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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44억 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교육부 사과는 없었다


           






44억 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교육부 사과는 없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지난달 31일 공식 폐기됐습니다.

 2014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이후 3년 3개월 만의 일입니다.

지난달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습니다.


교육부는 지시 3주 만에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국·검정 혼용'에서 '검정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개정 고시를 관보(官報)에 게재해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교과서 실무 부서인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해체됐고,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홍보하기 위해 개설했던

 '올바른 역사교과서 홈페이지'도 폐쇄됐습니다.

추진 과정에서부터 숱한 논란을 겪었던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올바른 역사의식 길러주자"던 박근혜 전 대통령


지난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길러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당시 검정 역사교과서들이 '좌편향'돼있다는 주장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제기됐습니다.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세력은 "적화통일 의도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 측도 이 같은 움직임에 가세했습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에 앞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황 전 총리는 "일부 검정 교과서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비판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며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올바른 역사 교과서' 밀어붙인 교육부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당의 공세에 교육부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 교과서'로 명명하고 국정화를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내용을 공개한 뒤

한 달 만에 '국정교과서 단일'에서 '국정·검정 혼용' 체제로 변경했습니다.







교육부는 올 초까지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할 연구학교를 모집하는 등 국정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학교에서 국정 교과서를 보조교재로 사용할 경우, 무상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방침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 국정 역사교과서에 낭비된 예산만 44억 원


교육부의 예비비 사용 신청서(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을 위해 교육부가

신청한 예산은 총 43억 8,780만 원에 달합니다.

 홍보비에 25억 원, 교과서개발비 17억 1천만 원, 일반수용비 6,900만 원, 연구개발비 5천만 원, 자산취득비 3,700만 원, 여비 1,300만 원, 업무추진비 880만 원 등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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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에 들어간 총예산의 절반 이상인 25억 원이 홍보비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개발비로 사용된 17억 원과 연구개발비 5천만 원을 합친 것보다 많은 돈이 국정 교과서 홍보에 사용된 겁니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국정 역사교과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지시를 내리자, 교육부는 곧바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국정 교과서는 폐지됐지만, 교육계에서는 정책 방향 수정 이전에 교육부 차원의 사과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임명된 이영 교육부 차관이 국정 교과서가 폐지된 지난달

31일 퇴임했습니다.


교육부의 최종 결재권자 중 한 명이었던 이 전 차관은 이날 이임식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전 차관의 이임사는 성과만 나열한 '자화자찬식'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국정화를 주장하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닫은 상황에서 44억 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하고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국정 역사

교과서의 책임 소재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김도균 기자getset@sbs.co.kr







 


국정 역사교과서 공식 폐지..'말 많던' 19개월


국정 역사교과서가 공식 폐지됐습니다.

교육부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검정 혼용에서 검정체제로 전환하는 고시 개정을 완료하면서,

19개월에 걸친 국정 역사교과서의 '역사'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말 많고 탈 많던' 19개월을 돌이켜 봅니다.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2015년 10월 국정화 행정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바른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라며 국정화 교과서를 제시했습니다. 처음부터 논란은

컸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현행 검정교과서 집필진의 80%를 '좌편향 인사'로 규정한 점도 강력한 반발을 산 이유였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검인정 교과서는 친북 숙주"라고 비판하고,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프레임 경쟁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11월, 국정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이었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최 교수가 대표 필진으로 선정된 날 인터뷰를 위해 그의 자택으로 찾아간 한 여기자에게 성희롱으로 느껴질 만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입니다.

최 교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국정교과서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며 사퇴했습니다.








'깜깜이'·'복면'…논란 속 집필




2016년 1월 국정교과서 집필이 시작됐습니다. 이때 국정교과서가 얻은 별명은 '깜깜이 집필'·'복면 집필'입니다.

 당시 역사·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46명, 심의위원 16명 가운데 공식적으로 드러난 인물은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1명뿐이었습니다.

집필진 명단과 편찬기준은 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오기 전까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2016년 11월까지 초고본→원고본→개고본→현장검토본이 쓰였습니다. 매 단계 집필진의 집필과 전문기관의 검토·

심의가 이뤄졌습니다.

결국 현장검토본이 공개될 때까지 집필진의 명단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집필기준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기 사흘 전에 먼저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민단체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현장검토본 공개…'대한민국 수립'이냐, '정부 수립'이냐


2016년 11월 28일, 국정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즉각 '우편향'이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학계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시도교육청들도 국정교과서 반대에 나섰습니다.

이 때 가장 쟁점이 된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써야 하는지, '대한민국 수립'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현장검토본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쓰여 있었습니다.

교육부는 "기존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북한에서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는

 서술이 있었다"면서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 서술"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 시점으로 본다면, 1919년 3·1 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이후 벌어

졌던 독립운동 역사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와중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반발이 심해져 가던 국정화교과서의 동력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지난 1월 최종본 발표와 함께 교육부는 희망 학교에 한해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하고 수업교재로 사용토록 하는 것으로 절충안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연구학교는 경북 문명고등학교 한 곳만이 지정됐고, 이마저도 학내 반발을 겪으며 정규 수업 교재로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국정교과서는 참고자료로만 전국에 6천여 권이 배포됐을 뿐입니다.








文 대통령 지시 19일 만에 완전 폐지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교육분야 1호' 업무지시였습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폐지 지시가 떨어진 뒤 4시간 만에 보도자료로 폐지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후 나흘 만에 역사교과서는 국검정 혼용체제에서 검정 체제로 전환하는 행정예고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지시 19일만인 31일 최종적으로 국정교과서 폐지 절차가 완료됐습니다.

이로써 19개월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정교과서는 학교 현장에서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31일까지만 조직을 운영한다는 국무총리 훈령 규정에 따라 효력이 만료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도 해체됐습니다.

남은 건 새 검정교과서 개발입니다.

 지난해 말 국·검정 혼용 체제로 정책이 바뀌면서 검정교과서 개발 절차는 뒤늦게 착수됐습니다.


현재 8곳의 출판사에서 검정교과서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교과서 개발 일정이 부족하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입니다.

국정교과서를 놓고 소란스러운 지난 19개월이었습니다.


일부는 국정교과서 폐지를 당연히 여기는 반면, 아쉬워하는 의견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목소리는 있습니다.

적어도 정치 논리에 따라 역사 교과서가 오락가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목소리가 꼭 앞으로도

 반영됐으면 합니다.



김진호기자 (hit@kbs.co.kr)







국정역사교과서 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사진은 지난 1월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뉴스1 DB)© News1 장수영 기자


국정역사교과서 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사진은 지난 1월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


뉴스1 DB)© News1 장수영 기자







지난달 5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소녀상 뒤에 앉아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지난달 5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소녀상 뒤에 앉아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역사가 심용환 "국정교과서 폐지에 안심하면 미래 없다"




커다란 국민적 저항을 부른 박근혜 정권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문재인 정부 들어 폐지되는 가운데, "국정교과서 폐지는 끝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교육의 새 틀거리를 만들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저술·강연 등으로 역사 대중화에 힘써 온 역사가 심용환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 폐지

문제는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꿈이 한때 역사학자였고, 그만큼 뚜렷한 역사의식을 지닌 분이기 때문에 최근 불거졌던 교육부의

 자잘한 저항은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여요. 당장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써야 할 검인정교과서의 졸속 우려가

나오는데, 이것 역시 능력을 갖춘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다면 잘 풀릴 겁니다.

다만 문제는 이제부터 역사교육의 모든 것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데 있습니다."


심용환은 "국정교과서가 폐지 수순을 밝으면서 오히려 뿌리 깊은 역사교육 문제가 묻히는 분위기여서 걱정이 크다"며 "저 역시 (국정교과서 폐지를 끈질기게 주장해 왔던 터라)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데,

역설적이게도 정치 이슈와 분리되면서 역사교육 개혁을 위한 사회적 동력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교과서 폐지에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뻔한 암기과목 수업으로 원상복구 되는 것일 뿐,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국정교과서가 멈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해결이지만, 그간 타올랐던 역사에 대한 관심,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질

 이유도 상실되는 분위기입니다.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죠. 현재 우리나라 역사 교육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 딜레마 안에서 역사학계·교육계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느냐가 과제로 떠올랐어요."









역사가 심용환(사진=심용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역사가 심용환(사진=심용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단 하나의 변화로 역사교육 개혁 물꼬 트는 데까지 나아가야"




그는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공적 지식으로서의 비판적 역사의식을 심어 주지 못하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매체가 다양해지는 반면 책을 점점 안 읽는 환경에서 학생들은 미디어를 통해 파편적인 정보만 얻고 있어요.

 유일한 공적 체제로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공교육입니다.


국정교과서 폐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울 당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지했던 데도 지난 2004년 이래 진행된 근현대사 교과의 힘이 컸다고 봐요."

"이러한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려면, 어떻게든 역사교육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심용환은 역설했다.


"역사교육이 암기 교육으로 인식되고 있어 내용이 너무 많고 재미 없어요. 초·중·고등학교 때마다 고대사부터 현대사를 반복하는 방식이죠.

분량이 너무 많다보니 학생들은 옛날 이야기 위주로 단순하게 기억합니다.

교사들도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다급해지기 일쑤죠. 공적 지식으로서 역사교육의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는 "일례로 교과를 나눠 중학교 때까지 근대 이전 역사를 배우고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와 세계사 교육에 집중하면 학생들이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제안했다.

"역사교육을 단군부터 광개토대왕, 조선왕조까지 가다 보면 머릿속에 남는 게 뭘까요?


 흔히 말하는 '국뽕' 식의 역사교육은 이제 벗어나야죠.

근현대사의 경우 우리가 주체성을 상실한 채 냉전이라는 국제질서에 갇혀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기예요.

미국 등과의 국제 관계·정세 속에서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이를 아우르지 못하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겠죠."


결국 "한국사가 필수인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로서 흥선대원군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체계적으로 배우면, 학생들

 입장에서 입시 부담을 덜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 효과도 남는다"는 것이 경험에 바탕을 둔 심용환의 지론이다.

"학생들과 공부해 보면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한정돼 있어요.


전반적으로 최근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에게 과감한 자율권을 부여해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식으로 수업 시스템을 변화시킬 필요를 느끼는 이유예요.

현재 입시 상황에서 적어도 고등학교 1, 2학년까지는 자유로운 시도들이 가능합니다.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만 가르치든, 법제화로 토론 수업을 의무화하든, 단 하나의 변화로 역사교육 개혁의 물꼬를 트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역사교육이 공적 지식으로서 의미를 갖도록 돕는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28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