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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ONG & ROCK

Pearl Jam - Even Flow










 

 Pearl Jam - Even Flow



Even Flow





Freezin', rests his head on a pillow made of concrete, again
Oh, Feelin' maybe he'll see a little better, set a days, ooh yeah
Oh, hand out, faces that he sees time again ain't that familiar, oh yeah
Oh, dark grin, he can't help, when he's happy looks insane, oh yeah


Even flow, thoughts arrive like butterflies
Oh, he don't know, so he chases them away
Someday yet, he'll begin his life again
Life again, life again...


Kneelin', looking through the paper though

he doesn't know to read, ooh yeah
Oh, prayin', now to something that has never

 showed him anything


Oh, feelin', understands the weather of the winters on it's way
Oh, ceilings, few and far between all the legal halls of shame, yeah
Even flow, thoughts arrive like butterflies


Oh, he don't know, so he chases them away
Someday yet, he'll begin his life againWhispering hands,

gently lead him away
Him away, him away...


Yeah!
Woo... ah yeah... fuck it up...
Even flow, thoughts arrive like butterflies


Oh, he don't know, so he chases them away
Someday yet, he'll begin his life again, yeah
Oh, whispering hands, gently lead him away
Him away, him awayYeah!






 

90년대 초반 음악계를 강타한 얼터너브 록은 국내에선 너버나의 인기로

많은 지지자들과 매니아층을 만들어 냈고 펄잼도 당시 미국내에선

너바나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였다


그들의 데뷰앨범 TEN은 록 매니아들에게 명반으로 손꼽히고 그중

even flow 는그앨범 대표곡중 하나이다









pearl jam - ten (1991)




말이 필요없는 얼터네티브락음악의 최고의 명반이죠..이 앨범은 기타리스트인 스톤 고사드와 제프 아먼트가 속해있던 밴드인 mother love bone이 보컬리스트인 앤드류 우드의 사망으로 해체하자 에디 베더를 비롯한 나머지 맴버들을

 모아서 결성한 밴드인 펄잼의 첫 데뷔앨범으로 미국에서 천만장이 팔리면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앨범입니다.


또 같은 시기에 nirvana의 nevermind앨범이 같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씨에틀 그런지음악이 락의 주류가

기어한 앨범이죠.. 첫 번째로 히트했던 even flow,블루스적인 느낌이 나는 alive, 제가 개안적으로 좋아하는 곡인

 암울한 분위기의 black이라든가 뮤직비디오도 반응이 좋았던 jeremy같은 곡들이 수록되어있어요...


 우리나라는 시에틀하면 너무 nirvana만 예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이 앨범은 nevermind하고 비교도 할수 없는

명반이라고 생각해요..시에틀 그런지음악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계신분이면 반드시 들어보길 바랍니다.




pearl jam - vs (1993)







그 당시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펄잼의 두번째 앨범으로 당시에 첮주 앨범판매량 신기록을 새우는등 사람들의 많이

 기다렸던 앨범이었어요


제가 생각할때 이 앨범은 펄잼의 앨범중 가장 헤비한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첫 싱글로 히트했던 daughter라든가 elderly woman behind the counter in a small town같은 발라드같은 곡도 있지만 첫곡 go부터 휘몰아치기 시작하고 animal이나 아님 완전 스레쉬스타일의 blood,leash 같은 곡들도

 

수록되어있는 앨범입니다.

그 외에 glorified g,rearviewmirror같은 곡들이 좋은 곡들이에요..펄잼의 전성기시절에 나온 겐찮은 앨범입니다.




pearl jam - vitalogy (1994)





94년 4월 너바나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 사실상 너바나는 해산하고 점점 시에틀음악의 위기가 감돌기시작할때 그리고 green day,offspring을 필두로한 뉴펑크음악이 점점 락음악 시장을 점령해갈 시기에 나온 전작이 나온지 1년만에

발매된 펄잼의 세번째 앨범으로 그때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이들의 앨범중 가장 우울한 앨범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앨범 입니다.또 이 때부터 펄잼앨범의 디지팩화가 시작되죠..


그 당시만 해도 디지팩은 참 신기한 것이었었는데요.. 이 앨범은 단 한곡때문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앨범이 되어

버렸는데 바로 저의 닉네임입니다.

nothingman 아무것도 아니고 가진것도 없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곡은 팀의 베이시스트인 제프 아먼트가

혼자 만든곡인데 훗날 제가 진짜로 nothingman이라고 느껴졌을때 계속듣고 흐느꼈던곡입니다.


이 앨범에도 spin the black circle같은 헤비한 곡도 수록되어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가 이끌고 있는

앨범입니다.


not for you,tremor christ같은 곡들도 히트했었고 이 앨범의 가장큰 히트곡은 better man입니다. can't find a

 better man이라고 외치는 노래...어찌보면 nothingman의 반대되는 노래같지만 에디 베더가 만든곡으로 겐찮은

 곡입니다.


 그 외에도 corduroy,immortality같은 곡들도 락차트에서 히트했던 참으로 많으 곡이 락차트에 올랐던 앨범이기도

 합니다..


추천앨범.



pearl jam - no code (1996)





펄잼의 네번째 앨범으로 여러개의 사진을 짜집기한 자켓이 u2의 achtung baby앨범을 생각나게 했던 앨범으로

 그런대로 펄잼의 명성을 확인 시켜준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95년도에 닐 영의 mirror ball앨범에 참여했던 펄잼인데 그래서 그런지 smile이란 곡에는 닐 영이 참여하고

닐 영의 느낌이 조금 나는 것 같기도한 앨범인데 딱 들으면 펄잼이라고 알 것 같은 그들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you are나 mankind같은 곡들이 락차트에서 히트했고 in my tree,off he goes같은 곡들이 좋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술적인 분위기의 약간은 실험적인 present tence도 빼놓을수 없죠.. 이 때 앨리스 인 체인스와 사운드가든등이 신보를 내고 해서 그런지음악이 다시 살아나나 했지만 97년에 사운드가든의 해체소식으로 저는 또 한번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pearl jam - yield (1998)






한참 우리나라가 imf경제 위기로 술렁이고 있을때인 98년 초에 나온 펄잼의 5번째앨범으로 왠지 먼가 좀 나약해지고

무기력해진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앨범입니다.

첫 싱글로 히트했던 given to fly나 faithful,wishlist같은 곡들이 겐찮고 한때 좋아했었던 펄잼식 발라드인 low light

그리고 락 차트에서 히트했던 in hiding같은 곡들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이때부터 펄잼도 점점 저물어가는구나 하느걸 느끼게 했던 앨범입니다.




pearl jam - binaural (2000)





 스매싱 펌킨스의 해체소식으로 또 가슴을 쥐어짜고 있을때 나온 펄잼의

 신보 소식..그래도 이들은 꾸준히 앨범을 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운드가든의 드럼머였던 멧 카메론을

 멤버로 맞아서 만든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그냥 평범한 수준의 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했을때 첫 싱글이었던 nothing as it seems나 breakerball빼고는 그렇게 귀에 들어오는 곡이 없는

 앨범인것 같아요.

 이후에 이들은 전세계 투어를 하면서 그 모든 내용을 씨디로 만들어서 발매하는 엄청난 일을 벌리기도 하지요.




pearl jam - riot act (2002)






앨리스 인 체인스의 보컬 레인 스텔리의 사망소식.. 그래도 한가닥 히망으로 이들의 정규앨범이 발매되기를 기다렸지만 완전히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죠.한 시대를 풍미했던 락스타가 또 가는구나 과연 주체할수 없는 돈과 명예는 사람을 견딜수 없게 만드는 것인가.


이럴때 들려온 펄잼의 신보소식..쩝..이들은 그래도 앨범을 계속내는구나 다른 얼터계열밴드들이 거의 다 무너진

상황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펄잼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은 참 대견해 보이더라구요.


그 무서운 약물의 유혹을 이겨낸것이... 아무튼 이 앨범은 작년말에 나온 펄잼의 일곱번째 앨범으로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딱히 귀에 들어오는 부분이 없는 앨범입니다.

첫 생글인 i am mine정도가 겐찮고..하지만 펄잼의 앨범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음..여기까지 펄잼의 정규앨범을 살펴봤어요.

시에틀 4인방중의 유일한 생존자이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몇안되는 얼터네티브밴드로서 그 동안 외부적인

 요인에 굴하지않고 꾸준히 자기들의 음악을 해온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앞으로 2~30년더 활동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밴드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한공연안하나.

이번에 일본 라이브공연 앨범도 냈던데....


 










Pearl Jam (펄 잼)

 

 

펄 잼(Pearl Jam)은 90년대 초반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결성된 5인조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밴드이다.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고사드(Gossard)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는 데뷔 앨범 발매 후 일주일만에 보컬리스트인 앤드류 우드(Andrew Wood)가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하자 리드


 마이크 맥크리디(Mike McCready), 드럼에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 보컬에 에디 베더(Eddie Vedder)를

 영입하여 새로이 밴드를 결성했고, 데뷔 앨범 발표 후 탈퇴한 크루센의 후임으로 데이브 애브루제스

(Dave Abbruzzese)를 거쳐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와 일레븐(Eleven)의 드러머였던

 잭 아이언스(Jack Irons)를 영입하여 현재의 5인조의 라인업을 갖추었다.


펄 잼으로 개명한 후 에픽(Epic)을 통해 힘이 넘치면서도 멜로디가 풍부한 데뷔 앨범 [Ten](91)을 발표했다.

자체적으로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데뷔 앨범으로서는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Alive'에서 드러나듯이 정통성을

 계승한 곡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다음 해까지 그다지 눈에 띄는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으나 너바나(Nirvana)로 인해 얼터너티브 록이 메인 스트림

록 라디오 방송에서도 수용되자 너바나의 앨범을 능가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펄 잼의 사운드는 무거운 리프를 중심으로 한 70년대 스타디움 록(stadium rock)에 80년대 포스트 펑크(post-punk)의 거친 면과 분노가 녹아 있으면서도 멜로디와 코러스를 무시하지 않은 사운드였다. 'Jeremy', 'Evenflow', 'Alive' 등은 신선한 수혈을 고대하고 있던 라디오 방송계가 원하던 바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MTV와 라디오에 연속적으로 등장하고 2번째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투어에 참가하면서 계속 지지자들이 늘어갔다. 이들은 "MTV unplugged"와 매트 딜런(Matt Dillon)이 출연한 영화 [Singles]에서 시티즌 딕(Citizen Dick)이라는 그의 밴드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로큰롤 슈퍼스타라는 자신들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계의 일반적인 관습에 굴복하기를

거부했고 너바나의 앨범이 발매된 후 곧바로 발표한 2집 [VS.](93)에서는 단 한 곡의 싱글이나 비디오 발매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상반된 평가와 함께 정상을 차지하며 앨범 차트에 등장했고 발매 첫 주에 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멀티 플래티넘의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해 이루어진 전미 투어 기간 중 이들은 일반적인 스타디움 규모의 공연은 하지 않고 대학 캠퍼스를 포함한 보다

작은 규모의 공연만을 결심하였다.


또한 고가의 입장권 가격을 요구하는 티켓마스터(Ticketmaster) 때문에 입장권 가격이 20달러를 초과하는 사실에 불만을 나타냈다. 결국 그 해 여름 공연을 취소했고 티켓마스터 측을 불공정 거래로 고소했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녹음된 다음 앨범 작업이 끝난 후 드러머인 애브루제스를 해고하고 후임으로 잭 아이언스를 영입했다.


 3집인 [Vitalogy](94)는 서민들에 대한 진실성을 다시 입증하듯이 발매 후 2주 동안 LP 한정판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차트 60위에 등장하는 기염을 토했고 CD와 카세트가 발매되자마자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 앨범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죽음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티켓마스터와의 싸움은 95년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법원의 판결은 펄 잼의 패배였다. 새 앨범은 닐 영(Neil Young)과

녹음이 진행되었다.

 그 동안 베더는 영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호버크래프트(Hovercraft)의 공연에 참여했고 고사드는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다.


마이크 맥크리디와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레인 스탤리(Layne Staley)가 함께 한 프로젝트 밴드 매드

 시즌(Mad Season)은 첫 앨범 [Above](95)를 발표했다.
닐 영의 곡들이 수록되어 영의 이름으로 발매된 [Mirror Ball]에는 멤버들이 모두 참여했으나 법적인 이유로 펄 잼의

 이름은 수록되지 않았고 대신 이들은 세션 곡들 중 발췌하여 수록한 싱글 'Mirkin Ball'을 95년에 발표했다.


96년 여름에 발표된 4집 [No Code](96)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차트 정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시도한 기묘한 실험정신은 팬 기저층을 실망시켰고 차트에서도 곧 하락했다.

 티켓마스터와의 싸움과 대규모 공연을 거부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97년 내내 이들은 새로운 곡 작업으로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고 고사드는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브래드

(Brad)의 2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펄 잼은 그 해 말경 보다 더 하드한 새 앨범인 5집 [Yield](98)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열광적인 호평을받았고 상당한 추종자들에 의해 발매 첫 주만에 2위로 앨범 차트에

등장하긴 했으나 곧 차트에서 하락하는 등 상업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전면적인 여름 투어를 시작했고 공연 실황 앨범 [Live on Two Legs](98)를 발매했다.


펄 잼은 시애틀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티켓마스터와의 싸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서민적인 밴드이다. 가장 섹시한 목소리로 선정되기 한 베더의 카리스마적인 보컬로 그런지(grunge)가 한풀 꺾인 음악계에서 아직도

살아 남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아티스트 - Pearl Jam(펄 잼)

발매일 - 2006.04.26

앨범장르 - 락(얼터너티브 락)

 

그런지록의 대부 펄 잼의 4년만의 셀프 타이틀 신보 [Pearl Jam]

첫 싱글 'Worldwide Suicide' 서비스 하루 만에 라디오 방송회수 500회

 기록, 연속 3주 빌보드 모던록 싱글 차트 1위!

너바나와 함께 그런지록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전설적인 밴드 펄 잼의

 고대하던 신보가 드디어 발매된다!


지난 80년 말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결성 된 이래, 90년대 전 세계를 휩쓴 그런지록의 대표 밴드로서 지금은 모두

사라진 대부분의 그런지 시대의 밴드들과는 달리 꾸준한 활동을 통해 그런지록의 맥을 잇고 있는 전설적인 밴드

펄 잼은 1991년 발표한 데뷔 앨범 [Ten]이래 지금까지 발매한 7장의 스튜디오 정규 앨범, 2장의 라이브 앨범,


각각 한 장의 B-side 싱글 앨범과 베스트 앨범으로 총 6천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발표될

 새 스튜디오 정규 앨범 [Pearl Jam]은 이들의 통산 8번째의 정규 앨범이자 4년만의 신보 앨범으로 기록된다.

지난 3월 14일부터 이틀간 펄잼의 공식 팬 사이트 www.pearljam.com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다운로드 서비스 된

 새 앨범의 첫 싱글 ‘Worldwide Suicide’는 행사기간이었던 이틀간 총 17만 건이 다운로드 되어서, 여전히 식지 않은

 펄 잼의 인기를 재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미국 라디오에서 첫 전파를 탄 이후 24시간 만에 500회 이상 방송되면서 이번주로 총 3주차 빌보드 모던록 싱글 차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첫 싱글 ‘Worldwide Suicide’는 항상 사회적인 문제에 강한 참여의식을 보여왔던 펄 잼의

 날카로운 양심이 잘 살아 있는 곡으로 펄 잼의 간판이 되는 에디 베더의 절규하는 보컬과 특징적이지만 타성에 젖지

않은 펄 잼의 록 사운드를 담고 있는 곡이다.











1994년 5월 6일 펄 잼(Pearl Jam)과 <티켓마스터(Ticketmaster)> 간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티켓마스터>가 콘서트 티켓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 펄 잼이

 미국 법정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펄 잼의 역사는 1984년 시애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 제프 에이먼트(Jeff Ament)를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 그린 리버(Green River)는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이라는 그룹으로 업그레이드되었는데 이 때 라인업은 스톤 고사드, 제프 에이먼트 외에

 마이크 매크리디(Mike McCready),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 등 보컬을 제외한 전 멤버가 이후 펄 잼의

구성요소가 될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이 밴드는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원인은 프론트맨 앤드류 우드(Andrew Wood)가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나중에 그를 추모하기 위한 앨범 [Temple Of The Dog]이 만들어졌을 때

펄 잼 멤버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참여했다).


마더 러브 본의 잔여 멤버들은 사운드가든(Soundgarden)에서 드럼을 맡았던 맷 카메론(Matt Cameron)과 함께

 데모를 녹음했고, 이것이 우연히 에디 베더(Eddie Vedder)에게 전해져 보컬 트랙이 더해진 채 멤버들에게로 되돌아

 오면서 곧 에디 베더를 포함한 펄 잼이 태어난다.


또한 템플 오브 더 독의 앨범 중 'Hunger Strike'가 싱글로 인기를 얻으면서 보컬을 맡은 에디 베더도 주목을 받는다.

곧이어 데뷔 앨범 [Ten]이 발매되었다. 에디 베더의 주술적인 보컬과 함께 이 앨범은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2천만장이 넘게 팔린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어 [VS.]가 발매되었는데 여기서부터 펄 잼의 사운드는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에디 베더는 라이브나

인터뷰 등에서 종종 닐 영(Neil Young)에 대한 존경심을 내비쳐 왔는데 그 영향으로 결성 초반의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는 점차 투박한 미국식 하드 펑크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 번째 앨범 [Vitalogy]도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LP 예찬이라든지 티켓마스타와의 투쟁 등 그들의 모든 제스추어

 하나하나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Spin The Black Circle'로 그래미를 수상했다. 한편 존경해 마지 않던 닐 영의 신작 [Mirrorball]에 참여한

그들은 여기에 영감을 받아 미니 앨범 [Merkinball]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이크 매크리디는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레인 스탤리(Layne Staley) 등 4명과 함께 매드 시즌

(Mad Season)이라는 프로젝트에 가담하기도 하는 등 이 시기 멤버는 각각 다른 활동에 눈을 돌렸다.

 '96년 말에는 4집 [No Code]를 발표했다.


 그간 펄 잼은 미디어에 대한 반항의 태도로 비디오 클립을 찍지 않았지만 5집 [Yield]를 발표하면서부터는 발매하는

 싱글마다 비디오 클립을 찍기 시작했다.

'99년에는 밴드의 첫 공식 라이브 앨범 [Live on Two Legs]를 발표했으며2000년에는 새 앨범 [Binaural]을 내놓았다.

oimusic 2002년 05월 장은비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재 속에서 일어난 펄 잼은 보컬인 앤드루 우드가 헤로인 과용으로 숨진 뒤

기타리스트인 스톤 고사드와 베이시스트인 제프 아멘트가 마이크 매크리디와 데이브 크루센 그리고 보컬 에디

 베더를 끌어들여 만든 밴드였다.


TEN은 '91년에 녹음되었고 '92년초까지는 그다지 큰 성과를 못 보았지만 너바나가 메인스트림 라디오에 진출해

붐의 기초를 마련한 뒤에 너바나 못지 않게 판매고를 올렸다. 크루센은 TEN이 발매되자마자 밴드를 떠났고 데이브

아브루제즈로 대체되었다.


그들에게는 늘 너바나의 성공을 업고 되려 한 몫 본다는 비아냥섞인 비난이 따랐고 본디 시애틀 출신도 아니었던

 에디 베더는 이런 오해에 늘 신경 쓰며 '상업밴드'의 타이틀을 벗기 위해 노력했는데, 두 번째 앨범 VS.를 발매하면서 뮤직 비디오나 싱글을 내지 않았던 것은 그 방편이었다.


그러나 V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나오자마자 1위로 데뷔했으며 발매 일주만에 백만 장을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94년의 전미 투어 당시 그들은 커다란 스타디움에서 공연하는 대신 작은 공연장과 대학 캠퍼스 등에서 공연하기를

택했다.


  '94년 부당하게 티켓 가격을 올린다 하여 일어난 티켓마스터사와의 분쟁 역시 어떤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그들의

노력이었다.

세 번째 앨범의 녹음이 완료된 뒤 밴드는 데이브 아브루제즈를 해고하고 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멤버였던

잭 아이언스를 불러들인다.


세 번째 앨범 VITALOGY는 역시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

펄 잼은 '95년에도 계속해서 티켓마스터사와 싸우지만 결국에는 패배하고 만다.

 '95년 초에 에디 베더는 닐 영과 함께 앨범을 녹음했으며 '96년말에는 네 번째 앨범인 NO CODE를 출반한다.


작년 초에 발매된 다섯 번째 앨범 YIELD는 NO CODE와 마찬가지로 한 물 간 취급을 받았지만 전작보다는 오히려

신선하다는 평을 얻었다.

최근에는 LIVE on TWO LEGS라는 타이틀의 라이브 편집 음반을 발매했다.


그들은 곧 6집의 작업에 곧 돌입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번 앨범의 드러밍은 사운드가든의 멤버였던 맷 카메론이 맡을

  것이라고 하며 그는 이미 작년의 미국과 호주 투어에서 건강이 악화된 잭 아이언스를 대신해 투어했던 경력이 있다.


gmv 1999년 04월 장은비



너바나와 함께 한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인정받고 있는 펄 잼은 너바나가 언더 신의 펑크에 영향을 받아 혁명적이고 가치 전복적인 노선을 견지했던 것과는 달리 아메리칸 록의 전통적 사운드를 계승하는 다소 복고적인 사운드에 소외와 분노의 감정을 실어내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즉, 너바나가 스스로 불살라 신화가 되어버린 케이스라 한다면, 펄 잼은 점진적으로 전설을 만들어가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펄 잼은 국내 팬들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우선 그들의 실황 비디오를 볼 수 없었고,

 이렇다 할 스캔들로 매스컴에 얼굴을 자주 내밀지도 않았으며, 티켓 마스터와의 분쟁으로 대규모 공연 대신 소규모

클럽 공연을 전전하기도 했으며, 4집 앨범 발매시에는 홍보용 사진조차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매되는 라이브 앨범은 음악 외적인 것을 거의 배제한 채 음악으로만 승부하는 펄 잼의 또 다른 음악적 성과물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gmv 1999년 01월 이기원




 





Pearl Jam History


 (다음은 펄 잼의 소속사 에픽이 작성한 밴드의 바이오그래피를 시대별로 정리한 것임)

1984년 여름 ▶ 제프 에이먼트와 스톤 고사드가 결성한 밴드 그린 리버 시애틀에서 탄생.
1987년 12월-1988년 1월 ▶ 그린 리버 해산. 스톤 고사드와 제프 에이먼트는 마더 러브 본이라는 새로운 밴드 결성.


1990년 3월 16일 ▶ 마더 러브 본의 보컬리스트 앤드류 우드,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 같은 해 말 밴드의 데뷔작 Apple

이 발매되나 마더 러브 본은 이내 해체. Apple은 1992년 Mother love born이라는 새로운 제명을 달고 재발매됨.
1990년 여름 ▶ 제프 에이먼트와 스톤 고사드, 기타리스트 마이크 맥크레디 영입한 후 새로운 밴드의 결성을 구상.


이들의 인스트루멘틀 데모 테입이 먼 훗날 펄 잼의 드러머가 될 잭 아이언스의 손을 통해 에디 베더에게 전해짐.

에디 베더는 그중 세 곡에 가사와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시애틀로 돌려 보냄.
1990년 가을 ▶ 데이브 크루센과 제프 에이먼트, 마이크 맥크레디와 스톤 고사드, 그리고 에디 베더의 라인업으로

 결성된 무키 블레일럭, 곧 밴드명을 펄 잼으로 바꿈. 앨리스 인 체인스와 미서부 지역을 투어함.


1991년 4월 ▶ A&M 레코드사,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과 맷 캐머론, 그리고 펄 잼의 제프 에이먼트와 스톤 고사드, 그리고 에디 베더가 참여한 앤드류 우드의 추모 앨범 Temple of the dog 발매.
1991년 5월 25일 ▶ 캐머론 크로우(Cameron Crow)의 영화 ‘싱글스(Singles)’의 제작 기념 파티에서 공연함. 데이브

 크루센 밴드 탈퇴.


1991년 8월 3일 ▶ 데이브 애브러제스(Dave Abbruzzese) 영입.
1991년 8월 23일 ▶ 에틱에서 데뷔 앨범 Ten 발매. 1992년 8월 22일자 빌보드 앨범 차트 2위 기록.
1991년 10월 16일 ▶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함께 첫 번째 전미(全美) 투어에 돌입.
1992년 2월 4일 ▶ BBC-TV의 ‘Late Show’로 TV 첫 출연. 이즈음 첫 번째 유럽 투어 실시.


1992년 3월 16일 ▶ 뉴욕의 카프만 아스토리아 스튜디오(Kaufman Astoria Studio)에서 96년 5월 13일에 방영된

MTV-Unplugged 녹화.
1992년 4월 ▶NBC-TV의 ‘Saturday Night Live’에 출연.


1992년 6월 26일 ▶ 밴드 멤버들이 시티즌 딕(Citizen Dick)이라는 무명 밴드로 출연한 영화 ‘싱글스’의 사운드트랙

 발매. 펄 잼은 여기에 State of love and trust와 Breath 수록.
1992년 7월 18일 ▶ 사운드가든, 미니스트리, 아이스 큐브,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그리고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등과 함께 롤라팔루자 2(Lollapalooza Ⅱ) 투어에 참여.


1992년 9월 9일 ▶ MTV 뮤직 비디오 어워즈(MTV Music Video Awards)에서 Jeremy를 연주.
1992년 10월 ▶ 스톤 고사드, 프로젝트 밴드 브래드(Brad) 결성. 밴드의 데뷔작 Shame은 1993년 3월,

 에픽 레코드사에서 발매됨.


1993년 1월 12일 ▶ 에디 베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 8회 Rock & Roll Hall of Fame에서 도어스의 잔여 멤버들과 그들의 옛 곡 연주.
1993년 1월 25일 ▶ 어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에서 Pop/Rock부문과 Heavy Metal/Hard Rock

부문 등 두 개의 신인상 수상.


1993년 7월 2일 ▶ 여성 싱어송라이터 빅토리아 윌리암스(Victoria Williams)를 위한 자선 앨범 Sweet relief에 Crazy

mary 수록.
1993년 9월 3일 ▶ MTV 뮤직 비디오 어워즈에서 5개 부문 후보로 올라 Jeremy로 4개 부문 수상.
1993년 9월 10일 ▶ 사이프러스 힐과 함께 연주한 Real thing이 담긴 앨범 Judgment night이 발매됨.


1993년 10월 8일 ▶ 2집 VS. 발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진입.
1993년 10월 25일 ▶ 에디 베더, <록 계의 반항아들>이라는 기사가 실린 타임(Time)지 커버 장식.
1993년 10월 28일 ▶ 캐머론 크로우가 인터뷰한 펄 잼의 기사가 롤링 스톤지에 실림.


1994년 3월 ▶ 미국 전 지역의 콘서트 티켓 판매를 독점 관리하는 티켓 마스터의 부당성을 토로하며 앞으로의 공연에서 티켓 마스터와의 연계를 끊을 것을 천명.


1994년 5월 6일 ▶ 티켓 마스터와의 결별로 공연장 구하기가 힘들어진 펄 잼, 급기야 여름 투어 취소. 티켓 마스터는

그들과 연계된 공연장측에 펄 잼의 공연을 유치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으며 이 사건은 미연방 독과점 금지 법정

기록으로 남게됨.


1994년 5월 31일 ▶ 법정 대변인, 빌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티켓 마스터의 독과점 의혹에 대한 정식 수사 착수를 밝힘.
1994년 6월 30일 ▶ 제프 에이먼트와 스톤 고사드, 국회의 정보, 정의, 수송과 농업 분과위원회(Information, Justice,

 Transportation and Agriculture Subcommitte at Congressional)에 출두하여 티켓 독과점에 관해 증언.
1994년 9월 ▶ 데이브 애브러제스 탈퇴.


1994년 12월 6일 ▶ 3집 Vitalogy 발매. 12월 11일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름.
1995년 1월 8일 ▶ 에디 베더, 전(前)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드러머였던 잭 아이언스의 밴드 영입 공식 발표.
1995년 1월 14일-15일 ▶ 워싱턴 DC의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 허용을 위한 프로-초이스(Pro-Choice) 기치하에서

두 번의 공연 가짐. 닐 영과 L7도 참여.


1995년 2월 26일 ▶ 동아시아 투어 시작. 일본과 싱가폴, 태국, 호주, 뉴질란드를 순회.
1995년 3월 14일 ▶ 마이크 맥크레디와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탤리가 주축이 되어 만든 프로젝트 밴드 매드 시즌(Mad Season)의 앨범 Above가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발매됨.


1995년 3월 21일 ▶ 짐 캐롤(Jim Carroll)과 함께 Catholic boy를 수록한 ‘The basketball diaries’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됨.
1995년 4월 4일 ▶ 펄 잼은 새로운 방식의 티켓 판매 중개자인 ETM을 통해 13일간의 미국 투어 예정 밝힘. ETM은

완전 자동화된 전화 서비스를 제공, 바코드가 부착된 티켓으로 암표를 방지하는 등 티켓 마스터와는 별개의 새로운

 시도를 보임.


1995년 6월 25일 ▶ 밴드 내의 논쟁으로 에디 베더가 실종. 그로인해 펄 잼 미국 투어중 마지막 7일분의 공연이 취소됨. 취소된 공연은 이후 재조정되어 11월 6일과 7일에 끝을 맺음.
1995년 7월 5일 ▶ 법정에서 ‘티켓 마스터의 비합법적인 행위는 종결되었다고 여겨지며 앞으로도 그들의 독과점

 여부를 계속해서 주시할 것’이라는 공식 발표와 함께 그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됨. 

 
1995년 7월 6일 ▶ 변호사 재닛 레노(Janet Reno), 티켓 마스터와의 소송에 대해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라고 의견

 표명. 펄 잼 또한 이에 대한 공식적 실망감을 드러내고 법정의 이러한 조치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볼 이는 다름 아닌

라이브 공연의 관람객들이라 강조하며 팬들의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임을 밝힘.


1995년 12월 5일 ▶ 닐 영의 Mirror ball에 수록되었던 I got id와 Long load가 담긴 Merkinball이 발매됨.
1996년 1월 9일 ▶ 에디 베더가 Long load와 The face of love를 수록한 영화 ‘Dead Man Walking’의 사운드트랙

.
1996년 2월 9일 ▶ 시애틀을 기반으로 한 비영리 단체 홈 어라이브의 기금 마련 앨범 Home alive: The art of self-defense에 Leaving here 수록.
1996년 2월 28일 ▶ Spin theblack circle로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 Best Hard Rock 부문 수상.


1996년 5월 20일 ▶ Better man이 美 작곡자, 작가, 출판인 협회(Pop Music Awards of the American Society of Composers, Authors and Publishers)에서 94년 10월 1일-95년 9월 30일 동안 가장 많이 연주된 곡 중 하나로 선정됨.
1996년 6월 11일 ▶ 제프 에이먼트의 프로젝트 밴드 쓰리 피쉬(3 Fish)의 동명 타이틀 앨범이 에픽에서 발매됨.


1996년 7월 2일 ▶ 실리 서퍼스(Silly Surfers)의 64년도 히트곡 Gremmie out of control을 리메이크하여 환경보호

앨범 Music for our mother ocean에 수록.
1996년 8월 27일 ▶ 4집 No code 발매. 9월 1일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름.
1996년 9월 16일 ▶ 약 4주 간의 미국 투어 시작. 11월 25일까지 유럽 투어가 이어짐.


1997년 6월 24일 ▶ 브래드의 두 번째 앨범 Interiors가 에픽에서 발매됨.
1997년 6월 8일 ▶ 에디 베더와 마이크 맥크레디, 뉴욕에서 열린 티벳 자유 수호 콘서트의 둘째 날에 참가하여

Yellow ledbetter와 Rockin' in the free world 연주.
1997년 11월 14일-18일 ▶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 열린 롤링 스톤즈의 공연에서 오프닝 담당.


1997년 12월 24일 ▶ 신작 Yield의 첫 싱글 Given to fly가 라디오에 공개됨.
1998년 2월 3일 ▶ 브랜든 오브라이언이 프로듀서를, 닉 디디에(Nick DiDia)가 엔지니어를 담당한 5집 Yield 발매.



gmv 1998년 02월 권혜수








Pearl Jam

세월의 경험에서 우러 나온 건실한 사운드

너바나도 뚫지 못한 세월을, 펄 잼은 이루어냈다.

말많던 밴드의 앨범들은, 찬란하고 화려했던 뜨내기 시절을 잊지 못해, 밴드를 매질하고 달래기 바빴던 우리의 질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이제야 진보를 위시한 가장 완벽한 물건이었음을 증명받았다.


밴드는 후련하게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 모든 상황의 정리 그리고 시작은 펄 잼에게 맡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과제는, 니켈백 (NICKELBACK)에 전가되었던 기나긴 공백의 끈을 다시 되찾아 오는 일이다.

싸구려 티셔츠만 입고 질 나쁜 커피에 싸구려 멕시칸 맥주를 홀짝이던 그때를, 잔인하다며 넉살 좋게 웃어넘기는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 그의 미소는 영원한 젊음을 소유한 MTV의 권력 안에선 왠지 모를 초라함을 던져주는,


 기막힌 아련함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막상 레인 스텔리(Layne Staley)의 별 마저 떨어지고 보니, 찬란하던 우리의 옛날 음악은 완벽하게 고풍스러움을 강조할 수 있게 되었고, 2000년 이 음악이 다시 전세를 뒤집는다 해도 그리 놀라울 것 없는 이력을 강조할 수 있게도 되었다.

허나, 최신만을 가로채는 재빠르고 재빠른 현세대에서, 비록 양질이라 하더라도 클래식에 열광할 자 또 몇이나 될까?

랩락과 틴팝으로 무장된 2000년 대륙의 라디오들은 현재 또 다른 최신 유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폭발적인 에어플레이를 통해 너바나의 'You Know You’re Right'이 모던락 차트 정상에 올랐는가 하면,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합작 밴드인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의 'Cochise'가
화려한 옛 명성을 바탕으로 차트 상위권으로 급상승했다.


 그리고 펄 잼의 'I Am Mine'은 벌써 차트 정상을 위협중이다.

바로 이젠 한물간 음악, 옛날 음악에 불과한 너바나, 사운드가든, 펄 잼의 사운드가 한창중인 현란한 락들을 뒤로

새로운 포인트를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펄 잼의 일곱 번째 앨범이 완성되기 전, 멤버들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하여 사기를 충전하고 있었다.

 ‘Binaural’ 투어 이후 프로트맨 에디 베더(Eddie Vedder, 보컬)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는데, 라먼즈

(Ramones)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I Believe In Miracles'와 'Daytime Dilemma (Dangers Of Love)')를 시작으로
역시 각종 자선/인권/환경 행사와 공연에 거의 빠짐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는 지난 8월 브래드(Brad)의 세 번째 앨범 「Welcome To Discovery Park」를 발매했으며, 마이크 맥크레디(Mike McCready)는 월플라워즈(The Wallflowers)의 2002년 새 앨범 수록곡들의

기타 연주를 거의 도맡았다.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는 킹스 엑스(King's X)의 보컬 도그 핀닉(Pinnick)과 함께 앨범을 녹음했으며,

이번 펄 잼의 새 앨범 아트워크에도 참여했다.

드러머 맷 카메론(Matt Cameron)은 니켈백의 채드 크로거(Chad Kroeger), 설라이버(Saliva)의 조시 스캇(Josey

Scott)과 함께 영화 ‘Spider-Man’ 사운드트랙에 참여('Hero')했다.


그리고 올해 초 다시 모인 밴드는 몇몇 공연을 통하며 새 앨범 워밍업을 시작했다.

 “시애틀에는 스케이드보드를 탈 수 있는 공원이 없다.

여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그나마 가지고 있던 클럽들조차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젊은 에너지를 무수히 보유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이를 억제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제2의 반란을 꿈꾸고 있는 자들이다.

어느 누구도 그저 집에 앉아 TV나 보는 것을 행복해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렇듯, 고향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마련, 지난 9월 시애틀로 돌아간 밴드는 ‘Magnuson’ 공원에 3만여 명에 가까운 팬들을 모아놓고 무료 공연을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후(The Who)의 베이시스트였던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의 추모 공연에도 모습을 비췄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더욱 진지하고 열정적인 에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 그는 초기 밴드의 라인업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대해 그리워한다고 언급했었다 한다. 스톤이 빠진 이 공연은 이번 앨범에도 참여한

 바 있는 에디의 하와이언 친구 붐(Boom)이 그를 대신했다고. 예전만큼은 장사되지 않는 음악으로 치부되면서 펄 잼의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라이브를 통한 이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든든함을 앞세운다.


더욱이 올해 말 새 앨범 투어를 시작으로 내년을 공략할 예정에 있는 밴드는, 그 시기를 같이해 작년 방대한 양의

라이브 앨범에 이은 또 다른 희귀 소스를 발매할 예정이라는데,  활동 전초부터 이들의 다부진 각오가 느껴진다.

마치 R.E.M.을 듣고 있는 듯, 지난 해 가을 ‘Bridge School Benefit’ 쇼에서 공개되었던 'I Am Mine'은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덩치를 키우면서 앨범에 대한 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나는 내가 태어난 것을 알고 있어, 내가 죽을 것도 말이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안의 모든 것은 나의 것/ 나는

 나의 것.’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과 자신만으로 채워진 삶을 표현하고 있는 이 곡은 키보드를 섞고 있는 포크 풍의

 트랙. 펄 잼의 기질을 그대로 살리되 좀더 시대적인 작법들을 강조하고 드러냄으로써  전체적인 틀을 만들고있다.


키보드, 오르간, 피아노 건반의 사용이 앨범 전반에 걸쳐 눈에 띈다.

또 「Ten」과 「Yield」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본작은, 프로듀서로 지난 앨범들(「Vs.」, 「Vitalogy」)로 호흡을

맞췄던 애덤 캐스퍼(Adam Kasper: Foo Fighters, Soundgarden), 믹스에 브렌든 오브라이언 (Brendan O’Brien)이

 참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복고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대적인 동시대성을 강조하며, 혈기를 집어삼키기보다는 나이를 먹은

만큼 보다 세련되고 차분하게, 아울러 생기 있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

 오프닝 트랙인 'Can’t Keep'과 'Thumbing My Way'는 역시 올해 초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에디의 솔로 콘서트를

통해 이미 선보여졌던 곡들로 어쿠스틱함을 강조한다. 낮게 읊조리는 에디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애절하고 진한

발라드로 표현된 곡.


묵직하고 헤비한 펑크 'Save You', 샘플과 비트의 반복적인 효과를 살리고 있는 기계적인 튠의 'You Are' 등 총 15개의 노래는 이들이 겪었던 세월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건실한 사운드이다.

「Ten」 이후 펄 잼의 마스터피스는 물 건너갔다. 아직까지 「Ten」만한 펄 잼의 베스트는 없다.’ 무참한 비평의 끈은 2003년을 바라보는 지금, 이들을 보다 강력하게 만든다. 비단, 퀄리티를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강력한 호소…,
펄 잼의 완벽했던 시절을 그리워한 탓이다.


 허나, 도대체 이 밴드에게 완벽한 시절을 어떻게 자를 수 있겠는가.

정치적 성향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앨범 팔아 치우기에 여념이 없는 밴드가 어찌 매번 자신의 기질대로 끊임없는 실험, 변화를 추구했겠으며, 어찌 안티-스타적 태도를 취하며 음악산업의 제도 권력에 맞섰겠는가 


이제와 보니 말 많던 6장의 앨범들은 모두, 진정한 진보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위대한 락큰롤의 유산이었으며,

그 자체로 바로 펄 잼, 그 자신이었다. 물론, 흔하디 흔한 싸구려 플란넬 티셔츠의 락, 촌구석의 오래된 퓨젯(Puget)

사운드가 이제와 대단한 스파크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것만큼 뜨겁고 신선한 사운드가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가슴으로 느껴질 뿐이다. 구멍난 심장은 이제 그 수를 늘릴 것이며,신선한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이하 생략, Hot Music 11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