의

 앨범이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리마스터링 된 음질의 디럭스 에디션(Deluxe Edition)으로 새롭게 출시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1991년 [Achtung Baby] 앨범에서 가장 현란한 곡 전개를 보여주었던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의 리믹스 버전과 싱글 버전을 동시에 감상해 볼 수 있으며, 20년 전 얼터너티브하고 펑키한 사운드로 제작되었던 ‘Mysterious Way’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재탄생한 버전도 들어볼 수 있다.


더불어 ‘Who’s Gonna Ride Your Wild Horses’의 새로운 리믹스 버전과 1992년 이 곡이 싱글 발매될 당시 앨범에

 수록되었던 롤링스톤즈의 커버곡 ‘Paint It Black’ 역시 U2만의 개성 넘치는 편곡으로 이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고통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Achtung Baby]의 20년 만의 재림! Achtung Baby (20th Anniversary Delux

Edition)이 그룹 U2의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시기의 이야기를 안고 다시 한 번 우리 곁을 찾아온 것이다.











U2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From The Sky Down]


[Achtung Baby]의 작업이 처음 이루어질 때만 해도, U2는 이 앨범이 사람들에게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또 그것이 자신들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U2의 팬들에게도 또 U2 자신에게도 분명한 전환이었고 돌파구였다.


[Achtung Baby]가 발매된 지 2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은 U2는 마침내 자신들의 ‘거대한 전환’을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남기기로 했고, 이 의미 있는 작업은 오랜 시간 U2의 팬이었고, 또 기타리스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 [It Might Get Loud]를 통해 U2와 친분을 쌓은 바 있으며,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에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바 있는 거장 데이비스 구겐하임(Davis Guggenheim)에게 맡겨졌다.









그 동안 많은 ‘록큐멘터리(Rockcumentary)’에 출연한 바 있는 U2지만, [From The Sky Down]은 U2가 음악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던 시기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바로 전작인 [Rattle and Hum]의 활동 이후 자신들의 음악이 답보상태에 있다고 느낀 이들은, 새 앨범을 위한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음악적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에 불현듯 독일 행을 결심했다.


독일이 통일되던 바로 전날의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운명처럼 베를린에 도착한 U2는,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독일의

모습을 보며 갈피를 잡지 못하던 멤버들 간에 음악적 화합을 꾀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Achtung Baby]의 위대한

 싱글 ‘One’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룹 U2의 가장 극적인 전환기를 화면에 담아낸 [From The Sky Down]에서는 당시 그들의 가장 치열하고

진솔했던 모습을 전혀 가공되지 않은 다큐멘터리의 필름으로 직접 감상해 볼 수 있다.










[From The Sky Down]은 U2가 베를린에 있는 한사 스튜디오에서 [Achtung Baby]의 작업을 할 당시의 화면을

주로 담고 있으며, 여기에는 2011년 [Achtung Baby]의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그들이 다시 한사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라이브로 연주한 ‘So Cruel’, ‘Love Is Blindness’,’ The Fly’의 라이브 퍼포먼스 영상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또한 U2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리허설 영상과, 1988년 제작된 그들의 또 다른 록큐멘터리인 [Rattle and Hum]의 미공개 영상도 이 영화를 통해 함께 감상해볼 수 있다.

한편, 영화 속에는 종종16m의 흑백필름으로 찍힌 화면들이 등장하는데, 이는U2가 구겐하임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을 의뢰할 당시 가장 먼저 건네준 자료로 그룹U2의 초창기 모습들을 담은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그러니 [From The Sky Down]은U2 멤버들의 개인사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값진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인 셈이다. 이런 가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는 지난 해 9월에 열린 토론토 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초로 개막 상영작으로 채택되었고, 영화제에서 있었던 구겐하임

감독과 U2의 인터뷰 영상 역시 [From The Sky Down]의 DVD 트랙을 통해 감상해 볼 수 있다.


197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서 처음 결성된 U2는 1980년 데뷔 앨범[The Boy]를 시작으로 총 12개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청년기의 혼란을 주제로 하여 만들어진 첫 앨범 [The Boy]에서는 젊은 시절 U2의 초기 로큰롤 중심적인 사운드를

 들어볼 수 있는데, 특히 앨범의 오프닝 트랙이자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수록곡 ‘I Will Follow’는, 보노가 14살 때

 여읜 어머니를 그리며 직접 가사를 쓴 곡으로 감상적인 노랫말이 뇌리에 남는다.









바로 다음 해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October] 에서는 전작의 성공을 바탕으로  완성도 있는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이 앨범을 일컬어 보노는 “훗날 자신들에게 아주 중요한 앨범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October]의 수록곡 ‘Gloria’는 80년대 U2의 라이브 공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그들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1983년의 [War] 앨범은 U2가 처음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앨범이다.

조용한 평화주의자였던 U2는 이 한 장의 앨범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사회운동가로 거듭나게 된다.


 전세계인들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로 전달되었던 이 앨범은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영국 앨범차트에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를 누르고 처음으로 U2에게 1위의 영예를 안겨주기까지 했다. 수록곡 중 ‘Sunday Bloody

1972년 북아일랜드의 카톨릭 소수자에 대한 인권탄압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1987년에 발표된 [The Joshua Tree]는 아티스트 U2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알린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록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이라고도 불리는 이 앨범은 전세계에서 2천 5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영국

 앨범 차트, 빌보드 팝 앨범 차트, 프랑스 앨범 차트, 독일 톱100 앨범 차트 등 20여 개 국가의 음악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U2를 세계가 인정하는 슈퍼스타로 만들어놓았다.


[The Joshua Tree]의 곡 작업은 U2의 멤버들이 유독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곡들이 만들어졌다가 버려지고 추려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특히, 앨범의 첫 번째 싱글로 발표되어 당시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던 ‘With or Without You’는 이미 1985년 제작된 데모를 2년여 동안의 거듭된 수정을 거쳐 내놓은

.


1988년에 발매된 [Rattle And Hum]는 동명의 록 다큐멘터리와 함께 발매된 U2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여기에는 정규앨범의 새로운 곡들과 함께, 87년부터 88년까지 열렸던 U2의 대규모 투어 공연 ‘Joshua Tree Tour’의 라이브 연주곡들도 함께 수록되어있다.


 전작인 [Joshua Tree]의 눈부신 성공에 힘입어 미국과 유럽을 포함해15개국 70개 도시에서 열린 이 공연으로 U2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전세계에 유감없이 증명해 보였다.

이 공연의 영상은 곧 다큐멘터리 영화 [Rattle And Hum]의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Rattle And Hum]의 수록곡 ‘Desire’는 88년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은 곡이다


2001년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에서는 종전 U2의 음악에서 들을 수 있었던 감상적이고 시적인

노래들 대신, 보다 현실적이면서 긍정적인 감성의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다.


한층 밝아진 감성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이 시도는 리드 싱글로 나온 ‘Beautiful Day’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고, 제 4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록

 그룹 퍼포먼스’의 삼관왕을 차지하며 평단으로부터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2004년에 나온 U2의 열 한 번째 정규 앨범 [How To Dismantle An Automic Bomb]은 U2가 1991년 [Achtung Baby]의 얼터너티브하면서도 일렉트로니컬한 사운드에서 다시 전통적인 록 사운드로 회귀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보노는 이 앨범을 일컬어 “자신들의 첫 번째 록 앨범이다.”라고 표현했으며, 싱글곡 ‘Vertigo’는 평단으로부터 “모든

록 사운드의 원조격”이라는 찬사를 받았을 만큼 록 본연의 색깔에 충실한 매력을 지닌 곡이다.


U2의 음악활동에 있어서 가장 긴 공백기를 깨고 등장한 2009년 [No Line On The Horizon]은 U2의 멤버들 스스로가 유독 많은 애착을 가지고 만들어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U2의 기타리스트 엣지(The Edge)는 이 앨범을 일컬어 자신들의 앨범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엣지는 동시대 기타리스트들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It Might Get Loud]에서 이 앨범의 싱글 ‘Get on

Your Boots’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훗날 이 영화의 감독인 데이비스 구겐하임은 2011년 U2의 [Achtung Baby] 발매

 20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영화 [From The Sky Down]의 제작을 맡으면서 U2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한편, U2는 [No Line on The Horizon]의 발표 이후 세계 공연투어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바 있는 ‘U2 360°

Tour’를 시작하게 된다.












U2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록 밴드이다. 밴드의 멤버는 Bono (보컬, 리듬 기타)와 The Edge (기타, 키보드, 보컬), Adam Clayton (베이스 기타), Larry Mullen Jr. (드럼, 타악기)로 구성돼 있다.

U2는 초기 포스트 펑크의 장르를 주로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여러 대중음악 장르도 융합시켰다.


 밴드의 음악 활동전반에 걸쳐 엣지의 기타와 보노의 보컬이 U2의 주된 음악 멜로디로 자리잡았다. U2의 노래 가사들은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밴드는 멤버들이 음악적으로 서툴렀던 십대였던 시절인 1976년 마운트 탬플릿 중학교에서 결성되었다.

4년 후, 이들은 아일랜드 레코드와 레이블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 앨범 Boy를 발매했다. 1980년대 중반쯤, U2는

 세계적인 밴드로 도약했다.


1987년 발매된 The Joshua Tree 는 음반 판매에서보다 라이브무대로 더욱 성공했다.

《롤링 스톤》에 따르면이 앨범은 밴드를 "영웅에서 슈퍼스타로" 만들어줬다고 했다. 


U2의 1991년 발매된 히트 앨범 Achtung Baby와 그에 따른 Zoo TV Tour는 밴드에 대한 음악적인 그리고 주제적인

 재창조였다. 그들 자신의 음악적 부진에 대한 의견과 1980년대 말 비평운동에 반응하여 U2는 더욱 풍자적인 톤으로

 그들의 성실한 이미지를 대체하는, 그들의 사운드와 퍼포먼스로 댄스 음악과 얼터너티브록을 융합했다.


 이러한 실험적인 음악은 1990년대 그밖의 사람들에 의해 계속 이어진다. 2000년 발매된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는 U2가 2000년대에도 명성을 떨치게 해줬다.

현재도 많은 밴드들이 U2의 음악적 실험을 하고있고, U2는 좀 더 전통적인 사운드를 추구하고있다.


U2는 지금까지 12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세계적으로 1억 5천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미 상을 22번 수상해 그 어떤 밴드보다도 많은 기록이다. 또한 2005년 U2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 순위 중 U2는 22위에 올랐다

밴드로 그리고 멤버 개인적으로써의 그들의 사업을 통해 인권과 박애운동을 위한 여러 캠페인 활동을 하고있다.





 





날카로운 비판정신에서 우러나온 정의수호주의와 포스트 펑크의 실험정신이 결합된 그룹 유투(U2)는 압도적인

사운드에 정치와 종교에 관한 장엄한 가사들로, 신디사이저 팝과 헤비메틀이 주도하는 80년대에 최고의 로큰롤

전사로서 오랫동안 지지를 받고 있는 아일랜드 그룹이다.


23년 이상 그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77년 고등학교 친구인 보노(Bono, 본명 Paul Hewson, 보컬),

 에지(The Edge, 본명 David Evans, 기타), 아담 클레이튼(Adam Clayton, 베이스), 래리 뮬런(Larry Mullen, 드럼)

으로 구성되었다.


피드백(Feedback)이란 이름 하에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곡을 연주하던 이들은, 잠시 그룹 이름을 하이프(Hype)로 바꾸었다가 78년에 유투(U2)로 최종 결정하게 된다.

그해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한 이들은 아일랜드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셀프 타이틀의 EP [U2: 3]를 발매한다.

 

EP 트랙 중 싱글 'Out of Control'(79), 'Another Day'(80)가 아일랜드 차트 1위에 등극하자 이에 힘입은 이들은

 '11 O'clock Tick Tock'(80)으로 UK 차트 11위로 데뷔한다.

이어 발표한 두 싱글 'A Day Without Me', 'I'll Follow'와 이어 발표한 데뷔 앨범 [Boy](80)는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노의 열정적인 보컬과 그룹의 짜임새 있는 리듬이 돋보이는 유투의 화려한 라이브 무대는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유투 마니아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81년 거의 복음적인 내용으로 신앙적인 신념을 담은 앨범 [October]는 'Fire'와 'Gloria'로 인기를 얻으며 호평을

받았고, 83년 역시 신앙적이고 정치적인 모순을 고발하는 현실적인 주제의 [War]는 키 트랙인 'Sunday Bloody

  Sunday'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같은 해 유투의 격정적인 무대가 고스란히 담긴 라이브 앨범 [Under A Blood Red Sky]로 UK 차트 2위에 오르고 

 US 차트 28위를 차지한 이들은 록 엘리트로서 선두에 서게 된다.


84년 밥 딜런(Bob Dylan)의 공연에 보노가 듀엣으로 참여한 뒤, 유투는 자신들의 회사인 마더 레코드사를 설립하고

 [The Unforgettable Fire](84)를 발표한다. 신디사이저와 전자 악기를 사용한 이 앨범은 'Pride (In the Nmae of

Love)'로 이들의 상업적인 성공력을 다시금 증명했다.


이들의 음악과 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인류애로 가득 찬 유투는 이어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아일랜드 셀프

 에이드(Ireland's Self Aid) 같은 자선공연과 국제 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1961년 설립되었으며 사상·

신조 등에 의해 투옥된 자의 석방 운동을 위한 조직) 활동, 리틀 스티븐(Little Steven)의 반-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를 위한 싱글 'Sun City' 작업에 참여했다.


87년 [The Joshua Tree]로 US, UK 차트 톱의 자리를 점유하며 전세계적인 수퍼스타 그룹으로 등극한 유투는

이 앨범을 통해 더 새롭게 확장된 사운드와 자기 반성적인 가사들을 선보였다.

이들 작품에 내재된 영혼구원과 동기부여에 관한 주제는 'With or Without You',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에서 여실히 드러났고, 두 싱글 모두 US 넘버원의 자리에 오르면서 그 해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

Album of the Year)을 수상하게 된다.


 이어 라이브 트랙과 신곡들이 수록된 더블 앨범이자 순회공연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제작한 영화 [Rattle And Hum]

(88)을 발표한 유투는 R&B풍의 'Desire'로 UK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3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Achtung Baby](91)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전자 음악과 댄스 음악을 가미하여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 사운드인 포스트 펑크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음악적 다양성을 구가하려는 유투의 실험정신은 계속 이어져 93년 [Zooropa]를 발표하게 된다. 

 [Achtung Baby]보다 더 댄스 음악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테크노까지 결합된 이 앨범은 평론가들의 격찬을

받으며 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지만 별다른 히트곡은 없었다.


앨범발매에 따른 순회공연 이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유투는 영화 [Batman Forever]의 주제곡인 'Hold Me,

  Thrill Me, Kiss Me, Kill Me'(95)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해 [Passengers: The Original Soundtrack]

 발매한다. 97년 더욱더 댄스, 테크노, 전자 음악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앨범 [Pop]을 선보인 유투는 98년 그들의 첫 히트곡 편집앨범인 [The Best Of U2 1980-1990]을 발표하며 폴리그램과 50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음으로써

않는 열정과 창작력을 인정받았다.


실제로 상업적인 성공을 누리며 골수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의연하게 자신들의 뚜렷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사회 비판적이면서 자기 성찰적인 메시지와 변화무쌍한 음악을 선보이며 팝계에 자리잡고 있는 유투는,

조화를 잃지 않는 밴드의 화합을 자랑하며 20년 넘게 명곡들을 선보이고 있다.


출처 : http://changgo.com  출처는 창고이나, 참고하려 방문했던 allmusic.com의 바이오그래피가 위 내용과

완전히 똑같더군요.아마도 창고에서 글 쓰신 분도 참고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위의 내용은 2000년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을 내기 직전까지의 바이오그래피이고 그 후의 행보를

살펴보면...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으로 90년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등지고 다시 80년대의 사운드로 복귀를 시도한다.


일련의 히트곡들(Beautiful Day,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Elevation,Walk on)을 터뜨리며

훌륭하게 2000년대를 열어 제끼며. 이 앨범으로 2000년, 2001년 2년에 걸친 그래미 어워드에서 무려 7개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2000 Beautiful Day -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2000 Beautiful Day - Record Of The Year

2000 Beautiful Day - Song Of The Year/New Song Of The Year


2001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 Best Rock Album

2001 Elevation -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2001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 Best Pop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2001 Walk on - Record Of The Year

그리고 3년이 지난 해에 역시 같은 분위기/취향의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을 발표하고,

2005년 3월 샌디에고를 시작으로 월드투어를 하게 된다.

1980년 데뷔앨범을 발표한 이래로 올해 벌써 26년째 활동하고 있는 이 왕성한 창작욕, 정치력의 밴드는 올해도

 역시 꺼질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