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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시사

文대통령, 트럼프와 첫 대좌로 정상외교전 데뷔..'정공법'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CG [연합뉴스TV 제공]









文대통령, 트럼프와 첫 대좌로 정상외교전 데뷔..'정공법'




트럼프 '임기응변'에 맞불..사드 등 핵심쟁점서 '원칙'과 '목표' 중시
출신배경·정치스타일 달라..북핵 등 전략이익 공유 땐 '호흡' 잘 맞을 듯
회담 前 공식만찬 '스킨십'..'갈등' 부각보다 '큰 틀의 협력' 강조 전망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오는 29일부터 이틀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되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외교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세계질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국가원수와의 첫 대좌를 통해 정상외교전에 데뷔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미 양자외교 차원을 넘어 국격과 위상이 높아진 한국이 앞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어떤 운신과 역할을

해나갈 것이냐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 특히 정상외교에 있어 의미와 파급력이

 막중하다는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 출범한 지 각각 40여 일과 4개월여밖에 안된 '걸음마 단계'의 정권

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대외정책의 세부적 기조와 인적 진용이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 정상의 '개인기'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외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두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케미스트리'를 형성하느냐는 향후 양국관계의 전반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두 정상의 외교스타일은 매우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일관된 원칙과 목표를 중시하며 '정공법'으로 승부를 거는 방식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가가 수완을 발휘하듯이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전략을 바꿔가는

 '임기응변' 또는 '변칙'형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이는 그만큼 두 정상의 이념적 배경과 성장 과정,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인생궤적이 달랐음을 반영하고 있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진보·개혁진영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당선된 문 대통령과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백인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트럼프 대통령인 만큼 서로가 딛고 선 국내 정치적 기반 역시 크게 다르다.


이에 따라 두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서로 부딪히거나 이견을 표출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두 정상의 상이한 성향과 스타일만으로 '궁합'을 속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동맹의 기본 가치를 재확인하고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가 형성된다면 정상 간의 개인적 유대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한·미 양국 정부는 서로 이념적 성향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정상 간의 유대는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대체로 좋았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 모두 정권 초기 양국관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제각기 대외정책을 운용하는 데

있어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갈등'을 부각하기보다 '협력'을 강조하는 쪽으로 정상회담의 콘셉트를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문 대통령은 원칙과 목표를 중시하고 이를 토대로 상대방을 집중 설득하는 스타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강한 스타일의 지도자와 오히려 호흡이 더 잘 맞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놓고 허를 찌르는 변칙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핵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상대로 지나치게 공세적으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기간 백악관에서 환영 만찬을 베푸는 것은 문 대통령을 특별히 배려한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외국 정상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공식 환영 만찬을 베푼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정부에서는 한·미 정상 간에 만찬 없이 오찬회동만 이뤄졌다.


정상회담에 앞서 환영 만찬을 하는 것은 사전에 '스킨십'을 강화함으로써 회담의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이끌고 상호

 '윈윈'이 되는 쪽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려는 미국 측의 뜻이 반영돼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사드와 FTA 등 예민한 쟁점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도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하면서도 전향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편이다.



rhd@yna.co.kr





한미정상회담 전 웜비어 사망 파장 (PG)






지난 4월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 당시 미소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7.6.2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7.6.2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한미정상회담 코앞..강경화 장관 조기 방미 성사될까


당국자 "한미 양국 장관 일정 조율 중"



(서울=뉴스1) 정은지 기자 = 한미정상회담이 25일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조기 방미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번째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북핵 등 주요 현안을

둘러싼 복잡한 정새 속에서도 한미동맹 재확인을 비롯한 주요 의제들이 논의된다는 점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충분한 준비 없이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철저하게 대비해 성공적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다는 방침이다.

특히 우여곡절끝에 취임한 강경화 장관 입장에서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외교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떠안고 있다.


더군다나 강 장관의 경우 국제 무대 경험이 풍부한 다자외교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북핵 문제 경험이 없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혀왔다.

북핵 문제가 비중있는 의제로 상정되는 한미정상회담 준비에 철저히 대비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여줘야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이같은 상황을 드러내듯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오는 28일보다 일찍 미국행 의지를 드러냈다.

강 장관은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미정상회담 준비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사안을 매일 챙겨볼 것"이라며 "(한미) 양측이 입장을 맞춰보고 정상회담 전에 미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진행된 강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장관이 회담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강대를 형성했다.

강 장관은 지난 22일 성사된 틸러슨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5년간 정책공조의 토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틸러슨 장관은 " 물론이다. 성공적 방문에 대해 강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양측은 통화에서 정상회담 개최 전 정상회담의 최종 조율을 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보좌진들을 통해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의 조기 방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양 장관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ejjung@



한미 정상회담, 북핵 (PG)



한미 정상회담, 북핵 (PG)






취임후 가장 빠른 한미정상회담..동맹 다지고 신뢰 쌓는다



역대 한미 정상회담서 동맹관계 '업그레이드' 성과 남겨
이번에도 한미동맹 재확인·정상간 유대강화 최우선 목표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51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서도 출범 후 가장 일찍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5년간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야 할 트럼프 대통령과 우의를 다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은 예외 없이 취임 후 가장 먼저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한·미 동맹이 우리나라 외교의 기본 축인 데다 북한 문제 등 한반도 정세를 조율하기 위해 양국 정상 간 신뢰 구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바마와 로즈가든 산책한 朴…'윤창중 사건'으로 오점




(워싱턴=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 정상회담을 마친뒤 백악관 경내에서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3.5.8  dohh@yna.co.kr  (끝)



(워싱턴=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 정상회담을 마친뒤 백악관 경내에서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3.5.8 dohh@yna.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 7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취임 71일 만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5월 5일부터 엿새간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으며, 백악관 정상회담에 앞서 오벌 오피스 근처 로즈가든을 오바마 전 대통령과 통역도 없이 단둘이 10분간 산책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 정상으로는 여섯 번째로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장에서 연설했다.

박 전 대통령의 방문은 국빈 자격이 아니라 공식 실무 방문 형식이었지만  합동회의 연설에 초청받는 예우를 받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영어로 연설해 40여 차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6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하고 한·미

동맹 60주년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 표명을 끌어내는 등 철저한 대북공조 유지를 확인했다.


또 52명에 달하는 경제사절단과 함께 북한발(發) 한반도 안보위기에 따른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경제외교'를 펼쳤으며, 방미 기간 공식 행사에 3차례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정상회담 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을 수행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서 큰 오점을 남긴 정상회담 일정으로 기록됐다.




◇캠프 데이비드서 골프카트 운전하며 부시와 친분 과시한 MB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함께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f6464  scoop@yna.co.kr  (끝)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함께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f6464 scoop@yna.co.kr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임기 개시 54일 만인 2008년 4월 19일 미국 대통령의 공식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후 곧바로 일본에 들러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일정으로 첫 해외 순방을 소화했다.


이 전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본인이 직접 골프 카트를 운전하며 부시 전 대통령과의 유대를 과시했으며, '21세기 전략동맹'에 합의함으로써 한미동맹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감축계획 백지화를 끌어내고 미국의 대외 군사판매에 있어 최혜국 수준의 대우를

받아냈다. 또 양국 의회 내 이견으로 정체 상태에 빠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의 불씨를 살렸다.


4박 5일 방미 기간 이 전 대통령이 소화한 일정은 메인 이벤트인 부시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30여 개에

달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만찬, 뉴욕증권거래소 방문,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 한반도 문제 전문가 초청 조찬, 한국투자설명회, 상·하원 지도부 간담회,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등 미 정부 고위관료 연쇄 회동 등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 전 대통령도 무난하게 한·미 정상회담을 마쳤지만, 방미 기간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이 발목을 잡았다.

이 전 대통령 귀국 직후 방영된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계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상회담 전 이라크 파병 결정한 盧…미국 내 북폭 주장 잠재워


연합뉴스 자료 사진



연합뉴스 자료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79일 만인 2003년 5월 15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더불어 한미동맹 5

0주년을 맞아 '완전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2003년 3월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은 취임 한 달도 안 된 노 전 대통령에게 지지를 요청하며 파병을 요청했고, 노 전

 대통령은 국내의 파병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상회담 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해 정상회담에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미국 조야에 일던 북폭 주장을 제어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물꼬를 돌리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주한 미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 계획을 유보해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미칠 불안감을 덜어내는 한편, 활발한

세일즈 외교도 펼쳤다.


노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성명과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개인적인 신뢰와 우의를

 드러냈다.

1946년생 동갑내기인 두 대통령은 첫 만남이었지만 서로 잘 통했다고 알려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안내해 링컨 대통령의 침실을 포함해 백악관 2층을 거의 다 보여줬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안내하며 백악관 2층을 모두 소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 두 사람은 골프를 소재로 정담을 나누는 등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정상 간 친분 쌓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에도 한·미동맹 재확인·정상간 신뢰 쌓기가 최우선 목표






역대 한·미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이번 회담에서도 양국 모두 한·미 동맹의 강고함을 재확인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전망이다.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전략의 초석일 뿐 아니라 미국에 있어서도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가야 할 핵심축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단순히 좋은 관계가 아니라 '위대한 동맹'(not just good ally but great ally)이라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국내 배치 등을 두고 한·미 동맹에 균열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양국 모두에서 제기되고 있어 양국은 동맹이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국제사회와 북한에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데 심혈을 기울일 전망이다.


아울러 정상외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정상 간의 돈독한 신뢰'를 쌓기 위한 이벤트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캠프 데이비드 회담과 박근혜 전 대통령 때 로즈가든 산책을 준비한 미국이 이번에는 어떤 그림을 준비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kind3@yna.co.kr





 

     




"짐싸, 당장 돌아가자"부터 대변인 성추행까지..역대 '한미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8일 미국 방문길에 올라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1952년 12월 초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우리나라를 찾아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한 이래 이번이 64번째 한미정상회담이다.

역대 한미정상회담 중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의미가 남달랐던 몇 몇 정상회담들을 살펴본다.


◇ 역대 한미정상회담 일지


▷이승만(2회)


1차:1952.12.2-12.5 =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방한,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

2차:54.7.30 = 이 대통령 방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회담


▷허정(1회)


3차:60.6.20 =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 허정 국무총리 면담


▷박정희 (7회)


4차:61.11.14 =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 방미,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


5차:65.5.18 = 박정희 대통령 방미, 존슨 대통령과 회담

6차:66.11.2 = 존슨 대통령 방한, 박 대통령과 회담

7차:68.4.17 = 박 대통령 방미, 존슨 대통령과 회담(호놀룰루)


8차:69.8.22 = 박 대통령 방미, 닉슨 대통령과 회담(샌프란시스코)

9차:74.11.22 = 포드 대통령 방한, 박 대통령과 회담

10차:79.6.30 = 카터 대통령 방한, 박 대통령과 회담


▷전두환(3회)


11차:81.2.2 = 전두환 대통령 방미,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12차:83.11.14 = 레이건 대통령 방한, 전 대통령과 회담

13차:85.4.26 = 전 대통령 방미,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노태우(7회)


14차:88.10.20 = 노태우 대통령 방미, 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15차:89.2.27 =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방한, 노 대통령과 회담

16차:89.10.17 = 노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


17차:90.6.6 = 노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

18차:91.7.2 = 노 대통령 국빈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

19차:91.9.23 = 노 대통령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 부시 대통령과 회담(뉴욕)

20차:92.1.6 = 부시 대통령 방한, 노 대통령과 회담


▷김영삼 (8회)


21차:93.7.10 = 클린턴 대통령 방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

22차:93.11.23 = 김 대통령 시애틀 APEC 정상회담후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워싱턴)

23차:94.11.14 = 보고르(인도네시아)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24차:95.7.27 = 김 대통령 방미,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25차:96.4.16 = 클린턴 대통령 방한(제주도), 김 대통령과 회담

26차:96.11.24 = 마닐라(필리핀)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27차:97.6.27 = 김 대통령 유엔환경특별총회(뉴욕) 참석중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28차:97.11.24 = 밴쿠버(캐나다)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김대중(10회)


29차:98.6.9 = 김대중 대통령 국빈 방미,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0차:98.11.21 = 클린턴 대통령 방한, 김 대통령과 회담

31차:99.7.2 = 김 대통령 방미,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2차:2000.6.9 = 김 대통령, 오부치 전 일본총리 장례식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3차:2000.9.7 = 김 대통령, 천년정상회의(뉴욕) 계기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34차:2000.11.15 = 브루나이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35차:2001.3.7 = 김 대통령 방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회담

36차:2001.10.19 = 상하이(중국)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정상회담

37차:2002.2.20 = 부시 대통령 방한, 김 대통령과 회담

38차:2002.10.27 = 로스 카보스(멕시코) APEC 정상회담 계기 한미일 정상회담


▷노무현(8회)


39차:2003.5.15 = 노무현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

40차:2003.10.20 = 태국 방콕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41차:2004.11.20 = 칠레 산티아고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42차:2005.6.11 = 노 대통령 방미, 백악관 정상회담

43차:2005.11.17 = 부산 APEC 계기 경북 경주 정상회담

44차:2006.9.14 = 노 대통령 방미, 백악관 정상회담


45차:2006.11.18 = 베트남 하노이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46차:2007.9.7 = 호주 시드니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


▷이명박(11회)


47차:2008.4.19 = 이명박 대통령 방미, 부시 대통령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

48차:2008.7.9 = 일본 도야코(洞爺湖) G8(선진8개국) 확대정상회의 계기 정상회담

49차:2008.8.6 = 부시 대통령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50차:2008.11.22 = 페루 리마 APEC 정상회의 계기 정상회담

51차:2009.4.2 = 이 대통령, G20 런던 금융정상회의 계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52차:2009.6.16 = 이 대통령 방미,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53차:2009.11.19 = 오바마 대통령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54차:2010.6.26 = 이 대통령, G20 토론토 정상회의 계기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55차:2010.11.11 = 오바마 대통령 G20 서울 정상회의 계기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56차:2011.10.13 = 이 대통령 방미,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

57차:2012.3.25 = 오바마 대통령,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계기 방한, 이 대통령과 회담


▷박근혜(6회)


58차:2013.5.7 = 박근혜 대통령 방미,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

59차:2014.4.25=오바마 방한,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

60차:2014.11.11 북경 APEC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61차:2015.10.16=박근혜 대통령 방미, 백악관 정상회담

62차:2016.3.31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담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한미 60번째) 

63차:2016.9.6=라오스 아세안 정상회의서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문재인(예정)


64차:2017.6.29일=문재인 대통령 방미, 트럼프와 백악관 정상회담




▲ 쿠데타 일으킨 박정희, 미국으로 건너가 케네디와 담판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당시 국가최고개건회의 의장은 그해 11월 14일 미국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정희 의장은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통해 전세계에 쿠데타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 경제개발을 위한 미국의 차관을

기대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비민주적 절차로 정권을 잡은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박정희는 독일 등 다른나라로 차관 루트를 찾기에 이르렀다.








▲ 1965년 5월 박정희-존슨 회담, 월남전에 발목잡힌 미국이 보기 드물게 한국에 부탁하는 처지가 돼

1965년 5월 18일(미국시간 5월 17일) 열린 박정희-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부탁하는 보기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한국이 월남에 전투병력을 파견해 수렁에 빠진 자신들을 좀 도와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존슨 대통령은 이를 위해 전용기를 한국으로 보내 박정희 대통령 일행을 태우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또 존슨 대통령은 각종 경제 및 기술원조, 개발차관 제공, 사전 허락없이 주한미군을 철수치 않는다는 등 전례없이 많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1979년 6월 30일 박정희-카터 회담…박정희 "주한미군 빼든지 말든지, 그렇지만 인권은 말하지 마라" VS 카터

"당장 짐싸라, 미국으로 돌아가겠다"  


1979년 6월에 있었던 박정희-지미 카터 회담은 두고 두고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한국과 미국관계, 권위주의와 인권, 주한미군과 자강론, 유신정권 몰락 단초 등 수많은 논쟁거리가 있다.

당시 박정희의 억압정치는 군데 군데 누수현상을 보였고 '유신타도' 데모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바른 생활'하면 그를 연상시킬만큼 엄격한 민주주의자였던 카터가 본 박정희는 민주주의 억압자에 불과했다.

 이에 카터는 독재자 정권유지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는가라며 '미군 철수'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6월 30일 열린 정상회에서 박정희는 "주한미군 철수해도 좋지만 장비는 두고 가라, 돈을 달라면 주겠다"면서 "하지만

 인권문제는 간섭하지 말라"고 강하게 나갔다.


기분이 상한 카터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당장 미국으로 돌아 가겠다. 짐을 싸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카터 집권이후 박정희가 자체 핵 및 미사일 개발을 검토했고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 한국정권의 가장 강력한 받침돌이었던 미국정부와의 관계가 틀어진 결과, 10·26으로 이어졌다는 논리까지

 내 놓았다.  





▲ 2003년 5월 노무현-부시 회담, 이라크 파병으로 미국 의심 거둬 


보수주의자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미국은 진보성향의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자 자신들과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 아닌가라고

경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도움없이는 북한과의 의미있는 대화가 불가능함을 의식, 취임 79일만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3년 5월 15일 백악관에서 만난 부시는 '이라크 파병'을 요청했고 노 대통령이 이를 수용, 한미동맹을 회복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과 보수적인 미국정부 사이에서 많은은 고민을 했다. 





▲ 2013년 5월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내용보다는 청와대 대변인 일탈행위로 어두운 미래 암시


2013년 5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머리를 맞댔다.

두사람은 로즈가든 산책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보다는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일탈행위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


윤 대변인은 주미 한국대사관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람들이 대통령의 방미성과보다 이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정권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으며 각종 사건, 스캔들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불행의 그림자가 이때 만들어졌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