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에서 참패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오는 4일 미국에서 귀국한다.
홍 전 지사는 귀국하자마자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그의 당대표 도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선 참패에 대한 책임론과
더불어 리더로서의 자질 부족이 반대 이유다.
‘홍준표 당대표 불가론’은 친박(친박근혜)계에서 초재선 의원으로 번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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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지난 5월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대청년오디션 미운우리프레지던트509'에
참석해 청년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의원은 “홍 전 지사는 대선 전에 친박 청산을 외쳤다가 판세가 불리자하자 친박과의 화합으로 말을 바꾸고
대선이 끝나자 당권을 위해 다시 친박 청산을 주창하고 있다”면서 “당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는 ‘권력 중독자’”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홍준표 비토’ 기류는 한국당의 지난 2일 충북 단양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찬회에서도 감지됐다.
임이자 의원은 홍 전 지사를 겨냥해 “지난 대선에서 홍 후보의 막말과 여성을 외면한 발언, 강성 노조, 귀족 노조와의
전쟁 등으로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면서 “‘촛불 폭풍’이 휘몰아치고 검은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경고를 했는 데도,
우린 그걸 우산으로 막으려다 우산마저 뒤집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 후보와 당이) 국민 소통과 언론 대응이 부족했고,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며, 수도권과 청년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다른 의원은 “우리 당이 TK(대구경북)에서 바른정당보다 지지율이 낮게 나온 것은 당의 존립 위기에 직면한 것”이라며 “7월 전당대회에서 당을 개혁할 지도부를 뽑지 못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또 참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준표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는 친박계에선 홍 전 지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10월 이전에
나오는 상황에서 그가 당대표로 출마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한다.
한 의원은 “현 정부의 적폐청산 분위기를 감안하면 홍 전 지사에 대한 대법 판결이 유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면서 “이런 리스크가 있는 홍 전 지사는 스스로 자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2부는 검찰의 상고이유 등 홍 전 지사의 사건에 대한 법리 검토를 시작했다.
핵심은 홍 전 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54) 진술의 신빙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 전 지사는 2011년 6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2015년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1억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선 지난 2월 무죄를 받았다.
반면, 일부 초재선 의원과 비박(비박근혜)계가 여전히 홍 전 대표가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할 대안이라며 당대표 추대론을 주장하고 있다.
홍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지리멸렬했던 당을 추스르고 그나마 득표율 20%을 기록해 당을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홍준표 전 도지사 4일 귀국, 친홍계 결집?
(서울시정일보 황문권기자)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미국으로 향해 휴식을 취하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오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홍 전 지사는 지난달 12일 미국으로 출국해 약 한달 간 체류해왔다.
이런 홍 전 지사가 4일 귀국하며 7월 3일로 예정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권도전 선언을 할 것으로 대다수 여론은
예측하고 있다.
앞서 홍 전 지사는 미국에서도 지속적으로 SNS를 통해 '바퀴벌레' 등 본인 특유의 공격적 언행을 이어가며 자유한국당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또한 자유한국당이 대선 패배 이후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계와 혁신파 그리고 홍준표 전 도지사를 지지하는 친홍계로 나뉘어 가는 모양세인 만큼 4일 당일 인천공항에 얼마나 많은 현역의원들과 당원들이 모일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황문권기자 hmk0697@hanmail.net)

홍 전 후보는 대선 패배 직후인 지난 12일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23일 만에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앞서 홍 전 후보는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귀국 소식을 전하면서 "6월 4일 인천공항에서 곧 뵙겠다"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4일 귀국 홍준표, 7월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서 '당권 도전' 유력
홍 전 후보의 귀국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다음달 3일 한국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홍 전 후보는 미국에 머무는 과정에서 수시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이른바 '원격 정치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홍 전 후보는 "애리조나의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보면서 다시 광야에 서야 하는 입장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밝히는 등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현재까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분위기는 홍 전 후보에게 유리한 판세로 흘러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때 친박(친박근혜)계 일각에서 홍 전 후보의 복귀를 저지하는 차원에서 당 지도체제를 현재의 당 대표 중심의 지도체제를 깨뜨리고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홍 전 후보 역시 미국에 머무는 동안 이러한 당 지도체제 변경 움직임을 견제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홍 전 후보는 SNS를 통해 "당 쇄신을 막고 구체제 부활을 노리는 음모에 불과하다. 국민과 당원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홍 전 후보의 당권 출마를 위한 분위기는 조성되고 있지만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바로 당권에 도전할
출마명분이다.
대선후보로 나서 패배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당권에 도전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의견들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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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치러진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대선 패인을 평가하는 시간에 홍 전 후보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상당수 나온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당권도전 경쟁자' 안 떠올라…'당권도전' 비판 이겨낼 '출마명분' 중요
연석회의 분임토의 등을 통해 나온 의견을 종합해 대선패인을 대표보고한 임이자 의원은 "'당당한 서민 대통령'이라고 내걸었지만, 정말 서민에게 감동을 주는 정책이 없었다"거나 "너무 영남이 주도권을 쥐고 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홍 전 후보의 막말 논란, 여성 비하 발언 등이 지지율의 발목을 잡았으며, 강성 귀족노조와의 전쟁 선포 등에
따른 외연 확장 실패 평가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면서 당권 도전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는 홍 전 후보가 귀국한 직후에나 들을 수 있다.
다만, 당권 도전과 관련해 홍 전 후보와 경쟁할 뚜렷한 후보군이 등장하지 않는 점과 외부 영입인사로 꼽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최근 '당권에 관심없다'고 밝혀 '청신호'가 켜졌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변수로 꼽히는 것은 지도체제 변경 등을 꾀하던 '친박(친박근혜)계' 행보다. 홍 전 후보가 당권을 차지할 경우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인적청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어 당내 '불협화음'이 생길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홍 전 후보가 귀국 후 첫 일성으로 어떤 얘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한국당의 향후 행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데일리안 = 문현구 기자]
1954년 12월 5일 경상남도 창녕군의 빈농 집안의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본명은 홍판표(洪判杓)
였지만, 검사 시절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는 "청주지검에 근무할 때 지법 이주영 판사가 검사에게 '판' 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 바꿨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홍준표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다. 홍준표는 아버지는 '한량'이었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양은그릇과 누룩을 팔았고, 어머니는 가발의 원재료인 달비 영업을 했으나 요령이 없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홍준표가 처음 입학한 학교는 경남 창녕의 남지 국민학교였으나 가계 형편 때문에 보통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사해
졸업 때까지 다섯 군데를 전전했다. 졸업은 합천군 덕곡면의 학남 국민학교에서 했다.
국민학교 졸업 후 대구 영남중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등록금과 수업료를 면제받았다.
대구 직물 공장에 취직한 누나 월세방에 얹혀 영남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홍준표는 학비가 없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1971년 10월 합격했다.
합격 직후 고향에 내려가 있던 중 아버지가 훔친 비료를 샀다는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보고 홍준표는 육사가 아닌 법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한 달 간 벼락치기로 공부해 1972년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 여고생 방문 가정교사 등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대학 때 친구 부탁으로 ‘유신 철폐’ 유인물을 몇 차례 작성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이후에는 학생운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농담을 잘해 별명이 '황당무계'의 '무계'였다.
대학 1학년 때 MBC 코미디언 공개모집에 원서를 넣기도 했으나 같은 해 유신이 터지면서 실제 시험은 못 봤다.
대학 시절인 1974년 울산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으며 야간 임시직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병명도
모른 채 숨을 거뒀다.
당시 어머니는 "아들 대학 2학기 등록금을 가망 없는 사람에게 쓸 수 없다"라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홍준표는 고시생이던 1976년 서울신탁은행 안암동 지점에 근무했던 지금의 아내 이순삼을 만났다. 한때 고시를 접고
연합철강에 입사해 6개월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이 씨의 뒷바라지로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도전해 1982년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한 뒤 결혼했다.
부부 사이엔 두 아들 정석·정현이 있다.
검사 시절
1984년 홍준표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청주지검에서 초임검사로 일하기 시작해 부산지검 울산지청, 서울지검 남부
지청, 광주지검, 서울지검 등을 돌며 검사 일을 했다.
그중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근무할 때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1988년 5공 비리 청산작업의 하나로 노량진 수산사장 운영권 강탈 사건이 홍준표에게 맡겨졌다.
전두환의 형 전기환이 노량진 수산시장의 운영권을 빼앗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서울시 등 권력기관이 개입된 사건이다. 홍준표는 검찰 상부에서 사건을 무마하려 하자 언론에 흘려 추동력을 얻어 수사를 재개하기도 했다.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 사건 수사로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불거진 '슬롯머신 사건'은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격인 정덕진, 덕일 형제로부터 돈을 받거나 청탁을 받은 혐의로 정·관계 유력인사 10여 명이 구속된 사건이다.
홍준표는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업자로부터 5억 원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검찰·경찰 간부 4~5명 등 권력자들을 구속했다.
박철언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 결과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하고 1년 4개월 동안 징역을 살았다. 홍준표는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고 박철언을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은 1995년 인기리에 방송된 <모래시계>의 소재가 되어, 홍준표가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정치 입문
1995년 검사를 그만두고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그해 15대 국회의원(서울 송파갑)에 당선됐다. 초선의원 시절 홍준표는 DJ 저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의원직을 잃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당시 같은 이유로 워싱턴 DC에 와있던 이명박과 골프를 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홍준표는 같은 고려대 출신인 이명박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이였으나 친이계로는 불리지 않았다.
홍준표는 2001년 16대 서울 동대문을 보궐선거에서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를 앞세워 당선됐고 이곳에서 17·18대 의원을 지냈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들었다.
홍준표는 이명박 정부 때 당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2
008년 5월 추대 형식으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됐다.
2010년 최고위원을 거쳐 2011년 7·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같은 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나경원이 무소속 후보 박원순에게 참패하면서 5개월여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
012년 4월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에게 패해 낙선했다.
홍준표는 2012년 김두관 당시 경남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하는 바람에 시행된 12월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재기했고, 2014년 지방선거 때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취임 70일 만에 2013년 5월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다. 강성노조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도민의 혈세를 계속 투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2015년 4월에는 도내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 시민단체가 '주민소환'에 나섰으나 대법원이 청구를 각하해
위기를 벗어났다.
2015년 4월엔 경향신문의 ‘성완종 리스트’ 보도로 최대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이명박 정부 자원비리 수사를 받던 전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이 2015년 4월 자살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홍 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시켜 1억 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윤승모 역시 언론 인터뷰와 검찰 조사에서 돈 심부름을 한 상황을 자세하게 진술했다.
홍준표는 1심에서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년 6개월 징역과 1억 원 추징을 선고받고, “노상강도를 당한 심정”이라고 반발했다. 2
017년 2월 홍준표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다른 후보들이 대선 출마의 적절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 출마
홍준표는 2017년 치러진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김관용·김진태·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압도적인 차이의 득표율을
확보하며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홍준표는 국민 여론조사 50%, 현장투표 50%를 반영해 치러진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54.15%의 득표율로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나머지 후보들은 10%대로 득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와 경선 후보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된 뒤 김진태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과 함께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7.3.31

홍준표는 수락연설에서 "유약한 좌파 정부가 탄생하면 대한민국은 살아날 길이 막막하다"라며 "이제는 강단과 결기를 갖춘 스트롱맨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강한 대통령' 면모를 밀어붙였다.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는 785만2846표(24.03%)를 얻어 1342만3784표(41.08%)를 확보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에게 557만 951표(17.1%p) 차로 뒤처져 패배했다.
1, 2위간 표 차이는 역대 최대로 기록됐다.
홍준표는 2005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대학 시절 '돼지발정제'를 이용한 성범죄 모의에 가담했다는 논란에 휘말렸고,
선거 막판에는 장인어른을 '영감탱이'라고 칭한 연설이 논란이 됐다.
그러나 한 자릿수 지지율에서 출발해 막판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다시 결집시키고,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준표는 선거 결과가 발표된 이후 "선거결과를 수용한다. 자유한국당을 복원하는 데 만족하겠다"라며 대선 패배를
인정했다.

공약
안보
홍준표는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첫 번째 공약으로 안보를 꼽으며 '강한 안보, 강한 대한민국' 기조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충분한 협의 하에 한반도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추진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사드 배치는 올해 상반기 안으로 완료하고,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BLM)에 대비하고자 원자력추진잠수함
전력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병특수전사령부를 설치해 군 체제를 4군 체제로 개편하는 등 공세 위주의 국방정책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경제정책
홍준표는 "민간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강성 귀족노조 및 편향된 이념의 노조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라는 방향을 밝혔다.
일자리 공약으로는 기술경쟁력을 갖춘 '혁신형 강소기업' 육성으로 일자리 50만 개를, 기술창업을 활성화해 일자리
28만 개를, 서비스산업 활성화로 일자리 32만 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기업과 가계의 금리 부담은 최소화하고,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단계적으로 개편하며
규제 한 개를 신설할 때마다 기존 규제 2가지를 철폐하는 '원 인-투 아웃(one in, two out)'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복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영유아, 초중고생, 청년, 취업 이후∼중장년, 50∼60대 은퇴자, 65세 이상 노인 등으로 복지 대상 범주를 나눠 '서민 맞춤형 복지 지도'를 완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영유아 대상으로 가정양육수당을 2배 인상하고,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30만 원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교육
홍준표는 사법고시 존치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저소득 가구 자녀가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교육복지카드 지급 및 대학 등록금 지원 방안 등이
담긴 '4단계 희망사다리 교육지원제도'를 제시했다.
사회안전망
생계형 서민 보호를 위한 대통령 직속 '서민-청년 구난위원회'를 신설하고 △생계형 신용불량자 등에 대한 특별대책
마련 △신용불량자 중 소득 하위 20%에 해당할 경우 공공근로 일자리 등을 통해 부채 갚을 수 있도록 대책 마련 등을 공약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생계형 업종(청국장, 두부 등)에 대한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고, 대규모 점포의 골목상권 출점 규제 강화로 대기업 진출을 억제하는 등 소상공인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에서 허용하는 음식물(3만 원)·선물(5만 원)·경조사비(10만 원) 가액기준을 '10·10·5만 원'으로 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민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부패척결 · 공공부문 개혁
검찰과 경찰을 동등한 수사기관으로 인정해 상호 감시체계가 가능하도록 경찰에 영장청구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흉악범에 한해 사형을 집행하겠다고도 했다.
생활
중소규모의 식수 댐을 확충해 1급 청정수를 공급하고 중수도 설치 확대 및 광역 중수도망 구축 논의를 통해 물 부족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세먼지 대책으로 '동북아 대기질 국제협력기구'(가칭)를 설립해 미세먼지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병원, 학교 등
다중이용시설에 공기청정기 설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2022년까지 신차 판매의 35%를 친환경 차로 대체할 것을 공약했다.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해 '정보과학기술부'를 신설하고 5년간 20조 원의 창업·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행정, 재정개혁을 통해 국가 부채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고 지자체 및 민간단체로 국가사무의 과감한 이양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저출산 해결, 청년 복지
둘째 자녀부터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셋째 자녀부터는 자녀교육비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육아휴직 급여 한도를 2배 인상하는 등 부모 육아휴직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100만 호 주거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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